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열의 모음 - 7. 쌍 품(Yamaka-vagga. AN10.61-70)

실론섬 2014. 9. 5. 14:19

제7장 쌍 품 Yamaka-vagga (AN 10.61-70)

 

avijjāsuttaṃ (AN 10.61-무명(無明) 경)

61. "비구들이여, ‘지금 이전에는 무명이 없었다. 그리고 이후에 생긴 것이다.’라는 무명의 시작점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것은, 비구들이여, 이렇게 불린다. 반면에 '이것을 조건으로 무명이 있다고.'라고 알려진다(그러나 ‘조건이 있기 때문에 무명은 있다.’라고 알려진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무명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무명의 자양분인가? 

다섯 가지 장애가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다섯 가지 장애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다섯 가지 장애의 자양분인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행위가 그 대답이다.

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세 가지 나쁜 행위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세 가지 나쁜 행위의 자양분인가?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의 자양분인가? 
마음 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마음 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마음 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의 자양분인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의 자양분인가? 
믿음이 없음(불신.不信)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믿음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믿음 없음의 자양분인가? 
바른 법을 듣지 못함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바른 법을 듣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바른 법을 듣지 못함의 자양분인가? 
고결한 사람과 교제하지 않음이 그 대답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과 교제하지 않음에 충실하면 잘못된 법을 따름을 채운다. 잘못된 법을 따름에 충실하면 믿음이 없음을 채운다. 믿음이 없음에 충실하면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을 채운다.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에 충실하면 마음 챙기지 않음과 알아차리지 못함을 채운다. 마음 챙기지 않음과 알아차리지 못함에 충실하면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채운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에 충실하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행위를 채운다. 세 가지 나쁜 행위에 충실하면 다섯 가지 장애를 채운다. 다섯 가지 장애에 충실하면 무명을 채운다. 이렇게 이런 무명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산 위에 큰 비가 내리면 경사진 곳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려서 산의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채운다.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 채우면 다시 작은 연못을 채운다. 작은 연못을 채우면 다시 큰 연못을 채운다. 큰 연못을 채우면 다시 작은 강을 채운다. 작은 강을 채우면 다시 큰 강을 채운다. 큰 강을 채우면 다시 큰 바다를 채운다. 이렇게 바다와 대양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과 교제하지 않음에 충실하면 잘못된 법을 따름을 채운다. 잘못된 법을 따름에 충실하면 믿음이 없음을 채운다. 믿음이 없음에 충실하면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을 채운다.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에 충실하면 마음 챙기지 않음과 알아차리지 못함을 채운다. 마음 챙기지 않음과 알아차리지 못함에 충실하면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채운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에 충실하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행위를 채운다. 세 가지 나쁜 행위에 충실하면 다섯 가지 장애를 채운다. 다섯 가지 장애에 충실하면 무명을 채운다. 이렇게 이런 무명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명지(明知)와 해탈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명지와 해탈의 자양분인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가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의 자양분인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의 자양분인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선한 행위가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세 가지 선한 행위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세 가지 선한 행위의 자양분인가? 
감각기능의 단속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감각기능의 단속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감각기능의 단속의 자양분인가?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의 자양분인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임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임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임의 자양분인가? 
믿음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믿음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믿음의 자양분인가? 
바른 법을 따름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바른 법을 따름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바른 법을 따름의 자양분인가? 
고결한 사람과 교제함이 그 대답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과 교제함에 충실하면 바른 법을 따름을 채운다. 바른 법을 따름에 충실하면 믿음을 채운다. 믿음에 충실하면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을 채운다.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에 충실하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채운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에 충실하면 감각기능의 단속을 채운다. 감각기능의 단속에 충실하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선한 행위를 채운다. 세 가지 선한 행위에 충실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채운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충실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채운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 충실하면 명지와 해탈을 채운다. 이렇게 이런 명지와 해탈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산 위에 큰 비가 내리면 경사진 곳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려서 산의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채운다.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 채우면 다시 작은 연못을 채운다. 작은 연못을 채우면 다시 큰 연못을 채운다. 큰 연못을 채우면 다시 작은 강을 채운다. 작은 강을 채우면 다시 큰 강을 채운다. 큰 강을 채우면 다시 큰 바다를 채운다. 이렇게 바다와 대양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과 교제함에 충실하면 바른 법을 따름을 채운다. 바른 법을 따름에 충실하면 믿음을 채운다. 믿음에 충실하면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을 채운다.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에 충실하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채운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에 충실하면 감각기능의 단속을 채운다. 감각기능의 단속에 충실하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선한 행위를 채운다. 세 가지 선한 행위에 충실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채운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충실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채운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 충실하면 명지와 해탈을 채운다. 이렇게 이런 명지와 해탈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ḍtaṇhāsuttaṃ (AN 10.62-존재에 대한 갈애 경)
62. “비구들이여, ‘지금 이전에는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가 없었다. 그리고 이후에(나중에) 생긴 것이다.'라는 존재에 대한 갈애의 시작점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것은, 비구들이여, 이렇게 불린다, 반면에, '이것을 조건으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있다.’라고 알려진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존재에 대한 갈애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존재에 대한 갈애의 자양분인가? 
무명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무명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무명의 자양분인가?
다섯 가지 장애가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다섯 가지 장애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다섯 가지 장애의 자양분인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행위가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세 가지 나쁜 행위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세 가지 나쁜 행위의 자양분인가?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의 자양분인가? 
마음 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마음 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마음 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의 자양분인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의 자양분인가? 
믿음이 없음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믿음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믿음 없음의 자양분인가? 
바른 법을 듣지 못함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바른 법을 듣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바른 법을 듣지 못함의 자양분인가? 
고결한 사람과 교제하지 않음이 그 대답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과 교제하지 않음에 충실하면 잘못된 법을 따름을 채운다. 잘못된 법을 따름에 충실하면 믿음이 없음을 채운다. 믿음이 없음에 충실하면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을 채운다.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에 충실하면 마음 챙기지 않음과 알아차리지 못함을 채운다. 마음 챙기지 않음과 알아차리지 못함에 충실하면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채운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에 충실하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행위를 채운다. 세 가지 나쁜 행위에 충실하면 다섯 가지 장애를 채운다. 다섯 가지 장애에 충실하면 무명을 채운다. 무명에 충실하면 존재에 대한 갈애를 채운다. 이렇게 이런 존재의 갈애에 대한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산 위에 큰 비가 내리면 경사진 곳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려서 산의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채운다.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 채우면 다시 작은 연못을 채운다. 작은 연못을 채우면 다시 큰 연못을 채운다. 큰 연못을 채우면 다시 작은 강을 채운다. 작은 강을 채우면 다시 큰 강을 채운다. 큰 강을 채우면 다시 큰 바다를 채운다. 이렇게 바다와 대양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과 교제하지 않음에 충실하면 잘못된 법을 따름을 채운다. 잘못된 법을 따름에 충실하면 믿음이 없음을 채운다. 믿음이 없음에 충실하면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을 채운다.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에 충실하면 마음 챙기지 않음과 알아차리지 못함을 채운다. 마음 챙기지 않음과 알아차리지 못함에 충실하면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채운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에 충실하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행위를 채운다. 세 가지 나쁜 행위에 충실하면 다섯 가지 장애를 채운다. 다섯 가지 장애에 충실하면 무명을 채운다. 무명에 충실하면 존재에 대한 갈애를 채운다. 이렇게 이런 존재의 갈애에 대한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명지(明知)와 해탈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명지와 해탈의 자양분인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가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의 자양분인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의 자양분인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선한 행위가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세 가지 선한 행위를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세 가지 선한 행위의 자양분인가? 
감각기능의 단속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감각기능의 단속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감각기능의 단속의 자양분인가?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의 자양분인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임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임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임의 자양분인가? 

