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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 모음 - 12. 하강의식 품(Paccorohaṇi-vagga. A10.113-122)

실론섬 2014. 9. 6. 19:41

 

제12장 하강의식 품 Paccorohaṇi-vagga (AN 10.113-122)

paṭhamādhammasuttaṃ (AN 10.113-비법 경1)

113. “비구들이여, 비법(非法)과 이익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정법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이익 아님을 알고, 정법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비법과 이익 아님인가?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삿된 행위, 삿된 생계, 삿된 정진, 삿된 마음 챙김, 삿된 삼매, 삿된 지혜, 삿된 해탈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법과 이익 아님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법과 이익인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 바른 지혜, 바른 해탈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법과 이익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법과 이익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정법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이익 아님을 알고,
정법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그렇게 말해진 것이다.”

 

dutiyadhammasuttaṃ (AN 10.114-비법 경 2) 
114.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정법이고, 어떤 것이 비법이며, 어떤 것이 이익되지 않음이고, 어떤 것이 이익이 되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삿된 견해는 비법이고 바른 견해는 정법이다.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사유는 비법이고 바른 사유는 정법이다. 삿된 사유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사유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말은 비법이고 바른 말은 정법이다. 삿된 말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말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행위는 비법이고 바른 행위는 정법이다. 삿된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생계는 비법이고 바른 생계는 정법이다. 삿된 생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생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정진은 비법이고 바른 정진은 법이다. 삿된 정진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정진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마음 챙김은 비법이고 바른 마음 챙김은 정법이다. 삿된 마음 챙김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마음챙김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삼매는 비법이고 바른 삼매는 정법이다. 삿된 삼매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삼매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지혜는 비법이고 바른 지혜는 정법이다. 삿된 지혜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지혜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해탈은 비법이고 바른 해탈은 정법이다. 삿된 해탈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해탈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그렇게 말해진 것이다.”

 

tatiyadhammasuttaṃ (AN 10.115-비법 경3) 
115.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선서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 들어가신지 오래지 않아서 비구들에게 이런 토론이 생겼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우리에게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 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세존께서 이처럼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았는데, 누가 참으로 그 뜻을 상세하게 분석해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그러자 다시 비구들에게 이런 의논이 생겼다. '아난다 존자는 스승께서 칭찬하셨고, 지혜로운 동료 비구들이 존중합니다. 세존께서 간략하게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으신 것을 아난다 존자가 참으로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설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가서 이 뜻을 질문합시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가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대로 그렇게 간직합시다.'라고.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세존께서 들어가신지 오래지 않아서 우리에게 이런 토론이 생겼습니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우리에게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세존께서 이처럼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았는데 누가 참으로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우리들에게 이런 의논이 생겼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스승께서 칭찬하셨고, 지혜로운 동료 비구들이 존중합니다. 세존께서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으신 것을 아난다 존자가 참으로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가서 이 뜻을 질문합시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가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대로 그렇게 호지합시다.’라고. 그러니 아난다 존자는 우리에게 분석해주십시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심재가 필요하고 심재를 찾는 사람이 심재를 찾으로 돌아다니다가, 심재를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뿌리와
줄기를 제쳐놓고는 잔가지와 잎사귀에서 심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도반들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승께서 면전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 세존을 제쳐놓고 제게 그 뜻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그분 세존께서는 알아야 할 것을 아시고, 보아야 할 것을 보시는 분이며, 우리의 눈이 되시고, 지혜가 되시고, 법이 되시고, 으뜸이 되시며, 사성제를 말씀하는 분이시고, 진리를 꿰뚫으시면서 선언하는 분이시고, 뜻을 밝히는 분이시고, 불사(不死)를 주는 분이시며, 법의 주인이시며, 여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때 바로 세존께 다가가서 그 뜻을 여쭈었어야 했습니다. 그때가 바른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세존께서 그대들에게 설명해 주신 대로 잘 간직했어야 했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참으로 그분 세존께서는 알아야 할 것을 아시고, 보아야 할 것을 보시는 분이며, 우리의 눈이 되시고, 지혜가 되시고, 법이 되시고, 으뜸이 되시며, 사성제를 말씀하는 분이시고 진리를 꿰뚫으시면서 선언하는 분이시고, 뜻을 밝히는 분이시고, 불사(不死)를 주는 분이시며, 법의 주인이시며, 여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 바로 세존께 다가가서 그 뜻을 여쭈었어야 했습니다. 그때가 바른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세존께서 우리들에게 설명해주신 대로 잘 호지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난다 존자는 스승께서 칭찬하셨고, 지혜로운 동료 비구들이 존중합니다. 세존께서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지 않으신 것을, 아난다 존자는 참으로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난다 존자는 귀찮다 여기지 마시고 우리에게 분석해주십시오.”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으십시오. 듣고 마음에 잘 새기십시오. 나는 설할 것입니다.”“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비법이고, 어떤 것이 정법이며, 어떤 것이 이익되지 않음이고, 어떤 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까?

