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서산대사 휴정

선가귀감 사상/홍순택

실론섬 2016. 10. 14. 12:37

선가귀감 사상

 

<  목     차  > 

머리말: 신앙인의 정체성의 위기

Ⅰ. 『선가귀감』의 사상

     1. 『선가귀감』의 내용

     2. 『선가귀감』의 중심 사상

Ⅱ. 『선가귀감』 편술의 역사적 맥락

    1. 성리학의 불교 비판

    2. 불교 비판의 역설

Ⅲ. 『선가귀감』의 시대사적 의미: 신앙인의 Orthodox의 제시

맺는말: 휴정의 삶 - Orthopraxis

 

머리말: 신앙인의 정체성의 위기

 

신앙을 지니고 있지 않거나 굳건하지 못한 사람들은 때로 인간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종교 전통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계시의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과 같은 전통에 적합치 않을 뿐 아니라 불자들의 전통과도 잘 맞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불자들은 계시나 하느님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지난 2,500 년 동안 자신들의 추구를 단지 추구가 아니라 부처의 성불(成佛)에 의해 보증받았다는 생생한 확신을 매 세대마다 새롭게 불어넣음으로써 자신들의 전통을 생생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1)
1)『지구촌의 신앙: 타인의 신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Wilfred Cantwell Smith, 김승혜, 이기중 
   공역(왜관: 분도 출판사, 1989), p. 74.

 

불교인들은 과거의 석가모니와 같은 다른 부처들이 보였던 것처럼 자신도 부처가 되기를 추구한다. 물론 이 추구하는 바의 경지는 존재도 아니며 이 세계와 다른 별도의 세계의 것도 아니다. 바로 ‘이 세상’의 평범한 존재의 질서와 삶의 문제를 깨닫고 고통뿐인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불교의 역사는 이런 ‘깨달음’, 즉 ‘성불(成佛)’ 추구의 역사다. 한국의 불교인들의 역사도 또한 그러하다.

 

어느 종교의 신앙인들에게나, 또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신앙인들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변화하는 세상은, 그리고 실존적으로 인간에게 던져지는 여러 존재의 부조리들과 고통들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앙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더욱이 살아갈 세상의 변화를 크게 느끼는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2)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신앙과 세상의 모습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 그들은 고민한다. 왜곡된 신앙인들이 등장하게 될 때 더욱 그러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나의 신앙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이와 같은 신앙인의 정체성의 위기-orthodox와 orthopraxis3) 의 위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신앙의 역사는 달리보면 바로 이런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시도와 인간의 시도에 ‘응답’하는 궁극적인 무엇-그것이 존재이든 대상이든 경지이든-의 상호작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비록 불교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신앙인들이 추구하는 진리는 실재론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 ‘대상’은 말할 수 없으나 그 ‘신앙’ 만큼은 ‘진실’한 것이기에 그러하다.

2)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앙’은 그리스도교인들의 것과 같은 ‘신에 대한 믿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종교학자인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1916-
   1999)의 용법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스미스는 인간의 신앙(faith)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이러이러하다’라고 서술할 뿐이다. 그런 그의 서술들을 종합해본다면, 신앙은 
   (1) 인간에 의해 표현될 수 있는 것이며 (2) 인간은 타인의 신앙을 그 표현을 통해서 밖에 
   이해할 수 없으며 (3) 개인 인격체적(personal)인 것이며 (4) 인격(character)이며 (5)신
   념체계(beliefs)가 아니며 (6) 초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6) 초월적인 것-그것이 신
   이든 존재이든 깨달음과 같은 어떤 경지이든- 그것 자체에 대한 인격체적 응답이다: 이런 
   내용은『종교의 의미와 목적』, W. C. Smith, 길희성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1991), 제 
   7장 “신앙”에 주로 담겨 있으며 책 전체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스미스의 이런 신앙 이
   해에 기초한 종교학적 방법론에 대한 소개는 길희성, “윌프레드 캔 트웰 스미스의 인격주
   의적 종교연구”, 종교신학연구, 제 1집(서울: 서강대학교 종교신학 연구소, 1988), pp. 55
   -77을 보시오: 필자가 이 글에서 ‘신앙’이라는 스미스의 개념을 갖고 글을 전개하는 것은 
   불교 교학적이라기보다는 종교학적인 입장에서 휴정의 사상과 당시의 불교를 이해해 보
   고자 함에서이다. 물론 이해하는 내용은 불교 교학과 별 차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좀 
   더 보편적인 표현으로, 다시 말해 다른 종교 전통의 신앙인들에게도 설득력이 있을만한 
   서술을 시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3) 'orthodox'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말하는 ‘정통 교리’의 개념으로 많이 통용
   되어왔고 그의 부작용인 근본주의적인 어감을 갖고 많이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이 글에서
   는 스미스의 ‘신앙’이라는 개념과의 상관성 하에서 종교적 전통에서의 ‘바른 진리truth’, 
   또는 ‘바른 신념체계beliefs’라고 그 전통의 신앙인들 다수가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그 신
   앙인들에게 진정한 의미를 준다는 차원의 원래적 의미에서 사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찬
   가지로 orthopraxis는 ‘바른 실천’, ‘바른 삶’이라는 차원에서, 즉 orthodox의 체화embo-
   diment라는 원래적 의미에서 사용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로 볼 때 orthopraxis는 ‘정행(正
   行)’이라는 적절한 번역을 가지고 있으나 이 또한 앎과 삶이 병행되는 별개의 것으로 분리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이렇게 보는 데에는 필자가 스미스의 신앙 개념을 사용
   한다는 배경이 있다. 스미스는 인간의 신앙이란-물론 이건 ‘진정한, 또는 진실한 신앙’이
   다- 진실한 실천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실천적, 또는 참
   여적, 또는 진실이란 차원에 더 가까운 진리관이다. 그런가하면 orthodox는 필자가 사용
   하고자 하는 의미에서의 적절한 한국어 번역이 없는 듯 하다. 그러므로 일단 필자는 이 두 
   단어가 사용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영어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겠다: 스미스의 신앙과 실천, 
   진리관에 대해서는 길희성, 앞의 논문, pp. 62-65를 참고하시오.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 1520-1604)이 살았던 시대는 불교 신앙인, 특히 출가 수행을 하는 신앙인들에게 정체성의 위기를 불러일으키던 시대였다. 필자는 이 글에서 그런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휴정의 『선가귀감禪家龜鑑(1564)』을 그의 시대적 ‘응답’으로서, 즉 스미스의 표현처럼 당대의 불교인들에게 ‘생생한 확신을 새롭게 불어넣은’ 것으로서 이해해보려고 한다. 특히 『선가귀감』의 사상 자체에 천착하기보다는5) 그러한 ‘신앙인의 응답’을 요청했던 불교 사상사적 맥락과 시대적 맥락을 더 살펴보고자 한다. 비록 조선의 억불정책(抑佛政策)의 영향으로 많은 자료가 남겨져 있지 않고 그나마의 자료들도 왜곡된 것이 많지만 그나마의 자료들을 보며 그 행간의, 뒷면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시대 불교인들의 신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하며 『선가귀감』이 갖고 있는 시대적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5)『선가귀감』전체의 사상적 조감도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좋은 글들을 남기고 있다. 
   머리말에 이어 있을 본론의『선가귀감』사상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이 사람들의 업적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선가귀감』에 대한 소개의 글들은 훌륭한 것들이 많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물론『선가귀감』 내의 여러 특수 주제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미진
   한 실정이지만, 필자는『선가귀감』의 특정 주제보다는 전체를 다뤄야 하는 이 글의 목
   적 상, 내용에 대한 연구보다는 상대적으로 피상적으로, 그리고 자세하지 않게 연구된 배    
   경사적 연구를, 그리고 시대사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하려는 것이다:『선가귀감』
   의 사상적 개요에 대해서는 김종명, “휴정”, 『한국철학사상사자료집』,II(서울: 서울대학
   교 철학사상연구소, 1999), pp. 850-881을, 교와 선의 통합이라는 하나의 중심 주제로 
  『선가귀감』 전체의 사상을 고찰한 글로는 Keel Hee-Sung, "Word and Wordlessness: 
   The Spirit of Korean Buddhism", Korea Journal, 33-3(Autumn 1993), pp. 11-22를 참
   고하시오.

