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103. 무엇이라고(어떻게 생각하는가) 경( kintisuttaṃ)

실론섬 2016. 5. 20. 16:04

MN 103. 무엇이라고(어떻게 생각하는가) 경( kintisuttaṃ)

 

3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꾸시나라에서 발리하라나 숲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나에 대해 '옷을 원인으로(위하여)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탁발 음식을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거처를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더 나은 존재'를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라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대해 '옷을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탁발 음식을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거처를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더 나은 존재를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꾸시나라(Kusinara,Pisinara)는 인도 중원의 16개국 가운데 하나인 말라(Malla)의 수도였으며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신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말라는 공화국 체제를 유지하였으며 말라의 수장들이 돌아가면서 정치를 하였고 그런 의무가 없을 때는 상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DA.11.569)
발리하라나 숲(Baliharana vanasanda)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곳에서 정령(bhuta)들에게 제물(bali)을 바치기 위해서 제물을 가져왔기 때문에 발리하라나라고 한다."(AA.ii.372)고 설명하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꾸시나라 경」(A3.121)과 제6권 「꾸시나라 경」(A10.44)도 이곳에서 설해졌다. 
*"'옷을 위하여(civara-hetu)'라는 것은 옷을 얻을 수단으로 옷을 바라면서(paccasisamana) 법을 설하는 것이고, '더 나은 존재를 위하여(itibhav-abhava-hetu)'라는 것은 가르침으로 충만한 공덕의 행위의 토대(punnaliriya-yatthu)를 바탕으로 각각의 더 나은 존재(bhava)에서 즐거움을 경험하리라고 생각하면서 가르침을 설하는 것을 말한다."(MA.iv.28)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나에 대해 '옷을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탁발 음식을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거처를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하고, 더 나은 존재를 원인으로 사문 고따마는 법을 설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이제 그대들은 나에 대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대해  '연민하고, [저희들의] 이익을 바라는 세존께서는 연민으로 [저희들에게] 법을 설하신다.'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나에 대해 '세존께서는 연민하고, 이익을 바라는 세존께서는 연민으로 법을 설하신다.'라고 생각한다.

 

35.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선언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사념처], 네 가지 노력[四正勤.사정근],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사여의족], 다섯 가지 근[五根.오근], 다섯 가지 힘[五力.오력],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칠각지], 팔정도[八正道.팔정도]의 법들에서 온전히 화합하고 동의하고 분쟁하지 않고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 법들을 화합하고 동의하고 분쟁하지 않고 닦는 그대들에게 법에 대한 닦음에서 다른 주장을 하는 두 명의 비구가 있을 것이다. 거기서 그대들에게 '이 존자들은 의미(뜻)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그대들이 더 유연하다고 생각되는(말귀를 더 잘 알아 듣는) 비구에게 가서 '존자들의 주장은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릅니다. 그러니 존자들은 (이런 이유로)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들은 분쟁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다른 한쪽의 비구들 중에서 더 유연하다고 생각되는 비구에게 '존자들의 주장은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릅니다. 그러니 존자들은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들은 분쟁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잘못 붙잡은(파악한) 것을 잘못 붙잡은 것으로 수용해야 하고, 잘 붙잡은 것을 잘 붙잡은 것으로 수용해야 한다. 잘못 붙잡은 것을 잘못 붙잡은 것으로 수용하고, 잘 붙잡은 것을 잘 붙잡은 것으로 수용한 뒤에 법과 율을 말해야 한다.

 

36. 거기서 그대들에게, '이 존자들은 의미는 다르지만, 표현은 일치한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그대들이 더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비구에게 가서 '존자들의 주장은 의미는 다르지만, 표현은 일치합니다. 그러니 존자들은 의미는 다르지만, 표현은 일치한다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들은 논쟁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다른 한 쪽의 비구들 가운데 더 유연하다고 생각되는 비구에게 가서 '존자들의 주장은 의미는 다르지만, 표현은 일치한다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들은 논쟁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잘못 붙잡은 것은 잘못 붙잡은 것으로 수용해야 하고, 잘 붙잡은 것은 잘 붙잡은 것으로 수용해야 한다. 잘못 붙잡은 것을 잘못 붙잡은 것으로 수용하고, 잘 붙잡은 것은 잘 붙잡은 것으로 수용한 뒤에 법과 율을 말해야 한다.   

 

37. 거기서 그대들에게, '이 존자들은 의미는 일치하지만, 표현은 다르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그대들은 더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비구에게 가서 '존자들의 주장은 의미는 일치하지만, 표현은 다릅다. 그러니 존자들은 의미는 일치하지만, 표현은 다르다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들은 분쟁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다른 한 쪽의 비구들 가운데 더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비구에게 가서 '존자들의 주장은 의미는 일치하지만, 표현은 다릅다. 그러니 존자들은 의미는 일치하지만, 표현은 다르다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들은 분쟁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잘못 붙잡은 같은 잘못 붙잡은 것으로 수용해야 하고, 잘 붙잡은 것은 잘 붙잡은 것으로 수용해야 한다. 잘못 붙잡은 것을 잘못 붙잡은 것으로 수용하고, 잘 붙잡은 것을 잘 붙잡은 것으로 수용한 뒤에 법과 율을 말해야 한다.  

