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교리 및 수행

「淸淨道論」의‘七淸淨’成立의 意義와 漸進的 修行體系로서의 特性

실론섬 2016. 1. 24. 11:26

淸淨道論의‘七淸淨’成立의 意義와 漸進的 修行體系로서의 特性

이송곤/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과정 수료

 

목 차

Ⅰ. 序言

Ⅱ. 「淸淨道論」의 ‘七淸淨’의 淵源과 그 成立背景

    1. 初期佛敎의 ‘七淸淨’

       1) 十上經

       2) 驛馬車交代經

    2. 「淸淨道論」의 ‘七淸淨’의 敎學的 ․ 歷史的 背景

       1) ‘七淸淨’ 成立의 敎學的 背景

       2) ‘七淸淨’의 成立에 따른 歷史的 背景

Ⅲ. 「淸淨道論」의 ‘七淸淨’ 修行體系의 漸進的·次第的 特性

    1. ‘七淸淨’ 修行體系의 漸進的 特性

    2. ‘七淸淨’의 戒·定·慧의 次第性

Ⅳ. 結語 

 

[요약문]

붓다고사는 붓다 입멸후 1,0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시기인 A.D 500년경에「청정도론」을 저술하였다. 그가 붓다가 입멸한지 오랜 세월이 지난 시기에「청정도론」을 저술한 이유는 핵심 개념인 ‘칠청정’의 성립과정에 대한 고찰을 통해 알 수 있다.

 

「청정도론」의 서론에서 붓다고사가 계·정·혜 삼학의 구조로 주석하겠다고 밝히고 있듯이, 붓다고사는 붓다 이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계 · 정 · 혜 삼학의 정통성 위에 「청정도론」의 큰 틀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초기경전인『십상경』과『역마차교대경』에서 각각 설하는 ‘구청정’ 또는 ‘칠청정’의 개념을 당시 붓다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大寺派(Mahāvihāra; The Great Monastery)의 견지에서 채택하여 일곱 가지 청정 수행의 방법을 통해서 이것을 체계화하고 더욱 공고히 하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붓다고사는 ‘칠청정’의 체계화를 통해서 붓다의 정통성을 잇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칠청정’ 수행의 체계화는 본질적으로 붓다가『맛지마 니까야』에서 설한 ‘점진적 학습·점진적 실천·점진적 방법’ 등 점진적인 법과 율의 특성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교설의 차제에 따라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처럼 초기불교의 정통성을 잇는 ‘칠청정’의 수행체계는 철저하게 붓다의 정통성을 잇는 대사파의 견지가 반영된 상태에서 점진적인 특성을 띠고 저술되었다고 할 수 있다.

 

Ⅰ. 序言

 

붓다고사가 저술한「淸淨道論」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七淸淨’의 修行體系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그만큼 ‘七淸淨’의 수행체계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붓다고사가 붓다가 입멸한 후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시기인 5세기에 무슨 이유로 「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의 수행체계를 채택하여 논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더욱이「淸淨道論」처럼 戒 · 定 ․ 慧 三學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無碍解道」와「解脫道論」등에서도 ‘七淸淨’의 수행체계의 구조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가 굳이「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의 수행체계를 채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우리는 붓다 당시 사리풋타가 ‘七淸淨’의 수행체계를 설했기 때문에1)「淸淨道論」에서 借用하여 논했다고 말할 수 있다.

1)『디가니까야』의 ‘십상경’과『맛지마니까야』의 ‘역마차교대경’ 등에서 사리풋타는
    ‘七淸淨’을 설하고 있다.

 

그러나 ‘七淸淨’의 수행체계가 붓다 당시에 그의 제자들 사이에 수행방법으로서 유행했으므로 「淸淨道論」에서 이것이 논해졌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이 수행체계로 자리잡기까지의 성립과정을 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七淸淨’ 성립의 시초는 멀리는 각각『디가니까야』와『맛지마니까야』에 속하는「十上經」과 

「驛馬車交代經」에서 설하는 ‘九淸淨’ 또는 ‘七淸淨’으로 까지 遡及된다.

 

비교적 붓다의 원초적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 경전에 ‘九淸淨’ 또는 ‘七淸淨’이 설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붓다 당시에도 ‘七淸淨’이 流行하고 있었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七淸淨’이 수행체계로서 전해 내려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립과정이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이것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붓다고사는 붓다 이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戒·定·慧 三學의 正統을,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한 이후 내려오는 大寺派(Mahāvihāra; The Great Monastery)의 견지를 바탕으로「淸淨道論」에서 큰 틀로서 세우고자 하였으며, 또한 ‘七淸淨’, 즉 일곱 가지 청정 수행에 配對하는 방법을 통해서 이것을 더욱 체계화하고 공고히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둘째, 수행체계의 특성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붓다가『맛지마 니까야』에서 설한 ‘漸進的 學習 · 漸進的 實踐 · 漸進的 方法’ 등 漸進的인 法과 律의 特性에 맞추어 「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이 敎說의 次第에 따라서 설명되었다는 점이다.

 

이 글은 이처럼 初期佛敎의 정통성을 잇는 ‘七淸淨’의 수행체계가 붓다고사에 의해 당시 같이 流行하던 無畏山派(Abhayagiri Monastery)가 아니라 철저하게 붓다의 정통성을 잇는 大寺派

(Mahāvihāra; The Great Monastery)의 견지가 반영된 상태에서 저술되었으며, 또한『맛지마 니까야』에서 붓다가 설한 ‘점진적’ 수행체계에 따라서 ‘七淸淨’의 수행체계가 정립하였음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연구방법으로서 이 글은 ‘七淸淨’의 성립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고찰하기 위해 스리랑카의 연대기인 마하밤사(Mahavamsa)를 통해 알아보았고, 또한 ‘七淸淨’ 수행체계의 특성인 점진적 특성에 관해서는『맛지마 니까야』에 의해 알아보았다.

 

연구범위는 이미 연구목적에서 밝혔거니와 이 글은「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이 시대적으로 어떤 성립과정을 겪으며 성립되었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데 있다. 그러므로 붓다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大寺派(Mahāvihāra; The Great Monastery)의 견지에서 쓰여진「淸淨道論」에서, 大寺派(Mahāvihāra;The Great Monastery)와 이와 견해를 달리하는 붓다의 정통이 아닌 無畏山派(Abhayagiri Monastery)를 對比的으로 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그러 나 이들 두 파와 부파불교, 대승불교등과 상호 비교하여 논하는 것은 이글의 연구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므로 이것은 배제하기로 한다.

 

Ⅱ. 「淸淨道論」의 ‘七淸淨’의 淵源과 그 成立背景

 

1. 初期佛敎의 ‘七淸淨’

1) 十上經

이 경의 빨리어 제목은『다숫따라 숫따(Dasuttara Sutta)』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열 가지 마띠까(論母)를 설정한 뒤 분석하였으므로 다숫따라라고 하고, 일개조(ekaka)로부터 시작하여 십개조(dasaka)까지 갔다고 하여 다숫따라라고 하며, 또한 각각의 부문에서 열 가지씩 질문을 하여 구분하였기 때문에 다숫따라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2)

2) 각묵스님 옮김,『디가니까야』, (초기불전연구원, 2006), p. 469.