믿음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믿음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믿음의 자양분인가? 
바른 법을 따름이 그 대답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갖고 있는 바른 법을 따름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바른 법을 따름의 자양분인가? 
고결한 사람과 교제함이 그 대답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과 교제함에 충실하면 바른 법을 따름을 채운다. 바른 법을 따름에 충실하면 믿음을 채운다. 믿음에 충실하면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을 채운다.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에 충실하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채운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에 충실하면 감각기능의 단속을 채운다. 감각기능의 단속에 충실하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선한 행위를 채운다. 세 가지 선한 행위에 충실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채운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충실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채운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 충실하면 명지와 해탈을 채운다. 이렇게 이런 명지와 해탈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산 위에 큰 비가 내리면 경사진 곳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려서 산의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채운다.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 채우면 다시 작은 연못을 채운다. 작은 연못을 채우면 다시 큰 연못을 채운다. 큰 연못을 채우면 다시 작은 강을 채운다. 작은 강을 채우면 다시 큰 강을 채운다. 큰 강을 채우면 다시 큰 바다를 채운다. 이렇게 바다와 대양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과 교제함에 충실하면 바른 법을 따름을 채운다. 바른 법을 따름에 충실하면 믿음을 채운다. 믿음에 충실하면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을 채운다.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에 충실하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채운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에 충실하면 감각기능의 단속을 채운다. 감각기능의 단속에 충실하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선한 행위를 채운다. 세 가지 선한 행위에 충실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채운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충실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채운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 충실하면 명지와 해탈을 채운다. 이렇게 이런 명지와 해탈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채워진다."   

