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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 모음 - 8. 원함(바람) 품(Ākaṅkha-vagga. A10.71-80)

실론섬 2014. 9. 5. 15:06

제8장 원함(바람) 품 Ākaṅkha-vagga(AN 10.71-80)

 

ākaṅkhasuttaṃ (AN 10.71-원함 경)

71.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계를 갖추고, 빠띠목카(계목)를 갖추어 머물러야 한다.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동료 수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그들의 마음에 들고, 존중받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게 되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잘 사용하도록 해 준 그 재가자들에게 큰 결실과 큰 공덕이 있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자애로운 마음으로 나를 기억해 준 친지와 혈육인 죽은 이들, 돌아가신 분들에게 큰 결실과 큰 공덕이 있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의복이나 탁발음식이나 거처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그것으로 만족하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내가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을 감내하기를,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에 닿음고,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과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고통스럽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몸에 생겨난 느낌들을 감내하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내가 싫어함과 좋아함을 극복하기를, 싫어함과 좋아함이 나를 속박하지 않기를, 싫어함이 일어나는대로 이를 극복하고 머물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내가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를,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속박하지 않기를,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나는대로 이를 극복하고 머물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그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얻고 원하는 대로 얻고 원하는 만큼 얻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하여 머물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으며,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빈 장소에 머무는데 전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계를 갖추고, 빠띠목카(계목)를 갖추어서 머물러야 한다. 빠띠목카를 단속하면서,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닦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kaṇṭakasuttaṃ (AN 10.72-가시 경)
72.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에서 잘 알려진 장로 비구들과 함께 머물고 계셨다. 그들은 짤라
존자, 우빠짤라 존자, 꾹꾸따 존자, 깔림바 존자, 니까따 존자, 까띳사하 존자와 다른 잘 알려진 장로 비구들이었다.

 

그 무렵에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멋진 마차들을 타고 앞을 다투어 시끄럽게 떠들면서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 큰 숲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 존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멋진 마차들을 타고 앞을 다투어 시끄럽게 떠들면서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서 큰 숲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시끄러운 소음은 선정을 방해하는 가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고싱가살라 숲으로 가야겠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음에서 자유롭고 군중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래서 비구 장로들은 고싱가살라 숲으로 갔다. 거기서 그 존자들은 그들은 소음에서 자유롭고 대중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렀다.  

 

그때 뾰족지붕 강당에 머무시던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짤라는 어디에 있는가? 우빠짤라, 꾹꾸다, 깔림바, 니까따, 까띳사하는 어디에 앴는가? 비구들이여, 장로 비구들은 어디에 갔는가?”라고. 

“여기, 세존이시여, 그 존자들은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멋진 마차를 타고 앞을 다투어 시끄럽게 떠들면서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서 큰 숲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소리는 선정을 방해하는 가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고싱가살라 숲으로 가야겠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음에서 자유롭고 군중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고싱가살라 숲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세존이시여, 그 존자들은 소음에서 자유롭고 대중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고 있습니다.”라고.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 큰 제자들처럼 바르게 말하는 자들은 말할 것이다. 나에 의해 말해진대로 ‘소음은 선정을 방해하는 가시'라고. 비구들이여, 열 가지 이런 가시가 있다. 어떤 열 가지인가?

조용하게 머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 무리지어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가시다. 부정의 표상[不淨相]을 닦는 자에게 아름다운 표상에 몰두하는 것은 가시다.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는 자에게 공연등을 관람하는 것은 가시다. 청정범행을 닦는 자에게 여인을 접근하는 것은 가시다. 초선에 든 자에게 소음(소리)은 가시다. 제2선에 든 자에게 일으킨 생각(거친 사유)과 지속적인 고찰(미세한 사유)은 가시다. 제3선에 든 자에게 희열(기쁨)은 가시다. 제4선에 든 자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은 가시다. 상수멸을 증득한 자에게 인식과 느낌은 가시다. 탐욕은 가시이고, 성냄은 가시이고, 어리석음은 가시다. 비구들이여, 가시 없이 머물러라. 비구들이여, 가시에서 벗어나 머물러라. 비구들이여, 가시없이 가시에서 벗어나 머물러라. 비구들이여, 아라한들은 가시가 없다. 아라한들은 가시에서 벗어났다. 아라한들은 가시가 없고 가시에서 벗어났다.” 

