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열의 모음 - 2. 보호자 품(Nātha-vagga. AN10.11-20)

실론섬 2014. 8. 31. 17:18

제2장 보호자 품 Nātha-vagga (AN 10.11-20)

 

senāsanasuttaṃ (AN 10.11-거처 경) 

11.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거처를 사용하고 의지하면, 오래지 않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추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믿음을 가진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다.

그는 장애가 없다. 병이 없고 너무 차지도 너무 덥지도 않은 중간의 좋은 소화력을 가졌고, 정진을 감내한다.

그는 진실하고 성실하며 스승과 현명한 동료 비구들에게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는 불선법(不善法)들을 버리고 선법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강한 자이다.  

그는 지혜를 가졌다.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 차리고, 성스럽고 통찰력이 있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혜를 갖추었다.

 

비구들이여, 거처는 어떻게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추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마을로부터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아서 가고 오기에 편하다.

낮에 번잡하지 않고 밤에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다.

날파리∙모기∙뙤약볕∙파충류와의 접촉이 적다. 
그곳에 사는 자에게는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어려움 없이 얻는다. 

그 거처에는 많이 배우고 , ()들을 배웠고, 법(가르침)을 호지하고, 계율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다. 그는 자주 그들에게 다가가서 묻고 질문한다.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되며, 이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그에게 그 존자들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하고, 여러 가지 의심나는 법에 대해 의심을 없애준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거처를 사용하고 의지하면, 오래지 않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게 될 것이다.”


*마띠까(matikā)는 어머니를 뜻하는 ‘마따(mātā)’에 형용사를 만드는 어미인 ‘ikā’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그래서 문자적인 뜻 그대로 ‘어머니에 속하는’의 의미이다.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나 계율의 조목을 요약한 것이다. 이 마띠까는 이렇게 율장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초기에 율장에서는 빠띠목카를 마띠까로 불렀던 것이다. 뒤에는 세존의 말씀도 법수(法數)나 주제별로 분류해서 마띠까로 전승되어 오다가 여기에 설명을 붙이면서 아비담마 체계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pañcaṅgasuttaṃ (AN 10.12-다섯 가지 요소 경)
12.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요소를 버리고, 다섯 가지 요소를 구족한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완전히 성취한 최상의 사람'
이라고 불린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떠한 다섯 가지 요소를 버렸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버려지고, 성냄이 버려지고, 해태와 혼침(혼침과 졸음)이 버려지고, 들뜸과 후회가 버려지고, 의심이 버려졌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서 가지 요소를 버렸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추었는가? 

여기, 비구들이요, 비구는 무학의 계온(戒蘊)을 갖추고, 무학의 정온(定蘊) 갖추고, 무학의 혜온(慧蘊) 갖추고, 무학의 해탈온(解脫蘊)을 갖추고, 무학의 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을 갖추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추었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요소를 버리고, 다섯 가지 요소를 구족한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완전히 성취한 최상의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에게 감각적 쾌락의 욕망과 성냄과 해티-혼침과 들뜸과 의심이

모든 점에서 보이지 않는다

 

무학의 계와 무학의 삼매와

해탈과 그것에 대한 앎을 갖춘 자,

참으로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추고 다섯 가지 요소를 버린 그는
이 법(法)과 율(律)에서 ‘최상의 사람’이라고 불린다.'

 

saṃyojanasuttaṃ (AN 10.13-족쇄 경)
13.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족쇄가 있다. 무엇이 열인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오하분결.五下分結)]과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오상분결.五上分結)]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인가?

유신견, 의심, 잘못된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감각적 쾌락, 성냄이다. 이것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인가? 

색계에 대한 탐욕, 무색계에 대한 탐욕, 자만, 들뜸(산만함), 무명이다. 이것이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족쇄가 있다.”

 

cetokhilasuttaṃ (AN 10.14-마음의 방만함 경)
14.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마음의 방만함이 버려지지 않았고,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 뿌리 뽑히지 않은 비구 또는 비구니에게 밤낮으로 선법들에 대한 향상은 예상되지 않고 오직 퇴보가 예상된다.