 

Ⅰ. 『선가귀감』의 사상

 

1. 『선가귀감』의 내용 6)
6) 적어도 이 부분만은-물론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종교학 방법론인 ‘그 종교 전통의 신앙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종교학
   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나 ’불교 신앙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아
   니라 다른 종교 전통의 신앙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휴정의『선가귀감』의 내
   용을 서술하도록 시도하겠다.

 

『선가귀감』은 81개의 크고 작은 단락7)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용상으로 볼 때 도입(導入, 단락 1~11)-전개(展開, 단락 12~79)-결론(結論, 단락 80~81)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8) 물론 김종명의 지적대로『선가귀감』은 “삼단논법식 전개 양식을 따르고 있지는 않으며, 그 내용도 일목요연하지는 않다."9) 특히 휴정은『선가귀감』을 ‘저술(著述)’한 것이 아니라 ‘편술(編述)’하였기에10) 논리적 치밀성이나 독창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기존에 불가에 전해지던 경전들과 조사들의 어록들의 내용을 가지고서 주제에 맞게 배열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평(評)이나 싯구들을 붙이는 방식으로 조직하였다는 것이다.11) 비록 그렇다할지라도『선가귀감』은 한 주제를 향하여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 있는 저술이다.

7) 필자가 참고한 『선가귀감』 원문에는 단락을 구분할 수 있는 들여쓰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각 단락에 번호가 붙여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본 해제의 뒤에 첨부한 
   번역에서 각각에 순서대로 단락 번호를 붙였으며 이 곳에서의 논의에도 본문을 인용하
   거나 참조할 일이 있을 경우 그렇게 붙인 단락 번호를 사용할 것이다. 물론 필요한 경우 
   필자가 참고한 원문에서의 출처를 함께 명기할 것이다. 필자가 참고한 원문은 休靜, 『
   禪家龜鑑』,『韓國佛敎全書』, 동국대학교 한국 불교전서 편찬위원회 편(서울: 동국대
   학교 출판부, 1986), 제 7권, pp. 634~646이다. 그리고 이를 인용할 경우는 HPC 7.
   634c3~7.646ac14.와 같은 방식으로 표기하겠다. 참고로, 예로 든 이 부분은 『선가귀
   감』의 본문 전체에 상응한다.
8) 이런 구분은 저자 임의로 한 것이다.
9) 김종명, “휴정”,『한국철학사상사자료집』,II(서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1999), 
   p. 852.
10) 김종명, 앞의 자료, p. 850: “...그리고 , 공자(孔子, 551-479 B.C.E.)가 그의 저술의 
    성격을 논하면서 ‘[과거의 것들을] 전한 것이며, [스스로] 창조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처럼, 휴정이 지은 서술의 성격도 드러하며, 따라서 거기에 나타난 그의 사상도 독창
    성을 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11) 이런 점에 착안해서『선가귀감』 내에 인용된 구문들의 출처들을 밝혀서 휴정의 사상의 
    특징을 밝히려는 시도로는 석종진, “淸虛 休靜의 禪思想”, 『白蓮佛敎論集』, 3호(1993), 
    pp. 44-60. ;『선가귀감』의 단락별 구조에 대해서는 필자의 『선가귀감』 번역 중 각주 
    5)를 참고하시오.

