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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경(淨信經)(Pasadika Sutta. D29)

실론섬 2014. 4. 15. 02:30

정신경(淨信經)(D29)
Pāsādika 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웨단냐라 불리는 사꺄들의 망고 숲의 저택에 머물렀다. 그때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임종한 뒤의 무렵이었다. 그가 임종하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의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렀다. 즉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대는 잘못 실천(닦음)하는 자이고 나는 바르게 실천하는 자이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했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먼저 말했다.’ ‘그대가 성취한 것은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보라.’라고.
생각건대,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오직 논쟁과 다툼만이 있는 듯 하였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들도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 싫증내는 모습이었고 좋아하지 않은 모습이었고 배척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법과 율이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出離)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正等覺.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며 기반이 무서진 것이고 귀의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웨단냐(Vedhanna)는 사꺄(석가) 족의 한 가문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들은 '활에 대한 공부(dhanumhi katasikkha)를 하는 사꺄 족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활 쏘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 이 망고 숲에 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DA.iii.905)

 

2. 그 당시 쭌다 사미가 빠와에서 안거를 마치고 사마가마로 아난다 존자를 만나러 왔다. 와서 아난다 존자에게 경의를 표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아난다 존자시여,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막 임종하였습니다. 그가 임종하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의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고 있습니다. ··· 귀의처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자 아난다 존자는 쭌다 사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그대 쭌다여, 이 소식은 세존을 친견하고 말씀드려야 할 것이다. 쭌다여, 같이 세존을 친견하러 가자. 가서 이 뜻을 세존께 말씀드리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주석서에 의하면 쭌다 사미(Cunda Samanuddesa)는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이었으며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사미로 불리다가 구족계를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쭌다 사미로 불렸다고 한다.(DA.iii.907) 한 때 그는 세존의 시자로 있기도 하였다.(ThagA.ii.124;Ja.i.v.95 등)

아난다 존자가 그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쭌다 사미는 세존께 직접 가지 않고 먼저 아난다 존자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한다.(SA.iii.178) 

*사마가마는 웨단냐 가문이 머물던 곳이다. 


3. 아난다 존자와 쭌다 사미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쭌다 사미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존자시여,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막 임종하였습니다. 그가 임종하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의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고 있습니다. ··· 귀의처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4. 이와 같이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쭌다여, 참으로 그와 같다. 참으로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서 선언되지 않은 법과 율에서 그것은 그렇다.

쭌다여, 여기 스승이 정등각(正等覺)이 아니고 법도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出離)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 법에서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지 않으며 법을 따라 행하지 않으며 마침내 그 법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에게 이와 같이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그것은 그대에게 이익입니다. 그것은 그대에게 큰 이익입니다. 그대의 스승은 정등각(正等覺)이 아니고 법도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그 법에서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지 않으며 법을 따라 행하지 않으며 마침내 그 법으로부터 벗어납니다.’라고. 
쭌다여, 이 경우에는 스승도 거기서 저열하고(비난받아 마땅하고) 법도 거기서 저열하지만 제자는 훌륭하다. 
쭌다여, 누가 그런 제자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참으로, 존자여. 그대의 스승이 가르치고 선언한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시오.’라고 훈계한다면 그렇게 훈계하는 자도, 훈계하는 것도, 훈계 받아서 그렇게 닦는 자도 모두 큰 재앙을 쌓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그것은 법과 율이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스승이 정등각(正等覺)이 아니고 법도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 법에서그 법에서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며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물고 그 법을 받아 들인다.

그에게 이와 같이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그것은 그대에게 불이익(손해)입니다. 그것은 그대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그대의 스승은 정등각(正等覺)이 아니고 법도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법에서그 법에서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며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물고 그 법을 받아 받아 들입니다.’라고.
쭌다여, 이런 경우에는 스승도 거기서 저열하고 법도 거기서 저열하고 제자도 이렇게 저열하다. 