 

도반들이여, 삿된 견해는 비법이고 바른 견해는 정법입니다.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사유는 비법이고 바른 견해는 정법입니다. 삿된 사유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사유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말은 비법이고 바른 말은 정법입니다. 삿된 말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말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행위는 비법이고 바른 행위는 정법입니다. 삿된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생계는 비법이고 바른 생계는 정법입니다. 삿된 생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생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정진은 비법이고 바른 정진은 정법입니다. 삿된 정진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정진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마음챙김은 비법이고 바른 마음챙김은 정법입니다. 삿된 마음챙김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마음챙김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삼매는 비법이고 바른 삼매는 정법입니다. 삿된 삼매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삼매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지혜는 비법이고 바른 지혜는 정법입니다. 삿된 지혜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지혜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삿된 해탈은 비법이고 바른 해탈은 정법입니다. 삿된 해탈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입니다. 바른 해탈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세존께서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 이와 같이 그 뜻을 상세하게 압니다. 도반들이여, 그대들이 원한다면 세존께 가십시오. 가서 세존께 이러한 뜻을 아뢰어 세존께서 그대들에게 설명해주시는 대로 간직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비구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세존께서 들어가신지 오래지 않아서 저희들에게 이런 토론이 생겼습니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우리에게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세존께서 이처럼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았는데 누가 참으로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우리들에게 이런 의논이 생겼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스승께서 칭찬하셨고, 지혜로운 동료 비구들이 존중합니다. 세존께서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주시지 않으신 것을 아난다 존자가 참으로 상세하게 그 뜻을 분석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가서 이 뜻을 질문합시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가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대로 그렇게 간직합시다.’라고. 그런 저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찾아갔습니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 뜻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저희들에게 아난다 존자는 이러한 형태와 이러한 단어들과 이러한 문장들로 그 뜻을 잘 분석해주었습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현자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큰 지혜를 가졌다. 만일 그대들이 내게 다가와서 이 뜻을 물었다면 나도 그와 같이 설명했을 것이다. 아난다가 설명한 것이 바로 그 뜻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그것을 잘 간직하라.”

 

ajitasuttam (AN 10.116-아지따 경) 
116. 그 무렵 아지따 유행승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신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지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우리에게는 현자라고 인정하는 동료 유행승이 한 사람 있는데 그는 500개 정도나 되는 마음의 일어남을 압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외도들이 논박을 당하면 그들이 논박을 당했다고 압니다.”
아지따 유행승의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현자가 되는 원인을 기억하는가?”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설해주실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비구들은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를 받들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법답지 못한 말로 법답지 못한 말을 논박하고 비난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법답지 못한 회중을 기쁘게 한다. 
그러면 그 법답지 못한 회중은 ‘오, 참으로 현자로구나. 오, 참으로 현자로구나.’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법답지 못한 말로 법다운 말을 논박하고 비난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법답지 못한 회중을 기쁘게 한다. 그러면 그 법답지 못한 회중은 ‘오, 참으로 현자로구나. 오, 참으로 현자로구나.’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법답지 못한 말로 법다운 말과 법답지 못한 말을 논박하고 비난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법답지 못한 회중을 기쁘게 한다. 그러면 그 법답지 못한 회중은 ‘오, 참으로 현자로구나. 오, 참으로 현자로구나.’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법다운 말로 법답지 못한 말을 논박하고 비난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법다운 회중을 기쁘게 한다. 그러면 법다운 회중은 ‘오, 참으로 현자로구나. 오, 참으로 현자로구나.’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정법이고, 어떤 것이 비법이며, 어떤 것이 이익되지 않음이고, 어떤 것이 이익이 되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삿된 견해는 비법이고 바른 견해는 정법이다.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사유는 비법이고 바른 사유는 정법이다. 삿된 사유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사유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말은 비법이고 바른 말은 정법이다. 삿된 말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말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행위는 비법이고 바른 행위는 정법이다. 삿된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생계는 비법이고 바른 생계는 정법이다. 삿된 생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생계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정진은 비법이고 바른 정진은 법이다. 삿된 정진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정진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마음 챙김은 비법이고 바른 마음 챙김은 정법이다. 삿된 마음 챙김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마음챙김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삼매는 비법이고 바른 삼매는 정법이다. 삿된 삼매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삼매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지혜는 비법이고 바른 지혜는 정법이다. 삿된 지혜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지혜를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삿된 해탈은 비법이고 바른 해탈은 정법이다. 삿된 해탈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비법들이 생겨난다. 이것이 이익되지 않음이다. 바른 해탈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한 정법들은 닦음과 익힘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법과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정법을 알고 이익되지 않음과 이익을 안 뒤에 정법을 따르고 이익에 따른 것을 닦아야 한다.’라고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그렇게 말해진 것이다.”

