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율장

大天五事로 본 교단분열에 대한 再考 - 불타와 아라한의 相異를 중심으로 -/박상갑

실론섬 2020. 1. 27. 17:00

한국선학 제35호

大天五事로 본 교단분열에 대한 再考 - 불타와 아라한의 相異를 중심으로 -

박상갑/(지일,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

 

[목 차]

Ⅰ. 머리말

Ⅱ. 교단분열의 근원적 발생 요인

    1. 대천 인물의 전기

    2. 五事의 각 항목별 내용

    3. 아라한의 聖者觀에 대한 한계

Ⅲ. 불타와 아라한에 대한 상좌부, 대중부의 異論

    1. 불타와 아라한의 相異

    2. 대중부 계통의 교상학적 견해

    3. 상좌부 계통의 교상학적 견해

Ⅳ. 맺음말

 

◈ 국문 요약문

불교사에서는 불교교단이 上座部와 大衆部로 분열된 것을 근본분열로 보고

이를 ‘2부 분열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本 分列의 원인을 밝혀볼 수 있는 자료로는

남전의 『디파밤사(Dīpavaṃsa)』와 『마하밤사(Mahāvaṃsa)』, 북전의 『十誦律』, 

『異部宗輪論』과 『大毘婆沙論』 등이다. 야사 비구의 十事非法事件(십사비법사건)이 

성문 비구의 계율 해석에 대한 논쟁이라면 大天의 五事事件은 아라한의 자질과 깨침에 

대한 적법의 이론에 있다.

 

이 중에 대천 5사는 대천이 주장한 ①餘所誘, ②無知, ③猶豫, ④他令入, ⑤道因

聲故起의 다섯 가지 항목으로서 성문 4향4과 최고의 무학도를 이룬 無學聖者라고

인식되어 있는 阿羅漢에 대해 해탈과 깨달음 그리고 수행의 온전성 등에 대해

불합리한 아라한의 자질과 깨달음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자각과 성찰을

촉구하며 現法樂住에서 벗어나 불타가 구족한 아라한의 경지인 깨달음의 無邊聖

諦를 성취하는 방향으로 向上一路할 것을 제기한다.

 

이러한 주장으로 말미암아 교단 내에서는 반론과 추종의 의견 대립이 나타나고

이로 기인하여 마침내 교단은 반론의 상좌부와 추종의 대중부로 兩極化

분열되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異部宗輪論.이부종륜론』과 『大毘婆沙論.

대비바사론』에 의거하여 대천 5사의 항목적 고찰을 통해 밝혀본 바에 의하면 

餘所誘는 아라한의 자질에 관한 문제로 제기된 반면에 無知는 아라한의 깨달음에 

대한 불완전함과 미숙함 등에 대해 그 이유를 제기하며 자성을 통한 수행의 진정성을 

확보하는데 밀접한 관련성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분열된 二部는 상호간에 敎相學的 견해와 사상의 입장 차이도 크게

다른 차원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상좌부의 佛身觀에 있어서는 一佛思想과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色身의 측면에서 설명하며, 解脫觀은 아라한의 해탈과

불타의 해탈을 同一視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해탈의 성격과 형식에

치우쳐 해탈의 내용에 있어서까지도 불타의 해탈과 同位的인 관점으로 보고 있다.

그런 반면에 대중부의 불신관은 多佛思想과 超人化된 법의 당체로서 法身으로

보고 있으며 해탈관의 입장은 무애자재한 無爲解脫(무위해탈)로 주장한다.

 

특히 阿羅漢의 修證功果와 관련해서 상좌부에서는 阿羅漢有退義를 주장하는데,

이는 『阿毘達磨俱舍論』에서 밝히고 있는 六種 阿羅漢 가운데 時解脫에 해당하는

五種 아라한과 관련성을 맺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 반면에 대중부는

阿羅漢無退義를 견지하는 입장으로서 역시 6종 아라한 가운데 不時解脫阿羅漢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진다.

