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율장

比丘尼 八敬法에 대한 考察/마성 스님

실론섬 2016. 7. 8. 20:55

比丘尼 八敬法에 대한 考察

불교학연구 제15호(2006.12)

李秀昌 (摩聖, 동국대학교 강사)

 

Ⅰ. 머리말

 

현대는 모든 분야에서 성차별적 조항들이 하나하나 철폐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종교계에는 성차별적 조항들이 많이 남아 있다.1) 불교 승단에서도 비구와 비구니의 불평등 조항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불평등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比丘尼 ‘八敬法’(aṭṭha garudhammā)이다. 이 비구니 ‘팔경법’은 승단의 二部僧(ubhato-saṅgha, 兩僧伽) 제도의 根幹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규정이다.

1) 2006년 7월 22일 만해NGO교육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와 
   세계와기독교변혁을위한연대가 공동 주최한 「종교계 성차별 문제에 대한 대토론회 : 
   종교계 성차별, 더 이상은 안된다!」자료집 참조.

 

이 팔경법과 불교 페미니즘에 관한 외국 학자들의 논문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내에서도 팔경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비판적 논문들이 몇 편 발표되었다.2)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팔경법이 성차별적 규칙이기 때문에 폐지 혹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불교승가의 고유한 전통과 율장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2) 비구니 팔경법의 문제점을 국내에서 최초로 제기한 학술 논문은 李永子, 「불교의 
   여성관의 새로운 인식」,「韓國女性學」 창간호 (서울: 한국여성학회, 1985), 56
   -82쪽이다. 이어서 발표된 2편의 논문은 주목할 만하다. 全海住, 「比丘尼敎團의 
   成立에 대한 考察―比丘尼八敬戒를 中心으로」,「韓國佛敎學」 제11집 (서울: 한
    국불교학회,1986), 311-340쪽; 세등(김인숙), 「八敬法의 해체를 위한 페미니즘
   적 시도」,「성평등 연구」제6집 (가톨릭대학교 성평등연구소, 2002), 35-56족. 
   이 외에도 팔경법과 페미니즘에 관한 다수의 논문들이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비구니 팔경법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제정되었으며, 팔경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이 시대 우리는 이 팔경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팔경법이 제정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면, 팔경법에 대한 오해와 불필요한 논쟁을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팔경법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Ⅱ. 각 문헌에 나타난 팔경법

 

八敬法이란 비구니가 비구를 존중하고 공경해야 할 여덟 가지 종류의 법이라는 뜻이다. 八敬法은 팔리어 aṭṭha garudhammā를 번역한 것으로, 八重法, 八尊重法, 八尊師法, 八尊敬法, 八尊法, 八不可過法, 八不可越法, 八不可違法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八敬이라고도 불린다. 이 팔경법을「四分律」에서는 ‘八不可過法’,「五分律」에서는 ‘八不可越法’으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팔경법의 각 조문에 ‘이 법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어겨서는 안 된다[盡形壽 不得過]’는 뜻을 강조한 제목으로 보인다. 이 팔경법은 여러 문헌에 언급되어 있다. 우선 각 문헌에 나타난 비구니 팔경법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Vinaya-piṭaka의 aṭṭha garudhammā

(PTS), ii, 255쪽 [이하 Vin. 혹은「팔리율」이라 약칭함];『南傳』4권, 380-1쪽.

①비구니는 구족계를 받은 지 백세가 되어도 오늘 구족계 받은 비구에게 禮敬․起迎․合掌․恭敬을 해야 한다. 

  vassasatupasampannāya bhikkhuniyā tadahupasampannassa bhikkhuno abhivādanaṁ paccuṭṭhānaṃ 

  añjalikammaṃ sāmīcikammaṁ kātabbaṃ.

②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住處에서 雨期를 지내서는 안된다. 

  na bhikkhuniyā abhikkhuke āvāse vassaṃ vasitabbaṃ.

③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승가에게 두 가지 법을 청해야 한다. 布薩을 묻는 것과 敎誡에 가는 것이다. 

  anvaddhamāsaṃ bhikkhuniyā bhikkhusaṃghato dve dhammā paccāsiṃsitabbā uposathapucchakañ 

  ca ovādūpasaṃkamanañ ca.

④비구니는 雨安居가 끝나면 兩僧伽에서 見․聞․疑의 세 가지 일에 대해서 自恣를 행해야 한다. 

  vassaṃ vutthāya bhikkhuniyā ubhatosaṃghe tīhi ṭhānehi pavāretabbaṃ diṭṭhena vā sutena 

  parisañkāya vā. 

⑤비구니가 敬法을 범하면 兩僧伽에서 보름동안 마낫따(mānatta, 摩那埵)를 행해야 한다. 

  garudhammaṃ ajjhāpannāya bhikkhuniyā ubhatosaṃghe pakkhamānattaṃ caritabbaṃ.

⑥식카마나(sikkhamānā, 式叉摩那, 正學女)가 2년 동안 六法의 學處를 배우고 나면 양승가에서 

  구족계를 구해야 한다. 

  dve vassāni chasu dhammesu sikkhitasikkhāya sikkhamānāya ubhatosaṃghe upasampadā 

  pariyesitabbā. 

⑦비구니는 어떠한 수단에 의해서도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어서는 안된다. 

  na bhikkhuniyā kenaci pariyāyena bhikkhu akkositabbo paribhāsitabbo. 

⑧오늘부터 비구니의 비구에 대한 言路는 폐쇄되고, 비구의 비구니에 대한 언로는 폐쇄되지 않

  는다. 

  ajjatagge ovaṭo bhikkhunīnam bhikkhūsu vacanapatho, anovaṭo bhikkhūnaṃ bhikkhuīsu vacanapatho. 

  Vinaya-piṭaka

 

위 8개항 각각의 말미에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봉사하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해서는 안 된다.”5)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5) "ayam pi dhammo sakkatvā garukatvā mānetvā pūjetvā yāvajīvaṃ anatikkamanīyo."
   Vin. ii, 255쪽; Aṅguttara-nikāya (PTS) ⅳ, 276-7쪽.

 

「四分律」의 八不可過法

「四分律」권48 (「大正藏」22, 923a-b)

①비록 백세 비구니일지라도 새로 계를 받은 비구를 보면 마땅히 일어나서 맞이하고 예배하며 

  깨끗한 좌복을 펴서 앉기를 권해야 한다. 

  雖百歲比丘尼 見新受戒比丘 應起迎接禮拜 與敷淨座 請令坐

②비구니는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어서는 안 되며, 破戒․破見․破威儀 등을 비방해서는 안된다. 

  比丘尼 不應罵詈比丘呵責 不應誹謗言 破戒破見破威儀.

③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드러내거나 기억시키거나 자백시키지 못하며, 비구가 죄를 찾는 일이나 說戒하는 일이나 自恣하는 일을 막지 못한다.         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지 못하고 비구는 비구니를 꾸짖을 수 있다.

 比丘尼 不應爲比丘 作擧作憶念作自言 不應遮他覓罪 遮說戒 遮自恣 比丘尼 不應呵比丘 比丘 應呵比丘尼. 

④式叉摩那가 계를 배워 마치면 비구로부터 大戒(具足戒)를 받겠다고 청해야 한다.

  式叉摩那 學戒已 從比丘僧 乞受大戒.

⑤비구니가 僧殘罪를 犯하면 마땅히 二部僧 중에서 보름동안 摩那埵를 행해야 한다.

  比丘尼 犯僧殘罪 應在二部僧中 半月 行摩那埵.

⑥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에게 敎授해 주기를 청해야 한다. 

比丘尼 半月 從僧乞敎授.

⑦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夏安居를 해서는 안된다. 

  比丘尼 不應在無比丘處 夏安居.

⑧비구니승가는 夏安居를 마치고 마땅히 비구승가 중에서 보고[見]․듣고[聞]․의심한 것[疑]에

  대한 三事를 自恣할 비구를 구해야 한다.

