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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 모음 - 3. 대 품(Mahā-vagga. AN10.21-30)

실론섬 2014. 9. 1. 18:04

 

제3장 대 품 Mahā-vagga (AN 10.21-30)

 

sīhanādasuttaṃ (AN 10.21-사자후 경)
21. “비구들이여, 동물의 왕 사자가 해거름에 거주처에서 나온다. 거주처에서 나와서는 기지개를 켜고, 기지개를 켠 뒤 사방을 두루 굽어본다. 사방을 두루 굽어본 뒤 세 번 사자후를 토한다. 세 번 사자후를 토한 뒤 자기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내가 위험한 곳에 머물고 있는 작은 생명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사자'라는 것은 여래∙아라한∙정등각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이 사자후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다.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대웅.大雄) 공언하고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하고 브라흐마의 바퀴[梵輪]를 굴린다. 무엇이 열인가?

 

*'브라흐마의 바퀴(brahmacakka)'는 범륜(梵輪)으로도 역어된다. brahma는 '수승한, 높은, 특별한' 뜻이고 cakka는 '법의 바퀴'를 뜻한다. 이것은 두 종류가 있다. 꿰뚫음의 지혜(pativedha-nana)와 가르침의 지혜(desana-nana)이다. 그중에서 지혜(통찰지)로 강화된, 자신의 성스러운 과를 가져오는 것은 꿰뚫음의 지혜이다. 연민으로 강화된, 제자들의 성스러운 과를 가져오는 것은 가르침의 지혜이다. 꿰뚫음의 지혜는 출세간적인 것이고, 가르침의 지혜는 세간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 하지 않는, 오직 부처님만의 지혜이다.(AA.v.12)

 

비구들이여, 여래는 곳을 곳으로, 곳이 아닌 것을 곳이 아닌 것으로 있는 그대로(여실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곳을 곳으로, 곳이 아닌 것을 곳이 아닌 것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무리)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과거. 미래. 현재의 업을 받을 때, 곳으로부터의 그리고 원인으로부터의 이숙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과거. 미래. 현재의 업을 받을 때, 곳으로부터의 그리고 원인으로부터의 이숙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모든 곳으로 통해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모든 곳으로 통해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하나의 계[界]가 아닌, 다양한 계의 세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하나의 계가 아닌, 다양한 계의 세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중생들이 잡다하게 확신하는 바를 여실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다른 중생이 지닌, 다른 사람들이 지닌 근기의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다른 중생이 지닌, 다른 사람들이 지닌 근기의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선정의 상태에 관련하여, 번뇌에 대해, 청정에 대해, 벗어남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선정의 상태에 관련하여, 번뇌에 대해, 청정에 대해, 벗어남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수많은 다양한 이전에 살았던 곳를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여래가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 전생의 거처를 기억하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여러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즉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신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즉 죽어감, 태어남, ···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녀, 현재의 법을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모든 번뇌를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녀, 현재의 법을 스스로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구족하여 머무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이러한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다.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adhivuttipadasuttaṃ (AN 10.22-교리 경)
22.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
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런저런 교리들을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실현으로 이끄는 법들을, 아난다여, 거기서 나는 두려움 없이 천명한다. 그것은 사람이 그대로 닦고 익히면,
있는 것을 있다고 알게 되고, 없는 것을 없다고 알게 될 것이고, 저열한 것을 저열하다고 알게 될 것이고, 수승한 것을 수승하다고 알게 될 것이고, 위가 있는 것을 위가 있다고 알게 될 것이고, 위가 없는 것을 위가 없다고 알 수 있는 그런 법을, 그대로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고, 실현되어야 하는 것을 그대로 알고, 보고, 실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난다여,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가 지혜들 가운데서 위없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지혜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지혜는 없다고 말한다.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이러한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다.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어떤 열 가지인가?

 

아난다여, 여래는 곳을 곳으로, 곳이 아닌 것을 곳이 아닌 것으로 있는 그대로(여실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곳을 곳으로, 곳이 아닌 것을 곳이 아닌 것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무리)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과거. 미래. 현재의 업을 받을 때, 곳으로부터의 그리고 원인으로부터의 이숙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과거. 미래. 현재의 업을 받을 때, 곳으로부터의 그리고 원인으로부터의 이숙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모든 곳으로 통해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모든 곳으로 통해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하나의 계[界]가 아닌, 다양한 계의 세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하나의 계가 아닌, 다양한 계의 세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중생들이 잡다하게 확신하는 바를 여실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다른 중생이 지닌, 다른 사람들이 지닌 근기의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다른 중생이 지닌, 다른 사람들이 지닌 근기의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선정의 상태에 관련하여, 번뇌에 대해, 청정에 대해, 벗어남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선정의 상태에 관련하여, 번뇌에 대해, 청정에 대해, 벗어남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수많은 다양한 이전에 살았던 곳를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여래가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 전생의 거처를 기억하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여러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즉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신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렇게, 아난다여,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즉 죽어감, 태어남, ···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녀, 현재의 법을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모든 번뇌를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녀, 현재의 법을 스스로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구족하여 머무는 이것이 곧 여래가 지닌 여래의 힘이다. 이러한 힘에 의해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이러한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다.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공언한다.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한다. 브라흐마의 바퀴를 굴린다.”

