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율장

빨리율(Pali律)에 나타난 수행자의 생활상/이자랑

실론섬 2015. 11. 5. 04:31

빨리율(Pali律)에 나타난 수행자의 생활상

이 자랑(동국대)


Ⅰ. 서 론 


의식주는 모든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입고 먹고 자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자 욕구이다. 단지 몸을 가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며 휴식을 취한다는 용도를 넘어, 시대가 발전할수록 의식주와 관련된 욕망도 커져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원한다. 의식주 생활이야말로 인간의 넘치는 욕망이 가장 잘 표출되는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는 절제된 의식주 생활을 통해 스스로를 제어해 나갈 필요성을 강조하곤 하는데, 불교에서도 의식주 생활 전반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으며, 특히 출가수행자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불교수행자는 사의(四依, cattāro nissayā)라는 네 가지 생활 원칙에 의해 살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하지만, 이 외 다양한 예외 규정도 정식으로 인정함으로써 의식주 생활에 대해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율장에 그려지는 수행자의 생활상을 보면 사의법은 이상적 원칙으로 제시될 뿐, 실제로는 청식(請食)이나 시의(施衣), 정사(精舍) 등과 같은 예외 규정이 오히려 일반화되고, 나아가 정법이라 불리는 일종의 편법이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부터 교단 형성의 초기에는 엄격한 사의법의 원칙에 근거하여 생활했던 승단도, 승단 내외의 상황이 바뀜에 따라 점차 일반사회의 요구나 승단 내부의 필요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의식주 생활에 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은 지켜지고 있음을 관련 조문으로부터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출가수행자의 실생활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율장이라는 문헌을 중심으로, 이들이 어떤 원칙 아래 의식주 생활을 했으며, 또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발생하게 되는 의식주와 관련된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며 그 원칙을 지켜갔는가 하는 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에서 사용하는 광율은 테라와다(Theravāda)라는 한 부파가 전지해 온 빨리율(Vinayapiṭaka)이다. 빨리율에는 다른 부파의 광율과 마찬가지로 붓다 당시부터 이후 몇 백 년에 걸친 승단 생활의 변화가 시대적 구분 없이 담겨 있어, 구체적으로 각 조문의 제정 시기나 전후 관계를 밝힐 수 있는 단서는 찾아내기 힘들다. 따라서 부파 분열 이전의 정보와 그 이후의 정보를 구분하는 작업 역시 쉽지 않아, 분열 후 테라와다 내부에서 일어난 의식주생활에 관한 독자적인 변화를 논하며 그 특성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오랜 세월 이들이 수지, 전승하며 오늘날까지도 의거하여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서 테라와딘이 이상으로 삼고 또 현실 속에서 실천해왔던 수행자의 기본적 생활상을 고찰하기에는 충분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Ⅱ. 의생활 


의생활의 기본 원칙은 분소의(糞掃衣, paṃsukūlacīvara)와 삼의(三衣, ticīvara)이다. 분소의란 쓰레기장에 버려진 헌 옷이나 헝겊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옷을 말하는데, 이 외 빨리율「의건도」에 의하면 시체를 싸서 묘지에 버린 총간의(塚間衣, chavadussa)도 분소의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분소의란 더 이상 쓸모없어진 헌 옷감을 가져다 만든 옷으로, 이는 출가자에게 재가자에게나 탐하는 마음이나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한편, 삼의란 안타회(安陀會, antaravāsaka)와 울다라승(欝多羅僧, uttarāsaṅga), 그리고 승가리(僧伽梨, saṅghāṭī)로 구성된 세 옷가지를 말한다. 안타회란 하의 내지 내의로 실내에서 생활할 때는 주로 이 옷만으로 생활한다. 한편 울다라승은 상의 혹은 외의라 하는 것으로 포살 등의 집회에 출석할 때 안타회 위에 입는다. 승가리는 대의(大衣) 혹은 중의(重衣)라고 하며 외출할 때 입는 옷이다. 분소의로 만든 이 한 세트의 삼의만을 소지하는 것이 비구의 의생활의 기본인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이 원칙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먼저 분소의의 경우, 거사의(居士衣, gahapaticīvara), 다시 말해 속인이 사용하는 새 옷감 재료로 법의를 만드는 것이 허용된다. 즉, 법의의 재료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의건도」에 의하면, 마가다국 왕궁의 의사였던 지와까(Jīvaka)가 거사들의 옷과 같은 천으로 비구의 옷을 만들게 해 달라고 붓다에게 청을 드려 허락받게 되는 경위가 전해지는데, 이때 붓다가 이를 흔쾌히 허락하며 다음과 같이 설했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거사의를 허락하노라. 원하는 자는 분소의를 사용하고, 원하는 자는 거사의를 착용해라. 어느 것에 의하든 만족(santuṭṭhi)이야말로 내가 칭찬하는 바이니라. 


