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교리 및 수행

장애의 두 가지 기능에 대한 연구 ‒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중심으로 ‒/정준영

실론섬 2019. 2. 16. 11:48

한국불교학 제86집, pp.255~283

장애의 두 가지 기능에 대한 연구

‒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중심으로 ‒

정준영/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명상학전공 교수

 

Ⅰ. 들어가는 말

Ⅱ. 사마타 수행의 장애

 1. 장애의 소멸과 선정

 2. 선지와 삼행의 중지

Ⅲ. 위빠사나 수행의 장애

 1. 심관수염과 칠각지

 2. 두려움, 위험 그리고 혐오

Ⅳ. 마치는 말

 

[ 요 약 문 ]

불교수행은 장애(hinderance, nīvaraṇa)를 수반한다. 본고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에서 나타나는 장애들의 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이들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 살펴본다. 일부 서구학자들은 불교수행이 부작용을 수반하기에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불교수행에서 체험한 경험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지닌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행의 장애는 부정적인 현상에 불과

한 것인지, 장애가 발전의 토대가 될 수는 없는지를 살피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첫 번째로 사마타 수행에서 오장애(five hinderances)의 제거를 도왔던 선지들(jhāna

factors)은 더 높은 선정으로 오르기 위해 장애가 된다. 또한 선정(absorption, jhāna)

은 색계(Absorptions, rūpa-jhāna)를 통해 무색계(Immaterial spheres, arūpa-jhānas)

거쳐 상수멸정(Extinction of Feeling and Perception, Saññāvedayitanirodha)까지 상승하

며 구신의 삼행(verbal formation ; vacī-sankhāra, bodily formation, kāya-sankhāra ; mental

formation, mano-sankhāra)도 중지된다. 집중의 순기능이었던 삼행(Three formations)

이 사마타의 상승구조 안에서 모두 장애(obstacle)가 된다. 따라서 장애는 그 자체

가 아니라 수행자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두 번째로 위빠사나 수행의

장애를 살펴보면 먼저 ‘도와 비도의 지견청정(Purification by Knowledge and vision

of What is and What is not Path)’에서 나타나는 심관수염(The 10 Imperfections of

Insight)은 장애다. 하지만 이들을 칠각지(The 7 Factors of Enlightenment)와 비교했을

때 많은 요소들이 같거나 유사하다. 번뇌(Defilements)와 각지(Factors of

Enlightenment)는 이들을 구성하는 요소의 특유한 성질이 아니라, 이들을 활용하는

수행자의 태도에 의해 순기능과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즉, 아무리 좋은 깨달음의

요소라고 할지라도 집착하면 욕망이라는 번뇌로 변질된다. 꾸준한 위빠사나 수

행으로 얻은 특별한 현상도 집착하면 장애다. 따라서 장애를 단순히 수행의 역기

능적 작용에 한정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또한 두려움, 위험 그리고 혐오

의 지혜 역시 단순한 심리적 장애가 아니라 무아로 가기위한 집착의 소멸과정이

다. 따라서 장애는 수행의 방해물인 동시에 발전의 토대가 된다. 오히려 장애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와 수행자 개인의 수준을 배려하지 않는 대중적

프로그램이 수행자를 괴롭히고 있다.

 

Ⅰ. 들어가는 말

 

불교수행에는 장애가 따른다. 수행자는 통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망상에

휩싸이기도 한다. 마치 일상의 삶이 난관의 연속이듯이 불교수행도 다양

한 위기와 장애를 넘어서 발전을 도모한다. 일반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

의 성공배경을 들어보면, 어려움의 극복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때 어려

운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수행

의 장애 역시 성공으로 가기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는 여전히 괴롭다. 오늘날 진행되는 현대인들의 불교수행

은 심리치료의 기법과 더불어 명상의 열풍과 함께한다. 명상은 웰빙, 로하

스 그리고 힐링의 붐을 타고 인간의 행복을 위한 현대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명상은 모두에게 즐거워야하지 괴로워서는 안 된다. 즉, 괴로

움의 수반은 기대하지 않은 명상의 부작용처럼 여겨지게 된다.2) 미국 브

라운대학 자레드 린달(Jared Lindahl)과 윌로비 브리튼(Willoughby Britton)은

1만 시간 이상 불교수행을 경험한 서양인 60명을 대상으로 명상의 부작용

을 연구했다. 조사한 결과 대상자들 모두에게 불안과 두려움, 경련, 불면

증, 과민 반응, 왜곡, 메스꺼움, 환각 등의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59가

지 이상 경험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불교수행 뒤에 숨어있는 장애라는

어두운 면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명상의 피해자들을 어

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3) 그밖에도 심리치

료의 영역에서 다루는 명상의 부작용은 다양하다.4) 로버트 샤프(Robert H. 

Sharf)는 그의 연구 Experience를 통해 명상의 개인적인 경험, 그 자체에 대

한 신뢰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명상의 긍정적인 경험이든 부정적인 경

험이든 체험이라는 것 자체가 객관적인 신뢰성을 얻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한다. 그는 현재 상좌부불교 수행의 지도자들이 전통적인 수행체계 안

에서 각자의 결실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 사이에서 경험과 체

험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위빠사나(Vipassanā) 수행의 경우

지도자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위빠사나를 고양시켜 깨달음의 단계를 인식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단순히 선정(jhāna)의 몰입을 ‘예류과(sotāpatti)’

라고 착각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한다.5) 그는 명상에 대한 이해는 특

권적 소유권을 지닌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 대중적 기준에 의거하여 설명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불교수행이 부작용을 수반하기에

대안을 필요로 하며, 수행자 개인이 체험한 경험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장애는 부정적인 현상에 불과

한 것인가? 수행의 장애가 발전의 토대가 될 수는 없는가? 수행자의 체험

은 대중적으로 객관화시켜야만 하는 것인가? 본고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

작된다. 본고는 빠알리(pāli)불교의 수행론적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를 지닌

장애의 두 가지 기능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6)

1) 전현수⋅김성철(2006), 169 : “우리는 영양공급을 위해 잡초를 뽑아 그 옆에 묻어둔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중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앉아있는 동안 마음에 흔들림이 있더라도,
   그 흔들림이 결국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마음 때문에 괴로워질 일이 없다.
   오히려 마침내는 잡초가 당신의 수행에 기여할 것이므로 잡초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2) 정준영(2014).
3) Lindahl & Fisher(2017), <plosone> (2018.3.1) ; <법보신문> (2018.3.1) ; <qz.com> (2018.3.1).
4) 전현수⋅김성철(2006), 179 ; Epstein(1995), 135 :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 배경의 명
   상가인 마크 엡스타인은 명상으로는 정신치료를 할 수 없음을 주장하며, 명상이 지니고 
   있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한다. : “명상은 인간을 더 수용적이고 덜 방어적인 존재로 만들
   어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치료자의 개입 없이는 마비(paralysis)를 불러일으
   킬 수 있다는 매우 실제적인 위험을 잉태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첫 번째 난제에 봉착
   한다. 명상은 자아에게 성공적인 정신치료에 필수적인 힘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명상만
   으로는 정신치료를 할 수 없다.”
5) Sharf(1998), 105.
6) 여기서 두 가지 기능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에서 나타나는 장애의 기능을 의미함과
   동시에 장애의 역기능과 순기능의 의미 역시 포함하고 있다. 김영일(2018) ; 승영란(2018)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붓다는 깨달음을 위해 중도(中道),