 

kāyasuttaṃ (AN 10.23-몸 경)
23. “
비구들이여, 말에 의해서가 아니고 몸에 의해(몸으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몸에 의해서가 아니고 말에 의해(말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몸에 의해서도 말에 의해서도 제거할 수 없고 지혜로써 거듭 보아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말에 의해서가 아니고 몸에 의해 제거해야 하는 법들은 무엇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부부이든 몸에 의한 선하지 않은 잘못을 행했다. 그것을 본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이 이렇게 말해준다. ‘존자는 어떤 부분이든 몸에 의한 선하지 않은 것을 행했습니다. 존자는 몸의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제거하고 몸의 선한 행위를 닦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로부터 말을 들은 그는 몸의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제거하고 몸의 선한 행위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말에 의해서가 아니고 몸에 의해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비구들이여, 몸에 의해서가 아니고 말에 의해 제거해야 하는 법들은 무엇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부분이든 말에 의한 선하지 않은 잘못을 행했다. 그것을 본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이 이렇게 말해준다. ‘존자는 어떤 부분이든 말에 의한 선하지 않은 것을 행했습니다. 존자는 말의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제거하고 말의 선한 행위를 닦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로부터 말을 들은 그는 말의 선하지 않은 행위를 제거하고 말의 선한 행위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몸에 의해서가 아니고 말에 의해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비구들이여, 몸에 의해서도 말에 의해서도 아니고 지혜로써 보아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은 몸에 의해서도 말에 의해서도 아니고 지혜로써 보아서 제거해야 하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성냄은 ··· 어리석음은 ··· 분노는 ··· 원한은 ··· 위선은 ··· 무자비함은 ··· 인색은, 비구들이여, 몸에 의해서도 말에 의해서도 아니고 지혜로써 보아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비구들이여, 악한 질투는 몸에 의해서도 말에 의해서도 아니고 지혜로써 보아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악한 질투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이 풍족하다. 거기서 어떤 하인이나 심부름꾼에게 ‘오, 참으로 이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이 풍족하지 않기를.’ 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는다. 거기서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오, 참으로 이 존자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지 못하기를.’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악한 질투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악한 바램은 몸에 의해서도 말에 의해서도 아니고 지혜로써 보아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악한 바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없는 사문이 ‘믿음 있는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계를 경시하는 사문이 ‘계를 중시하는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배우지 못한 사문이 ‘많이 배운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교제를 즐기는 사문이 ‘홀로 머무는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게으른 사문이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마음 챙김을 놓아버린 사문이 ‘마음 챙김을 확립한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삼매를 닦지 않은 사문이 ‘삼매를 닦는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지혜가 없는 사문이 ‘지혜로운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번뇌를 다하지 못한 사문이 ‘번뇌 다한 자라고 나를 알기를.’이라고 바란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악한 바램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몸에 의해서도 말에 의해서도 아니고 지혜로써 보아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혼란스럽게 하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램이 속박하여 혼란스럽게 한다면, 이 비구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철저히 알아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혼란스럽게 한다. 철저히 알아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혼란스럽게 한다.'라고. 

 

비구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지 않아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램이 속박하지 않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면, 이 비구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램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램이 속박하여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라고.

 

mahācundasuttaṃ (AN 10.24-마하쭌다 경)
24. 한 때에 마하쭌다 존자는 쩨띠에서 사하자띠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마하쭌다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이시여.”라고. 마하쭌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들이여,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라고 앎에 대해서 말하는 비구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문다면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문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한다.···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문다.'라고.

 

도반들이여, ‘나는 몸을 닦았고, 계를 닦았고, 마음을 닦았고, 지혜를 닦았다.’라고 닦음에 대해서 말하는 비구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문다면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문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한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문다.'라고.