 

(1) 도  입 - 주제의 제시
휴정은 도입부에서 우선 깨달음, 즉 궁극적인 경지이자 불교인들이 추구하는 바의 것을 ‘일물(一物)’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제시하고 있다(단락 1). 그리고 이 일물이 바로 인간 본연의 보편적 본성인 ‘불성(佛性)’이라고 밝히고 있다(단락 1). 그는 이 불성, 즉 마음(心)을 깨닫는 것, 즉 궁극의 경지를 얻는 것은 바로 다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는 ‘자각(自覺)’을 말하고 있다(단락 2). 부처와 조사들을 통해 역사적으로 보여온 수많은 가르침들은 모두 궁극의 경지와 하나된 사람들, 먼저 궁극의 경지(깨달음)에 이른 사람들의 자비(慈悲)로 말미암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자 도구(方便)이기에(단락 3) 그 모든 도구, 심지어 ‘일물’이라는 상징에도 얽매여서는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단락 4). 당시에 충돌하고 있던 교학(敎學)과 선 수행(禪修行)도 모두 이런 깨달음으로 이끄는 자비의 방편일 뿐이므로(단락 5) 그 어느 것 하나에라도 얽매인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으므로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말 것을 주장한다(단락 6). 그러나 ‘말(言語)’이라는, 궁극의 경지를 표현하기에 한계를 가진 교학보다는 그래도 언어를 사용을 꺼리는 ‘말없음’12)의 선 수행이 궁극의 경지에 나아갈 수 있는 그나마 유용한 방법이라고 하며 선 수행의 상대적 우월성을 표현한다(단락 7~9). 이처럼 궁극의 경지, 즉 깨달음의 진리를 본질 직관eidetic vision을 통해 제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므로 말
과 지혜로써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세를 비판하며(단락 10) 그러한 교학적 수행을 버리고 선 수행으로 들어섬으로써 ‘살 길’, 즉 구원을 찾을 것을 말하고 있다(단락 11).

12) ‘말word’과 ‘말없음wordlessness’은 길희성이 『선가귀감』의 사상을 대별하며 사용한 

    주제어이다: 길희성, 앞의 논문.


하지만 휴정이 비록 교학을 버리고 선 수행으로 들어서라(捨敎入禪)고 한다 할지라도 그는 교학의 충분한 가치를 동시에 인정하고 있다. 그에게 교
학과 선 수행은 깨달음으로의 수행에 있어서 각각의 단계-서로 연결되는, 그리고 각각 서로를 요청하는-인 것이지 어떤 하나를 완전히 버려야 하는 배타적인 가치적 우월성의 차원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본격적인 선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교학적 배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단락 11) 교학은 부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고 선은 부처의 마음이라고 한다.13)

13)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휴정이 “선은 곧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곧 부처의 
    말(단락 5)”이라고 했을지라도 선 ‘수행’ 자체가 부처의 마음, 즉 깨달음의 경지라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휴정은 분명히『선가귀감』의 결론부에서 선 수행의 도구
    인 고함침(喝)과 방망이질(棒), 그리고 부처와 조사 자체에도 얽매여선 안된다고 주 장하며 모든
   ‘길’의 방편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단락 79, 80). 그러므로 ‘선은 곧 부처의 마음이다’ 할 때의 ‘선’은
    선 수행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선을 통해 얻어진, 선 (禪)이라고 상징되는 ‘깨달음’이란 궁극적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휴정이 불교적 교의를 표현하는데에 있어 
    정밀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전 개 - 구체적 해설
전개부에 들어서서 휴정은 앞서 제시한 유용한 수행의 방법인 선 수행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휴정이 가장 먼저 제시하는 것은 ‘살아있는 말(活句)’, 즉 ‘화두(話頭)’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단락 12). 휴정이 생각하는 선 수행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방법이 바로 화두라는 것이다. 그는 화두를 참구하는 데 필요한 자세와 마음가짐들을 먼저 서술하고 있으며(단락 13~14), 화두의 참구는 평범한 일상생활에까지도 이어져야함을 주장한다(단락 15, 22). 그리고는 화두를 참구하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여러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단락 16~26). 이 때 휴정이 요청하는 중요한 두 가지는 첫째, 전력을 다하여 수행하라는 것이고(단락 17, 21) 둘째, 궁극적인 경지로부터 인간을 멀어지게 한 근본적인 이유(無明)인 분별심(分別心), 즉 주관과 객관을 구별하는 것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집착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단락 16, 18, 19, 20, 24).

 

앞서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서 말했다면(단락 12~24), 이어서 휴정은 깨달음의 확증에 대해 서술한다(단락 25). 깨달음을 얻고 확증을 얻는다는 구조 자체가 선교 융합을 시도한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 이후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확증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지속되는 수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자세를 다시금 언급하며(단락 27) 궁극의 경지를 맛 본 이후14) 에야 진정한 수행이 가능함을 말한다(단락 28). 그러면서 역시 깨달음의 세계는 일상 생활에서 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님을 주지하고(단락 29) 깨달음의 확증을 위해 역시 이분법적인 사고가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강조한다(단락 30~31). 그는 불교의 존재 질서는 유심론(唯心論)적인 것임을 말하면서(단락 32~34) 앞서의 것과는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에서의 분별심, 즉 현실과 궁극적 경지(생사生死와 열반涅槃), 궁극의 경지를 모르는 자와 체험한 자(중생衆生과 보살菩薩) 같은 것을 구분하는, ‘진리를 추구하려는 집착’, 즉 ‘궁극의 경지에 대한 집착’도 없어야 진정한 궁극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단락 35~36). 불교인들이 추구하는 궁극의 경지는 이만큼 일상적인 차원의 것이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시간에 궁극의 경지가 실현되는 구원이 진정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현실과 도저히 분리되어질 수 없는 것이며, 나아가 강력한 현실 개혁의 의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15)
14) 이 때의 ‘깨달음(悟)’은 ‘돈오점수(頓悟漸修)’에서의 깨달음이지 ‘돈오돈수(頓悟頓修)’
    에서의 깨달음은 아니다.
15) 이런 차원에서의 선불교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로는 길희성, “민중불교, 선, 사회 
    윤리적 관심”, 종교연구, 1(1988), pp. 27-40; 길희성, “선과 민중해방: 임제 의현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종교신학연구, 12(1991), pp. 29-60.