쭌다여, 누가 그런 제자에게 이와 같이 말할 것이다

‘참으로 존자여,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고 합당하게 노력하시오.’라고. 이렇게 훈계하는 자도, 훈계하는 것도, 훈계 받아서 그렇게 닦는 자도 모두 큰 재앙을 쌓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때문인가? 
쭌다여, 그것은 법가 율이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스승은 정등각(正等覺)이고, 법은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은 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제자는 그 법에서 출세간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지 않으며 법을 따라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그 법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그것은 그대에게 불이익(손해)입니다. 그것은 그대에게는 어려움을 줍니다. 그대의 스승은 정등각(正等覺)이고, 법은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물지 않고 그 법으로부터 벗어납니다.’라고.
쭌다여, 이 경우에는 스승도 거기서 훌륭하고 법도 거기서 훌륭하지만 제자는 거기서 이렇게 저열하다. 
쭌다여, 누가 그런 제자에게 이와 같이 말할 것이다.

‘참으로 존자여, 그대의 스승이 가르치고 선언한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시오.’라고.

이렇게 훈계하는 자도, 훈계하는 것도, 훈계 받아서 그렇게 닦는 자도 모두 큰 공덕을 쌓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그것은 법과 율이 이 제대로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스승은 정등각(正等覺)이고, 법은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된 것이다. 그리고 제자도 그 법에서 출세간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며 머물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물고 그 법을 받아 들인다.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그것은 그대에게 이익입니다. 그것은 그대에게 큰 이익입니다. 그대의 스승은 정등각(正等覺)이고. 법은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정등각(正等覺)에 의해서 선언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도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며 머물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물고 그 법을 받아들입니다.’라고.
쭌다여, 이런 경우에는 스승도 거기서 훌륭하고 법도 거기서 훌륭하고 제자도 거기서 이렇게 훌륭하다. 
쭌다여, 누가 그런 제자에게 이와 같이 말할 것이다.

‘참으로 존자여,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고 합당하게 노력하시오.’라고.

이렇게 훈계한다면 그렇게 훈계하는 자도, 훈계하는 것도, 훈계받아서 더욱 기쁘게 노력하는 자도 모두 큰 공덕을 쌓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그것은 법과 율이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등각에 의해 선언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쭌다여, 아라한이고 정등각인 스승이 세상에 출현하였다. 법은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등각에 의해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알지 못하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범행을 드러내지 못하고 명백하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스승이 떠난다.(그들로부터 임종하여 버렸다)
쭌다여, 이러한 스승이 임종하면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자책거리가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아라한이고 정등각인 스승이 참으로 세상에 출현하였다. 법은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항으로 인도하고 정등각에 의해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알지 못하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신과 인간들로부터 잘 알려진 전적으로 완전한 범행을 드러내지 못하고 명백하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의 스승이 떠난다.  
쭌다여, 이러한 스승이 임종하면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자책거리가 된다.

 

“다시, 쭌다여, 아라한이고 정등각인 스승이 세상에 출현하였다. 법은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등각에 의해 선언된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도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알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범행을 드러내고 명백하게 한다. 그런데 그들의 스승이 떠난다. 
쭌다여, 이러한 스승이 임종하면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자책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아라한이고 정등각인 스승이 출현하였다. 법은 잘 설해지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등각에 의해 선언된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도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알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범행을 드러내고 명백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의 스승이 떠난다. 쭌다여, 이러한 스승이 임종하면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자책거리가 되지 않는다.

 

5. “쭌다여, 이러한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더라도, 능숙하고 출가한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없다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을 때,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된다.”

 

6.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더라도,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瑜伽安隱. 열반)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을 때,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된다."