 

‘七淸淨’과 관련해서는 일곱 가지가 아니라 9개조, 즉 아홉 가지로 그 면모가 나타나고 있다. 사리풋타 존자는 아홉 가지 法을 닦아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을 닦아야 합니까? 아홉 가지 청정의 주요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들입니다. 

① 戒淸淨은 淸淨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② 마음淸淨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③ 見淸淨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④ 疑心을 제거함에 의한 淸淨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⑤ 道와 道 아님에 대한 知와 見에 의한 淸淨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⑥ 도 닦음에 대한 知와 見에 의한 淸淨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⑦ 知와 見에 의한 淸淨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⑧ 통찰지에 의한 淸淨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⑨ 解脫에 의한 淸淨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입니다.

DN Ⅲ p.524. 

Nava dhammā "Katame nava dhammā bhāvetabbā? Nava pārisuddhipadhāniyaṅgāni. 

Sīlavisuddhi pārisuddhpadhāniyaṅgaṃ, cittavisuddhi pārisuddhipadhāniyaṅgaṃ,  

diṭṭhivisuddhi pārisuddhi padhāniyaṅgaṃ, kaṅkhāvitaraṇavisuddhi pārisuddhpadhāniyaṅgaṃ, maggā maggañāṇadassana visuddhi  pārisuddhipadhāniyaṅgaṃ paṭipadāñāṇadassana 

visuddhi pārisuddhipadāniyaṅgaṃ, ñāṇadassanavisuddhi pārisuddhipadhāniyaṅgaṃ,  

paññāvisuddhi pārisuddhipadāniyaṅgaṃ, vimuttivisuddhi  pārisuddhipadhāniyaṅgaṃ. 

Ime nava dhammā bhāvetabbā." 

 

「淸淨道論」에서는 일곱 가지, 즉, ‘七淸淨’으로 나타나지만 『十上經』에서는 통찰지에 의한 청정과 해탈에 의한 청정이 ‘七淸淨’에 추가되어 ’九淸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의 빨리어는 ‘pārisuddhi padhāniyaṅgaṃ’이다. 각묵스님은 이처럼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논자는 이것을 ‘완전한 청정이 되도록 하는 정근지(精勤支)’라고 번역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padhāniyaṅga’는 “ ‘padhāniya’ + 

‘aṅga’ ” 즉, 精勤의 支라는 의미가 되고, 따라서 완전한 청정을 위해서 정근의 요소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즉, 완전한 청정이 되도록 정근하는 데에서 아홉 가지 청정이 각각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2) 驛馬車交代經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으로『맛지마 니까야』의「驛馬車交代經」에 나타난다. 즉, 사리풋타 존자와 뿐나 존자는 이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하고 대답한다.

 

존자시여, 이것에 관해 이제 그대에게 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여기 이 비유로 어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존자시여, 예를 들면 사왓띠에 살고 있는 꼬살라 왕 빠세나디에게 사께따에 어떤 긴급한 용무가 있다고 합시다. 이제 그를 위해 사왓띠와 사께다 사이에 일곱 대의 역마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사왓띠를 나오면서 내전의 문에 있는 첫 번째 역마차에 올라탑니다. 첫 번째 역마차로 이제 두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첫 번째 역마차를 보내고 두 번째 역마차에 올라탑니다. 두 번째 역마차로 이제 세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두 번째 역마차를 보내고 세 번째 역마차에 올라탑니다. …… 다섯 번째 역마차로 이제 여섯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다섯 번째 역마차를 보내고 여섯 번째 역마차에 올라탑니다. 여섯 번째 역마차로 이제 일곱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여섯 번째 역마차를 보내고 일곱 번째 역마차에 올라탑니다.

MN .1.3.4, 『Rathavinīta suttaṃ」

"Tena hāvuso upamaṃ te karissāmi. Upamāyapidhekacce viññū purisā bhāsitassa atthaṃ 

ājānanti. Seyyathāpi āvuso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sāvatthiyaṃ paṭivasantassa 

sākate kiñcideva accāyikaṃ karaṇīyaṃ uppajjeyya, tassa antarā ca sāvatthiṃ antarā ca 

sāketaṃ satta rathavinītāni upaṭṭhapeyuṃ. Atha kho āvuso rājā pasenadi kosalo sāvatthiyā 

nikkhamitvā antepuradvārā paṭhamaṃ rathavinītaṃ abhirūheyya paṭhamena rathavinītena 

duti yaṃ rathavinītaṃ pāpuṇeyya, paṭhamaṃ rathavinītaṃ vissajjeyya, dutiyaṃ rathavinītaṃ 

abhirūheyya. Duti yena rathavinītena tatiyaṃ rathavinītaṃ pāpuṇeyya, dutiyaṃ rathavinītaṃ 

vissajjeyya, tatiyaṃ rathavinītaṃ abhirūheyya. …pañcamaṃ rathavinītaṃ abhirūheyya. 

Pañcamena rathavinītena chaṭṭhaṃ rathavinītaṃ pāpuṇeyya, pañcamaṃ rathavinītaṃ 

vissajjeyya, chaṭṭhaṃ rathavinītaṃ abhirūheyya. Chaṭṭhena rathavinītena sattamaṃ 

rathavinītaṃ pāpuṇeyya, chaṭṭhaṃ rathavinītaṃ vissajjeyya, sattamaṃ rathavinītaṃ 

abhirūheyya. Sattamena rathavinītena sāketaṃ anupāpuṇeyya antepuradvāraṃ“

 

존자시여, 그와 같이 계청정은 마음청정을 위한 것입니다. 마음청정은 견청정을 위한 것입니다. 견청정은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을 위한 것입니다.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은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을 위한 것입니다. 도와도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은 도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을 위한 것입니다. 도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은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을 위한 것입니다.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은 취착이 없는 완전한 열반을위한 것입니다. 이 취착이 없는 완전한 열반을 위해 세존의 문하에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입니다.

MN .1.3.4, 『Rathavinīta suttaṃ』, 

Evameva kho āvuso sīlavisuddhi yāvadeva cittavisuddhatthā. Cittavisuddhi yāvadeva 

diṭṭhivisuddhatthā. Diṭṭhivisuddhi yāvadeva kaṅkhāvitaraṇavisuddhatthā. 

Kaṅkhāvitaraṇavisuddhiyāvadeva maggāmaggañāṇadassanavisuddhatthā. 

Maggāmaggañāṇadassanavisuddhi  yāvadeva paṭipadāñāṇadassanavisuddhatthā. 

Paṭipadāñāṇadassanavisuddhi yāvadeva  ñāṇadassana visuddhatthā. äāṇadassanavisuddhi 

yāvadeva anupādāparinibbānatthā.  Anupādā parinibbānatthaṃ kho āvuso bhagavati 

brahmacariyaṃ vussatīti.

 

이상 두 존자 사이의 대화를 보면 일곱 대의 역마차에 비유에서 일곱대의 역마차를 갈아 타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처럼, 비구가 일곱 가지 청정의 수행단계를 차례로 수행하여 열반이라고 하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앞의『十上經』에서 설하는 ‘아홉 가지 청정’보다『驛馬車交代經』은 ‘일곱 가지 청정’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보다 자세하게 체계적이고 次第的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은「十上經」에서는 ‘아홉 가지 청정’이 마띠까(論母)의 法數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간단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고, 반면에 맛지마니까에 속하는驛馬車交代經의 경우에는 法數 중심이 아니므로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설해졌기 때문이다.

