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초기경전에 나타난 āsava의 특성에 대한 고찰/윤응열(각성)

실론섬 2016. 8. 5. 11:18

초기경전에 나타난 āsava의 특성에 대한 고찰

윤 응 열(각성)

 

I. 머리말

II. 불선법으로서의 āsava의 의미

   1. 불선법의 의미와 범주

   2. āsava의 의미

III. 번뇌(āsava)의 특성

   1. 번뇌의 종류

   2.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

   3. 번뇌의 소멸의 방법

IV. 맺음말

 

[국문초록]

본 연구는 Pāli 문헌에 나타난 āsava(번뇌, 漏)의 특성을 고찰한 것이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사견의 번뇌 그리고 무명의 번뇌는 ‘흐름’, ‘취하게 함’, 또는 ‘괴로움의 생성’의 의미로 그 기능적 특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네 가지 번뇌는 곧 마음(citta)과 함께 작용하는 탐욕(lobha), 사견(diṭṭhi), 그리고 어리석음(moha)의 마음부수(cetasika)를 말한다.

번뇌는 윤회의 괴로움의 주원인이다. 일어남과 소멸에 있어서, 네 가지 번뇌가 俱生緣과 親依止緣의 조건으로 무명과 상호 의존하여 緣起하기 때문이다. 또한 번뇌는 그 특성상 不善法들과 동일시되면서, 번뇌의 소멸이 곧 아라한의 특성이라는 긍정적 가치를 가진다.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의 직접적인 원인은 非如理作意와 如理作意에 있다. 따라서 마음의 흐름의 방향키 역할을 하는 ‘作意’가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을 좌우하는 핵심이며, 수행자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의식전환을 모색해야 하는지를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감각기능들, 의식주와 수행생활 환경, 바르지 못한 법들을 바르게 숙고하여 절제하고 극복하지 못할 경우, 이들은 번뇌를 일으키는 부차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번뇌의 소멸은 존재의 ‘본질의 이해’와 ‘善法의 수행’에 의해 이루어진다. 특히 無常 苦 無我의 특상을 직관함에 의한 번뇌 소멸이 강조되고, 또한 戒定慧, 8正道로 귀결되는 37조도법 등의 점진적 수행이 번뇌를 소멸을 가져온다. 번뇌의 완전한 소멸은 涅槃(nibbāna)을 의미한다.  

I. 머리말


초기불교에 있어서 번뇌(āsava, 漏)는 梵行의 목적인 열반(nibbāna)1) 과 직결되어있다.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열반은 괴로움을 소멸한2) 최상의 즐거움이다.3) 이것의 성취는 모든 번뇌의 소멸을 의미한다.4) 그래서 번뇌를 소멸한 자(khīṇāsava)를 아라한(arahant)5)이라 부르는 것이며, 그의 마음은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 해탈의 상태에 있어서 더 이상 윤회의 괴로움에 속박되지 않는다.6)   
1) MN I, p.304: ...brahmacariyaṃ, ...nibbānapariyosānaṃ.
2) 초기경전에서는 갈애의 소멸(nirodho)이 곧 괴로움의 소멸이고, 또한 갈애의 소멸
   (khayo)이 열반이라고 설명한다. AN III 416: Katamo ca, bhikkhave, dukkhanirodho? 
   taṇhanirodho, bhikkhave, dukkhanirodho.; SN III p.190: Taṇhakkhayo, rādha, 
   nibbānanti. Cf. Mnd II p.294: dukkhanirodho nibbānaṃ.; Pts-a II(Vri), p.77: Nirodho 
   nibbānanti dukkhanirodhatthā nirodho.
3) MN I, p.508: ...nibbānaṃ paramaṃ sukkhaṃ.
4) MN-a I p.63: ...maggaphalanibbānānipi āsavakkhayoti vuccati.
5) DN III, p.83: ...arahaṃ khīnāsavo...
6) MN I, pp.249-250.

 

그러나 번뇌는 완전히 근절되기 전까지는 중생의 마음에서 일어나 중생의 마음을 오염하고 괴롭히며 삶의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7) 그래서 번뇌에 뒤덮인 중생은 끝없는 윤회 속에서 괴로움을 겪게 된다. 번뇌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7) Bhikshu Satypala(1989), p.85.

 

Sammādiṭṭhisutta(正見經)에서 붓다는 번뇌와 번뇌의 일어남, 번뇌의 소멸, 그리고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 무엇인가를 이해 할 때, 지혜가 발생하게 되고, 그 지혜에 의해서 비로소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8) 본고는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Pāli 경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āsava의 특성을 살펴보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8) MN I, p.55.

먼저, āsava의 의미를 고찰 하면서 不善法으로서의 āsava가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히고, 본론에서는 무엇이 āsava이고, 그들의 발생과 소멸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고찰하면서, 어떻게 번뇌가 윤회의 원인이 되고, 그 원인의 소멸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며, 또한 어떠한 과정을 통해 번뇌가 소멸되는지를 밝히는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   

본고의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선행연구의 성과들9)과 함께 āsava의 특성을 나타내는 초기경전의 자료들을 기초로 하고자 한다. 또한 관련된 부분을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해 아비담마의 견해와 더불어 주석서, 복주석서들의 설명들을 통해 상좌부 전통의 시각을 병행하여 고찰할 것이다.   
9) Āsava를 주제로 하거나 다루고 있는 연구들로 다음을 들 수 있다. Acharya 
   Buddharakkhita(2004) Mind Overcoming Its Canker,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Bhikshu Satypāla(1989), A Critical Note on Āsava, Perspective on 
   Buddhist Ethics, Delhi Univrsity, pp.34-45; Rune E.A. Johansson (1985), The 
   Dynamic Psychology of Early Buddhism, London, Curxon Press; 榎本文雄(1983) 
   「初期佛典におけゐāsav(漏)」, 「南都佛敎」50, (京都).; 김재성(2007), 「초기불교 
   및 부파불교의 번뇌」,「학술연찬회」제3회, 서울, 밝은 사람들, pp.13-48.

 

II. 不善法으로서의 āsava의 의미

1. 불선법의 의미와 범주
초기 불교의 수행의 관점에서, 善法(kusala-dhamma)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데에 긍정적 가치를 나타내는 반면에, 不善法(akusala-dhamma)은 부정적 특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Dhammasaṅgaṇī(法集論)의 주석서는 善(kusala)을 건강함(āroghya), 결점없음(anavajja), 능숙함(cheka), 행복한 결과(sukhavipāka)의 의미로 해석하고, 또한 “나쁜 사악한 법들을 뒤흔들다.” “부순다.”, 또는 “나쁜 형태로 잠재한다고 해서 kusa라 하고, 그 해로운 것이라 불리는 kusa를 잘라버린다(lunanti)고 善(kusala)이라 한다.”10)는 것 등으로 어원적 설명을 한다. 이 주석서에 의하면 不善은 이러한 善의 반대 의미이다.11) 또한, 法의 의미를 가르침(pariyatti), 원인(hetu), 덕성(guṇa), 무실체(nissatta-nijjīva)12)로 나누고, “자기의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 혹은 조건들에 의해, 자기의 본성에 따라 유지되는 것이 법이다”13)라고 정의하면서, 여기서의 법은 '무실체'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10) Dhs-a (Vri) p.87: "…kucchite pāpake dhamme salayanti ... viddhaṃsentī ti 
   kusalā. Kucchitena vā ākārena sayantī ti kusā. Te akusalasaṅkhāte kuse 
   lunanti chindantī ti kusalā. ......"
11) Dhs-a (Vri) p.88: Na kusalā akusalā. Mittapaṭpakkhā amittā viya,... 
   kusalapaṭipakkhāti attho.
12) Nissatta-nijjīva의 문자적인 의미는 ‘존재도 없고, 영혼도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무실체’로 옮긴다.
13) Dhs-a (Vri) p.88: "Attano pana sabhāvaṃ dhārentī ti dhammā. Dhāriyanti vā 
   paccayehi, dhārīyanti vā yatthāsabhāvato ti dhammā."

