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의 신비주의와 불교
도교의 신비주의와 불교
* 본 논문은 (사)한국불교학회 2014년도 추계학술대회 “불교와 세계종교의 신비사상과의
대화”에서 발표된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임.
** 이 연구는 2014년도 광주대학교 특별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음.
이희재/광주대학교 국제언어문화학부 교수
Ⅰ. 서론
Ⅱ. 도교 신선사상과 불교
Ⅲ. 內丹수련과 불교
Ⅵ. 도교와 불교의 공유신앙
Ⅴ. 결론
[ 요 약 문 ]
도교의 신비주의가 불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도교의 입장에서 조명해 보자면, 그들은
신선사상으로서 불교를 수용하고 해석했으며 불교는 일정하게 신선사상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內丹수련사상으로서 불교를 해석하였고, 선불교는 호흡법 등에서 이러한 수련법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도교는 불교를 기복적 사상으로서 해석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불교는 도교의
초자연적인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불교는 전법의 초기에 중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 도교적 신선사상과 조화하여 도교적 불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불로장생이나 양재초복은 인간의 원초적 갈망인데, 우선 불교는 그러한
욕망을 받아들여서, 붓다는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주는 신선과 같은 존재로 숭앙되거나
불로장생을 정해주는 天帝와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붓다는 초기불교에서처럼 단지 법이나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하는 영원한 아미타불이며
이는 無量壽佛로 번역되었다. 붓다는 다시 말하자면 불로장생의 地仙이며 극락세계의 天仙의
존재와 같은 것이다.
서민들의 신앙에 있어서 불교와 도교는 사상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더 나아가 3-4세기의
유명한 도사들은 대개 불교의 승려들과 밀접히 교류하였다. 도사들은 불경에 정통해 있었고,
또 불교의 승려들도 도교의 저서, 특히 「장자」와 같은 저술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양재초복의 면에서는 불교의 관음신앙이나 문수 보현보살이 도교에서도 주요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반대로 불교에서는 도교적인 十王, 竈王, 七星, 산신 등을 비롯한 민간의 신앙을 수용
하였다. 도교신앙의 신비주의적인 요소는 불교의 토착화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상이 동일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불교의 경우, 신비주의적인 요소나 구복적인 요소를
외면할 수는 없었지만, 수행을 통한 깨달음과 생사의 해탈을 중시하며, 궁극적으로 현세의
불로장생에 집착하지 않는다.
Ⅰ. 서론
종교에서의 신비주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현상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도’란
바로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신비의 어원인 ‘무오(μυω)’와 같은 맥락이다. 도교의 근본경전인
「도덕경」에서는 ‘도를 도라고 하면 영원한 도는 아니다.[道可道 非常道]’1)라고 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숨은 진리가 있다는 言語道斷의 입장인 것이다. 불교는 그러한 도교의
신비주의를 여러 방면에서 수용했다.
1)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道德經」, http://ctext.org/dao-de-jing/zh.
도교는 유교와 더불어 중국의 토속적인 사상이다. 도교는 유일신이 아닌 다신교적이며 초월적
신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인간이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자연을 의인화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불교와 유교의 인물들을 다른 도교의 신들과 더불어 숭배하기도
한다. 유교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해 소위 怪力亂神을 다루지 않는다는 입장임에 비해 불교는
도교와 유사하게 이런 민간신앙들을 수용하였다.
중국에 유교만이 존재하고 도교가 없었더라면 불교의 전파는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인
들은 불교를 기존의 도교적 사상을 통하여 수용하였는데 이것을 소위 格義佛敎(격의불교)라
한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파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거나 모호한 불교의 개념에 대해
노자⋅장자의 철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불교를 설명하였다. 동진의 廬山 慧遠(334~416)이
대중들에게 불교의 '實相義'를 강의할 때,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했는데도 대중들이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莊子의 이론을 예로 들어[‘?莊子? 義爲連類’] 불교의 개념을 해석하였더니
대중들은 비로소 불교의 교리를 명백하게 이해하였다고 한다.2)
2) 馮友蘭,「中國哲學新編」(北京: 人民出版社, 1998), p.213.
대승불교의 空사상도 초기에는 노자나 장자의 無의 사상과 유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상과
같이 도교는 외래종교인 불교의 교의가 중국에 수용될 수 있도록 정신적 토양이 되어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종교 조직화된 도교의 성립은 중국에 들어온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도교
속에 포함된 노자, 장자의 사상, 신선사상, 혹은 다양한 민간신앙 등은 중국에서 예로부터 내려온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중국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상이한 도교의 사상들과 융합,
혹은 갈등하면서 중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도교의 성격은 노자, 장자의 사상과 신선사상을 비롯한 민간신앙들이 혼합되어 모호하고
다양하다. 그런데 노장사상에서는 종교적, 신비주의적인 면은 찾기 힘들고 다만 암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도교의 신비주의는 영생불멸을 꿈꾸는 신선사상과, 불로장생의 꿈을 약물과
수련을 통해 이루려는 양생적 도교, 그리고 양재초복의 민간신앙 등에 나타난다. 불교는 중국에
토착화되면서 이러한 사상들과 융합하게 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 점에서 불교와
도교의 경계가 모호해진 경우도 있다.