 

iṭṭhadhammasuttaṃ (AN 10.73-원하는 것 경)
73. "비구들이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이런 열 가지 법이 있다. 어떤 열 가지인가?
재물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용모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건강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계행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범행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선한 친구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많이 배움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지혜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법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천상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열 가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법들에게 열 가지 법은 장애다. 
게으름과 무기력함은 재물에게 장애다. 
치장하지 않고 장식하지 않음은 용모에게 장애다. 적절하지 못한 행위는 건강에게 장애다. 나쁜 친구를 사귐은 계들에게 장애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않음은 범행에게 장애다. 거짓말은 선한 친구에게 장애다. 닦고 익히지 않는 것은 많이 배움에 장애다. 

듣고자 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음은 지혜에게 장애다. 실천하지 않고 숙고하지 않음은 법에게 장애다. 삿된 닦음은 천상에게 장애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법들에게 열 가지 법은 장애다.

 

이런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법들에게 열 가지 법은 자양분이다.
게으르지 않고 근면함은 재물을 위한 자양분이다. 
치장하고 장식하는 것은 용모를 위한 자양분이다. 적절한 행위는 건강을 위한 자양분이다. 좋은 친구를 사귐은 계들을 위한 자양분이다. 감각기능의 단속은 범행을 위한 자양분이다. 참된 말은 선한 친구들 위한 자양분이다. 닦고 익히는 것은 많이 배움을 위한 자양분이다. 듣고자 하고 질문하는 것은 지혜를 위한 자양분이다. 실천하고 숙고하는 것은 법들을 위한 자양분이다. 바른 닦음은 천상을 위한 자양분이다.비구들이여, 이런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법들에게 이런 열 가지 법은 자양분이다.”

 

vaḍḍhisuttaṃ (AN 10.74-성장 경)
74. “비구들이여, 열 가지 성장으로 성장하는 성스러운 제자는 성스러운 성장으로 성장하고, 핵심을 얻고, 몸의 뛰어남을 얻는다. 어떤 열 가지인가?
땅의 크기가 성장하고,
재물과 곡식이 성장하고, 아들과 아내가 성장하고, 하인과 일꾼들이 성장하고, 가축들이 성장하고, 믿음이 성장하고, 계가 성장하고, 배움이 성장하고, 보시가 성장하고, 지혜가 성장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성장으로 성장하는 성스러운 제자는 성스러운 성장으로 성장하고, 핵심을 얻고, 몸의 뛰어남을 얻는다."

 

'여기서 재산과 곡식 그리고 자식과 아내와

가축들이 성장하는 사람

재물과 명성을 가진 그를

친척들과 친구 그리고 왕들이 존경한다.

 

여기서 믿음과 계 그리고 배움과 보시와

지혜가 함께 성장하는 사람
그런 고결하고 현명한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양면으로 성장한다.'

 

migasālāsuttaṃ (AN 10.75-미가살라 경)