혹은 팔정도(八正道)를 설명한다. 붓다는 팔정도를 ‘여덟 겹(aṭṭhangika)’이

라 표현했고 이들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불교수행에 대해 정학(定學)의 올바른 집중(正定, Sammā-samādhi)과 올바른

마음챙김(正念, Sammā-sati)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

날 사마타(Samatha, 止)와 위빠사나(Vipassanā, 觀) 수행으로 소개된다. 사마

타와 위빠사나 수행에서 나타나는 장애의 역할을 살피기 위해, 본문을 크

게 2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하나는 ‘2. 사마타 수행의 장애’이고 다른 하나

는 ‘3. 위빠사나 수행의 장애’이다. 먼저 2장에서는 ‘장애의 소멸과 선정’,

‘선지와 삼행의 중지’를 통해 사마타 수행에서 나타나는 장애의 다양한 역

할과 기능을 살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정을 돕는 선지(禪支)는 장애의

기능이 없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심관수염과

칠각지’를 통해 진정한 번뇌(kilesa)와 각지(bojjhaṅga)를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 위험 그리고 혐오’의 분석을 통

해 서구학자들이 정의한 불교수행의 부작용이 과연 장애의 어떤 기능인지

살펴볼 것이다.

 

본고는 빠알리(pāli)불교를 중심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 두 가지 수행의

장애뿐만 아니라, 이들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살피는데 집중한다. 사마타

수행의 장애는 주로 경장(經藏, Sutta Piṭaka)을, 그리고 위빠사나수행의 장

애는 주로「위숫디막가(Visuddhimagga, 淸淨道論)」를 중심으로 살피게 될

것이다. 본 연구가 장애의 전반적 의미와 다양성에 대해 세심히 살피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장애(nīvaraṇa)는 선정수행의 방해로, 번뇌는 위빠사나

수행의 장애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본고에서 다루는 장애 연구

는 아사와(āsava)나 낄레사(kilesa)의 세부적 의미파악으로 확대되지 않는

다.7) 수행의 발달에 방해역할을 장애의 일반적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본고는 빠알리(Pāli)문헌에서 나타나는 장애의 수행적 기능과 역할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불교수행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7) 참고) Lee You mi(2009). 

 

Ⅱ. 사마타 수행의 장애

 

빠알리어 ‘니와라나(nīvaraṇa, 障礙)’는 방해의 의미를 가진 ‘vṛ(vṛṇoti)’에서

파생된 중성명사로 ‘방해’, ‘장애’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8) 초기경전 안에

서는 주로 선정(jhāna)의 성취에 방해가 되는 다섯 가지 장애(pañca nīvaraṇāni,

五障礙)로 나타난다. 이들은 1)감각적 욕망(kāmacchanda), 2)성냄(vyāpāda, 악

의), 3)혼침과 졸음(thīna-middha), 4)들뜸과 회한(uddhacca-kukkucca) 그리고 

5)회의적 의심(vicikicchā)이다. 이들은 다양한 비유를 통해 나타난다.상윳

따니까야(Saṃyutta Nikāya)』의 「니와라나왁가(Nīvaraṇavagga)」는 황금을 오

염시키는 다섯 가지 방해물인 쇠, 구리, 주석, 납, 은의 다섯 가지 요소를

다섯 가지 장애와 비유하여 마음을 오염시키는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8) PED. p.420.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을 오염(upakkilesa)시키는 다섯 가지가

있다. 이들에 오염되면 마음은 더 이상 부드럽지 못하고 유연하거나 빛

나지 못하고 쉽게 부러지고 번뇌를 제거(āsavānaṃ khayāya, 漏盡)하는 올

바른 집중(sammā samādhi, 正定)을 얻지 못한다.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은 마음을 오염시킨다. ...[나머지 네 가지 장애

도 반복]”9)

9) SN.V, 92.

 

이들 다섯 가지 장애는 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에 해당하는 올바른

집중의 성취를 방해하고 결국 번뇌의 제거가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따라

서 장애는 필히 벗어나야 할 요소들이다. 「마하앗싸뿌라 숫따(Mahāssapura

sutta)」는 다섯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수행자는 빚을 지고, 질병에 빠져,

감옥에 있고, 노예와 같으며, 사막의 길을 가고 있는 것에 비유한다.10) 초

기경전의 여러 곳을 통해 다섯 가지의 장애는 필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설명된다

10) MN.I, 276.

 

더 나아가 다섯 가지 장애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데도 방해가

된다.「보장가사까짜왁가(Bojjnaṅgasākaccavagga)」의 설명에 따르면11), 

다섯 가지 장애는 마치 맑은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려는 자에게 ‘염료가

섞인[kāmarāga]’, ‘불에 끓는[byāpāda]’, ‘수초로 덮인[thīna-middha]’, ‘바람에

물결치는[uddhacca-kukkucca]’, ‘진흙으로 탁한[vicikicchā]’ 물과 같아서 자신

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yathābhūta) 분명히 보거나 알지 못한다고(napajānati) 

설명하고 있다.

11) SN.V, 63, 140.

 

 “바라문이여, 마음이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감각적 욕망에 정복되어

있으며, 이미 생겨난 감각적 욕망의 제거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

(yathābhūtaṃ na pajānāti)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

고,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양쪽에게 유익한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 [나머지 네 가지 장애도 반복]”12)

12) SN.V, 121, 비고) AN.III, 230.

 

감각적 욕망의 장애는 다양한 염료로 오염된 물에 자신을 비춰보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을 보면서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다섯

가지 장애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수행자의 마음에 오염으로 작용

하여 보지 못하게 만든다.

