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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39. 화합의 분석 경(Araṇavibhaṅgasuttaṃ)

실론섬 2016. 6. 16. 15:12

화합의 분석 경(평화의 분석 경)

Mn139 MAJJHIMA NIKâYA III 4. 9. Araõavibhaïgasutta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화합의 분석(평화의 분석)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기도록 하여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을 받들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의 탐닉은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 양 극단을 떠나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인도한다.

칭송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칭송해야 할 것을 알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고는 칭송도 비난도 하지 말고 오직 법을 설해야 한다.

즐거움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즐거움을 분별할 줄 알아서 안으로 즐거움을 실천해야 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뒤에서 말하지 않아야 하고, 앞에서 찌르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

침착하게 말해야 하고 성급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방언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표준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이것이 화합의 분석의 대의다."

 

*'안으로 즐거움'이란 안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다고 이렇게 특별히 분별된 행복을 말한다.(MAT.ii.390)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라고 하셨다. 공개적 비판은 말을 하는 사람도 말을 듣는 사람도 모두 다치고 상처 입는다.(MAT.ii.390)

 

2.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의 탐닉은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실천이다.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 하지 않고 만족해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이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실천이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이다.

이것을 연(緣)하여,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의 탐닉은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괴로움이 함께한다'라는 것은 '과보의 괴로움'과 '오염원의 괴로움'과 함께 한다는 말씀이다.(MAT.ii.390)
*'열병이 함께한다'라는 것은 과보의 열병가 오염원의 열병을 수반한다는 말씀이다.(MAT.ii.390)
*'삿된 실천'이란 진실하지 못한 도닦음이고 해로운 도닦음이라는 말씀이다.(MA.v.31)

 

3. '이 양 극단을 떠나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인도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있다. 이것을 연(緣)하여 '이 양 극단을 떠나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인도한다.라고 말했다.  

 

4. '칭송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칭송해야 할 것을 알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고는 칭송도 비난도 하지 말고 오직 법을 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5. "비구들이여, 어떻게 칭송하거나 비난은 하면서 법은 설하지 않는가?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 하고 만족해 하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실천을 행하는 자들이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자들은 비난한다.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아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 하지 않고 만족해 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을 행하는 자들이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자들은 칭송한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실천이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자들은 비난한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이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자들은 칭송한다. 

 

'누구든지 존재의 족쇄를 제거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실천을 행한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자들은 비난한다.

'누구든지 존재의 족쇄를 제거한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을 행한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자들은 칭송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칭송하거나 비난을 하면서 법은 설하지 않는다.

 

6 "어떻게 칭송도 비난도 하지 말고 오직 법을 설하는가?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실천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 자체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그것은 삿된 실천이다.'라고 말하면서 오직 법을 설한다.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 하지 않고 만족해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것 자체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그것은 바른 실천이다.'라고 말하면서 오직 법을 설한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실천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것 자체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그것은 삿된 실천이다.'라고 말하면서 오직 법을 설한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것 자체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그것은 바른 실천이다.'라고 말하면서 오직 법을 설한다.

 

'누구든지 존재의 족쇄를 제거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실천을 행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존재의 족쇄가 제거되지 않으면 존재가 제거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오직 법을 설한다.

'누구든지 존재의 족쇄를 제거한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을 행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존재의 족쇄가 제거되면 존재가 제거된다.'라고 말하면서 오직 법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칭송도 비난도 하지 않고 오직 법을 설한다. 

