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그 쇠를 좀 먹는다
Ayasava malam samutthitam
tatutthaya tameva khadati
evam atidhonacarinam
sani kammani nayanti duggatim
(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그 쇠를 좀먹는 것처럼
부정(不淨. 불선업)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업에 의해
악처(낮은 세계)에 가게 되리라(자신의 업이 악처로 이끌어 간다) 법구경 240
쇠의 녹은 밖에서 붙는 것이 아니고, 쇠 속에서 생겨 밖으로 번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쇠를 완전히 못쓰게 만들어 놓는다.
업에는 신.구.의 세가지가 있다. 신업이란 몸으로 하는 행위이며, 구업이란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 의업은 마음 속에서 생각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불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의도된 마음에서 행위가 발생함으로 실제로는 가장 주요한 행위임에 분명하다.
이 세가지 행위가 청정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인해 죽은 후에 악처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 게송의 가르침이다.
청정하지 못하고 부정한 행위란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지만 자신만의 이익과 행복만을 생각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르키는 것이다. 사람이란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기에 이런 입장에 서서 자기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시되고 이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덕목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홍서원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는 이것을 한마디로 나타내고 있다. 즉 불심이란 세간사를 조화롭게 하고 인간 모두가 행복하게 하고자 염원하는 마음인 것이다.
불심이라는 그 자체의 마음은 세간이 혼란스럽거나 인간들이 불행에 빠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직 항상 사람들이 행복하고 모드 생명있는 것들이 안락하고 조화롭게 번영하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불심의 마음을 파괴하고 방해하는 것은 인간 자신 스스로가 의도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오는 업보이다.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자신 스스로가 행하는 청정하지 못한 행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