 

「보장가사까짜왁가」는 이러한 장애의 발생 원인을 아하라(āhāra)로 설

명한다. 아하라(āhāra)는 ‘음식’ 혹은 ‘양분’으로 번역되는 용어로 장애가

발생하기위해서는 장애를 키우는 양분에 원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양분으

로는 여러 가지 표상(nimitta, 表象)과 원인들이 설명되며, 이들의 힘을 얻어

장애가 발생하고, 발전, 확장된다. 수행자가 장애의 표상과 원인들에 이치

에 맞게 주의 기울이지 않으면(ayonisomanasikāra) 장애로 확대 발전하는 것

이다. 이들은 크게 다섯 가지로 1)감각적 욕망의 장애는 ‘아름다운 표상

(subha nimitta)’이 원인이다. 2)성냄은 ‘혐오의 표상(paṭigha nimitta)’이 원인

으로, 3)혼침과 졸음은 무기력, 권태, 나른함, 포만, 태만이 원인이 되며,

4)들뜸과 회한은 불안(avūpasamo)으로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것이 원인, 그

리고 5)회의적 의심은 의심스러운 원인이 되는 현상들(vicikkicchāṭṭhāniyā

dhamma)을 지혜롭게 주의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다.13) 장애의 원인

역시 부정한 요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붓다는 수행자들이 이러한 장애들

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하며 그 방법을 제안한다. 1)감각적 욕망은 ‘부정

한 표상(asubha nimitta)’에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2)성냄에는 ‘사

랑의 마음에 의한 해탈(mettācetovimutti, 慈心解脫)’을 통해, 3)혼침과 졸음

에는 ‘시도의 요소(ārambha dhatu)’, ‘인내의 요소(nikkama dhātu)’, ‘강한노력

의 요소(parakkama dhātu)’를 부여하여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4)들뜸과 회

한(uddhacca-kukkucca)은 마음의 안정(cataso vūpasamo)이 필요하고 5)회의적

의심(vicikicchā)은 상반된 ‘다양한 법들에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면’

장애의 원인이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14)

13) SN.V, 103. 
14) SN.V, 106.

 

더 나아가 경전은 칠각지(七覺支, satta Sambojjhaṅga)의 성취와 장애의 제

거를 설명한다. 칠각지는 깨달음의 요소로 경전 도처에서 나타나며 사념처

의 확립과 더불어 수행자를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요소를 말한다.15) 이들은

①사띠(sati, 念),16) ②법의 고찰(dhamma-vicaya, 擇法),17) ③노력(viriya, 

精進),18) ④희열(pīti, 喜),19) ⑤평안(passaddhi, 輕安),20) ⑥집중(samādhi, 

定),21) 평온(upekhā, 捨)22)이다. 붓다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지혜를 약화시키는 

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고리를 여실히 계발하라고 설

법한다.23)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을 실천함에 있어 이교도들과의 차이점

을 설명한다.24) 특히 들뜸이라는 장애가 발생했을 때는 ②법의 고찰, ③노

력, ④희열의 요소를 계발하면 안 되고, ⑤평안, ⑥집중, ⑦평온의 요소를

계발해야 한다.25) 들뜸의 상태에 노력이나 희열을 계발하는 것은, 큰 불을

끄기 위해 마른 장작을 넣는 것과 같은 행위라는 설명이다. 즉, 깨달음의

요소라고 할지라도 필요에 따라 장애를 키우기도 하고 장애를 제거할 수

도 있다. 들뜸이라는 현상에 노력의 적용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다. 노력은 상황에 따라 장애가 될 수도 있다.

15) DN.II, 79, 83, 120, 303 ; DN.III, 101, 128, 284 ; MN.I, 11, 61 ; MN.II, 12 ; MN.III, 85,
    275 ; AN.I, 14 ; AN.IV, 23 ; SN.I, 54 ; SN.V, 110 ; SN.V, 49, 82 : “깟싸빠여, 내가 바르게
    설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닦고, 잘 알고, 익히면 바로 깨닫고, 열반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된다.”
16) DN.I, 19, DN.III, 31 , 49 ; AN.I, 95 ; SN.II, 231.
17) SN.III, 96 ; SN.V, 111.
18) AN.II, 17.
19) DN.I, 37, 75 ; MN.I, 37 ; SN.II, 30 ; AN.III, 26, 285 ; Vism.94, 143.
20) SN.II, 30, SN.V, 66, 104, 111 ; Dhs. 14, 66 ; MN.III, 86.
21) SN.III, 13 ; DN.I, 209.
22) AN.III, 185.
23) SN.V, 112.
24) 붓다는 다섯 가지 장애가 내적으로 외적으로 10가지로 확장되고 일곱 가지 각지가 내적
    으로 외적으로 14가지로 확장됨을 설명한다.
25) SN.V, 115

 

후대의 주석문헌에 해당하는「위숫디막가」는「뻬따꼬빠데사(Paṭakopaseda)」

를 인용하여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하면 다섯 가지 선지(jhānāṇga)가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고 부순다고 설명한다.

 

 “집중(samādhi)은 감각적 욕망과 함께하지 못하고, 희열(pīti)은 성냄

과, 일으킨 생각(vitakko)은 혼침과 졸음, 즐거움(sukha)은 들뜸과 후회,

그리고 머무는 생각(vicāro)은 회의적 의심과 함께하지 못한다.”26)

26) Vism. 141 : samādhi kāmacchandassa paṭipakkho, pīti vyāpādassa, vitakko 
    thīna-middhassa, sukhaṃ uddhacca-kukkuccassa, vicāro vicikicchāyā ti 

 

「위숫디막가」는 다섯 가지 장애의 요소들이 첫 번째 선정에서 나타날

수 없음을 설명하며, 다섯 가지 장애의 요소가 다섯 가지 선정의 요소와

상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로 상반

된 성격을 지닌다. 각각의 선지가 각각의 장애를 제거하는 요소로서의 역

할을 한 것으로 이들은 앞서 살핀 「보장가사까짜왁가」의 설명과 차이점을

보인다. 물론 주석서는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설명

하나 본고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27) 앞서 「니와라나왁가」를 통해 장애는

사마타를 통해 사선정의 성취로 이끄는 올바른 집중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보장가사까짜왁가」는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기능인

있는 그대로의 통찰을 방해하는 요소로 장애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들은 수행의 과정에서 필히 제거해야할 대상이다.

27) MA.I, 281ff ; DA.III, 778ff. ; 참고) 재연(2010).

 

1. 장애의 소멸과 선정

수행자는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고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따라서

수행자의 마음에 이러한 다섯 가지 장애가 나타나지 않을 때, 맑은 물에 비치

는 자신의 모습을 보듯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

로 보고 알 수 있다. 수행자가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하면 다섯 가지 장애들은

중지하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선정요소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일으킨 생

각(尋, vitakka)’, ‘머무는 생각(伺, vicāra)’, ‘희열(喜, pīti)’, 그리고 ‘즐거움(樂,

sukha)’이다. 장애들이 중지함으로써(止) 수행자는 선정의 요소와 함께 더 깊

은 고요함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까야가따사띠숫따(Kāyagatāsatisutta)」, 「깐다

라까숫따(Kandaraka sutta)」, 「까싸빠상윳따(Kassapasaṃyutta)」, 등의 여러 초기

경전은 다섯 가지 장애의 제거와 첫 번째 선정의 성취를 설명한다.