75. 한 때애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애 았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아침에 옷 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미가살라 청신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미가살라 청신녀가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가서 아난다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미가살라 청신녀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범행을 닦은 자와 범행을 닦지 않은 자, 둘 모두 다음 생에 같은 곳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저의 아버지 뿌라나는 성행위의 저속함을 여의고 따로 떨어져 범행을 닦으면서 사셨습니다. 그가 임종하자 세존께서는 일래자가 되어서 도솔천의 몸을 받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저의 삼촌 이시닷따는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여 범행을 닦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가 임종하지 세존께서는 그도 일래자가 되어서 도솔천의 몸을 받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범행을 닦은 자와 범행을 닦지 않은 자 둘 모두 다음 생에 같은 곳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세존께서 설하신 이 법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누이여, 이렇게 이것을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미가살라 청신녀의 집에서 탁발음식을 받아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왔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침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미가살라 청신녀의 집으로 갔습니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미가살라 청신녀가 제게 다가와서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습니다. 한 곁에 앉아서 미가살라 청신녀는 제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범행을 닦은 자와 범행을 닦지 않은 자 둘 모두 다음 생에 같은 곳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저의 아버지 뿌라나는 성행위의 저속함을 여의고 따로 떨어져 범행을 닦으면서 사셨습니다. 그가 임종하자 세존께서는 그가 일래자가 되어 도솔천의 몸을 받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저의 삼촌 이시닷따는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여 범행을 닦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가 임종하자 세존께서는 그도 일래자가 되어서 도솔천의 몸을 받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범행을 닦은 자와 범행을 닦지 않은 자 둘 모두 다음 생에 같은 곳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세존께서 설하신 이 법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저는 미가살라 청신녀에게 ‘누이여, 이렇게 이것을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난다여, 어리석고, 총명하지 못하고, 여자의 몸을 가져 여자의 인식을 가진 미가살라 청신녀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갈 곳에 대한 앎을 가졌겠는가? 아난다여, 세상에는 열 가지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계를 경시한다. 계(戒)의 경시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지 않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지 않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퇴보로 향하게 되고 성취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퇴보로 갈 뿐 성취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계를 경시한다. 그리고 계(戒)의 경시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성취로 향하게 되고 퇴보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성취로 갈 뿐 퇴보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서 사람을 평가하는 자들이 말한다. ‘이 사람도 이러한 법들을 가졌고, 저 사람도 이러한 법을 가졌다. 그런데 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저열하고 한 사람은 수승하단 말인가?’라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


아난다여 여기 이 사람은 계를 경시한다. 그리고 계의 경시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리고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을 얻는다. 아난다여, 이 사람은 앞의 사람보다 더 뛰어나고 수승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사람은 법의 흐름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의 차이를 여래 말고 누가 알겠는가? 아난다여, 그러므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는 파멸한다. 아난다여, 나 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을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계를 중시한다. 그리고 계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지 않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지 않고, 견해로 첲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퇴보로 향하게 되고 성취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퇴보로 갈 뿐 성취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계를 중시한다. 그리고 계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리고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첲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성취로 향하게 되고 퇴보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성취로 갈 뿐 퇴보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서 사람을 평가하는 자들이 말한다.
‘이 사람도 이러한 법들을 가졌고, 저 사람도 이러한 법을 가졌다. 그런데 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저열하고 한 사람은 수승하단 말인가?’라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  아난다여, 여기 이 사람은 계를 중시한다. 그리고 계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리고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처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아난다여, 이 사람은 앞의 사람보다 더 뛰어나고 수승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사람은 법의 흐름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의 차이를 여래 말고 누가 알겠는가? 아난다여, 그러므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는 파멸한다. 아난다여, 나 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을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강한 탐욕(貪.탐)을 가졌다. 그리고 탐욕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지 않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지 않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퇴보로 향하게 되고 성취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퇴보로 갈 뿐 성취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강한 탐욕을 가졌다. 그리고 탐욕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성취로 향하게 되고 퇴보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성취로 갈 뿐 퇴보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서 사람을 평가하는 자들이 말한다. ‘이 사람도 이러한 법들을 가졌고, 저 사람도 이러한 법을 가졌다. 그런데 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저열하고 한 사람은 수승하단 말인가?’라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 아난다여, 여기 이 사람은 강한 탐욕을 가졌다. 그리고 탐욕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아난다여, 이 사람은 앞의 사람보다 더 뛰어나고 수승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사람은 법의 흐름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의 차이를 여래 말고 누가 알겠는가? 아난다여, 그러므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는 파멸한다. 아난다여, 나 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을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화가 있다. 그리고 화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지 않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지 않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퇴보로 향하게 되고 성취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퇴보로 갈 뿐 성취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화가 있다. 그리고 화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성취로 향하게 되고 퇴보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성취로 갈 뿐 퇴보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서 사람을 평가하는 자들이 말한다. ‘이 사람도 이러한 법들을 가졌고, 저 사람도 이러한 법을 가졌다. 그런데 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저열하고 한 사람은 수승하단 말인가?’라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 아난다여, 여기 이 사람은 화가 있다. 그리고 화가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아난다여, 이 사람은 앞의 사람보다 더 뛰어나고 수승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사람은 법의 흐름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의 차이를 여래 말고 누가 알겠는가? 아난다여, 그러므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는 파멸한다. 아난다여, 나 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을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들뜸이 있다. 그리고 들뜸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지 않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지 않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퇴보로 향하게 되고 성취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퇴보로 갈 뿐 성취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들뜸이 있다. 그리고 들뜸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성취로 향하게 되고 퇴보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성취로 갈 뿐 퇴보로 가는 자가 아니다.

