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율장

초기경전을 통해 본 바람직한 노인상 / 이자랑

실론섬 2018. 2. 28. 14:46

불교평론 [68호] 2016년 12월 01일 (목)


1. 시작하며


붓다 만년의 여정을 다룬 《대반열반경》에 의하면, 시자 아난다는 병마와 싸우며 나날이 노쇠해 가는 스승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다. 금방이라도 입멸해 버릴 것 같은 스승을 바라보며 그가 찾아낸 위안은 ‘비구 승가에게 무언가 특별한 가르침을 주지 않은 채 스승이 열반에 드실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붓다는 그런 아난다를 향해 이미 자신은 내외의 구별 없이 모든 가르침을 설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팔십이 된 자신의 육체를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듯이’ 그렇게 힘겹게 움직이는 노구로 표현하면서도, 여래가 어떤 상(相)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세속적인 느낌도 소멸하고, 또한 무상(無相)한 마음의 선정에 들어 있다면 여래의 신체는 매우 편안하다고 한다.


사고(四苦)의 하나로도 헤아려지듯이 늙음[老]은 생류(生類)라면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가죽끈에 의지하여 간신히 움직이는 수레처럼, 노쇠한 육체는 죽는 날까지 다독거리며 힘겹게 끌고 가야 할 만만치 않은 짐이지만, 늙음은 낡은 수레와 같은 지친 육체만을 남겨주는 것은 아니다. 늙음은 그만큼 많은 세월을 살았다는 증거이며, 많은 세월 동안 삶의 지혜 역시 적지 않게 축적해 왔을 가능성이 크다. 불교 경전에서 출가한 지 오래된, 나이 든 비구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 가운데 ‘라딴뉴(rattanññu)’라는 것이 있다. 직역하자면, ‘밤을 아는 (자)’라는 의미로 구족계를 받은 후 많은 밤을 지낸, 즉 경험이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구족계를 받은 후 승가에 들어와 수행한 햇수가 길수록 분명 불법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지혜를 갖추고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스스로도 편안한 길을 실천하고 또 다른 이에게도 제시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라딴뉴이다.


초기경전에는 라딴뉴 외에 나이 많은 비구를 가리키는 몇 가지 용어가 더 있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테라(thera, sthavira)’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테라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노인의 모습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테라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지켜보다, 지속하다, 서 있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산스끄리뜨어 ‘√sthā’에서 파생되어 ‘늙은(이), 연장(자)’ 등의 의미를 갖는 형용사 내지 명사로 사용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비구는 흔히 장로비구(thera-bhikkhu), 중간비구(majjhima-bhikkhu), 신참비구(nava-bhikkhu)의 셋으로 분류하여 표현되곤 하는데, 이는 구족계를 받은 후의 햇수인 법랍(法臘)에 따른 구분이다. 테라는 이 가운데 장로에 해당하는 것으로(이하, 테라를 장로로 표기), 즉 장로란 세납이 아닌 법랍이 많은 자로서, 승가에서 나이는 법랍이 기준이 된다. 물론 장로라는 용어는 나이 든 비구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장로로서 조건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장로 · 중간 · 신참이라는 분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장로는 법랍이 많은 늙은 비구를 가리킨다. 물론 ‘장로로서의 덕’을 갖춘 법랍이 많은 비구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초기경전에 나오는 장로를 중심으로 승가 구성원들의 이들에 대한 예우와 배려, 장로의 조건, 장로의 역할이라는 세 가지 점을 살펴보며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노인상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장로에 대한 예우와 배려


초기경전에서는 법랍이 많은 장로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경, 예우, 배려 등을 강조한다. 이것은 물론 장로가 구성원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라는 차원에서의 공경이나 배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승가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구족계를 받는 순간 그 이전에 세간에서 갖고 있던 신분이나 지위, 나이 등은 모두 무의미해지고, 오로지 구족계를 받은 이후의 햇수를 헤아려 질서 유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랍이 높은 비구에 대한 예우는 승가의 모든 구성원이 지켜야 할 의무이다.