 

이러한 점에서 볼 때, 不善法은 ‘결점 있고, 괴로운 결과(dukkhavipāka)를 초래하는 해로운 것’으로서 사람의 마음에 나쁜 형태로 잠재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며, 특정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일어난 (緣生) 나쁜 정신적 현상을 의미한다.  

모든 不善法은 무명(avijj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14) 또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근원으로 한다.15) 아비담마의 분류에서 不善法들은 탐욕,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에 뿌리를 둔 12가지 형태의 불선마음들(akusala-cittāni)에서 작용하고, 불선마음들과 함께 작용하는 14가지 형태의 불선마음부수(akusala-cetasikā)들 속에 포함된다. 따라서 초기 경전에서 언급되는 불선법으로서의 번뇌(āsava, 漏)는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Pāli 문헌의 전반에 걸쳐 ‘기능적 특성’을 나타내는 전문 술어들16) 가운데 하나이다.  
14) SN II, p.263: ... ye keci akusalā dhammā sabbe te avijjāmūlakā...
15) 앞의 각주 3)참조.
16) Abhidhammatthasaṅgaha(攝阿毘達磨義論)에서는 불선법의 전문 술어들을 
    9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번뇌(āsava), 폭류(ogha) 속박(yoga), 매듭(gantha), 
   취착(upādāna), 덮개(nīvaraṇa), 잠재성향(anusaya), 족쇄(saṃyojana), 그리고 
   (kilesa)오염원이다.; Atth pp.49-50.

 

2. Āsava의 의미
Āsava는 ā(향하여) + √sru(흐르다)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서 ‘흐르는 것’이란 문자적인 의미를 가진다.17) 주석서에서 Kilesa18)의 동의어로 해석되고, 漏,19) 漏注, 漏泄, 또는 漏失로 한역된다.  
20) 이 용어가 Pāli 문헌들 속에서 사용된 용례들을 살펴보면, 비유적 표현에서 언급되는 경우와 
     불선법으로서 언급되는 경우들을 들 수 있다.
17) Āsavati [ā + √sru, 이중어로는 assavati가 있다.] ...향하여 흐르다, 이르다, 일어
   나다, 발생하다.; Pali-English Dictionary, p.115.
18) kilesa는 √kliś(더럽히다, 괴롭히다, 성가시게 하다)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서 煩惱로 
    한역되는 용어이다. 본고에서는 kilesa를 ‘오염원’으로 옮겼으며,「아비담마 길라잡이」
    의 역어를 따른 것임을 밝힌다.
    Āsava와 kilesa는 불선법들을 대표하는 두 용어이다. 그러나 이 용어들이 전문 술어로 
    사용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다. Āsava는 Nettippakaraṇa指道論(pp.113-114)에서 
    처음으로 kilesapuňja로 언급되고, 주석서에서 역시 kilesa로 해석이 되지만(MN-a I p.
    164: āsavānaṃ khayāti arahattamaggena sabbakilesānaṃ khayā.), 초기경전에서
    부터 주석서시기까지 전문술어로 일관되게 사용된다. 반면에 kilesa는 초기경전에서 
    단지 일반적 의미로 언급되고 있어서, 무엇이 kilesa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아비담마에서 비로소 열 가지 kilesa(Dhs p.214: Dasa kilesavatthūni-Lobho doso 
    moho māno, diṭṭhi vicikicchā thīnaṃ uddhaccaṃ ahirikaṃ anottappaṃ)가 언급이 
    되면서 전문술어로서의 특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주석서시기에 오면, kilesa는 모든 불선법들(Mnd-a I, p.64:Sabbe kilesā ti 
    sabbe pi akusalā dhammā)을 함축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또한 1500가지 kilesa
    (SN-a I, p.187:diyaḍḍhyakilesasahassa)로 언급이 되며, Dhammasaṅgaṇī-
    anuṭīkā(pp.17-19)에서는 1500가지의 kilesa가 구체적으로 열거된다.
19)「불교학 대사전」pp.223-224.
20)「가산 불교대사전」3권, p.608.

 

1) āsava의 비유적 언급
먼저, Jātaka(本生經)에서 āsava는 술(surā)을 지칭한다.

“아들아, 세상에는 사람들이 술이라 부르는 āsava가 있다. 향기롭고, 맛있고, 달콤하고, 값싸면서 좋은 향을 지닌 이것은, 나라다여, 梵行을 행하는 자에게 毒(visa)이다라고 성자들은 말한다.”21)
21) Ja(Vri) I, p.202: "Āsavo tāta lokasmiṃ surā nāma pavuccati, manuññā surabhī vaggū 
    sādukhuddarasūpāmā Visaṃ tad āhu ariyāse brahmacariyassa Nārada."

 

또한, Vinaya-piṭaka(律藏)에서는 āsava을 meraya라고 언급하는데,22) 주석서에 의하면, 밀가루를 코코넛의 물과 섞어서 만든 정수를 surā라 부르고, 그 정수를 숙성하기 위해 항아리에 담았을 경우에 meraya라고 부른다.23) 이 설명들에서 āsava는 술의 ‘취하게 함’의 성질을 나타낸다.   
22) Vin IV (Vri) p. 149: Merayo nāma pupphāsavo phalāsavo madhvāsavo guḷāsavo 
    sambhārasaṃyutto; Bhikshu Satyapala(1989), p.46, 각주 21에서 재인용.
23) Vin-a IV, p.859: Surā nāma piṭṭhakiṇṇapakkhittānāḷikerādīnam rasena katā surā tv 
    eva saṅkhyaṃ gacchatī’ti, tassā yeva kiṇṇapakkhittāya maṇḍe gahite merayā tv eva 
    saṅkhyaṃ gacchatī’ti vadanti.

 

Aṅguttara-nikāya(增支部)에서 āsava는 화가 난 사람의 심적 상태의 표출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언급된다.

“마치 나뭇가지나 돌조각에 부딪친 곪은 종기가 흐름을 내보내는(āsavaṃ deti)것처럼, 어떤 
사람은 성미가 급하고 격렬하다. 사소한 농담에도 노여워하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분개한다.”24)
24) AN I, p.124: "Seyyathāpi namā duṭṭhāruko kaṭṭhena vā kaṭhalāya vā ghaṭṭito 
    bhiyosomattāya āsavaṃ deti, evam eva kho bhikkhave idh’ ekacco puggalo kodhano 
    hoti … kopañ ca dosañ ca appaccayañ ca pātukaroti."; Pug p.30.; Bhikshu 
    Satyapala(1989), p.46, 각주 21에서 재인용.

 

주석서에서는 ‘āsavaṃ deti’를 ‘계속해서 흐른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오래된 종기는 본질적으로 고름과 피와 혈액, 이 세 가지를 흘려내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25)   
25) AN-a II, p.195: Āsavaṃ detī ti aparāparaṃ savati. Purāṇavaṇo hi attano dhammatāy’ 
    eva pubbaṃ lohitaṃ yūsan ti imāni tīṇi savati,...

 

2) 不善法으로서 āsava의 언급
不善法으로서의 āsava는 “괴로운 느낌을 가져올 āsava가 미래에도 흐를 것인가?”26)라는 동족동사의 형태로 설명하고 있는 문장에서 그 문자적인 의미를 지닌다. 특히 āsava의 어원적 해석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는 주석서들에서는 앞서 살펴본 비유적 표현에서의 āsava의 의미들 역시 不善法으로서의 āsava의 의미로 적용하고 있다.   
26) AN II, p.196:“...dukkhavedaniyā āsavā assaveyyuṃ abhisamparāyan ti?"; Johansson(1985), 
    p.177에서 재인용.