 

도반들이여,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 나는 몸을 닦았고, 계를 닦았고, 마음을 닦았고, 지혜를 닦았다.’라고 앎에 대한 말과 닦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문다면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문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한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문다.'라고.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가난한 사람이 호화로움에 대해 말하고, 재물이 없으면서 부유함에 대해 말하고, 재산이 없으면서 재산에 대해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정작 재물을 마련할 기회가 왔을 때에도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을 벌어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이 존자는 가난하면서 호화로움에 대해 말하고, 재물이 없으면서 부유함에 대해 말하고, 재산이 없으면서 재산에 대해 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는 정작 재물을 마련할 기회가 왔을 때에도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을 벌어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이와 같이, 도반들이여,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 나는 몸을 닦았고, 계를 닦았고, 마음을 닦았고, 지혜를 닦았다.’라고 앎에 대한 말과 닦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문다면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문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한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문다.'라고.  

 

도반들이여, 비구가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라고 앎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가 있습니다.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면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철저히 알아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라고.

 

도반들이여, ‘나는 몸을 닦았고, 계를 닦았고, 마음을 닦았고, 지혜를 닦았다.’라고 닦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면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철저히 알아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라고.

 

도반들이여,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 나는 몸을 닦았고, 계를 닦았고, 마음을 닦았고, 지혜를 닦았다.’라고 앎에 대한 말과 닦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고,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면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철저히 알아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나쁜 바램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라고.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부유한 사람이 부유함에 대해 말하고, 재물이 있으면서 재물에 대해 말하고, 재산이 있으면서 재산에 대해 말을 할 것입니다. 이런 그가 재물을 마련할 기회가 오면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을 벌어들이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이 존자는 부유하면서 부유함에 대해 말하고, 재물이 있으면서 재물에 대해 말하고, 재산이 있으면서 재산에 대해 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재물을 마련할 기회가 올 때 이 존자는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라고.

 

이와 같이, 도반들이여,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 나는 몸을 닦았고, 계를 닦았고, 마음을 닦았고, 지혜를 닦았다.’라고 앎에 대한 말과 닦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만일 그 비구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고 ··· 성냄이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면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철저히 알아차리는 자에게 탐욕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탐욕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 철저히 알아 차리는 자에게 성냄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 어리석음이 ··· 분노가 ··· 원한이 ··· 위선이 ··· 무자비함이 ··· 인색이 ··· 악한 질투가 ··· 악한 바람이 없는 것과 관련하여 이 존자는 그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존자를 악한 바람이 속박하여 머물지 않는다.'라고. 

 

kasiṇasuttam (AN 10.25-까시나 경) 
25. “비구들이여,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가 있다. 무엇이 열인가?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땅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물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불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바람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파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노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붉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하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허공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의식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가 있다.”

*둘이 아니라는 것(advaya)은 땅의 까시나 등 여러 까시나 가운데서 하나가 다른 상태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물에 들어간 사람에게 사방이 모두 물뿐이요 다른 것이 없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오직 땅의 까시나만 있을 뿐이지 다른 까시나가 섞이지 못한다. 이것은 다른 까시나에도 다 적용된다.

*'제한이 없음'이란 그 까시나를 확장하는데 제한이 없음을 말한다. 마음으로 그것을 확장할 때 전체적으로 하지 '이것은 처음이고 이것은 중간이다.'라고 한계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음으로 확장한다는 것은 닦은 마음으로 대상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닦은 마음은 까시나가 제한적이건 광대하건 전체적으로 마음에 주의를 기울일 뿐 일부분만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식의 까시나라는 것은 까시나를 제거한 허공에 대해 생긴 의식이다. 까시나를 제거한 허공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10.8참조

*의식의 까시나 대신에 광명의 까시나(āloka-karaṇa)를 말하기도 한다.

 

kāḷīsuttam (AN 10.26-깔리 경) 
26. 한 때에 마하깟짜나 존자가 아완띠에서 꾸라라가라의 협곡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꾸라라가라에 사는 깔리
청신녀가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꾸라라가라에 사는 깔리 청신녀는 한 곁에 앉아서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마하깟짜나(Maha-Kaccana)혹은 마하깟짜야나(Maha-Kacayana)는 우리에게 가전연 존자로 잘 알려져 있다.

