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보조국사 지눌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실론섬 2016. 8. 24. 16:15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1)

해동사문 지눌 지음

海東沙門 知訥 述2)
1) 저본(底本)은『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제4책에 수록(韓4, pp.738a1-
   739a11)된『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이다. 이에 대한 교감본으로 갑본(甲
   本)은 만력(萬曆) 2년(1574)에 월정사(月精寺)에서 개판한 계초심학인문(誡初
   心學人文)』이며, 을본(乙本)은 탄허스님이 현토(懸吐)하고 역해(譯解)한『초발
   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敎林, 1982)에 수록된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이며, 병본(丙本)은 보조사상연구원(普照思想硏究院)에서 펴낸『보조전서(普照
   全書)』(佛日出版社, 1989)에 수록된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이다.『한국불
   교전서』에서는 갑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2)「海東沙門知訥述」이라는 문구는 저본의 편집자가 보충해서 넣은 것이다.(韓4,
    p.738c) 저자가 지눌스님인 것은 ‘대명(大明) 숭정(崇禎) 14년(1640) 경진(庚辰) 6
   월일 천관산(天冠山) 천관사(天冠寺) 중간(重刊)’이라는 간기가 있는『선가귀감
   (禪家龜鑑)』에 합철된 이 책의 서기(署記)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태화(泰和) 을
   축(乙丑, 1205) 동월(冬月) 해동(海東) 조계산(曹溪山) 노납(老衲) 지눌(知訥) 지
   (誌)’라는 명문이 있다.

무릇 처음 발심한 사람3)은 반드시 악한 벗을 멀리 여의고 어질고 착한
이를 친히 가까이 하며, 오계(五戒)4)와 십계(十戒)5) 등을6) 받아서 지니고
범하고 열고 막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7) 다만 부처님의 성스러운 말씀8)
의지할지언정 용렬한 무리들의 망령된 말을 따르지 말라.
夫初心之人, 須遠離惡友, 親近賢善, 受五戒十戒等, 善知持犯
開遮. 但依金口聖言, 莫順庸流妄說.
3) ‘처음 발심한 사람[初心之人]’은 불교에 귀의하는 마음을 처음으로 낸 사람, 대
   승의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결사에 참여하려는 마음을
   처음으로 낸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오계(五戒, pañca-śīla)는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인데,
   주로 재가자인 우바새와 우바이가 지켜야 하는 계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계
   (戒, śīla)는 습관(習慣)・성향(性向)・행상(行狀) 등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śila에
   서 나온 말로, 좋은 습관을 지키려고 하는 결의라고 할 수 있다. 오계는 ①생명
   을 죽이지 말 것[不殺生], ②도둑질하지 말 것[不偸盜], ③사음하지 말 것[不邪
   婬], ④거짓말하지 말 것[不妄語], ⑤술 마시지 말 것[不飮酒]이다.[『장아함경(長
   阿含經)』(大1, p.59c13-14) ; 『사분율(四分律)』(大22, p.600c19-20) ;『십송율
   (十誦律)』(大23, pp.149c23-150a5) 참조.]
5) 십계(十戒)는 출가자인 사미와 사미니가 지켜야 할 열 가지가 계율이다. 십계는
   ①생명을 죽이지 말 것[不殺生], ②도둑질하지 말 것[不盜], ③음행하지 말 것[不
   淫], ④거짓말하지 말 것[不妄語], ⑤술 마시지 말 것[不飮酒], ⑥꽃다발을 쓰거
   나 향을 바르지 말 것[不着香華鬘 不香塗身], ⑦노래하고 춤추고, 풍류 잡히지 말
   며, 가서 구경하지도 말 것[不歌舞倡伎 不往觀聽], ⑧높고 큰 평상에 앉지 말 것
   [不坐高廣大牀], ⑨때 아닌 때 먹지 말 것[不非時食], ⑩금이나 은이나, 다른 보물
   들을 가지지 말 것[不捉持生像金銀寶物]이다.[『사분율(四分律)』의「수계건도」
   (大22, p.810b17-c3, p.923c29-924a20) 참조.]