 

7.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입지가 굳고, 출중하며, 유가안온을 얻었으며,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들이 있더라도,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진 비구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진 비구가 있더라도,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들이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잘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더라도,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진 비구니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니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니가 있더라도,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니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가 있더라도,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니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가 있더라도,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니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가 있더라도,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가 없으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니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가 있더라도, 범행이 번성하고 풍부하고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널리 퍼져서 신과 인간들에게 잘 설명되지 못하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중견 비구니가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신참 비구니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가 있고,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가 있고,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가 있고, 범행이 번성하고 풍부하고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널리 퍼져서 신과 인간들에게 잘 설명되더라도, 최상의 얻음과 최상의 명성을 성취하지 못하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이 있고,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 제자인 중견 비구가 있고, ··· 제자인 신참 비구가 있고, ···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 제자인 중견 비구니가 있고, ··· 제자인 신참 비구니가 있고, ···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가 있고, ···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가 있고, ···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실천하는 청신녀 제자가 있고, ···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가 있고, ··· 범행이 번성하고 풍부하고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널리 퍼져서 신과 인간들에게 잘 설명되고, 최상의 얻음과 최상의 명성을 성취하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된다."

 

8. “그런데 쭌다여, 내가 출현한 아라한.정등각인 현재의 스승이다. 법은 잘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등각에  의해 선언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제자들은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알고, 모든 실천행의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범행으로 인도하고, 신과 인간에게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드러내고, 명료하게 한다.

쭌다여, 내가 능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다.

 

쭌다여,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바른 법으로 잘 논파한 뒤에 비범한 법을 설할 수 있는 나의 제자인 현재의 장로 비구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중견 비구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신참 비구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장로 비구니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중견 비구니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신참 비구니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실천하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실천하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고, ··· 쭌다여, 나의 제자인 현재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고, ··· 쭌다여, 현재 나의 범행이 번성하고 풍부하고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이 많고 널리 퍼져서 신과 인간들에게 잘 알려졌다."

 

9. “쭌다여, 참으로 현재 세상에 출현한 스승들에 관한 한, 쭌다여, 나만큼 최상의 얻음과 최상의 명성을 성취한 다른 어떤 스승도 나는 보지 못한다.  
또한, 쭌다여, 참으로 이 시대의 승가와 수행 집단이 만들어져 있지만, 이 비구 승가와 같이 최상의 얻음과 최고의 명성을 성취한 다른 어떤 승가와 수행 집단을 나는 보지 못한다. 
쭌다여, 참으로 바르게 말하는 자가 ‘모든 조건을 갖추고, 모든 조건을 완성하고,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잘 설해지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범행을 잘 드러내었다.’라고 말한다면, 바로 이것을 ‘모든 조건을 갖추고, 모든 조건을 완성하고,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잘 설해지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범행을 잘 드러내었다.’라고 말해야 한다. 

 

쭌다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는 이런 말을 한다. 그러면 무엇을 ‘보면서 보지 못한다.’고 하는가? 날카롭게 날이 선 칼날을 보면서 그것의 끝(경계)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것이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쭌다여, 그러나 이것은 웃다까 라마뿟따가 저열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칼에 관한 말일 뿐이다.

쭌다여,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고 바르게 말하는 자는 바로 이것을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보면서 보지 못한다'고 하는가? '이렇게 모든 조건을 갖추고 모든 조건을 채우고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잘 설해지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범행을 잘 드러내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보는 것이다.

여기, '이것을 제거해야 이렇게 그것이 더 청정해질 것이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보지 못한다. 여기, 이것을 첨가해야 그것이 완성될 것이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보지 못한다. 이것이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고 불린다.

쭌다여, 참으로 바르게 말하는 자가 ‘모든 조건을 갖추고 모든 조건을 채우고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잘 설해지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범행을 잘 드러내었다.’라고 말한다면, 바로 이것을 ‘모든 조건을 갖추고 모든 조건을 채우고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잘 설해지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잘 드러내었다.’라고 말해야 한다.”