도교의 신비주의는 불교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까? 첫째, 중국에서 불교는 신선사상으로서
수용되고 해석된 후 일정하게 신선사상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둘째, 불교의 호흡법을 內丹도교의
수련사상으로서 해석하였는데, 특히 선불교는 호흡법 등에서 이러한 도교식 수련법을 공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인들은 불교를 구복적 사상으로서 해석하였다. 이로써 중국불교는
초자연적인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이러한
도교의 신선사상, 내단수련, 양재초복의 사상은 노자, 장자의 철학과는 달리 신비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Ⅱ. 도교 신선사상과 불교
불교가 중국에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신선사상과 유사하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당시의
중국 사람들은 불교를 신선사상의 일종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漢代인 1세기부터 4세기경까지,
붓다를 황제나 노자 등과 같은 신으로 받아들여 신앙했으며 신선사상으로 불교를 이해하였다.3)
3) 窪 德忠,「道敎の世界」(東京: 學生社, 1987), p.148
신선이란 죽지 않고 영원히 지상에서 삶을 누리는 자이다.4) 도교에서는 이러한 신선사상을
수용하여 後漢말에 魏伯陽이「周易參同契」5)를 통해 延命과 장수를 위한 煉丹과 胎息法을
설했다. 또 東晋의 葛洪(284~363)은 점성술, 귀신을 부리는 기술, 신선이 되는 수도법, 단약을
먹는 방법에 대해 정리한 책인「抱朴子」를 썼다. 그에 의하면,6) 신선은 크게 天仙과 地仙으로
나뉘는데 그들의 꿈은 地仙이 되는 것이다. 이 지상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수련이
필요한데, 우선 불사약으로서 金丹을 제조하여 복용하는 것이 있고, 양생과 호흡 등의 수련을
통해 자기 안에서 丹을 만드는 內丹의 내용이 있다.7) 그런데 불사약으로서 金丹을 제조하여
복용하는 대신에, 양생과 호흡 등의 內丹 수련이 더 중요시 되고 있다.8)
4) 신선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천년을 사는 사람을 仙人이라고 하고 形을 단련
하여 氣를 삼은 자를 眞人, 氣를 단련하여 神을 이룬 자를 神仙이라고 한다.
이 神을 단련하여 道를 이룬 자를 至人이라고 한다.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http://ctext.org/wiki.pl?if=gb&res=2704 47,「坐忘論」,
「坐忘樞翼」, '身有七候…四延數千歲名曰仙人 五鍊形爲氣名曰眞人 六鍊氣成 神
名曰神仙 七鍊神合道名曰至人.’
5) 魏伯陽,「參同契」,「正統道藏」太玄部 33冊 (台北: 新文豊出版, 1977), p.153.
6) 大星光史,「老莊神仙の思想」(東京: プレヅデント社, 1993), p.49.
7)「參同契」, p.32, ‘精氣結而爲丹 陽氣在下 初成水 以火煉之則凝成丹.’
8)「參同契」, p.32, ‘精氣結而爲丹 陽氣在下 初成水 以火煉之則凝成丹.’
불교가 중국인의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도교의 신선사상과 대화하고 조화하여 도교적 불교가
되는 것이 필요했다. 붓다는 불로장생과 禳災招福이라는 당대의 세상의 요청에 부응하여 행복을
주는 신선으로, 불로장생을 정해주는 天帝와 동일시되었다.9)
9) 道端良秀, 「중국불교의 도교적 전개」, 승가신문, p.182.
이처럼 중국인들이 불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붓다의 영험을 통해 이 세상에서 복을 많이 받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서이었던 것이다. 최초로 불교를 수용한 후한의 환제도 불교를 黃老의
신앙과 같은 종류로 보았는데, 당시 그가 신선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열렬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黃老를 제사함과 아울러, 붓다와 불교의 승려 역시 도교의 方士와 동류로 보고
그들에게 기원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붓다는 영험력을 가진 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왔던 서역의 사문들은 주술의 영험을 지닌 신선적 수행자로서 존경받았다. 즉 불교는 어디까지나
현세적이며 공리적인 도교적 신앙의 형태로 후한의 사회에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황로신앙
이나 불로장생술의 하나로서 중국에 수입된 불교는 후한 이후 그 세력을 점점 확대할 수 있었다.
10)
10) 鎌田茂雄, 정순일 역,「중국불교사」(서울: 신서원, 1994), p.60.
초창기의 인도 불교에서 붓다는 스스로를 결코 신통력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붓다는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法에 의지하라고 유언했던 것처럼 자기수행에 철저한 세속 사회의
성인이나 현인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 法은 붓다에 대한 종교적 신앙 없이 성립되기
어려웠다.11) 붓다에 대한 숭배의 사상이 나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인도에서 붓다는 신비화
되어 갔으며,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무렵 이미 어느정도 신비화된 붓다는, 바로 중국 양한 시대
도교의 황로 방술가들이 신비화시킨 노자와 비슷한 인물로 수용되었다.