*아완띠(Avanti)는 옛 인도 중원의 16국 가운데 하나로 마가다(Magadha)와 꼬살라(Kosala)와 왕사(Vamsa,Vatsa)와 더불어 4대 강국으로 꼽혔다고 한다. 수도는 웃제니(Ujjeni, 지금의 Ujain)와 마힛사띠(Mahissati)였다. 한때 아완띠는 북쪽과 남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고 하며, 이 둘은 각각의 수도였다고 한다. 세존 당시에는 빳조따 왕이 통치하였으며 그는 그의 불같은 성품 때문에 짠다빳조따(Canda-Pajjota)로 잘 알려졌다.(Vin.i.277)
마하깟짜나 존자는 이 짠다빳조따 왕의 궁중제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 대를 이어 궁중제관이 되었다. 그는 짠다빳조따 왕의 명으로 일곱 명의 친구들과 함께 세존을 웃제니로 초대하기 위해 세존에게 갔다가 설법을 듣고 무애해를 갖춘 아라한이 되어 출가하였다.(AA.i.206)
*꾸라라가라에 사는 깔리(Kali Kuraragharika) 청신녀는 이곳 꾸라라가라 출신이다. 그녀는 소나 꾸띠깐나 존자(AN1.14:2-9)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녀는 소문을 통해서도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는 자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나의 모음」은 밝히고 있다.(AN1.14:7-10 참조)   

 

“존자시여, 세존께서는『상윳따 니까야』「마라 상응」(S4)의「처녀들의 질문」에서 이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을 한 군대를 이기고

나는 홀로 삼매를 닦아 행복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더불어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과도 친구를 맺지 않는다.'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라는 것은 아라한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AA.v.21)
*'군대(sena)'는 탐욕 등의 오염원의 군대(Kilesa-sena)를 말한다. 오염원은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대상에 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Ibid)  
*'나는 어떤 사람과도 친구를 맺지 않는다'라는 것은 사랑스러운 모습과 매혹적인 모습을 한 군대를 이기고 나는 홀로 명상하면서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말한 아라한의 행복을 꿰뚫었다. 그러므로 사람과 더불어 친구를 맺지 않았고,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과도 사귀지 않는다.(AAT.iii.321) 

 

존자시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이 말씀의 뜻을 어떻게 상세하게 알아야 합니까?”

“누이여, 땅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누이여, 그러나 땅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완전한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완전한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잘못됨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여기서 '누이(bhagini)'는 꾸라라가라에 사는 깔리 청신녀를 칭하는 것이다. 초기경에서 비구들이 비구니들이나 청신녀를 부를 때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일어남이란 집성제를, 위험이란 고성제를, 벗어남이란 멸성제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이란 도성제를 말한다. 그것을 보셨다. 이익을 얻었다는 것은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보셨기 때문에 아라한과라고 불리는 이익을 얻었고, 모든 근심과 열벙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마음이 평화롭다'고 한 것이다.(AA.v.21)

 

누이여, 물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 

누이여, 불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 

누이여, 바람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  

누이여, 파란색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  

누이여, 노란색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  

누이여, 빨간색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 

누이여, 흰색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 

누이여, 허공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  

누이여, 의식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누이여, 그러나 의식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를 세존께서는 완전한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완전한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잘못됨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잘못됨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누이여, 그래서 세존께서는『상윳따 니까야』「마라 상응」 (S4)의「처녀들의 질문」에서 이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을 한 군대를 이기고  

나는 홀로 삼매를 닦아 행복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더불어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과도 친구를 맺지 않는다.라고.’


누이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이 말씀의 뜻을 이와 같이 상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까시나(kasina)"란 선정의 수행에서 마음집중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를 말하며, 넓게는 그러한 도구를 사용하여 행하는 수행법 자체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컨대, 흙에 의한 까시나'의 경우, 인위적으로 만든 흙이든 혹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흙이든, 흙에 대해 마음을 집중하여 눈으로 한참 보고난 후, 그것의 영상을 마음에 새긴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기에 마음작용이 완전히 고정될 때, 여러 잡다한 번뇌와 욕망등이 차단되어 첫번째 선정에 이른다고 한다. 나머지 제시되는 까시나의 경우도 대략적인 방법과 원리 마찬가지이다.

 

paṭhamamahāpañhāsuttaṃ (AN 10.27-큰 질문 경1)
27.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사왓티로 탁발을 갔다. 탁발을 가는 도중에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지금 사왓티로 탁발을 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우리는 지금 외도 유행승들의 숲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그리자 비구들은 외도 유행승들의 숲으로 갔다. 가서는 외도 유행승들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에게 외도 유행승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법을 설합니다.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일체법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체법을 항상 철저히 알면서 머물러야 한다.’라고. 도반들이여, 우리도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법을 설합니다. ‘오라,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일체법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체법을 항상 철저히 알면서 머물러야 한다.’라고. 여기, 도반들이여, 그러면 법을 설하는 것과 가르침의 근본에서 사문 고따마와 우리들 사이에 어떤 차이점, 어떤 특별함, 어떤 다른점이 있습니까?”

