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전쟁하자는 말입니까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될 비극
더한 비극은 자유를 잃는 것
북핵 인질로 살지 않으려면
극단적 상황 배제해선 안돼
"그래서 전쟁이라도 하자는 얘기입니까?"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보수 인사들이 유화적 대북 자세를 비판하면 반대 측은 거의 예외없이 이렇게 응수했다. 카운터펀치로서 이 말이 갖는 위력은 굉장했다. 기억에 어떤 보수 인사도 "파할 수 없다면 싸워야지요."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그걸로 노쟁 종결. 대북송금 특검으로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이면의 은밀한 금전 거래가 드러났을 때, 2006년 북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 임기 6개월도 남겨놓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정상회담을 애걸하는 것처럼 비쳤을 때도 어김없이 이 표현이 등장했다.
그 속편이 최근 나왔다. 10년 전에 비할 수 없이 위중해진 한반도 정세를 반영해 '그래도 전쟁만은 ...'으로 표현이 약간 바뀌었지만 논리 구조는 똑같다. 무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고 선언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취임 100일 회견에서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접견 한 자리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보수 진영은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대놓고 반박하지는 못한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전쟁'은 금기어다. 원칙을 말하자면 누구도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재래식 전쟁이 발발하면 북의 장사정포 공격만으로 첫날 수도권에서 3만명이 죽는다고 한다. 핵이 터지면 100만명이 죽는다는 계산도 있다. "너와 네 가족이 죽어도 전쟁하자고 할 수 있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서슴치 않고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위선이다. 전쟁은 인간의 이성이 행하는 일 중에서 최대의 비극이고 따라서 '그래서 전쟁을 하자는 말이냐"는 반박 앞에 말문이 막히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전쟁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공동체적.역사적 문제이기도 하다. 또 정의관이 개입되는 문제다. 전쟁 그 자체가 불의라면 방지에 모든 것을 거는 게 맞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있다. 역사는 그때 그때 극복되어야 할 불의란 것이 존재하고 인류는 많은 경우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불의와 싸워왔다. 1861년 미국 남부연합이 연방 탈퇴를 들고 나왔을 때 링컨이 반드시 응전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그때 링컨이 연방 사수 대신 평화를 택했다면 미국은 쪼개졌을 것이고 노예제란 불의는 한동안 더 갔을 것이다. 2차 대전 때 미국은 유럽 전선에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먼 히틀러의 불의가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6.25전쟁 당시 한국은 미국이 사생결단하고 지킬 나라는 아니었다.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의 정으관에 힘입은 참전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불의한 김정은 정권 치하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들 전쟁에서 수많은 개인들이 죽고 다쳤지만 '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당장 목숨이 달렸는데, 우리가 이른 성취가 잿더미가 될지 모르는 판국에 역사와 정의를 말하는 건 사치가 아닐까 . 아들의 생명을 걱정해 "깡패에게 뜨기더라도 절대 맞서 싸우지 말라"고 타이르는 아버지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한 번이 아니라 평생 뜯기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면? 땅의 목숨을 걱정해 "성폭행범에게 절대 저항하지 말라"고 하는 아버지도 있다. 만약 평생을 성폭행범의 여자로 살아가야 한다면? 김정은이 완결적 핵능력을 보유하게 될 때, 그 결과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때 우리의 운명이 그렇게 디지 말란 보장이 없다. 지금의 안녕만큼이나 미래의 안녕도 중요하다. 나와 자식들이 살아갈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그래도 전쟁만은'을 외치는게 과연 합리적일까.
전쟁은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안전이 위협받을 때 택할 수 있는 최후 수단이다. 그게 국가와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다.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존속과 미래세대의 안녕, 역사적 정의가 우리의 목표가 될 수는 있어도 전쟁 방지는 목표가 될 수 없다. 며칠 전 개인 모임에서 "그래서 전쟁하자는 소리냐"는 질문을 실제 받았다.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끔찍하지만 전쟁이 최악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은 북핵의 인질로 살아가는 것이다."
매경포험
노원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