“흐른다고 āsavā이다. 그들은 눈에서부터.... 마음에서부터 흐르고, 활동한다고 말한다. 법으로는 種姓27)까지, 공간적으로는 존재의 정점까지 흐른다고 āsavā이다. 이들 법들은 이 공간을 정점으로 하고서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마디라(madira) 등이 오랫동안 유지(숙성)되었다는 의미로 술들
(āsavā)인 것처럼, āsavā는 또한 마디라 등의 술들과 같은 것들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오래도록 숙성된 마디라(madira) 등을 술들(āsavā)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madira)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는 의미로 술들(āsavā)이라고 부른다면, 이 법들 역시 āsavā(취하게 함)라고 부를 만하다. 왜냐하면, ‘비구들이여, 무명의 시작점은 알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무명이전에 어떠한 무명도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설하기 때문이다. 또는, 미래에 윤회의 괴로움을 일으키고, 활발하게 한다고 āsavā이다.”28)     
27) Gotrabhū(種姓)는 문자적으로 ‘성자들의 性을 가지는 경지’를 뜻한다. 예를 들면, 
    預流道의 경우, 범부혈통에서 성자의 혈통으로 바뀌기 때문에 고트라부라고 불린다.
28) MN-a I, p.61: Tattha āsavantī ti āsavā. Cakkhuto pi…pe…manato pi sandanti, 
    pavattantī ti vuttaṃ hoti. Dhammato yāva gotrabhu okāsato yāva bhavaggaṃ 
    savantī ti vā āsavā. Ete dhamme etaṃ ca okāsaṃ anto karitvā pavattantī ti attho. 
    Antokaraṇattho hi ayaṃ ākāro. Ciraparivāsikaṭṭhena madirādayo āsavā viyā ti pi 
    āsavā. Lokasmiṃ hi ciraparivāsikā madirādayo āsavā ti vuccanti. Yadi va 
    ciraparivāsikaṭṭhena āsavā, ete yeva bhavitum arahanti. Vuttaṃ h’etaṃ: "Purimā, 
    bhikkhave, koṭi na paññāyati avijjāya, ito pubbe avijjā nāhosī"ti-ādi. Āyataṃ vā 
    saṃsāradukkhaṃ savanti pasavantī ti pi āsavā.; AN-a II, 183; Ps-a I, p.37;
    Dhs-a p.48.

 

이러한 주석서의 설명은 감각기능들에서부터 시작해서 āsava가 작용하게 되는 활동의 영역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불선법으로서의 āsava의 본질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는 의미’로서 술의 속성과 대비시켜 규정하고, āsava가 미래에 윤회의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임을 밝히고 있다. 복주석서에서는 “āsava없이 일어나게 되는 윤회의 괴로움은 없다”29)고 강조한다.  
29) MN-ṭ(Vri) I, p.129: "Na hi taṃ kiñci saṃsāradukkhaṃ atthi, yaṃ āsavehi vinā uppajjeyya”.

Āsava의 어원적 설명을 하고 있는 Visuddhimagga(淸淨道論)에서는 감각기능들이 보호되지 않을 때, āsava는 깨진 항아리의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물처럼 ‘흐름’(savana), 또는 윤회의 괴로움의 ‘생성’(savana)30)이라는 이중의미로 해석한다.31) 그러나 Vibhāvinī-ṭīkā에 의하면, “그 시작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다는 의미로[취하게 함], 또는 종기로부터 유출되는 고름처럼, 눈 등의 감각기능들로부터 그들의 대상들 속으로 유출하기 때문에 āsava라고 부른다.”32)   
30) Vism p.587.
31) Visuddhimagga(淸淨道論)의 복주서는 ‘savana'를 두 가지로 해석한다. 즉 번뇌들의 
    부정한 상태로 인해 ‘유출하기 때문에’(vissandanato), 다시 [미래의 괴로움을] ‘생성
    하기 때문에’(pasavanato)라고 해석한다.; Vism-mṭ(Vri) II, p.467.
32) Atth-vṭ(Vri) p.193:"Pubbakoṭiyā apaññāyanato cirapārivāsiyaṭṭhena, vaṇato vā 
    vissandamānayūsā viya cakkhādito visayesu vissandanato āsavā." Majjima-nikāya의 
    복주서(ṭīkā)의 설명에 의하면, 眼識등의 과정과 眼識 등과 함께하는 心識의 과정에서 일어
    나는 어떠한 善法 등의 활동이 있다고 할지라도, 감각적 욕망의 번뇌(kāmāsava) 등은 
    종기(vaṇa)로부터 흐르는 고름(yūsa)처럼 ‘줄줄 흐르는 불결한 상태’ (paggharaṇaka-
    asucibhāvena)로서 흐른다.; MN-ṭ (Vri) I, p.128.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āsava의 의미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① 감각 기능들로부터 감각대상들로의 흐름(āsava/savana), 또는 부정한 상태의 유출
   (vissandana)
②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는 의미(cirapārivāsiyaṭṭha)에서의 '취하게 함’(āsava)
③ 윤회의 괴로움의 生成(savana)

 

Āsava에 대한 영문역어는 intoxicant, canker, taint, influx등 10여 가지33)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이것은 학자들에 따라 āsava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Bhikshu Satyapala는 āsava를 ‘flowing entity'로 영역 하면서도, ‘out flow’(유출) 또는 ‘influx’(유입), ‘intoxicating 
extract’(취하게 하는 액), ‘drug’(마취약) 그리고 ‘discharge’(방출)의 의미라고 보고 있다.34)  Bhikkhu Bodhi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다양한 역어는 학자들에 따라 āsava의 어원적 의미를 중시한 경우와 어원적 의미와는 별개로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오염하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는...번뇌들”35)이라는 문맥 등을 고려하여, āsava의 역어를 옮긴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āsava의 어원적 해석에 있어서도 접두어 ‘ā’를 ‘안으로’ 볼 것이냐 ‘밖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influx' 또는 ’out flow'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36) 앞서 인용한 주석서의 설명들은 경전들에 언급된 āsava의 용례들에 대한 상좌부 전통의 포괄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33) 학자들에 의한 영문역어들: Corruption (Maurice Walshe, Steven Collins, R. F. 
    Gombrich); Canker (E.M. Hare, Bhikkhu Bodhi, Bhikkhu Ñāṇamoli); Taint 
    (Thera Piyadassi, Bhikkhu Bodhi); Deadly taint (T.W. Rhys Davids); Mental taint 
    (P.V. Mahāthera); Impurity (Étienne Lamotte); Defilement (P. A. Thiṭṭila, Frank J. 
    Hoffman); Intoxicant (C. Rhys Davids, Pe Maung Tin); Flowing entity (Bhikkhu 
    Satyapala); Influx (D.J. Kalupahana, Asanga Tilakaratne); Influence(A.K. Warder); 
    Defiling impulse(D.J. Kalupahana); Influx or canker(Bhikkhu Ñāṇananda).
34) Bhikshu Satyapala(1989), p.36.; 김재성은 그의 논문 「초기불교 및 부파불교의 
    번뇌」에서 에노모투 박사에 의한 āsava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밝은 사람들(2007:
    제3회 학술연찬회), p.17 참조.
35) MN I, p.250.; 전체 인용문은 아래 각주 72) 참조.
36) Bhikkhu Ñāṇamoli &Bhikkhu Bodhi(1995), p.38.

 

III. 번뇌(āsava, 漏)의 특성

1. 번뇌의 종류
초기경전은 무엇이 번뇌인가에 대해 세 가지 번뇌, 즉 감각적 욕망의 번뇌(kāmāsava, 慾漏), 존재의 번뇌(bhavāsava, 有漏), 그리고 무명의 번뇌(avijjāsava, 無明漏)를 언급한다.37) 김재성이 지적하는 것처럼, Pali Text Society의 간행본 Mahāparinibbānasutta(大盤涅槃經)에는 사견의 번뇌
(diṭṭhāsava, 見漏)가 언급된다.38) 그러나 Vipassana Research Institute의 간행본에는 이것이 빠져있다.39) 또한 Majjhima-nikāya(中部)의 주석서는 사견의 번뇌를 존재의 번뇌에 포함시키고 있음을 고려할 때,40) 경전에서는 세 가지가 번뇌를 대표한다. 아비담마의 텍스트들은 사견의 번뇌를 포함시켜 네 가지 번뇌를 설명한다.41) 특히 주석서에서 네 가지 번뇌는 아비담마의 방식임을 명시한다.42)   
37) MN I, p.55; “tayo 'me āvuso āsavā: kāmāsavo bhavāsavo avijjāsavo."; DN III, 
    p.216; SN V, p.56.38) DN II, p.81: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 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īdaṃ– kāmāsavā, bhavāsavā, diṭṭhāsavā, avijjāsavā"ti."; 
    DN II, p.84, p.91, p.98, p.123 and p.126.; 밝은사람들(2007), 「초기불교 및 부파
    불교의 번뇌」, p.19, 각주 21에서 재인용.
39) DN(Vri) II, p.64, p.66.
40) MN-a I, p.67: Diṭṭhāsavo pi bhavāsave eva samodhānaṃ gacchati,
41) Dhs p.195; Atth p.49.
42) DN-a III, p.989: Abhidhamme te yeva diṭṭhāsavena saddhiṃ cattāro.