 

그때 비구들은 외도 유행승들의 말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부정하지도 못했다.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서 떠났다. ‘우리는 세존의 곁에 가서 이 말의 의미를 알아봐야겠다.'라면서. 비구들은 사왓티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비구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사왓티로 탁발을 갔습니다. ··· 한 곁에 앉은 저희들에게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법을 설합니다.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일체법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체법을 항상 철저히 알면서 머물러야 한다.’라고. 벗들이여, 우리도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법을 설합니다. ‘오라,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일체법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체법을 항상 철저히 알면서 머물러야 한다.’라고. 여기, 벗들이여, 그러면 법을 설하는 것과 가르침의 근본에서 사문 고따마와 우리들 사이에 어떤 차이점, 어떤 특별함, 어떤 다른점이 있습니까?'라고. 저희들은 외도 유행승들의 말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부정하지도 못했습니다.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서 떠났습니다. ‘우리는 세존의 곁에 가서 이 말의 의미를 알아봐야겠다.’라면서.”


“비구들이여, 그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와 같이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들이여,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고,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고,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고,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고,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면 외도 유행승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들의 앎(지혜)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하늘(신)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세계, 하늘 사람(천신)이 사는 세계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설명으로 마음을 기쁘게 할 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나 혹은 여래나 여래의 제자로부터 그것을 들은 자가 아니고는 그 누구도 보지 못한다.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한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한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모든 중생들은 음식으로 생존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한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은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일어남과 사라짐(udaya-bbaya)을 통해 끝을 보고, 처음과 마지막을 봄으로써 바르게 그 끝을 보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AA.v.23)
*'한 가지 법에 대해'라고 한 것은 개요를 나타내고, '어떤 한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라고 한 것은 질문을 나타내고, '모든 중생들은 음식으로 생존한다.'라고 한 것은 설명이다.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둘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둘의 법에 대해서인가? 정신[名]과 물질[色]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둘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오온 가운데 수온.상온.행온.식온은 '정신(名.nama)'에 해당하고, 색온은 '물질(色.nipa)에 해당한다.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셋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셋의 법에 대해서인가?
세 가지 느낌[受]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셋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세 가지 느낌(vedana)은 괴로운 느낌(dukkha-vedana), 즐거운 느낌(sukha-vedana),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adukkhamasukha-vedana)이다.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넷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넷의 법에 대해서인가? 네 가지 음식(네 가지 자양분)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넷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다섯의 법에 대해서인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 오취온]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다섯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여섯의 법에 대해서인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入處]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여섯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일곱의 법에 대해서인가?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머무름)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일곱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satta vinnanatthitiyo)이란, 유정들의 의식이 머무는 양태를 일곱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곧 중생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세계가 각각 다름을 의미한다.①여러 몸과 각기 다른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nanattakaya nanattasannino vinnanatthiti) ②몸은 여럿이되 동일한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nanattakaya ekattasannino vinnanatthit) ③몸은 동일하되 각기 다른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ekattakaya nanattasannino vinnanatthiti) ④동일한 몸과 동일한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ekattakaya ekattasannino vinnanatthiti) ⑤공간에 걸림이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akasanancayatanupaga vinnanatthiti. 공무변처) ⑥의식에 걸림이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vannanancayatanupaga vinnanatthiti. 식무변처) ⑦아무것도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akincannayatanupaga vinnanatthiti.무소유처)의 일곱 가지를 말한다.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덟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여덟의 법에 대해서인가? 여덟 가지 세상의 법(세간의 법)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여덟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여덟가지 attha lokadhamma)세간의 법(이란, ①얻음(labha) ②얻지 못함(alabha) ③명예(yasa)④불명예(ayasa) ⑤비난(ninda) ⑥칭찬(pasamsa) ⑦즐거움(sukha) ⑧괴로움(dukkha)이다.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홉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아홉의 법에 대해서인가? 아홉 가지 중생의 거주처(머무름)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아홉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중생들의 아홉 가지 거주처란 위의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에 ⑧지각이 있는것도 없는 것도 아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nevasannanasannayatanupaga vinnanatthiti.비상비비상처) ⑨지각이 없는 중생(asannasatta.상수멸)의 두 가지를 더한 것이다.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열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열의 법에 대해서인가? 열 가지 선하지 않은 업의 길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열 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그렇게 말했다.”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선하지 않은 업의 길. dasa akusala kammapatha) 이란, ①생명을 죽이는것(panatipata) ②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adinnadana) ③성적으로 음란한 행위(삿된 음행. kamesumicchacara) ④거짓말(musavado) ⑤이간하는 말(pisuna vaca) ⑥거친 말(pharusa vaca) ⑦꾸며대는 말(samphappalapa) ⑧간탐(abhijjha) ⑨성냄(byapada) ⑩삿된 견해(micchaditthi)를 말한다.
여기서 첫 번째 세 가지는 몸에 관련한 해로운 업의 행위이며, 그 다음 네 가지는 말에 관련한 해로운 업의 행위이며, 마지막 세 가지는 마음에 관련한 해로운 업의 행위이다.이러한 열 가지 해로운 업의 반대가 바로 열 가지 선한 업의 길(dasa kusalakammapatha)이다.