 

niṭṭhāngatasuttam (AN 10.63-완성에 도달함 경)
63. “비구들이여, 나와 일치하는 자들은 모두 견해를 갖춘 자들이다. 견해를 갖춘 자들 가운데 다섯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고, 다섯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여기서 완성에 [도달한다]'는 것은 오직 이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는 말이고,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 정거천이라는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서 그곳에서 열반에 든다는 말이다.(Ibid)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다섯 부류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인가? 최대로 일곱 번만 다시 태어나는 자, 성스러운 가문에서 성스러운 가문으로 가는 자, 한 번만 싹 트는 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 지금·여기에서 아라한이 된 자이다. 이러한 다섯 부류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최대로 일곱 번만 다시 태어나는 자(sattakkhattu-parama)'와 '성스러운 가문에서 성스러운 가문으로 가는자(kolamkola)'와 '한 번만 싹 트는 자(eka-biji)'는 세 가지 유형의 예류자이다. 청정도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더딘 위빳사나로 첫 번째 도의 지혜를 닦은 뒤 [예류자의 경지에] 도달한 자는 [믿음 등]의 기능들이 둔하더라도 '최대 일곱 번만 다시 태어나는 자'라고 한다. 일곱 번 선처에 윤회한 뒤 괴로움을 종식시킨다. 중간의 위빳사나로 도달한 자는 기능들도 중간이며 '성스러운 가문에서 성스러운 가문으로 가는 자'라고 한다. 두 번 혹은 세 번 성스러운 가문에 윤회한 뒤 괴로움을 종식시킨다. 예리한 위빳사나로 도달한 자는 기능들도 예리하여 '한 번만 싹 트는 자'라고 한다. 한 번만 더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는 괴로움을 종식시킨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다섯 부류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인가?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 노력 없이 쉽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 노력하여 어렵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이르는 자이다. 이러한 다섯 부류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이 다섯은 다섯 유형의 불환자이다.

 

비구들이여, 나와 일치하는 자들은 모두 견해를 갖춘 자들이다. 견해를 갖춘 자들 가운데 이러한 다섯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고, 이러한 다섯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aveccappasannasuttam (AN 10.64-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 경)
64. “비구들이여, 내게 흔들림 없는 완전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두 흐름에 든 자들이다. 흐름에 든 자들 가운데 다섯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고, 다섯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다섯 부류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인가?

최대로 일곱 번만 다시 태어나는 자, 성스러운 가문에서 성스러운 가문으로 가는 자, 한 번만 싹 트는 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 지금 

여기에서 아라한이 된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부류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다섯 부류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인가?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 노력없이 쉽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 노력하여 

어렵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이르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부류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내게 흔들림 없는 완전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두 흐름에 든 자들이다. 흐름에 든 자들 가운데 이러한 다섯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요, 이러한 다섯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paṭhamasukhasuttaṃ (AN 10.65-행복 경1)
65.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는 마가다에서 날라까가마까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사만다까니 유행승이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만다까니 유행승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날라까가마까(Nalakagamaka) 혹은 날라까 마을은 사리뿟따 존자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사리뿟따 존자는 이 날라까가마까에 있는 그의 고향집에 가서 어머니를 불교에 귀의하게 하고, 출가전 자신의 방에서 세존보다 먼저 반열반하였다. 

 

"도반 사리뿟따여,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괴로움입니까?”
“참으로 도반이여, 태어남이 괴로움이고 태어나지 않음이 행복입니다. 도반이여
, 태어나면 이런 괴로움이 예상됩니다. 그것은 차가움, 뜨거움, 배고픔, 목마름, 대변, 소변, 불의 재난을 만나고, 몽둥이의 재난과 만나고, 칼의 재난과 만나고, 친척들과 친구들도 만나거나 함께 모이면 불편합니다. 도반이여, 태어나면 이런 괴로움이 예상됩니다.

도번아여, 태어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행복이 예상됩니다. 그것은 차가움도 없고, 뜨거움도 없고, 배고픔도 없고, 목마름도 없고, 대변도 없고, 소변도 없고, 불의 재난과 만남도 없고, 몽둥이의 재난과 만남도 없고, 칼의 재난과 만남도 없고, 친척들과 친구들도 만나거나 함께 모여 불편할 일이 없습니다. 도반이여, 태어나지 않으면 이러한 행복이 예상됩니다.”