 

이처럼 불교 교단사에서 아라한에 대한 위상과 청신한 수행의 표상이 일반적

통례로 각인된 사고의 범주를 넘어 廻小向大的 가치 접근 차원에서 불타의 본질과

깨달음의 진성에 대한 宗要를 파악하고 이점을 추구하며 부응하려는 입장과

관점은 대천의 주장으로부터 시작되어 부파 간에도 다른 차원의 교학체계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大乘佛敎 발생 전개 과정과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아져 이에 대한 폭 넓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Ⅰ. 머리말

 

불교교단이 上座部와 大衆部로 최초 근본 분열된 내용을 전하고 있는 문헌으로는

남전의 『디파밤사(Dīpavaṃsa)』와 『마하밤사(Mahāvaṃsa)』, 그리고 북전의 

이부종륜론』과 『部執異論』, 그리고『阿毘達磨大毘婆沙論』등 이외에 내용이 

비슷한 여러 문헌이 있다. 남전문헌에 의하면, 불멸 후 100년경에 베살리에 있는 

비구들의 자율적 계율관에 대해 야사 비구가 이의를 제기한 10가지 조항에 대해 

계율 수지에 보수적인 견해와 진보적인 견해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번져 결국 교단이 

상좌부와 대중부인 근본 2부로 분열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전문헌에서는 

대천이 아라한에 대한 자질 문제와 깨달음의 한계성 등에 이의를 제기한 五事에 의해

교단이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문헌은 근본이부

분열의 시기에 있어서는 동일하게 불멸 100년경으로 전하고 있다.

 

그런데 근본 2부 교단 분열의 원인에 있어서는 상호문헌 간에 확연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데, 남전문헌에서는 계율관에 대한 찬·반 논쟁의 대립을 분열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는 반면, 북전문헌에서는 아라한의 자질과 자격에 대한

적법성 등을 그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교단분열에 대한 원인을 놓고 볼 때, 남전문헌은 출가수행자와 관련된

내용으로서 출가교단 내의 문제로 축소해 볼 수 있지만 북전문헌 속에 드러난

교단분열의 원인은 비단 출가교단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재가불자에게까지도

그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이는 종교 신앙적 관점에서 볼 때 阿羅

漢은 중생의 복전이고 수행의 완성을 이룬 성자로서 추앙되고 성문 제자로서

수행의 목표에 해당함과 동시에 열반을 성취한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을 나타내는

초기불교의 중심인물이기에 그러하다. 이뿐만 아니라 불타 재세시에는 아라한의

명호가 불타와 동등하게 사용되었던 것이기에 아라한에 대한 존엄성은 감히 불설

언급의 경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천이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자신도

아라한이면서 5사에 의한 아라한의 자질과 한계성 극복을 위한 문제 제기를

했는가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부종륜론』과 『대비바사론』을 중심으로 大天五事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대천의 의도적 핵심이 무엇이며 아라한의 자질과

깨달음의 한계성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며, 특히 불타와 아라한의

상이점이 어떠한가를 대중부와 상좌부의 견해에 따라서 살펴보려 한다.

 

그간 근본 2부 분열에 관한 연구 발표는 있었지만 불타와 아라한의 상이점과

부파 간 견해의 차이점 그리고 대천의 5사 주장, 그 의도와 목적 등에 관한 연구는

활발히 시도된 바가 없어 보인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재고찰을 해봄으로써 더 한층 불교교학 체계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Ⅱ. 교단 근본분열의 요인

 

1. 大天 인물의 전기

불교교단의 근본 2부 분열과 관련하여 전승하고 있는 문헌은 다양하다. 그 중

중요도에 따라 간추려보면 남전문헌으로는 『디파밤사(Dīpavaṃsa)』와 『마하밤사

(Mahāvaṃsa)』, 등이 있고, 북전으로는『異部宗輪論』과『部執異論』,『大毘婆沙論』,

『四分律』,『十誦律』,『發智論』 등이 있다.