또한 법의의 구체적인 재료로는 아마포(khoma), 무명포(kappāsika), 비단(koseyya), 모직물(kambala), 거친 대마포(sāṇa), 마포(bhaṅga) 등 6종이 허용되는데, 거사의의 재료로 법의를 입던 비구들이 분소의를 입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망설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자 붓다는 이에 대해서도?비구들아, 거사의를 착용하는 자가 분소의를 입는 것도 허용한다. 나는 그 두 가지 모두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탄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법의의 재료로 분소의와 거사의 두 가지 종류가 모두 허용되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양쪽을 다 허용하는 이유로서 만족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법의의 재료가 아닌, 주어지는 것에 대해 어떤 불만이나 집착도 없이 만족감을 느끼고 수용하는 마음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 비구가 소지할 수 있는 옷은 한 벌의 삼의뿐이다.「의건도」에서는 비구의 법의로 삼의가 제정되게 된 인연담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라자가하로부터 웨살리로 가는 비구들이 너무 많은 옷을 주체를 못해 이고 지고 가는 것을 본 붓다는?이 어리석은 자들은 너무도 빨리 옷의 사치에 빠져 버렸구나.?라며 옷에 한계를 정할 필요성을 느끼셨는데, 그 후 웨살리의 고따마까 사당에서 엄동설한의 추운 겨울밤을 보내시며 세 벌의 옷이면 능히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음을 경험하시고는 비구의 법의를 삼의로 제정하셨다고 한다. 이로 보아 아마도 삼의 제정 이전에 이미 승단에는 많은 시의(施衣)가 있었고, 이로 인한 비구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경계하기 위해 삼의가 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법의의 재료는 분소의로부터 거사의로 바뀌어 가지만, 장의(長衣, atirekacīvara), 즉 삼의 외의 여분의 옷은 소지할 수 없다는 원칙은 몇 가지 예외가 제정되면서도 지켜졌다. 몇 가지 예외란, 여분의 옷이 생겼을 경우 이에 대한 취급을 둘러싼 문제이다. 예를 들어 사타법 제1조?장의과한계(長衣過限戒)?의 인연담에 의하면, 붓다가 삼의를 수지하라고 제정했다며 많은 삼의를 소지한 채 외출할 때 마다 새로운 삼의로 갈아입어 다른 비구들의 비난을 산 육군비구의 사건을 계기로 삼의 외의 여분의 옷을 소지하면 니살기바일제가 된다는 조문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아난이 여분의 옷을 얻게 되어 이를 사리불에게 선물하고자 했으나 그 때 마침 사리불이 사께따라는 곳에 가 있어 건네지 못한 사건을 계기로 다음과 같이 다시 제정된다.


옷을〔만들 때가〕이미 끝나고 가치나의(迦絺那衣)를 버리고 난 후에는, 10일에 한하여 비구는 여분의 옷을 지녀도 된다. 만약 그것을 넘으면 니살기바일제이다. 