  比丘尼 僧安居竟 應比丘僧中 求三事 自恣見聞疑.

 

五分律의 八不可越法

「五分律」권7 (「大正藏」 22, 45c-46a)

①비구니승가는 반월(15일. 보름)마다 마땅히 비구승가에게 敎誡人을 보내 달라고 청해야 한다.

 比丘尼衆 半月 應從比丘衆 乞敎誡人.

 ②비구니승가는 안거 때에 비구승가에 의지해야 한다. 

 比丘尼衆 安居時 要當依比丘僧衆.

③비구니는 自恣 때, 마땅히 白二羯磨를 하여 3명의 비구니를 파견하여 비구승가에게 見․聞․疑의 죄를 청해야 한다.

 比丘尼 自恣時 應白二羯磨遣三比丘尼 從比丘衆 請見聞疑罪.

④式叉摩那는 2년동안 六法을 배우고 난 뒤, 마땅히 二部衆에 나아가 구족계 받기를 청해야 한다.

 式叉摩那 二歲學六法已 應於二部衆 求受具足戒.

⑤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지 못하며, 白衣의 집에서 비구의 犯戒․犯威儀․邪見․邪命을 설해서는 안된다.

  比丘尼 不得罵比丘 不得於白衣家道說 比丘若犯戒若犯威儀 若邪見若邪命.

⑥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거론하지 못한다. 다만 비구는 비구니를 질책할 수 있다.

  比丘尼 不得擧比丘罪 而比丘得 呵責比丘尼.

⑦비구니가 추한 죄를 범하면 마땅히 二部僧 중에서 半月동안 摩那埵를 행하도록 청해야 한다. 

  마나타를 행하고 나서 다시 阿浮呵那를 하는데, 마땅히 20명의 비구, 20명의 비구니 앞에서 죄를 드러내어야 한다. 

  比丘尼 犯麤罪 應在二部僧中 求半月行摩那埵 行摩那埵已 次阿浮呵那 應在二十比丘 二十比丘尼衆中出罪.

⑧비구니가 먼저 구족계를 받아 백세가 되었더라도 마땅히 새로 大戒를 받은 비구에게 예를 표해야 한다.

  比丘尼雖先受具戒百歲 故應禮新受大戒比丘.     

  

「十誦律」의 八敬法8)

 「十誦律」권47 (「大正藏」 23, 345c)

①백세 비구니가 처음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보면, 마땅히 일심으로 겸손하게 공경하고 발에 예배하여야 한다. 

  百歲比丘尼 見新受具戒比丘 應一心謙敬禮足.

②비구니는 마땅히 비구승에게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比丘尼 應從比丘僧 乞受具戒. 

③만약 비구니가 승잔죄를 범하면, 마땅히 二部僧에게서 반달동안 摩那埵法을 빌어야 한다. 

  若比丘尼 犯僧殘罪 應從二部僧 乞半月摩那埵法.

④비구가 없는 곳에서 비구니는 안거할 수 없다.

  無比丘住處 比丘尼 不得安居. 

⑤비구니는 안거가 끝나면 마땅히 二部僧 중에서 自恣하여, 보고 듣고 의심나는 것의 죄를 구하여야 한다. 

  比丘尼 安居竟 應從二部僧中 自恣求見聞疑罪.

 ⑥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에게서 팔경법을 받아야 한다. 

  比丘尼 半月從比丘 受八敬法.

⑦비구니는 비구에게 修多羅․毘尼․阿毘曇을 묻기를 허락해 달라고 말하여 비구가 허락하면 마땅히 물을 것이요, 만약 허락하지 않으면 물을 수

   없다.

 比丘尼語 比丘言 聽我問 修多羅毘尼阿毘曇 比丘聽者應問 若不聽者不得問.

⑧비구니는 비구의 見․聞․疑의 죄를 비구에게 말할 수 없다.

  比丘尼 不得比丘說 比丘見聞疑罪.

  

「摩訶僧祇律」의 八敬法(이하「僧祇律」이라 약칭함.

「摩訶僧祇律」권30 (「大正藏」 22, 471a-476b)

①비구니는 비록 만 백세라도 마땅히 새로 수계한 비구를 향하여 일어나 맞이하고 공경하며 예배하여야 한다. 

  比丘尼 雖滿百臘 應向新受戒比丘 起迎恭敬作禮. 

②2년간 계를 배웠으면 二部僧에서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式叉摩那 二歲學戒 欲從僧 乞受具足. 

③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實罪이든 非實罪이든 말할 수 없다. 

  比丘尼 不得說 比丘實罪非實罪 比丘得說 比丘尼實罪.

④비구니는 비구보다 먼저 食․房舍․床褥등을 받을 수 없다. 

  比丘尼 不先比丘受 食房舍床褥.

⑤비구니는 二部衆에서 半月동안 摩那埵를 행해야 한다. 

 若比丘尼 越敬法 應二部衆中 半月行 摩那埵 若犯十九 僧伽婆尸沙 應二部衆中 半月行摩那埵. 

⑥보름마다 포살을 묻고 敎誡를 구하여야 한다.

  半月問布薩 求敎誡.

⑦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안거해서는 안 된다. 

  無比丘住處 比丘尼不得安居. 

⑧비구니는 안거가 끝나면 二部僧중에서 자자를 받아야 한다.

  比丘尼安居竟.應如是二衆中受自恣.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의 八尊敬法(이하「根本有部律」이라 약칭함)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권29 (「大正藏」 24, 351a)

①모든 비구니는 마땅히 비구에게서 출가를 구해야 한다. 

  諸苾芻尼 當從比丘求出家.

②보름마다 마땅히 비구에게 敎授를 구해 달라고 청해야 한다. 

  半月半月 當從苾芻 求請敎授.

③비구가 없는 곳에서 안거를 해서는 안 된다.

  無苾芻處 不得安居

④비구니는 비구에게 詰問해서는 안되며, 비구가 가진 과실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른바 계와 견해, 위의, 바른 생활을 훼손한 것이다.

  必芻尼 不得詰問苾芻 憶念苾芻所有過失 謂毁戒見威儀正命.

⑤비구니는 비구를 꾸짖거나 욕하고 화내고 가책해서는 안 된다. 비구는 비구니에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 

  苾芻尼不得罵詈瞋恚呵責苾芻 苾芻於尼得爲此事.

⑥만약 비구니가 비록 구족계를 받은 지 백세가 지났더라도 새로 수계한 비구를 보면 마땅히 존중하고 합장하여 영접하고 공경하며 예경하여야

한다. 
  若苾芻尼 雖受近圓已經百歲 若見新受近圓苾芻 應當尊重合掌 迎接恭敬頂禮.
⑦비구니가 만약 무리에서 교법을 범하면, 마땅히 이부중 가운데서 반월동안 마나타를 행해야 한다. 
  苾芻尼 若犯衆敎法者 應二衆中 半月行摩那埵.
⑧만약 비구니가 안거를 마치면, 이부중 가운데 이르러 三事, 즉 보고 듣고 의심나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若苾芻尼 夏安居已 於二衆中以三事 見聞疑 作隨意事.” 