 

남전문헌 중 『디파밤사』와 『마하밤사』에 의하면 불멸 후 100년, 옛 인도 동부 毘

舍離 지역에서 비구 발지자(Vajjiputtaka) 등이 새로운 주장을 담은 10조의 계율

[十事]1)를 주장하였다. 교단에서는 야사(耶舍)를 필두로 하여 여러 장로비구가

이를 반대하였고, 이 십사의 계율에 대한 합법성 여부를 자세히 검토하기 위해 제

2결집이 소집되었으며 700명의 비구가 모여 10사를 非法으로 단정지었다고

전한다.2) 이와 같은 내용은 북전문헌인『十誦律』을 비롯한 한역 광율 등에서 10

사비법에 대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1) 十事非法은 다음과 같다. ①염정(鹽淨), ②지정(指淨), ③취락간정(聚落間淨), ④주처정(住處

   淨), ⑤수의정(隨意淨), ⑥구주정(久住淨), ⑦생화합정(生和合淨), ⑧수정(水淨), ⑨불익루니사

   단정(不益縷尼師壇淨), ⑩금은정(金銀淨).

2) 崔恩英,「大天五事 論爭에 關한 考察」, 서울, 假山學報 第十一號, 2003, pp.100~101.

 

한편 북전문헌인『이부종륜론』과『대비바사론』에서는 불멸 후 100년경에 대천에

의해 제기된 아라한의 자질 문제와 깨달음에 대한 다섯 가지 精粹性 여부에 대한

문제로 인해 교단이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大天이 五事3)

를 제기한 내용은 ①아라한도 천마에 유혹되면 부정이 흘러나올 수 있다. ②無知,

③의혹이 남아 있고, ④타인에 의해 아라한이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⑤성도는

괴롭다고 소리를 내어야 현기한다 라는 것이다.

3)『異部宗輪論』(大正藏 권49, p.15a). 餘所誘無知 猶豫他令入 道因聲故起 是名眞佛敎.

 

이러한 두 사건을 두고 불교계에서는 교단분열 근본 2부 사건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교단분열을 초래한 5사 사건의 주인공인 대천인물에 대한 전모를 알

수 있는 문헌은 북전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대천인물의 행적은 문헌마다

체계적이지 못하고 별도의 내용으로 설명되고 있다.

 

북전문헌을 위주로 살펴보면,『이부종륜론』에서는 2명의 대천 인물이 발견된다.

첫째는 불멸 후 100년경에 태어난 대천이고, 둘째는 불멸 후 200년경에 태어나

대중부로 출가한 인물로 전해진다. 전자의 대천은 5사를 주창한 인물이 되어

불교교단을 상좌부, 대중부로 근본 분열시킨 인물로 설하고 있고, 후자의 대천은

또 다른 동명인일지도 모른다. 대천 이름이 등장하는 문헌은『이부종륜론』

외에도『大毘婆沙論』,『部執異論』, 『十八部論』,『善見律毘婆沙』등 북전문헌

곳곳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부집이론』과『십팔부론』에 거론되는 대천

인물은『이부종륜론』에서 불멸 후 200년경에 등장하는 인물과 시기적으로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십팔부론』과『선견율비바사』에서는 대천을

마하제바(摩訶提婆)라고 전하고 있다. 한편『이부종륜론』과『대비바사론』에서는

다른 문헌과는 달리 대천 이름으로 거론하면서 불멸 100년경에 상좌부, 대중부로

불교교단을 분열시킨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이부종륜론』에서는 지말 분열의

부파 명칭까지도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한편『대비바사론』에서는 대천인물에 대해

출생에서부터 다비까지 생애에 대한 행적을 상세히 설하고 있다. 4)

4)『阿毘達磨大毘婆沙論』(大正藏 권27, pp.510c-511c). 已說五種惡見自性及彼對治. 等起云何. 謂

   大天因緣是此等起. 昔末土羅國有一商主. 少娉妻室生一男兒. 顔容端正與字大天. 未久之間商主

   持寶遠適他國…便用其言火遂炎發. 須臾焚蕩俄成灰燼. 暴風卒至飄散無遺. 故彼是前惡見等

   起.諸有智者應知避之.