11) 平川彰 外, 정승석 역,「大乘佛敎槪說」(김영사, 2005), p.189.
초기불교와 달리 대승불교의 붓다는 단지 법이나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하는 영원한 존재인 아미타불이며 이는 無量壽佛로 표현되는데, 알고 보면
붓다는 불로장생의 地仙이며 극락세계의 天仙의 표상이 된다. 불교는 이처럼 도교적인 신선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의 신앙이 될 수 있었다.
Ⅲ. 內丹수련과 불교
1. 좌망과 좌선
신선이 되기 위해 도교에서는 金丹12)과 같은 특별한 약물을 복용하는 방법을 취했는데, 나중에
이것은 인간 자신의 인체 내에서 丹을 만들어 내는 內丹사상으로 변화했으며 이는 선종의
수련방식과 유사하다.
12) 葛洪, 抱朴子의 「金丹篇」에 주로 언급되고 있다. 金丹이란 金液과 還丹을
합하여 부른 것이다. 金液은 황금을 재료로 하고 환단은 丹砂를 재료로
해서 만든 것이다.
도교의 수련은 마음을 모으고 자성을 수렴하며 氣를 기르고 神을 지켜 욕망과 망상을 없앰으로써 무로 돌아가 결국에는 만물의 시초인 “큰 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큰 도로
복귀하면 도와 더불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金液還丹法”이며, 이른바 “內丹”인 것이다.13) 이 內丹의 수련이란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일찍이 「장자」에서도 거론되었던 도가의 坐忘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내단은 불교가 아닌,
장자의 사상 속에 암시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적인 수련까지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에대해 장자의 우화를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13) 葛兆光,「도교와 중국문화」(동문선, 1993), p.282.
“안회가 ‘저는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공자는 ‘무엇을 얻었는가?’ 라고 물었다.
안회가 ‘인의(仁義)를 잊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안회는 다른날 공자를 만났을 때 ‘얻은 것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무엇인가?’ 라고
공자가 물었을 때 ‘예악(禮樂)을 잊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또 ‘아직 멀었다.’라고 했다.
안회는 다른 날 ‘얻은 것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는 ‘무엇을 얻었는가?’라고 물으니 안회는
‘좌망(坐忘)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때 공자는 놀라서 묻기를 ‘무엇을 좌망(坐忘)이라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때 안회는 ‘손발이나 몸을 잊고, 총명을 멀리하며, 형태를 벗어나며, 지식을 버리고 저 위대한 도(道)와 하나가 됨을 좌망이라고 합니다.’라고 했다. 그때 공자는 ‘하나가 되면 싫다 좋다하는 차별도 없으며, 변화하여 구애됨이 없다. 과연 너는 현자로다. 나도 너에게 배우고 싶다.’"
「장자」, 「대종사」, ‘顔回曰 回益矣 仲尼曰何謂也 仲尼曰何謂也 曰回忘仁義矣 曰可矣猶未也 他日復見曰
回益矣 曰何謂也 曰回忘禮樂矣 曰可矣猶未也 他日復見曰 回益矣 曰何謂也 曰回坐忘矣 仲尼蹴然曰
何謂坐忘 顔回曰 墮枝體 黜聰明 離形去知 同於大通 此謂坐忘仲尼曰 同則無好也 化則無常也 而果其賢乎
丘也請從而後也.’
이것은 물론 유가에서는 출처가 없는 내용의 대화이기는 하다. 여기서 坐忘은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나 예악을 잊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잊고 외물과 자아의 구별을 잊고, 시비의 구별도 잊은
경지이다. 그것은 현실의 차별상을 초월하며, 천지의 대도와 하나가 되는 융통무애의 경지이다.
이에 대해 唐代의 유명한 도사 司馬承禎(647~735)은 노자와 장자의 主靜학설, 특히 「장자」의
坐忘을 바탕으로 「좌망론」15)을 저술, 주정의 방법으로 정신을 기른다는 사상을 펼쳤다.
15) 張君房 編, 李永晟 點校,「雲級七籤」 卷94(北京: 中華書局, 2003).
그의 ?좌망론?은 敬信, 斷緣, 收心, 簡事, 眞觀에 의해 泰定을 얻어 坐忘하고 得道함을 말한다.
여기에서 敬信은 안으로 내 몸이 있음을 잊고, 밖으로 외계우주의 존재마저도 모를 정도의
심경으로 자연히 대도와 하나가 되어 분별사려를 없애는 경지이다.16) 心外에 道가 따로 없다는
믿음인 것이다. 斷緣은 조용한 마음으로 생활을 간소하게 하여 번뇌를 덜어내는 수행이므로,
세속적인 것들과 멀면 멀수록 마음은 점점 도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17) 收心은 모름지기
安坐하여 마음을 모아 경계[境]를 떠나며 무소유에 주함으로 인하여 一物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18)
16)「坐忘論」, 「敬信」, p.1, ‘信者 修道之要 敬仰尊重…莊云 墳支體 點聰明 離形去智
同於大通 是謂坐忘 夫坐忘者 何所不忘哉 內不覺其一身 外不知乎宇宙.’