6) 오계와 십계 등이라고 한 것은 오계, 십계, 구족계(具足戒), 십선계(十善戒), 보
   살계(菩薩戒) 등 불교에 귀의한 재가자와 출가자가 받는 모든 계를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 오계와 십계의 수계의범은 중국의 선원청규에서도 볼 수 있다. 즉,
   자각종색(慈覺宗賾)가 1103년에 편찬한 『중조보주 선원청규(重雕補註 禪苑淸
   規)』의「사미수계문(沙彌授戒文)」(卍111, p.925a13-b16)과 동양덕휘(東陽德輝)가
   1388년에 편찬한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의「사미득도(沙彌得度)」(大48,
   pp.1137c15-1139a13)에서 볼 수 있다.
7) ‘지니고 범하고 열고 막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해당되는 계에 대해 율
   장에 설해진대로 ‘지키고[持], 범하고[犯], 허용하고[開], 금지하는[遮] 것을 잘
   알아서 그 가르침에 따라서 행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계율을 지키는 것을 ‘지
   (持)’라고 하며, 계율을 어기는 것을 ‘범(犯)’이라고 한다. ‘개(開)’는 허락한다는
   개허(開許)・개청(開聽)・청허(聽許)의 뜻이며, ‘차(遮)’는 막아서 못하게 한다
   는 차지(遮止)・제지(制止)의 뜻이다. 특히 개(開)는 상황에 따라 계를 범하는 것
   을 허락하는 측면이 있는데,『오분율(五分律)』의 비유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비구가 어느 때에 화살을 맞고 달려오는 멧돼지를 보았지만, 사냥꾼이 물었
   을 때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였다. 그 후 의문이 생겨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께서는 ‘범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大22, p.183a7-15) 이런 경우에는 생
   명을 살리기 위해 부득이하게 방편으로 계를 범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8) ‘부처님의 성스러운 말씀[金口聖言]’은 부처님의 말씀을 존칭하는 말로, 금구설
   (金口說), 금구직설(金口直說), 금구설법(金口說法), 금구성언(金口聖言) 등이라
   고도 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금강처럼 굳세어서 부서지지 않고 귀중하다는 뜻
   으로 금언(金言)이라고 한다.『화엄경(華嚴經)』의「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는
   금구소설(金口所說)이라 하였으며,(大10, p.348b3) 원효스님은『불설아미타경소
   (佛說阿彌陀經疏)』에서 부처님의 말씀은 금구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몇 천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가르침이라고 하였다.(韓1, p.563a7-8).

이미 출가해서 청정한 대중에 참여하여 모신다면 항상 부드럽고 화합하
고 착하고 따를 것을 생각하고 아만을 높이 세우지 말라. 큰 이는 형이 되
고 작은 이는 아우가 된다. 만일 다투는 사람이 있으면 두 말을 화합하여
다만 자비로운 마음으로 서로 향할지언정 악한 말로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라. 만약 같은 도반을 속이고 업신여겨 옳고 그름을 논하여 말한다면, 이
와 같은 출가는 온전히 이익이 없다.9) 재물과 색(色)의 화는 독사보다 심하
니 자기를 살펴 그름을 알아서 항상 반드시 멀리 여의어야 한다.10)
旣已出家, 參陪淸衆, 常念柔和善順, 不得我慢貢高. 大者爲
兄, 小者爲弟. 儻有諍者, 兩說和合, 但以慈心相向, 不得惡語
傷人. 若也, 欺凌同伴, 論說是非, 如此出家, 全無利益. 財色
之禍, 甚於毒蛇, 省己知非, 常須遠離.
9) ‘이미 출가하여’부터 ‘온전히 이익이 없다’까지의 내용은『선원청규(禪苑淸規)』
    권9의「훈동항(訓童行)」(卍111, p.928a12-15)에도 보인다.
10) ‘지니고 범하고 열고 막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다만 부처님의 성스러운 말씀을
   의지할지언정 용렬한 무리들의 망령된 말을 따르지 말라’와 ‘재물과 색(色)의
   화는 독사보다 심하니 자기를 살펴 그름을 알아서 항상 반드시 멀리 여의어야
   한다’는 내용은『선원청규(禪苑淸規)』(卍111, p.877a18-b4)와『칙수백장청규(勅
   修百丈淸規)』(大48, p.1138c23-26)에도 설해져 있다. 다만 두 구절 사이에 비시식
   (非時食)을 경계하는 짧은 글이 첨가되어 있다.