 

同論에서는 대천 인물이 출가 전에는 상당히 큰 無間業(무간업)을 지었던 인물로

설명되지만, 이 때문에 무간업을 참회하고 그 죄업을 소멸하기 위해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후에는 阿羅漢이 되었지만 아라한의 자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5사 사건을 계기로 교단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근본분열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설한다. 이처럼『대비바사론』에서 전하는 대천 인물의 전기와『이부종륜론』에서의

대천 인물이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이부종륜론』은 대천5사의 항목만

나오지만『發智論.발지론』5)에서는 대천 이름은 없고 이와 다른 양상으로 5사 내용만

전하고 있다. 또『부집이론』에서도 대천의 생애는 없을 뿐만 아니라 5사의 항목도

다르게 표현하고 대천을 外道라고 하며 외도가 五事를 五種因緣6) 등으로

설하였다고 했다.

5)『發智論』(大正藏 권26, p.956b). 諸起此見有阿羅漢. 天魔所嬈. 漏失不淨. 此於五見. 何見攝. 見

   何諦. 斷此見耶 …… 答諸阿羅漢. 無障無背. 現量慧眼. 身證自在. 邪見攝. 見道所斷. 諸起此見.

   道及道支苦言所召. 此於五見. 何見攝. 見何諦. 斷此見耶. 答非因計因. 戒禁取攝. 見苦所斷.

6)『部執異論』 (大正藏 권49, p.20a). 此四大衆. 共說外道所立五種因緣. 五因緣者. 如彼偈說.

 

大天의 또 다른 행적을 보면, 대천이 머물고 있었던 곳은 남인도 안드라

지방이라고 전하고 있다. 안드라는 제다산이 있는 곳이며 『이부종륜론』에서는

불멸 200년경에 제다산에서 대천이 살아 5사를 주창하여 제다산부를 세웠다고

전한다. 제다산과 안드라의 지역적 관계는 남방지역으로서7) 이 지역은 그 당시

경제, 문화, 상업, 교역의 요충지로 거점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북전문헌인『선견율비바사』에 의하면 대천은 마잔티카와 함께 마힌다에게

 

구족계를 수여한 스승으로 되어있으며, 마히사만달라에 파견되어『천사경(天使

經)』을 설할 때에 4萬人이 道의 결과를 얻었다8)고 전한다. 마히사만달라 지방은

남방에 속하므로 안드라 지역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선견율비바사』

에서 전하는 내용으로 본다면 아쇼카왕 시대이지만『이부종륜론』에서 설하는 불멸

100년경 아쇼카왕하고는 시대적 차이가 있어 맞지는 않는다.

7) 히라가와 아키라, 이호근 역,『인도불교의 역사』, 민족사, 2004, p.112.

8)『善見律毘婆沙』(大正藏 권24, p.685b). 「大德摩訶提婆,往至摩醯娑慢陀羅國. 至已,爲說 《天

   使經》, 說竟,四萬人得道果,皆悉隨出家.」 而說偈:「摩訶提婆,有大神力,得三達智,到摩

   醯娑. 爲說 《天使經》,度脫諸衆生,四萬得天眼,皆悉隨出家.

 

이처럼『대비바사론』과『이부종륜론』 그리고『선견율비바사』등에서 등장하는

대천의 행적은 다양한 시대와 거주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규정하여 대천 인물과 근본 2부 분열의 중심인물로 단정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그러나 히라가와 아키라가 대천 인물에 의해 5사가 일어났다고 하는 가능성9)과 6

세기 대승불교의 학자 바브야Bhavy가 기술한 正量部의 전승에서는 근본분열의

원인으로 역시 五事를 언급하고10) 있듯이 북전문헌인『이부종륜론』과『대비바사론』

에서 근본 2부 분열 사건의 인물로 대천이 묘사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북전문헌상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대천이 근본분열의 원인 인물로 도외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9) 히라가와 아키라, 앞의 책, p.106.

10) 후지타 코오타츠 외, 권오민 역, 『초기·부파불교의 역사』 서울, 민족사, 1989, p.231.