 

Pāsādikasutta(淨信經)에서는 “쭌다여, 나는 현재의 번뇌들의 단속을 위해 법을 설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번뇌들의 소멸을 위해 법을 설한다.”43)라고 현재와 미래의 번뇌를 언급한다. 또한 Nibbedhikasutta에서는 번뇌의 다양성(vemattatā)을 지옥, 축생계, Peta(아귀계), 인간계, 그리고 천상계로 이끄는 번뇌들로 설명하고,44) Sabbāsavasutta(諸漏經)는 단속(saṃvara), 수용(paṭisevana), 인내(adhivāsana), 피함(parivajjana), 제거(vinodana), 수행(bhāvanā), 그리고 관찰(dassana見)에 의해 버려져야 할 번뇌들을 언급한다.45) 특히, 주석서에서는 6가지 감각기능들이 단속되지 않을 경우 일어나게 될 번뇌들을 4가지 번뇌와 배가시켜 번뇌는 24가지46)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설명들 모두는 번뇌의 기능적 특성을 나타내는 네 가지 번뇌들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43) DN III, p.130.
44) AN III, p.414.
45) MN I, p.7.
46) MN-a I, p.77: ...ime chasu dvāresu cattāro cattāro katvā catuvīsati āsavā 
    saṃvarena pahātabbāti...

 

경전에는 네 가지 번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들어나지 않는다. 주석서에서 정의하는 각 번뇌에 대한 설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감각적 욕망의 번뇌는 다섯 가지 감각기능들의 감각적 욕망의 대상(kāmaguṇa)에 대한 
   탐욕(rāga)을 의미한다.
② 존재의 번뇌는 色界(rūpa)와 無色界(arūpa)의 존재(bhava)들에 대한 욕탐(chandarāga)이며, 
   禪적 갈망(jhānanikanti), 常見(sassatadiṭṭhi)과 함께하는 탐욕, 또한 존재의 열망
   (bhavapatthanā)을 포함한다.
③ 사견의 번뇌는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등과 같은 모든 62가지 형태의 삿된 견해      (diṭṭhi)를 함축한다.
④ 무명의 번뇌는 괴로움, 괴로움의 일어남,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 과거, 
   미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상의성에 의해 조건 지어져 일어난(緣生) 법들에 대한 무지(aññāṇa)   를 말한다.47)
47) Ps-a I, p.310: Kāmāsavoti pañcakāmaguṇikarāgo. Bhavāsavo ’ti rūpārūpabhavesu 
   chandarāgo, jhānanikanti, sassatadiṭṭhisahajato rāgo, bhavavasena patthanā. 
   Diṭṭhāsavo ’ti dvāsaṭṭhidiṭṭhiyo. Avijjāsavo ’ti dukkhādīsu aṭṭhasu ṭhānesu aññāṇaṃ.

 

존재의 번뇌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번뇌들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은 논서에서의 번뇌에 대한 정의와 같은 맥락에 의미를 가진다.48) 그러나 존재의 번뇌에 대해, 논서는 존재(bhava)에 대한 열의, 탐욕, 갈애 등 8가지 동의어로 정의하는 반면, 주석서는 ‘禪적 갈망’, ‘상견과 함께하는 탐욕’, 그리고 ‘존재에 열망’을 존재의 번뇌의 정의에 포함시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견의 번뇌를 존재의 번뇌에 포함시키는 것도 이러한 해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주석서의 설명을 토대로 하면, 네 가지 번뇌는 넓은 의미에서 탐욕(rāga)과 무명(moha/avijjā)이라 할 수 있다.   
48) Dhs pp.195-196.

아비담마의 관점에서, 네 가지 번뇌는 12가지 형태의 불선마음들49)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멸하는 50) 세 가지 형태의 마음부수들이다.
49) 12가지 형태의 不善 마음(akusala-cittāni)
    ①기쁨과 함께하고, 사견과 결합된 자극받지 않은 마음,
    ②기쁨과 함께하고, 사견과 결합된 자극받은 마음
    ③기쁨과 함께하고, 사견과 결합되지 않은, 자극받지 않은 마음
    ④기쁨과 함께하고, 사견과 결합되지 않은, 자극받은 마음
    ⑤평온과 함께하고, 사견과 결합된, 자극받지 않은 마음
    ⑥평온과 함께하고, 사견과 결합된, 자극받은 마음
    ⑦평온과 함께하고, 사견과 결합되지 않은, 자극받지 않은 마음
    ⑧평온과 함께하고, 사견과 결합되지 않은 자극받은 마음
    -이상의 8가지 마음들은 탐욕에 뿌리를 둔 마음들이다.
    ⑨불만족과 함께하고 분노와 결합되고, 자극 받지 않은 마음
    ⑩불만족과 함께하고, 분노와 결합되고, 자극받은 마음
    -이상의 2가지 마음들은 성냄에 뿌리들 둔 마음들이다.
    ⑪평온과 함께하고, 의심과 결합된 마음
    ⑫평온과 함께하고, 들뜸과 결합된 마음
    -이상의 2가지 마음들은 어리석음에 뿌리를 둔 마음들이다.
    대림스님, 각묵스님 공동번역 및 주해,「아비담마 길라잡이」p.114-121의 불선마음
    들에 대한 번역을 수정한 것이다.
50) Atth (Vri) p.8: Ekuppāda-nirodhā ca ekālambana-vatthukā Cetoyuttā dvipaññāsadhammā 
    cetasikā matā.

 

먼저, 감각적 욕망의 번뇌는 탐욕(lobha)과 함께하는 8가지 불선마음들이 일어날 때 일어난다. 즉 탐욕에 뿌리를 둔 마음(①-⑧)에서 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존재의 번뇌는 사견(diṭṭhi)과 결합되지 않고, 탐욕과 함께하는 4가지 마음들(③-④, ⑦-⑧)이 작용할 때 함께 작용한다. 마찬 가지로 사견의 번뇌는 사견과 결합되고, 탐욕과 함께하는 4가지 마음들(①-②, ⑤-⑥)이 일어날 때에 일어나고, 무명의 번뇌는 12가지 불선마음들(①-⑫)이 일어날 때에 일어난다.51)  
51) Dhs p.245:Kāmāsavo aṭṭhasu lobhasahagatesu cittuppādesu uppajjati, bhavāsavo 
    catūsu diṭṭhigatavippayuttalobhasahagatesu cittuppādesu uppajjati, diṭṭhāsavo catūsu 
    diṭṭhigatasampayuttesu cittuppādesu uppajjati, avijjāsavo sabbākusalesu uppajjati-.