이어서 그의 수행론은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으로 설명되어진다. 그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진리는 ‘단박에’ 깨달아질 수 있지만 잘못된 행위는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고 보면서 인식론적인 전환이 곧 실천적 삶으로 연결되어져야 함을, 즉 orthodox가 orthopraxis로 연결되어져야 함을 주장한다(단락 37). 그리고 orthopraxis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휴정이 『선가귀감』의 청중(聽衆)인 출가 수행자들에게 말하는 orthopraxis는 계율과 수행자(신앙인)으로서의 자세이다(단락 38). 휴정은 orthopraxis로 연결되지 않는 orthodox는 거짓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단락 39~40). 존재에 대한 바른 앎은 존재의 질서에 합당한 바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요청된다는 것이다(단락 42~45). 이렇게 본다면 불교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경지, 즉 깨달음은 인식론적인 차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로 삶의 차원의 것이라는 것이다. 휴정은 여러 가지 수행의 계율과 자세들을 제시한다. 즉 종교적 수행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그는 계율이라는 윤리적 차원의 수행(단락 46~48)은 물론 성실하고 겸손하며 청빈한 신앙(단락 49, 55, 58~61), 진언(眞言, 단락 50)과 염불(念佛, 단락 52) 같은 특정한 종교 의례적 실천 등을 총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수행들이 결국은 ‘자신의 참된 본성’이라는, 인간에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궁극적인 경지를 지향함과 동시에 궁극적인 경지를 추구하는 것의 ‘도구’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단락 51의 참된 예배; 52의 ‘유심’정토사상唯心淨土思想). 참된 신앙의 추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출가 수행자들은 교권을 빙자하여 민중을 착취하는 일이 없어야 함을(단락 61~65), 즉 위선 없이 진실할 것을 요청하고 동시에 쓸데없는 명예와 이익을 노리지 말고 궁극의 경지를 추구하는, 수행이라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할 것을 요청한다(단락 59~60, 66). 동시에 짧은 인생에 있어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의 급박성, 즉 궁극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절박성을 말하고 있다(단락 67). 신앙인은 절박하게 궁극의 경지를 갈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휴정은 『선가귀감』을 신앙인, 특히 재가(在家) 수행자보다는 출가(出家)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썼다. 이는 제목에서부터 보여지는 바이다. 휴정은 출가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요청되는 몇 가지 항목들을 다시금 주지하고 있다. 육신의 청결 의례(淸潔儀禮)와 관련된 긴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헛된 육신에 집착하지 말 것을, 즉 자신의 육신의 안위에 몰두하여 수행자(신앙인)의 본분을 다해야 함을, 다시 말해 궁극의 경지를 향한 추구를 가장 우선해야 함을, 즉 진지한 신앙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단락 68).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 자세(단락 69), 검소하고 단정한 마음(단락 70), ‘나 자신’이라는 생각마저도 버리는(단락 71~72), 세상의 모든 고통의 근원인 이기심을 내어버리는 솔선수범을 수행자가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휴정은 진정한 수행자,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서 ‘보살(菩薩)’을 제시한다(단락 72).

 

이제 휴정은 인식론적 차원의 깨달음과 그 깨달음의 실천적 옮김인 수행, 그리고 이와 같은 orthodox와 orthopraxis가 하나가 된 종교적인 이상적 인간으로서 보살의 삶의 열매 맺음을 말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신앙을 갖고 orthodpx와 orthopraxis가 하나 된 삶을 살려는 사람! 그렇게 산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때에, 즉 이 땅의 인간의 삶을 마치게 될 때에, 바로 이 시대, 이 곳을 떠나게 될 때에 참된 깨달음의 열매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단락 73). 참되고도 영원한 궁극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던 궁극의 경지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두려워하거나, 남아있는 생명에 집착하게 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적 완성이고 구원인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크고도 뿌리깊은 이분법적인 의식, 인간의 욕심의 가장 근원,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적인 뿌리가 되는 죽음의 문제까지도 초월하게 되는 구원인 것이다.

 

이에 이어서 휴정은 수행자, 궁극의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이 신앙의 도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을 신중하게 다시 주의시키고 있다. 주관과 객관을 구분하는 사고를 하지 말고(단락 74) 선 수행자들이 빠지는 여러 가지 집착의 병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시킨다(단락 75~76). 그리고 궁극의 경지는 말로써 다 표현될 수 없는 초월적인 것임을 밝히고 있다(단락 77). ‘진리, 그 자체’를 다시금 강조하는 것이다.

 

휴정은 실제 궁극의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선종(禪宗)의 역사에 있었던 여러 종파들에 대해, 그 가르침의 계승과 종파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한다(단락 78) . 그리고 자신이 의탁하고 있는, 그리고 당시 조선 불교에 가장 널리 실천되고 있던 가르침인 임제종의 교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단락 78). 그러나 이 모든-궁극의 경지를 가장 잘 열어 보인다는- 선종 종파들, 그리고 임제종 까지도 궁극의 경지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임을 누누이 강조하며 전개부를 마치고 있다(단락 79).

 

(3) 결  론 - 주제의 확인

Orthodox와 orthopraxis가 하나로 엮어진 수행자의 삶에 대한 긴 서술을 마치며 휴정은 마지막으로 다시금 강조한다. 모든 가르침, 심지어 깨달음 자체를 이룬 부처와 보살까지도 바로 수행자 자신에게는 참된 궁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단락 80). 처음 도입부에서 제시된 주제인 ‘자각(自覺)의 중요성’을 다시금 제시하는 것이다. 불교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이처럼 진리, 궁극의 경지는 인간 각자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열어 보이는 것이다. 인간 안의 신령한 빛이 밝게 드러나는 것, 자연스러운 그것만으로 궁극의 경지가 열리는, 인간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 찬 그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단락 81). 휴정이 진정한 수행자, 궁극의 경지를 향한 진정한 신앙인 이었음은 이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어, 궁극의 경지에 이르러 이 세상의 존재의 질서와 하나가 되었음을 은근히 알리는 깨달음의 노래(偈頌)를 부른다. “외로운 달이 강과 산을 외로이 비쳐 고요하고, 저절로 웃는 한 소리에 천지가 놀라네!” 그러나 그 궁극의 경지, 진정한 자유의 경지, 앎과 삶이 하나가 된 경지에서 서술한『선가귀감』자체도 방편에 불과한 것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16) 이것이 그가 orthodox 뿐만 아니라 orthopraxis에까지 이르른, 진리 앞에서 겸손한, 진정한 수행자임을 보여주는 한 실마리인 것이다.