 

dutiyamahāpañhāsuttaṃ (AN 10.28-큰 질문 경2)
28. 한 때에 세존께서는 까장갈라에서 대나무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많은 까장갈라에 사는 청신사들이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까
장갈라에 사는 비구니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까장갈라에 사는 청신사들은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까장갈라(Kajangala)'는 인도 중원의 동쪽 경계에 해당하는 도시이다.(AAT.iii.302) 세존 당시에 아주 번창한 곳이었다고 한다.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에도 언급이 되고 있다. 세존께서는 본경에 언급되어 있는 이곳의 대나무 숲과 무켈루 숲(M152)에 머물기도 하셨다.
*까장갈라 비구니(Kajangala bhikkhuni)에 대해서는 복주석서는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세존과 제자들의 전기를 기록하고 있는 아와다나 샤따까(Avadana-sataka,ii.41ff)에 이 비구니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스님, 세존께서는 큰 질문에 대해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고,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고,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고,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고,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까장갈라이시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해주신 이 말씀의 뜻을 어떻게 상세히 이해해야 합니까?”

“도반들이여,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바도 없고 이해한 바도 없고, 또한 마음을 닦는 비구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바도 없고 이해한 바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이제 그것을 들으십시오. 듣고 마음에 잘 새기십시오. 나는 설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스님.”이라고 까장갈라에 사는 청신사들은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에게 대답했다.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는 이와 같이 말했다.

 

*경에서 비구를 지칭하는 호격으로는 bhante(존자시여)라는 단어가 사용되지만, 비구니를 지칭하는 호격으로는 ayye(누이여)가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스님으로 옮긴 단어는 ayye인데, 이해하기 쉽게 '스님'으로 옮겼다.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도반들이여, 한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한 가지 법에 대해서입니까? 모든 중생들은 음식으로 생존합니다. 도반들이여, 이러한 한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바르게 염오(厭惡)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도반들이여, 두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두 가지 법에 대해서입니까? 정신[名]과 물질[色]에 대해서입니다. ··· 어떤 세 가지 법에 대해서입니까? 세 가지 느낌에 대해서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 가지에 대한 질문과 세 가지에 대한 개요와 세 가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도반들이여, 넷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넷의 법에 대해서입니까? 네 가지 마음 챙김[四念處]에 대해서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러한 넷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도반들이여, 다섯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다섯의 법에 대해서입니까? 다섯 가지 근[오근.五根]에 대해서입니다. ··· 어떤 여섯의 법에 대해서입니까?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에 대해서입니다. ··· 어떤 일곱의 법에 대해서입니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칠각지.七覺支)에 대해서입니다. ··· 어떤 여덟의 법에 대해서입니까? 성스러운 여덟 가지 바른 길(팔정도.八正道)에 대해서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러한 여덟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초기불교의 수행법인 37조도품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기능 가운데 특히 다섯 가지를 오근이라고 하여 수행과 관련된 것이라고 언급한다. 즉, 믿음의 기능[信根], 정진의 기능[精進根], 마음 집중의 기능[念根], 삼매의 기능[定根], 통찰지의 기능[慧根]이다. 다섯 가지 기능의 각각에 대해 살펴보면, 신근은 불(佛)·법(法)·승(僧)·계(戒)에 대한 사정신(四淨信)과 연관되어 확신을 통해 일어난다. 정진근은 사정근(四正勤)과 연관되어 분발을 통해 일어나고, 염근은 사념처(四念處)와 연관되어 확립을 통해 일어난다. 정근은 사선(四禪)과 연관되어 산란하지 않음을 통해 일어나고, 혜근은 사성제(四聖諦)와 연관되어 바라봄을 통해 일어난다.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란, ①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 ②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悲心解脫] ③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喜心解脫] ④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捨心解脫] ⑤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 ⑥나에게는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이] 없어졌으며 ‘이러한 내가 있다.’라고 보지도 않음.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도반들이여, 아홉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아홉의 법에 대해서입니까? 아홉 가지 중생의 거처에 대해서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러한 아홉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씀하셨습니까? 