이 인연담으로부터는 장의의 소지를 허용해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는 발견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어렵게 얻은 옷감을 유용하게 처분할 시간으로 10일 정도의 여유는 가질 필요가 발생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 규정은 정법의 발달과 함께 정시(淨施, vikappanā)라는 형태로 그 허용 범위가 상당히 완화된다. 정시란 형식적인 보시로서, 다시 말하자면, 여분의 보시를 받았을 때 이를 다른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맡겨두는 것을 말한다. 바일제 제59조「정시의불어취계(淨施衣不語取戒)」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어떤 비구이든 비구나 비구니, 정학녀, 혹은 사미나 사미니에게 스스로 옷을 정시한 후, (그가 옷을) 반환하지 않는데 착용한다면 바일제이다. 


비구는 삼의 한 벌 밖에 소유할 수 없지만, 만약 삼의를 잃어버리거나 옷이 찢어지는 경우 등에 대비하여 여분의 옷을 입수했을 때 이를 다른 비구에게 일시적으로 맡겨 놓는 것이 허용된다. 두 벌의 삼의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으므로, 한 벌을 다른 비구에게 정시하여 형식적으로 소유권을 방기하는 것이다. 위의 조문으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정시하는 상대는 비구뿐만이 아닌 비구니나 정학녀, 사미, 사미니가 모두 가능하다. 정시 받아 옷을 일시적으로 맡아있는 비구 등은 그 옷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데, 맡긴 비구 역시 상대방의 허가를 받은 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 조문의 내용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하여 옷을 비축해 둘 필요성에서 옷의 저장이 허가되기는 하지만, 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 필요할 때 찾아 쓰는 정법을 통해 한 벌의 삼의 소지라는 원칙은 지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정시는 일종의 정법이다. 정법(淨法, kappa)이란,?경율에 비추어 상응한다?고 할 때의 상응(相應, kappiya)에 해당하는 말로서 적당함을 의미하는 용어이다.?이 정도는 인정해도 좋다?라는 의미에서?이와 같이 행하면 범계는 안 된다?는 의미로까지 사용되어?이와 같이 행하면 문제없다?는 행동 방법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 용어는?죄가 되는 행동을 어떤 특수한 조작을 행하여 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율장의 조문은 그대로 둔 채 그 적용 범위를 다소 넓히려 하는 일종의 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시라는 편법이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 조문이 생겼을 당시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부파분열 이전에 이미 불교승단에서 채용되어 사용된 방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시는 옷 외에 발우나 금전 등에도 적용되는데, 사타법 제10조?과한색의계(過限索衣戒)?에 의하면, 신자가 옷값을 비구에게 전달하고자 할 경우, 비구는 옷값(금전)을 받을 수 없으므로 그 옷값을 비구를 돌봐주는 속인의 집사인(執事人, veyyāvaccakara)에게 보관하도록 한다. 그리고 옷이 필요해졌을 때 집사인에게 말하면 그는 보관하고 있는 옷값으로 옷을 사서 비구에게 주는 것이다.


한편, 옷에 대한 욕망의 제어 역시 중요하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법의의 재료는 분소의에서 거사의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후대가 되면 분소의는 거의 착용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수행자에게 있어 분소의가 지니는 의의만큼은 상실되지 않은 채 지켜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옷감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는 반드시 괴색(壞色, dubbaṇṇakaraṇa)을 행하여 착용해야만 한다. 바일제 제58조 불괴색계(不壞色戒)에 의하면, 새롭게 옷을 입수한 비구는 그 옷의 색을 3종의 괴색 가운데 하나로 물들여 입어야 한다. 3종의 괴색이란 청색(nīla)이나 흑색(kāḷasāma, 흑갈색), 혹은 목란색(kaddama, 흙색)으로 모두 선명함을 잃은 칙칙한 색깔을 전제로 한다. 또한, 새로운 천은 조각조각 내어, 이른바 오조, 칠조, 구조 등이라 불리는 삼의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모두 출가자 스스로 옷감에 대한 집착을 갖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일반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비구가 옷에 대한 어떤 요구나 지시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여러 조문 역시 옷에 대한 비구의 욕망을 제어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비구는 친척이 아닌 재가자에게 스스로 옷을 구걸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되는데, 사타법 제6조 종비친재가걸의계(從非親在家乞衣戒)에 의하면, 만약 옷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려 입을 옷이 전혀 없을 경우에는 재가자에게 옷을 구걸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런데 이 조문을 이유로 옷을 과도하게 구걸하여 끌어 모으는 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사타법 제7조 과량걸의계(過量乞衣戒)에서는 다음과 같은 학처가 제정된다.