 

무엇이 버려지지 않은 다섯 가지 마음의 방만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스승에 대해 회의하고(불신하고), 의심하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분명히 알지 못하고),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기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스승에 대해 회의하고, 의심하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못한다. 이렇게 마음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 버려지지 않은 마음의 방만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에 대해 ··· 승가에 대해 ··· 닦음에 대해 ···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화내고, 기뻐하지 않고, 불쾌하게 여기고, 방만함이 생긴 비구가 있다. 비구들이여,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화내고, 기뻐하지 않고, 불쾌하게 여기고, 방만함이 생긴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못하는 것이 다섯 번째 버려지지 않은 마음의 방만함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버려지지 않은 마음의 방만함이다.

 

무엇이 뿌리 뽑지 못한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의(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애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기(열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의(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애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기(열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애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못한다. 이렇게 마음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 뿌리 뽑지 못한 마음의 속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 두 번째 마음의 속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형상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 세 번째 마음의 속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은 뒤에 잠을 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꾸벅 꾸벅)조는 즐거움에 빠져 머문다. 비구들이여,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은 뒤에 잠을 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졸음의 즐거움에 빠져 머무는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못한다 ··· 네 번째 마음의 속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는 이러한 계나 서원이나 고행이나 범행으로 (높은) 천신이나 어떤 (낮은) 천신이 될 것이다.’라고 어떤 신들의 무리를 갈구하면서 범행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러한 계나 서원이나 고행이나 범행으로 천신이나 어떤 천신이 될 것이다.’라고 어떤 신들의 무리를 갈구하면서 범행을 닦는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못한다. 이렇게 마음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못하는 것이 다섯 번째 마음의 속박이다.

이것이, 뿌리 뽑지 못한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다.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마음의 방만함이 버려지지 않았고,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 뿌리 뽑히지 않은 비구 또는 비구니에게 밤낮으로 선법들에 대한 향상은 예상되지 않고 오직 퇴보가 예상된다. 예를 들며, 비구들이여, 그믐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하현 달)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퇴색되고, 원둘레는 줄어들고, 빛은 약해지고, 높이와 둘에는 줄어든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런 다섯 가지 다섯 가지 마음의 방만함이 버려지지 않았고,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 뿌리 뽑히지 않은 비구 또는 비구니에게 밤낮으로 선법들에 대한 향상은 예상되지 않고 오직 퇴보가 예상된다.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마음의 방만함이 버려지고,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 뿌리 뽑힌 비구 또는 비구니에게 밤낮으로 선법들에 대한 쇠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무엇이 다섯 가지 마음의 방만함의 버려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스승에 대해 회의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스승에 대해 회의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청정한 믿음을 가지는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운다. 이렇게 마음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우는 것이 첫 번째 마음의 방만함의 버러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에 대해 ··· 승가에 대해 ··· 닦음에 대해 ···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화내지 않고, 기뻐하고,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방만함이 생기지 않은 비구가 있다. 비구들이여, 동료 비구들에 화내지 않고, 기뻐하고,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방만함이 생기지 않은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운다. 이렇게 마음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우는 것이 다섯 번째 마음의 방만함의 버려짐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을 잘 뿌리 뽑는 것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에 대해 탐욕에서 벗어나고, 열의에서 벗어나고, 애정에서 벗어나고, 갈증에서 벗어나고, 열기에서 벗어나고, 갈애에서 벗어난다.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대해 탐욕에서 벗어나고, 열의에서 벗어나고, 애정에서 벗어나고, 갈증에서 벗어나고, 열기에서 벗어나고, 갈애에서 벗어난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운다. 이렇게 마음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우는 것이 첫 번째 마음의 속박을 잘 뿌리 뽑는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해 탐욕에서 벗어나고 ··· 두 번째 마음의 속박을 잘 뿌리 뽑는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형상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고 ··· 세 번째 마음의 속박을 잘 뿌리 뽑는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은 뒤에 잠을 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졸음의 즐거움에 빠져 머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은 뒤에 잠을 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졸음의 즐거움에 빠져 머물지 않는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운다. 이렇게 마음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우는 것이 네 번째 마음의 속박을 잘 뿌리 뽑는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나는 이러한 계나 서원이나 고행이나 범행으로 천신이나 어떤 천신이 될 것이다.’라고 어떤 신들의 무리를 갈구하면서 범행을 실천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러한 계나 서원이나 고행이나 범행으로 천신이나 어떤 천신이 될 것이다.’라고 어떤 신들의 무리를 갈구하면서 범행을 닦지 않는 그 비구의 마음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운다. 이렇게 마음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우는 것이 다섯 번째 마음의 속박을 잘 뿌리 뽑는 것이다.