  

「瞿曇彌經」의 八尊師法11)

『中阿含經』권28 「瞿曇彌經」 (「大正藏」1, 605a-7b)
①비구니는 마땅히 비구에게서 구족계 받기를 구해야 한다. 
  比丘尼 當從比丘 求受具足.
②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比丘尼 半月半月 往從比丘受敎.
③만약 머무르는 곳에 비구가 없으면 비구니는 여름안거를 받지 못한다. 
  若住止處 設無比丘者 比丘尼 便不得受夏坐.
④비구니는 여름안거를 마친 뒤에는 兩部衆 가운데서 마땅히 三事를 청해야 한다. 이른바 본 것․ 들은 것․의심스러운 것에 대하여 비판을 구해야

한다. 
  比丘尼 受夏坐 訖於兩部衆中 當請三事 求見聞疑.
⑤만약 비구가 비구니의 물음을 허락하지 않으면 비구니는 비구에게 經․律․阿毘曇을 물을 수 없고, 만일 물음을 허락하면 비구니는 경․율․아비담을 물을 수 있다. 
  若比丘不聽比丘尼問者 比丘尼 則不得問比丘 經律阿毘曇 若聽問者 比丘尼 得問經律阿毘曇.
⑥비구니는 비구의 범한 바를 말할 수 없고, 비구는 비구니의 범한 것을 말할 수 있다. 
  比丘尼 不得說比丘所犯 比丘 得說比丘尼所犯.
⑦비구니가 만약 僧伽婆尸沙를 범하면 마땅히 兩部衆 가운데서 15일 동안 근신을 행하여야 한다.
  比丘尼 若犯僧伽婆尸沙 當於兩部衆中 十五日行不慢.
⑧비구니는 구족계를 받은 지 비록 백년이 되었더라도 마땅히 처음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향해서 지극히 마음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합장하고 문안하여야 한다.     
 比丘尼 受具足雖至百歲故 當向始受具足比丘 極下意 稽首作禮 恭敬承事 叉手問訊.

 

佛說瞿曇彌起果經의 八重法(이하「瞿曇彌起果經」이라 약칭함.)

「佛說瞿曇彌起果經」 (「大正藏」 1, 856c-7a),
①비구니는 비구에게서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比丘尼 當從比丘 求索(受)具足.
②비구니는 비구에게서 반달동안 예절을 배워야 한다. 
  比丘尼 當從比丘 半月當受禮節. 
③만약 비구가 없으면 비구니는 안거를 할 수 없다. 
  若無比丘者 比丘尼 不得受歲坐.
④만약 비구니가 안거하게 되면 마땅히 二僧과 함께 三事를 갖추어, 보고․듣고․아는 것을 自恣하여야 한다. 
  若比丘尼 若至受歲 當與二僧 俱以三事 受歲見聞知.
⑤만약 비구가 허락하지 않으면 비구니는 비구에게 契經․毘尼․阿毘曇을 물을 수 없다. 만약 비구가 허락하면 비구니는 비구에게 계경․비니․아비담을 물을 수 있다. 
  若比丘不容 比丘尼 不得問比丘 契經毘尼阿毘曇 (阿難) 若比丘聽 比丘尼 當問比丘 契經毘尼阿毘曇.
⑥비구니는 비구의 보고․듣고․아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비구는 비구니의 보고․듣고․아는 것을 나무랄 수 있다. 
  若比丘尼 不得譏比丘見聞知 (阿難) 比丘 當譏比丘尼 見聞知.
⑦만약 비구니가 僧伽婆尸沙를 범한 바가 있으면 마땅히 二僧 중에서 반달동안 掃灑하여야 한다.
  若比丘尼 有所犯僧伽婆尸沙 當於二僧中 當半月掃灑. 
⑧혹 비구니가 구족계를 받은 지 백년이 되었더라도, 마땅히 처음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향하여 그  발에 예배하고 공경하며 받들어 섬겨야 한다.
  若比丘尼 受具足至百歲 當向初受具足比丘 接足禮之 當恭敬承事.

 

「大愛道比丘尼經」의 八敬之法

「大愛道比丘尼經」 卷上 (?大正藏? 24, 946b),
①비구가 大戒를 수지하면 비구니는 마땅히 좇아 정법을 받아야 한다. 
  比丘持大戒 母人比丘尼 當從受正法 不得戱故輕慢之 調欺咳笑說不急之事
②비구가 대계를 수지하면, 반달 이상을 비구니는 예하고 섬겨야 한다. 
  比丘持大戒 半月以上 比丘尼當禮事之. 
③비구와 비구니는 서로 함께 살 수 없다. 
  比丘比丘尼 不得相與並居同止.
④석 달 동안 한 곳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서로 단속하여, 들은 것과 본 것을 마땅히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三月止一處自相撿挍. 所聞所見當自省察.
⑤비구니는 들은 것 본 것으로써 비구를 訟問할 수 없다. 만약 비구가 들은 것, 본 것이 있어서 비구니를 송문하면 비구니는 마땅히 스스로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比丘尼 不得訟問自了 設比丘以所聞所見 若比丘有 所聞見訟問比丘尼 比丘尼 卽當自省過惡.
⑥비구니는 道法에 대해 바라는 바가 있으면 비구승에게 經․律의 일을 물을 수 있다. 
  比丘尼 有庶幾於道法者 得問比丘僧經律之事.
⑦비구니가 아직 道를 얻지 못하고 만약 法律의 戒를 犯하면 마땅히 半月동안 衆僧에 나아가 스스로 참회하여야 한다. 
  比丘尼 自未得道 若犯法律之戒 當半月詣衆僧中 自首過懺悔.
⑧비구니는 비록 백세동안 大戒를 지녔더라도 마땅히 새로 大戒를 받은 비구의 아랫자리에 처하여 겸손히 공경하고 예배하여야 한다. 
  比丘尼 雖百歲持大戒 當處新受大戒 比丘下坐 當以謙敬爲作禮.

 

律二十二明了論의 尊法(이하「明了論」이라 약칭함.)

「律二十二明了論」 (「大正藏」 24, 670c)
①일생동안 비구니는 반드시 비구승가로부터 구족계를 받도록 정해져 있다. 
  一期 比丘尼 必定從比丘僧 求得受具足戒.
②만약 백번의 안거를 마친 비구니와 오늘 구족계를 받은 비구가 있다면, 이 비구니는 예배․공경을   표해야 한다. 
  若已得百夏比丘尼. 若比丘 是日 受具足戒已. 是比丘尼 必應作 禮拜 恭敬 承事.
③보름마다 마땅히 비구승가의 처소에 가서 八尊法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隨半月半月 .應往比丘僧處. 受八尊法敎. 
④만약 비구니가 一尊法을 범했다면 二部僧에서 摩奈多法을 행해야 한다.
  若比丘尼 犯隨一尊法. 於二部僧 應行 摩奈多法.
⑤비구니는 비구를 꾸짖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 
  比丘尼 不得 惡罵毁謗 比丘.
⑥비구니는 비구에게 난처한 질문을 하거나 비구에게 學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比丘尼 不得問難 比丘及敎 比丘學.
⑦만약 이 머무는 곳에 비구가 없으면, 비구니는 하안거를 시작할 수 없다.
⑦若此住處 無比丘. 比丘尼 不得 結夏安居
⑧만약 비구니가 안거를 마치면 三處로써 비구승을 청하여 여법하게 묻고 비구승으로부터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若比丘尼 安居竟. 以三處請 比丘僧說. 問難如法 受僧正敎.

 

위에서 인용한 문헌 외에도『Aṅguttara-nikāya(增支部)』15)와「瞿曇彌來作比丘尼品」16)에 팔경법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인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자는 「팔리율」의 내용과 같고, 후자는「大愛道比丘尼經」의 내용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편「毘尼母經」에서는 팔경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팔경법의 제정 과정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17)

15) Aṅguttara-nikāya (PTS) iv, 276-7쪽.
16)「瞿曇彌來作比丘尼品」 (「大正藏」 4, 158c-159a).
17)「毘尼母經」 (「大正藏」 24, 803b).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팔경법의 대체적인 내용은 일치한다. 하지만 순서나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수 있다. 이것은 후대에 팔경법의 내용 일부가 어떤 사정에 의해 약간씩 변경되었음을 의미한다. 위에서 인용한 열 가지 문헌 중에서 1)에서 6)까지는 율장에 속하고, 7)에서 9)까지는 경장에 속하며, 10)은 논장에 속한다. 이와 같이 팔경법은 율장과 경장 모두에 언급되어 있다. 