 

38. 거기서 그대들에게 ‘이 존자들은 의미도 일치하고 표현도 일치한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그대들이 더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비구에게 가서 ‘존자들의 주장은 의미도 일치하고 표현도 일치합니다. 그러니 존자들은 의미도 일치하고 표현도 일치한다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들은 분쟁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다른 한쪽의 비구들 가운데 더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비구에게 가서 ‘존자들의 주장은 의미도 일치하고 표현도 일치합니다. 그러니 존자들은 의미도 일치하고 표현도 일치한다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들은 분쟁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잘 붙잡은 것은 잘 붙잡은 것으로 명심해야 한다. 잘 붙잡은 것을 잘 붙잡은 것으로 명심한 뒤에 법과 율을 말해야 한다.   

 

39.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그 법들을 화합하고 동의하고 분쟁하지 않고 닦는 그대들 가운데 어떤 비구가 죄를 짓는다면, 거기서 비구들이여, 성급하게 책망하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을 '이렇게 하면 나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고 저 사람도 괴롭지 않을 것이다(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저 사람은 분노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고 견해를 고수하지 않고 잘 놓을 것이다(고백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사람을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선함에 굳건히 서게 할 수 있다.'라고 조사해야 한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이렇게 생각된다면,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나는 불편하지 않겠지만 저 사람은 괴로울 것이다. 참으로 저 사람은 분노하고 원한을 품겠지만 견해를 고수하지 않고 잘 놓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사람을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선함에 굳건히 서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저 사람이 괴로운 것은 사소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이 사람을 선하지 읺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선함에 굳건히 서게 할 수 있는 것은 더 크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이렇게 생각된다면,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나는 불편하겠지만 저 사람은 괴롭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저 사람은 분노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겠지만 견해를 고수하고 놓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면 나는 이 사람을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선함에 굳건히 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불편한 것은 사소한 것이다. 라지만 그런 내가 이 사람을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선함에 굳건히 서게 할 수 있는 것은 더 크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이렇게 생각된다면,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나도 불편할 것이고 저 사람도 괴로울 것이다. 참으로 저 사람은 분노하고 원한을 품고 견해를 고수하고 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을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선함에 굳건히 서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불편하고 저 사람이 괴로운 것은 사소한 것이이다. 하지만 내가 이 사람을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선함에 굳건히 서게 할 수 있는 것은 더 크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이렇게 생각된다면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나도 불편할 것이고 저 사람도 괴로울 것이다. 참으로 저 사람은 분노하고 원한을 품고 견해를 고수하고 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을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선함에 굳건히 서게 할 수 없다.'라고 생각된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에 대한 평정(무관심)은 경멸할 바가 아니다.

 

40. 비구들이여, 그 법들을 화합하고 동의하고 분쟁하지 않고 닦는 그대들 가운데 상호 비방, 삿된 견해, 마음의 상처, 불쾌함, 노여움이 생긴다면,  그때 어떤 한쪽의 비구들 가운데 더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비구에게 가서 '도반이여, 화합하고 동의하고 분쟁하지 않고 닦는 우리들 가운데 상호비방, 삿된 견해, 마음의 상처, 불쾌함, 노여움이 생긴 것을 꾸짖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해야 한다.  바르게 설명하는 비구라면, 비구들이여, '도반이여, 화합하고 동의하고 분재하지 않고 닦는 우리들 가운데 상호 비방, 삿된 견해, 마음의 상처, 불쾌함, 노여움이 생긴 것을 아시면 사문께서 꾸짖으실 것입니다.'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반이여, 이런 법을 버리지 않고 열반을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바르게 설명하는 비구라면, 비구들이여,  '도반이여, 이 법을 버리지 않고서 열반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라고 설명할 것이다.

 

또한, 다른 한 쪽의 비구들 가운데 더 유연하다고 생각되는 비구에게 가서 '도반이여, 화합하고 동의하고 분쟁하지 않고 닦는 우리 가운데 상호 비방, 삿된 견해, 마음의 상처, 불쾌함, 노여움이 생긴 것을 아시면 사문께서 꾸짖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해야 한다. 바르게 설명하는 비구라면,  비구들이여, '도반이여, 화합하고 동의하고 분쟁하지 않고 닦는 우리들 가운데 상호 비방, 삿된 견해, 마음의 상처, 불쾌함, 노여움이 생긴 것을 아시면 사문께서 꾸짖으실 것입니다.' 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반이여, 이 법을 버리지 않고 열반을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바르게 설명하는 비구라면 , 비구들이여,  '도반이여, 이 법을 버리지 않고서 열반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라고 설명할 것이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그 비구에게 다른 비구들이 '존자 때문에 이 비구들이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나서 선함에 굳건히 섰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비구는 '여기, 도반들이여, 나는 세존께 갔습니다. 그런 나에게 세존께서는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런 나는 법을 듣고서 그 비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비구들은 그 법을 듣고 선하지 않음에서 벗어났고 선함에 굳건히 섰습니다.' 라고 설명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설명하는 비구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여래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한다. 법답게 질책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비난받지 않는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무엇이라고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