이것이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을 잘 뿌리 뽑는 것이다.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마음의 방만함이 버려지고, 이런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 뿌리 뽑힌 비구 또는 비구니에게 선법들에 대한 쇠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예를들면, 비구들이여, 보름으로 가는 보름 동안(상현 달)은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선명해지고, 원둘레는 늘어나고, 빛은 강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늘어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런 다섯 가지 마음의 방만함이 버려지고, 이런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 뿌리 뽑힌 비구 또는 비구니에게 밤낮으로 선법들에 대한 쇠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appamādasuttam (AN 10.15-불방일 경)

15. “비구들이여, 중생이 발이 없건, 두 발이건, 네 발이건, 여러 발이건, 물질을 가졌건, 물질을 가지지 않았건, 인식이 있건, 인식이 없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건, 그 모든 중생들에 관한 한, 여래∙아라한∙정등각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선한 법[善法]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비구들이여, 땅위에서 걸어 다니는 생명체들의 발자국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모두 코끼리 발자국에 포함되나니, 코끼리 발자국의 치수가 가장 크기 때문에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선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뾰족 지붕이 있는 집의 서까래들은 모두 꼭대기로 이르고 꼭대기로 향하고 꼭대기로 모인다. 꼭대기가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선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뿌리의 향기 가운데 안식향이 으뜸이듯이, 선한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심재의 향기 가운데 붉은 전단향이 으뜸이듯이 선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꽃향기 가운데 재스민 꽃이 으뜸이듯이, 선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왕이든지 그들은 모두 전륜성왕에 복속되나니, 전륜성왕이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선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별빛이든지 그것은 모두 달빛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빛은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선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가을의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창공에 떠오르는 태양은 허공의 모든 어둠을
흩어버리면서 빛나고 반짝이고 찬란하듯이,

선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강가, 야무나, 아찌라와띠, 사라부, 마히와 같은 큰 강들이 모두 바다로 향하고 바다로 기울어지고 바다로 흘러가나니, 큰 바다는 그들 가운데 으뜸인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선한 법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불방일을 뿌리로 하고 불방일로 모이고 불방일이 으뜸이라고 불려진다.”

 

āhuneyyasuttaṃ (AN 10.16-공양 받아 마땅함 경)
16. “비구들이여, 이런 열 사람은 공양 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공경)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다. 어떤 열 가지인가?

여래∙아라한∙정등각, 벽지불, 양면으로 해탈한 자, 지혜로 해탈한 자, 몸으로 체험한 자, 견해를 얻은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 종성(種姓)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 사람은 공양 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종성(種姓. gotrabhu)이란 '보통사람(puthujjana)'에 상대되는 의미의 '거룩한 사람'을 가리킨다. PsA에는 '극복한다면 곧 종성을 지닌 이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지닌 품성을 극복한 까닭에 종성을 지닌 이라 말한다. 뛰어 든다면 종성을 지닌 이라는 것이다. 거룩한 이들이 지닌 품성을 계발한 까닭에 종성을 지닌 이라 말한다' 라는 구절이 있다.