 

2. 「淸淨道論」의 ‘七淸淨’의 敎學的 ․ 歷史的 背景

1) ‘七淸淨’ 成立의 敎學的 背景

논자는 이상과 같이「十上經」과「驛馬車交代經」에 나타난 ‘七淸淨’이 후대인 A.D 5세기경에 무엇 때문에 붓다고사에 의해「淸淨道論」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주목한다.

 

『디가니까야』와『맛지마니까야』가 설해진 연대와「淸淨道論」이 저술된 연대 사이에 무려 1,000여년 가까이 세월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이 수행체계로서 채택되어 논해졌다는 것은 ‘七淸淨’이 敎學的으로「十上經」과「驛馬車交代經」을 통해 이후 꽤 유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은 당시 上座部가 敎學的으로 발전되어 온 단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각묵스님에 의하면,6) 당시 上座部에는 세 가지 층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층에는 빠알리 經藏(Sutta Pitaka)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층에는 論藏(Abhidhamma Pitaka)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담마상가니(法集論)」와「위방가(分別論)」와「빳타나(發趣論)」는 상호 관련을 갖고 놓여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층에는「淸淨道論」을 지은 붓다고사가 이전의 싱할리어로 된 자료를 모아 놓았던 것을 빠알리어로 편집하고 번역하여 완성한 주석서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6) 붓다고사스님 지음․대림스님 옮김,「청정도론 1」, (초기불전연구원, 2011), pp.53-64.

 

당시 上座部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세 가지 층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여기에서 하지 않는다. 다만「淸淨道論」은 이러한 세 가지 층 가운데 세 번째 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각묵스님이 언급하고 있듯이, 깨달은 성자들의 경지들을 논하는 교학체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실천 수행함으로써 法의 刹那性과 緣起性을 발견하고 체득하는 철저한 수행체계의 특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것은 붓다고사가「淸淨道論」을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당시 스리랑카에서 유행했던 불교사상을 취합해서 발표한 것이라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즉, 붓다고사는 저술가의 입장이 아니라 編著者의 입장에서 당시 실천을 강조하는 수행체계로서 流行하던 ‘七淸淨’의 수행체계를「十上經」과「驛馬車交代經」에서 발견하고, 이들을「淸淨道論」에 포함시켜 ‘七淸淨’의 구조로 완성했다고 볼 수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체계라고 할 수 있는 ‘七淸淨’을 「淸淨道論」을 저술할 때 그 구조로서 채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점이 ‘七淸淨’의 성립이 되는 것이다.

 

2) ‘七淸淨’의 成立에 따른 歷史的 背景

「十上經」과「驛馬車交代經」에서 설하는 ‘七淸淨’은 실천적 수행체계로서「淸淨道論」에서 방대한 모습으로 체계화된다.

 

「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은 戒․定․慧 三學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 모습이 나타난다. 즉, 戒淸淨은 戒學에, 마음淸淨은 定學에, 見淸淨․疑心을 제거함에 의한 淸淨․道와 道 아님에 대한 知와 見에 의한 淸淨․道닦음에 대한 知와 見에 의한 淸淨․知와 見에 의한 淸淨 등은 慧學에 배대되는 형태로 나타난다.9)

9) 각묵스님, 앞의 책, pp.464-465.

 

「淸淨道論」은 다음을 보면 戒를 굳건히 지키는 바탕위에 三昧, 즉, 禪定[定]을 이루고, 그런 다음에 통찰지, 즉, 慧로서 渴愛의 그물을 풀고 자르고 부수어 버림으로써 엉킴을 푼 자가 되어 공양을 받을만한 자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사람이 땅위에 굳게 서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을 잡고 큰 대나무 덤불을 자르는 것처럼, 戒의 땅위에 굳게 서서, 三昧의 돌 위에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위빳사나 통찰지의 칼을, 精進의 힘으로 노력한 깨어있는 통찰지의 손으로써 잡은 뒤, 자기의 상속에서 자란 渴愛의 그물을 모두 풀고 자르고 부수어버릴m것이다. 그는 道의 순간에 엉킴을 푼다고 한다. 그는 果의 순간에 엉킴을 푼 자

가 되어 신을 포함한 세상에서 최상의 공양을 받을만한 자가 된다."10)

10) 붓다고사스님 지음․대림스님 옮김, 앞의 책, pp.33-34.

 

이상은 붓다의 가르침을 戒․定․慧 三學으로 설명하고 있다. 戒를 설하는 戒淸淨에서 이처럼 戒․定․慧  三學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나머지 ‘여섯 가지 청정’의 수행법이 次第로 나타남을 말해주는 것이다.

 

붓다고사는 이처럼 戒․定․慧 三學의 구조로 골격을 세워 붓다 이래 初期佛敎의 공통된 방법을 그대로 잇고 있는 것이다. 즉, 붓다고사가「淸淨道論」에서 ‘七淸淨’에 배대한 戒․定․慧 三學의 구조는 「淸淨道論」에서 그가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는「無碍解道」11)에서도 같은 戒․定․慧 三學의 구조로 나타나고 있고, 이후 저술된「解脫道論」에서도 戒․定․慧 三學의 구조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12) 그러나「淸淨道論」의 ‘七淸淨’의 구조는「無碍解道」와「解脫道論」등에서는 ‘七淸淨’의 구조로 나타나지 않는다.13)

11) 水野弘元은 ?無碍解道にっぃて? (?パ-リ論書硏究?, 東京; 春秋社, 1997), pp.110-112; 
    임승택 옮겨지음(2001),「빠띠삼비다막가역주; Translation and Annotation of paṭisam 
    bhidāmagga」, p.13. 「淸淨道論」이「無碍解道」를 52회나 인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12) 解脫道論(T.32) 優波底沙 梁言大光造; 梁扶南三藏僧伽婆羅譯, ‘分別戒品 第二’와 ‘分別定品 
    第四’, 그리고 ‘分別慧品 第十’ 등에서 戒․定․慧 三學의 구조로 나타난다.
13) 解脫道論(T.32) 優波底沙 梁言大光造; 梁扶南三藏僧伽婆羅譯, 因緣品 第一, 分別戒品 第二, 
    頭陀品 第三, 分別定品 第四, 覓善知識品 第五, 分別行品 第六, 分別行處品 第七, 行門品 
    第八之一, 行門品之二, 行門品之三, 行門品之四, 行門品之五, 通品 第九, 分別慧品 第十, 
    方便品 第十一之一, 方便品之二, 分別諦品 第十二之一, 分別諦品 第十二之二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러므로「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의 수행체계가 戒․定․慧 三學에 배대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붓다고사가 초기불교 이래 전해 내려오는 戒․定․慧 三學의 전통위에 初期佛敎 經典인「十上經」과「驛馬車交代經」에 나타나는 ‘七淸淨’의 체계를 차용하여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이「淸淨道論」의 ‘七淸淨’이 나타내는 특색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붓다고사가「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을 戒․定․慧 三學에 배대해 편집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 그가 활동하던 A.D. 5세기경 이전까지 스리랑카 뷸교의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스리랑카의 불교전래는 마힌다(Mahinda) 장로가 스리랑카에 부친인 아쇼카왕 때 3차로 결집된 三藏(Tipitaka)을 전하러 오면서부터이다.