 

따라서 12가지 불선마음들과 14가지 불선마음부수들52)의 관계에서 보면,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의 번뇌는 탐욕에 뿌리를 둔 마음들과 함께 작용하는 탐욕(lobha) 그 자체라는 의미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감각적 욕망의 번뇌는 감각적 욕망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반면, 존재의 번뇌는 존재를 계속 지속시키려는 것이라는 것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사견의 번뇌는 사견이 결합되어 작용하는 마음들과 함께 작용하는 사견 그 자체이고, 무명의 번뇌는 12가지 불선마음들 모두에 작용하는 어리석음(moha) 그 자체라는 뜻이다.53) Bhikshu Satyapala가 언급하는 것처럼, 14가지 불선마음부수들 가운데서 탐욕(lobha), 사견(diṭṭhi), 그리고 무명(avijjā)이 단지 āsava의 역할을 한다.54)   
52) 14가지 불선마음부수(akusala-cetasikā)
    어리석음(moha), 양심없음(ahirika), 수치심없음(anottappa), 들뜸(uddhacca), 탐욕
    (lobha), 사견(diṭṭhi), 자만(māna), 성냄(dosa), 질투(issā), 인색(macchariya), 후회
    (kukucca), 해태(thīna), 혼침(middha), 그리고 의심(vicikicchā). 대림스님,각묵스님 
    공동번역 및 주해,「아비담마 길라잡이」p.121의 역어를 따른 것이다.
53) Bhikkhu Bodhi(1999), p.265.
54) Bhikshu Satyapala (1989), p.36.

 

2.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

1) 번뇌의 일어남의 직접적인 원인과 소멸
Sammādiṭṭhisutta(正見經)에 의하면,

"번뇌(āsavā)들의 일어남으로부터 無明(avijjā)의 일어남이 있고, 번뇌들의 소멸로부터 무명의 
소멸이 있다.”55) 
55) MN I, p. 54: "Āsavasamudayā avijjāsamudayo, āsavanirodhā avijjānirodho,"; 
    Johanasson(1985), p.177에서 재인용.

 

“무명의 일어남으로부터 번뇌들의 일어남이 있고, 무명의 소멸로부터 번뇌들의 소멸이 있다.”56)
56) MN I, p.55: "Avijjāsamudayā āsavasamudayo, avijjānirodhā āsavanirodho,"; 
    Johanasson(1985), p.177에서 재인용.

 

번뇌와 무명은 발생과 소멸에 있어서 상호 의존한다. 이점은 Nibbedhikasutta에서도 번뇌의 원인이 무명이고, 번뇌의 소멸이 무명의 소멸이다57)라고 설명하는데서 더욱 분명해진다. Majjhima-nikāya(中部)의 주석서에 의하면,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의 번뇌는 ‘함께 생기는'방식으로 무명의 조건(sahajātapaccaya, 俱生緣)이 되고, 무명의 번뇌는 ‘강하게 의지하는’ 방식으로 무명의 조건(upanissayapaccaya, 親依止緣)이 된다. 여기서 먼저 일어난 무명이 무명의 번뇌이고, 그것은 나중에 일어난 무명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된다.58) 또한 무명은 '함께 생기는’ 방식으로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의 번뇌의 조건이 되고, '강하게 의지하는’ 방식으로 무명의 번뇌의 조건이 된다. 여기서 나중에 일어난 무명이 무명의 번뇌이다. 먼저 일어난 무명은 바로 나중에 일어난 무명의 번뇌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된다.59) 결과적으로 이것은 緣起체계의 핵심 요소인 무명의 조건 관계를 보여준다. 즉 번뇌는 무명의 조건이 되고, 무명 또한 번뇌의 조건이 됨으로 무명의 시작점은 밝혀질 수 없고, 그래서 윤회시작은 식별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60) 경전에 의하면, 중생이 윤회하게 되는 주원인은 무명과 갈애 때문이다.61) 앞서 살펴보았듯이 네 가지 번뇌는 다름 아닌 탐욕과 무명의 기능적 작용이다. 즉 윤회의 두 원인은 번뇌인 셈이다. 이러한 번뇌는 무명과 상호의존관계라는 순환 구조 속에서 일어나고 소멸하게 된다.   
57) AN III, p. 414: Avijjā bhikkhave āsavānaṃ nidānasambhavo… Katamo ca, 
    bhikkhave, āsavanirodho? Avijjānirodho, bhikkhave, āsavanirodho.;Johanasson
    (1985), p. 177에서 재인용.
58) MN-a I, pp. 223-224: āsavasamudayā ti ettha pana kāmāsavabhavāsavā 
    sahajātādivasena avijjāya paccayā honti; avijjāsavo upanissayavasen’ eva. 
    Pubbuppannā c’ ettha avijjā avijjāsavo ti veditabbā. Sā aparāparuppannāya 
    avijjāya upanissayapaccayo hoti.
59) MN-a I, p. 224: Avijjāsamudayā ti ettha avijjā kāmāsava-bhavāsavānaṃ sahajātādivasena 
    paccayo hoti; avijjāsavassa upanissayavasen’ eva.Aparāparuppannā c’ ettha avijjā 
    avijjāsavo ti veditabbā. Pubbuppannā avijjā yeva sā aparāparuppannassa avijjāsavassa 
    upanissayapaccayo hoti. 
60) MN-a I, p. 224: Ayaṃ vāro yā esā paṭiccasamuppādapadesu jeṭṭhikā avijjā, tassā pi 
    paccayadassanavasena vutto. …Āsavasamudayena hi avijjāsamudayo. Avijjāsamudayenāpi 
    āsavasamudayo. Evaṃ āsavā avijjāya, avijjā pi āsavānaṃ paccayo ti katvā, pubbā koṭi na 
    paññāyati avijjāya, tassā apaññāyanato saṃsārassa anamataggatā siddhā hotī ti.
61) Itv p. 8: Avijjānīvaraṇena hi, bhikkhave nivutā pajjā dīgharattaṃ sandhāvanti saṃsaranti.
    Taṇhāsaṃyojanena hi, bhikkhave saṃyuttā sattā dīgharattaṃ sandhāvanti saṃsaranti.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원인은 Sabbāsavasutta(諸漏經)의 다음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如理作意(yoniso manasikāra)와 非如理作意(ayoniso manasikāra)를 아는 자에게 번뇌(漏)들의 소멸이 있다. 非如理作意하는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이 일어나고, 일어난 번뇌들이 증가한다. 如理作意하는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번뇌들이 사라진다.”
62) MN I, p. 7: "yoniso ca manasikāraṃ ayoniso ca manasikāraṃ. Ayoniso
    bhikkhave manasikaroto anuppannā c’eva āsavā uppajjanti uppannā ca āsavā 
    pavaḍḍhanti, yoniso ca bhikkhave manasikaroto anuppannā c’eva āsavā na 
    uppajjanti uppannā ca āsavā pahīyanti."

 

이 인용문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의 직접적인 원인은 作意(manasikāra)에 따라서 좌우된다.

Aṅguttara-nikāya(增支部)의 설명은 이점을 보다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감각적 쾌락에 作意를 하면, 그의 마음은 감각적 쾌락에 대해서 벗어나 나아가지도 못하고, 확신을 갖지도 못하고, 안정되지도 않고, 안착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出離(nekkhamma)에 作意를 하면 그의 마음은 그것에서 벗어나 나아가고, 확신을 갖고, 안정되며 안착된다. 그의 마음은...감각적 쾌락으로부터 아주 자유롭고 속박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감각적 쾌락의 조건(kāmapaccaya)때문에 일어나는 애타고 열 받는 번뇌(漏)들로부터 벗어난다. 그는 그 [감각적 쾌락의] 느낌을 느끼지 않는다.”63)  
63) AN III, p.245: "Idha bhikkhave bhikkhuno kāmaṃ manasikaroto kāmesu cittaṃ na 
    pakkhandati na ppasīdati na santiṭṭhati na vimuccati, nekkhammaṃ kho pan’assa 
    manasikaroto nekkhamme cittaṃ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vimuccati. Tassa 
    taṃ cittaṃ sukataṃ subhāvitaṃ suvuṭṭhitaṃ suvimuttaṃ suvisaṃyuttaṃ kāmehi, ye 
    ca kāmapaccayā uppajjanti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mutto so tehi, na so taṃ 
    vedanaṃ vediyati."

 

여기에서 ‘감각적 쾌락’이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에 作意하느냐에 놓여있다. 즉 감각적 쾌락, 악의, 해함 등에 作意를 하면 이들을 조건으로 번뇌가 일어나게 되고, 출리나 악의 없음, 해함 없음 등에 作意를 하면 마음은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64)
64) AN III, p.246.  