 

10. “그러므로, 쭌다여, 내가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설한 법들을 그대들은 모두가 함께 모여서 뜻에 의해서 뜻을, 문자에 의해서 문자를 나타내야 하고 분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범행이 오래 유지되고 영원할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
쭌다여,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하면 이 범행이 오래 유지되고 영원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인, 모두가 함께 모여서 뜻에 의해서 뜻을, 문자에 의해서 문자를 나타내야 하고 분쟁을 해서는 안되는, 내가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설해진 그 법들인가? 
그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바른 길 [八支聖道]이다.
쭌다여, 이것이 그렇게 하면 이 범행이 오래 유지되고 영원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인, 모두가 함께 모여서 뜻에 의해서 뜻을, 문자에 의해서 문자를 나타내야 하고 분쟁을 해서는 안되는, 내가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설해진 그 법들이다.”

 

11. “쭌다여, 이러한 그대들이 모두가 화합하고 서로 법담을 나누고 분쟁을 하지 않으며 익히고 닦을 때, 어떤 동료 비구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도 잘못 파악하고 있고 문장도 잘못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부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 뜻을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적절합니까, 아니면 저런 문장들이 더 적절합니까? 그리고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적절합니까, 아니면 저 뜻이 더 적절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적절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적절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 않고 훈계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훈계하지도 않은 뒤 그 뜻과 그 문장들을 바르게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쭌다여, 또 다른 동료 비구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은 잘못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은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런 뜻이 더 적절합니까, 아니면 저 뜻이 더 적절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적절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 않고 훈계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훈계하지도 않은 뒤 그 뜻을 바르게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쭌다여, 또 다른 동료 비구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은 바르게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을 잘못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부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적절합니까, 아니면 저런 문장들이 더 적절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적절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 않고 훈계하지도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훈계하지도 않은 뒤 그 문장들을 바르게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쭌다여, 또 다른 동료 비구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도 바르게 파악하고 있고 문장도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에게 ‘좋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에게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기뻐한 뒤 그에게 ‘도반이여, 우리가 이처럼 뜻을 갖추고 문장을 갖춘 존자와 같은 동료 비구를 만났으니, 우리는 참으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12. “쭌다여, 나는 단지 지금 여기에서의 번뇌들만을 단속하기 위해서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다. 쭌다여, 나는 단지 미래의 번뇌들만을 물리치기 위해서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쭌다여, 나는 지금 여기에서의 번뇌들을 단속하고 아울러 미래의 번뇌들을 물리치기 위해 법을 설한다.
그러므로, 쭌다여, 여기서 나는 그대들에게 옷 입는 것을 허락하였다. 오직 그대들이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게 하기 위해서이며,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탁발 음식을 허락하였다. 오직 그대들이 이 몸을 해치지 않고 이 몸을 유지하여 범행을 돕기 위함이다. 바른 관찰로써 배고픔의 오래된 느낌을 제거하고, 배부름의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져 안온하게 머물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나는 거처를 허락하였다. 오직 그대들이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고 기후의 변화에서 생기는 위험을 없애고, 홀로 머묾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허락하였다. 오직 그대들이 일어난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물리치고, 병 없음을 최상으로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12.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사꺄의 후예인 사문들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낸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쭌다여, 이렇게 주장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도반들이여, 어떤 것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입니까?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많고 하나가 아니며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쭌다여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저열하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며,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무엇이 넷인가?
쭌다여, 여기 어떤 어리석은 자는 생명들을 계속 죽이면서 자신은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주지 않은 것을 계속 가지면서 자신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거짓말을 계속 하면서 자신은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사로잡혀 지낸다. 이것이 네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쭌다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저열하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며,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13.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사꺄의 후예인 사문들은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냅니까?’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들은 그대들에게 바르게 말하는 자로서 말한 것이 아니며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쭌다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있으니, 염오로 인도하고,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쭌다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븐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 喜]과 즐거움[행복. 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비구는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 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지녀, 기쁨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고 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비구는 기쁨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四禪)을 구족하며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쭌다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염오로 인도하고,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
쭌다여, 그런데도 외도 유행승들이 ‘사꺄의 후예인 사문들은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낸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그렇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들을 그대들에게 바르게 말하는 자로서 말한 것이며 그들은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그대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벗들이여, 그러면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내면 어떠한 결실이 있고 어떠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내면 네 가지 결실이 있고 네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벗들이여, 여기 비구는 세 가지 족쇄들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흐름에 든 자[예류자.預流者]이니, (네 가지 악도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해탈의)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바른 깨달음이 결정된 자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결실이고 첫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세 가지 족쇄들을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일래자.一來者]가 되어, 한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듭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결실이고 두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드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존재입니다.[불환자.不還者] 이것이 세 번째 결실이고 세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뭅니다.[아라한.阿羅漢] 이것이 네 번째 결실이고 네 번째 이익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내면 이러한 네 가지 결실이 있고 이러한 네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라고.”

