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47. 관찰자 경(vīmaṃsakasuttaṃ)

실론섬 2016. 4. 13. 10:50

MN 47. 관찰자 경(vīmaṃsakasuttaṃ)

 

48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빈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관찰하는 비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의 길을 알지 못할 때(마음의 질서를 알지 못할 때) '정등각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위해서 여래에 대해 검증해야 한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검증하는 자(vimamsaka)'라고 하셨다. 세 가지 유형의 검증하는 자가 있다. 뜻을 검증하는 자(attha-vimamsaka), 형성된 것들을 검증하는 자(sankhara-vimamsaka), 스승을 검증하는 자(satthu-vimamsaka)이다. "현자들을 검증하기 때문입니다."(상윳따 니까야 제3권 데와다하 경(S22.2)는 뜻을 검증하는 자를 말씀하신 것이다. "아난다여, 비구가 요소(界)에 능숙하고, 장소(處)에 능숙하고, 연기에 능숙하고,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에 능숙하면 이렇게 해서 그 비구는 현자요 검증하는 자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본서 제4권 많은 요소 경(MN115))에서는 형성된 것들을 검증하는 자를 설하셨다. 본경에서는 스승을 검증하는 자를 뜻한다."(MA.ii.378)  

 

488. "관찰하는 비구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 길을 알지 못할 때,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두 가지 법에서 여래를 검증해야 한다.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알 수 있는) 오염된 법들이 여래에게 있는가, 없는가?'라고. 그것을 검증하는 비구는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오염된 법들이 여래에게 없다.'라고 안다.  

 

*"'오염된 법들(sankilittha dhamma)'이란 오염원이 함께한 법들이다. 이 오염된 법들은 눈으로 알 수 있거나 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치 물이 출렁이거나 거품이 일면 물속에 물고기가 있다고 알 수 있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살생 등을 하거나 거짓말 등을 하는 자의 몸과 말의 행위들을 보거나 듣고 그 행위들이 근원인 마음이 오염되었다고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했다. "마음이 오염된 자의 경우 그의 몸과 말의 행위도 오염되었다."라고.(MA.ii.380)  

 

검증하는 그 비구가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오염된 법들이 여래에게 없다.'라고 알 때 그다음의 것을 검증한다.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섞인 법들이 여래에게 있는가, 없는가?'라고. 그것을 검증하는 비구는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법들이 여래에게 없다.'라고 안다.

 

*"'섞인 법들(vitimissa dhamma)'이란 때로운 어두운 법들이, 때로는 밝은 법들이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여래에게는 오직 밝은 법들만이 있을 뿐이다."(MA.ii.381)

 

검증하는 그 비구가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섞인 법들이 여래에게 없다.'라고 알 때 그다음의 것을 검증한다'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청정한 법들이 여래에게 있는가, 없는가?'라고. 그것을 검증하는 비구는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청정한 법들이 여래에게 있다.'라고 안다.

 

검증하는 그 비구가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청정한 법들이 여래에게 있다.'라고 알 때 그다음의 것을 검증한다. '이 존자는 이 유익한 법을 오래 전에 증득해 온 것인가, 아니면 최근에 증득한 것인가?'라고. 그것을 검증하는 비구는 '이 존자는 이 유익한 법을 오래 전에 증득해 온 것이고, 최근에 증득한 것이 아니다.'라고 안다.

 

검증하는 그 비구가 '이 존자는 이 유익한  법을 오래 전에 증득해 온 것이고, 최근에 증득한 것이 아니다.'라고 알 때 그다음의 것을 검증한다. '이 존자는 유명해지고 명성을 얻었다. 여기에 어떤 위험들이(허물들이) 없는가?'라고. 비구들이여, 유명해지고 명성을 얻기 이전에는 비구에게 여기 어떤 위험들이 없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비구가 유명해지고 명성을 얻었을 때 여기 어떤 위험들이 있다. 그것을 검증하는 비구는 '이 존자는 유명해지고 명성을 얻었다. 여기에 어떤 위험들이 없다.'라고 안다.