 

 ‘그는 마음의 번뇌이며 또 지혜를 약화시키는 이 다섯 가지 장애들을

버리고, 

[첫 번째 선정]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불선한 법으로부터

떠나서, 일으킨 생각(vitakka)이며 머무는 생각(vicāra)이며, 벗어남

(viveka)에서 일어난 희열(pīti)과 즐거움(sukha)인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하

며 머무른다.’ 

 

그리고 수행자는 두 번째 선정의 성취에 따라 첫 번째 선정의 요소들

중에 두 가지인 ‘일으킨 생각(vitakka)’, ‘머무는 생각(vicāra)’을 제거한다.

즉, [위숫디막가를 기준으로] 4) 혼침과 졸음 그리고 5) 회의적 의심이라는

장애를 제거했던 두 가지 선정의 요소가 사라져야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색계 사선정의 구조는 점진적으로 상승할수록 장

애를 제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선정의 요소(禪支, jhāna-aṅga)들마저

점진적으로 제거(止)해야만 한다.

 

 [두 번째 선정] 일으킨 생각(vitakka)과 머무는 생각(vicāra)이 가라앉음

(止)으로써 내적인 고요(sampasāda)와 마음이 한곳으로 집중된

(ekodibhāva),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이 없는 집중(samādhi)에서 생겨

나는 희열(pīti)과 즐거움(sukha)을 갖춘,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하며 머무

른다.

 

두 번째 선정의 성취는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의 중지를 의미한

다. 첫 번째 선정의 성취에 도움이 되었던 이들은 두 번째 선정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28) 스티븐 스나이더(Stephen Snyder)와 티나

라무쎈(Tina Rasmussen)은 Practicing the Jhānas를 통해「위숫디막가」를 

준으로 파욱사야도(Pa Auk Sayadaw)의 가르침을 통한 선정의 성취를 설명

한다. 그들은 다음 선정으로 가기 위해서 앞 선 선정의 요소를 버려야 한

다는 것을 강조한다.

28) Shankman(2008), 43.

 

 “선정은 의식의 정화이다. 정화의 단계는 다음 선정으로 들어가기 전

각 선정에서 필요하다. 각 선정이 완성되면서 그 다음 더 높은 선정으

로 향하려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다음 단계의 선정을 위해

앞서 필요했던 선정 요소의 일부들은 마치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여행

을 가는 것처럼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대부분

의 수행자들은 그 다음 더 높은 선정을 위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선정

의 요소들을 놓아버림으로써 만족감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있

는 선정의 요소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이러한 집착은 다음 선정으로

진입하기 전에 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29)

29) Snyder & Rasmussen(2009), 74 ; 정준영(2015), 125.

 

수행자가 더 높은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하는데 있어 ‘일으킨 생각’과 ‘머

무는 생각’은 장애이다. 물론 이들을 장애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경구는 찾

아보기 어려우나 더 높은 선정으로의 진행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장애가

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헤네폴라구나라트나(Henepola Gunaratna)는 초선의

선지인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을 이선의 장애라고 표현한다.

 

 “제2선정을 얻기를 원하는 수행자는 초선에 들어가 그 결함을 고찰해

야 한다. 결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장애에 가까운 결함으로, 다

섯 가지 장애와 유사한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초선은 단지 비교적 가벼

운 보호수단만을 제공한다. 또 다른 결점은 초선에 본래부터 있는 것으

로 위딱까와 위짜라는, 이제 거친 것으로 나타나며, 보다 평화롭고 미세

한 제2선정을 얻기 위해서 제거해야 할 방해물(impediments)이다.”30)

30) Gunaratana(2007), 46 ; 아난타(2005), 63.

 

결국 선정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는 부정적인 의미로 고정되기

보다 수행자의 발달과정에서 작용과 부작용으로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이

러한 선지의 특징은 세 번째 선정에서도 나타난다.

 

 [세 번째 선정] 희열(pīti)이 사라짐으로써(止), 평정(upekhā)과 사띠(sati,

마음챙김, 주시, 마음지킴, 새김, 기억)와 바른 알아차림(sampajāno)으로

머문다. 그리고 몸으로 즐거움(sukha)을 느낀다. 성인들은 이것을 일컬

어 ‘평정(upekhā)과 마음챙김(sati)이 있는 즐거움으로써 머무는 자’라고

말하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하며 머무른다. 

 

수행자는 세 번째 선정을 통해 첫 번째와 두 번째 선정의 요소로 다루었

던 희열을 버린다. 헤네폴라구나라트나는 희열의 제거에 대해 “기쁨[희열]

이 싫증이 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3선정에서 그런 일이 일어

난다. 환희는 흥분에 가깝다. 그 상태는 더 미세한 것인 행복[sukha]이나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 상태[samādhi]에 비하면 거칠다”라고 설명한다.31)

수행자가 더 큰 지복을 경험하기위해 희열을 버리는 것이다. [위숫디막가

를 기준으로] 희열 역시 성냄이라는 장애를 제거하는 순기능적인 요소로

나타났다. 하지만 희열의 유지는 수행자가 더 깊은 선정으로 들어가는 것

을 방해한다. 결국 수행자는 고요함에 역기능적인 희열을 버리고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선정의 진행과정은 첫 번째 선정에서 나타난 선정의 요

소들이 수행의 발전에 따라 점차적으로 상승했다 소멸하는 것을 보여준

다. 첫 번째 선정에서 나타난 즐거운 느낌(sukha)은 두 번째 선정에서 집중

(samādhi)을 통하여 부각되고 세 번째 선정에서 온 몸으로 느껴지는 절정의

시기를 지나 네 번째 선정에서 소멸하게 된다.32)

31) 이재석(2013), 133. 
32) MN.III, 299.

 

 [네 번째 선정] 즐거움(sukha)과 괴로움(dukkha)이 끊어짐(止)으로써 그

리고 예전의 정신적인 즐거움(somanassa)과 정신적인 괴로움(domanassā)

이 제거됨(止)으로써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adukkhaṃ asukhaṃ),

맑고 청정한 평정(upekhā)과 마음챙김(sati)인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하며

머무른다.’33)

33) SN.II, 211 ; MN.I, 347 ; MN.III. 94 ; DN.I, 71.