 

스리랑카는 B.C 1세기 왓따가마니(Vaṭṭagāmani Abhaya, B.C. 161-137)왕의 시대 이전까지는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Mahinda) 장로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진 大寺派(Mahāvihāra; The Great Monastery)가 이때까지 왕실의 호의로 경쟁자가 없는 상태 있었다. 그리하여 大寺派는 수행이 뛰어난 고결한 비구들의 명성을 보존하였다. 그러나 왓따가마니 왕의 시대에 이르러 상황은 이전과 달라진다. 無畏山派(Abhayagiri Monastery)가 그에 의해 세워짐으로써 분열이 일어나 폭동으로 전반적인 상황이 변하게 되었다고 전한다.14)

14) Bhadantācariya Buddhaghosa; translated by Bhikkhu Ñānamoll, The Path of Purification 
    Visuddhi Magga (Singapore: Buddhist Meditation Center, 1956), p.ⅹⅱ. 

 

그러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15), 왓따가마니 왕 때에 바라문 띳사(Tissa)가 모반을 일으키고, 또한 기근과 인도 타밀족의 침략까지 있게 되어 왕은 망명을 하고, 비구들은 스리랑카 남부나 인도로 피난가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15) 붓다고사스님 지음․대림스님 옮김, 앞의 책, p.45.

 

바라문 띳사의 모반 이후 14년 동안 스리랑카 남부나 인도로 피난을 갔다가 돌아온 왓따가마니 왕은 無畏山寺를 세우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붓다로부터 내려오는 正統 上座部를 그대로 이은 大寺派에서 탈퇴하여 無畏山派로 分派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大寺派는 이제까지 口傳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빠알리 三藏(Tipitaka)을 문자로 기록하였다. 大寺派는 왓따가마니 왕이 알지 못하게 지방으로 가서, 처음으로 三藏(Tipitaka)을 문자로 쓰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였다.

 

이와 같이 大寺派에서 三藏(Tipitaka)을 처음으로 문자로 쓰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게 된 동기는 우선적으로 왕의 후원이 끊어졌으므로 더 이상 口傳으로 三藏(Tipitaka)을 傳承하기 힘들었으며, 더욱이 왕이 大寺派에서 三藏(Tipitaka)을 문자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것을 알게 될 경우에 인도 신흥사상의 異說을 넣으려고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와 같이 대사파로부터 무외산파가 분파하는 일이 발생한 것은 당시 시대적인 상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붓다고사가 활동하던 시대 이전의 수세기 동안 발생했던 주요 일들을 기록한 연대기에 의하면16), 당시 시대적인 상황은 인도 대륙에서 싼스크리트 불교문헌이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 왔으며, 따라서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싼스크리트어가 국제적 문화의 중심언어가 되는 과정에 있었다. A.D 1세기 무렵 인도의 싼스크리트 기반인 소승(Hinayana)과 대승(Mahayana)의 불교는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나타내어 해외에 전파되고 있었다.

16) Bhadantācariya Buddhaghosa; translated by Bhikkhu Ñānamoll, op.cit., pp. p.x-p.ⅹⅲ.

 

그러므로 이러한 시기에 無畏山派(Abhayagiri Monastery)는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비중있고 발전하고 있는 사상을 연구하고 옹호하는 데 치중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大寺派(Mahāvihāra; The Great Monastery)는 오직붓다의 정통성을 고수하려고 하였으므로 새로운 사상에 접할 수가 없었다.

 

아쇼카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가 스리랑카에 붓다 정통의 상좌부 불교를 전래한 이후 정통인 ‘대사파’ 와 정통이 아닌 ‘무외산파’의 대립이 왕이 바뀔 때마다 있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大寺派에서 분열되어 나온 無畏山派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가 살펴봄으로써 大寺派가 붓다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無畏山派는 왓지뿟따까(Vajjiputtaka; 犢子部)의 『담마루찌 니까야(Dhammaruci Nikāya)』를 그들의 所依經典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방등부(Vetuya Pitaka)」또한 받아들였다고 전한다.17)

17) 붓다고사스님 지음․대림스님 옮김, 앞의 책, p.45.

 

『담마루찌 니까야(Dhammaruci Nikāya)』는 다음과 같은 유래에서 비롯된다.

 

마하밤사에 의하면18), 띳사(Tissa)의 추방 이후 담마루찌(Dhammaruci)라고 하는 인도인 스승의 사상들에 집착하는 적은 규모의 승려들이 스리랑카에 도착하였는데, 이러한 사상들은 犢子部(Vajjiputtaka)19)의 異論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18) Thera Mahanama-sthavira; Douglas Bullis The Mahavamsa; The Great Chronicle of 
    Sri Lanka,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sian Humanities Press, 1998), p. 324.
19) 部執異論 一卷(T.49), 天友大菩薩造 陳 天竺三藏真諦譯; ……於此第三百年中.從說一切
    有部.又出一部. 名可住子弟子部…… 部執異論에서는 犢子部는 ‘可住子弟子部'라고 불려
    지기도 하였다.

 

담마루찌(Dhammaruci)가 속했던 派는 왓지뿌트라(Vajjiputra; 독자부)라고 알려졌고, 담마루찌 승려들은 아바야기리(Abhayagiri) 절에 머물렀다.

 

犢子部에 속하는 담마루찌 승려들은 죽은 후에 계속하는 것, 즉, 지속하는 개인적 실체인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阿羅漢도 완전한 깨달음의 지혜로부터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大寺派의 교리체계에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이었다. 大寺派의 승려들은 이러한 주장들을 붓다가 설한 견해와는 거리가 먼 매우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죽은 후에 계속하는 것, 즉, 지속하는 개인적 실체인 영혼이 있다’고 하는 담마루찌 승려들의 주장은 「異部宗輪論」에서 말하는 ‘謂補特伽羅非即蘊離蘊’20)에 해당하며, 이것은 붓다가 설한 ‘無我說’에 배치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非有爲非無爲’의 不可說的인 不滅의 我體’로서 현재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미래에도 영원히 존속하는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한다.21)

20) 異部宗輪論(T.49), 世友菩薩造 三藏法師玄奘譯; “有犢子部本宗同義.謂補特伽羅非即蘊離蘊. 
    依蘊處界假施設名.諸行有暫住.亦有剎那滅.諸法若離補特伽羅.無從前世轉至後世. 依補特伽
    羅可說有移轉.”
21) 高井觀海,「小乘佛敎槪論」, (東京: 山喜房佛書林, 昭和 五十三年), p. 104.

 

그러므로 大寺派는 조금이라도 인도에서 새로운 사상이 유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으며, 異質的인 것으로 간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하밤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바야기리는 인도에서 유입하는 새로운 사상들을 가지고 오는 방문객들을 환영하였다. 반면에 大寺派는 외부로부터 도입하는 어떤 새로운 것도 반대하였다.”22)

22) Thera Mahanama-sthavira; Douglas Bullis The Mahavamsa; The Great Chronicle of 
    Sri Lanka, op.cit., p.325.

 

그러므로 붓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을 스리랑카에 전한 마힌다(Mahinda)에 의해 세워진 교단에게 새로운 사상들을 가지고 인도로부터 도래하는 새로운 방문객들은 비정통성이었고, 이러한 비정통성은 異端과 동등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고 하겠다.23)

23) loc.cit

 

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를 붓다고사가 도외시할 수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한편, 5세기는 시대적으로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꽃을 피운 시대이다. 이 시기에 인도에서 활약한 世親24)은 아비달마구사론을 저술하였으나, 이후 大乘에 속하는 唯識으로 사상을 전환한 사람이다.