반연의 일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방이나 집에 들어가지 말며, 가려진 곳
에 이르러서는 억지로 다른 사람의 일을 알려고 하지 말며, 육일(六日)11)
이 아니면 내의를 세탁하지 말며, 양치하고 세수할 때 큰 소리로 코풀고
침 뱉지 말며, 행익(行益)12)할 때 당돌하게 차서를 넘지 말며, 경행(經行)13)
할 때 옷깃을 열고 팔을 흔들지 말며, 말을 할 때 큰 소리로 장난하거나 웃
지 말며, 요긴한 일이 아니면 문 밖에 나가지 말며, 병든 사람이 있으면 반
드시 자애로운 마음으로 지키고 보호하며, 손님을 보면 반드시 흔연히 맞
이하여 접대하며, 웃어른을 만나면 반드시 정중하고 공경스럽게 돌아서
비켜야 한다.14)
無緣事, 則不得入他房院, 當屛處, 不得强知他事, 非六日, 不
得洗浣內衣, 臨盥漱, 不得高聲涕唾, 行益次, 不得搪突越序,
經行次, 不得開襟掉臂, 言談次, 不得高聲戱笑, 非要事, 不得
出於門外, 有病人, 須慈心守護, 見賓客, 須欣然迎接, 逢尊長,
須肅恭迴避.
11) 육일(六日)은 매월 세 번의 6일, 즉 6일・16일・26일을 말한다. 또는 육일을 육재
    일(六齋日)로 보기도 하는데, 매월 8일・14일・15일・23일・29일・30일의 여섯 날
    을 말한다. 출가자는 매월 이 여섯 날에 반드시 한 곳에 모여 포살을 하고 계를
    설해야 하며, 재가자는 이 여섯 날에 팔관재계(八關齋戒)를 수지한다. 또한 이
    여섯 날에 사천왕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선악을 조사하여 목숨이 다하면 그
    업에 따라 처분한다고 한다.[『잡아함경(雜阿含經)』 권40(大2, pp.295c-296a) ; 『불
    설사천왕경(佛說四天王經)』권1(大15, p.118b) ;『원각경도량수증의(圓覺經道場修證
    儀)』권1(卍126, p.729b) 참조.]
12) 행익(行益)은 공양할 때 모인 대중에게 빠짐없이 음식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행(行)은 차례로 내려가는 것[行食]이며, 익(益)은 담아주는 것[益食]이다. 그래
    서 행익을 음식을 나누는 순서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행(行)은 먼저 음식을 차
    례로 나누는 행반(行飯)을 말하며, 익(益)은 음식이 모자라거나 남을 경우 다시
    발우에 음식을 더 담거나 덜어내는 가・감반(加・減飯)을 하는 순서라는 것이다.
    한편, 익(益)은 법을 묻고 강의를 청하는[問法聽講] 등으로 나를 이롭게 하는 법
    요의 총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13) 경행(經行, can3 kramana)은 조용히 걷는 것을 말한다. 좌선 중의 피로를 덜고 졸
    음을 물리치기 위해 일정한 장소를 왕복하며 조용히 걷는 것이다.
14) ‘반연의 일이 없으면’부터 ‘돌아서 비켜야 한다’까지의 내용은 도선(道宣)이 저
    술한『교계신학비구행호율의(教誡新學比丘行護律儀)』의「재사주법(在寺住法)」
    (大45, p.815a14-b7)에서도 볼 수 있다.

도구를 마련하되15) 반드시 검소하고 절약하여 만족할 줄 알며, 밥 먹을
16) 마시고 씹음에 소리를 내지 말며, [수저와 그릇 등을] 들고 놓음에 긴
요하게 반드시 편안하고 자세히 하며,17) 얼굴을 들어 돌아보지 말며, 정미
롭고 거친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지 말며, 반드시 묵묵히 말없이 하며,
반드시 잡념을 막아서 두호하며, 반드시 밥을 받는 것이 다만 몸이 마르는
것을 치료하여 도업을 이루기 위해서 임을 알아야 한다.18) 반드시『반야심
경(般若心經)』을 생각하고,19) 삼륜(三輪)이 청정함20)을 관하여 도의 쓰임을
어기지 말라.