 

saṅgāravasuttam (AN 10.117-상가라와 경) 
117. 그 무렵 상가라와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상가라와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것이 이 언덕이고, 어떤 것이 저 언덕입니까?”
“바라문이여, 삿된 견해는 이 언덕이고, 바른 견해는 저 언덕입니다. 
삿된 사유는 이 언덕이고, 바른 사유는 저 언덕입니다. 삿된 말은 이 언덕이고, 바른 말은 저 언덕입니다. 삿된 행위는 이 언덕이고, 바른 행위는 저 언덕입니다. 삿된 생계는 이 언덕이고, 바른 생계는 저 언덕입니다. 삿된 정진은 이 언덕이고, 바른 정진은 저 언덕입니다. 삿된 마음 챙김은 이 언덕이고, 바른 마음 챙김은 저 언덕입니다. 삿된 삼매는 이 언덕이고, 바른 삼매는 저 언덕입니다. 삿된 지혜는 이 언덕이고, 바른 지혜는 저 언덕입니다. 삿된 해탈은 이 언덕이고, 바른 해탈은 저 언덕입니다. 바라문이여, 이런 것이 이 언덕이고, 이런 것이 저 언덕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저 언덕에 도달한 자 드물고,

사람들 대부분 이 언덕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법을 따르는 자들에게 법이 바르게 설해질 때

그들은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영역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합니다.

현자는 악한 법을 제거한 뒤 선한 법을 닦아야 합니다.

윤회에서 벗어나 윤회 없음에 이르러 기쁨이 없는

머묾에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무소유가 되어 현자는 마음의 오염원들로부터 자신을

청정하게 합니다. 깨달음의 구성요소들로 바르게 마음을

잘 닦아서 집착함을 놓아버려 집착 없음을 기뻐합니다.

번뇌 다한 빛나는 자들은 세상에서 완전한 평화를 얻습니다.”

 

orimatīrasuttam (AN 10.119-이 언덕 경) 
118.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 언덕과 저 언덕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설해주실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비구들은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를 받들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이 언덕이고, 어떤 것이 저 언덕인가? 

비구들이여, 삿된 견해는 이 언덕이고, 바른 견해는 저 언덕이다. 삿된 사유는 이 언덕이고, 바른 사유는 저 언덕이다. 삿된 말은 이 언덕이고, 바른 말은 저 언덕이다. 삿된 행위는 이 언덕이고, 바른 행위는 저 언덕이다. 삿된 생계는 이 언덕이고, 바른 생계는 저 언덕이다. 삿된 정진은 이 언덕이고, 바른 정진은 저 언덕이다. 삿된 마음 챙김은 이 언덕이고, 바른 마음 챙김은 저 언덕이다. 삿된 삼매는 이 언덕이고, 바른 삼매는 저 언덕이다. 삿된 지혜는 이 언덕이고, 바른 지혜는 저 언덕이다. 삿된 해탈은 이 언덕이고, 바른 해탈은 저 언덕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이 이 언덕이고, 이런 것이 저 언덕이다.

 

사람들 가운데 저 언덕에 도달한 자 드물고, 사람들 대부분 이 언덕에서 방황하고 있다. 법을 따르는 자들에게 법이 바르게 설해질 때 그들은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영역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한다. 현자는 악한 법을 제거한 뒤 선한 법을 닦아야 한다. 윤회에서 벗어나 윤회 없음에 이르러 기쁨이 없는 머묾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무소유가 되어 현자는 마음의 오염원들로부터 자신을 청정하게 한다. 깨달음의 구성요소들로 바르게 마음을 잘 닦아서 집착함을 놓아버려 집착 없음을 기뻐한다. 번뇌 다한 빛나는 자들은 세상에서 완전한 평화를 얻는다.”