율장 《소품》 〈와좌구건도〉에 의하면, 어느 날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사밧티를 향해 유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먼저 도착한 6군비구의 제자들이 서둘러 정사와 와좌구(臥座具)를 차지해버려, 나중에 도착한 사리뿟따 장로는 와좌구를 얻지 못한 채 나무 아래서 밤을 지내야 했다. 새벽녘에 사리뿟따의 기침 소리를 들은 붓다는 밤새 사리뿟따가 나무 밑에서 지낸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연유를 확인한 후에 비구들을 소집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비구들아, 누가 먼저 자리, 물, 음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왕족이나 사제 혹은 장자처럼 출가 전에 높은 지위에 있던 자가 먼저 받아야 한다고 대답하는 자도, 지율자(持律者)나 설법자(說法者), 혹은 선정을 성취한 자처럼 특수한 능력을 갖춘 비구가 먼저 받아야 한다고 대답하는 자도 있었다. 또한 아라한이 먼저 받아야 한다는 대답도 있었다. 


그러자 붓다는 연장자, 다시 말해 법랍이 높은 자가 먼저 받아야 한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설했다.


연장자를 공경하는 사람들은 법에 통달하고

바로 이 현세에서 칭찬받으며, 후세에는 선취(善趣)를 얻는다.


연장자에 대한 공경은 현세에도 후세에도 좋은 과보를 낳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임을 말하고 있다. 이 구절에 이어 붓다는 다음과 같이 제정한다.


비구들이여, 법랍에 따라 인사하고, 일어나 맞이하며, 합장하고, 경배 드리고, 먼저[혹은 가장 좋은] 자리와 물과 음식을 [제공할 것을] 허락하노라.


법랍이 높은 장로에게는 항상 먼저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고 맞이해야 하며, 음식이나 자리 등도 장로가 먼저 제공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내용이다. 장로비구에 대한 배려는 공평한 분배가 어려운 물건이나 시설 등을 나눌 때 특히 강조된다. 승가의 일원이 된 자는 현전(現前)승가 내지 사방(四方)승가의 구성원으로서 의식주와 관련된 보시물을 공평하게 분배받는 것이 승가 운영의 기본 원칙이다. 이것은 평등이라는 승가 운영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이념을 실천하는 길이다.


그런데, 분배물의 특성상 공평한 분배가 어려울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는 법랍이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니살기바일제 제22조 ‘걸발계(乞鉢戒)’에서는 여분의 발우를 처분할 때 장로비구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다. 니살기바일제란 소유가 금지된 물건을 비구가 소유하고 있을 경우, 그 물건을 승가에 내놓고 참회를 해야 멸죄가 가능한 죄이다. 비구는 하나의 발우만을 소지해야 하며, 설사 구멍이 나거나 손상되어도 다섯 번까지 고쳐 써야 하는데, 만약 이를 어기고 여분의 새 발우를 지닌다면 니살기바일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발각되면, 현전승가의 구성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문제의 새 발우를 내놓고 발우 돌리기 의식을 하게 된다. 이때 법랍이 가장 높은 비구에게 우선적으로 선택권이 주어진다. 장로비구는 원한다면 새 발우와 자신의 헌 발우를 교환할 수 있으며, 그다음으로 법랍이 높은 장로는 남겨진 발우와 자신의 발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방법을 통해 범계자를 제외한 모든 비구에게 발우를 교환할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 가장 법랍이 낮은 비구가 포기한 발우가 바로 범계자의 몫으로 남는다. 결국 새 발우를 선택하는 기회는 가장 법랍이 많은 장로에게 주어지는 셈이다.


이런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연장자에 대한 세심한 공경이나 배려와 더불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반열반경》의 ‘칠불쇠퇴법(七不衰退法)’ 가운데 네 번째로 설해지는 다음 가르침이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장로이며, 경험이 많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버지이며, 승가의 지도자인 비구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경애하고, 공양하며, 또한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기는 한,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되며 쇠퇴는 없다.


칠불쇠퇴법은 붓다 만년의 이야기를 기록한 《대반열반경》 첫머리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입멸을 앞둔 붓다가 승가의 존속과 발전을 염원하며 제자들에게 남긴 유훈과 같은 가르침이다. 그 네 번째 항목으로 장로에 대한 존경과 그들의 의견에 대한 경청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장로에 대한 이러한 예우들은 두 가지 면을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장로는 출가한 지 오래된 선배이자 스승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므로 그 자체로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하는, 이른바 승가의 질서 유지 차원의 배려이며, 또 하나는 출가한 지 오래된 만큼 남다른 판단력과 지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승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다시 말해 구성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후자는 장로가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닌, 장로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3. 장로의 요건


장로에 대한 예우보다 더 강조되는 것이 바로 장로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단지 법랍이 많은 늙은 장로라고 해서 구성원들로부터 이러한 예우를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그에 부합하는 덕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담마빠다》를 보면 다음과 같다.