辦道具, 須儉約知足, 齋食時, 飮啜不得作聲, 執放要須安詳,
不得擧顔顧視, 不得欣厭精麤, 須黙無言說, 須防護雜念, 須知
受食, 但療形枯, 爲成道業. 須念般若心經, 觀三輪淸淨, 不違
道用.
15) 도구(道具)는 출가자가 수행하는데 반드시 갖추어야 할 물건을 말하며, 자구(資
    具)라고도 한다. 통상적으로 삼의(三衣), 육물(六物), 십팔물(十八物) 등이 있다.
   『칙수백장청규(敕修百丈淸規)』 권1의 「판도구(辦道具)」에서는 도구를 삼의(三
    衣), 좌구(坐具), 편삼(偏衫), 군(裙), 직철(直裰), 발(鉢), 석장(錫杖), 주장(主杖),
    불자(拂子), 수주(數珠), 정병(淨瓶), 녹수낭(濾水囊), 계도(戒刀) 등의 13가지로
    제시하고 있다.(大48, p.1112, a27-28)
16) ‘밥 먹을 때[齋食時]’는 출가자의 정오 이전 식사를 가리키며, 간략히 재(齋)라고
    한다. 또한 정식(正食)・시시식(時時食)・불과중식(不過中食) 등이라고도 한다.
    반대로 정오를 지난 식사를 비시(非時)라고 하며, 비시의 식사를 비시식(非時
   食) 혹은 후식(後食)이라고 한다. 비시식의 계를 지킨 것을 지재(持齋)라고 한다.
17) ‘마시고 씹음에 소리를 내지 말며, [수저와 그릇 등을] 들고 놓음에 긴요하게 반
    드시 편안하고 자세히 하며’는 밥 먹을 때 경계해야 할 내용이다. 한국의 사원에
    서는 음식을 먹을 때뿐만 아니라 발우와 수저를 들고 놓으며 씻을 때에 이르기
    까지 일체의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밥 한 톨과 반찬 찌꺼기 하나도 남기지 못
    하도록 엄하게 가르친다. 이는 보이지 않는 중생의 고통과 음식이 오기까지 베
    풀어진 무한한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발우공양을 처
    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아귀(餓鬼) 중생의 고통에 대해서 일러준다. 아귀는 수미
    산만한 배와 바늘귀만한 입을 가진 이들로 표현되는데, 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
    은 발우를 씻은 물인 청수(淸水)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들이 발우공양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 속에서 불이 나서 죽게 되며, 청수에 조그마한 찌꺼기가 남아 있
    으면 물을 마시다가 목이 막혀 죽게 된다고 설명한다. 물론 음식이 오기까지 베
    풀어진 은혜를 알게 하고 조그마한 행동까지도 경계하기 위해 일러주는 이야기
    이지만, 이 속에는 음식의 소중함과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중생에 대한 무한
    한 자비가 담겨 있다.
18) 이 내용은 『식당작법(食堂作法)』에 나오는 ‘오관게(五觀偈)’을 가리킨다. 대한불
    교조계종 교육원에서 편찬한『승가의범(僧家儀範)』에 나오는 오관게는 다음과
    같다. 즉, “공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고 온 곳을 헤아리며 자기의 덕행을 헤아리
    니 온전히 공양에 응하기 모자라네. 마음이 허물 여읨을 막는 것은 탐욕 등이 근
    본이니 바르게 좋은 약이 몸의 메마름을 치료하기 위함임을 생각하네. 도업을
    이루기 위하므로 이 공양을 받네.”(計功多少量彼來處, 忖己德行, 全缺應供, 防心離
    過, 貪等爲宗, 正思良藥, 爲療形枯, 爲成道業故 應受此食.) 이러한 내용은 『선원청
    규(禪苑淸規)』권1(卍111, p.882a5-6)과『칙수백장청규(敕修百丈淸規)』권6(大48,
    p.1145, a15-16)에도 보인다. 한국 전통사원의 큰 방에는 앉은 사람의 눈높이 정
    도에 오관(五觀)의 패가 삼함(三緘)의 패와 함께 걸려 있다. 삼함은 삼함지계(三
    緘之誡)의 줄인 말로 몸・말・뜻의 세 가지 업을 잘 단속하고 지키라는 의미이다.