 

dutiyasukhasuttaṃ (AN 10.66-행복 경2)

66.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는 마가다에서 날라까가마까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사만다까니 유행승이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만다까니 유행승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이 법과 율에서는 무엇이 행복(즐거움)이고 무엇이 괴로움입니까?”
“참으로 도반이여, 이 법과 율에서는 만족하지 못함(기쁘지 않음)이 괴로움이고 만족(기쁨)이 행복입니다. 도반이여
, 만족하지 못할(기쁘지 않을) 때 이런 괴로움이 예상됩니다. 가고 있을 때도 행복과 편안함을 얻지 못하고 ··· 서 있을 때도 ··· 앉아 있을 때도 ··· 누워있을 때도 ··· 마을에 갔을 때도 ··· 숲으로 갔을 때도 ··· 나무 아래에 갔을 때도 ··· 빈 집에 갔을 때도 ··· 노지에 갔을 때도 ··· 비구들 사이에 있을 때도 행복과 편안함을 얻지 못합니다. 만족하지 못할 때(기쁘지 않을 때), 이런 괴로움이 예상됩니다.


도반이여, 만족할(기쁠) 때, 이런 행복이 예상됩니다. 가고 있을 때도 행복과 편안함을 얻고, 서 있을 때도 ··· 앉아 있을 때도 ··· 누워있을 때도 ··· 마을에 갔을 때도 ···
숲으로 갔을 때도 ··· 나무 아래에 갔을 때도 ··· 빈집에 갔을 때도 ··· 노지에 갔을 때도 ··· 비구들 사이에 있을 때에도 행복과 편안함을 얻습니다. 만족할 때 이런 행복이 예상됩니다.”

 

paṭhamanaḷakapānasuttaṃ (AN 10.67-날라까빠나 경1)
67.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 지방에서 유행하시다가 날라까빠나라는 꼬살라들의 성읍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날라까빠나에서 빨라사 숲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세존께서는 포살일에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앉아 계셨다. 세존께서는 밤이 늦도록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어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으며, 비구들이 흔들림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을 둘러보신 뒤 사리뿟따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비구들은 해태와 혼침이 없구나. 사리뿟따여, 그대가 이런 비구들에게 법문을 들려주어라. 나는 등이 아파서 누워야겠다.”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큰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만들게 하신 뒤 발을 포개고,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일어남의 인식(일어난 시간)에 마음을 기우리시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으로 향하도록 하여 사자처럼 누우셨다.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누구든지, 도반들이여,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지혜가 없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예상되고 향상은 예상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그믐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희미해지고, 원형이 줄어들고, 빛은 약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줄어듭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지혜가 없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예상되고 향상은 예상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믿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지혜가 없는 사.’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분노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원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나쁜 바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나쁜 친구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도반들이여,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합니다.

 

누구든지, 도반들이여,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지혜가 있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예상되고 퇴보가 예상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보름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선명해지고, 원둘레는 늘어나고, 빛은 강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늘어납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있고, 유익 법들에 대해서 지혜가 있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예상되고 퇴보가 예상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믿음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퇴보하지 않음.발전)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원한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바람이 적은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좋은 친구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도반들이여,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합니다.”라고.

 

사리뿟따 존자가 이렇게 비구들에게 말한 후 세존께서 일어나셔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지혜가 없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예상되고 향상은 예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그믐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달은,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희미해지고, 원형이 줄어들고, 빛이 약해지고, 높이와 둘레가 줄어드는 것과 같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지혜가 없는 자에게, 밤이 오거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예상되고 향상은 예상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믿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분노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원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나쁜 바람을 가진 사람.’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나쁜 친구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하고, 사리뿟따여,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퇴보를 뜻한다.

누구든지, 사리뿟따여,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치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지혜가 있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예상되고 퇴보가 예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보름으로 가는 보름동안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선명해지고, 원둘레는 늘어나고, 빛은 강해지고, 높이와 둘레가 늘어나는 것과 같 같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치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지혜가 있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예상되고 퇴보가 예상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믿음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원한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바람이 적은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좋은 친구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하고, 사리뿟따여,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향상을 뜻한다.”라고.