도반들이여, 열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열의 법에 대해서입니까?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에 대해서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열의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끝을 보는 비구는 바르게 뜻을 관통한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고,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고,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고,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고,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세존께서 큰 질문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하신 이것의 상세한 뜻을, 도반들이여, 나는 이렇게 압니다. 도반들이여, 그대들이 원한다면 세존께 가십시오. 가서 세존께 이러한 뜻을 다시 여쭈어 보십시오, 그래서 세존께서 설명해 주시는 대로 그것을 호지하십시오(명심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스님.”이라고 까장갈라에 사는 청신사들은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에게 경의를 표하고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돈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까장갈라에 사는 청신사들은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와의 대화를 모두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장자들이여! 장자들이여,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는 현명합니다. 장자들이여,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는 큰 지혜를 가졌스니다. 장자들이여, 만약 그대들이 나에게 와서 그 뜻을 물었다고 해도 나도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의 설명처럼 그와 같이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까장갈라에 사는 비구니가 설명한 그대로 그 뜻을 잘 호지해야 합니다.”

 

paṭhamakosalasuttaṃ (AN 10.29-꼬살라 경1)
29. “비구들이여, 까시와 꼬살라의 영토에 관한 한, 그리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정복에 관한 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으뜸아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달과 태양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사방을 비추고 광명이 빛나는 곳까지를 1,000(千)의 세상이라 한다. 그러한 1,000의 세상에는 1,000의 달과 1,000의 태양과 산의 왕인 1,000의 수미산과 1,000의 잠부디빠와 1,000의 아빠라고야나와 1,000의 웃따라꾸루와 1,000의 뿝바위데하와 4,000의 큰 바다와 4,000의 대왕과 1,000의 사대왕천과 1,000의 삼십삼천과 1,000의 야마천과 1,000의 도솔천과 1,000자재천과 1,000의 타화자재천과 1,000의 범천의 세상이 있다. 비구들이여, 1,000의 세상에 관한 한 대범천이 으뜸이라 불린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러한 대범천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하는 그런 때가 온다.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할 때는(무너질 때) 광음천의 신들은 으뜸이라 불린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러한 광음천의 신들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가 있다. 무엇이 열인가?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땅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물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불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바람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파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노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빨간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흰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허공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의식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의 까시나의 장소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 가운데 어떤 자가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의식의 까시나를 인식(想)할 때 그것이 으뜸이니, 참으로 이러한 중생들이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八勝處]가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色]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제한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첫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무량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두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제한된 것이고 곱거나 혺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세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무량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네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파랗고 파란색이며 파랗게 보이고, 파란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노랗고 노란색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란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은 본다. 그것은 빨갛고 빨간색이며 빨갛게 보이고 빨간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희고 흰색이며 희게 보이고, 흰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여덟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 가운데 어떤 자가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보는 바, 그것은 희고 흰색이며 희게 보이고 흰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할 때 그것이 으뜸이다. 참으로 이러한 중생들이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 인식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닦음(실천)도 어렵고 완전한 지혜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완전한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완전한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완전한 지혜도 빠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 가운데 닦음도 쉽고 완전한 지혜도 빠른 것이 으뜸이다. 참으로 이러한 중생들이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러한 닦음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인식(想)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어떤 자는 제한된 것을 인식한다. 어떤 자는 확장된 것을 인식한다. 어떤 자는 무한한 것을 인식한다. 어떤 자는 ‘아무 것도 없다.’라고 무소유처를 인식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인식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인식 가운데 어떤 자가 ‘아무 것도 없다.’라고 무소유처를 인식할 때 그것이 으뜸이다(최고이다). 참으로 이러한 중생들이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agge-virajjati)라는 것은 단견(uccheda-ditthi)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는 말이다.(Ibid)

비구들이여, 외도들의 견해 가운데는 ‘내가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라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라는 이것이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존재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자도 없을 것이고, 존재의 소멸에 대해 혐오하는 자도 없을 것이다.;라고. 참으로 이러한 견해를 가진 중생들이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러한 견해를 가진 중생들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궁극적인 의미의 청정을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궁극적인 의미의 청정을 천명하는 자들 가운데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들어 머무는 이것이 궁극적 의미의 청정을 천명하는 것 가운데 으뜸이다. 
그들은 법을 완전한 지혜로 알고 실현한 뒤 법을 설한다. 이런 교설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러한 교설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달라짐이 있고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으뜸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궁극적인 의미의 청정(paramattha-visuddhi)이란 최상의 믜미의 청정을 말한다. 이것은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을 두고 말한 것이다. 앞에서 무소유처는 위빳사나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최고라 했고, 비상비비상처는 긴 수명을 가졌기 때문에 최고라 한다.(Ibid)


비구들이여, 지금 여기에서 최고의 열반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지금.여기에서의 궁극의 열반을 천명하는 자들 가운데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 뒤 집착 없는 해탈을 한 자가 으뜸이다.