    수행자는 언제나 이 패를 보고 자신을 돌아보고 단월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19)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생각함’은 공양할 때의 의식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보
    이는데,『식당작법(食堂作法)』에는 발우를 펴는 전발게(展鉢偈) 다음에『반야
    심경』을 외우는 순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사원의 전통의식을 집
    대성한『석문의범(釋門儀範)』에서는「송주편(誦呪篇)」에『반야심경』을 배치하
    였는데, 그 아래에 대심경(大心經)과 소심경(小心經)을 두었다. 대심경은『반야
    심경』을 포함하여 길게 구성되어 재를 지내거나 특별한 공양의식을 할 때 사용
    하며, 소심경은 짧게 구성되어 일상의 공양에서 행한다. 따라서『반야심경』은
    공양할 때 외우는 송주(誦呪)이면서 식당작법인 것이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소
    심경을 식당작법으로 사용하고 있다.[『선원청규(禪苑淸規)』 권9의「부죽반(赴粥
    飯)」(卍111, pp.525a6-526a18) ;『칙수백장청규(敕修百丈淸規)』권6의「일용궤범」
    (大44, pp.1144c21-1145b9) 참조.]
20) 삼륜청정(三輪淸淨)은 베푸는 사람[施者]과 받는 사람[受者]과 베푸는 물건[施
    物]의 셋이 청정한 것을 말한다. 『화엄경(華嚴經)』의 「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
    는 열 가지의 청정시(淸淨施)에 대해 설하는데, 열 번째에서 삼륜청정시(三輪
    淸淨施)를 설하였다. 즉, ‘삼륜청정시는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및 베푸는 물
    건을 바른 생각으로 관찰하기를 허공과 같이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大10,
    p.304c27-29)

예불하는 데[焚修]21) 나아가되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행하여
스스로 게으름을 꾸짖으며, 대중이 행하는 차례를 알아22) 잡되고 어지러이
하지 말며, 기려[讚唄]23) 축원하되 반드시 글을 외우면서 뜻을 관할지언정
다만 음성만을 따르지 말며, 운율과 곡조를 고르지 않게 하지 말며, 부처님
의 얼굴을 우러러 공경할 때에는 다른 경계를 반연하지 말라.
반드시 자기 자신의 죄와 업장이 산과 바다 같은 줄 알며, 반드시 이참(理
懺)과 사참(事懺)24)으로 녹여 없앨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경하는 [나]와
예경받는 [부처님]이 모두 참 성품으로부터 연기한 것임을 깊이 관하며, 감
응이 헛되지 않아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쫓음을 깊이 믿어야 한다.
赴焚修, 須早暮勤行, 自責懈怠, 知衆行次, 不得雜亂, 讚唄祝
願, 須誦文觀義, 不得但隨音聲, 不得韻曲不調, 瞻敬尊顔, 不
得攀緣異境. 須知自身罪障, 猶如山海, 須知理懺事懺, 可以消
除. 深觀能禮所禮, 皆從眞性緣起, 深信感應不虛, 影響相從.
21) 분수(焚修)는 불전에 향을 사르고 의식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불하는데
    [焚修]’라고 번역하였다.
22) ‘대중이 행하는 차례를 안다[知衆行次]’는 것은 예불할 때 대중이 들어가고 나가
    고 앉고 서는 등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의 차례를 잘 알아서 따르는 것으로 이해
    된다. 한편 ‘지중(知衆)이 행하는 때에’라고 하여 앞의 ‘행익할 때(行益次)’와 같
    은 어법으로 읽은 예도 있다. 지중(知衆)을 예불할 때 의식을 집전하고 이끌어
    가는 소임자로 이해한 것이다.
23) 찬패(讚唄)를 ‘범패로 찬탄하다’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찬패(讚唄)의 사전적
    인 의미는 기리다, 불경을 풍송한다는 뜻이다. 이 글의 언해본에서도 ‘찬폐축원
    (讚唄祝願)’을 ‘기려 츄원호 ’로 번역하고 있으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찬
    패’가 ‘기리다’는 의미의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
    기에서는 찬패(讚唄)를 ‘기려’로 번역하였다.