 

이것을 연(緣)하여 '칭송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칭송해야 할 것을 알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고는 칭송도 비난도 하지 말고 오직 법을 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7. "'즐거움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즐거움을 분별할 줄 알아서 안으로 즐거움을 실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있다. 무엇이 다섯 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자극하고 매혹적인(환락을 야기하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자극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거움과 기쁨, 이것이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 비천한 즐거움, 범속한 즐거움, 성스럽지 못한 즐거움이라고 불린다. '그 즐거움은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닦지 않아야 하고, 많이 행하지 않아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 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는 법으로 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伺])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용해 지고, 마음이 한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마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지킴(正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지킴(마음새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지킴의 청정을 지닌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떠남의 즐거움, 벗어남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이라고 불린다. '그 즐거움은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닦지 않아야 하고, 많이 행하지 않아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8.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안다면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결코 해서는 안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고 진실이라도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안다면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닦아야 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안다면 거기서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시기를 잘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안다면 공개적인 비판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도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안다면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으려고 공부지어야 한다.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안다면 거기서 공개적 비판을 할 시기를 잘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이것을 연(緣)하여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9. "'침착하게 말해야 하고 성급하게 말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성급하게 말하면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산만하고 목소리도 갈라지고 목도 쉰다. 성급하게 말하는 자의 말은 불분명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비구들이여, 여기 침착하게 말하면 몸도 피곤하지 않고 마음도 산만하지 않고 목소리도 갈라지지 않고 목도 쉬지 않는다. 침착하게 말하는 자의 말은 분명하고 이해하기가 쉽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연(緣)하여 '침착하게 말해야 하고 다급하게 말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10. "'방언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표준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어떻게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게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여러 지방에서 그들은 같은 것을 두고 접시라고 하고, 그릇이라 하고, 사발이라 하고, 받침이라고 하고, 냄비라고 하고, 단지라고 하고, 잔이라 하고, 세숫대야라고 부른다. 각 지방에서 부르던 대로 그것을 완고하게 고집하여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여러 다른 지방에서 그들은 같은 것을 두고 접시라고 하고, 그릇이라 하고, 사발이라 하고, 받침이라고 하고, 냄비라고 하고, 단지라고 하고, 잔이라 하고, 세숫대야라고 부른다. 비록 여러 다른 지방에서 그들이 무엇이라 부르든 '아마 이 존자들은 이것을 두고 이런 말로 사용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연(緣)하여 '방언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표준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11. 여기, 비구들이여,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 하고 만족해 하고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그것은 삿된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 하지 않고 만족해 하지 않고,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그것은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그것은 삿된 실천이다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과 열병이 없는그것은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12. 여기, 비구들이여, '이 양 극단을 떠나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인도한다.'라는, 이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그것은 바른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13. 여기, 비구들이여, 칭송을 하거나 비난을 하면서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그것은 삿된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칭송도 비난도 하지 않고 오직 법을 설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벼이 없는, 그것은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14. 여기,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 비천한 즐거움, 범속한 즐거움, 성스럽지 못한 즐거움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그것은 삿된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떠남의 즐거움, 벗어남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그것은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15. 여기, 비구들이여,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그것은 삿된 실천이다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고 진실이라도 이익을 줄 수 없는 것이면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그것은 삿된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면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욕망이 없는, 그것은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16. 여기, 비구들이여,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는 공개적인 비판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그것은 삿된 실천이다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고 진실이라 하더라도 이익을 줄 수 없는 것이면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그것은 삿된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도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그것은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17. 여기, 비구들이여, 성급하게 말하는 자의 말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그것은 삿된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침착하게 말하는 자의 말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그것은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18. 여기,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그것은 삿된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그것은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합의 법이다.

 

19.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대들은 '우리는 분쟁의 법을 알아야 하고 화합의 법을 알아야 하다. 분쟁의 법을 알고 화합의 법을 알아서 화합의 법을 닦으리라.'라고 익히고 많이 행하여야 한다. 비구들이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 수부티는 화합의 길을 실천하는 자이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 수부티는 화합의 길을 실천하는 자(Subhuti kulaputto arana-patipadam patipanno)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앙굿따라 니까야 1권 으뜸 품(A1:14)에서도 '화합의 길을 실천하는 자들 가운데 수부띠 존자가 으뜸이다.'라고 나타난다. 수부띠 존자는 수마나 상인의 아들이자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동생이다. 아나타삔디카 승원의 개원식 때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자애와 함께하는 삼매'를 닦아 아라한이 되었다. 그는 주로 숲에 머물면서 평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20.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화합의 분석 경(M139)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