 

검증하는 그 비구가 '이 비구 존자는 유명해지고 명성을 얻었다. 여기에 어떤 위험들이 없다.'라고 알 때 그다음의 것을 검증한다. '이 존자는 두려움 없이 제어하고, 두려움 때문에 제어하는 것은 아닌가? 탐욕의 부서지고 탐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감각적 쾌락에 빠지지 않는 것인가?'라고. 그것을 검증하는 비구는 '이 존자는 두려움 없이 제어하고, 두려움 때문에 제어하는 것이 아니다. 탐욕이 부서지고 탐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감각적 쾌락에 빠지지 않는다.'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에게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런데 존자에게 어떤 방식, 어떤 과정이 있어서 그것에 의해 '이 존자는 두려움 없이 제어하고, 두려움 때문에 제어하는 것이 아니다. 탐욕이 부서지고 탐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감각적 쾌락에 빠지지 않는다.'라고 말합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비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승가 안에 머물거나 홀로 머무는 이 존자가 있는데, 거기서 행동이 바른 사람들, 행동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 거기서 대중을 지도하는 사람들, 물질을 쫓는 여기 어떤 사람들, 물질의 오염에서 벗어난 여기 어떤 사람들을 이 존자는 그것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세존의 앞에서 들었고 받아 지녔습니다. 

'나는 두려움 없이 제어하고, 나는 두려움 때문에 제어하는 것이 아니다나는 탐욕이 부서지고 탐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감각적 쾌락에 빠지지 않는다' 라고.

 

*"'두려움 없이 제어한다(abhayuparato)'는 것은 두려움을 여읜 자 되어 제어한다는 뜻이다. 전적으로 제어하고 완전하게 저아한다는 뜻이다. 혹은 두려움 때문에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두려움에는 네 가지가 있다. 오염원에 대한 두려움(kilesa-bhaya), 윤회에 대한 두려움(vatta-bhaya), 악처에 대한 두려움(duggati-bhaya), 비난에 대한 두려움(upavada-byaya)이다. 범부는 네 가지 두려움 모두에 의해 두려워하고 유학은 세 가지 두려움에 의해 두려워한다. 악처에 대한 두려움은 제어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곱 부류의 유학들은 두려움 때문에 제어하고 번뇌 다한 자는 두려움을 여읜 자로 제어한다. 그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없기 때문이다."(MA.ii.385)   

*'물질을 쫓는다(amisesu sandissanti).'는 것은 네 가지 필수품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물질이 있는 곳에 나타나는 비구는 말한다.(MA.ii.386)    

 

489. "거기서 비구들이여, 여래에게 더 질문해야 한다.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오염된 법들이 여래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비구들이여, 여래는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오염된 법들이 여래에게 없다.'라고 설명할 것이다.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법들이 여래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비구들이여, 여래는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법들이 여래에게 없다.'라고 설명할 것이다.

 

'눈과 귀로 인식해야 하는 청정한 법들이 여래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비구들이여, 여래는 '눈과 귀로 인식해야 청정한 법들이 여래에게 있다. 나는 이 길을 가졌고, 이 영역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것에서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라고 설명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제자는 법을 듣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스승에게 다가가야 한다. 스승은 그에게 악(惡)과 선(善)의 대응에 의한(어둡고 밝은 양쪽 면으로) 점점 더 높은 법, 더욱더  수승한 법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스승이 비구에게 악(惡)과 선(善)의 대응에 의한 점점 더 높고 점점 더 높은 법, 더욱더 수승한 법을 거듭 설하는 대로 그는 거듭 그 법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법들 가운데서 여기 어떤 법에 대해 결론을 얻는다

'세존께서는 정등각이시다.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승가는 잘 길을 걷고 있다.'라고 스승에 대해 믿음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에게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런데 존자에게 어떤 방식, 어떤 과정이 있어서 그것에 의해 '세존께서는 정등각이시다.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승가는 잘 길을 걷고 있다.'라고 말합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비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기, 도반들이여, 나는 법을 듣기 위해 세존께 다가갔습니다. 그런 나에게 세존께서는 악(惡)과 선(善)의 대응에 의한 점점 더 높은 법, 더욱더 수승한 법을 설했습니다. 도반들이여, 스승께서 나에게 악(惡)과 선(善)의 대응에 의한 점점 더 높은 법, 더욱더 수승한 법을 거듭 설하는 대로 나는 그 법들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여기 법들 가운데 어떤 법에 대해 결론을 얻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정등각이시다. 가르침(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승가는 잘 길을 걷고 있다.'라고 스승에 대해 분명해졌습니다(확고한 믿음을 가졌습니다).'라고.

 

490.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이런 방식과 이런 구문들과 이런 표현들로서 여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뿌리 내리고, 확립하면, 이것이, 비구들이여, 신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의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부서지지 않는, 합리적이고 봄(見)의 뿌리이고 확고한 믿음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여래에 대해 법답게 검증한다. 그리고 여래에 대해 법의 성품에 따르는 고른 결론을 얻는다." 

 

*법다운 검증과 법의 성품에 따르는 고른 결론 ― ‘세존은 정등각이시다. 세존으로부터 법은 잘 설해졌다. 승가는 잘 실천한다(잘 길을 걷고 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관찰자 경(M47)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