16) “그러나 [이 책『선가귀감』도] 한 [분별적] 이해(一解)로 처음과 끝을 삼고 중간에 
    온갖 행동[에 대한 설명]을 [예로] 들었으니 세상의 서적(世典)들의 세 가지 뜻(三義)
    과 같 ‘지식(知)’과 [분별적] 이해(解)라는 두 글자는 부처의 가르침에 큰 해(害)[가 
    되]기 때문에 특별히 [이것들을 마지막에] 들어 [경고하고]서 마치는 것입니다.”: 단
    락 81 중에서.

 

2. 『선가귀감』의 중심 사상

김종명은 『선가귀감』의 중심사상을 “(1) 선(禪) 위주의 선교일치; (2) 모든 이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음. 휴정이 선교일치를 주장하는 이론적 근거는 부처에게 두고 있다”17) 고 보고 있다. 이런 견해에는 그다지 큰 이견이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길희성은 『선가귀감』에서 볼 수 있는 휴정의 선의 기본 정신을, 선과 교가 사람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려는 기본 의도basic intention와 ‘말없음의 진리’라는 목표goal에서 같다고 보며 서로간의 차이는 이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길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즉, 휴정은 선과 교 모두가 부처로부터 말미암고 추구하는 경지가 같기에 양자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충돌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휴정은 이런 본래성의근거로 대승불교 전통의 불성론을 제시하며, 무언의 진리는 본래면목으로서 늘 존재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설상 그것이 부처 자신일지라도 쓸데없다는 것이 휴정의 기본입장이라는 것이다. 길희성은 이를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즉 ‘말없음’의 순수한 진리를 인공적인 것과 왜곡-언어의 남발-으로부터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보며, “진리, 그 자체이게 하라”는 것이 휴정의 선의 정신이라고 한다.18)
17) 김종명, 앞의 자료, p. 852.
18) 길희성, 앞의 논문, p. 16.

 

필자는 앞의 학자들과는 약간 강조점을 달리하여 『선가귀감』이 orthodox와 orthopraxis를 하나되게 하는 것에 중심을 둔 것으로 서술해왔다. 이는 다시 말해 불교 신앙인들이 말하는 궁극의 경지인 깨달음이 인식론적인 차원에서의 바른 알음알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즉 ‘깨달음의 추구’를 『선가귀감』의 주제로 보는 데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내용에 대한 일부의 인식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 대한 반대’이다. 이는 적어도 이 글에서만은 깨달음이라는 궁극의 경지가 갖고 있는 측면에서 orthopraxis의 측면에 강조를 두겠다는 것이다. 물론 orthopraxis는 orthodox 없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두 학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맥락과, 또한 전통의 재해석을 요구하는 오늘의 맥락을 고려할 때 ‘어떤 선 사상을 갖고 있었는가’라는 차원의 질문을 한 후에는 좀 더 넓은 차원의 질문-시대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이 가능할 것이라 보기 때문에 orthodox와 orthopraxis의 하나됨이라는 틀로 『선가귀감』의 사상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즉 앞의 학자들과 견해를 달리 한다기보다는 강조점을 달리한다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19) 그리고 이런 해석을 요청하는 『선가귀감』 편술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19) 실제로 김종명은 “...직관을 통한 존재의 참모습에 대한 바른 알음알이를 강조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함께 다양한 근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구원론을 
    제시한 휴정의 가르침은 언설적 가르침과 그에 따른 이분법적 사고의 삶을 살아 온 
    현대인들이 새로운 인간관, 세계관 형성에는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휴정의 『선가귀감』이 현대적 재해석의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으며, 그것이 
    가능하다면 앎과 삶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현대인들의 실상에 대한 반명제
    로서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역시 이에 동의한다: 김종명, 앞의 자료, p. 853

 

Ⅱ. 『선가귀감』 편술의 역사적 맥락

 

길희성은 한국 불교에서의 선(禪)과 교(敎)의 충돌의 역사와 그 충돌을 해소하려는 시도들의 역사를 길게 언급하면서 『선가귀감』은 그 길었던 충돌을 마무리짓는 역할 했다고 보고 있다. 지눌로부터 시도된 선과 교의 화해와 통합에의 시도가 여러 사람들의 길고 오랜 시도를 거쳐20) 결국 휴정의 대에 이르러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 종파적 정체성간의 대립을 넘어서 길희성의 표현대로 “진리, 그 자체”에 대한 추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길희성도 지적하고 있듯이 휴정에 의한 선과 교의 통합은 선 지향적(Sŏn-oriented)이고 교가 이차적인(secondary) 지위로 강등되는 모습을 갖춘 것이 사실이다. 즉 ‘말없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선을 주로 하는 새로운 불교의 통합적 정체성의 형성으로 마련되었다는 것이다.21) 선이 주류가 되는 수행법의 정비와 교단의 정체성 통일은 분명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진리임에 분명한 불교 신앙의 궁극적 경지를, 그 경지의 순수성(purity)을 지키며 접근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학적 종파와 선학적 종파간의 상호 대립으로 인해 진리를 가리우는, 신앙의 궁극적인 추구가 방해받는 일이 적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일지라도 표면적이 아닌 진정한 통합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국 불교 내에 하나의 단일한 종파적 정체성이-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고 주류일 뿐이지만- 형성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파적 정체성의 시대에서 통합적 정체성의 시대로 넘어가는 기점이 바로 휴정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로 인해, 그리고 휴정 한 사람이라는 승려의 압도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그 모든 ‘변화’가 일어나고 완결되어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휴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의 역할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맥락이 있었다는 것이다.

20) 휴정 이전에도,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로부터 
    고려 말의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082), 조선 초의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
    -1534) 등 훌륭한 선승들도 선교 겸수, 돈오 점수의 사상을 말해왔다: 『한국종교 
    사상사 I: 불교, 도교 편』, 정병조, 이석호 공저(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1), pp. 
    96-98, 113-114, 139-140:  이 책은 한국 불교의 사상사적 흐름을 중심으로 서술     
    하고 있으며 주요한 인물들의 사상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불
    교 부분을 저술한 사람이 정병조이므로, 앞으로의 인용에서는 정병조의 이름만을 들
    어 거론하겠다. ; 석종진은 앞에 인용했던 문헌학적 연구에서 휴정이『선가귀감』에
    서 인용한 구절들의 출처를 밝히는 방법으로 휴정의 사상사적 위치를 점검하고 있다. 
    그는 그 글에서 휴정이 특히 태고 보우의 글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고 한다: 석종진, 
    앞의 논문, p. 56.
21) 길희성, 앞의 논문, p. 15-19.