만약 그 비구에게 친척이 아닌 거사나 거사부인이 많은 옷을 가지고 와서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가지라고 한다면, 그 비구는 내의와 상의를 한도로 그 안에서 옷을 받아야 한다. 만약 그것을 넘어 받는다면 니살기바일제이다.


이 조문 가운데 "내의와 외의를 한도로"라는 조문에 대한 해석에 의하면, 삼의를 모두 잃어버린 비구는 이의(二衣)를 취하고, 이의를 잃어버린 비구는 일의(一衣)를 구걸해야 하며, 일의를 잃어버린 비구는 아무 것도 구걸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일단 급한 최소한의 것만을 해결하도록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사타법 제8조 불수청전걸의계(不受請前乞衣戒)에 의하면, 재가자가 옷값을 마련하여 어떤 비구에게 옷을 만들어주고자 할 때, 그 이야기를 들은 비구가 청대 받지도 않았는데 미리 찾아가?나에게 옷을 보시해 주려면 이렇게 만들어 주시오?라고 말하는 등,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시 받을 옷의 내용에 관해 지시하는 것을 금지한다. 말하자면, 더 훌륭하고 더 고가의 것 등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여 시주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 등이다. 사타법 제9조 권이가증의가계(勸二家增衣價戒) 역시 취지는 동일하다. 두 명의 신자가 비구에게 옷을 보시하고자 하여 옷값을 준비했는데, 공교롭게도 보시해야할 비구가 동일인이었는데, 이를 들은 비구가 청대 받지도 않았는데 미리 찾아가 두 사람의 옷값을 하나로 합쳐서 훌륭한 옷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해서는 안 된다. 또한 사타법 제27조 권직사증루계(勸織師增縷戒)는 신자가 비구에게 옷을 보시하고자 생각하고 실을 직공에게 주어 옷을 짜게 할 때, 비구가 이 사실을 들어 알고 그 신자로부터 청대받지도 않았는데 미리 직공에게 가서 내가 보시 받을 옷이니 길게 짜 주시오, 넓게 짜 주시오, 두껍게 짜 주시오, 견고하게 짜 주시오, 매끄럽게 짜 주시오 라는 등의 지시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 학처들 가운데는 재가신자들의 비난을 계기로 제정되고 있는 것들이 상당수인 점으로 보아, 재가신자들에게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비구 스스로 더 훌륭하고 더 아름다운 고가의 옷을 지니고자 하는 욕망을 제어하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된다. 


Ⅲ. 식생활


식생활은 하루 1회의 걸식을 통해 재가신자가 베풀어주는 음식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기본이다. 오전 중에 한번 마을을 돌며 재가자가 발우에 담아 주는 음식으로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초기 승단은 식량을 얻기 위한 어떤 생산 활동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재가신자의 보시로 살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바일제 제40조 불수식계(不受食戒)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어떤 비구이든 주어지지 않은 음식을 입에 넣는다면 물과 이쑤시개를 제외하고는 바일제이다. 


이 조문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모든 음식은 반드시 보시 받은 것이어야 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지 않은 음식은 먹어서는 안 된다. 설사 주인 없는 나무에서 떨어져 길에 뒹구는 과일 한 알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면 입에 넣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로지 재가신자의 보시에 의해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 기본 방침인데, 재가신자의 보시를 받는 방법은 걸식이 기본이지만, 더불어 청식(請食) 또한 허용되고 있었다. 의생활의 경우에는 후대가 되면 거사의가 거의 일반화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식생활에 있어서는 걸식이 청식과 함께 여전히 이루어졌다.