 

특히 네 번째 선정은 느낌의 다섯 가지 요소들 중에 육체적으로 즐거운
느낌,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의 네 가지 느낌이 모두 소멸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선정
을 성취하면서, 다섯 가지 장애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채웠던 네 가지의 
선정요소들(尋伺喜樂)이 모두 제거된 것이다. ‘일으킨 생각(尋, vitakka)’,
‘머무는 생각(伺, vicāra)’, ‘희열(喜, pīti)’, 그리고 ‘즐거움(樂, sukha)’은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는 주요한 요소인 동시에, 네 가지 선정을 성취하는데
있어서는 장애가 된 것이다.

2. 선지와 삼행의 중지
선정과 선지의 관계를 살펴보면 사마타수행이 ‘가라앉고’, ‘그친다’는 의
미에서 ‘止’로 옮겨졌는지 이해하기 쉽다.「웨다나상윳따(Vedanāsaṃyutta)」
는 색계의 4선뿐만 아니라 무색계와 상수멸에 이어지는 중지의 과정을 설
명하고 있다. 수행자가 두 번째 선정을 얻음으로 구행(口行, vacisaṅkhāra),
네 번째 선정을 얻음으로 신행(身行, kāyasaṅkhāra), 그리고 무색계선정들
을 거쳐 마지막으로 상수멸정을 얻음으로 의행(意行, cittasaṅkhāra)이 중지
한다.34)
34) 정준영(2005)

 ‘비구들이여, 나는 점진적인 행(saṅkhā)의 중지(소멸, nirodha)를 설한다.
첫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언어는 중지(소멸)되었다(niruddhā honti). 두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일으킨 생각(vitakka)과 머무는 생각(vicāra)은
중지되었다. 세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희열(pīti)은 중지되었다. 네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들숨과 날숨은 중지되었다. 공무변처정(空無
邊處定)을 얻은 자에게 물질에 대한 지각은 중지되었다. 식무변처정(識
無邊處定)을 얻은 자에게 공무변처정은 중지되었다. 무소유처정(無所有
處定)을 얻은 자에게 식무변처정은 중지되었다.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
非想處定)을 얻은 자에게 무소유처정은 중지되었다. 상수멸정(想受滅定)
을 얻은 자에게 지각과 느낌은 중지되었다. 번뇌를 제거한 비구에게 탐
심(rāga)은 중지되었다. 성냄(dosa)은 중지되었다. 어리석음은 중지되었
(moho niruddho hoti). … 35)
35) SN.IV, 217, 294.

즉, 선정의 과정을 통해 언어적인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口行), 육
체적인 느낌과 호흡(身行), 그리고 의식의 활동(意行)마저도 점진적으로 중
지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행자가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하면 언어적
기능이 멈춘다. 수행자는 집중에 도움이 되었던 반복적인 언어적 요소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36) 예를 들어, 호흡을 하면서 숫자를 센다거나,
만뜨라의 반복이나 명호를 반복적으로 부르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수행자가 네 번째 선정에 들면 호흡이 중지하기에 호흡을 더 이상
수행대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감각을 관찰하던 수행도 어려워진다.
「쭐라웨달라숫따(Cūḷavedallasutta)」는 담마딘나(Dhammadinnā)와 위사카
(Visākhā)의 대화를 통해 신구의 삼행과 그 구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
한다.

36) 선정의 성취과정은 불교수행의 최종 목표인 탐, 진, 치의 중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마타가 왜 ‘가라앉고’, ‘그친다’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止’
    로 옮겨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존귀한 여인[담마딘나]이여, 그러면 무엇이 몸의 행위(身行, kayasaṅkhāra)

이고, 무엇이 말의 행위(口行, vacīsaṅkhāra)이고, 무엇이 마음의 행위(意

行, cittasaṅkhāra)입니까?” “벗이여 위사카여, 들숨과 날숨이 몸의 행위이

고,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이 말의 행위이고, 지각과 느낌이 마음

의 행위입니다.” “존귀한 여인이여, 그러면 왜 들숨과 날숨이 몸의 행

위이고,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이 말의 행위이고, 지각과 느낌이

마음의 행위입니까?” “벗이여 위사카여, 들숨과 날숨은 몸에 속하며 이

들은 몸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들숨과 날숨은 몸의 행위입니다.

벗이여 위사카여, 먼저 생각을 일으키고 머무는 생각을 하고나서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은 말의 행위입니다. 벗이

여 위사카여, 지각과 느낌은 마음에 속하며 이들은 마음에 묶여 있습니

다. 그러므로 지각과 느낌은 마음의 행위입니다.”37)

37) MN.I, 301.

 

수행자가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하면 언어적 작용은 더 이상 수행의 순기

능이 아니다. 언어적 작용은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하면 몸은 더 이상 수행의 대상이 아니다. 몸이 작용하면 장애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선정을 통한 점진적 중지의 과정은 결국 탐, 진,

치의 중지로 이어진다.38) 본고를 통해 상수멸정을 통한 의식의 중지는 생

략하겠다.39) 앞서 선정의 요소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선정의 발달과 더

불어 선정으로 이끌었던 수행의 방법과 대상마저 장애가 될 수 있다. 선정

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집중의 대상, 기능 그리고 선지는 어느 선정에

서 작용하느냐에 따라 순기능이기도 하고 역기능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

행자의 수준에 따라 장애는 다르게 작용한다.

38) MN.I, 302 ; DN.III, 233 ; MA.II, 365. 
39) SN.IV, 217 ; SN.IV, 294 ; MN.I, 302. 참고) 정준영(2004) 246.

 

Ⅲ. 위빠사나 수행의 장애

 

위빠사나 수행의 진행과정에도 장애들은 나타난다. 「라타위니따숫따

(Rathavinītasutta)」는 칠청정(七淸淨)에 대해서 설명한다. 싸리뿟따(Sāriputto)

와 만따니 뿟따(Mantāṇiputta)의 대화는 일곱 대의 교대수레의 비유를

통해 완전한 열반(parinibbāna)에 도달하기위한 청정한 삶의 점진적 과

정을 설명한다. 이들은 일곱 가지로 1)계청정(戒淸淨, sīla visuddhi), 2)심

청정(心淸淨, citta visuddhi), 3)견청정(見淸淨, diṭṭhi visuddhi), 4)도의청정

(度疑淸淨, kankhāvitaraṇa visuddhi), 5)도와 비도의 지견청정(道非道智見

淸淨, maggāmaggañâṇadassanā visuddhi), 6)도의 지견청정(行道智見淸淨,

paṭipadāñâṇadassanā visuddhi), 그리고 7)지견청정(智見淸淨, ñâṇadassanā

visuddhi)이다.40) 이들 칠청정은 상좌부전통의「위숫디막가」를 통해 수행

의 방법론으로 구체화된다.「위숫디막가」는 이들을 ‘계(戒, sīla)’, ‘정(定,

samādhi)’, ‘혜(慧, paññā)’의 삼학(三學, tisso sikkhā)으로 구분하여 1)계청정

을 계학(戒學), 2)심청정을 정학(定學), 그리고 3)견청정, 4)도의청정, 5)도와

비도의 지견청정, 6)도의 지견청정, 그리고 7)지견청정의 다섯 청정을 혜

학(慧學)의 범주로 구분한다.