 

1. 조선 왕조와 성리학의 불교 비판과 억압

고려(高麗, 918-1392) 말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불교에 대한 반발은 조선(朝鮮, 1392-1910)에 이르러 본격적이고도 다양한 각도에서 진행되기 시작한다.22)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관료집단의 유학화(儒學化)를 이루고 국가의 모든 부분에서 유교적인 통치를 시도하였다. 성리학은 궁극적인 것에 도달하려는 방법에 있어서, 그리고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인문주의적 경향을 갖고 있다. 즉, 신이나 내세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며 현재, 이곳에서의 인간과 세계를 말하고, 경전을 통한 공부로부터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해나가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주자가 제시한 격물치지의 방법론은 서구 근대의 경험론적 사유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는 과학적 방법론이다. “괴이한 것(怪)과 지적이지 않은 폭력(力), 상식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한 것(亂), 신령한 것 또는 신적인 것(神)을 말하지 않았다”23) 는 말과는 달리 불교는 유교인들의 눈으로 보기에 이 모든 것을 말하는 종교였다. 그리고 사회 윤리적으로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종교였다. 그래서 유교는 불교를 비판하고 억압한다. 이 글에서 이 뒷면에 감추어진 정치학에 대해서는 충분히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교의 불교에 대한 억압은 기존의 공적인 권위를 갖고 있던 불교를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시키고 미신으로 몰아버리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24), 그리고 바로 그 공적인 권위에 유교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마치 근대 서구에서 있었던 인문주의적인 경향의 계몽주의가 그리스도교에 대해 취한 전략25) 과 비슷하다.26) 그렇지만 유교인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이상사회, 바로 이 땅에서 인(仁)과 예(禮)가 살아 숨쉬는 나라를 만들고자 종교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배타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으로 많이 표출되었지만 말이다.

22) 조선의 유학자 집단이 불교를 공박한 사상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 곳에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조선 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의 개조(開祖)라 할 수 있는 주자(朱子, 
    1130-1200)의 불교 비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주자의 불교 비판에 대해서는 윤영해, 
    “주자의 불교 비판 연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박사학위 논문(1996)을 참고하시오.
23) “子不語 怪, 力, 亂, 神.”: ed. Harvard-Yenching Institute, A Concordance to the 
    Analects of Confucius(Taipei: Chinese Materials & Research Aids Services Center 
    Inc., 1965), p. 13,「述而」, 21.
24)『한국불교사』, 가마타 시게오(鎌田茂雄), 신현숙 옮김(서울: 민족사, 1988), p. 192: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같은 여러 역사서들과 불교의 경전들과 선
    적(禪籍)들의 많은 자료를 자료로 하여 역사 실증적으로 저술되어 있는 책으로 제시되
    어지는 자료가 구체적이고 풍부하다.
25) 탈랄 아사드Talal Asad는 그의 책 Genealogies of Religion: Discipline and Reasons 
    of Power in Christianity and Islam(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pp. 30-48에서 서구 근대에 있어서 인문주의적인 계몽주의의 확산은 그리스도
    교를 종교의 총체성과 공적인 위상을 박탈하는 계몽 작업을 통해 사사화私事化시키며 
    인간의 한 부분적인 영역으로 폄하해버리는 권력 기반적인 역할을 했다고 서술하고 있
    다.
26) 동양과 서양의 이런 비교가 의미 없는nonsense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
    한 시대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풍조가 일어나게 되는 현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현상에서 인류의 어떤 보편성, 초월과의 연계성을 유추하
    려 하기도 한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인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의 ‘기축
    시대(機軸時代, Axial Age)’에 대한 논의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프랭크 웨일링(Frank 
    Whaling)은 Approaches to the Study of Religion. ed. Peter Connolly(London: Cassell, 
    1999), pp. 244-245에서 각 시대별로 이런 매혹적인 일들이 전세계적으로 보여지는 경

    우들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2. 불교 비판과 억압의 역설적인 다른 면

필자는 조선 정부와 유학인들의 불교에 대한 억압은 불교에 대해서 이중적으로 역설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우선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억불정책과 유학인들의 불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조선 불교가 쇠락하게 되는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의 다른 모습으로서, 오히려 조선의 억불정책과 유학인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조선불교의 회통적 경향을 촉진하였으며, 선과 교, 그리고 다른 종파들 사이의 가시적인 대립도 통합시킨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강압적인 교단의 통합27) 이 그러한 역설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맥락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탄압으로 말미암아 불교라는, 종파성을 넘은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억압받게되어 일단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이 최상의 과제가 되어버렸기에 종파간의 어떤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자연히 주류를 이루는 하나의 교단-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조계종으로- 모아지게 되었다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그 위기의 시대에도 여전히 선-교간의 충돌이 있었으며,28) 억지로 통합해놓은 교단 들 속에서는 자의에 의한 통합이 아니기에, 그리고 수행방법 등에 대한 이견 때문에 어떠한 통일된 정체성을 이루지 못하고 통합 이전의 종파성을 부각시키며 여러 세력간의 충돌이 오히려 더욱 빈번하였을 가능성이 높다.29) 그리고 겉으로는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속에 무수한 종파간의 주장을 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불교 신앙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을 것이고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7) 정병조, 앞의 책, pp. 157-158. ; 가마타 시게오, 앞의 책, pp. 217-218: 조선 건국 
       당시만 해도 교종의 성격을 가진 교단과 선종의 성격을 가진 교단, 그리고 진언을 주
    로 하는 교단과 정토신앙을 주로 하는 교단등 11개의 교단이 존재했다. 그러나 조선
    왕조는 태종(太宗, 재위 1401-1418) 때에 이를 7종파로 통합했고 다시 세종(世宗, 
    재위 1419-1450) 때에 선과 교의 양종(兩宗)으로 무차별 통합했다. 그 결과 연산군
    (燕山君, 재위 1495-1506),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이후의 승과(僧科)가 폐지
    된 시대에는 그 양종 또한 실질적으로는 없어져 버리게 된다. 따라서 종파(宗派), 종
    명(宗名), 종지(宗旨) 등이 선명하지 않은, 더불어 종파적 세력간의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혼란한 시대를 보내게 된다.
28)『선가귀감』에 대해 그 제자인 유정이 지은 발문(跋文)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슬프다! 200년을 내려오면서 스승(부처)의 가르침은 더욱 사라져 선학과 
    교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견해를 내세우고 있다. 교학을 중심 가르침으
    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오직 찌끼에 탐닉하여 헛되이 스스로 모래알만 세고 있어, 5
    가지 교학의 가르침 위에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스스로로 하여금 깨달아 들어
    가는 방법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선을 최고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천진함(본
    래면목: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본래의 모습)만을 자랑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려 닦
    아 깨치려하지 않으며, 단박 깨달은 후에 비로소 곧 마음을 일으켜 만행을 닦아 익
    힌다는 뜻도 모른다. [따라서] 선과 교가 뒤섞이고 넘치게 되어 [그들은] 모래와 금
    을 구분하지 옷한다...”: 김종명, 앞의 자료, p. 854. ; 정병조, 앞의 책, p. 150.
29) 정병조, 앞의 책, pp. 150-151.