24) 히라카와 아키라,「인도불교의 역사상」, 이호근 옮김(민족사, 1994), p.165. 히라카와 
    아키라는 세친이 320년-400년 경 사람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450년 경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고 말한다.

 

그러나 世親이 有部의 說인 아비달마구사론을 저술하였다가 大乘인 唯識思想으로 思想의 전환을 했다고 해서 이 시기에 大乘佛敎 思想이 인도에서 크게 발달하였고,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것은 A.D. 399년에 중국에서 인도로 求法하러 떠난 法顯이 저술한 「법현전」에 나타난 당시 사찰의 동향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당시 인도에는 小乘을 학습하는 절과 大乘을 학습하는 절, 그리고 小乘과 大乘을 함께 학습하는 절 등이 있었다고 「법현전」은 전한다.25)

25) 위의 책, p.147.

 

붓다고사는 이처럼 小乘과 大乘이 混在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붓다의 정통성을 세우고자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 니까야에 대한 주석서를 이때 저술하였던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그리고 때마침 스리랑카 大寺派(Mahāvihāra; The Great Monastery)의 요청에 의해, 아니면 붓다고사의 자청에 의해 스리랑카로 건너가서「淸淨道論」을 저술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하밤사(Mahavamsa)에는 “ ··· 레와따 장로가 그것을 보고 ‘여기는 단지 성전(Pāli)만 남아 있을 뿐이고 주석서(Aṭṭhakathā)는 남아 있지 않으며 스승들의 학설도 조각나버리고 더 이상 전해오지 않는다네. 그러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싱할리 주석서가 아직 보존되어 있다네. 그것은 붓다가 가르치셨고 사리뿟따 등이 합송한 그대로 3차 결집에 의해 전승된 것이라네. 그것은 지혜가 구족하신 마힌다 장로가 바르게 주석하는 방법에 따라 싱할리어로 옮긴 것이라네. 그곳으로 건너가게. 가서 그것을 배우고 마가다어로 다시 옮기게. 그러면 온 세상에 큰 이로움이 될 것일세.”라고26) 하여, 스리랑카 大寺派의 요청에 의해 붓다고사가 스리랑카로 건너 간 것이 아니라 레와따 장로의 권유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26) 붓다고사스님 지음․대림스님 옮김, 앞의 책, p.38. 

 

한편으로는 붓다고사가 스리랑카로 건너가기 이전에 남인도 마유라루파(Mayūrarūpa)라고 하는 항구나 간치푸라(Kañcīpura)라고 하는 곳의 대사파의 절에서 상좌부의 장로들과 함께 머무르면서 학문적 交流가 있었다는 說도 전해진다.27)

27) 森 祖道,「パ-リ 佛敎註釋文獻の硏究」, (山喜房佛書林, 昭和 59年), 508面.

 

마유라루파는 남방 상좌부가 盛行했었던 곳이라는 說이 있으므로28) 붓다고사가 상좌부 절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 준다.

28) loc.cit.

 

어쨌든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의해 저술한「淸淨道論」의 서론에서 붓다고사는 붓다의 고유한 말씀을 지키고 전해 온 大寺派의 견지29)에 따라「淸淨道論」이 저술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29) 대사파는 아쇼카왕의 제3결집때 확립한 붓다 정통의 상좌부불교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위대한 성인[大聖]이신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 즉 戒와 그 밖의 것[定과 慧를 말한다]으로 나뉘어진 것을 실답게[如實] 그 의미를 주석하리라. 승리자의 가르침, 즉 불교에서 출가를 하여 매우 어렵게 얻었으나, 戒 등을 포함하여 [sīlādisangahaṃ] 안온하고 바른 청정한 도를 실답게[如實] 알지 못하여 청정하지 못한 수행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기쁨이 되는 지극히 청정한 지혜에 의한 견해인, 대사(Mahāvihāra)에 머물던 분들의 가르침의 방식에 의지한 청정도론을 설하리라. 청정하지 않아 청정을 원하는 모든 분들은 나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할지어다."30)

30) C. A. F. Rhys Davids, The Visuddhi-Magga of BuddhaGhosa, (London: The Pali 
    Text Society, 1975), p.2.

 

서론이 나타내는 요지는 우선 전통적인 붓다의 말씀의 골격인 戒․定․慧 三學을「淸淨道論」의 큰 테두리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사(Mahāvihāra)에 머물던 분들의 가르침의 방식에 의지해 「淸淨道論」을 설하였다고 붓다고사는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七淸淨’의 수행단계가 대사(Mahāvihāra)가 견지해 온 붓다의 말씀의 정통성을 잇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처럼 보는 견해는 하나의 추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만한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大寺派를 중심으로 붓다가 설한 三藏(Tipitaka)의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노력을 모를리 없는 붓다고사로서는 붓다의 말씀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후대에 잇기 위해『디가니까야』의「十上經」과『맛지마니까야』의「驛馬車交代經」등 경전에서 설하는 ‘七淸淨’의 수행체계를 채택하여 戒․定․慧 三學의 구조를 중심으로「淸淨道論」에서 체계화했다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Ⅲ. 「淸淨道論」의 ‘七淸淨’ 修行體系의 漸進的․次第的 特性

 

 1. ‘七淸淨’ 修行體系의 漸進的 特性

‘七淸淨’은 수행과정이다. 출가 수행자가 일곱 가지 단계별로 수행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수행하는 과정에는 어떤 정해진 방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 본「驛馬車交代經」을 보더라도 ‘七淸淨’은 계청정이 완전히 이루어진 다음에 나머지 심청정 등 여섯 가지 수행 과정이 이루어진다고 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를 들어, 1학년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2학년, 3학년으로 진급하거나 계단을 올라갈 때 여러 계단을 한꺼번에 건너 뛰어 올라 고층에 올라가는 것처럼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차례와 단계가 수행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며, 거쳐야만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논자는 ‘七淸淨’의 수행과정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차례와 단계가 붓다 교설의 점진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붓다는 대중들을 상대로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고 되는대로 법을 설하였던 것이 아니다. 붓다는 계획을 세워 ‘漸進的’으로 법을 설하였는데, 이때 ‘漸進的’의 辭典的 意味는 ‘anupubba31)'로 ’successive, gradual, by andby‘로서 ’점차적으로, 계속해서, 차차‘의 의미가 된다.

31) http://dsal.uchicago.edu/ pts 빨리어 사전. (2012년 8월 17일 검색).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大海는 점진적으로 기울고(anupubba-ninna), 점진적으로 비스듬해지고(anupubba-pona), 점진적으로 깊어지니(anupubba-pabbhāra), 결코 곧은 절벽(처럼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na āyatakeneva papāto) 마치 그와 같이 파하라다야, 나의 法과 律에는 점진적인 學習과 점진적인 實踐과 점진적인 方法이 있을 뿐이지, 완성된 知識(aññā, Sk. ājñā)을 하나의 延長線에서 꿰뚫는 일은 결코 없다.(na āyatakeneva aññāpaṭivedho) ··· 파하라다야, 이것이 나의 律이 지니는 희유하고 일찍이 없었던 첫 번째 특징이다.32)

32) 최봉수, 「원시불교 교육의 방법론적 이념으로서의 점교성(漸敎性)에 대한 연구」, 
    「종교교육학연구」 vol. 1(1995), pp.120-121. 재인용; P.T.S. A.N.Ⅳ. "Mahāsamuddo 
    bhante, anupubbaninno anupubbapoṇo anupubbapabbhāro na āyatakeneva papāto. 
    Yampi bhante, mahāsamuddo anupubbaninno anupubbapoṇo anupubbapabbhāro na 
    āyatakeneva papāto, ayaṃ bhante, mahāsamudde paṭhamo acchariyo abbhuto 
    dhammo yaṃ disvā disvā asurā mahāsamudde abhiramanti."