 

주석서에 의하면 如理作意는 진리를 따르는 바른 방법, 바른 길에 의한 作意를 의미한다. 반면에 非如理作意는 無常을 常으로, 苦를 樂으로, 無我를 我로, 不淨을 淨으로 진리에 相反된 것으로 作意하는것을 말한다.65) 여기서 如理(yoniso)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암시하고, 非如理(ayoniso)란 윤회의 굴레를 의미한다. 윤회의 굴레는 非如理에 그 뿌리를 두고, 윤회의 굴레의 벗어남은 如理에 기초한다. 진리에 맞지 않게 作意할 때, 그것은 무명과 존재의 갈애를 일으킨다. 이 두 법을 조건으로 모든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존재들 가운데에서 윤회의 바퀴는 계속적으로 굴러 가게 된다.66)   
65) MN-a I, p.64: Tattha yoniso manasikāro nāma upāyamanasikāro, pathamanasikāro. 
    ...... Ayoniso manasikāro ti ...... Anicce niccanti, dukkhe sukhan ti, anattani attā ti, 
    asubhe subhan ti, ayoniso manasikāro, uppathamanasikāro; saccapaṭikkūlena vā 
    cittassa āvaṭṭanā anvāvaṭṭanā ābhogo samannāhāro manasikāro, ayaṃ vuccati 
    ayoniso manasikāro ti.
66) MN-a I, pp. 64-65: Ayoniso manasikāramūlakañca vaṭṭaṃ, yoniso manasikāramūlakaṃ 
    vivaṭṭaṃ. Kathaṃ? Ayoniso manasikāro hi vaḍḍhamāno dve dhamme paripūreti: 
    avijjañ ca bhavataṇhañca. Avijjāya ca sati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pe…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Taṇhāya sati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pe…
    samudayo hotī ti.

 

사람이 非如理作意하여 불선생각에 사로잡힐 때 잠재된 번뇌가 일어나게 된다. 반면에 사람이 如理作意하여 대상을 존재한 그대로 이해할 때 잠재된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심리적인 견지에서 마음의 개발과 정신적 잠재성의 전체 구조는 이러한 전제에 놓여 있다. 따라서 如理作意가 번뇌를 극복하는 방법론의 핵심 축이 된다.67)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신적 활동의 방향, 즉 어떻게 作意할 것이냐에 있다. 왜냐하면, 非如理作意는 무명을 키우는 자양분 역할을 하는 반면, 如理作意는 지혜를 키우는 자양분 역할68)을 하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作意69)는 모든 마음들과 연결되어 일어나는 마음부수들 가운데에 하나이다. 즉 作意는 목적지로 향하게 하는 배의 방향키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대상으로 전향시키는 정신요소이다.70) 따라서 번뇌를 일으키느냐 소멸하느냐에 대한 의식의 전환점도 여기에 놓여있게 된다.   
67) Acharya Buddharakkhita(2004), p.92.
68) AN V, p.113-115.
69) Manasikāra(作意)는 善, 不善, 그리고 無記의 마음들이 일어날 때 그들에 공통적으로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cetasika)이다. 이러한 마음 부수들에는 또한 감각접촉(phassa),
    느낌(vedanā), 인식(saññā), 의도(cetanā), 집중(ekaggata), 그리고 생명기능(jīvitindriya)이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러한 마음부수들을 ‘모든 마음에 공통된 것’ (sabbacittasādhāraņa)
    이라 부른다.; Bhikkhu Bodhi(1999), p.77.
70) Bhikkhu Boddhi(1999), p.81.

 

번뇌의 소멸은 무명의 제거를 의미하며, 사성제의 이해에서 비롯된다.71) 또한 무명이 모든 不善法들의 근원이기 때문에, 번뇌의 소멸은 모든 不善法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남을 의미한다. 이점은 Majjhima-nikāya(中部)의 다음 설명들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71) 무명(avijjā)은 괴로움, 괴로움의 일어남, 괴로움의 소멸, 그리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 된다.;MN I, p.54.

“악기웻싸나여, 여래는 오염하고(saṅkilesika),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괴로움을 유발하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āsavā)을 제거했고, 뿌리들을 근절했고, 야자나무 둥치처럼 만들어 존재하지 않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더 이상 여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72)   
72) MN I, p.250: “Eva kho Aggivessana Tathāgatassa ye āsavā saṅkilesikā pono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번뇌의 특성을 잘 규정해주는 “오염하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 죽음을 초래하는”이란 어구들은 Majjhima-nikāya(中部)의 Mahāsuññatasutta(空大經)에 언급된 ‘나쁜 不善法들(pāpakā akusalā dhammā)’을 설명하는 수식어구들과 일치한다.73) 또한 이 어구들은 아라한(Arahant)을 설명하는 내용에서도 똑같이 언급되고 있다.   
73) MN III, p.116: Ācariyūpaddavena avadhiṃsu naṃ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ṃkilesikā, 
    poṇ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아라한이 되는가? 오염하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미래에 태어남과 늙음, 죽음을 초래하는 나쁜 불선법들이 그로부터 떨어져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그렇게 비구는 아라한이 된다.”74)
74) MN I, p.180: "Kathañca, bhikkhave, bhikkhu arahaṃ hoti: ārak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arahaṃ hotī"ti.

이러한 설명들을 “번뇌를 소멸한 아라한”75)이란 표준 어구에 비추어 볼 때, 번뇌의 소멸은 곧 중생의 정신적 부산물인 모든 不善法을 버린 아라한의 심적 상태를 나타낸다.  
75) MN I, p. 4; SN III, p.112.

 

2) 번뇌의 일어남의 잠재적 원인과 소멸
Sabbāsavasutta(諸漏經)에서 붓다는 감각기능들을 단속하지 못할 경우 번뇌가 일어날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如理(올바르게) 숙고하고서(paṭisaṅkhā yoniso) 눈의 감각기능을 단속(saṃvara)하고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눈의 기능이 단속되지 않을 때, 그에게 열 받고 애타는 번뇌(漏)들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의 기능을 단속하면서 살면 열 받고 애타는 번뇌들이 일어나지 않는다.”76)   
76) MN I, p. 9: “Idha bhikkhave bhikkhu, paṭisaṅkhā yoniso cakkhundriyasaṃvarasaṃvuto 
    viharati. Yam hi ’ssa bhikkhave cakkhundriyasaṃvaraṃ asaṃvutassa viharato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cakkhundriyasaṃvaraṃ saṃvutassa viharato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ļāhā na honti…”.

 

이 인용문에서 눈에 대한 단속이 강조되고 있지만, 사실 올바른 숙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감각기능들의 단속은 올바른 숙고에 의해 이루어 질수 있기 때문이다. 주석서에 따르면 ‘如理 숙고하는 것’은 곧 ‘바른 수단과 방법’을 통한 지혜(ñāṇa)를 의미하며, 단속되지 않은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77) 중생이 감각적 쾌락에 대해 만족하고서 눈의 감각기능 속으로 들어오는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 즐거워할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가 생긴다. 다음생의 천상계에서도 지금과 똑 같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존재의 갈망(bhavapatthanā)을 가지고 만족해 할 때 존재의 번뇌가 생긴다. ‘중생’이라던가 ‘중생에 속하는 것’이라던가 하는 그러한 견해를 가질 때 사견의 번뇌가 생긴다. 그리고 무명의 번뇌는 이들 모두와 함께 일어나는 무지 그 자체이다.78) 이처럼 네 가지 번뇌가 각각 눈의 감각 기능을 통해 작용하는 것은, 눈을 단속하지 않을 경우 번뇌가 야기되는 위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기에서의 단속은 ‘깨어있음’에 의한 단속(satisaṃvaro)79)을 의미한다. Acharya Buddharakkhita에 의하면, 자기절제를 통한 감각기능의 단속은 6가지 감각기능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경각을 의미한다.80)    
77) MN-a I, p.75: Paṭisaṅkhā yoniso ti upāyena pathena paṭisaṅkhāya. Ñatvā paccavekkhitvā 
    ti attho. ettha ca asaṃvare ādīnavapaṭisaṅkhā, yoniso patisaṅkhā ti.
78) MN-a I, p.77: Cakkhudvāre hi iṭṭhārammaṇaṃ āpāthagataṃ kāmassādavasena assādayato 
    abhinandato kāmāsavo uppajjati. Īdisaṃ aññasmim pi sugatibhave labhissāmī ti bhavap
    atthanāya assādayato bhavāsavo uppajjati. Satto ti vā sattassā ti vā gaṇhantassa diṭṭhāsavo 
    uppajjati. Sabbeh’ eva sahajātaṃ aññāṇaṃ avijjāsavo ti cattāro āsavā uppajjanti.
79) MN-a I, p.77:Sabbatth’ eva c’ettha satisaṃvaro eva saṃvaro ti veditabbo. Cf. 
    AN-a III, p.396.
80) Acharya Buddharakkhita(2004), p.95.