그의 머리가 백발이라고 해서 장로인 것은 아니다.

그의 나이가 많을 뿐이니, 헛되이 늙어버린 자라고 불린다.


《담마빠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게송은 붓다가 제따와나에 머물 때 라꾼다까 장로와 관련해서 설해진 것이라고 한다. 라꾼다까 장로가 붓다를 만나고 나가는 길에 30여 명의 비구들과 마주쳤는데, 그들은 장로에게 인사도 없이 지나쳤다. 그들이 들어오자 붓다는 “오는 길에 한 장로를 보지 못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들이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정말로 못 보았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한 어린 사미는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붓다가 “그는 사미가 아닌 장로이다”라고 하자, “그는 아주 어리게 보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붓다는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장로석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장로라고 부르지 않는다. 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었으며, 남에게 항상 친절한 사람을 장로라고 부른다”라고 하며, 위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 키가 작고 동안(童顔)이었던 라꾼다까는 곧잘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지만, 결코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법이 없었고, 붓다는 “마음의 집착을 모두 제거한 아라한은 화를 내거나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마치 단단한 바위처럼 동요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다.”라며 그를 칭찬하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라꾼다까는 어려 보이는 외모 탓에 주위로부터 장로로서의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그런 놀림에 대해 결코 화내거나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만약 라꾼다까에게 자신은 장로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자만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자신에게 예를 갖추지 않고 심지어 놀리기까지 하는 자들을 용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런 집착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붓다는 그런 그를 칭찬하며, 장로란 희끗희끗한 백발을 지닌, 이른바 외모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장로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제대로 갖추었는가의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법랍이 많다는 것이 장로의 절대조건은 아니며, 법랍이 높으면서 또한 그 법랍에 어울리는 인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장로이다. 


위의 게송에 이어 제261게에서는 장로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진실과 법, 불살생과 자제, 절제[를 갖춘 자],

더러움을 버리고 굳건한 자, 그야말로 장로(thera)라 불린다.


항상 올바른 진리를 추구하고, 생류를 함부로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다스리고, 청정한 삶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자야말로 장로라는 이름에 부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로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앙굿따라 니까야의 《우루벨라경》이다. 이 경은 다음과 같은 붓다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정등각을 성취한 후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니그로다나무 밑에 그가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이 들고 늙은 바라문들이 다가와 인사를 주고받은 후 앉았는데, 그들은 붓다를 향해 ‘듣자니, 고따마 당신은 나이 들고 늙은 바라문들에게 다가가 먼저 예를 갖추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것은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다’라며 비난하였다. 이에 붓다는 ‘이 사람들은 장로나 장로가 되는 법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을 말한 후, 붓다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비구들아, 설사 나이가 들어 80이나 90, 혹은 100살이 되었다 해도 만일 그가 적절하지 못한 때에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유익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법에 어긋나는 것을 말하고, 율에 저촉되는 말을 하며, 적당하지 못한 때에 터무니없는, 절제되지 못한, 이익을 주지 못하는 [그런] 담아둘 만한 가치가 없는 말을 한다면, 그는 그저 ‘어리석은 장로’라는 이름을 얻을 뿐이다.


이 구절에 이어 설사 젊은 자라도 이런 덕목을 갖추고 있다면 ‘현명한 장로’라 불린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여기서는 주로 말에 초점을 두어 제때에 유익하고 올바른 말을 하는 것을 장로의 조건으로 들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표현상으로도 절제되고 또한 내용상으로도 진리에 부합하는 여법한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위의 바라문들은 나이 들었다는 것이 상대방으로부터 공경과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평가를 핑계로 붓다의 행동을 비난하는 비겁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생각이나 발언은 붓다가 보기에 어리석은 노인의 수준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에 이어 장로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으로 계율을 잘 지키고, 다문(多聞)이며, 사선정(四禪定)을 닦고, 번뇌를 다하여 해탈을 성취할 것을 들고 있다. 그리고 다음 게송으로 장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총 요약해서 보여준다.


들뜬 마음에 경솔한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이 산만하며, 바른 법을 즐기지 않고, 어리석으며, 악한 견해를 가진 자는 장로의 지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존경받지 못한다.