걸식이든 청식이든 식사는 오전 중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 정오에서 다음 날 일출 때까지는 비시(非時, vikāla)라고 하여 음식물을 취할 수 없다. 바일제법 제37조 비시식계(非時食戒)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어떤 비구이든 비시(非時)에 딱딱한 음식을 먹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다면 바일제이다.


비구가 섭취하게 되는 음식물의 내용에 관해서는 특별한 제약은 없어, 보시 받은 음식물이라면 대부분 먹을 수 있다. 바일제 제35조 족식계(足食戒) 및 제37조 비시식계 등에 의하면, 비구가 오전 중에 먹는 음식물은 단단한 음식(khādaniya)과 부드러운 음식(bhojaniya)의 2종이다. 부드러운 음식은 밥(odana), 죽(kummāsa), 보리음식(sattu), 생선(maccha), 고기(maṃsa)의 5종으로 정식에 해당한다. 한편, 단단한 음식은 깨물어 씹어 먹어야 하는 과일이나 열매, 야채 등의 먹을거리로 비정식을 가리키는데, 그 내용은 5종의 부드러운 음식 및 비시약(非時藥, yāmakālika), 칠일약(七日藥, sattāhakālika), 진형수약(盡形壽藥, yāvajīvika)을 제외한 나머지 음식이다. 비시약이란 비시에 섭취할 수 있는 주스류이며, 칠일약이란 비구가 아플 때 7일 동안 소지하며 때이든 때가 아니든 언제나 복용할 수 있는 5종의 음식으로 숙소(熟蘇, sappi), 생소(生蘇, navanīta), 기름(油, tela), 꿀(蜜, madhu), 설탕(石蜜, phāṇita)이다. 진형수약은 평생 소지가 허용되는 약으로 딱딱한 음식에도 부드러운 음식에도 속하지 않는 먹을거리로, 강황이나 생강과 같은 뿌리약이나 소금, 혹은 마시는 구토약이나 바르는 가루약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이와 같이 칠일약과 진형수약이 아플 때 사용하는 약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보통 때 비시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묽은 과일 주스뿐이라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음식의 종류에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오전에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는 규정만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만약 걸식해 온 음식을 충분히 먹고 난 후 남았다면 잔식법(殘食法), 즉 "나는 다 먹었습니다. 이것은 잔식입니다"라고 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벌레가 살지 않는 곳에 버려야 한다.


또 그 날 받아온 음식은 반드시 그 날 오전 중에 모두 소비해야 하며, 저장해 두었다가 먹어서는 안 된다. 음식물을 정사 안에 저장하는 것(anta-vuttha, 內宿)도, 음식을 정사 안에서 끓이는 것(anta-pakka, 內熟)도, 비구 스스로 끓여 먹는 것(sāma-pakka, 自熟)도 모두 금지된다. 저장하는 행위를 금지한 직접적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바일제 제38조 식잔숙식계(食殘宿食戒)에 의하면, 아난의 화상인 벨랏타시사(Belaṭṭhasīsa)가 걸식에 가서 마른 밥을 받아와 보존해두고 필요한 때에 물에 적셔 먹음으로써 걸식에 가는 횟수를 줄인 사건을 계기로 이 학처가 제정되었다고 한다. 이 인연담으로부터 판단한다면, 매일 걸식에 나가는 행위가 수행에 방해가 되는 등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는 수행자가 있었고, 이를 경계하기 위해 음식물의 저장을 금지하는 학처가 제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불필요한 음식물을 소유하고 있음으로 인해서 발생하게 될 여러 가지 번뇌를 막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한편, 주어지는 음식에 대해서는 그 양과 질에 상관없이 만족해야 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더 나은 음식을 요구하거나 찾아 다녀서는 안 된다. 바일제 제33조 전전식계(展轉食戒)에 의하면 비구는 한 곳에서만 식사 공양을 받아야 한다.