 

大海의 비유에서 붓다는 자신이 설한 法과 律에는 점진적인 學習과 점진적인 實踐과 점진적인 方法이 있을 뿐이지 하나의 延長線에서 꿰뚫어 완성된 知識(aññā, Sk. ājñ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완성된 지식, 즉 깨달음은 점진적인 學習과 점진적인 實踐과 점진적인 方法에 의해 도달하는 목표가 되는 것이지, 단번에(ādikena) 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붓다는 설하고 있는 것이다.33) 이것은 순서에 의해 서서히 차근차근 하나하나 밟아가면서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33) 위의 글, p.120.

 

그리고 붓다가 法을 남에게 가르치는 원리에 대해 설한 것 가운데 漸進的 특성과 관련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아난다야, 남에게 法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난다야, 남에게 법을 가르치는 자는 다섯가지 요건을 안으로 확립한 뒤 남에게 법을 가르쳐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①‘점진적으로 설해야겠다.’라고 하며 남에게 법을 가르쳐야 한다. ②‘法門을 철견한 뒤 설해야겠다.’라고 하며 남에게 법을 가르쳐야 한다 ··· 34)

34) 위의 글, p.124.

 

이상의 논의는 붓다가 설한 法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漸進的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붓다가 설하는 法과 律이 점진적 특성을 지닌다는 것은 大衆들의 根機에 맞추어 法과 律이 점진적으로 설해졌음을 가리킨다. 즉, 法과 律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根機의 難易度에 따라서 法과 律이 점진적으로 설해졌다고 할 수 있다.

 

根機는 敎育的으로 볼 때 素質, 能力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이처럼 素質과 能力인 根機를 각기 다르게 지닌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필요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올바른 교화가 실천된다.

 

김용표는 올바른 敎化를 위한 敎育方法으로서 개인의 능력과 성향을 철저히 연구하고 이에 대응하여 적절한 가르침을 베풀어주는 差異心理學의 개별화의 원리가 다음과 같은『증지부 경전(Anguttara-nikāya)』에 있다고 보면서 근기에 관한 세 가지 범주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35)

35) 김용표, 「붓다의 교육원리와 隨機的 교수법: 진리와 방편의 역동적 연관성을 중심 으로 , 
   「종교교육학연구」제25권(2007), p.11

 

(a) 비옥한 토지에 뿌려진 좋은 씨앗과 같은 사람: 자신 내부에 선(kusala)과 불선(akusala)의 법을 갖는다. 이후 그의 善法은 사라지고 不善法이 드러났다고 판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부에 파괴되지 않는 善의 뿌리를 갖고 있어서 이 善의 뿌리들에서 그의 내부에서 善이 일어난다. 이러한 사람은 그 본성상 미래에 타락하지 않는다. 그는 비옥한 토지에 뿌려진 좋은 씨앗에 비유할 수 있다. 씨앗과 토지가 좋기 때문에 잘 자랄 것이다.

 

(b) 돌판 위에 뿌려진 좋은 씨앗과 같은 사람: 善과 不善의 法을 가지고 있으나 후에 그의 不善法은 사라지고 善法은 드러난다고 판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파괴되지 않는 不善의 뿌리들이 있어서 이들 不善의 뿌리들에서 不善이 일어난다. 이러한 사람은 본성상 미래에 타락한다. 그는 돌판 위에 뿌려진 좋은 씨앗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좋은 토대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자랄 수 없다.

 

(c) 비옥한 토지에 뿌려진 완전히 썩은 씨앗과 같은 사람: 善法과 不善法을 갖고 있었으나 善法은 없고 오직 不善만을 가지고 있음으로 판명된다. 이러한 사람은 죽은 뒤에 지옥을 향한다. 이 사람은 비옥한 토지에 뿌려진 완전히 썩은 씨앗에 비유할 수 있다. 씨앗이 썩어서 싹이 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붓다의 正統을 이어받은 ‘七淸淨’의 수행체계는 낮은 단계로부터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漸進的인 수행체계로 구성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七淸淨’의 수행체계는 대중들의 根機를 고려해 비교적 얕은 단계인 감각기관의 단속에 의한 戒의 청정으로부터 戒淸淨을 이룬 뒤에 차차 漸進的으로 禪定에 해당하는 心淸淨과 나머지 慧에 속하는 見淸淨 등 다섯 가지 청정의 수행체계를 밟는 과정으로 짜여진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디가니까야』의「十上經」과『맛지마니까야』의「驛馬車交代經등 경전에 나타난 ‘七淸淨’의 수행체계는「淸淨道論」에서도 마찬가지로 戒淸淨 ․ 心淸淨 ․ 見淸淨 ․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度疑淸淨] ․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道非道智見淸淨] ․ 도 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行道智見淸淨] ․ 지와 견에 의한 청정[智見淸淨] 등으로 동일하게 나타난다.

 

히라카와 아키라는 ‘七淸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36) 戒淸淨은 수행자가 계율을 청정하게 실행하는 것을 말하며, 心淸淨은 청정한 禪定을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8等至’라고 한다는 것이다.

36) 히라카와 아키라, 이호근 옮김, 앞의 책, p.224.

 

그런데 戒淸淨과 心淸淨은 다음 단계인 慧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뿌리[根]’라는 것이다. 그리고 見淸淨에서부터 智見淸淨까지 다섯 단계의 청정은 慧의 ‘몸통[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七淸淨’의 수행을 살펴보면, 아비담맛타 상가하에서는「淸淨道論」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戒淸淨’37)에 대해서는 네 가지 청정한 戒를 갖추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계목의 단속에 관한 戒, 감각기능[根]의 단속에 관한 戒, 생계의 청정에 관한 戒, 필수품에 관한 戒 등 네 가지를 실천 해야 한다는 것이다.

37) 대림스님·각묵스님 공동번역 및 주해,「아비담마 길라잡이」(하), (초기불전연구원, 2010),
    pp. 783-784.

 

‘心淸淨’38)은 마음을 한 끝으로 모아 집중함으로써 三昧를 닦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삼매는 두 가지가 있다. 즉, 近接三昧와 本三昧이다. 이러한 두 가지 三昧에 도달하는 것이 ‘心淸淨’이다.

38) 위의 책, p.789.

 

‘見淸淨’39)은 정신과 물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yāthāva-dassana)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정신과 물질을 분석하는 지혜라고 불려지기도 한다.「淸淨道論」18장에서는 四大와 十八界와十二處와 五蘊을 통해서 정신과 물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9) 위의 책, pp. 790-791.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度疑淸淨)’40)은 이와 같은 정신과 물질들의 조건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淸淨道論」19장에서는 이것을 정신과 물질에 대한 조건을 파악함으로써 三世에 대한 의심을 극복하고 확립된 지혜라고 말한다. 정신과 물질은 전생의 무명과 갈애와 취착과 업에 의해서 생기는 것, 즉 緣起法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40) 위의 책, p.792.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道非道智見淸淨)’41)은「淸淨道論」20장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명상의 지혜(sammasana-ῆaṇa)라고 불려진다.