24)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은 참회의 두 가지 방법이다. 이참은 실상의 이치를 관
    찰하여 참회하는 것이며, 사참은 일에 따라 몸[身]・말[口]・뜻[意]의 세 가지 업
    으로 참회하는 것으로 수사분별참회(隨事分別懺悔), 사참회(事懺悔)라고도 한
    다. 한국의 불교의식에서는 늘 『천수경(千手經)』을 독송하는데, 여기에 수록된
  「참회게(懺悔偈)」를 이참과 사참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참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즉, “죄는 자기 성품이 없어 마음을 좇아 일어나니, 마음이 만약 없어질 때
    라면 죄도 또한 없어지네. 죄도 없고 마음도 없어져 둘 다 공하면 이것을 이름
    하여 참된 참회라 하네.”(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
    名爲眞懺悔.) 사참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즉, “내가 과거에 지은 모든 악업, 모두
    시작 없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은 것, 몸과 입과 뜻으로부터 생
    긴 바, 모두를 내가 지금 다 참회합니다.”(我昔所造諸惡業, 皆由無始貪瞋痴, 從身
    口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

중료(衆寮)25)에 거처하되 반드시 서로 양보해서 다투지 말며, 반드시 서
로서로 돕고 보호하며, 말로 다투어 이기고 짐을 삼가며, 머리를 모아 쓸데
없는 말을 삼가며, 남의 신을 잘못 신음을 삼가며, 앉고 누움에 차례를 넘
음을 삼가며, 손님을 대하여 말을 함에 집안의 추한 일을 드러내지 말며,
다만 절의 부처님 일을 찬탄하며, 창고 방에 나아가서 잡된 일을 보거나 들
어서 스스로 의혹을 내지 말라.
요긴한 일이 아니면 마을에 노닐고 고을을 찾아다니며 세속[의 사람]과
사귀고 통해서 다른 이들이 미워하고 질투하게 하고 자기의 도의 뜻을 잃
지 말라. 만일 요긴한 일이 있어서 나가면 주지하는 사람과 대중을 관장하
는 사람에게 알려서 가는 곳을 알게 하며, 만약 속인의 집에 들어가게 되면
간절히 반드시 바른 생각을 굳게 지녀서 삼가 색을 보거나 소리를 듣고 삿
된 마음이 흘러들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하물며 옷깃을 헤치고 장난하고 웃
으며 잡된 일을 어지럽게 말하며, 때 아닌 때 술과 밥으로 망령되게 걸림
없는 행을 지어 깊이 부처님의 계를 어기겠는가. 또한 어질고 착한 이가 싫
어하고 의심하는 사이에 처한다면, 어찌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居衆寮, 須相讓不爭, 須互相扶護, 愼諍論勝負, 愼聚頭閒話,
愼誤著他鞋, 愼坐臥越次. 對客言談, 不得揚於家醜, 但讚院門
佛事, 不得詣庫房, 見聞雜事, 自生疑惑. 非要事, 不得遊州獵
縣, 與俗交通, 令他憎嫉, 失自道情. 儻有要事出行, 告住持人,
及管衆者, 令知去處, 若入俗家, 切須堅持正念, 愼勿見色聞
聲, 流蕩邪心. 又況披襟戱笑, 亂說雜事, 非時酒食, 妄作無礙
之行, 深乖佛戒. 又處賢善人, 嫌疑之間, 豈爲有智慧人也.
25) 중료(衆寮)는 대중이 거처하는 집을 말한다. 선원에서 수행승이 자유 시간에 경
    전과 어록 등을 읽을 수 있는 독서당을 주로 일컫는다.

사당(社堂)26)에 머무르되 사미(沙彌)27)와 같이 다님을 삼가며, 인사로 가
고 옴을 삼가며, 다른 이의 좋고 나쁜 것 봄을 삼가며, 문자를 탐구함을 삼
가며, 잠자는 것이 정도에 지나침을 삼가며, 산란하게 반연함을 삼가라.
만약 종사가 법좌에 올라 설법하는 것을 만나면, 간절히 법에 대해서 낭
떠러지에 매달린 듯28) [어려운] 생각을 내어 물러나 굽히는 마음을 내거나
혹은 늘 듣는다는 생각을 지어 쉽다는 마음을 내지 말고, 마땅히 반드시 생
각을 비워 법문을 들으면 반드시 근기가 드러날 때가 있을 것이다. 말만 배
우는 사람을 따라서 다만 입으로 판단하는 것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이른
바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을 만드는 것과 같
아서 지혜롭게 배우면 보리를 이루고 어리석게 배우면 생사를 이룬다.’29)
라고 함이 이것이다.