한 곳에서 식사 공양을 받고 또 다른 곳에서 공양을 받는다면 다음과 같은 때를 제외하고 바일제이다. 그 때란, 아플 때, 시의(施衣) 때, 작의(作衣) 때이다. 


빨리율의 인연담에 의하면, 다른 이에게 고용되어 생활하는 한 가난한 사람이 내세의 행복을 얻기 위해 공덕을 쌓고자 보수를 모아 부처님과 비구승에게 식사 공양을 청했다. 그런데 비구들은 시주가 가난한 자이므로 충분한 식사를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사전에 걸식을 한 후 그의 청식에 응했다. 이로 인해 비구들은 준비된 식사를 조금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은 많은 사람의 도움을 얻어 충분한 식사를 준비했기 때문에 식사가 많이 남아 버렸고, 그는 비구들의 행동을 비난했다고 한다. 또한 바일제 제35조 족식계(足食戒)에 의하면, 충분히 먹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면 그 날은 더 이상 식사를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음식의 양이나 질에 상관없이 일단 1회의 식사를 끝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단, 특별한 경우에는 잔식법을 통한 예외가 인정된다. 위에서 언급한 바일제 제35조 족식계에 의하면 충분히 먹어 만족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난 비구는 그 날 더 이상 식사를 해서는 안 되지만, 잔식법이 이루어진 음식물만은 다시 먹어도 된다. 따라서 식사를 끝낸 후 신자가 음식을 승원으로 가져왔을 경우, 식사가 끝났다고 하여 먹지 않는다면 공덕을 쌓고자 하는 신자의 신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므로, 식사를 끝내지 않은 비구가 조금 먹고 잔식법, 즉?저는 충분히 다 먹었습니다. 나머지는 잔식입니다?라고 선언하게 함으로써 그 음식들을 잔식으로 만들어 이미 식사를 마친 비구도 원하면 먹을 수 있다.


한편, 바일제 제34조 수이삼발식계(受二三鉢食戒)는 시주가 양을 모르고 베풀지언정 받는 자는 양을 알고 받아야 함을 보여 준다. 


속가에 간 비구에게 (신자가) 떡이나 보리과자를 만족할 만큼 가지게 한다면, 원하는 자는 발우 가득 두 세 발우를 채워 받아도 된다. 만약 그것을 넘게 받는다면 바일제이다. 발우 가득 두 세 발우를 채워 받아 그로부터 돌아와서 비구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이 경우의 올바른 법이다.


얼마만큼을 보시해야 좋을지 판단이 안 선 재가자가 비구에게 원하는 만큼 가져갈 것을 권하는 경우이다. 이 때 비구는 둘 혹은 세 개의 발우까지는 받아도 좋으나 그 이상은 안 되며, 이 역시 정사로 가지고 와서 승단에서 분배해서 먹어야 한다. 그리고 나누어 먹은 다른 비구들은 그 날 그 재가신자의 집에 가서는 안 된다.


또한, 바일제 제39조 색미식계(索美食戒)는 미식(美食, paṇīta-bhojana)을 탐하는 것을 경계하는 학처이다. 


다음과 같은 것이 미식이다. 즉, 숙소(sappi), 생소(navanīta), 기름(tela), 꿀(madhu), 설탕(phāṇita), 생선(maccha), 고기(maṃsa), 우유(khīra), 버터(dadhi)이다. 어떤 비구라도 이러한 미식을 병이 아닌데 자신을 위해 구걸하여 먹는다면 바일제이다. 


병에 걸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을 위해 미식을 구걸하여 먹어서는 안 된다. 미식이란 영양가 높은 맛난 음식을 의미하는데, 빨리율에서는 이와 같이 숙소를 비롯한 9종을 제시한다.


불멸 후 100년 경 웨살리에서 일어났던 십사비법논쟁의 전승을 통해서도 추측해 볼 수 있듯이, 승단의 의식주 생활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적지 않은 변화의 필요성에 직면했던 것 같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의 연장 문제를 비롯하여, 저장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 및 비시에 섭취하는 음료 등, 십사 가운데 무려 여섯 항목이 식생활과 관련된 문제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 모두 율의 해당 조문을 근거로 거부되었다. 