계를 구족하고, 다문이며, 영감을 갖추었으며, 자제할 줄 알고, 현명하며, 법들을 통찰지로 꿰뚫어보고, 일체 법에 대해 통달하고 장애가 없고 영감적이며, 생사를 버리고 오로지 순수한 범행을 [실천하는 자], 나는 그를 장로라고 부른다. 그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는다.


번뇌를 다한 비구를 장로라 부른다.


《우루벨라경》의 가르침은 노년에 ‘진정한’ 장로로 불리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보여준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조건을 갖춘 자만이 장로라 불렸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승가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장로인 만큼 기대하는 조건 역시 까다로웠음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자칫하면 대접받고 싶은 욕구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는 때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행동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 율장에는 이런 욕구 때문에 발생한 사건들이 전해진다. 빨리율 《소품》 〈와좌구건도〉에 의하면, 한 대신이 승차식(僧次食)을 준비하여 비구들을 초대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온 우빠난다는 식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다른 비구를 자신보다 법랍이 낮다는 이유로 일으켜 세우려 하여 승가에 다툼을 일으킨다. 또한 바일제 제17조 ‘견타출승방계(牽他出僧房戒)’에 의하면, 17군비구는 큰 정사에서 안거를 보내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정사를 수리했다. 그런데 6군비구가 찾아와 ‘정사는 법랍 순으로 이용하는 것이 규정이니 우리가 이 정사를 사용하겠다. 너희는 떠나라’라며 17군비구를 무리하게 끌어내어 쫓아냈다. 법랍을 핑계로 자신보다 어린 비구들을 괴롭히며 이익을 취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이런 행동은 붓다에 의해 모두 금지된다.


장로비구들은 구성원들로부터 예우를 받는 만큼 오히려 자진해서 다른 구성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빨리율 《소품》 제8장 〈의법건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숙소(熟酥), 기름, 진미가 있다면 장로는 말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거라.’


숙소 등은 쉽게 먹을 수 없는 미식(美食), 즉 진미이다. 영양가도 많고 맛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먹고 싶어 하지만, 승가에 보시되는 양이 많지 않을 경우에는 음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장로비구를 배려하여 그에게만 특별히 줄 수 있다. 따라서 장로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모든 구성원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라’고 지시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장로비구는 항상 다른 비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절대로 법랍을 내세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4. 지도자로서 장로의 역할


장로가 갖추어야 할 요건은 이처럼 적지 않은데, 이는 결국 장로가 승가의 지도자로서 활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반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자신의 사후에 승가를 이끌어 갈 특정 인물을 지정하지 않는다. 스스로조차 비구 승가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붓다였다. 특정한 누군가를 후계자로 지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붓다 입멸 후 무엇이 승가를 이끌어 가는가? 이에 대해 붓다는 자기가 가고 난 후의 스승은 자신이 제자들을 위해 설하고 제정한 법과 율이라고 말했다.


이는 바꾸어 표현하자면, 사실상 법과 율에 정통한 비구들이 불멸 후 붓다를 대신하여 지도자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실 붓다 재세 당시에도 훌륭한 불제자를 우두머리로 하는 승가는 존재하고 있었다.