住社堂, 愼沙彌同行, 愼人事往還, 愼見他好惡, 愼貪求文字, 愼睡
眠過度, 愼散亂攀緣. 若遇宗師, 陞座說法, 切不得於法, 作懸崖想,
生退屈心, 或作慣聞想, 生容易心, 當須虛懷聞之, 必有機發之時. 不
得隨學語者, 但取口辦. 所謂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 智學成菩提,
愚學成生死, 是也.
26) 사당(社堂)은 결사하는 장소인 선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눌스님 당시
    의 수선사였던 현재의 송광사에서는 선원의 현판을 수선사(修禪社)라고 하고
    있다.
27) 사미(沙彌, śrāman era)는 구적(求寂), 식악(息惡), 식자(息慈), 근책(勤策) 등으로
    도 한역한다. 사미는 사미계를 받았지만 아직 구족계를 받지 않은 7세부터 20세
    까지의 출가한 남자를 일컬으며, 출가한 여자는 사미니(沙彌尼)라고 부른다. 사
    미는 나이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첫째는 구오사미(驅烏沙彌)로, 7
    세부터 13세까지는 음식을 보고 날아드는 까마귀 따위를 쫓는 일을 맡았다고 하
    여 붙여진 이름이다. 둘째는 응법사미(應法沙彌)로, 14세부터 19세까지는 사미로
    서의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셋째는 명자사미(名字沙彌)로, 20
   세가 넘었는데도 아직 비구가 되지 못하고 사미로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사미
   를 근책남(勤策男)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악을 끊고 자비를 행하며 적정(寂靜)의
   깨달음을 구하여 비구를 뜻하는 근인(勤人)에게 책려되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28) ‘낭떠러지에 매달린 듯’의 원문인 현애(懸崖)는 깎아지른 언덕, 낭떠러지라는 말
    로, 더 이상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가리킨다. 따라서 현애상(懸
    崖想)은 ‘낭떠러지에 매달린 듯 어려운 생각’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다고 여기
    는 생각을 가리킨다. 선문(禪門)에서는 현애살수(懸崖撒手)라는 법어로써 수행
    을 채찍질하기도 한다. 현애살수는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사람이 죽음을 각
    오하고 손을 놓는다는 뜻으로, 공부가 깊어져서 더 이상 나아가지도 물러나지
    도 못하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계속 화두를 참구하
    라는 법어이다.[『원오불과선사어록(圓悟佛果禪師語錄)』(大48, p.748a, 756b, 761c,
    773b 등) ;『대혜어록(大慧語錄)』(大47, p.863c, 868c, 883a 등) ;『무문관(無門關)』
    (大48, 297b1-2) 참조.]
29) 이 구절은 40권본『화엄경』권12의「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 나온다.(大10,
    p.717c16-17) 여기에서는 마지막 게송이 “어리석은 배움은 생사가 된다[愚學爲生
    死]”로 되어 있다. 이 게송은 연수(延壽)의 『종경록(宗鏡錄)』 권39(大48, p.649a4-5)
    에도 인용되고 있다.

또 법을 주관하는 사람에게 경박한 생각을 내지 말라. 그로 인하여 도에
장애가 있어서 수행에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니 간절히 반드시 삼가야 한다.
논에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는데 죄인이 횃불을 들고 길에 나
타나면, 만약 사람이 나쁜 것 때문에 빛을 받지 않는다면 구덩이에 떨어지
고 개천에 떨어질 것이다.”30)라고 하였다. 법을 들을 때에는 마치 얇은 얼
음을 밟는 듯이 해서 반드시 귀와 눈을 기울여서 현묘한 말씀을 들으며, 생
각의 티끌을 맑혀서 그윽한 이치를 맛보아야 한다.