Ⅳ. 주거 생활


주거 생활은 수하좌(樹下坐)가 기본 원칙이지만,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것도 허용되었고, 오히려 점차 건물 안에서의 공동생활이 일반화된다.「와좌구건도」에 의하면, 비구들은 원래 임야(arañña)나 나무 밑(rukkhamūla), 산 속(pabbata), 동굴(kandara), 계곡(giriguhā), 무덤(susāna), 산림(vanapattha), 노지(ajjhokāsa), 짚더미(palālapuñja) 등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라자가하의 한 장자의 청을 계기로 붓다가 5종의 레나(leṇa)를 허용했다고 한다. 5종의 레나란, 위하라(vihāra, 정사), 앗다요가(aḍḍhayoga, 평루옥), 빠사다(pāsāda, 전루), 함미야(hammiya, 누방), 구하(guhā, 굴원)의 5종이다. 붓다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 장자는 하루에 60개의 위하라를 지어 승단에 보시했다고 한다. 이로 보아 초기의 위하라는 매우 간소한 규모의 것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승단의 생활이나 승단을 둘러싼 일반사회가 발전하고 다양해짐에 따라 레나의 규모도 커지고 설비나 외관도 갖추어져 가게 된다. 빨리율에 그려지는 이들 건물의 모습은 상당히 정비된 것으로, 비구의 개인방으로 사용되는 갓바(gabbha)를 비롯하여, 식사나 집회 등에 사용되는 우빠타나살라(upaṭṭhānasālā), 음료수를 두는 빠니야살라(pānīyasālā), 불씨를 보관해 두는 악기살라(aggisālā) 등의 시설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 5종의 레나는 공동생활을 전제로 하는데, 한편, 승잔법 제6조 무주작방계(無主作房戒)는 비구가 혼자서 생활할 때 사용하게 될 방사에 관한 규정이다. 이 조문은 비구가 자신의 거주를 위해 꾸띠(kuṭī), 즉 작은 방사를 만들 때, 만들어 줄 사람이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경우, 다시 말해, 특정한 시주 없이 여러 신자로부터 필요한 건축 재료 등을 보시 받아 만드는 경우, 정해진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학처의 인연담을 보면, 아라비(Āḷavī)의 비구들은 붓다가 비구들에게 자신이 살기 위해 꾸띠를 만들어도 좋다고 하자, 신자로부터 직공이나 소, 그리고 도구나 목재 등을 빌려 꾸띠를 만들고자 했는데 너무 크게 짓고자 하여 신자들에게 구걸하는 일이 많아 이로 인해 신자들이 비구들을 피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음과 같은 학처가 제정되었다. 


만약 비구가 스스로 구걸하여 꾸띠를 만드는데 시주 없이 자기를 위해서라면 기준에 따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기준이란 불걸수(佛搩手)에 의해 길이는 12걸수, 폭은 7걸수이다. 모든 비구들을 안내하여 장소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비구들은 재난이 없고, 왕래가 편한 장소를 지시해야 한다. 만약 비구가 재난이 있고 왕래가 불편한 곳에 스스로 구걸하여 꾸띠를 짓거나, 혹은 장소를 지시하기 위해 모든 비구를 안내하지 않거나, 혹은 기준을 넘는다면 승잔이다.