 

또한 조선 전기의 도첩제의 폐지,30) 사원의 노비와 전답 몰수,31)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32) 등의 정책은 승려들의 급격한 신분 저하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력한 계층들의, 그리고 지식인들의 출가를 어렵게 했다. 그 결과 불교 승려들의 자질은 전체적으로 상당부분 하락했으며33) 불교의 교학적 발전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가르침의 명맥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만들었다.34) 그러나 인문주의라는 특성을 가진 유교의 부흥과 그 유교적인, 즉 인문적인 관료 등용 제도와 관직 체계를 통한 불교의 통제, 그리고 승과를 거친 사람에게만35) 승직을 부여하며 승직 부여의 권한을 정부에서 갖게 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각 절의 주지도 승과를 통과한, 즉 어느 정도의 인문적 소양을 갖추고 선적(禪籍) 뿐만 아니라 교종의 경전들도 상당히 익힌 사람만이 될 수 있었다36) 는 구조적 틀을 생산해내었다는 것은 오히려 불교인들에게 인문주의적 경향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고 필자는 본다.

30) 가마다 시게오, 앞의 책, p. 197.
31) 앞의 책, p. 193.
32) 앞의 책, p. 197.
33) 정병조, 앞의 책, p. 141. ; 가마타 시게오, 앞의 책, p. 197.
34) 가마타 시게오, 앞의 책, pp. 196-197. ; 석종진, 앞의 논문, p. 46.
35) 그 승과도 연산군 4년(1473)에 폐지되었다: 가마타 시게오, 앞의 책, p. 197. ; 정병조, 
    앞의 책, p. 137.
36) 가마타 시게오, 앞의 책, p. 218: "...선종은『전등록傳燈錄』과『념송집拈頌集』을, 
    교종은『화엄華嚴』,『십지론十地論』을 시험과목으로 삼았다. 그러나 승과가 폐지
    됨에 따라 조선시대의 승려들은 선과 교를 겸수하여, 선종은 『전등록』과 『염송』
    을 본과로 하면서도 교종의 경론을 함께 배웠다....각 사찰 주지가 되는 자격은 [승과
    의 중급을 통과한] 중덕(中德) 이상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불교에 대한 탄압과는 어울리지 않게, 오히려 경전의 간행은-정부 차원과 사찰과 같은 민간 차원에서 모두- 활발했다.37) 물론 이에는 한글의 창제와 인쇄술의 발달과 확산이 중요한 물적 토대를 이루어주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인쇄술의 확산과 한글의 창제를 가져온 유교의 인문주의적 영향력은 선종의 입장에서 교학을 받아들이기 쉽게 하는 어떠한 맥락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휴정,38) 또는 다른 불교인들도 선과 교의 통합이라는 과제를 조선시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주류를 이루던 선종이 교학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역설을 가진 성리학의 인문주의적 영향력과, 파괴적이라 할 수 있는 강압적인 교단 통폐합이 조선불교가 통불교화하는 중요한 사회적 맥락의 한 축을 형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휴정의 사상도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37) 가마타 시게오, 앞의 책, pp. 217-218. ; 정병조, 앞의 책, p. 127.
38) 석종진의 휴정이 불교를 접하게 되는 계기를 기록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옮겨 놓고 
    있다: ...출가하기 전에 만난...노숙(老宿)은『전등록傳燈錄』,『선문염송禪門拈頌』, 
   『화엄경華嚴經』,『원각경圓覺經』, 『능엄경愣嚴經』,『법화경法華經』,『유마경
    維摩經』,『반야경般若經』등 수십 가지의 경론經論을 내 놓으면서 “자세히 읽어보
    고, 신중하게 생각하면, 차츰 입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종진, 앞의 논문, p. 47.
    ; 선지식(禪智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전에 먼저 불교의 경전들-교종이 중요시 
    여기는 경전들도 상당수 포함된-을 먼저 접했다는 것이다. 물론 시대적 배경 상 좋은 
    스승을 쉽게 만나기 어려웠다는 탓도 있겠지만, 당시에 널리 불교 경전이 유포되어 
    있었으며, 성리학을 먼저 공부한 휴정은 마치 성리학에서 경전 공부를 통해 진리를 
    점차로 알아나가는 격물치지의 방법-서구 근대 인문주의의 귀납적이고 경험적인 방
    법론과 유사한-으로, 즉 자기에게 ‘이미 익숙한’ 방법으로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런 성리학의 인문주의적 배경이 
    휴정에게 교학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갖게 하는 작용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Ⅲ.『선가귀감』의 시대사적 의미: 신앙인의 Orthodox의 제시

 

휴정의 시대에도 이미 불교는 1000년을 이어 내려온 뿌리깊은 신앙이었다. 여전히 민중의 바탕 신앙이자 의지처였다.39) 그리고 이렇게 뿌리 깊게 자리잡은 불교적 신앙은 명종(明宗, 재위 1545-1567)대의 짧은 불교 중흥기40) 에 휴정이라는, 그리고 그 외에도 휴정의 뒤를 이을 훌륭한 인물들이 승과를 통과하고 또는 출가할 수 있었던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탄압의 세월에 비해 매우 짧았고 불교인들의 형편은 결코 나아질 수 없었다.