 

pathamapaccorohaṇīsuttam (AN 10.119-하강의식 경1) 
119. 그 무렵에 자눗소니 바라문은 포살일에 머리를 감고 아마포로 만든 새 옷 한 벌을 입고 젖은 꾸사 풀을 한 움큼 쥐고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세존께서는 자눗소니 바라문이 포살일에 머리를 감고 아마포로 만든 새 옷 한 벌을 입고 젖은 꾸사 풀을 한 움큼 쥐고 멀지 않은 곳에서 한 곁에 서있는 것을 보시고 자눗소니 바라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어찌하여 그대는 포살일에 머리를 감고 아마포로 만든 새 옷 한 벌을 입고 젖은 꾸사 풀을 한 움큼 쥐고 한 곁에 서 있습니까? 오늘 

바라문의 가문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오늘은 바라문 가문에서 하강의식을 하는 날입니다.”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은 어떻게 하강의식을 행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바라문들은 포살일에 머리를 감고 아마포로 만든 새 옷 한 벌을 입고 젖은 소똥을 땅에 바르고 푸른 꾸사 풀을 그 위에 펴고 그 가장자리와 불을 안치한 곳 사이에 잠자리를 만듭니다. 그들은 그 밤에 세 번 일어나서 합장하고 ‘저희는 당신께로 하강합니다. 저희는 당신께로 하강합니다.’라고 하면서 불에 예배합니다. 그리고 많은 생 버터와 정제된 버터로 불에 헌공합니다. 그 밤이 지나면 딱딱하고 부드러운 맛있는 음식으로 바라문들에게 공양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하강의식을 행합니다.”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의 하강의식과 성스러운 율에서의 하강의식은 다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성스러운 율에서는 하강의식을 어떻게 합니까? 성스러운 율에서 행하는 하강의식에 대해서 제게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그것을 들어십시오. 듣고 마음에 잘 새깁시오. 나는 설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하강의식 : 죄악을 누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견해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견해를 제거하고, 삿된 견해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사유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사유를 제거하고, 삿된 사유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말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말을 제거하고, 삿된 말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행위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행위를 제거하고, 삿된 행위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생계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생계를 제거하고, 삿된 생계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정진으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정진을 제거하고, 삿된 정진으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마음 챙김으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마음 챙김을 제거하고, 삿된 마음 챙김으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삼매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삼매를 제거하고, 삿된 삼매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지혜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지혜를 제거하고, 삿된 지혜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삿된 해탈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해탈을 제거하고, 삿된 해탈로부터 하강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성스러운 율에서의 하강의식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의 하강의식과 성스러운 율에서의 하강의식은 다릅니다. 바라문들의 하강의식은 성스러운 율에서의 하강의식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dutiyapaccorohaṇīsuttam (AN 10.120-하강의식 경2) 
120.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성스러운 하강의식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설해주실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비구들은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를 받들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견해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견해를 제거하고, 삿된 견해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사유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사유를 제거하고, 삿된 사유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말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말을 제거하고, 삿된 말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행위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행위를 제거하고, 삿된 행위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생계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생계를 제거하고, 삿된 생계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정진으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정진을 제거하고, 삿된 정진으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마음 챙김으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마음 챙김을 제거하고, 삿된 마음 챙김으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삼매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삼매를 제거하고, 삿된 삼매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지혜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지혜를 제거하고, 삿된 지혜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삿된 해탈로부터 금생과 내생에 악한 과보가 생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삿된 해탈을 제거하고, 삿된 해탈로부터 하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러운 하강의식이다.”

 

pubbaṅgamasuttam (AN 10.121-앞장섬 경) 
121. “비구들이여, 태양이 떠오를 때 여명이 앞장서고 여명이 전조가 되듯이, 선한 법들의 경우 바른 견해가 앞장서고 바른 견해가 전조가 된다.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바른 사유가 생긴다. 바른 사유를 하는 자에게 바른 말이 생긴다. 바른 말을 하는 자에게 바른 행위가 생긴다. 바른 행위를 하는 자에게 바른 생계가 생긴다. 바른 생계를 가진 자에게 바른 정진이 생긴다. 바른 정진을 하는 자에게 바른 마음 챙김이 생긴다. 바른 마음 챙김을 가진 자에게 바른 삼매가 생긴다. 바른 삼매를 가진 자에게 바른 지혜가 생긴다. 바른 지혜를 가진 자에게 바른 해탈이 생긴다.”

 

āsavakkhayasuttaṃ (AN 10.122-번뇌의 부서짐 경)
122.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익힌(행한) 열 가지 법들은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끈다. 어떤 열인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 바른 지혜, 바른 해탈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익힌 이런 열 가지 법들은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끈다.”

 


제12장 하강의식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