41) 위의 책, pp. 792-793.

 

깔라파(kalāpa)의 명상을 통해서 물질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수승한 것이든, 먼 것이든, 가까운 것이든, 이러한 모두를 물질의 무리, 즉 色蘊이라고 간주한다. 그런 다음에 느낌[受]과 인식[想]과 상카라[行]들과 알음알이[識]를 각각의 무더기로 간주한다. 이렇게 무리로 모아 이것들을 無常․ 苦 ․ 無我라고 관찰하는 것이다.42)

42) 위의 책, pp. 793-794.

 

이 때 열 가지의 위빳사나의 경계, 즉, 광명․희열․경안․결의․분발․행복․지혜․확립․평온․욕구 등이 일어난다. 이러한 광명 등 열 가지 위빳사나의 경계를 장애라고 파악함으로써 도와 도 아님의 특징을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43)

43) 위의 책, pp. 795-796.

 

‘도 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行道智見淸淨)’44)은 이와 같은 열 가지 위빳사나의 경계에서 벗어나게 된 수행자가 생멸의 지혜로부터 수순하는 지혜에 이르기까지 아홉 가지 위빳사나의 지혜로서 無常․苦․無我라고 관하는 것을 말한다.

44) 위의 책, p.799

 

지와 견에 의한 청정(智見淸淨)45)은 ‘七淸淨’의 마지막 단계이다.「淸淨道論22장을 보면, 豫流道, 一來道, 不還道, 阿羅漢道와 이 네 가지 道에 대한 지혜가 지와 견에 의한 淸淨이라고 말하고 있다.

45) 위의 책, pp. 807-808.

 

이 단계는 이제까지의 凡夫의 種姓을 버리고 聖者의 種姓에 도달한 단계이다.46) 豫流道가 그 첫 단계이다.

46) 히라카와 아키라, 이호근 옮김, 앞의 책, p.225.

 

그러나 豫流道에서 阿羅漢道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버려야 할 법들이 있다. 그것은「淸淨道論」에서 설명하는 족쇄. 汚染源, 삿됨, 세간적인 법, 吝嗇, 顚倒, 매듭. 가지 않아야 함, 煩惱, 暴流, 束縛, 障碍, 固守, 取着, 잠재성향, 더러움,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不善業], 해로운 마음의 일어남 등 열여덟 가지 법들이다.47)

47) 대림스님 옮김,『앙굿따라니까야』 제6권 (초기불전연구원, 2007), p.367.

 

이러한 열여덟 가지 버려야 할 법들을 버림으로써 凡夫가 아닌 聖者가 된 비구 수행자는 비로소 성스러운 果의 맛을 체험하고, 果를 증득하게 된다.48)

48) 위의 책, p.400

 

 2. ‘七淸淨’의 戒·定·慧의 次第性

 ‘七淸淨’의 修行過程이 漸進的 특성이라고 하는 것은 次第, 즉, 차례에 따라 修行過程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七淸淨’이 첫번째 순서인 계청정에서 지와 견에 의한 청정까지 차례로 수행이 이루어져야 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붓다가 설한 法과 律이 漸進的 特性이므로 이러한 特性에 비추어 볼 때 法이 설해지거나 修行의 實踐에 있어서 次第, 즉 차례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붓다가 次第, 즉, 차례로 항상 가르침을 폈느냐 하는 것이다.

 

붓다가 설한 初期經典 가운데 보면 붓다는 어떤 경우에는 대중의 根機에 맞추어 法을 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法이 먼저이고 저 法이 나중이라고 설하고 있지 않다. 다만 산수목건련경에서 일반적인 法의 漸進的 次第性을 설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붓다의 法이 次第, 즉, 차례로 대중들에게 漸進的으로 설해졌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붓다가 사밧티의 鹿子母講堂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가나카목갈라나(Gaṇakamoggallāna)라는 바라문이 찾아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우리 算術師들이 산술사의 생활을 하기 위해 漸進的인 學習(anupubbasikkhā)과 漸進的인 實踐(anupubbakiriyā)과 漸進的인 方法(anupubbapaṭipadā)이 필요한데 곧 數를 셈하는 데 있어서 그러합니다. 고타마님이시여. 우리들은 제자를 얻은 뒤 처음에는 이렇게 數를 세게 합니다. 즉 ‘하나, 하나인 것, 둘, 둘인 것, 셋, 셋인 것, 넷, 넷인 것, 다섯, 다섯인 것, 여섯, 여섯인 것, 일곱, 일곱인 것, 여덟, 여덟인 것, 아홉, 아홉인 것, 열, 열인 것. 등’. 고타마님이시여.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백도 세게 하고, 그 이상도 세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타마님이시여. 당신의 法과 律(dhammavinaya)에도 이처럼 漸進的인 學習과 漸進的인 實踐과 漸進的인 方法을 설정할 수 있습니까?”

49) 최봉수, 앞의 글, p.119. 재인용함; PTS M.N.Ⅲ Gaṇakamoggallāna suttaṃ 

 

 그러자 붓다는 자신이 설한 가르침이 전반적으로 漸進的 가르침, 즉, 漸進的 過程으로 이루어졌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라문이여, 나의 法과 律에서도 漸進的인 學習과 漸進的인 實踐과 漸進的인 方法을 설정할 수 있다. 비유하면, 바라문이여, 능숙한 말 조련사가 資質이 좋고 血統이 좋은 말을 얻어 처음에는 재갈을 무는 것에 익숙하도록 시키고 이어서 더 이상의 동작을 시키는 것처럼, 바라문이여, 如來도 조련시켜야 할 丈夫를 얻어서 처음에는 이렇게 인도한다. 

 

①곧 ‘비구여, 너는 와서 戒律을 지니어라. 그리고 파티목카(pātimokkha) 戒本으로 스스로를 보호   하며 머물러라. 그리고 다닐만한 경계에서만 다니어라. 그리고 조그만 허물에서도 두려움을 보아라. 그리고 여러 가지 學處(sikkhāpada)를 받아 지니도록 하라.’라고 引導한다. ··· 그리고 如來     는 더 이상의 것으로 그를 引導한다. 

 

②곧 ‘비구여, 너는 와서 여러 感官(indriya)에서 그 문을 잘 지켜라.’ ··· 다시 如來는 더 이상의 것으로 그를 引導한다. 

 

③비구여, 너는 와서 음식물에서 그 양(matta)을 잘 알도록 하라. 음식을 먹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하며 먹도록 하라.’ ··· 다시 如來는 더 이상의 것으로 그를 인도한다. 

 

④곧 ‘비구여 너는 와서 覺醒狀態(jāgariya)를 유지하며 지내거라.’ ··· 다시 如來는 더 이상의 것으로 그를 引導한다. 

 

⑤곧 ‘비구여 너는 와서 정념정지(sati-sampajañña)를 갖추도록 하라.’ ··· 다시 如來는 더 이상의 것으로 그를 引導한다. ⑥곧 ‘비구여 너는 와서 空閒處(arañña) 등에서 혼자 앉고 눕도록 하라. ··· 그러면 그는 걸식한 후 跏趺坐로 앉은 뒤 몸을 곧게 세우고 前面에(parimukhaṁ) 正念(sati)을 확립시킨다. 