 

14.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사꺄의 후예인 사문들은 일관성이라고는 없는 법들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들이여, 알고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제자들을 위해 가르치고 선언한 법, 살아있는 한 지켜야 하는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뿌리깊이 잘 묻힌 인드라의 석주나 쇠기둥은 떨리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알고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이제자들을 위해 가르치고 선언한 법, 살아있는 한 지켜야 하는법이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아라한이어서,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비구는 아홉 가지 경우들을 범할 수가 없습니다.

①번뇌 다한 비구가 고의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으로부터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②번뇌 다한 비구가 도둑질이라고 불리는,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③번뇌 다한 비구가 성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④번뇌 다한 비구가 고의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⑤번뇌 다한 비구가, 예를 들면, 이전에 재가자였을 때처럼, 소유적인 것들을 축적해 두고 즐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⑥번뇌 다한 비구가 관심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⑦번뇌 다한 비구가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⑧번뇌 다한 비구가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⑨번뇌 다한 비구가 두려움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도반들이여, 아라한이어서,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로 해탈한 비구는 이런 아홉 가지 경우를 범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15.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사문 고따마는 과거에 대한 제한 없는 지(知)와 견(見)은 선언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제한 없는 지와 견을 선언하지 않는다. 무엇에 대해 그러하고 어떻게 그러한가?’라고. 그러나 그 외도 유행승들은,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자처럼, 다른 것과 관련된 지(知)와 견(見)에 의해 다른 것과 관련된 지와 견이 선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쭌다여, 참으로 과거에 대하여 여래에게는 마음챙긴 것을 따라서 기억하는 앎이 있다. 그는 원하는 만큼을 기억한다. 미래에 대하여 여래에게는 깨달음에서 생긴 앎이 일어난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쭌다여, 만약 과거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쭌다여, 만약 과거가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끌면, 거기서 여래는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한 적당한 시간을 안다.

쭌다여, 만약 미래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쭌다여, 만약 미래가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끌면, 거기서 여래는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한 적당한 시간을 안다.
쭌다여, 만약 현재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쭌다여, 만약 현재가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끌면, 거기서 여래는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한 적당한 시간을 안다."

 

16. "쭌다여, 이렇게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들에 대해 여래는 적절한 때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이익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한다. 그래서 여래라 불린다.

그리고, 쭌다여, 신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 이르기 까지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 식별한 것, 얻은 것, 추구하는 것, 마음으로 고찰한 모든 것을 여래는 깨달았다. 그래서 여래라 불린다.
쭌다여,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은 그 밤으로부터 업으로 받은 몸이 없는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에 드는 그 밤사이에 설하고 말하고 가르친 그 모든 것은 사실이고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라 불린다.
쭌다여, 여래는 말하는 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대로 말하는 자이다. 이렇게 말하는 대로 행하고, 행하는 대로 말한다고 해서 여래라 불린다.
쭌다여,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 가운데서, 여래는 정복자이고, 정복당하지 않는 자이고, 모든 것을 보는 자이고
, 지배자이다. 그래서 여래라 불린다.”

