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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48. 육육경(Chachakkasuttaṃ )

실론섬 2016. 6. 21. 14:31

육육[六六] 경

Mn148 육육 경 MAJJHIMA NIKâYA III 5. 6. Chachakkasutta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뜻을 갖춘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낼 것이니 여섯의 여섯으로 구성된 법이다.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난즌 설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를 받들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 하셨다.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처.處)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여섯 가지 의식(식.識)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여섯 가지 촉(觸.감각접촉)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여섯 가지 느낌(수.受)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여섯 가지 갈애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2.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조건으로 이것을 말했는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음의 감각장소이다.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은 알려져야 하는것이다.'라고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말했다.

이것이 첫 번째 여섯으로 구성된 조(組)이다(이것이 첫 번째 여섯이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조건으로 이것을 말했는가? 

형색(시각대상)의 감각장소, 소리의 감각장소, 냄새의 감각장소, 맛의 감각장소, 감촉의 감각장소, 법(마음현상)의 감각장소이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말했다.

이것이 두 번째 여섯으로 구성된 조(組)이다.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조건으로 이것을 말했는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난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난다. 마음과 법(마음현상)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의식(식별)이 일어난다.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말했다.

이것이 세 번째 여섯으로 구성된 조(組)이다.

 

'여섯 가지 촉(觸)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조건으로 이것을 말했는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나고, 셋의 만남이 촉이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나고, 셋의 만남이 촉이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나고, 셋의 만남이 촉이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나고, 셋의 만남이 촉이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나고, 셋의 만남이 촉이다. 마음과 법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의식(식별)이 일어나고, 셋의 만남이 촉이다. 

'여섯 가지 촉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말했다.

이것이 네 번째 여섯으로 구성된 조(組)이다.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조건으로 이것을 말했는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마음과 법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의식(식별)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말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여섯으로 구성된 조(組)이다.

 

'여섯 가지 갈애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조건으로 이것을 말했는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나는데, 셋의 만남이 촉이며, 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고,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나는데, 셋의 만남이 촉이며, 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고,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나는데, 셋의 만남이 촉이며, 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고,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나는데, 셋의 만남이 촉이며, 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고,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나는데, 셋의 만남이 촉이며, 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고,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마음과 법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의식이 일어나는데, 셋의 만남이 촉이며, 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고,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여섯 가지 갈애의 무리들은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말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여섯으로 구성된 조(組)이다.

 

3. '눈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눈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눈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눈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눈은 무아다.

 

'형색(시각대상)들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형색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형색들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형색들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눈은 무아다. 형색들은 무아다.

 

'눈의 의식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눈의 의식이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눈의 의식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눈의 의식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눈은 무아다. 형색들은 무아다. 눈의 의식은 무아다.

 

'눈의 촉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눈의 촉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눈의 촉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눈의 촉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눈은 무아다. 형색들은 무아다. 눈의 의식은 무아다. 눈의 촉은 무아다.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눈은 무아다. 형색들은 무아다. 눈의 의식은 무아다. 눈의 촉은 무아다. 느낌은 무아이다.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눈은 무아다. 형색들은 무아다. 눈의 의식은 무아다. 눈의 촉은 무아다. 느낌은 무아이다. 갈애는 무아이다."

 

4. "'귀가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 '코는 자아이다.'라고 말한다면 ··· '혀는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 '몸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 '마음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의식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마음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마음은 무아다.

 

'법(마음현상)들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법들이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법들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법들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마음은 무아다. 법들은 무아다.

 

'마음의 식별(의식)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마음의 식별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의 식별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마음의 식별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마음은 무아다. 법들은 무아다. 마음의 식별은 무아다.

 

'마음의 감각접촉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마음의 감각접촉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의 감각접촉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마음의 감각접촉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마음은 무아다. 법들은 무아다. 마음의 식별은 무아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아다.

 

'느낌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마음은 무아다. 법들은 무아다. 마음의 식별은 무아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아다. 느낌은 무아다.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마음은 무아다. 법들은 무아다. 마음의 식별은 무아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아다. 느낌은 무아다. 갈애는 무아다."  

 

5. "그리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존재 무더기(유신.有身)의 일어남으로 이끄는 닦음이다. 

눈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형색(시각대상)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눈의 의식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눈의 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귀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 코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 혀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 몸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 마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법들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마음의 의식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마음의 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존재 무더기의 소멸로 이끄는 닦음이다.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형색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눈의 의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눈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코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 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 코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 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 몸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 마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법들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마음의 의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마음의 촉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6. 비구들이여, 눈과 형색(시각대상)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의 조건으로부터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그 즐거운 느낌에 닿아 있는 자는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다. 그에게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자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 그에게 성냄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아 있는 자는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에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가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괴로운 느낌에 대한 성냄의 잠재성향을 제거하지 못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지 못하고, 무명을 버리지 못하고, 명지를 일으키지 못한 채,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괴로움을 끝낼 것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나며, ··· 비구들이여,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나며, ··· 비구들이여,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나며, ··· 비구들이여,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나며, ··· 비구들이여, 마음과 법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을 조건으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그 즐거운 느낌에 닿아 있는 자는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다. 그에게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자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 그에게 성냄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아 있는 자는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에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가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괴로운 느낌에 대한 성냄의 잠재성향을 제거하지 못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지 못하고, 무명을 버리지 못하고, 명지를 일으키지 못한 채,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7. "비구들이여, 눈과 형색(시각대상)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의 조건으로부터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그 즐거움 느낌에 닿은 자는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다. 그에게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괴로운 느낌에 닿은 자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그에게 성냄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은 자는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에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가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괴로운 느낌에 대한 성냄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킨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을 만들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다(괴로움을 끝낼 것이라는 것은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나며, ···

비구들이여,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나며, ···

비구들이여,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나며, ···

비구들이여,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나며, ···

비구들이여, 마음과 법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의식이 일어나며, 셋의 만남이 촉이고, 촉을 조건으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그 즐거움 느낌에 닿은 자는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다. 그에게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괴로운 느낌에 닿은 자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그에게 성냄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은 자는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에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가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괴로운 느낌에 대한 성냄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킨 뒤에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을 만들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다."

 

8.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 염오하고(싫어하여 떠나고), 형색들에 대해 염오하고, 눈의 의식에 대해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 염오하고, 갈애에 대해 염오한다. 귀에 대해 염오하고, 소리에 대해 염오하고, ··· 코에 대해  염오하고, 냄새들에 대해 염오하고, ··· 몸에 대해 염오하고, 감촉에 대해 염오하고, ··· 마음에 대해 염오하고, 법(마음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의 식별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의 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갈애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소멸한다. 탐욕의 소멸로부터 해탈한다. 해탈에서 '나는 해탈했다.'라를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9.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이 가르침이 설해졌을 때 60명의 비구들은 집착없이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했다. 

 

Chachakkasuttaṃ niṭṭhitaṃ chaṭṭhaṃ.

육육[六六] 경(M148)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