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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乙 고질', 청년 취업난 주범으로 다스려야

실론섬 2015. 10. 15. 11:58

조중식 산업2부장

조중식 산업2부장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가 14일까지 2주간 진행됐다. 국내 3대 백화점들은 행사 기간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 증가했을 정도로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백화점들은 함박웃음을 터트렸을지 모르지만 중소 입점 업체들 중에는 눈물을 삼킨 곳도 있다. 할인 행사에 참여한 입점 업체는 평소보다 제품을 30~50% 할인 판매했지만, 그렇게 올린 매출의 30% 이상을 백화점 측에 수수료로 냈다. 백화점이 주도한 대규모 할인 행사이니 할인 폭에 대한 부담을 백화점과 입점 업체가 비슷하게 지는 것이 상식일 것 같으나, 백화점은 수수료를 1~4%p 인하해준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할인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런 꼴을 안 당하지만, 그랬다가는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거절할 수도 없다"고 한다.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는 매출 증대의 과실(果實)을 대형 유통업체와 입점 업체가 고르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대형 유통업체들의 배만 불리는 방식이다.

대·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갑을 관계 고질(痼疾)이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고 있다. 중소 업체 사장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설마 그 정도일까' 싶은 사례가 너무 많다. 한 부품 업체 사장은 "미국 현지 법인에 본사에서 파견한 주재원 2명을 두고 있는데, 그중 1명은 '납품 대기업 소속이려니' 생각한다"고 말했다. 1주일에 2~3일은 그 대기업의 본사에서 출장 나온 직원 공항 영접을 나가고, 이후 일정까지 안내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소 제조업체 사장은 "우리 임금 인상을 앞두고 납품하는 대기업으로부터 인상률 가이드라인이 나온다"고 했다. 인상률이 높으면 납품 원가가 올라간다는 이유로 가이드라인은 매년 1~5% 수준이라고 한다. 이 업체 사장은 "1억원 가까운 연봉을 주는 대기업이 3000만~4000만원 받는 우리 직원 임금 몇 만원 올려주는 것까지 시시콜콜 따진다"고 했다.

납품 단가 후려치기는 이들의 하소연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이다. 겨우 생존할 정도로만 마진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이 하소연은 엄살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들의 이익률 추이를 보면 알 수 있다. 2006년에서 2013년 사이 영업이익률을 보면 삼성전자는 10.6%에서 16%로, 현대자동차는 2.8%에서 9.5%로 올랐는데, 삼성전자 협력사는 10%에서 4%로, 현대차 협력사는 6%에서 3%로 줄었다. 이러니 임금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1994년 대기업의 77% 수준이던 중소기업 임금은 2013년엔 62%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년간 국내 30대 그룹이 만들어낸 일자리는 1만개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해 대학에서 배출되는 졸업생은 60만명이다. 이 청년들에게 "구인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수두룩한데, 왜 그곳으로 가지 않느냐"고 말해봐야 통하지 않는다. 납품하는 대기업 직원의 운전기사 노릇까지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기업 직원과 신분 차이를 느낄 정도로 소득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억압적이고 고질적인 갑을 관계의 사슬에 묶여 성장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공정한 경쟁과 거래 환경이 보장되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널려 있다. 대·중소기업 간의 부당한 갑을 문제는 청년 취업난 해소 차원에서 철저히 다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