법당에서 내려온 후에는 묵묵히 앉아서 그것을 관하되, 만일 의심나는
바가 있으면 먼저 깨달은 이에게 널리 물으며, 저녁에는 삼가고 아침에는
물어서 실오라기나 터럭만큼도 넘치지 말라. 이와 같이 하여야 바른 믿음
을 낼 수 있어서 도로써 마음에 품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又不得於主法人, 生輕薄想. 因之於道有障, 不能進修, 切須愼
之. 論云,“ 如人夜行, 罪人執炬當路, 若以人惡故, 不受光明,
墮坑落塹去矣.” 聞法之次, 如履薄冰, 必須側耳目而聽玄音,
肅情塵而賞幽致. 下堂後, 黙坐觀之, 如有所疑, 博問先覺, 夕
惕朝詢, 不濫絲髮. 如是, 乃可能生正信, 以道爲懷者歟.
30) 이 구절과 비슷한 내용을『대지도론(大智度論)』권49의「발취품(發趣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또 밤에 험한 길을 가는데 폐인이 횃불을 들었다면 그 사람
    이 악하다고 그 빛을 취하지 않을 수 없듯이 보살도 또한 이와 같이 스승에게서
    지혜의 광명을 얻을 뿐 그 악을 헤아리지 말라.”(大25, o,414c9-11. 又如夜行嶮道,
    弊人執炬, 不得以人惡故, 不取其照, 菩薩亦如是, 於師得智慧光明, 不計其惡.) 이외에
  『대지도론』 권41의 「삼가품(三假品)」(大25, p.357c24-26)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
    려 있다.

비롯함이 없이 익혀온 애착과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뜻에 얽혀서 잠
깐 숨었다가 다시 일어남이 마치 하루걸이 학질과 같으니, 모든 때 가운데
바로 반드시 가행방편(加行方便)31)의 지혜의 힘을 써서 통절하게 스스로
막아서 두호할지언정 어찌 한가하게 게으름을 부리고 근거 없는 말이나 하
며 날을 헛되이 보내면서, 마음의 근본을 바래서 벗어날 길을 구하고자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뜻과 절개를 굳건히 하여 자기 몸이 그릇되고 게으름을 꾸짖으며
그름을 알아 선으로 옮겨서 고치고 뉘우치고 조절하고 부드럽게 하라. 부
지런히 닦으면 관하는 힘이 더욱 깊어지고 갈고 닦으면 행하는 문이 더욱
맑아질 것이다. 길이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도업이 늘 새로워
지고, 항상 경사스럽고 다행하다는 마음을 품으면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
이다.32) 이와 같이 오래하고 오래하면 자연히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서 자기의 심성을 보며, 환(幻)같은 자비와 지혜를 써서 돌이켜 중생을 제
도하여 인간과 천상의 큰 복밭을 지을 것이니, 간절히 반드시 부지런히 해
야 한다.
無始習熟, 愛欲恚癡, 纏綿意地, 暫伏還起, 如隔日瘧, 一切時
中,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 痛自遮護, 豈可閒謾, 遊談無
根, 虛喪天日, 欲冀心宗, 而求出路哉. 但堅志節, 責躬匪懈,
知非遷善, 改悔調柔. 勤修而觀力轉深, 鍊磨而行門益淨. 長起
難遭之想, 道業恆新, 常懷慶幸之心, 終不退轉. 如是久久, 自
然定慧圓明, 見自心性, 用如幻悲智, 還度衆生, 作人天大福
田, 切須勉之.
31) 가행방편(加行方便)은 지혜를 짜낸 한층 더 높은 방편행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가르침을 듣고 사유하고 수행하는 등의 후천적인 노력을 한층 더한 것이다.
32) ‘부지런히 닦으면’부터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까지의 구절은 연수(延壽)가
    저술한『종경록(宗鏡錄)』 권39(大48, p.648c9-11)에서도 볼 수 있다. 또 청(淸)나
    라 의윤(儀潤)의『백장청규증의기(百丈淸規證義記)』 권5에도 유사한 내용이 보
    인다. 즉, “부지런히 닦으면 관하는 힘이 더욱 깊어지고 갈고 닦으면 행하는 문
    이 더욱 맑아질 것이니, 이와 같이 오래하고 오래하면 선정과 지혜가 나와서 자
    기의 심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卍111, p.658a14-15. 勤修而觀力轉深, 煉磨而行門
    益淨, 如是久久, 定慧發, 可見自心性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