 

현존하는 팔경법은 그 원본이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어떤 형태의 것이든 붓다 당시 혹은 초기불교교단, 즉 부파분열 이전에 이미 팔경법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문헌을 통해 어느 부파에서 팔경법의 어떤 항목을 더욱 중요하게 다루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Ⅲ. 팔경법과 비구니계와의 관계

 

이제부터는 「사분율」에 나타난 팔경법을 기준으로 각 항목별 팔경법의 내용과 비구니계와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불교 승단에서는 「사분율」에 의해 구족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第一敬法은 ‘백세 비구니일지라도 새로 수계한 비구에게 공경․예배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것은 「사분율」 尼律波逸提法 제175조 ‘慢新比丘戒’(새로 수계한 비구를 輕慢하지 말라)와 그 내용이 같다. 즉 “만약 비구니가 새로 수계한 비구를 보면 마땅히 일어나 迎接하며 공경히 예배하고 問訊하며 앉기를 청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波逸提이다.”18) 이 규정을 「팔리율」「사분율」「십송율」「승기율」에서는 제1경법에, 「오분율」「구담미경」구담미기과경」「대애도비구니경」에서는 제8경법에, 「근본유부율」에서는 제6경법에, 「명료론」에서는 제2경법에 배정하고 있다. 주로 율장에서 이 규정을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四分比丘尼戒本」 (「大正藏」 22, 1038b), “若比丘尼 見新受戒比丘. 應起迎逆(接) 
    恭敬禮拜 問訊 請與坐. 不者除因緣 波逸提.”

 

第二敬法은 ‘비구니가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어서는 안 되며, 破戒․破見․破威儀 등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이것은 尼律波逸提法19)에 명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사분율」의 바일제법 제145조 ‘罵詈比丘戒’(비구를 꾸짖지 말라)와 동일하다. 즉 “만약 비구니가 비구를 꾸짖으면 바일제이다.”20) 그러나 「사분율」의 제3경법에 ‘비구는 비구니를 꾸짖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규정은 거의 모든 문헌에 언급되어 있다.

19)「팔리율」 니율바일제법 제52조,「四分律」 제145조,「十誦律」 제154조, 
   「僧祇律」제91조, 「五分律」과 「根本有部尼律」에는 없다. Vin. iv, 309쪽;
   『南傳』 2권, 498쪽;「四分律」권29 (「大正藏」22, 767b);「十誦律」권47 
   (「大正藏」 23, 340c);「僧祇律」권38 (「大正藏」 22, 533a).
20)「四分比丘尼戒本」 (「大正藏」22, 1038a), “若比丘尼 罵比丘者 波逸提.”

 

第三敬法은 ‘비구니가 비구의 죄를 드러내거나 기억시키거나 자백시키지 못하며, 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지 못하고 비구는 비구니를 꾸짖을 수 있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의 후반부는 앞의 제2경법과 일치하므로,「사분율」의 바일제법 제145조 ‘罵詈比丘戒’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팔리율」의 제8경법 ‘비구니의 비구에 대한 언로는 폐쇄된다’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오분율」과 「근본유부율」은 「사분율」의 내용과 거의 같다.「십송율」에서는 ‘見․聞․疑의 죄를 비구에게 말할 수 없다’고 되어 있고,「승기율」에서는 ‘비구니가 비구의 實罪․非實罪를 말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명료론」에서는 ‘비구니가 비구에게 난처한 질문을 하거나 비구에게 學을 가르칠 수 없다’고 되어 있으며, ‘비구니가 비구를 꾸짖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별도로 배정하고 있다.

 

第四敬法은 ‘式叉摩那가 계를 배워 마치면, 비구로부터 大戒(具足戒)를 받겠다고 청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것은「사분율」의 바일제법 제139조 ‘授宿往僧戒’(비구니계를 받은 다음 비구에게 가서 다시 수계해야 한다)와 유사하다. 즉 “만약 비구니가 구족계를 받은 다음 一夜를 지나고 比丘僧中에 가서 인준을 받게 되면 바일제이다.”21) 이 계는 비구니가 구족계를 받은 다음, 그 날 바로 비구중에 가서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式叉摩那(正學女)가 구족계를 받고자 할 때 兩僧伽에 구족계의 의식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근본유부율」과「명료론」은 이것을 제1경법에 두고 있다.

21)「四分比丘尼戒本」 (「大正藏」 22, 1038a), “若比丘尼 與人受具足戒已 經宿方往比丘僧中 
    與受具足戒者 波逸提.”

 

第五敬法은 ‘비구니가 僧殘罪를 범하면 마땅히 二部僧 중에서 보름동안 摩那埵를 행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팔리율」에는 ‘敬法(garudhammā)을 犯하면’ 二部僧에서 보름동안 마나타를 행해야 한다고 되어 있고,「명료론」에서는 ‘一尊法을 범하면’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율에서는 모두 ‘僧殘法을 범하면’으로 되어 있다. 둘 중에서 승잔법이 맞는 것 같다.22) 왜냐하면 비구의 승잔죄는 ‘六夜摩那埵’이고, 覆藏하지 않는 한 7일간의 근신으로 끝난다. 그러나 비구니가 승잔죄를 범한 경우에는 兩僧伽에서 2주간 마나타를 행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팔리율」비구니의 僧殘法23)에도 나타난다. 왜 비구니 승잔법이 비구의 경우보다 무거운지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22) 平川彰,「원시불교의 연구」, 석혜능 옮김 (서울: 민족사, 2003), 549쪽.
23) Vin. iv, 242쪽; 『南傳』 2권, 392쪽.

 

第六敬法은 ‘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에게 敎授해 주기를 청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것은 니율바일제법의 ‘半月不請敎授戒’24)에 명시되어 있다.「사분율」 바일제법 제141조 ‘半月違敎戒’(半月마다 敎授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와 동일하다. 즉 “만일 비구니로서 半月마다 마땅히 비구승중에 가서 교수를 청하지 않으면 바일제이다.”25) 또한 이 규정은 바일제법 제140조 ‘無病違敎戒’(병이 없으면서 교수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와도 관련이 있다. 즉 “환자가 아니면서 聽法하러 가지 아니하면 바일제이다.”26) 이것은 비구니가 반드시 半月에 한번은 비구의 가르침을 받도록 규정한 것이다.

24)「팔리율」 니율바일제법 제59조, 「四分律」 제141조, 「五分律」 제100조, 
   「十誦律」제151조,「根本有部尼律」제127조,「僧祇律」제131조. Vin. iv. 315쪽; 
   『南傳』 2권, 508쪽;「四分律」 권29 (「大正藏」 22, 765a);「五分律」권13 
   (「大正藏」22,90a);「十誦律」권46 (「大正藏」 23, 339c);「根本說一切有部苾芻
   尼毘奈耶」권19(「大正藏」23, 1008c);「僧祇律」권39 (「大正藏」 22, 541c).
25)「四分比丘尼戒本」 (「大正藏」22, 1038a), “若比丘尼 半月 應往比丘僧中 求敎授. 
    若不求者 波逸提.”
26)「四分比丘尼戒本」 (「大正藏」22, 1038a), “若比丘尼 不病 不往受敎授者. 波逸提.”

 

「팔리율」에는 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승가에게 布薩을 묻고, 敎誡를 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사분율」「오분율」「근본유부율」은 교계뿐이다. 다만 「승기율」은 「팔리율」과 합치한다. 포살에는 비구니 승가는 독자적으로 포살을 행한 뒤 대표비구니가 비구정사에 가서 포살을 실행했다고 하는 것을 보고하고, 아울러 교계를 구한다. 따라서 ‘敎誡’라고 말한 것만으로도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 이 신청에 의해 비구승가는 ‘비구니교계인’을 선출하고, 이 비구가 비구니를 교계한다. 즉 비구니들은 이 비구의 방에 가서 교법을 받는 것이다. ‘뽑히지 않은 비구가 비구니를 교계해서는 안 된다’27)라는 조문이 비구율의 바일제법에 있다. 이것은 비구니에게는 훌륭한 지도자가 부족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한 비구니들이 각자 불규칙적으로 비구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러한 규칙이 생겼을 것이다.

