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lada Malgawa(Temple of the Tooth)
스리랑카의 최대종족인 신할라 민족은 기원전에 섬 북쪽의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에 최초의 도시를 세운 이후 데바남피야 팃사(Devanampiya Tissa)의 왕이 기원전 247년 6월 보름날 미힌탈레(Mihintale)라는 곳에서 아쇼카 왕의 아들이었던 마힌다(Mahida) 장로를 만나 불교에 귀의함으로써 이 섬나라는 불교가 꽃피우게 된다.
하지만 신할라 왕조는 남인도로부터 끝임없는 침략을 받아서 승리와 패퇴를 거듭하면서 아누라다푸라에서 후퇴를 하여 폴론나루와. 담바데니야. 야퍄후와. 쿠루네갈라. 감포라를 거쳐서 1474년에 캔디(Kandy)라는 곳으로 옮겨 정착을 한다. 그런후 근대에 이르러 1815년 영국에 의하여 300년간 지속된 캔디왕국은 마침내 멸망을 한다. 신할라 왕조 2000년의 역사의 끝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캔디에는 두 가지 유명한 것이 있다. 하나는 바로 붓다의 치아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치사(Temple of the Tooth)이며 또 다른 하나는 아시아 최대의 식물원인 페라데니야 식물원(Peradeniya Botanical Garden)이다.
붓다의 치아 사리를 모신 불치사
대반열반경에 보면 붓다를 화장후에 사리를 나누어 가졌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네 개의 치아 가운데 하나는 삼십삼천(도리천)에 공양 올리고, 하나는 간다라의 도시에서 모시고 있다. 깔링가 왕이 하나를 모셨으며, 남은 하나는 나가 왕이 각각 나누어 모시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오릿사 주(지금의 오릿사 주)깔링가 왕이 모셨던 치아 사리는 4세기경에 오릿사주의 왕자였던 Dantha(단타)가 Hemamala(헤마말라) 공주와 함께 스리랑카로 오면서 공주의 머리카락 속에 숨겨서 가져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치아사리는 당시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 봉납되어 안치되었으나 이후 수도가 옮겨지면서 불치도 함께 이동했으며 마침내 1590년 캔디의 불치사에 안치가 된 것이다.
이러한 불치는 신할라 왕조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국가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왕조시대에는 왕권의 상징이었으며 현대에는 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불치사는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자유롭게 개방되고 있으며 하루에 세 번씩 올려지는 푸자(공양)때에 불치가 모셔져 있는 방의 문이 열리며 수많은 참배객들이 이 시간을 기다린다. 물론 불치가 모셔져 있는 방의 문이 열리긴 하지만 불치는 보석함속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의 불치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보통은 5-10년 정도에 한번씩 불치를 일반인들에게 1-2주 정도 개방을 하는데 이때는 수백만명의 참배객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또한 국가에 중대한 사건이나 재난이 있을 때에도 불치를 개방하여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오랫만에 찾아 간 불치사
그동안 해외에 거주하는 시간이 많았기에 불치사를 찾을 시간이 없었는데 얼마전에 한국에서 오신 분이 독실한 불자분이기에 거의 7년만에 불치사를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불치사는 참배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으며 변한것이 하나도 없었다.
Pinnawala Elephant's Orphanage(핀나왈라 코끼리 고아원)
캔디의 불치사를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국분을 위하여 코끼리 고아원을 방문했다. 캔디에서 조금 떨어진 Kegalle(케갈레)라는 도시의 교외에 있지만 핀나왈라로 찾으면 쉽다. 이곳은 정글에서 부모를 잃어버렸거나 또는 다치거나 병든 코끼리들을 보호하는 시설이다. 최대 100마리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며 건강한 코끼리들은 사찰이나 코끼리 사육사(조련사)들에게 넘겨진다. 현재는 97마리가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코끼리들은 아침 10시와 오후 2시에 반씩 나누어서 목욕을 시키기 위하여 강으로 데리고 오는데 한꺼번에 40-50마리의 코끼리를 가까이서 보는 것은 동물원에서 한 두마리를 보는 것과 비교한다면 색다른 체험이다. 그래서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등에 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