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137. 여섯 감각장소(六處)의 분석 경(Saḷāyatanavibhaṅgasuttaṃ)

실론섬 2016. 6. 15. 20:23

여섯 감각장소(육처.六處)의 분석 경 

Mn137 MAJJHIMA NIKâYA III 4. 7. Salàyatanavibhangasutta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섯 감각장소[六處.육처]의 분석을 그대에게 설하리라.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기도록 하라. 이제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을 받들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주) '감각장소'라고 할 때, '장소'의 원어는 'ayatana'이다. 한역에서는 보통 처(處)로 번역한다. 이 경우 단순한 의미의 '장소(place)'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 우리말인 '터전'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무난하다고 본다. 'ayatana'란 '기르다'·'양육하다'·'연장하다'·'확장하다'의 의미를 지닌 'ayati'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자라나는 곳'이라는 원어의 의미에서부터 비롯되어, 경전에 기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눈·귀·코·혀·몸·마음이라고 하는 여섯의 '감각요인(근.indriya)'과 그에 대응하는 형색(시각대상)·소리·냄새·맛·감촉·마음현상 등의 '대상적 요인(境.visaya)'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ayatana'는 일반적으로 '마음(心.citta)'과 '마음의 작용(心所. cetasika)'이 일어나기 위한 '의지처(所緣. arammana)'로 정의 되는데, 이는 곧 그들 여섯 '감관'과 그에 대응하는 '감각대상'들이 이러한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발생하는 '터전(foundation or base)'이 된다는 의미이다.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入處.육내입처]는 알려져야 한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入處.육외입처]는 알려져야 한다. 여섯 가지 의식의 무더기[六識.육식]는 알려져야 한다.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무더기[六觸.육촉]는 알려져야 한다. 열여덟 가지 마음[意.의]의 행보(行步)는 알려져야 한다.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길은 알려져야 한다. 거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 성자가 실천하는 세 가지 마음의 장소(염처.念處)가 있으니 그것을 실천한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 그는 실천행을 위한 위없는 조어장부(調御丈夫. 잘 길들이는 분)라고 불린다. 이것이 여섯 감각장소의 분석에 대한 요약이다.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處]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음의 감각장소가 있다.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를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處]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형색의 감각장소, 소리의 감각장소, 냄새의 감각장소, 맛의 감각장소, 감촉의 감각장소, 법(마음현상)의 감각장소가 있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를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여섯 가지 의식의 무더기[六識.육식]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혀의 의식, 몸의 의식, 마음의 의식이 있다.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무더기[六觸.육촉]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의 감각접촉, 귀의 감각접촉, 코의 감각접촉, 혀의 감각접촉, 몸의 감각접촉, 마음의 감각접촉이 있다.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무더기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열여덟 가지 마음[意]의 행보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으로 형색을 보고서 만족을 주는 형색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을 주는 형색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색으로 다가간다. 귀로 소리를 듣고서 ··· 코로 냄새를 맡고서 ··· 혀로 맛을 맛보고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하고 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법으로 다가간다. 이처럼 여섯 가지 만족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으로 다가가고, 평정으로 다가간다.
'열여덟 가지 마음의 행보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걸음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여섯 가지 세간(世間)에 의지한 만족(기쁨)과 여섯 가지 출리(出離)에 의지한 만족,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슬픔.고뇌)과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평정과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이 있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만족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매력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을 획득하고는, 획득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기억하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세간에 의지한 만족이라 한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을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을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을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을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매력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는, 마음으로 인식되는 법들을 획득하고는, 획득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기억하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세간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인가?
형색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하는 법이라고 알아 이전의 형색이나 지금의 형색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소리는 참으로 ··· 냄새는 참으로 ··· 맛은 참으로 ··· 감촉은 참으로 ··· 법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하는 법이라고 알아 이전의 법이나 지금의 법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의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매력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을 획득하지 못하고는 획득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면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을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을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을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을 ··· 마음으로 인식되는 법들을 획득하지 못하고는 획득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면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인가?
형색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하는 법이라고 알아 이전의 형색이나 지금의 형색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위없는 해탈에 대한 바램(염원)을 일으킨다. '성자들이 증득하여 머무는 그런 경지를 나는 언제 증득하여 머물게 될 것인가?'라고 이처럼 위없는 해탈에 대한 바램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바램으로 인해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소리는 참으로 ··· 냄새는 참으로 ··· 맛은 참으로 ··· 감촉은 참으로 ··· 법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하는 법이라고 알아 이전의 법이나 지금의 법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위없는 해탈에 대한 바램을 일으킨다. '성자들이 증득하여 머무는 그런 경지를 나는 언제 증득하여 머물게 될 것인가?'라고 이처럼 위없는 해탈에 대한 바램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바램으로 인해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세간에 연결된 평정인가?