27) ‘非選而敎比丘尼戒’는 모든 율의 바일제법 제21조에 나타난다. Vin. iv, 51쪽;『南傳』 
   2권, 81쪽;「五分律」권6 (「大正藏」 22, 445c);「僧祇律」 권15 (「大正藏」22,346a); 
   「四分律」권12 (「大正藏」 22, 648c);「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권31 (「大正藏」
    23, 794c);「十誦律」권11 (「大正藏」 23, 81a).

 

第七敬法은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雨安居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이것은 니율바일제법의 ‘無比丘住處安居戒’28)에 명시되어 있다. 「사분율」 바일제법 제143조 ‘無僧安居戒’(비구가 없는 곳에서 안거하지 말라)와 동일하다. 즉 “만약 비구니가 비구승이 없는 곳에서 하안거를 하면 바일제이다.”29)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는 이 규정이 제정된 이유는 비구의 지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의 敎誡를 청하는 등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雨安居 삼 개월 간 비구가 없는 주처를 선택해서 안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30)고 했다. 그러나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보다는 비구들이 외부의 나쁜 사람들로부터 비구니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28)「팔리율」 니율바일제법, 제56조,「四分律」 제143조,「五分律」제91조, 
   「十誦律」제149조,「根本有部律」제128조. Vin. ii, 313쪽;『南傳』 4권, 505쪽; 
   「四分律」권29 (「大正藏」22, 766b); 「五分律」권13 (「大正藏」 22, 89a); 
   「十誦律」권46 (「大正藏」 23, 339b);「根本說一切有部苾芻尼毘奈耶」 권19 
   (「大正藏」 23, 1009a). 다만「僧祇律」에는 빠져 있다.
29)「四分比丘尼戒本」 (「大正藏」 22, 1038a), “若比丘尼 在無比丘處 夏安居者 波逸提.”
30) 平川彰, 앞의 책, 547-8쪽.

 

第八敬法은 안거가 끝나면 二部僧伽에서 見․聞․疑에 대하여 自恣를 행하는 것인데, 이것도 니율바일제법31)에 조문화되어 있다. 이것은 「사분율」의 바일제법 제142조 ‘夏竟違恣戒’(하안거 후 三事의 自恣에 불참하지 말라)와 동일하다. 즉 “비구니는 하안거를 마치고 비구승중에 가서 숨김없이 見․聞․疑인 三事를 고백해야 한다. 만약 가지 않으면 바일제이다.”32) 이것을 「팔리율」은 제4경법에 두고 있으나, 제8경법에 두는 율이 많다. 비구니들은 비구니승가에서 自恣를 행한 후에 다시 비구승가로 가서 비구들로부터도 자자를 받도록 규정한 것이다. 자자란 안거 삼 개월 동안의 자기 행위를 반성하고, 타인의 충고를 받는 것이다.

31) ‘二部僧中不自恣戒’.「팔리율」 니율바일제법 제57조,「四分律」 제142조,「五分律」
    제93조,「十誦律」 제150조,「根本有部尼律」 제129조,「僧祇律」에는 없다. Vin.iv, 
    314쪽;『南傳』2권, 506쪽;「四分律」권29 (「大正藏」 22, 766a);「五分律」권13
    (「大正藏」 22, 89b);「十誦律」권46 (「大正藏」 23, 339c);「根本說一切有部苾芻
    尼毘奈耶」권19 (「大正藏」 23, 1009a).
32)「四分比丘尼戒本」 (「大正藏」 22, 1038a), “若比丘尼僧 夏安居竟 應往比丘僧中說
    三事 自恣見聞疑 若不者 波逸提.”

 

이상에서 살펴본 팔경법의 내용을 요약하면, 제1경법은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의 서열을 규정한 것이다. 제2경법과 제3경법은 비구니가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을 수 없고, 비구는 비구니를 꾸짖을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제4경법은 식차마나가 비구니계를 받는 절차를 언급한 것이다. 제5경법은 비구니가 승잔죄를 범하면 兩僧伽에서 보름동안 摩那埵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6․제7․제8경법은 비구니승가는 비구승가에게 布薩․敎誡․自恣 등을 청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즉 二部僧 제도에 관한 것이다.

 

Ⅳ. 팔경법과 비구니승가의 성립

 

팔경법은 비구니승가의 성립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비구니승가의 성립에 대해서는 율장의 ‘比丘尼 犍度’33)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각 율장의 비구니 건도에 기록된 핵심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즉 여성의 출가는 붓다의 姨母이자 養母였던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 大愛道瞿曇彌)의 간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녀는 여인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붓다에게 세 번이나 요청했지만 세번 다 거절당했다. 그 뒤 아난다(Ānanda, 阿難)가 다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때 붓다는 만일 여성들이 여덟 가지 조건을 일생동안 지키겠다고 서약한다면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를 비롯한 오백 명의 석가족 여성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출가를 허락받았다. 그때의 조건이 바로 비구니 팔경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붓다는 여성의 출가로 인해 천년 동안 지속될 正法이 오백 년으로 감소하게 되었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33) Vin. 2, 253쪽 이하; 南傳』4권, 378쪽 이하;「五分律」권29 (「大正藏」22, 185f); 
   「僧祇律」권30 (「大正藏」 22, 471f);「四分律」권48 (「大正藏」 22, 922f);「十誦律」 
    권40 (「大正藏」 23, 290f),「十誦律」권47 (「大正藏」 23, 345b-c); 「根本說一切有
    部毘奈耶雜事」권29 (「大正藏」24, 350b-c).

 

위 기록의 역사성에 대해서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특히 비구니 팔경법은 후대에 삽입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각 율장과 경장에 나타난 기록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구니 팔경법은 거의 대부분 비구니계의 바일제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율장도 후대에 상당부분 增廣改變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經藏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변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34) 그 이유에 대해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는 이렇게 말했다.

 

"율장은 원래 승가의 조직 및 규칙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므로 律藏 傳持者 개인의 사견에 의해 내용을 임의로 변경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규칙의 개변은 반드시 승가 전원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아함의 경우는 傳持者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전승의 내용을 개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율장에 있어서는 그러한 가능성이 처음부터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35)

35) 平川彰, 「율장 연구」, 박용길 역 (서울: 土房, 1995), 67-9쪽.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전혀 근거 없이 모든 율장과 경장에 팔경법을 삽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쨌든 필자는 붓다에 의해 비구니승가가 성립된 것이 사실이라면, 팔경법도 붓다가 직접 제정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전제 아래, 비구니 팔경법이 제정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인도의 사회적 배경에 대하여 하나하나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째, 비구니승가는 언제 성립되었는가? 율장의 ‘비구니 건도’나 「구담미경」 등에서는 구담미가 세 번 반복하여 붓다께 간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어느 한 시기에 세 번 반복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처음에 간청하여 거절을 당하고, 몇 년이 경과한 뒤 다시 간청하고, 또 몇 년이 경과한 뒤, 비로소 허락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허락을 받은 시기는 대략 붓다 成道 후 20년경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난다 존자가 붓다의 시자가 된 것은 붓다의 나이 55세 때였기 때문이다.36) 이것이 사실이라면 비구니승가는 비구승가보다 약 20년 뒤에 성립되었다.

36) 水野弘元, 「釋尊の生涯」 (東京: 春秋社, 1972), 205쪽, 211-212쪽; 全海住, 「比丘尼
    敎團의 成立에 대한 考察―比丘尼八敬戒를 中心으로」, 317쪽.