17)「坐忘論」, 「斷緣」, p.2, ‘斷緣者 斷有爲俗事之緣也 棄事則形不勞 無爲則心自安.’
18)「坐忘論」, 「收心」, p.2, ‘因住無所有 不箸一物.’
簡事란 생활을 간소하게 하는 것으로 경중을 헤아리고 去取를 알며, 결국 중요하지 아니한 것,
맛있고 기름진 음식, 화려한 옷, 명예, 금옥과 같은 재물을 벗어난 안빈낙도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19) 眞觀은 몸은 고요히, 마음은 한가롭게 함으로써 비로소 사물의 묘를 관조 함이다.20)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큰 안정인 泰定21)을 이루고 得道22)에 이른다고 한다. 도교의「좌망론」
을 살펴볼 때, 이는 좌선에 가까운 수행법임을 알 수 있다.23)
19)「坐忘論·, 「簡事」, p.4, ‘修道之人 莫若斷簡事物 知其簡要.’
20)「坐忘論」, 「眞觀」, p.5.
21)「坐忘論」, 「泰定」, p.5. '夫定者 出俗之極地.’
22)「坐忘論」, 「得道」, p.6.
23) 최수빈, 「좌망론」을 중심으로 살펴 본 당대 도교의 수행관」,「서강학회보」3
(서강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 2007). 이 논문에서는 사마승정과 동시대의 頓
悟漸修의 선종 논쟁 가운데 神秀의 漸修的 수행에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한다.
좌망과 유사한 말로 불교에서는 坐脫⋅坐蛻⋅坐化가 있다. 禪僧이 앉은 채로 열반에 든다든가 혹은
똑바로 선 그대로 열반에 든 것을 坐脫立亡이라고 한다.24) 이것은 좌선과 좌망의 사상이
일치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無爲와 무욕에 바탕한 좌망론은 선불교의 좌선의 정신과
유사하다. 그리고 단지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一’로 회귀하려는 것으로 깨달음을
향한다.
24)中華電子佛典協會, 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10thousand/pdf/X63n1245.pdf
宗賾,「禪苑淸規」卷8,「坐禪儀」, ‘是知 超凡越聖, 必假靜緣. 坐脫立亡, 須憑定力.’
2. 내단과 호흡
호흡은 숨을 내쉬는 呼와 숨을 마시는 吸으로 구분된다. 인간은 태아 상태에서는 태를 통해서
산소를 공급받다가 모태에서 세상으로 나오면서 호흡을 시작한다. 그 호흡이 생명의 시작이고
죽음이란 호흡의 정지를 의미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胎息, 혹은 단전호흡은 양생법과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 신선의 호흡에 대한 것에서도 「장자」에서는 언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옛날에 진인(眞人)은 잠잘 때는 꿈이 없고, 깨어나면 근심이 없으며, 먹을 때는 맛있는 것을
찾지 않고, 숨 쉴 때는 깊고 고요하다. 진인은 숨을 발뒤꿈치로 쉬고, 보통사람은 숨을
목구멍으로 쉰다.’25)
25)「장자」, 「대종사」, ‘古之眞人 其寢不夢 其覺無憂 其食不甘 其息深深 真人之
息以踵 衆人之息以喉.’
이러한 호흡은 內丹에서 단전호흡이라고 하며 선에서도 또한 단전호흡으로 수행한다. ‘배꼽
아래와 신장 사이의 움직이는 기가 단전이다. 단전은 사람의 근본이다. 정신이 숨는 곳이며
五氣의 근원이며 太子의 府이다. 남자는 精을 저장하고 여자는 月水를 주로 하여 자식을 낳아
기르니 음양이 합하고 화하는 문이다. 그러므로 단전이란 性命의 근본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26)
26) 楊玄操,「難經」, 「六十六難」, ‘臍下腎間動氣者 丹田也 丹田者 人之根本也
精神之所藏 五氣之根源 太子之府也 男子以藏精 女子主月水 以生養子息 合
和陰陽之門戶也.’
단전이란 배꼽 아래의 하단전, 심장 아래의 중단전, 두 눈썹 사이의 상단전을 그것이 있는
위치에 따라 이름붙인 것이다. 단전을 단련하는 방법은 도교 수양의 기본 공부 가운데 한
가지가 되는데, 이는 실제로 靜養하는 한 공부법이라 하겠다.
이 도교의 호흡의 목적은 명상을 위한 것으로 허심을 위한 방법이다. 모든 잡념을 제거하고
마음을 비움으로써 내면의 진정한 자아와 만남이 이루어진다. 최종적인 無爲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수련이 필요하다. 앞서의 좌망이라는 것도 무위의 경지에 이르려는
수련법이다. 나라고 하는 아상을 제거하여 自他不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다름 아닌 무위라고
한다.27) 위백양의 수련법은 음양조화의 기법으로 심장의 火氣를 아래로 내리고 신장의 水氣를
위로 올리는 水昇火降의 양생법이다. 그는 주역을 우주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으로 볼 뿐만
아니라 소우주인 인간의 양생의 원리로도 보았다. 그 요체는 음양의 조화를 통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신선과 같이 장생을 누리는 것이다.