초기 경전에서는 “붓다를 우두머리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Buddhapamukhassa bhikkhusaṃghassa)”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우두머리로 하는 비구승가는(Sāriputta-Moggallānapamukho bhikkhusaṃgho)” 등 불제자를 리더로 내세우는 표현이 나타난다. 모든 비구가 항상 붓다와 함께 유행하거나 지도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대제자들이 붓다 대신 지도자의 역할을 한 것이다. 장로들이야말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 “붓다를 우두머리로 한다는 것은, 여기서 등정각자를 승가의 장로로 해서 앉아 있는 승가라는 의미이다.”라거나, 혹은 “붓다를 우두머리로 한다는 것은 붓다를 지도자로 하고, 붓다를 승가의 장로로 해서 착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라는 설명이다. 이를 보면, 붓다를 비롯한 대제자들은 장로로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장로는 승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갖추어야 할 조건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으며, 항상 다른 구성원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빨리율 《대품》 〈자자건도〉에 의하면, 자자(自恣)를 할 때 장로비구는 가장 먼저 대중 앞에 서서 검증받아야 한다. 자자란 안거(安居)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안거를 보낸 전원이 모여 3개월 동안의 규칙 위반을 서로 지적하며 반성하는 모임이다. 자자는 5명 이상의 현전승가에서 거행할 수 있다. 안거를 함께 보낸 현전승가의 모든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여 안거 기간 동안 범계 사실은 없는지 자타 확인하는 것이다. 먼저 갈마사 역할을 하는 총명 유능한 비구가 앞으로 나와 “오늘은 자자일입니다. 만약 승가에 있어 시기가 적절하다면 승가는 자자를 실행하겠습니다”라고 안건[白]을 제시한다. 그러면 법랍이 가장 높은 장로 비구가 승가의 대중 앞으로 나와 3개월 동안 자신이 율을 어기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혹은 의심 가는 점이 있는가를 대중에게 묻는다. 그러면 승가의 비구들은 이에 대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지적받은 자는 참회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승가의 모든 비구가 법랍에 따라 차례로 한 명씩 나아가 자신의 행동에 관해 대중의 의견을 묻는다. 장로비구가 자신보다 어린 비구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거나 지적받는 일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출가자로서 자신의 심신을 먼저 정결히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본인의 청정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장로비구는 평상시에 모범을 보이고, 또 오랜 승가 생활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지혜로 구성원들을 항상 지도해야 하지만, 특히 승가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을 도모하게 된다. 예를 들어, 승가에 다툼이 발생했을 때 이를 가라앉히는 일곱 가지 방법을 다루고 있는 〈멸쟁건도〉에 의하면, 법과 율에 대한 해석이 나뉘어 구성원들 간에 다툼이 발생했을 경우(이러한 내용의 쟁사는 ‘言諍’이라고 한다.), 먼저 다툼이 발생한 현전승가 내부에서 현전비니(現前毘尼) 차원의 해결이 도모된다. 현전비니란 동일한 경계 안의 모든 비구가 모여 부처님의 법과 율에 근거하여 판단을 시도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런데 만약 이 방법이 실패하면, 다시 말해 어떤 결론이 내려졌으나 당사자들(아마도 진 쪽)이 그 결론에 납득하지 못하여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는 근처의 다른 정사로 가서 그곳에 사는 장로비구들에게 판단을 의뢰하게 된다. 〈멸쟁건도〉에서는 붓다 당시 사밧티에서 발생한 사건을 예로 들며, 많은 장로 • 3명의 장로 • 2명의 장로 • 1명의 장로가 사는 주변의 정사를 돌며 쟁사를 의뢰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승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장로들의 판단이 중요한 잣대로 적용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위에서 언급했던 ‘칠불쇠퇴법’의 네 번째 조항, 즉 장로비구에 대한 존경과 그들의 의견에 대한 경청이 실제로 승가 운영에 제도로서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승가의 모든 일은 갈마(羯磨)라 불리는 독특한 회의 형식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갈마의 기본 원칙은 현전승가의 구성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만장일치로 사안을 마무리 짓는 것이지만, 무작정 구성원들을 다 모아 놓고 그들의 의견을 일일이 반영하여 결론을 내는 것은 아니다. 〈멸쟁건도〉의 위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장로들을 중심으로 한 훌륭한 지도자들의 판단이 우선시되며, 이에 대해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장로들의 지도자로서 역할은 불멸 후에 더욱더 빛을 발하게 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불멸 후 100년경에 발생한 제2결집이다. 빨리율 《소품》 〈칠백건도〉에 의하면, 베살리의 한 승원에서 밧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재가신도로부터 금은을 보시받는 행위가 문제 되자, 이를 단죄하기 위해 야사라는 비구는 인도 각지로부터 자신의 의견을 지지해 줄 비구를 찾아 나선다. 이때 야사가 찾아 도움을 요청한 비구들은 모두 장로이다. 그 대표격은 야사가 가장 먼저 찾아간 레와따라는 장로였다. 레와따는 당시 최고의 학식과 행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던 인물로 여러 가지 면에서 훌륭한 장로였던 것 같다. 〈칠백건도〉에서는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레와따 장로는 소레야라는 곳에 머물고 계시는데 다문(多聞)이고, 아함(阿含)에 정통하며, 법(法)을 잘 알고, 율을 잘 알며, 논모(論母)를 잘 알고, 현명하고, 총명하며, 지혜롭고, 부끄러움을 알며, 후회하는 마음을 낼 줄 알고, 학처를 배우려는 욕구가 있는 분이다.