 

둘째, 비구니승가는 어떤 계기로 성립되었는가?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는 “비구니승가가 존재한 이상, 그 발단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구담미의 요청에 의해 비구니승가가 성립되었다고 하는 전설을 사실로 승인해도 좋을 것이다. 아마 비구니승가는실제로 붓다에 의해 창설되었을 것이다. 붓다 입멸 후에 성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 만약 붓다에 의해 비구니승가가 거부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붓다의 입멸 후에 허락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37)라고 말했다. 따라서 비구니승가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와 석가족 여인들의 요청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37) 平川彰, 앞의 책, 93-4쪽.

 

셋째, 붓다가 처음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표면상 나타난 이유는 여인이 출가하여 승단에 들어오면 비구의 學道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중아함경』제28 「구담미경」에 “만약 여인으로 하여금 이 正法律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는 道를 배울 수 있게 하면, 곧 이 梵行을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할 것이다.  ···  만일 여인이 이 正法律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집이 없는 도를 배우지 못하게 되었더라면, 이 바른 법과 율은 천년을 더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오백년을 잃었으니, 남은 것은 오백년뿐이다.”38)라고 말했다.

38)『中阿含經』제28「瞿曇彌經」 (「大正藏」 1, 605c-607b).

 

또한 「毘尼母經」 제1에 의하면, 붓다는 왜 여인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느냐는 아난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의 집에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으면 가업은 반드시 무너지고 마는 것과 같다. 出家法 가운데 만약 여인이 있으면 반드시 정법이 무너져 오래 머물지 못한다.”39)라고 말했다. 또한 붓다는 “여인을 위해 八敬을 제정하는 까닭은 사람이 물을 건너려고 하면 먼저 교량이나 배를 만드는 것과 같다. 나중에 큰물이 닥치더라도 능히 건널 수 있게 된다. 팔경법 또한 이와 같다. 후대에 正法이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정하는 것이다.”40)라고 말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에서도이와 똑같은 내용이 설해져 있다.41) 요컨대 붓다가 처음에 여성의 출가를 곧바로 허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正法減少說이다.42) 이 정법감소설은 거의 모든 율장에 언급되어 있다.

39)「毘尼母經」 (「大正藏」 24, 803b), “如世人家男少女多家業必壞. 出家法中若有
    女人必壞正法不得久住.”
40)「毘尼母經」 (「大正藏」 24, 803b), “所以爲女人制八敬者. 如人欲渡水先造橋船.
    後時雖有大水必能得渡. 八敬法亦如是. 怖後時壞正法故爲其制耳.”
41)「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권29 (「大正藏」24, 350c), “若許女人爲出家者. 
    佛法不久住. 譬如人家男少女多. 卽被惡賊破其家宅. 女人出家破壞正法. 亦復如是.”
42) 正法減少說과 함께 등장하는 女性五障說은 후대에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오
    장설이란 ‘여성은 다섯 가지, 즉 붓다․전륜성왕․제석천왕․마왕․범천왕 등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안옥선, 「초기 경전에 나타난 여성 성불 불가설의 반불교성 고찰」, 
  「哲學硏究」 第68輯 (서울: 大韓哲學會, 1998.11), 165-191쪽 참조. ‘여성오장설’
    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별도로 언급할 생각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이유만으로 붓다가 여인의 출가를 망설인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겉으로 들어난 대의명분이었을 것이며, 실제로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는 당시 바라문사회의 반대였고, 다른 하나는 승단 내부의 보수적인 비구들의 반대였다. 붓다는 안팎의 반대와 저항에 직면하였던 것이다. 특히 당시 바라문 사회에서 여성이 집을 나와 유행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라문 사회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큰 저항이 있었을 것이다.

 

붓다가 출현하기 직전의 기원전 6-5세기에는 아리안계의 바라문 문화가 우세해지면서 카스트(四姓) 제도가 생겼다. 그리고 성직자 계급인 바라문을 중심으로 인도사회는 계층적으로 분화되어 신분이 고착화되기에 이른다. 카스트 제도가 강화되면서 계층 간의 혼혈을 막고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정조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점차 낮아지고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과 의무가 따랐다. 결국 여성의 사회활동이 통제될 수밖에 없었다. 붓다가 출현하기 직전의 인도사회에서 여성은 그 이전 사회와는 달리 인권과 권리가 현저히 낮아졌으며 자신의 신분과는 무관하게 낮은 신분계급에 해당하는 소외계층으로 점차 전락해 가고 있었다.43)

43) 李賢玉, 「女性成佛의 근거와 그 의미」,「佛敎學報」 제40집 (서울: 동국대학교 불교
    문화연구원, 2003), 266쪽.

 

당시 인도에서는 ‘女人(itthī)’이라면 반드시 누구의 보호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팔리율」에는 十護를 들고 있다. 즉 “母護․父護․父母護․兄護․姉護․親族護․種姓護․法護․自護․刑罰護이다.”44) 또한「승기율」에도 ‘十種護’를 들고 있다. 즉 “母所護․父所護․兄弟護․姉妹護․自護․種姓護․錢所護․童女․寡婦․他護이다.”45) 「오분율」에서도 ‘十種女’가 나열되어 있다. 즉 “父母所護․兄弟所護․親里所護․自護․法護․自任․衣物․共誓․有主․作信이다.”46)

44) Vin. ii, 139쪽; 『南傳』 1권, 234쪽.
45)「僧祇律」권6 (「大正藏」 22, 272c).
46)「五分律」권2 (「大正藏」 22, 12c).

 

이와 같이 당시 인도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매우 낮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붓다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한다는 것은 당시 바라문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붓다는 여성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깨달음의 주체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성이 출가하여 승가에 합류함으로써 전개될 병폐나 부작용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붓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분명히 고민했을 것이다. 붓다는 당장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고 싶었지만, 사회적 반응을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제도를 급진적으로 개혁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당시 사회로부터 불교승가 전체가 외면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불교승가의 존립 자체가 달린 중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승단 내부에서도 여성의 출가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특히 바라문 출신의 보수적인 비구들은 여인이 승가에 합류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붓다는 여성의 출가를 곧바로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넷째, 왜 비구니 팔경법을 제정했는가? 붓다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할 때, 아무런 조건도 없이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건을 제시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바라문들과 승단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사회적 반대 여론과 승단 내부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조건을 제시한 것이 바로 팔경법이라고 생각한다. 붓다는 여성들에게 이러한 조건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받음으로써 내외의 저항을 무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 붓다가 처음부터 거절하지 않고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와 석가족 여인 오백 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엄청난 파장이 생겼을 것이다. 바라문들은 붓다가 여인들을 가까이 두기 위해 출가시켰다고 비난을 퍼부었을 것이다.47) 실제로 그 속에는 붓다의 출가 전 아내였던 야소다라(Yasodharā)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붓다는 내심으로 여인의 출가를 허락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석가족 여인들이 침략자 꼬살라(Kosala) 국의 남성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좀 더 사태가 진전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시간을 지연시켰다.

47) 잠농 통프라스트, 「정치적 시각에서 본 붓다의 생애」, 이마성 옮김,「불교평론」 
    제7호 (서울: 불교평론사, 2001년 여름), 378-9쪽.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자이나교에서 먼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였다.48) 그래서 첫 번째 화살, 즉 바라문 사회로부터 직접적인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부의 반대자를 위해서 팔경법과 같은 형태의 조건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특히 바라문 출신의 비구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고 먼저 출가했더라도 당시 사회적 관습상 남성이 여성에게 먼저 예경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부득이 당시 인도의 사회적 관습을 따르도록 하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48) Jaina Sūtra Ⅱ, Sacred Books of the East XLV, 122.11.3; Quoted by Hema 
    Goonatilake, “The Dasa-silmātā Movement in Sri Lanka,” Sri Lank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2 (Colombo: Buddhist and Pali University of Sri Lanka, 
    1988), 124쪽.