40) MN.I, 150.

 

앞서 설명한 사마타 수행과 선정의 성취는 2)심청정으로 정학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본 장에서 설명하고자하는 위빠사나 수행은 다섯 청정

을 통해, 혜청정이라는 이름으로 혜학의 위치를 차지한다.「위숫디막가」

안에서 위빠사나는 5가지 청정은 다시 17가지 지혜로 세분화 된다.

 

혜청정의 시작인 3)견청정은 ⑴몸과 마음을 구별하는 지혜(名色區別知,

nāmarūapariccheda ñāṇa)를 설명한다. 두 번째로 의심을 제거하는 4)도의청

정은 ⑵조건을 파악하는 지혜(緣把握知, paccayapariggaha ñāṇa)로 묘사되고

있으며, 세 번째인 5)도와 비도의 지견청정은 ⑶현상의 무상 고 무아에 대

한 사유지혜(思惟知, sammasanañāṇa) 그리고 ⑷-1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生滅隨觀知, udayabbayānupassanā ñāṇa)가 포함된다.41) 네 번

째로 6)도의 지견청정에는 위빠사나 수행의 절정에 이르게 하는 9[8.5]가

지 지혜가 있다. 이들은 위빠사나에 의해 생긴 번뇌들에서 벗어난 ⑷-2①

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生滅隨觀知, udayabbayānupassanā

ñāṇa), ⑸②소멸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壞隨觀智, bhaṅgānupassanā ñāṇa), ⑹

③두려움으로 나타나는 지혜(怖畏隨觀智, bhayatupaṭṭhāna ñāṇa), ⑺④위험

함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過患隨觀智, ādīnavānupassanāñ āṇa), ⑻⑤싫어함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厭離隨觀智, nibbhidānupassanā ñāṇa), ⑼⑥해탈하고자

하는 지혜(脫欲智, muccitukamyatā ñāṇa,), ⑽⑦성찰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省察隨觀智, paṭisaṅkhānupassanā ñāṇa), ⑾⑧모든 현상에 대해 평온한 지혜

(行捨智, saṅkhārupekkhā ñāṇa)42) 그리고 ⑿⑨진리에 수순하는 지혜(隨順智, 

saccānulomika ñāṇa)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7)지견청정은 ⒀고뜨라부의

지혜와 ⒁~⒄ 첫 번째에서 네 번째 도(道), 과(果)의 지혜로 구성되어 있다.

41) 3)견청정은 정신과 물질을 구분함으로써 괴로움의 진리(苦聖諦, dukkha sacca)를 구분하
    고 4)도의청정에서는 조건을 파악함으로써 일어남의 진리(集聖諦, samudaya sacca)를 구분
    한다. 그리고 5)도와 비도의 지견청정은 바른 도를 강조하면서 도의 진리(道聖諦, magga)
    를 구분한다.
42) ⑧모든 현상에 대해 평온한 지혜는 출정으로 이끄는 위빠사나(出起觀智, vuṭṭhāgāminī
    vipassanā)를 설명하고 있기에 또 하나의 지혜(ñāṇa)로도 볼 수 있다.

 

앞선 구분을 살펴보면 ⑷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가 ⑷-1

과 ⑷-2로 양분되어있다. 하나는 5)도와 비도의 지견청정에 포함되고, 다

른 하나는 6)도의 지견청정에 포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두 가지 성질을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수행자는 ⑷-1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의 영역에서 초보적인 위빠사나의 지혜를 얻는다. 이

러한 초보적인 위빠사나 수행자(āraddha-vipassaka)는 10가지 번뇌(十觀隨染,

vipassanūpakkilesā)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들에 집착하게 되면서 장애를 경

험한다. 하지만 이들이 함께하는 동안에는 무상, 고, 무아의 특성을 온전하

게 관찰을 할 수 없다. 아직 5)도와 비도의 지견청정, 즉 바른 수행의 길인

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에 있기에 5번째 청정에 포함된

다. 그리고 수행자는 10가지 번뇌로부터 벗어난 다음에 다시 ⑷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를 시작한다. 이때는 번뇌를 버렸기에 6)도의

지견청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 ⑷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⑷-1과 ⑷-2로 양분되었다. 이 과

정에서 나타난 장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다. 수행의 긍정적인

요소로 보이는 10가지 현상이 수행자의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라는 것이

다. 본고는 위빠사나 수행에서 다룰 두 가지 장애 중에 첫 번째로 10가지

번뇌(장애)를 살피고자 한다.

 

「위숫디막가」안에서 구분되는 5가지 혜청정을 분량으로 단순화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3)견청정은 6%, 4)도의청정은 6%, 5)도와 비도의 지견

청정은 6%, 6)도의 지견청정은 52%, 그리고 7)지견청정이 30% 정도를 차

지한다.43) 다시 말해 위빠사나 수행의 구체적인 설명은 6)도의 지견청정에

서 주로 다루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7)지견청정은 종성의

변화와 성인의 성취, 즉 수행의 결과적인 측면에 더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위숫디막가」의 혜청정을 모두 살피기에 앞서 6)도의 지견청정을

통해 위빠사나 수행의 두 번째 장애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43) 정신적인 영역을 문헌의 분량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도의 지견청정이 가장
    많은 지혜의 과정들을 포함하기에 그 설명의 분량 역시 방대하다.

 

1. 심관수염과 칠각지

수행자가 무상을 따라 관찰하여(aniccānupassanā) 영원하다는 인식을 버

리고 현상들(dhamma)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는 지혜가 성장하면 ⑷-1일어

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가 나타난다. 수행자는 위빠사나 수행

의 핵심인 무상함에 대해 통찰하고 있기에 초보적인 위빠사나의 지혜를

얻는다.44) 하지만 이 초보적인 위빠사나를 시작한 수행자에게 10가지 번

뇌(upakkilesā)가 일어난다.45) 이들 열 가지 위빠사나의 번뇌는 ⑴진리를 통

찰하는 성스러운 제자, ⑵잘못된 수행을 하는 자, ⑶명상주제를 놓친 게으

른 수행자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부지런하고 지속적으로 위빠사나

를 진행한 수행자에게만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번뇌를 경험하는 자들

은 올바른 위빠사나 수행의 결과로 번뇌를 받아들일 수 있다.46) 10가지

번뇌(十觀隨染)는 ①광명(光明, obhāsa), ②지혜(知, ñâṇa), ③희열(喜, pīti), 

평안(輕安, passaddhi), ⑤즐거움(樂, sukha), ⑥결정(勝解, adhimokkha), 

⑦노력(努力, paggaho), ⑧현기(現起, upaṭṭhāna), ⑨평온(捨, upekkhā), 

⑩욕구(欲求, nikanti)이다. 수행 도중에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집착하거나 미세한 욕망이 마음에 있는가를 잘 살펴서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면 번뇌라고 알아차리고 계속해서 수행을 해 나아가