이 묘사로부터 알 수 있듯이, 레와따는 학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행동도 올바르고, 현명한 그런 훌륭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장로들이 십사 비법 판정을 위해 베살리로 향한다.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비구들이 모여들었지만, 이들은 함부로 나서지 않고 장로들의 판단을 기다린다. 즉, 최종적으로 십사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정은 단사인(斷事人) 제도를 활용하였으며, 단사인 구성을 위해 대립하는 양측으로부터 각각 4명씩, 총 8명의 장로비구들이 선발된다. 이들은 십사 하나하나를 율에 비추어 보고 정법(淨法)으로서의 허용 여부를 판단한다. 이처럼 장로비구들은 붓다 입멸 후, 승가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중재나 해결을 도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승가 운영에서 장로비구들의 의견이 중요한 잣대로 적용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제대로 수행 생활을 했다면 구족계를 받고 승가에서 공부하고 수행한 시간이 많을수록 분명 경과 율에 대한 이해도 깊을 것이며, 승가 운영에 대한 판단력도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장로란 세월만 보낸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자리도 아니다. 한순간 한순간 성실하게 법과 율을 배우고 또 실천하며 노력한 결과 얻게 되는 호칭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얻은 장로의 지위야말로 진정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5. 맺으며


얼마 전 발표된 한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이제 ‘인구 구조 역전’의 시대 문턱에 선 것으로 보인다. 곧 노인의 비중이 14%에 이르는 ‘고령사회’로 들어설 전망인데, 특히 내년은 노인 인구가 유소년(0~14살) 인구를 앞지르는 분기점이라고 한다.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만큼 노인으로 살아가는 기간도 길어진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늙는다는 것, 늙은 후의 척박하지 않은 삶에 대해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다. 늙음이란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로는 승가라는 한정된 공동체 속에서의 연장자이지만, 이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은 일반사회의 노인문제와 관련해서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노인은 말 그대로 나이 들어 늙은 사람이다. 노인의 가장 큰 특징은 육체의 노쇠이다. 육체의 노쇠는 육체적인 불편함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위축감도 발생시킨다. 가끔 노인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느껴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어쩌면 약자로서 느끼는 일종의 자격지심과 같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힘이 없기 때문에 무시당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노인들이 겪을 불안한 감정을 헤아리고 이를 기반으로 공경과 배려를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가족으로서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든 우리 자신과 직 •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코 무관한 존재는 아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내가, 나아가 나를 둘러싼 지금의 환경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예우나 배려는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거쳐야 할 노인의 삶이다. 그들에 대한 감사나 측은지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가정 내지 사회의 질서 역시 무너지게 될 것이다.


한편, 노인은 그러한 예우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권위적인 태도로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로는 승가의 구성원이자 스승으로서 나아가 지도자로서 승가의 발전과 존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율을 어기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잘 구별하여 스스로도 올바르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도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또한 악행을 멀리하며, 악행을 저질렀을 때는 이를 내외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구성원들 앞에서 이를 드러내어 참회하는 용기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승가에 문제가 생기면 지혜를 나누어 주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용기도 갖추고 있다. 다른 이에게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주어 진리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노인 역시 나이에 걸맞은, 삶의 연륜을 느끼게 해 주는 품위를 지녀야 한다. 이 품위는 외적인 치장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단기간에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 부지런히 갈고 닦은 내면의 충실이 무르익어 노년에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장로가 단지 늙은 수행자를 위한 호칭이 아닌, 많은 덕을 갖춘 노승에게 주어지는 호칭이었던 것처럼, 일반사회의 노인 역시 연륜에 걸맞은 덕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늙음을 완성해가는 노인이라 불릴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올바른 삶을 살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기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 다다른 노년의 삶은 육체의 노쇠로부터 오는 불안감과 허무감을 극복하여 스스로도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다음 세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진정한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며 인생을 마무리하게 해 줄 것이다.


이러한 노인의 삶은 자신의 행복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의 구성원들 역시 행복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노력을 기점으로 다음 세대들은 반드시 좀 더 나은 길을 개척해 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늙음이란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끝’을 예고하는 현상임과 동시에, 그의 삶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보다 나은 삶과 그들의 풍요로운 노년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자랑 /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동국대 인도철학과 졸업, 일본 도쿄대학 인도철학 · 불교학 전공 석사 및 박사 과정 졸업. 〈초기불교교단의 연구-승단의 분열과 부파의 성립〉으로 문학박사 학위 취득. 초기불교 교단사 및 율장에 관한 50여 편의 논문을 비롯하여, 《나를 일깨우는 계율이야기》 《붓다와 39인의 제자》 《도표로 읽는 불교입문》(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