 

종교도 역사적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李永子 교수가 지적한바와 같이, “불교의 경전도 시대적․사회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그 시대마다 처해있던 상황에 따라서 변질 될 수밖에 없었다.”49) 사실 아무리 뛰어난 이상을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원론적으로는 四姓이 平等하기 때문에 누구나 승단에 들어와 수행하면 틀림없이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시의 낮은 지위에 있던 여성을 윗자리에 앉히는 그와 같은 제도를 확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49) 李永子, 「불교의 여성관의 새로운 인식」, 78쪽.

 

그리고 붓다는 실제로 자이나교에서 여인이 출가함으로 해서 야기된 문제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인이 승단에 들어왔을 때 야기될 문제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붓다가 염려했던 문제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당시 열악한 사회 환경 속에서 여성이라는 신분 때문에 겪어야 했던 많은 문제점들이 야기되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여성으로서 유행생활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여성 출가자들은 맹수로부터 목숨을 잃거나 남성으로부터 겁탈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50) 그리고 비구계보다 비구니계가 많은 까닭도 여성의 신체적 조건과 당시의 열악한 사회 환경 때문에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50)「僧祇律」권29 (「大正藏」 22, 465b).

 

이러한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붓다는 팔경법을 제시함으로써 양쪽의 비난을 모두 피할 수 있었고, 또한 성공적으로 비구니 승단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붓다는 비구니 승단의 출현을 원하지 않았지만, 출가를 원하는 여성들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었던 것이다.51) 즉 팔경법이라는 방편을 통해 양쪽의 비난을 동시에 잠재우고, 성공적으로 비구니 승단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51) 잠농 통프라스트, 앞의 글, 378-9쪽.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붓다는 결코 여성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여성의 뛰어난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여성의 지위에 비추어 볼 때 비구니 승단이 설립됨으로써 받게 될 사회적 저항과 병폐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정에서 나오게 된 것이 바로 비구니 팔경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구니 팔경법은 결코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거나 여성의 지위를 낮추기 위해 고안된 잘못된 제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당시 비구니 승단을 설립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팔경법은 붓다가 여성들의 출가를 허락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方便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승단 내부에서 비구니승가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보수적인 비구들에 의해 비구니 팔경법의 내용 중 일부가 수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후대에 수정되거나 삽입된 것이 있기 때문에 비구니 팔경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5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大乘經典이나 大乘戒經도 모두 폐기해야 된다. 왜냐하면 대승경전이나 대승계경은 모두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팔경법은 비구니계, 즉 尼律波逸提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52) 법인, 「비구니 팔경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불교평론」 제18호 (서울: 불교평론사,
    2004년 봄), 93-121쪽.

 

다섯째, 正法減少說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이나교에서 먼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자이나교는 空衣派(digambara)와 白衣派(śvetāmbara) 둘로 구분된다. 공의파는 나체로 고행하는 집단이다. 이러한 자이나교에 여성이 들어감으로 인해 자이나교의 내부는 급격히 타락하였다. 붓다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법이 쇠퇴해 질것이라고 한탄하였다. 즉 여인이 불교승단에 들어오면 자이나교에서 일어난 것과 똑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53) 실제로 자이나교의 교주였던 니간타 나타뿟따(Nigaṇṭha Nāthaputta)의 사후,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큰 혼란과 불화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시자 아난다로부터 보고 받은 붓다는 크게 놀랄 일이 아니며, 이미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豫見했었다고 말했다.54) 이러한 것이 정법감소설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53) Hema Goonatilake, op. cit., 124쪽.
54) D iii, 117-141쪽;『南傳』 8권, 149-182쪽;『長阿含經』 17, 「淸淨經」
    (「大正藏」1,72-76).

 

여섯째, 현존하는 팔경법은 언제 정형화되었을까?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붓다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할 때 어떤 형태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떤 조건을 제시한 것만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존하는 팔경법과 똑같은 내용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존의 팔경법에는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式叉摩那가 2년 동안 六法을 배우고 비구승가로부터 다시 구족계를 받도록 규정한 것이다. 비구니승가가 성립되기 전에 式叉摩那가 있었다는 것은 전혀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 그러한 작업이 이루어졌을까? 필자는 현행의 비구니 팔경법은 불멸 직후 제1결집 때 이미 정형화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때 이미 보수적인 비구들이 주도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불멸 직후, 평소 비구니승가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보수적인 비구들이 주도권을 장악하면서부터 팔경법의 내용 일부를 수정하거나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제1결집 때 이미 보수적이었던 마하깟싸빠(Mahākassapa, 大迦葉)와 진보적이었던 아난다(Ānanda, 阿難)사이에 갈등이 표출되었다.55) 대가섭이 공개 석상에서 아난의 잘못을 낱낱이 지적하였다. 아난은 대가섭이 지적한 열 가지 허물을 인정하고 참회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허물은 여성의 출가를 붓다께 종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법제일로 알려진 뿐냐(Puṇṇa, 富羅那) 존자는 대가섭이 주도한 결집에 늦게 당도하여 어떤 律에 관해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56) 이와 같이 비구승가 내부에서도 세부적인

율 조항에 대해서는 서로 견해가 달라서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57) 이러한 갈등은 자이나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이나교의 空衣派는 여성이 정신의 해탈을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반면 白衣派는 여성이 영혼의 해방된 상태가 완전히 가능하다고 보았다.58) 자이나교의 공의파와 불교의 보수파는 여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고, 자이나교의 백의파와 불교의 진보파는 여성에 대하여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55) Mahākassapa(大迦葉)와 Ānanda(阿難)를 이하 ‘대가섭’과 ‘아난’으로 표기한다.
56)「四分律」권54 (「大正藏」 22, 968c).
57) Vin. ii, 289쪽.
58) Pasmanabh S. Jaini, Gender and Salvation: Jaina Debates on the Spiritual 
    Liberation (Berkeley &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엘리슨 핀들리, 「왜 여성은 ‘아라한’이라 불리지 않았는가」, 안옥선 옮김,「불교
    평론」제5호 (서울: 불교평론사, 2000년 겨울), 347쪽, n. 9에서 재인용.

 

그런데 불멸 직후, 보수파가 주도권을 장악했고, 특히 제1결집을 주도했던 대가섭은 비구니와는 특별한 惡緣을 갖고 있었다. 「사분율」 제49에 의하면, 한때 아난은 나이 어린 6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들이 모두 還戒하고 세속으로 돌아갔다. 대가섭은 아난에게 너 같은 ‘소년’은 만족할 줄을 모른다고 질책하였다. 아난은 “내 머리가 이미 백발이 되었는데, 어떻게 ‘소년’이라고 부르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대가섭은 “너는 어린 비구들과 함께 모든 감관을 절제하지 못하고 밤낮으로 먹고 수행 정진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偸蘭難陀’라는 비구니는 화가 나서 대가섭에게 “원래 外道였던 네가 어떻게 아난 존자를 ‘소년’이라고 질타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다음 날 아침 라자가하(Rājagaha, 王舍城)에서 탁발하고 있던 대가섭의 얼굴에 투란난타 비구니가 침을 뱉었다.59) 「십송율」 권40 比丘尼法에는 투란난타 비구니가 대가섭 앞에서 고의로 보행을 방해했다. 그때 대가섭은 “자매여! 걸음을 빨리 하거나, 아니면 나에게 길을 비켜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투란난타 비구니는 “그대는 본래 외도였던 주제에 무슨 일이 그리 급하다고 천천히 다니지도 못합니까?”라고 욕하였다. 이것에 대하여 대가섭은 

“악녀여! 나는 너를 책망하지 않고 나는 阿難을 책망한다.”라고 말하였다. 아난을 책망한다고 말한 것은 아난이 세존에게 청하여 비구니의 출가를 허용한 일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대가섭은 비구니에 대해서 극히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같다.60) 이로 미루어 불멸 직후 제1결집 때 현존하는 팔경법의 형태로 정형화되었을 것이다. 그 때 제정된 팔경법이 교단이 부파분열을 한 뒤에도 각 부파에서 똑같이 전승하였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각 부파의 율장에 모두 팔경법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59)「四分律」권49 (「大正藏」 22, 930a-b).
60) 申星賢, 「初期佛敎 敎團에서 迦葉과 阿難의 關係」,「佛敎學報」제36집 (서울: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1999), 261-2쪽.