 

paṭhamanāthasuttaṃ (AN 10.17-보호자 경1)

17. “비구들이여, 보호자와 함께 머물러야 한다. 보호자 없이 머물지 않아야 한다. 보호자가 없으면 괴롭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 있다. 어떤 열 가지인가?

 

*'보호자와 함께(sanatha)'란 지인과 함께, 많은 친척의 무리들과 함께 머물라는 말이다. '보호자를 만듦(natha-karana)'이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자신의 기반을 만든다는 뜻이다.(AA.v.5)


여기,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를 잘 지킨다.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계를 잘 지킨다. ···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다.'라는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잘 호지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한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확실하게 드러내는 가르침들이 있으니, 그러한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친숙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통찰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많이 배우고 ··· 견해로써 잘 통찰한다.'라는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자, 훈계하기 쉬운 성품을 지니고 있는 자, 인내하는 자, 가르침을 받아들임에 능숙한 자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자, 훈계하기 쉬운 성품을 지니고 있는 자, 인내하는 자, 가르침을 받아들임에 능숙한 자인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동료수행자들이 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떤 일들에 대해 능숙하고, 게으르지 않고, 그것에 대해 할 수 있고 시킬 수 있을 만큼 방법을 조사해서 갖춘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동료수행자들이 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떤 일들에 대해 능숙하고, 게으르지 않고, 그것에 대해 할 수 있고 시킬 수 있을 만큼 방법을 조사해서 갖춘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을 좋아하고, 법담을 나누고, 아비담마(법에 대한 공부)와 아비위나야(율에 대한 공부)에 대해 크나큰 환희가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법을 좋아하고, 법담을 나누고, 아비담마(對法)와 아비위나야에 대해 크나큰 환희가 있는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아비담마(abhidhamma)와 아비위나야(abhivinaya)에 대해서’란 담마(法)와 아비담마(對法)와 위나야(律)와 아비위나야(對律)의 네 가지라고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서 담마(法)는 경장이요 아비담마(對法)는 칠론(七論)이요 위나야(律)는 [비구계와 비구니계의] 두 가지 분별이고 아비위나야(對律)는 칸다까(Khandhaka, 犍度)와 빠리와라(附錄, 補遺)이다. 혹은 경장과 논장이 담마(법)이고 도(道)와 과(果)는 아비담마(대법)이며, 모든 율장은 위나야(율)이고 오염원을 가라앉게 하는 것이 아비위나야(대율)이다. 이처럼 담마와 아비담마와 위나야와 아비위나야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DA.īi.1047)
아비담마는 법에 대한 것[對法]이란 뜻이고 아비위나야는 율에 대한 것[對律]이란 뜻이다. 주석서의 설명처럼 일반적으로 담마(법)는 경장을, 아비담마(대법)는 논장을, 위나야(율)는 율장의 경분별(비구계목과 비구니계목)을, 아비위나야(대율)는 율장의 대품과 소품과 부록을 말한다. 아비위나야는 따로 독립된 장으로 결집하지 않고 율장에 포함시켰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라는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의복이나 탁발음식이나 거처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만족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의복이나 탁발음식이나 거처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만족하는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기는 자이다. 최상의 마음챙김과 신중함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낸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 챙기는 자이다. 최상의 마음챙김과 신중함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낸다.'라는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지혜를 가졌다. 일어나고 사라짐을 철저히 알고, 성스럽고, 명료한 앎이 있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지혜를 구족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지혜를 가졌다. 일어나고 사라짐을 철저히 알고, 성스럽고, 명료한 앎이 있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지혜를 구족했다.'라는 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보호자와 함께 머물러야 한다. 보호자 없이 머물지 않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보호자가 없으면 괴롭게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보호자를 만드는 열 가지 법이다.”