 

마찬가지로, 의복과 음식물 등의 수용, 추위와 더위 등 갖가지 느낌에 대한 인내, 사나운 짐승이나 위험한 곳 등의 피함, 감각적 쾌락이나 악의 등 해로운 법들의 버림, 그리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七覺支 수행의 경우에서도 ‘如理 숙고하는 것’이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을 가져오는 척도가 된다.81) 이들에 대한 올바른 숙고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번뇌가 발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여기서의 수용은 ‘지혜’에 의한 단속(ñāṇasaṃvara), 즉 반조(paccavekkhaṇa)하면서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82) 또한 인내는 ‘인욕’에 의한 단속(khantisaṃvara),83) 피함은 ‘戒’에 의한 단속(sīlasaṃvara),84) 버림은 감각적 욕망의 생각 등에 대한 위험(ādīnava)을 반조하는 ‘정진’에 의한 단속(vīriyasaṃvara)을 의미한다.85) 七覺支 수행은 곧 수행하지 않음의 위험과 수행의 이익을 올바른 방법으로 반조하고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통찰과 七覺支의 수행을 통해서 네 가지 번뇌를 바로 버릴 수 있지만, 다섯 가지 단속(saṃvara)은 준비단계들로서 단지 번뇌를 억압시킬 뿐이며, 번뇌의 근절은 네 가지 道(magga)에서 이루어진다.86)   
81) MN I, pp.9-11.
82) MN-a I, pp.77-78: Ime vuccanti, bhikkhave, āsavā paṭisevanā pahātabbā ti 
    ......iminā ñāṇasaṃvarasaṅkhātena paccavekkhaṇapaṭisevanena pahātabbā ti 
    vuccanti. Cf. AN-a III, p.396.
83) MN-a, I, p.80: ...imāya khantisaṃvarasaṅkhātāya adhivāsanāya pahātabbā ti 
    vuccantī ti attho.
84) MN-a, I, p.81:...iminā sīlasaṃvarasaṅkhātena parivajjanena pahātabbā ti 
    vuccantī ti veditabbā.
85) MN-a, I, p.82: ....iminā tasmiṃ tasmiṃ vitakke ādīnavapaccavekkhanasahitena 
    vīriyasaṃvarasaṅkhātena vinodanena pahātabbā ti vuccantī ti veditabbā.
86) MN-a, I, p.74: Saṃvarādīhi pubbabhāge vikkhambhitā āsavā catuhi maggehi 
    samugghātaṃ gacchanti. ccantī ti veditabbā.

 

살생, 훔침, 거짓말, 악한 말, 강한 탐욕, 악의 찬 질책, 분노와 절망, 그리고 거만함은 그 자체가 족쇄(saṃyojana)이고 장애(nīvaraṇa)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절제’하지 않으면(apaṭivirata),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paccaya)이 된다.87) 주석서에 의하면, 살생과 훔침은 몸을 경계함으로서, 거짓말과 악한 말은 말을 경계함으로서, 악의에 찬 질책은 몸과 말을 경계함으로서, 그리고 강한 탐욕, 분노와 절망, 거만함은 마음을 경계함으로서 절제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①살생, 악의 찬 질책, 그리고 분노와 절망은 무명의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며, ②훔침, 거짓말, 그리고 악한 말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 사견의 번뇌, 그리고 무명의 번뇌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③강한 탐욕은 사견과 무명의 번뇌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④자만심은 존재와 무명의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88)   
87) MN I, p.361.
88) MN-a III, p.42.

소득, 손해, 명예, 불명예, 환대, 천대, 악한 바램, 그리고 나쁜 친구는 바르지 못한 법들이다. 이들을 극복하지 못할(anabhibhūta) 경우, 번뇌를 일으키는 잠정적 요인이 된다.89)   
89) AN IV, p.161; Johansson(1985), p.179에서 재인용.

이와 같이, 번뇌의 일어남의 잠정적 원인과 소멸의 문제는 특정한 대상들을 올바르게 숙고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이것은 불선행위들이나 불선생각들을 절제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좌우되고, 바르지 못한 법들(asadhammā)을 극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번뇌 발생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3. 번뇌의 소멸(āsavakkhaya)의 방법
번뇌의 소멸은 성문들의 정신적 발전의 최고 단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초기불교의 수행체계 전반이 번뇌소멸의 방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여러 경전들에서 붓다는 번뇌의 소멸을 위해 법의 본질을 이해하고, 번뇌소멸을 위한 수단으로 善法들의 특성을 갖추거나 수행할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번뇌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들을 간략하게 고찰하기로 한다.   

1) 본질의 이해에 의한 번뇌의 소멸
Saṃyutta-nikāya(相應部)에 의하면, 6가지 감각기능(六根), 6가지 감각대상(六境), 그리고 그들의 접촉에 의한 느낌 등에 대해 무아(anatta)의 본질을 이해할 때 번뇌가 근절된다.90) 또한 五蘊의 각각에 대해 무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것은 나의 것’이라는 갈애가 생기고, ‘이것이 나’라는 자만에 빠지며, ‘이것은 나의 자아’라는 사견에 매달리게 된다.91) 따라서 오온의 각각에 대한 일어남과 사라짐을 이해할 때 번뇌소멸이 있게 되고,92) 오온에 취착하지 않고 무아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할 때 마음은 번뇌에서 해탈하게 된다.93)   
90) SN IV, p.31.
91) Bhikkhu Bodhi(2000), p.1050, Footnote 34.
92) SN II, p.29.
93) SN III, p.45.

 

특히, Pārileyyasutta에 의하면, 중생이 五蘊의 각각을 자아(atta)라고 간주함으로서, 무명의 접촉으로 생긴 느낌(受)에 의해 갈애(愛)가 일어나고, 그것에 의해 行이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한 行, 愛, 受, 觸, 그리고 無明에 대해서도, 이들 역시 각각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며, 緣生한 것임을 알고 이해할 때 ‘즉각적인 번뇌의 소멸’이 이루어진다.94)      
94) SN III, pp.96-97.

 

Aṭṭhakanāgarasutta에서는 禪定(jhāna)의 영역들에 대해서도 그 본질을 이해할 때 번뇌의 소멸이 이루어짐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여이고...... 初禪에 들어 머문다. 그는 ‘이 초선은 조건 지어지고, 의도에 의해 생긴 것이다. 조건 지어지고 의도에 의해 생긴 것은 무상하고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숙고하고, 그렇게 이해한다. 그는 그것에 의지해서 번뇌의 소멸을 이룬다.”95)
95) MN I, p.350.

마찬가지로, 二禪, 三禪, 四禪, 慈心解脫, 捨心解脫, 空無邊處等持, 識無邊處等持, 그리고 無所有處等持에서도 그 본질을 이해할 때 번뇌소멸이 이루어진다. 특히, Nivāpasutta에 의하면, 비구는 非想非非想處에 도달한 후에 想受滅에 머물며 지혜(paññā)로서 번뇌를 소멸한다.96)  
96) MN I, p.160.