27) Lawrence G. Thompson, The China Way in Religion (Belmont, California:
Wadsworth Publishing Company, 1998), p.93.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는 이미 정교한 안반의 호흡법의 수행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불교의
호흡법 역시 붓다의 재세 시부터 잡념을 제거하고 깨달음에 이르려는 중요한 명상법의 하나였다.
중국에 수용된 불교는 선종에서 참선수행이 강조되었는데, 이 때 좌법과 호흡법등이 도교의
內丹 수련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 호흡의 요령은 마음을 고요히 해서 들어 마시는
숨은 면면하게 내쉬는 숨은 가늘게 하고 신기로 하여금 배꼽에 머물게 한다.28) 도교의
호흡법은 내단 수련의 하나로 단지 신체의 동작만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다는 점에서 불교의
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28) 鄭磏, 金學洙 編,「龍虎秘訣」, 국립중앙도서관 筆寫本(鷄龍山硏精院, 1980),
‘入息綿綿 出息微微 常使神氣 相住於臍.’
3. 노장과 간화선
불교의 선종은 기본적으로 노장의 사상과 일치한다. 즉 선종과 노장은 모두 현실 사회로부터
초월 또는 해탈할 것을 주장한다. 어떻게 현실 생활 속에서 초월하고 해탈할 수 있는가? 노자는
외계의 사물에 간섭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정학설을 제시하였다. 장자는 이 노자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외물과 자아를 초월하고 시비를 초월하여 시비를 초월하는 ‘處中之道’를 내세워,
虛靜을 유지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선종은 어떤가? 선종은 노자와 장자의 주정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생각하고 생각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無念’설을 제시한다. 이렇게 해서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고 본심의 청정을
유지한다.29) 간화선의 경우 사상적으로 노장과 관련된 것으로서 육조시대에 淸談의 전통을
근거로 公案이나 문답을 존중하는 풍습이 만들어 낸 것이다. 선종의 선문답은 인도식의 달마선계
에서 기원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중국적 淸談 풍조를 타고 형성되어 온 誌公, 傅大士의 반야선
계통에서 발생되었다.30)
29) 許抗生 저, 노승현 역,「노자철학과 도교」(예문서원, 1995), p.210.
30) 이종익, 「공안 간화선의 원류고」,「불교학보」2(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1964), p.72. 184 한국불교학 74
간화선의 기원은 본디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청담 학풍이 일세를 휩쓸며 세속적인
공명과 권리를 다 벗어던지고 예의와 도의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산수에서 노닐면서 자유
롭게 고담준론을 일삼던 청담에서 유래한 것이다. 노장의 허무사상과 반야의 공사상이 混和되어
선적인 진리를 체달하여 무애 자재한 묘용을 보이는 것이 반야선이며, 이는 중국에서 형성된
특이한 선풍으로서 그 언어는 常情으로 이해할 수 없는 格外談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31)
31) 이종익, 위의 글, p.78.
일반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격외담의 풍습이 후세의 선에 있어서 선문답으로 전개된 것이다.
이것이 오랫동안 세속적 상식과 常道가 아닌 초세속적 언행을 일삼아 오던 청담 풍조가
선문답의 초 상식, 超 常行의 형태로 이어진 것이다.
기원후 3-4세기의 유명한 도사들은 대개 불교의 승려들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그 도사들은
대개 불경에 정통해 있었고, 또 승려들도 도교의 저서, 특히「장자」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 만났을 때는 淸談을 하였다. 선은 불교의 한 종파이지만 불교와 도교의 철학을
가장 정교하고 미묘하게 결합한 것이다.32)
32) 馮友蘭, 정인재 역,중국철학사」(형설출판사, 2007), p.275.
송나라시대의 도교의 일파인 全眞道의 창시자 王重陽(1112~1170)은 道禪一致를 주장했다.
선과 도를 아울러 갖추어야 높은 선비가 되며, 참된 승려가 될 수 있으며 선과 도를 아울러
닦으면 피안에 이른다고 하였다.33)
33)「重陽全眞集」 卷1, “禪道兩全爲上士 道禪一得自眞僧 …咄了禪禪幷道道
自然到彼便超界.”(「正統道藏」 太平部 13冊, 台北: 新文豊出版, 1977).
그러나 선종이 自性을 구하고 일종의 심리적 체험을 통해 투명하고 맑은 희열과 해탈감을
얻고자 한 데 반하여, 도교는 단순히 심적 체험뿐만 아니라 육체의 영원성까지 획득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단순한 심적 체험방식이 아니라 養氣. 行氣의 방법이며, 단지 정신상의
해탈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건강도 함께 추구하여 적지 않은 의학방면의 이론도
포함하고 있다.34)
34) 葛兆光, 앞의 책, p.370.