 

dutiyanāthasuttaṃ (AN 10.18-보호자 경2)

1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빈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보호자와 함께 머물러야 한다. 보호자 없이 머물지 않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보호자가 없으면 괴롭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 있다. 어떤 열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계를 잘 지킨다.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다. ‘참으로 이 비구는 계를 잘 지킨다.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잘 호지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한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내는 가르침들이 있으니, 그는 그러한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실천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통찰한다. ‘참으로 이 비구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잘 호지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하고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내는 가르침들이 있으니, 그는 그러한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친숙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통찰한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졌다. ‘참으로 이 비구는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졌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자, 훈계하기 쉬운 성품을 지니고 있는 자, 인내하는 자, 가르침을 받아들임에 능숙한 자이다. ‘참으로 이 비구는 비구는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자, 훈계하기 쉬운 성품을 지니고 있는 자, 인내하는 자, 가르침을 받아들임에 능숙한 자이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동료수행자들이 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떤 일들에 대해 능숙하고, 게으르지 않고, 그것에 대해 할 수 있고 시킬 수 있을 만큼 방법을 조사해서 갖춘다. ‘참으로 이 비구는 비구는 동료수행자들이 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떤 일들에 대해 능숙하고, 게으르지 않고, 그것에 대해 할 수 있고 시킬 수 있을 만큼 방법을 조사해서 갖춘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을 좋아하고, 법담을 나누고, 아비담마(법에 대한 공부)와 아비위나야(율에 대한 공부)에 대해 크나큰 환희가 있다. ‘참으로 이 비구는 법을 좋아하고, 법담을 나누고, 아비담마(법에 대한 공부)와 아비위나야(율에 대한 공부)에 대해 크나큰 환희가 있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 ‘참으로 이 비구는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의복이나 탁발음식이나 거처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만족한다. ‘참으로 이 비구는 의복이나 탁발음식이나 거처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만족한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기는 자이다. 최상의 마음챙김과 신중함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낸다. ‘참으로 이 비구는 마음 챙기는 자이다. 최상의 마음챙김과 신중함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낸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지혜를 가졌다. 그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철저히 알아 차리고, 성스럽고, 명료한 앎이 있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지혜를 갖추었다.
‘참으로 이 비구는 지혜를 가져서 일어나고 사라짐을 철저히 알아 차리고, 성스럽고, 명료한 앎이 있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지혜를 갖추었다.’라면서 장로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도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로 비구들의 연민을 받고 중진 비구들과 신참 비구들의 연민을 받는 그에게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이것도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보호자와 함께 머물러야 한다. 보호자 없이 머물지 않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보호자가 없으면 괴롭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보호자를 만드는 법이 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pathamariyāvāsasuttam (AN 10.19-성스러운 삶 경1)
19. "비구들이여, 성자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인 열 가지 이런 성스러운 삶이 있다. 어떤 열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요소들을 제거하고, 여섯 가지 요소들을 갖추고, 한 가지에 의해 보호되고, 네 가지 받침대를 가지고, 편향된 진리를 버리고, 갈망(집착된 추구)을 끝내고, 사유가 평정하고,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가 고요하고,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로써 잘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성자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인 이러한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이 있다.”

 