 

*집착없는 해탈(anupada vimokkha)이란 네 종류의 집착을 움켜쥐지 않고 마음이 해탈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아라한을 말한 것이다.(Ibid)
네 종류의 집착이란 감각적 쾌락, 견해, 계율과 의례의식, 자아가 있다는 교리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교설을 가졌고 이렇게 설명하는 나에 대해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근거 없고 헛되고 거짓이고 사실과 다른 것으로 비방한다. ‘사문 고따마는 감각적 쾌락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지도 못하고, 물질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지도 못하고, 느낌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지도 못한다.’라고.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는 감각적 쾌락을 넘어섰음을 천명하고, 물질을 넘어섰음을 천명하고, 느낌을 넘어섰음을 천명한다. 금생에 더 이상 갈애가 없고 고요하고 집착이 없는 완전한 열반을 천명한다.”

 

*세존께서는 초선으로써 감각적 쾌락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시고, 무색계의 증득으로써 물질들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시고, 집착없는 열반으로써 느낌들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신다. 열반은 모든 느낌을 버렸기 때문에 느낌을 넘어선 것이라 부른다. '집착없는 완전한 열반(anupada-parinibbana)'이란 '조건이 없는 완전한 열반(apaccayaparinibbana)'을 말한다.(AA.v.27) 

 

dutiyakosalasuttam (AN 10.30-꼬살라 경2)
30.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전쟁에서 이기고 원하는 것을 얻어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숲으로 가서 그는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 무렵에 많은 비구들이 노지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지금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저는 세존∙아라한∙정등각을 친견하고 싶습니다.”

“대왕이시여, 저기 문이 닫혀있는 저 처소입니다. 그러니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다가가서 서두르지 말고 현관에 들어간 뒤 헛기침을 한 후 

빗장을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세존께서 대왕에게 문을 열어 드릴 것입니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문이 닫혀있는 처소로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서 서두르지 않고 현관에 들어간 뒤 헛기침을 한 후 빗장을 두드렸다. 세존께서는 문을 열어 주셨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세존의 발에 입을 맞추고 손을 갖다 이와 같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입니다.”라고. 
“대왕이시여, 그대는 무슨 이익을 보기에 이 몸에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이런 감사함을 드러내십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은혜를 알고 감사함을 보기에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바른 길을 걷고 계십니다.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함과 유익함인 성스러운 방법에 확고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바른 길을 걷고 계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함과 유익함인 성스러운 방법에 확고하게 하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계를 지니셨습니다. 세존께서는 계와 성자의 계와 선한 계를 지니시고 선한 계를 구족하신 분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계를 지니시어 세존의 계와 성자의 계와 선한 계를 가지시고 선한 계를 구족하신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오랜 세월 숲에 머무시고 나무 아래나 비어 있는 곳에 거주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오랜 세월 숲 속에 머무시고 숲이나 나무 아래나 비어 있는 곳에 거주하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그것으로 만족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그것을 만족하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공양 받아 마땅하시고, 시중받아 마땅하시고, 보시 받아 마땅하시고, 합장 받아 마땅하시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공양 받아 마땅하시고, 시중받아 마땅하시고, 보시 받아 마땅하시고, 합장 받아 마땅하시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신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철저한 번뇌의 소멸과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 즉 소욕에 대한 이야기, 지족에 대한 이야기, 홀로 머묾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 확고한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를 바라는 대로 얻으실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얻으실 수 있고, 원하는 만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철저한 번뇌의 소멸과 ···
원하는 만큼 얻으실 수 있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얻으시고, 원하는 대로 얻으시고, 원하는 만큼 얻으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얻으시고, 원하는 대로 얻으시고, 원하는 만큼 얻으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전생을 기억하십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하십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전생을 기억하십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내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봅니다.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립니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봅니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리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봅니다. 죽어감, 태어남, ···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리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를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녀, 현재의 법을 스스로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구족하여 머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녀, 현재의 법을 스스로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구족하여 머무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감사함을 드러냅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는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대왕이시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제3장 대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