야 한다. 이러한 번뇌는 대부분이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열심히 병행

한 수행자에게서 나타난다. 따라서 10가지 번뇌를 순수위빠사나 수행의

특징으로 보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47)

44) Vism. 630 ; 대림(2004), 263 : “일어난 정신과 물질의 일어나는 특징, 태어남, 새로 생기는
    모습을 ‘우다야(udaya, 生, 일어남)’라고 관찰하고, 변하는 특징, 부서짐, 무너짐을 ‘와야
    (vaya, 滅, 사라짐)’이라고 관찰한다.”
45) 일창(2013), 279.
46) Vism. 633.
47) 정준영(2010), 568. 

 

 “이러한 위빠사나 경계는 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 [둘 다를] 얻은 자

에게 나타난다. 그에게는 삼매의 증득을 통해서 잠복된 경계들이 일어

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아라한이다’라는 마음을 일으킨다.”48)

48) 대림(2004), 271.

 

수행자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①광명 등을 경험하면 이전에 경험한

바가 없기에 자신이 도(道, magga)에 이르렀고, 과(果, phala)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여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과가 아닌 것을 과라고 여긴다. 그가 도

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과가 아닌 것을 과라고 여길 때 위빠사나 과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5)도와 비도의 지견청정에 포함된

다. 더 나아가 수행자는 광명을 즐기면서 머무르게 된다. 수행자는 수행의

고요함 속에서 어떤 내면의 잡념에도 방해받지 않고 고도의 몰입과 집중

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의식은 기존의 상태와 다른 새로운

지각상태를 맞이한다. 이러한 특별한 상태는 일상적 의식너머의 실제에

대한 통찰을 일으키고 수행자를 가장 고매한 진리의 현상 속에 머물도록

돕는다. 더 나아가 거기서 얻는 경험들은 때때로 치유와 의식의 변환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위험성과 부작용을 수반한다. 이러

한 경우 수행자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기 쉽다. 이러한 상태에 집착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49) 특히, 이들 10가지 번뇌들은 세 가지 집착이라

고 부르는 ①사견(diṭṭhi), ②자만(māna), ③갈애(taṇhā)와 융합되어 30가지로 

확장된다.[10 × 3 = 30] 따라서 숙련되고 슬기로운 수행자는 광명 등이 일

어날 때 ‘나에게 이런 광명이 일어났구나. 그리나 이것은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고, 조건에 따라 일어났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고,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고,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지혜로 이러한 현상

들의 한계를 정한 뒤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50) 이처럼 즐거운 현상을 내려

놓고 이것은 도이고 이것은 도가 아니다라고 지혜로써 구분할 때 6)도의

지견청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49) Kornfield(1993), 122.
50) 대림(2004), 278.

 

우리는 앞서 선정과 장애를 다룸에 있어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고 완

전한 열반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칠각지를 논했다. 칠각지는 일곱 가지로

①사띠, ②법의 고찰, ③노력, ④희열, ⑤평안, ⑥집중, 그리고 ⑦평온이다.

이들을 위빠사나 수행의 10가지 번뇌와 비교하면, 희열, 평안, 노력, 평온

의 네 가지 요소들이 같거나 유사하다. 그렇다면 이들 기제는 위빠사나

수행과정에서 순기능을 하는가 역기능을 하는가. 10가지 번뇌와 칠각지의

차이는 이들을 구성하는 기제의 성질이 아니라, 이들을 활용하는 수행자

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즉, 아무리 좋은 깨달음의 요소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요소에 집착하면 욕망이라는 번뇌로 변질된다. 10가지 번뇌에는

지혜와 즐거움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아무리 좋은 현상과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사견, 자만, 갈애로 움켜지면 장애가 되는 것이다. 사마타와 위빠

사나 수행을 통해서 얻은 특별한 현상에도 집착하면 장애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를 단순히 수행의 역기능적 작용에 한정하는 것은 재고의 여

지가 있다.

 

2. 두려움, 위험 그리고 혐오

10가지 번뇌가 함께하는 동안에는 무상, 고, 무아의 특성을 온전하게 파

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행자는 이들 번뇌로부터 벗어난 다음에 ⑷-2①

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를 다시 시작한다. 여섯 번째 청정

인 6)도의 지견청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열 가지 번뇌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수행자는 일어남과 사라짐에 대한 지혜를 더욱 계발한다. 그 결과, 삼법인

(三法印)의 성질이 더욱 명확해진다. 번뇌들로부터 자유로운 이 지혜를 ‘진

보의 바른 과정에 도달한 위빠사나’(vīthipaṭipannavipassanā)라고도 부른

다.51) 이처럼 바른 길에 들어선 6)도의 지견청정에는 모두 9가지 지혜가

있다. 이들은 ⑷-2①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⑸②소멸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⑹③두려움으로 나타나는 지혜, ⑺④위험함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⑻⑤싫어함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⑼⑥해탈하고자 하는

지혜, ⑽⑦성찰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⑾⑧모든 현상에 대해 평온한 지혜

그리고 ⑿⑨진리에 수순하는 지혜이다.

51) Vism. 640.

 

이들 지혜의 이름을 살펴보면 ⑹~⑻단계에서 ⑹③두려움(bhaya),52) ⑺

④위험(Ādīnava),53) 그리고 ⑻⑤싫어함(Nibbidā, 혐오)54)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수행자가 이 단계에 들면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를 여실히 경험한다.

하지만 이들 용어는 일반적으로 위빠사나 수행 안에서 수행을 통해 극복

해야 할 역기능적 정서들로 설명되고 있다.55) 현상을 경험함에 있어 이들

이 있으면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살피는 과정이 위빠

사나 지혜의 ⑹~⑻단계라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두려움을 여실히

경험하는 것이 탈동일시를 경험하는 단계[⑴몸과 마음을 구별하는 지혜]보

다 훨씬 높은 수준의 위빠사나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 것

이다.

52) MN.I, 17 ; DN.III, 148, 182 ; Dh, 39, 123, 212.
53) AN.III, 256 ; DN.II, 79 ; DN.I, 38.
54) DN.I, 189 ; SN.V, 82, 179, 255, 361 ; AN.III, 83.
55) Gunaratana(1991), 110.