Ⅵ. 도교와 불교의 공유신앙
도교가 조직적 종교로서의 체계를 갖추면서 그들의 신앙의 대상 가운데는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 적지 않다. 마찬가지로 불교 역시 도교에서 환영받는 신앙의 대상을 수용했다. 먼저 도교에
수용된 불교의 보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불교적 도교의 제신
불교의 관음신앙은 西晋의 축법호와 後晋의 구마라집이 『법화경』을 번역하면서 「관세음보살
보문품」이 유행하며 급속히 발전하였다. 관세음보살을 도교에서는 관음대사라고 칭하면서
존숭하고 있는데, 중국의 도교사원에는 그를 모신 觀音殿을 많이 볼 수 있다. 대승불교 신앙의
대상인 관세음보살이 민중적인 귀의의 대상이 되어 광범위하게 환영받고 있으며, 그것이 도교의
한 신으로 수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관세음보살을 숭배하는 풍습은 이미 불교가 도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宋朝이전의
관세음보살은 남성의 모습이었지만 도교에서도 관세음보살을 신앙하면서 도교의 慈航真人과
더불어 관세음보살이 동일시되었고, 송대 이후로는 여성으로 표현되었다. 관세음보살은 도교와
민간의 신앙으로 흥성했고 도교에서는 “觀音大士”, “慈航真人”, “慈航大士”등으로 부른다. 민간
에서 관음은 부녀자와 아동을 구제하고 임신부의 순산을 돕는 것으로 여긴다.
斗姆元君은 도교의 여신이며 북두의 여러 별의 어머니이다. 斗라는 말이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들의 어머니란 뜻이다. 이 여신은 도교신앙 가운데 비교적 늦게 출현했지만 지위는 매우 높다.
원래 불교의 摩利支天[Marīci,음역으로는 陽炎⋅威光⋅陽光이라 함] 신앙에서 유래한 것인데,
마리지천은 당나라 이전에 중국에 수입되었다. 이 마리지천은 관세음보살의 화신35)으로
광대한 공덕의 힘을 갖추어 능히 消災⋅除障⋅增福⋅滿願을 할 수 있는 보살이다.
35)「一切如來大祕密王未曾有最上微妙大曼拏羅經」, ‘衪是從觀自在菩薩部所作
的變化相.’ (大正新脩大藏經 卷18, No.889).
두모원군상은 이 불교의 마리지천의 형상을 본 딴 것이다. 다시 말해서 四面⋅三目⋅八臂와 座下에
金豕가 있는 형태인데 두모원군은 이를 모방한 것이다.
慈航真人은 보타락가의 바위의 潮音洞 가운데 있는 한 女真이다. 商나라 때 여기에서 수도를
해서 지극한 도리와 신통을 얻었다. 세간의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발원하고 丹藥과 감로수로
사람들을 구제하여 慈航大士라고도 한다.36) 중국의 민간신앙에서는 일반적으로 慈航真人과
관세음보살을 동등하게 본다. 그러나 慈航真人은 관세음보살이 도교화한 형상인 것이다.
36) 徐道 編,「历代神仙通鉴」(台北: 中華世界資料出版社有限公司, 1976),
‘普陀落伽岩潮音洞中有一女真,相传商王时修道于此,已得神通三昧,
发愿欲昔度世间男女.尝以丹药及甘露水济人,南海人称之曰慈航大士.’
普賢真人은 중국의 소설「封神演義」에 등장하는 仙人으로 원시천존문하의 곤륜 12대사중의
하나이다. 그는 九宮山 白鶴洞의 주인으로, 木吒의 스승이며 뒤에 불교에 들어가 성불하고
보현보살이 되었다고 한다. 이 진인은 본래 중국의 도인이었는데 다음에 불교에 귀의하여
보현보살이 되었다고 하는 점이 이색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은 허다한 것으로 도교의
경전이나 인물들이 불교에서 차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文殊廣法天尊은 元始天尊 문하의 도교 “十二金仙”가운데 한 신선이다. 그는 五龍山 雲霄洞에
거주하며 주요제자로는 金吒이 있다. 이 천존의 원류는 문수보살이다. 불교의 대보살이었으며
대지혜를 갖추어 정혜를 함께 닦았고 복혜를 함께 닦았다. 이 보살은 옛날 인도의 사위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후에 석가모니불을 따라 출가했고, 석가모니불의 멸도 후에 그는
운산에 가서 五百仙人을 위해 12부경을 해석했다. 최후에는 출생지로 돌아가 니구타나무
아래서 결가부좌를 하고 열반에 들었다.37)
37)「文殊室利般涅盤經」, ‘文殊生於古印度舍衛國的一個婆羅門家庭 後隨釋迦佛出
釋迦滅度
중국불교에서는 山西省 五台山이 불경에서 말하는 “大振那”국의 五頂山이라고 본다. 이로 인해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설법도량으로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太乙救苦天尊은 간략히 太乙天尊, 혹은 救苦天尊이라고도 한다. 이 신은 東方長樂世界의
妙嚴宮에 거처하는데, 고통을 받고 죽은 영혼의 왕생을 인도할 수 있다.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불과 같다. 이 신은 좌우 보처로 보현진인과 문수진인을 봉안하기도 하고 비로자나불과
함께 봉안하기도 한다.