 

아난다여, 여기서 사람을 평가하는 자들이 말한다. ‘이 사람도 이러한 법들을 가졌고, 저 사람도 이러한 법을 가졌다. 그런데 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저열하고 한 사람은 수승하단 말인가?’라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 


아난다여, 여기 이 사람은 들뜸이 있다. 그리고 들뜸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자리인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는 들어야 할 법도 듣고, 정진을 힘써 해야 할 바도 하고, 견해로 철저히 알아야 할 것도 철저히 알고, 일시적인 해탈도 얻는다. 아난다여, 이 사람은 앞의 사람보다 더 뛰어나고 수승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사람은 법의 흐름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의 차이를 여래 말고 누가 알겠는가? 아난다여, 그러므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는 파멸한다. 아난다여, 나 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맡을 수 있다.

 

아난다여, 어리석고, 총명하지 못하고, 여자의 몸을 가져 여자의 인식을 가진 미가살라 청신녀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갈 곳에 대한 앎을 가졌겠는가? 아난다여, 세상에는 이러한 열 가지 사람들이 있다. 아난다여, 만약 뿌라나가 계를 갖춘 것처럼 이시닷따도 계를 갖추었다면, 여기서 뿌라나의 태어날 곳(行處)은 이시닷따가 아닌 다른 이의 태어날 곳과 같았을 것이다. 아난다여, 만약 이시닷따가 지혜를 갖춘 것처럼 뿌라나도 지혜를 갖추었다면, 여기서 이시닷따의 태어날 곳은 뿌라나가 아닌 다른 이의 태어날 곳과 같았을 것이다. 아난다여, 이처럼 이 두 사람은 각각 하나의 구성요소가 결핍되어 있었다."

 