 

2) 善法들의 수행에 의한 번뇌의 소멸
또한 번뇌의 소멸을 위해 선한 특질을 갖추거나 선법들의 점진적 수행이 요구된다. 비구는 감각기능의 제어와 음식의 절제, 그리고 방일하지 않음으로서 현생에 행복하게 살고, 이것들을 통해 번뇌소멸의 기반(yoni)를 갖춘게 된다.97) 계(sīla)와 多聞, 부지런한 정진, 그리고 지혜를 갖추고,98)
出離의 생각, 악의 없음의 생각, 비폭력의 생각, 그리고 바른 견해를 가지며,99) 법의 기쁨, 수행의 기쁨, 버림의 기쁨, 떨쳐버림의 기쁨, 악의 없음의 기쁨, 망상 없음의 기쁨을 가질 때,100) 이것들 역시 번뇌소멸을 위한 기반이 된다.   
97) SV IV, p.175.
98) AN II, pp.76-77.
99) AN II, p.77.
100) AN III, p.431.

 

불법승 삼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계를 수지함,101) 수식관을 통한 삼매,102) 몸에 대한 不淨隨觀, 모든 상카라(行)에 대한 無常隨觀, 그리고 죽음인식(maraṇasaññā)103)의 수행은 번뇌의 소멸로 이끌어 간다. 四念處,104) 八正道105)의 수행으로 번뇌를 버리고, 삼매(samādhi)의 개발106)과 지혜(pññā)로서 번뇌소멸107)을 가져온다. 四如意足,108) 五根,109) 五力110)을 수행하여 번뇌를 소멸함으로서, 비구는 심해탈(cetovimutti)과 혜해탈(paññāvimutti)을 얻는다.   
101) SN V, p.326.
102) SN V, p.326.
103) AN III, p.83.
104) SN V, p.190: Imesaṃ kho bhikkhave tiṇṇannaṃ āsavānaṃ pahānāya cattāro 
     satipaṭṭhānābhāvetabbā.
105) SN IV, p. 256:…ariyo aṭṭhaṅgiko maggo etesam āsavanānaṃ pahānāya, 
      seyyathīdaṃ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
      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106) DN III, p. 323: Ayaṃ, āvuso, samādhibhānavanā bhāvitā bahulīkaā āsavānam 
     khayāya samvattati.
107) AN II, p. 183: Āsavānam khayo, ... paññāya sacchikaranīyo.
108) SN V, p. 257: Ye hi keci bhikkhave etarahi bhikkhū āsavānaṃ khayā…viharanti, 
     sabbe te catunnam iddhippād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109) AN III, p. 282: Saddhindriyena viriyindriyena satindriyena samādhindriyena 
     paññindriyena āsavānaṃ khayā…
110) AN III, p. 282: Saddhābalena viriyabalena satibalena samādhibalena paññābalena 
     āsavānaṃ khayā…

 

Saṃyutta-nikāya(相應部)에 의하면, 취착하지 않음의 결과로 번뇌의 소멸을 통해 마음의 해탈을 얻고자 하는 소원만으로는 마음의 해탈을 얻을 수 없다.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37조도법의 수행에 매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한 소원을 가지지 않더라도, 취착없이 조도법의 수행에 매진하면 비구의 마음은 번뇌로부터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111)  
111) SN III, 153; R.M.L. Gethin(1992), p. 245, 각주 63에서 재인용.

주석서에 의하면, 사견의 번뇌는 預流道에 의해 버려진다.112) 그리고 감각적 욕망의 번뇌는 不還道에 의해 버려지고, 존재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는 阿羅漢道에 의해 버려진다.113) 또한 감각적 욕망의 번뇌는 무원해탈(appaṇihitavimokkha)에 대치되고, 존재의 번뇌는 무상해탈(animittavimokkha)에 대치되며, 무명의 번뇌는 공해탈(suññatavimokkha)에 대치된다. 따라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자가 세 가지 해탈을 얻게 된다.114)  
112) Dhs-a (Vri) p. 398: ...sotāpattimaggena diṭṭhāsavo pahīyati,...
113) Itv-a II, p. 19: Maggañca khayagāminan-ti āsavānaṃ khayagāminaṃ ariyamaggañca. 
     Tattha kāmāsavo anāgāmimaggena pahāyati, bhavāsavo avijjāsavo ca arahattamaggena.
114) MN-a I, p. 68.

 

결국 이러한 수행들은 번뇌의 소멸을 의미하는 열반의 요소, 즉 貪盡, 嗔盡, 痴塵115)을 이루기 위한 것이며, 모든 불선의 근원인 무명을 제거하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번뇌의 소멸은 곧 聖道(ariyamagga)이고, 阿羅漢果(arahantaphala)이며, 涅槃(nibbāna)이라 하는 
것이다.116)  
115) SN V, p. 8: Nibbānadhātuyā .....rāgavinayo dosavinayo mohavinayo' ti. Āsavānam 
     khayo tena vuccatīti.
116) AN-a II, p. 184: Khayāyā ti ettha pana āsavānaṃ sarasabhedo pi, khīṇākāro pi, 
     magga-phala-nibbānāni pi āsavakkhayo ti vuccati.

 

IV. 맺음 말

지금까지 초기경전에 나타난 āsava(번뇌, 漏)의 특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번뇌는 흐름(savana), 취하게 함(āsava), 괴로움의 생성(pasavana)의 의미로서 감각적 욕망(kāma), 존재(bhava), 사견(diṭṭhi), 그리고 무명(avijjā)이 그 ‘기능적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네 가지 번뇌는 다름 아닌 마음(citta)과 함께 작용하는 탐욕(lobha), 사견(diṭṭhi), 그리고 어리석음(moha)의 마음부수이다. 따라서 소멸되지 않는 한 존재하는 것으로서는 최고 높은 세상까지, 법으로서는 種姓(gotrabhū)에 까지 미치며, 중생을 윤회의 괴로움에 빠지게 하는 주원인이 된다.  

네 가지 번뇌는 일어남과 소멸에 있어서 무명과 俱生緣과 親依止緣의 조건으로 상호 의존하여 緣起하다. 非如理作意와 如理作意가 각각 무명과 지혜를 키우는 자양분인 까닭에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에 실질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마음의 흐름의 방향키 역할을 하는 ‘作意’가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을 좌우하는 핵심이며, 수행자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의식전환을 모색해야 하는지를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진실에 상반된 전도된 생각을 가지는 것이 번뇌의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인 반면, 진리에 따라 作意할 때 번뇌의 소멸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감각기능들의 단속이나, 의식주와 수행생활 환경들, 바르지 못한 법들 등을 바르게 숙고하여 절제하고 극복하지 못할 경우, 이들은 번뇌를 일으키는 부차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부차적 요인들에 의한 번뇌의 일어남은 다섯 가지 단속(saṃvara)의 방법으로 억압하거나, 身口意를 경계함의 방법으로 절재가 가능해 진다. 그러나 번뇌의 소멸은 통찰이나 七覺支 수행, 또는 네 가지 道(magga)에 의해 이루어진다.  

번뇌의 소멸은 ‘본질의 이해’와 ‘점진적 수행’에 의해 구체화된다. 無常 苦 無我의 특상을 바르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일어남과 사라짐을 직시할 때, 번뇌는 비로소 근절된다. 특히 수행과정에서 체득하는 禪定의 영역에서도 무상하고, 조건 지어졌다는 본질을 이해 할 때, 즉각적인 번뇌소멸을 이룰 수가 있다. 想受滅에서도 역시 지혜에 의해 번뇌의 완전한 소멸을 가져온다. 번뇌의 소멸은 사성제의 올바른 이해에서 비롯되고, 모든 불선법의 근절을 의미한다. 이것은 번뇌소멸에 의한 아라한의 특성을 나타내는 긍정적 가치이다.  

또한 번뇌의 소멸은 선한 특질을 갖추거나, 계정혜 삼학, 또는 8정도로 귀결되는 37助道法 등의 여러 선법들의 수행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설명들은 번뇌소멸이 직관에 의한 법의 본질의 자각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선법들의 점진적 수행에 의해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마음의 해탈은 곧 번뇌(漏) 그 자체의 속성을 여실하게 통찰함으로써 漏盡智의 발현에 의해 성취된다. 수행의 최종 목적은 열반이다. 그것은 곧 번뇌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