dutiyāriyāvāsasuttaṃ (AN 10.20-성스러운 삶 경2)
20. 한 때에 세존께서는 꾸루에서 깜마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꾸루(Kuru)는 인도 16국 가운데 하나였다. 주석서에서는 이 지역에 살던 왕자의 이름을 따서 꾸루라고 불렀다고 하며(DA.ii.481) 지금의 델리 근처지역이다. 지역으로 언급할 때는 거의 꾸루.빤짤라(Kuru-Pancala)로 나타나는데 지금 인도의 델리, 하랴나, 펀잡, 히마찰쁘라데쉬 지역이 꾸루.빤짤라에 해당한다. 자따카 등에 의하면 이 지역은 상업과 학문이 번창하던 곳이다.(Cf.J.ii.214)
중요한 초기경들이 꾸루 지방에서 설해지고 있는데 「디가니까야 주석서」 「대념처경(D22)」의 주석에 의하면 꾸루 지방 주민들은 심오한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꾸루 지방의 비구와 비구니, 청신사와 청신녀들은 아주 좋은 기후 등의 조건을 갖추어 살고 있었으며 적당한 기후 조건 등으로 인해 그곳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항상 건전했다고 적고 있다.(Ma.i.184; AA.ii.820)
*깜마사담마(Kammasadhamma)는 꾸루의 한 읍(nigama)이다. 「디가니까야」 「대인연경(D15)」과 「대념처경(D22)」과 「맛지마니까야」 「아넨자 사빠야 경(M106)」등 중요한 경들이 여기서 설해지고 있다. 주석서는 깜마사담마라는 이름에 얽힌 설화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첫째, Kammasadhamma는 Kammasadamma라고도 전승되어 오는데 이것은 깜마사를 길들였다는 뜻이다. 깜마사란 자따까에서 언급되고 있는 깜마사빠다라는 인육을 먹는 사람을 말하며 그런 인육을 먹는 깜마사빠다가 여기서 길들여졌다고 해서 깜마사담마라고 한다는 것이다.
둘째, 꾸루 지방에는 꾸루족들이 지는 Kuruvattadhamma(꾸루에 있는 법도)라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이 지역에서 인육을 먹는 깜마사 종족(깜마사빠다)들이 법을 받아들여서 교화되었다고 해서 깜마사담마라 한다고 한다.(DA.ii.483)

 

"비구들이여, 성자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인 열 가지 이런 성스러운 삶이 있다. 어떤 열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요소들을 제거하고, 여섯 가지 요소들을 갖추고, 한 가지에 의해 보호되고, 네 가지 받침대를 가지고
, 편향된 진리를 버리고, 갈망(집착된 추구)을 끝내고, 사유가 평정하고,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가 고요하고,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로써 잘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다섯 가지 요소들을 제거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을 제거했고, 성냄을 제거했고, 해태와 혼침을 제거했고, 들뜸과 후회를 제거했고, 의심을 제거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요소들을 제거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여섯 가지 요소들을 갖추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볼 때 마음이 즐겁거나 괴롭지 않고 평온하고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머문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 ··· 코로 냄새를 맡을 때 ··· 혀로 맛을 볼 때 ··· 몸으로 감촉을 닿을 때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할 때 마음이 즐겁거나 괴롭지 않고 평온하고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요소들을 갖춘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한 가지에 의해 보호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의 마음은 마음챙김에 의해 보호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한 가지에 의해 보호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네 가지 받침대를 가지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은 수용한다.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은 감내한다.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은 피한다. 숙고한 뒤 어떤 것은 제거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네 가지 받침대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편향적인 진리를 버리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런저런 범속한 사문∙바라문들이 가지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은 몸과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은 몸과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편향적인 진리를 모두 쫓아내고, 버리고, 내던지고, 토하고, 몰아내고, 제거하고, 포기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편향적인 진리를 버린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갈망을 끝내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을 갈망하는 것을 끝낸다. 존재를 갈망하는 것을 끝낸다. 범행을 갈망하는 것이 고요해진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갈망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사유가 평정한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사유를 제거한다. 성냄에 대한 사유를 제거한다. 해코지에 대한 사유를 제거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의 사유가 평정하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가 고요한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의 의도적 행위가 고요하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마음이 잘 해탈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의 마음은 탐욕으로부터 해탈한다. 그의 마음은 성냄으로부터 해탈한다. 그의 마음은 어리석음으로부터 해탈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이 잘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지혜로써 잘 해탈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의 탐욕은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뽑혔고 윗부분이 잘려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라고 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지혜로써 잘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과거에 성스러운 삶을 살았던 성자들은 모두 이러한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미래에 성스러운 삶을 살 성자들은 모두 이러한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것이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지금 성스러운 삶을 사는 성자들은 모두 이러한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비구들이여, 성자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인 이러한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이 있다.”



제2장 보호자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