 

일곱째, 불멸 후 비구니승가는 어떻게 유지되었을까? 처음 붓다가 염려했던 것처럼, 불멸 후 비구니승가는 급격히 쇠퇴해진 것으로 보인다. 비구니승가는 이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의 사후에는 겨우 그명맥을 유지했던 것 같다. 일설에 의하면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120세에 입적했는데, 그 때 오백 명의 비구니들이 함께 입적했다고 한다.61)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때 이미 비구니승가를 이끌어갈 지도자들을 모두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비구승가의 도움 없이는 자체적으로 布薩이나 說戒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61) “She was one hundred and twenty years old; she took leave of the Buddha, 
     performed various miracles, and then died, her five hundred companions 
    dying with her. It is said that the marvels which attended her cremation rites 
    were second only to those of the Buddha.” G. P. Malalasekera, Dictionary 
    of Pāli Proper Names (New Delhi: Oriental Books Reprint Corporation, 1983), 
    Vol. 2, 523쪽.

 

"비구들 가운데는 ‘二部毘尼를 외우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주 말해지고 있다. 이것은 비구율과 비구니율 두 가지를 傳持하고 있는 비구를 말하는 것이다. 현재의 모든 율은 비구율에 비구니율이 부가되어 있는 형태로 편집되어 있다. 이것도 비구가 비구니율까지도 전지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비구니들은 독자적인 힘으로 비구니율을 전지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단절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비구들이 비구니율까지도 전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도 비구니승가가 약체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62)

62) 平川彰, 앞의 책, 94쪽.

 

이와 같이 비구니승가에서 비구승가의 도움 없이는 자체적으로 어떤 羯磨도 행할 수 없었던 것 같다. 敎誡人을 비구승가에 청하라고 한것은 비구니승가에 誦誡人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족계를 설해 줄 和尙阿闍梨를 청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하승기율」의 式叉摩那로 2년 동안 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고자 비구승가에 청하는 의식에 그러한 정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나타나 있다.63)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遮法이 적용되고64)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이것은 붓다 입멸 후, 처음부터 여성의 출가를 반대했거나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보수적인 비구들이 가능한한 여성의 출가를 막기 위해 고의로 차법을 강화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제6경법에 나오는 式叉摩那가 2년 동안 학계를 배우고, 二部僧으로부터 구족계를 받도록 한 것 등이다.

63)「僧祇律」권30 (「大正藏」 22, 471b-c).
64)「僧祇律」권30 (「大正藏」 22, 472b).

 

이러한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볼 때, 비구니승가는 붓다에 의해 성립되었지만, 붓다의 입멸 후에는 그다지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세력이 약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교단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고 할 정도의 일도 없었던 것이다.65) 여러 가지 점에서 비구니승가는 힘이 미약하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비구승가의 지도나 도움을 받지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65) 平川彰, 앞의 책, 94쪽.

 

여덟째, 그러면 이 시대 비구니 팔경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선 두 가지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팔경법의 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수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별도의 규정을 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全世界 四方僧伽의 합의를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팔경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수정하는 것은 새로운 규정을 제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율장의 관련 부분을 모두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율에 대한 전문가가 이러한 작업을 완료했다 할지라도 四方僧伽의 합의를 도출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율장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전세계 사방승가의 합의에 의해 별도의 규정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비구니승가의 복구에도 반대하는 상좌부의 장로들이 비구니 팔경법을 폐기하고,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이 문제를 현재의 한국불교 승단만으로 한정한다면, 수정안보다 제정안이 훨씬 더 실현 가능한 방안일 것이다. 그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興起한 이후, 당시 부파불교에서 傳持해 온 聲聞戒를 버리고 새로운 菩薩戒를 제정한 것이 그것이다. 대승불교의 출가자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부파불교의 성문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66) 오늘의 한국불교 승단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援用하여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66) “대승불교의 기원에 관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승불교를 일으킨 사람들은 
    재가자가 아닌 기존의 승려들이었으며, 이들은 여전히 波羅提木叉에 근거하여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성문계에 근거하면서도 어떻게 보살계를 함께 
    조화시켜 나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李慈郞 박
    사가 지적해 주었다. 어쨌든 대승불교도들이 보살계를 새로 제정한 것만은 틀
    림없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가 동등한 지위를 갖기 위해서는 제1경법에서부터 제3경법까지의 조항을 二部僧伽의 합의에 의해 별도의 규정을 만들고, 제4경법에서부터 제8경법까지의 다섯 항목은 이부승 제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비구니승가가 비구승가로부터 독립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를 二元化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가 신설되어야 한다는 문제점이 대두된다. 그 이전에 ‘比丘尼部’를 별도로 신설하여 비구니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도 하나의 과도기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아울러 비구니승가에서는 자체적으로 모든 갈마를 행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 나가는 것도 선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승기율」권30에 “만약 비구가 열두 가지 법을 성취하면, 마땅히 갈마를 행할 수 있는 敎誡人이 될 수 있다. 즉 ①持戒 ②多聞不忘 ③持律廣略 ④辯才能說 ⑤學戒 ⑥學定 ⑦學慧 ⑧能除惡邪 ⑨梵行淸淨 ⑩不汚比丘尼淨行 ⑪忍辱 ⑫滿二十歲이다.”67)라고 되어 있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비구니도 이러한 열두 가지 법을 성취하면 布薩日에 誦戒할 수 있는 敎誡人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佛滅 후에는 그러한 능력을 갖춘 비구니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부득이 비구승가의 도움을 받아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아직 불교승가에서 二部僧(ubhato-saṅgha, 兩僧伽) 제도를 도입한 시기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불멸 후 비구니승가가 쇠퇴해졌을 때, 이부승 제도가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Ⅴ.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구니 팔경법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는 조건으로 붓다가 직접 제정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팔경법은 각 부파의 율장과 경장은 물론 비구니계의 바일제법에도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가 부파로 분열되기 이전에 이미 팔경법이 시행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팔경법은 붓다가 처음 제정한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각 부파의 율장에 언급된 팔경법의 순서와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 일부 수정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여성도 수행하면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여성이 출가하여 승단에 합류했을 때 수반되는 많은 문제점도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팔경법과 같은 제도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제도와 규범은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성별에 따른 구분을 지을 수밖에 없다. 성별 구분은 진리에 대한 통찰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교승가도 당시 사회적 관습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비구니 팔경법은 당시 인도의 사회적 문화 배경에서 나온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팔경법은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인도에서 여성의 지위는 시대에 따라 향상되거나 저하되기도 하였다. 대체적으로 불교가 흥성하였을 때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 그러나 바라문교가 득세했을 때는 여성의 지위도 저하되었다. 불교승가 내부의 비구니 위상도 당시 사회적 관습이나 인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무튼 비구니 팔경법은 그것을 제정할 당시의 상황에서는 분명히 존재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제정할 당시의 상황과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치안적인 측면에서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비구니 팔경법을 폐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팔경법은 비구니계의 바일제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二部僧 제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승가에서 이부승제도가 유지 존속되고 있는 한 팔경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팔경법은 비구니승가가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제도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끝으로 비구니 팔경법과 같은 여성 차별적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출세간의 승가라 할지라도 동시대의 사회적 제도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그 역할이 확대되면, 자연적으로 승가에서의 지위와 역할도 향상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를 대립의 관계로 몰고 가는 것은 결코 불교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는 상호 협력해야 할 관계임은 말할 나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