미륵불은 현대의 일관도를 비롯해서 도교사원에서 숭앙하는 대상으로 불교적 신앙이 광범위
하게 도교제신으로 수용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민중들에게는 이미 도교와 불교가
융합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2. 도교적 불교의 제신
도교가 영험 있는 불교의 보살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수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도교의 신을 융합하여 수용하였으므로 불교와 도교가 공유하는 대상도 적지 않다. 49재는
7⋅7재로도 병칭하는데, 그 시기를 주관하는 명부전의 시왕(十王)은 도교의 신이다.
‘열 명의 신’이라는 시왕은 지옥에 있으면서 죽은 자의 생전 죄업의 경중을 심판한다.
秦官대왕은 7⋅7재의 첫 7일을 관장하며, 刀山지옥의 관리자이다. 이 지옥은 산 위에 날카로운
칼 숲이 있어서 죄를 지은 이가 칼산 위에서 몸이 찢기는 형벌을 받는 곳이다. 진관대왕은 혹은
鐵床지옥의 왕으로도 묘사되며 손에는 圭를 들고 있으며38) 不動明王의 화신이다.
38) 대원사 티벳박물관,「조선불화 10대지옥」(보성: 대원사, 2005), p.13.
初江대왕은 7⋅7재의 두 번 째 7일을 관장하고 火湯지옥을 관리한다. 이 지옥은 계속해서 끓고
있는 큰 솥에 죄인을 빠뜨리는 곳이다. 초강대왕은 혹은 剝皮지옥의 왕으로도 묘사되며, 손에는
붓을 들었으며, 석가여래의 화신이다.
宋帝대왕은 세 번째 7일을 담당하고 寒氷지옥을 관리한다. 이 지옥은 나체로 얼음 위에서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로 형벌을 받는 곳이다. 그는 拔舌지옥의 왕으로 묘사되며, 손에는 규를
들었으며, 문수보살의 화신이다.
五官대왕은 7⋅7재의 네 번째 7일을 담당하고 劍樹지옥을 관리한다. 이 지옥은 칼에 찔리는
곳이다. 그는 혹은 鑊湯지옥의 왕으로 묘사되며 손에는 규를 들고41) 보현보살의 화신이다.
閻羅대왕은 7⋅7재의 다섯째 7일을 담당하며 拔舌지옥을 관리한다. 이 지옥은 손으로 입에서
혀를 빼내는 고통을 받는 곳이다. 혹은 碓磑지옥의 왕으로도 묘사되며, 손에는 붓을 들었고,
지장보살의 화신이다.
變成대왕은 7⋅7재의 여섯째 7일을 담당하고, 毒蛇지옥을 관리한다. 이 지옥은 맹렬한 독을
가진 독사들에게 물리는 곳이다. 혹은 刀山지옥의 왕으로 묘사되며, 한 손에 붓, 다른 한손에는
규를 들었으며,43) 미륵보살의 화신이다. 泰山대왕은 7⋅7재의 일곱 번째 7일을 담당하고,
鉅骸지옥을 관리한다. 염라대왕의 서기인데, 이 지옥은 톱으로 사지가 찢겨지고 배가 터지는
형벌을 받는 곳이다. 손에 규를 들었으며, 약사여래의 화신이다.
平等대왕은 망자의 백일을 관리하며, 鐵床지옥을 담당한다. 이 지옥은 활활 타는 화로 위의
철상에서 창과 불로 고통을 받는 곳이다. 혹은 衆合지옥의 왕으로 묘사되며, 손에 규를 들었으며,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都市대왕은 망자의 1주기 관리하며, 風塗지옥을 담당한다. 혹은 寒氷지옥으로 묘사되며,
아촉여래의 화신이다.
마지막으로 轉輪대왕은 망자의 3주기 관리하며, 黑暗지옥을 관리한다. 이 지옥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는 곳이다. 五道轉輪대왕이라고도 하며 손에 붓을 들었으며, 아미타여래의 화신이다.
일반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불교의 염라대왕은 시왕중의 다섯 번째의 왕이고 엄중하게 죽은
자들을 심판하지만, 사실은 지장보살의 화신이기도 하다. 지장보살은 이런 냉혹한 시왕인
판관들에게서 죽은 자를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살이다. 또한 그런 지장보살뿐 아니라
도교에서 유래한 시왕이 불보살의 화신이 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竈神은 옛날부터 火神과 관계가 있으며, 가정에서 주로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민간에서는 각
가정의 부엌에 조신을 모시고 일가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신으로 신앙하였다. 조신은 한
가정의 선행과 악행을 옥황상제에게 보고한다고 믿어진다. 한국에서는 조왕이라고 하여 오래된
사원의 부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원래 민간신앙을 도교에서 수용하여 권선징악적 성격을
갖는 도교의 신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조왕신앙은 중국에서 3세기경부터 가정의 부뚜막
벽함에 모셔진 민간신앙이었는데, 한국의 전통 불교사원에서도 면면히 부엌 신으로 숭배되어
왔었다.