눈으로 형색을 보면서 어리석고 미혹한 범부, (오염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과보를 극복하지 못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평정이 생긴다. 그러나 이런 평정은 형색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세간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맛보면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하면서 어리석고 미혹한 범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과보를 극복하지 못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평정이 생긴다. 그러나 이런 평정은 법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세간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평정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인가?
그러나 형색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하는 법이라고 알아 이전의 형색이나 지금의 형색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평정이 생긴다. 이러한 평정은 형색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이러한 평정을 출리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소리는 참으로 ··· 냄새는 참으로 ··· 맛은 참으로 ··· 감촉은 참으로 ··· 법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하는 법이라고 알아 이전의 법이나 지금의 법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평정이 생긴다. 이러한 평정은 법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이러한 평정을 출리에 의지한 평정이라고 한다.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길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여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의지하고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 덕분으로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처럼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을 의지하고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 덕분으로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처럼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을 의지하고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 덕분으로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처럼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의지하고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 덕분으로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처럼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을 의지하고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 덕분으로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처럼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이 있고,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이 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인가?
비구들이여, 형색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소리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냄새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맛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감촉들에서의 평정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인가?
비구들이여, 공무변처에 의지한 평정이 있고, 식무변처에 의지한 평정이 있고, 무소유처에 의지한 평정이 있고, 비상비비상처에 의지한 평정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의지하고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 덕분으로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처럼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그것에서 생겨남이 아닌 것'을 의지하고, '그것에서 생겨남이 아닌 것' 덕분으로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처럼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여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성자가 닦는 세 가지 마음의 감각장소가 있으니 그것을 닦는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라고 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동정하고 그들의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법을 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앎을 위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것에 대해 여래는 불쾌하지도 않고 불쾌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갈망하지 않고 알아치라면서[옳고 그름의 판단] 분명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자가 닦는 첫 번째 마음의 감각장소이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동정하고 그들의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법을 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앎을 위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서 머문다. 어떤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앎을 위한 마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것에 대해 여래는 불쾌하지도 않고 불쾌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유쾌해 하지도 않고 유쾌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불쾌와 유쾌의 둘 다를 벗어나서 그는 알아차리면서 분명히 알면서 평온하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자가 닦는 두 번째 마음의 감각장소이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

 

여기, 비구들이여, 동정하고 그들의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법을 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앎을 위한 마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것에 대해 여래는 유쾌해 하고 유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갈망하지 않고 알아차리면서 분명히 알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자가 닦는 세 번째 마음의 감각장소이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
'성자가 닦는 세 가지 마음의 감각장소가 있으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그는 '실천행을 위한 위없는 조어장부(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라고 불린다.'라고 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코끼리 조련사가 잘 조련한 코끼리는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비구들이여, 말 조련사가 잘 조련한 말은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비구들이여, 소 조련사가 잘 조련한 소는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잘 훈련된 사람은 여덟 방향으로 나아간다.
물질을 가져(색계의 존재)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첫 번째 방향이다.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지각)이 없이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두 번째 방향이다.
깨끗하다고(청정하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세 번째 방향이다.
물질[色]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방향이다.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의식[識]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음)'라고 하면서 식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다섯 번째 방향이다.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여섯 번째 방향이다.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일곱 번째 방향이다.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想受滅)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여덟 번째 방향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잘 훈련된 사람은 이러한 여덟 방향으로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그는 실천행을 위한 위없는 조어장부라고 불린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기쁘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Mn137. 여섯 감각장소(육처.六處)의 분석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