 

이러한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앞선 ⑸②소멸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 단계에서 수행자는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마치

현미경을 통해 바라보듯 명료하게 현상의 생멸을 관찰한다. 결국 모든 소

멸과 해체를 지극히 명료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대상을 바라보자마자

곧바로 각 순간의 끝, 각 경험의 마지막을 여실히 느낀다. 수행자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소멸하듯 녹아내린다. 이 단계에서는 주위의 어떤 것도

확실하거나 가치 있게 보이지 않는다. 모든 차원에서 현상은 소멸과 죽음

에 맞춰진다.56) 아직 존재하고자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수행자는 두려

움을 경험하게 된다.57) 즉, 소멸은 존재의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거듭되는

소멸의 현상을 두려워함에 나타나는 지혜를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지혜’

혹은 ‘두려움을 아는 지혜’라고 한다. 이때 수행자의 마음 자체는 두려움

에 사로잡혀 있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부정적인 정서로 나타나는 두려움

이나 위빠사나의 높은 과정에서 나타나는 두려움은 모두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만, 이들의 차이는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 있다. 위빠

사나 수행단계의 두려움은 내적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소멸의 경

험과 함께 한다. 따라서 외부의 자극이나 관념적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

두려움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로써 두려움이 작용하는 것은

동일한 현상이다. 따라서 같은 성질의 장애라고 할지라도 장애의 수준은

다른 것이다.

56) Dhammaratana(2011). 
57) 일창(2013), 322.

 

⑺④위험함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와 ⑻⑤싫어함을 따라 관찰하는 지혜

를 경험하는 수행자도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된다. 소멸을 여실히 관찰함

으로써 모든 행위(saṅkhara)들이 두려움으로 나타날 때, 수행자는 그 안에

서 어떤 만족도 없는 위험만 본다.58) 모든 관찰의 대상[현상]들은 어디에

서 일어나는지와 무관하게 활기차지 않고 무미건조한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수행자는 불만족스럽다. 위험을 보는 수행자는 그들에 대한 모든

기쁨을 잃고, 그들에 대한 무집착의 태도를 계발한다. 이 순간 수행자는

오로지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움을 바라보게 된다. 수행자는 어떤 것에

서도 기쁨을 발견하지 못한다. 수행자는 모든 현상들을 역겨워하고, 불만

스러워하고, 즐거워하지 않고 싫어하게 된다. 이렇게 싫어함을 따라 관찰

하는 지혜는 이전의 두 가지 지혜[두려움, 위험함]와 같다. 다만, 세 가지

측면들로써 다루어질 뿐이다. 누군가 수행을 통해서 불만족스럽고, 고통

스럽고,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고, 역겨워하고, 불만스러워하고, 싫어한다

면 장애에 빠졌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위빠사나 수행의 과정에서 경험하

는 이러한 장애는 무아(無我)로 가기위한 집착의 소멸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58) MN.I, 436 ; SN.IV, 19.

 

Ⅳ. 마치는 말

 

지금까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에서 나타나는 장애의 순기능과 역기

능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사마타 수행의 장애를 통해서는 장애

가 선정의 성취를 통해 제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의 제

거를 도왔던 선지들도 더 높은 선정의 단계로 오르기 위해서는 장애가 되

었다. 특히 사선정을 성취하면 초선을 성취하면서, 오장애(五蓋)를 제거하

고 그 자리를 채웠던 네 가지 선지들이 모두 제거된다는 점이다. ‘일으킨

생각’, ‘머무는 생각’, ‘희열’, 그리고 ‘즐거움’은 오장애를 제거하는 순기능

인 동시에, 사선정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는 역기능적 장애가 되었다. 사마

타 수행에서의 장애는 단순한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며 발전의 토대가 되

었던 선지도 장애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선정은 색계를 통해 무색계를 거

쳐 상수멸정까지 상승하며 구신의 삼행의 중지도 함께 진행되었다. 집중

의 도움이 되었던 언어적 행위가, 호흡이 모두 멈추는 것이다. 따라서 선정

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집중의 대상, 기능 그리고 선지는 어느 선정에

서 작용하느냐에 따라 순기능이기도 하고 역기능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

행자의 수준에 따라 장애는 다르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행자의 체험을 대중적으로 객관화시켜야 한다는 점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두 번째로 위빠사나 수행의 장애를 살펴보았다. 먼저 심관수염과 칠각

지를 통해 위빠사나 지혜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도의 청정’으로의

진행을 방해하는 위빠사나 수행의 10가지 번뇌는 장애이다. 하지만 이들

은 칠각지와 비교했을 때 네 가지 요소들이 같거나 유사했다. 번뇌와 각지

는 이들을 구성하는 요소의 특유한 성질이 아니라, 이들을 활용하는 수행

자의 태도에 의해 결정되었다. 즉, 아무리 좋은 깨달음의 요소라고 할지라

도 집착하면 욕망이라는 번뇌로 변질되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얻은 특별한 현상에도 집착하면 장애다. 따라서 장애를 단순히 수

행의 역기능적 작용에 한정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59) 또한 두려움,

위험 그리고 혐오의 지혜 역시 부정적인 정서에 시달리는 장애의 경험이

다. 하지만 이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위빠사나 과정으로 단순한 심리적

위축이 아니라 무아로 가기위한 집착의 소멸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59) 이현철(2006), 107 : 모든 영성생활은 수많은 난관의 연속인데 그것은 모든 일상생활
    역시 난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컬어 붓다는 ‘필연적인 존재의 고통’이라고 표
    현하셨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에서는 그 필연적인 난관들이 우리의 깨달음, 깊
    은 지혜, 인욕, 평정 그리고 자비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이런 안목이 없다면 우리는 마치
    무거운 집을 짊어진 보병이나 황소처럼 그저 떠안고 가야할 것이다.

 

따라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과정에서 현상을 통해 경험하는 장애

를 단순히 그 언어적 의미로 파악하기는 부족하다. 장애의 성질에 따라

순기능과 역기능으로 구분하는 것 역시 장애를 온전하게 파악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장애는 고정된 이름이 아니라 수행의 단계와 상황에 따라

장애라고 불리는 것일 뿐이다. 사마타 수행에서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

각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요소지만 동시에 이선의 성취에 장애가 된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나타나는 심관수염도 깨달음의 요소와 비교될 수 있는

기제들이지만 집착을 하는 순간에 잘못된 길로 이끄는 장애에 불과하다.

두려움이나 위험,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도 역기능적 정서이지만 소

멸이라는 현상의 성질과 비교할 때는 높은 단계의 체험이 될 수 있는 것이

다. 장애는 수행의 방해물인 동시에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장

애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와 수행자 개인의 수준을 배려하지 않

는 대중적인 프로그램이 수행자를 괴롭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