 

17.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여래는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까?’라고.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고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도반들이여, 여래는 죽고 난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까?’라고.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고 난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고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도반들이여,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까?’라고.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고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도반들이여,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까?’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고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무엇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이것은 이익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출세간 법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범행의 시작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셨습니다.’라고.

 

18.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무엇을 설명하였습니까?’라고.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세존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세존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세존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세존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라고.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무엇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셨습니까?’라고.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이것은 이익으로 인도하고, 출세간 법으로 인도하고, 범행의 시작으로 인도하고, 염오로 인도하고,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셨습니다.’라고.”

 

19. “쭌다여, 설명해야 하는 과거와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도 나는 그대들에게 설명하였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하겠는가? 쭌다여, 설명해야 하는 미래와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도 나는 그대들에게 설명하였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하겠는가?
쭌다여, 설명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한, 과거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는 무엇인가? 쭌다여,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없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 자아와 세상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라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도 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없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20. “거기에 쭌다여,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고.'라고 말합니까?’라고.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쭌다여, 다른 인식을 가진 어떤 중생들이 여기에 있다. 쭌다여, 나는 이런 개념에 대해 나와 대등한 자를 관찰하지 못한다. 어디에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개념에 대해서 내가 더 뛰어나다."

 

21. "거기에, 쭌다여,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없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 자아와 세상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라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도 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없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라고 말합니까?’라고.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차으로, 쭌다여, 다른 인식을 가진 어떤 중생들이 여기에 있다. 
쭌다여, 나는 이런 개념에 대해 나와 대등한 자를 관찰하지 못한다. 어디에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개념에 대해서 내가 더 뛰어나다.
쭌다여, 이것이 설명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한, 과거와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이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하겠는가?"

 

22. “쭌다여, 설명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한, 미래와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는 무엇인가? 쭌다여,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물질[色]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 자아가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쭌다여,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가 ···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는 자아가 ···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가 ··· 인식을 가진 자아가 ···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가 ···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가 ··· 자아는 단멸하고 파괴되어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고. 

거기에, 쭌다여, ‘물질[色]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 자아가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물질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 자아가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실히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합니까?'라고.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쭌다여, 다른 인식을 가진 어떤 중생들이 여기에 있다. 
쭌다여, 나는 이런 개념에 대해 나와 대등한 자를 관찰하지 못한다. 어디에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개념에 대해서 내가 더 뛰어나다."

 

23. "거기에, 쭌다여, ‘물질을 가지는 자아가 ···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는 자아가 ···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가 ··· 인식을 가진 자아가 ···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가 ···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가··· 자아는 단멸하고 파괴되어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아는 단멸하고 파괴되어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까?’라고.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쭌다여,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여기에 있다. 
쭌다여, 나는 이런 개념에 대해 나와 대등한 자를 관찰하지 못한다. 어디에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개념에 대해서 내가 더 뛰어나다. 쭌다여, 이것이 설명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한, 미래와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이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하겠는가?"

 

24. “쭌다여, 이러한 과거에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와 이러한 미래와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를 버리고 극복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고 선언하였다. 무엇이 넷인가?
쭌다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그는 몸에 대한 분명한 알아 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
문다. 
쭌다여,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그는 느낌에 대한 분명한 알아 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쭌다여,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그는 마음에 대한 분명한 알아 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쭌다여, 여기서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그는 법에 대한 분명한 알아 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쭌다여, 이러한 과거와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와 이러한 미래와 연결되어 편향된 견해를 버리고 극복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는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고 선언하였다.”

 

25. 이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의 뒤에서 세존께 부채질을 해드리면서 서 있었다. 그리고 우빠와나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은 참으로 즐겁습니다. 이 법문은 참으로 정말 즐겁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우빠와나여, 이 법문을 ‘청정함과 믿음을 가진 것(정신.淨信)'이라고 이제 이것을 명심하라.”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우빠와나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정신경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