이 조문에 의하면, 정해진 크기를 지킬 것, 장소가 정해지면 다른 비구들을 데려가 보이고 그 곳이 재난이 없고 왕래가 편한 곳으로 방사를 만들기에 적당한 곳인지 보이고 허가를 맡는 것이 방사 조성의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문으로부터는 비구의 주처 조성에 있어 재가신자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고자 하는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의류나 음식물과 같은 개인적인 차원의 소유물과는 달리 승원 등은 사방승가의 소유물로 다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의생활이나 식생활에 관련된 조문을 통해 볼 수 있었던 특징, 즉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필요한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며 생활한다는 기본 원칙을 보여주는 조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와좌구에 대한 규정을 통해 이 점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일제 제87조 과량상족계(過量牀足戒)에 의하면, 새로운 침대나 의자를 만들 때 다리를 너무 높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제정 인연담에 의하면, 우빠난다(Upananda)라는 비구가 높은 침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본 붓다가?주처에 의해 어리석은 자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사건을 계기로 이 학처가 제정되었다고만 되어 있어, 왜 다리가 높은 침대나 의자를 사용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는 분명 비구들이 높고 사치스러운 침대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높은 지위에 오른 듯한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게 될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바일제 제88조 저두라면상욕계(貯兜羅綿牀褥戒)에 의하면, 뚤라(tūla)를 넣은 침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뚤라란 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빨리율의 인연담에 의하면, 육군비구가 침대에도 의자에도 뚤라를 넣어 만드는 것을 보고, 재가신자가 재가의 욕망을 누리는 자(gihikāmabhogin) 같다고 비난한 것을 계기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뚤라를 넣음으로써 부드럽고 쾌적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경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바일제 제89조 과량좌구계(過量坐具戒)에 의하면, 좌구를 만들 때 규정 이상의 크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비구가 좌구를 만들 때는 기준에 따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것이 기준이다. 즉, 불걸수에 의해 길이는 2걸수, 폭은 1걸수 반, 테두리는 1걸수이다.


이 학처는 웨살리의 십사 비법 논쟁 가운데 하나인, "테두리가 없는 좌구를 사용하는 것은 합법(kappati adasakaṃ nisīdanaṃ)"이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이와 관련하여 사타법 제15조 불첩좌구계(不貼坐具戒)는 새로운 좌구를 얻었을 경우에 오래된 좌구의 천을 일부 떼어내어 붙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좌구나 와구를 만들 때 헌 와구의 테두리로부터 1불걸수〔의 천을〕떼어내야 한다. 괴색을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비구가 헌 와구의 테두리로부터 1불걸수〔의 천을〕떼어내지 않고 새로운 좌구나 와구를 만든다면, 니살기바일제이다.


이 조문 속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는 괴색을 하기 위한 것으로, 이렇게 함으로서 새로운 좌구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였던 것이다.


사타법 제14조 감육년작부구계(減六年作敷具戒)는 비구들이 물건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아직 사용할 있는 와구 등을 버리고 해마다 새로운 와구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신자들에게 양모를 종종 구걸하여 곤란하게 만들어 비난받는 일을 계기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즉,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새로운 와구를 만든다면, 6년 동안 수지해야 한다. 6년 이내에 그 와구를 버리거나, 혹은 버리지 않더라도 다른 새로운 와구를 만들게 한다면 비구의 인가를 제외하고 니살기바일제이다.


Ⅴ. 결론 


이상, 빨리율의 의식주 관련 조문을 중심으로 수행자의 생활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빨리율에 나타나는 수행자의 생활상은 엄격한 사의법을 이상으로 하면서도 승단 내외의 시대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더불어 변화해 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은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는 만족이다. 주어지는 것에 대한 어떤 불평이나 탐욕도 없이 오로지 만족하는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지닌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수행자 스스로 물질에 대한 어떠한 집착이나 탐욕도 없이 절제된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욕망에 휘둘려 의식주 자체에 집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신체를 괴롭히거나 수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몸을 허약하게 만드는 일도 없이, 어떤 상황에서든 만족하며 욕심 부리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수행자가 지녀야 할 의식주 생활에 대한 기본자세로 제시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학처들이 재가신자들의 비난을 계기로 혹은 승단으로부터의 이들에 대한 배려에서 제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초기승단은 의식주를 전면적으로 일반사회의 보시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가신자와의 원활한 관계는 승단의 발전과도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따라서 이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형성 은 중요한 문제로, 이들에게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담을 주는 행위나 이들의 비난을 사는 행위는 경계되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