 

⑦그리고 세간에서의 慾心(abhijjha)을 버리어 慾心이 제거된 마음으로 지내면서 慾心에서 마음(citta)을 정화한다. 그리고 분노(byāpāda-padosa) ··· 둔함과 잠(thīna-middha) ··· 흥분과 우쭐댐(uddhacca-kukkucca) ··· 의혹(vicikicchā)을 버리어 의혹이 제거된 마음으로 지내면서 마음을 정화한다.’ ··· 그런 뒤 그는 

⑧初禪(paṭhama-jhāna) ···

⑨第二禪 ···

⑩第三禪 ···

⑪第四禪을 구족하여 지낸다. 

 

바라문이여, 有學(sekkha)이며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더 이상 없는 수행(yoga)에 의한 안식함을 획득하며 지내는 여러 비구가 있으니, 그들을 위해서는 나는 이상과 같은 모습의 교육을 베푼다(anusāsanīn).50)

50) 위의 글, pp.119-120 재인용함; PTS M.N.Ⅲ.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붓다는 戒→定→慧의 修行次第로 法을 설하고 있다. ①에서 ②까지는 戒와 관련된 것이고, ⑧에서 ⑪까지는 定에 관한 것이다. 慧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戒와 定에 의해 慧가 있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같은 戒→定→慧의 修行次第의 구조는「十上經과 「驛馬車交代經」등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淸淨道論」의 ‘七淸淨’에서도 이와 같이 戒→定→慧의 修行次第의 構造로 나타난다.

 

戒淸淨은 戒學에, 마음淸淨은 定學에, 見淸淨․疑心을 제거함에 의한 淸淨․道와 道 아님에 대한 知와 見에 의한 淸淨․道닦음에 대한 知와 見에 의한 淸淨 ․ 知와 見에 의한 淸淨 등은 慧學에 배대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七淸淨’의 修行過程은 戒→定→慧 次第의 漸進的 修行體系라고 할 수 있다.

 

Ⅳ. 결어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七淸淨’은「淸淨道論」에 처음 나타난 수행체계가 아니라, 이미 『디가니까야』와『맛지마니까야』에 각각 속하는「十上經」과「驛馬車交代經」에서 붓다의 제자인 사리풋타 존자의 설법이나 혹은 사리풋타 존자와 뿐나 존자 사이에 주고 받은 대화 가운데에서 ‘九淸淨’과 ‘七淸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붓다고사는 「淸淨道論」에서 붓다 당시에 유행했다고 볼 수 있는 수행법인 ‘七淸淨’을 인도대륙에서 대승불교가 꽃을 피우던 시기에 상좌부 계통의 전통 그대로 잇고자 戒․定․慧 三學의 체계 아래 ‘七淸淨’의 수행체계에 배대시켰다. 붓다고사가 이처럼 戒․定․慧 三學의 체계 아래 ‘七淸

淨’의 수행체계를 배대시킨 점은 일찍이 「無碍解道」나 이후 「解脫道論」에서 말하는 戒․定․慧 三學의 구조에서는 볼 수 없는 분명히 다른 특색이었다.

 

붓다고사가「淸淨道論」에서 ‘七淸淨’을 핵심 내용으로 삼게 된 것은 스리랑카에 마힌다가 불교를 전래한 이후 붓다의 정통성을 그대로 잇는 大寺派(Mahāvihāra; The Great Monastery)가 붓다의 정통을 벗어난 無畏山派(Abhayagiri Monastery)와 인도대륙에서 꽃피운 北方 部派佛敎나 大乘佛敎의 流入 등으로부터 붓다 고유의 가르침을 지키고자 노력해 온 時代的 背景을 이해하고 붓다의 正統性을 잇고자 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A.D 5세기경 사람인 붓다고사는 인도 上座部 出身 승려로서 스리랑카에 건너가기 전에 인도의 남부지방의 상좌부 사찰에 머물러 있다가 스리랑카에 건너가서 大寺派의 입장에서 붓다의 正統性을 이어「淸淨道論」에서 ‘七淸淨’으로 붓다의 교설을 체계화시켰다.

 

비록 A.D 4세기경 法顯이 인도에 갔을 때 小乘을 가르치고 배우는 寺刹과 大乘을 가르치고 배우는 寺刹, 그리고 小乘과 大乘을 같이 가르치는 寺刹을 보았다고 그의 저서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붓다고사는 붓다 교설의 정통성의 견지에서「淸淨道論」을 저술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成立過程에서 붓다의 正統을 그대로 잇고 있는 大寺派 기반인‘ 七淸淨’의 修行體系는 붓다의 敎說에서 비롯하는 漸進的 特性을 지닌다.

 

그것은 붓다는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자신의 法과 律에는 漸進的인 學習과 漸進的인 實踐과 漸進的인 方法이 있을 뿐이지, 완성된 지식을 하나의 延長線에서 꿰뚫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1학년에서 6학년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2학년, 3학년으로 건너 뛰어 진급하거나 계단을 올라갈 때 여러 계단을 한꺼번에 건너 뛰어 올라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단계가 필요하며, 이러한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이점은 修行過程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十上經」이나「驛馬車交代經」등 경전을 보면, 비교적 얕은 단계인 감각기관의 단속에 의해 戒淸淨을 이룬 뒤에 차차 漸進的으로 定에 해당하는 心淸淨과 나머지 慧에 속하는 見淸淨 등 다섯 가지 청정의 수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淸淨道論」에서 논하는 ‘七淸淨’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七淸淨’의 수행과정이 漸進的 特性을 지닌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修行이 次第, 즉 차례에 따라 修行過程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七淸淨’이 첫번째 순서인 戒淸淨에서 차례로 나머지 修行이 이루어져야 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산수목건련경」에서 붓다는 자신의 法과 律에서도 漸進的인 學習과 漸進的인 實踐과 漸進的인 方法을 설정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法과 律이 次第, 즉 차례로 戒律을 지니고 파티목카(pātimokkha) 戒本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지키도록 하고, 음식물의 양을 알고 먹으며, 또한 覺醒狀態(jāgariya)를 유지하고, 正念正智(sati-sampajañña)를 갖추어 初禪, 第二禪, 第三禪, 第四禪을 갖추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붓다는 戒→定→慧의 修行次第로 법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의 말씀에 淵源을 두고 있는 戒→定→慧의 修行次第의 구조는「十上經」과「驛馬車交代經」등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淸淨道論」의 序文에서도 戒를 굳건히 지키는 바탕위에 三昧, 즉, 定을 이루고, 그런 다음에 통찰지, 즉, 慧로서 渴愛의 그물을 풀고 자르고 부수어 버림으로써 엉킴을 푼 자가 되어 供養을 받을만한 자가 된다고 말하고 있듯이, 戒淸淨은 戒學에, 마음淸淨은 定學에, 見淸淨 ․ 疑心을 제거함에 의한 淸淨․道와 道 아님에 대한 知와 見에 의한 淸淨 ․ 道닦음에 대한 知와 見에 의한 淸淨․知와 見에 의한 淸淨 등은 慧學에 배대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淸淨道論」의 ‘七淸淨’도 戒→定→慧의 修行次第의 構造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