tayodhammasuttaṃ (AN 10.76-세 가지 법 경)
76.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여래∙아라한∙정등각은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래에 의해 선언된 법과 율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여래∙아라한∙정등각은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래에 의해 선언된 법과 율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래∙아라한∙정등각이 세상에 출현하고 여래에 의해 선언된 법과 율도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태어남도 제거할 수 없고, 늙음도 제거할 수 없고, 죽음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을 제거하지 못하고, 성냄을 제거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태어남도 제거할 수 없고, 늙음도 제거할 수 없고, 죽음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탐욕도 제거할 수 없고, 성냄도 제거할 수 없고, 어리석음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유신견.有身見]를 제거하지 못하고, 의심을 제거하지 못하고,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계금취.戒禁取.삿된 계에 대한 고집]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탐욕도 제거할 수 없고, 성냄도 제거할 수 없고, 어리석음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불변하는 나가 존재한다는 견해도 제거할 수 없고, 의심도 제거할 수 없고,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을 제거하지 못하고, 삿된 닦음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제거하지 못하고, 정신적 태만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불변하는 나가 존재하는 견해도 제거할 수 없고, 의심도 제거할 수 없고,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도 제거할 수 없고, 삿된 닦음을 받들어 행하는 것도 제거할 수 없고, 정신적 태만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마음 챙김을 놓아버림을 버리지 못하고, 알아 차리지 못함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의 산란함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지혜 없이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도 제거할 수 없고, 삿된 닦음을 받들어 행하는 것도 제거할 수 없고, 정신적 태만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마음 챙김을 놓아버림도 제거할 수 없고, 알아차리지 못함도 제거할 수 없고, 마음의 산란함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성자들을 친견하려 하지 않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듣고자 하지 않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마음 챙김을 놓아버림도 제거할 수 없고, 알아차리지 못함도 제거할 수 없고, 마음의 산란함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성자들을 친견하려 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성스러운 법을 듣고자 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비난하는 마음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들뜸을 제거하지 못하고, 단속하지 않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계행이 나쁨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성자들을 친견하려 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성스러운 법을 듣고자 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비난하는 마음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들뜸도 제거할 수 없고, 단속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계행이 나쁨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믿음 없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인색함을 제거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들뜸도 제거할 수 없고, 단속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계행이 나쁨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믿음 없음도 제거할 수 없고, 인색함도 제거할 수 없고, 게으름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부주의함을 제거하지 못하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나쁜 친구와 사귐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믿음 없음도 제거할 수 없고, 인색함도 제거할 수 없고, 게으름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존경하지 않음을 제거할 수 없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나쁜 친구와 사귐도 제거할 수 없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음를 제거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방일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존경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나쁜 친구과 어울림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방일하다. 그가 방일하기 때문에 존경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나쁜 친구와 어울림도 제거할 수 없다. 나쁜 친구와 어울리면 믿음 없음도 제거할 수 없고, 인색함도 제거할 수 없고, 게으름도 제거할 수 없다. 게으르면 들뜸도 제거할 수 없고, 단속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계행이 나쁨도 제거할 수 없다. 계행이 나쁘면 성자들을 친견하려 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성스러운 법을 듣고자 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없고, 비난하는 마음도 제거할 수 없다. 비난하는 마음을 가지면 마음 챙김을 놓아버림도 제거할 수 없고, 알아차리지 못함도 제거할 수 없고, 마음의 산란함도 제거할 수 없다. 마음이 산란하면 이치에 맞지 않는 마음의 기울임도 제거할 수 없고, 삿된 닦음을 받들어 행하는 것도 제거할 수 없고, 정신적 태만도 제거할 수 없다. 정신이 태만하면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도 제거할 수 없고, 의심도 제거할 수 없고,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도 제거할 수 없다. 의심하면 탐욕도 제거할 수 없고, 성냄도 제거할 수 없고, 어리석음도 제거할 수 없다. 탐욕을 제거하지 못하고, 성냄을 제거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태어남도 제거할 수 없고, 늙음도 제거할 수 없고, 죽음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태어남도 제거할 수 있고, 늙음도 제거할 수 있고, 죽음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을 제거하고, 성냄을 제거하고,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태어남도 제거할 수 있고, 늙음도 제거할 수 있고, 죽음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탐욕도 제거할 수 있고, 성냄도 제거할 수 있고, 어리석음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불변하는 나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제거하고, 의심을 제거하고,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탐욕도 제거할 수 있고, 성냄도 제거할 수 있고, 어리석음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불변하는 나가 존재한다는 견해도 제거할 수 있고, 의심도 제거할 수 있고,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비구들이여, 지혜 없이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을 제거하고, 나쁜 길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제거하고, 정신적 태만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도 제거할 수 있고, 의심도 제거할 수 있고,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지혜 없이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도 제거할 수 있고, 삿된닦음을 받들어 행하는 것도 제거할 수 있고, 정신적 태만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마음 챙김을 놓아버림을 제거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을 제거하고, 마음의 산란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지혜 없이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도 제거할 수 있고, 삿된 닦음을 받들어 행하는 것도 제거할 수 있고, 정신적 태만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마음 챙김을 놓아버림도 제거할 수 있고, 알아차리지 못함도 제거할 수 있고, 마음의 산란함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성자들을 친견하려 하지 않음을 제거하고, 성스러운 법들 듣고자 하지 않음을 제거하고, 비난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마음 챙김을 놓아버림도 제거할 수 있고, 알아차리지 못함도 제거할 수 있고, 마음의 산란함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성자들을 친견하려 하지 않음을 제거할 수 있고, 성스러운 법을 듣고자 하지 않음을 제거할 수 있고, 비난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들뜸을 제거하고, 단속하지 않음을 제거하고, 계행이 나쁨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성자들을 친견하려 하지 않음을 제거할 수 있고, 성스러운 법을 듣고자 하지 않음을 제거할 수 있고, 비난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들 제거하면 들뜸도 제거할 수 있고, 단속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있고, 계행이 나쁨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믿음 없음을 제거하고, 인색함을 제거하고, 게으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들뜸을 제거할 수 있고, 단속하지 않음을 제거할 수 있고, 계행이 나쁨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믿음 없음도 제거할 수 있고, 인색함도 제거할 수 있고, 게으름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부주의함을 제거하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제거하고, 나쁜 친구와 어울림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믿음 없음을 제거할 수 있고, 인색함을 제거할 수 있고, 게으름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존경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있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음도 제거할 수 있고, 나쁜 친구와 사귐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음을 제거하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음을 제거하고, 방일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면 경시함을 제거할 수 있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제거할 수 있고, 나쁜 친구와 어울림을 제거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방일하지 않다. 그가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존경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있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음도 제거할 수 있고, 나쁜 친구와 사귐도 제거할 수 있다. 좋은 친구와 사귀면 믿음 없음도 제거할 수 있고, 인색함도 제거할 수 있고, 게으름도 제거할 수 있다. 게으르지 않으면 들뜸도 제거할 수 있고, 단속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있고, 계행이 나쁨도 제거할 수 있다. 계를 잘 지키면 성자들을 친견하려 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있고, 성스러운 법을 듣고자 하지 않음도 제거할 수 있고, 비난하는 마음도 제거할 수 있다. 비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면 마음 챙김을 놓아버림도 제거할 수 있고, 알아차리지 못함도 제거할 수 있고, 마음의 산란함도 제거할 수 있다.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지혜 없이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도 제거할 수 있고, 삿된 닦음을 받들어 행하는 것도 제거할 수 있고, 정신적 태만도 제거할 수 있다. 정신이 태만하지 않으면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도 제거할 수 있고, 의심도 제거할 수 있고,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도 제거할 수 있다. 의심이 없으면 탐욕도 제거할 수 있고, 성냄도 제거할 수 있고, 어리석음도 제거할 수 있다. 탐욕을 제거하고, 성냄을 제거하고, 어리석음을 제거하면 태어남도 제거하고, 늙음도 제거하고, 죽음도 제거할 수 있다.” 