39) 가마타 시게오, 앞의 책, p. 191. ; 실제로 억압의 세월이 오래 지났으며 여전히 
    억불(抑佛)이 계속되던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때에 황해도에서 ‘생불生佛’
    이라고 자처하는 여자가 나타났고 민중을 현혹하기에 군대를 파견하여 그를 참했
    다는 기록이 나온다: 가마타 시게오, 앞의 책, p. 201.
40) 명종(明宗, 재위 1545-1567)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며 그의 어머니 문정왕후
    (文定王后, 1501-1565)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문정왕후는 불교에 심취했었으며 
    태고 보우(太古 普雨, 1515-1565)와 함께 불교의 중흥을 이끈다. 명종 즉위(1545)
    부터 문정왕후가 죽을 때(1565)까지의 약 20년의 기간은 조선 불교가 그 이후의 
    시대를 겪어낼 잠재력을 얻는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휴정도 이때 승과를 
    통과했음.「선가귀감」도 1564년에 편술되었다.

 

이런 변혁과 억압의 현장에서 휴정의 『선가귀감』은 선과 교 사이의 분열을 통합한다는 불교 사상적인 의미 이외에도 급변하는 시대를 넘어 정체성과 존립의 위기를 맞는 불교 교단과 신앙인들에게 새로운 이상을 제시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선 수행자들에게, 위와 같은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날로 타락하고 정체성을 잃어가는 수행자들에게 윤리적이고 수행을 위한 지침을 주는 것을 넘어서 ‘당대 조선의 불교’라는 것 자체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파적 세력의 자기 주장과 다툼으로 인한 분열과 교단적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불교에 매우 배타적인 사회 주류층과 지식인들의 시선 속에서, 불교를 미천한 자들의 종교로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의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던, 자신들이 헌신하는 신앙에 혼란을 느끼던 당시 불교 신앙인들에게 새로운 신앙의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orthodox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휴정의 『선가귀감』에는 선과 교의 체계화는 물론, 진언이나 염불 등 당대의 주요한 수행법들을 ‘말없음’의 진리라는 하나의 정점 아래로 끌어들이는 일관되는 질서가 있다.

 

그리고 이런 ‘새롭지 않으면서도41) 새로운 이상’42) 은 역시 인문주의적 영향을 받은, 그러나 강압적인 억압으로 인해 불교의 정체성을 상실해가던 수행자들에게-이것이 민간의 불교신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또한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면 이차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면 아무 상관도 없었는지- 받아들여야할 당위성을 가진, 온몸으로 헌신하게 하는 신앙의 이상으로 제시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41) 각주 20)을 참고하시오.
42) 그렇지만 그 시대 불교 신앙인들의 절박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아니 불교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의 갈급함을 채움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선가귀감』은 휴정 자신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또는 못했던 것이든 사회, 정치적 맥락 속에 살던 종교인으로서의 대응이었으며 자신이 발견한, 온몸으로 체득한 궁극의 경지를 전하려는 시대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선가귀감』이 갖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중요성이 있다고 하겠다.『선가귀감』은 초월이라는 종교의 궁극적 경지를 경험한 인간이, 특히 불교를 통해, 그 불교라는 세계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의미 세계를 얻은, 초월을 경험한 사람이 그 세계를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그에 따라 세계에 대처해 나가는 한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진리를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의 세계, 궁극의 경지를, 자신처럼 추구하는 신앙인들에게 전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시대적 요청을 포용할 수 있는, 불교 신앙에 대한 재해석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선가귀감』의 내용을 본다면 그것은 단순히 선과 교 사이의 통합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그리고 수행자들에게 윤리적인, 그리고 수행을 위한 귀감을 주는 것을 넘어서-물론 이런 차원들은 모두 여전히 있다- 그 이상의 어떤 차원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단의 강압적인 통합과 불교에 대한 억압으로 흔들리는, 어두운 신앙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진리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서산이 의도했던 바를 넘어서는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대의 평가라면 정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맺는말: 휴정의 삶 - Orthopraxis

 

신앙인이 따라야 할 orthodox를 제시한 휴정. 하지만 그가 더 중요시 한 것은 오히려 orthopraxis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앎을 보이는 것보다는 삶을 보이는 것이, 물론 앎에 기초한 삶이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불교 신앙인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나아가 구원의 진리를 제시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진정한 깨달은 자, 즉 보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궁극의 경지를 위해 정진(精進)하는 모습, 그리고 그 궁극의 경지에 다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보살의 길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승직도 마다하고 수행자의 자리로 돌아가 평생을 궁극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에 헌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orthopraxis 없는 orthodox는 헛된 것이고, orthodox 없는 orthopraxis는 위선이다. 다시 말해 삶 없는 앎은 헛된 것이고, 앎 없는 삶은 위선이다. 휴정의 『선가귀감』은 orthodox를 보였다. 그의 수행자로서의 삶은 orthopraxis를 보였다. 삶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의 사상도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그의 곁에 별다른 제자들도 모여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지식은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별반 궁극의 경지를 열어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게서 제시된 새로운 불교 신앙인의 정체성-orthodox와 orthopraxis가 하나된-은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금 불교의 진리를 신앙하게 했으며, 그를 통해 궁극의 경지를 추구하게 된 제자들을 통해 조선 후기의 불교가 지속될 수 있는 한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휴정을 통해 새로이 제시된’ 불교 신앙인의 정체성, 곧 앎과 삶이 하나된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궁극의 경지가, 불교라는 신앙을 통한 인간 구원의 지평이 지금도 한국인의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하는 한 힘이 된 것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