 

dutiyanaḷakapānasuttaṃ (AN 10.68-날라까빠나 경2)
68. 한 때에 세존께서는 날라까빠나에서 빨라사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포살일에 비구 대중에 둘러싸여 앉아 계셨다. 세존께서는 밤이 늦도록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어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으며, 비구 대중이 흔들림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을 둘러보신 뒤 사리뿟따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비구들은 해태와 혼침이 없구나. 사리뿟따여, 그대가 이런 비구들에게 법문을 들려주어라. 나는 등이 아파서 누워야겠다.”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큰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만들게 하신 뒤 발을 포개고,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일어남의 인식(일어난 시간)에 마음을 기우리시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으로 향하도록 하여 사자처럼 누우셨다.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누구든지, 도반들이여,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  유익
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호지함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뜻을 숙고함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의 닦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게으른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예상되고 향상이 예상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그믐으로 가는 보름동안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희미해지고, 원형이 줄어들고, 빛은 약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줄어듭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호지함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뜻을 숙고함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의 닦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게으른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예상되고 향상이 예상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도반들이여,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호지함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뜻을 숙고함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의 닦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게으르지 않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예상되고 퇴보가 예상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보름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선명해지고 원둘레는 늘어나고, 빛은 강해지고, 높이와 둘레가 늘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호지함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뜻을 숙고함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의 닦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게으르지 않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예상되고 퇴보가 예상되지 않습니다."라고.

 

사리뿟따 존자가 이렇게 비구들에게 말한 후 세존께서 일어나셔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뿟따여. 누구든지, 사리뿟따여,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호지함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뜻을 숙고함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의 닦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게으른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예상되고 향상이 예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그믐으로 가는 보름동안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희미해지고, 원형이 줄어들고, 빛은 약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줄어듭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호지함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뜻을 숙고함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의 닦음이 없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게으른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예상되고 향상이 예상되지 않는다. 

 

누구든지, 사리뿟따여,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호지함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뜻을 숙고함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의 닦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게으르지 않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예상되고 퇴보가 예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보름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선명해지고 원둘레는 늘어나고, 빛은 강해지고, 높이와 둘레가 늘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노력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호지함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뜻을 숙고함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의 닦음이 있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게으르지 않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예상되고 퇴보가 예상되지 않는다."라고."

 

paṭhamakathāvatthusuttaṃ (AN 10.69-토론의 주제 경1)
69.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많은 비구들이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집회소에 함께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하챦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즉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 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거리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에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셔서 집회소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여기서 저희들은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집회소에 함께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하챦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즉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 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거리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비구들이여,  믿음을 가지고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여러 가지 하챦은 이야기를 하면서 머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즉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 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거리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들이다.

 

비구들이여, 열 가지 이야기의 주제가 있다. 무엇이 열인가?

바라는 것이 적음(소욕.少慾)에 대한 이야기, 만족(지족.知足)에 대한 이야기, 홀로 머묾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류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 열심히 정진함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이야기의 주제가 있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러한 열 가지 이야기의 주제에 대한 대화를 한다면, 그대들의 광명으로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의 광명도 능가할 것인데, 외도 유행승들의 광명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dutiyakathāvatthusuttaṃ (AN 10.70-토론의 주제 경2)
70.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많은 비구들이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집회소에 함께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하챦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즉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 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거리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칭송받을 이유가 있다. 어떤 열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스스로 바라는 것이 적으면서, 비구들에게 바라는 것이 적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비구가 바라는 것이 적으면서 비구들에게도 바라는 것이 적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만족하면서, 비구들에게 만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
비구가 만족하면서 비구들에게도 만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홀로 머물면서, 비구들에게 홀로 머묾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비구가 홀로 머물면서, 비구들에게도 홀로 머묾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으면서, 비구들에게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비구가 [재가자들과] 교류하지 않으면서, 비구들에게도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열심히 정진하면서, 비구들에게 열심히 정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비구가 열심히 정진하면서, 비구들에게도 열심히 정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계를 갖추면서, 비구들에게 계를 갖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비구가 계를 갖추면서, 비구들에게도 계의 갖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삼매를 증득하고, 비구들에게 삼매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
비구가 삼매를 증득하고, 비구들에게도 삼매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지혜를 갖추면서, 비구들에게 지혜의 갖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
비구가 지혜를 갖추면서, 비구들에게도 지혜의 갖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해탈을 실현하고, 비구들에게 해탈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비구가 해탈을 실현하고, 비구들에게도 해탈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스스로 해탈지견을 실현하, 비구들에게 해탈지견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비구가 해탈지견을 실현하고, 비구들에게도 해탈지견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이다.'라고 칭송받을 이유이다."

 


제7장 쌍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