 

*본경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이라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12연기로 정형화하여 설명하는 12각지와는 다르게 설명되어 있다. 첫번째는 12연기의 순관(유전문)과 같은 방법으로 관찰하고, 두번째 방법은 12연기의 역관(환멸문)과 같은 방법으로 관찰하고 있다. 본 경은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특이한 경전이다.

 

kākasuttam (AN 10.77-까마귀 경)
77. “비구들이여, 까마귀는 열 가지 나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열인가?

공격적이고, 뻔뻔하고, 갈애를 가지고, 탐욕스럽고, 사납고, 연민의 정이 없고, 힘이 없고, 범속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축적한다.  

비구들이여, 까마귀는 이러한 열 가지 나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나쁜 비구는 열 가지 나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열인가?
공격적이고, 뻔뻔하고, 갈애를 가지고, 탐욕스럽고, 사납고, 연민의 정이 없고, 힘이 없고, 범속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축적한다. 
비구들이여, 나쁜 비구는 이러한 열 가지 나쁜 속성을 가지고 있다.”

 

nigaṇṭhasuttaṃ (AN 10.78-니간타 경)

78.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열 가지 나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열인가?”

니간타들은 믿음이 없다. 니간타들은 계행이 나쁘다. 니간타들은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다. 니간타들은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다. 니간타들은 참된 사람과 사귀지 않는다. 니간타들은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난한다. 니간타들은 자기들의 견해를 고수(固守)하고 그것을 굳게 움켜쥐고 놓아버리지 않는다. 니간타들은 계략을 꾸민다. 니간타들은 삿된 바램을 가졌다. 니간타들은 삿된 견해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이러한 열 가지 나쁜 속성을 가지고 있다.”

 

Āghātavatthusuttam (AN 10.79-원한의 원인 경) 

 79. “비구들이여, 열 가지 원한의 원인이 있다. 무엇이 열인가?

‘이 사람이 내게 손해를 끼쳤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게 손해를 끼친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었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라는 생각에 원한이 생긴다. 그리고 이유 없이 화를 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원한의 원인이 있다.”

Āghātapativinayasuttam (AN 10.80-원한을 다스림 경)

80. “비구들이여, 열 가지 원한을 다스림이 있다. 무엇이 열인가?

‘이 사람이 내게 손해를 끼쳤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이 사람이 내게 손해를 끼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이 사람이 내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이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원한을 다스린다. 그리고 이유 없이 화를 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원한을 다스림이 있다.”



제8장 원함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