칠성은 북두칠성의 신앙이다. 이곳에서는 복을 빌고 자식들을 원하는 사람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불교사원의 승려가 불사를 행하고 법요를 시작할 때 칠성을 청하는 법이 있으니 熾盛光
如來를 위로 하여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처로 삼고 北斗大成 七元星君을 右輔로 삼았다.48)
칠성각은 북두칠성을 신격화하여 모신 전각으로 도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48) 이능화,「조선도교사」(민족문화사, 1980), p.294.
산신은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고유한 전통으로 남아 있다. 산신각의 산신은 호랑이를 거느린
노인으로 묘사되어 도교와 융합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명산 靈地를 지정하여 五嶽이라고
불렀다.49) 남악인 衡山은 慧思가 머물면서 중국 천태종의 원천이 되었고, 당나라 시대에는
율종의 삼대중심지 중의 하나였다. 중악인 숭산은 달마대사가 머물면서 선종을 연 곳이다.
중국의 산은 신들이 깃들어서 신성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신이자 자연의 힘으로
간주했다.50)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 배불정책에 의해 산 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이미 산을 신성시 하고 산을 숭배하고 자연을 신성시하는 문화가 존재했다. 또 불교는 도교의
풍수지리설 등의 신비주의적 문화를 받아들여 산을 신성시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49) 동악 태산, 남악 형산(衡山), 서악 화산(華山), 북악 항산(恒山), 중악 숭산(崇山)이다.
50) Lawrence G. Thompson, Ibid, p.67.
Ⅴ. 결론
도교의 신비주의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秘意를 가지고 있다. 도교의
핵심철학서인 「노자」에 의하면 그 ‘도’를 인식하는 일 자체가 논리와 상식이 아닌 言語道斷,
直指人心의 체계로 신비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도를 인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불로장생의 양생을 중시하는데 이것이 신선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로장생을 누리려는 것은 허무한 꿈이기는 하지만 그 오랜 노력의 결과 의학과 건강법이
체계화되고 양생을 위한 수련법이 체계화되었다. 애초에는 신비스럽고 초상식적이던 꿈이
현실적인 수련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일면은 신비주의지만 일면은 냉엄한 과학인 셈이다. 도교의
내면의 양생을 통해 지상신선이 되는 이러한 방식은 불교의 佛身常住의 정토신앙과 만난다.
동시에 지상신선을 꿈꾸는 수련법으로 또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명상법으로 호흡과 좌선이
강조된다. 도교의 신비주의는 이처럼 견성성불을 목표로 하는 불교, 특히 선종의 수행법을
중국화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도교는 불교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역으로 4세기 이후 불교의
요소를 도입하여 그 교리의 체계화와 종교적 체계를 정비하려고 힘썼다. 종교단체로서의 조직적
교세가 없었던 도교가 조직과 의식을 갖춘 것도 불교의 수입에 따른 자극에서였다. 불교는 중국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신선방술과 內丹 수련과 같은 도교사상을 수용하여 융합적 입장을
가지고 민간에 전해졌지만, 세월이 흘러간 뒤에는 도교적 입장에서 탈피하여 중국불교로서의
독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초기에는 불교와 도교의 갈등보다는 도교적 사유를 통해 불교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차츰
불교철학의 본질이 잘 소개되면서 이른바 華夷觀에 입각해서 불교를 오랑캐의 종교라고
공격하는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살펴보자면 후일의 중국의 풍토에서는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경우가 많았다.
대승불교의 사상이 노장철학의 무위자연의 사상과 접촉하면서 거부감 없이 지식인들에게
소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불보살의 영험이 도교의 주요한 신과 동등하게 여겨졌고, 內의 수련은
그 목표는 달랐지만 호흡법이나 좌법 등에서는 상호융합적인 면이 많았다.
간화선은 도교의 청담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고 노장의 ‘無爲自然’의 가르침은
육조의 맥을 이은 마조의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라고 하는 선불교와 일치하며, 선문답
또한 청담의 격외담의 연장선상에 있다.
양재초복의 신앙에서는 불교의 관음신앙이나 문수, 보현보살이 주요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불교에서는 도교적인 十王, 竈王), 七星, 산악신앙을 비롯한 민간의 신앙을 수용하였다.
그럼에도 두 종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불교에서는 生老病死를 고통으로 인식하고
열반을 추구하는데 비해 도교에서는 생을 즐거움으로, 거기에다 오래 사는 것을 더 큰
즐거움으로, 不死의 신선이 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남녀 간의 성적인
즐거움을 통해 양생을 도모하는 방중술도 중시되었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는 성적 교섭을 통해
양생을 추구하는 방중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51)
51) 앙리 마스페로 저, 표정훈 역,「불사의 추구」(서울: 동방미디어, 2000), p.184.
불교는 고를 벗어나기 위해 금욕과 고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교는 기본적
으로 인간은 여유롭게 자유자재로 모든 쾌락을 즐기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52)
52) 葛兆光, 앞의 책, p.204.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자연에 따르는 것을 중시하지,
불로장생을 노골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불교는 신선사상 등에서 불로장생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현생에서 향락을 추구하는 五慾樂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生死로부터 자유로운 해탈을 더욱 중시했다. 도교의 신비주의를 수용했지만
불교의 지향점은 생사의 집착이 아닌 그 생사의 해탈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