 

2. 五事의 각 항목별 내용

『이부종륜론』에서는 대천의 5사 주장에 의해 上座部, 大衆部 양 부로 분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문헌에서는 五事가 분열의 원인이라는 것은 밝히고

있으면서도 실제 5사의 내용에 대해서는 상세히 기술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5사에 대해서도 이 문헌의 이역인『부집이론』에서는 그 명칭을 五種因緣, 五因緣,

五處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설일체유부의 전적인『대비바사론』에서는 대천의 5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대비바사론』을 중심으로 5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餘所誘’11) 아라한인 대천이 꿈속에서 부정을 흘린 것에 대하여 제자가 이

유를 묻는 질문에 아라한도 천마의 유혹을 받으면 어쩔 수 없이 부정이 흐를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번뇌누실과 부정누실

로 나누어 설명하며 아라한은 부정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내용이다.

11)『阿毘達磨大毘婆沙論』(大正藏 권27, p.511a). 王聞召請數入內宮. 恭敬供養而請說法. 彼後旣出

    在僧伽藍. 不正思惟夢失不淨. 然彼先稱是阿羅漢. 而令弟子浣所汚衣. 弟子白言. 阿羅漢者諸漏

    已盡. 師今何容猶有斯事. 大天告言. 天魔所嬈汝不應怪. 然所漏失略有二種. 一者煩惱. 二者不

    淨. 煩惱漏失阿羅漢無. 猶未能免不淨漏失. 所以者何. 諸阿羅漢煩惱雖盡. 豈無便利涕唾等事.

    然諸天魔常於佛法而生憎嫉. 見修善者便往壞之. 縱阿羅漢亦爲其嬈故我漏失. 是彼所爲. 汝今

    不應有所疑怪. 是名第一惡見等起.

 

2) ‘無知’12) 아라한에게도 無知가 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두 종류

의 무지가 있음을 밝힌다. 하나는 染汚無知(염오무지)이고 다른 하나는 不染汚無知

(불염오무지)이다. 염오무지는 이미 아라한이 되는 경지에서 소멸된 상태이지만 아직도 

일체 대상에 미혹한 번뇌의 불염오무지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12)『阿毘達磨大毘婆沙論』(大正藏 권27, p.511a). 又彼大天欲令弟子歡喜親附. 矯設方便次第記別

    四沙門果. 時彼弟子稽首白言. 阿羅漢等應有證智. 如何我等都不自知. 彼遂告言. 諸阿羅漢亦有

    無知. 汝今不應於己不信. 謂諸無知略有二種. 一者染汚. 阿羅漢已無. 二者不染汚. 阿羅漢猶有.

    由此汝輩不能自知. 是名第二惡見等起.

 

3) ‘猶豫’13) 아라한은 스스로 깨달음의 성문4과를 성취하여 무학도인 聖慧

眼(성혜근)을 구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행의 완성이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에는 두 가지 의혹의 번뇌가 남아 있는데 隨眠性疑와 處非處疑이다. 이 중 수

면성의는 아라한 과위에서는 소멸되지만 처비처의 지혜 능력이 아직은 성취되

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13)『阿毘達磨大毘婆沙論』(大正藏 권27, p.511a). 時諸弟子復白彼言. 曾聞聖者已度疑惑. 如何我等於

    諦實中猶懷疑惑. 彼復告言. 諸阿羅漢亦有疑惑. 疑有二種. 一者隨眠性疑. 阿羅漢已斷. 二者處非

    處疑. 阿羅漢未斷. 獨覺於此而猶成就. 況汝聲聞於諸諦實能無疑惑而自輕耶. 是名第三惡見等起.

 

4) ‘他令入’14) 아라한은 자기 스스로 깨달음이 성취되어 스스로 아라한 과위에

있다고 할 수는 없고 스승에 의해서만이 아라한이 되었음을 인정받을 수 있다

는 것이다.

14)『阿毘達磨大毘婆沙論』(大正藏 권27, p.511a). 後彼弟子披讀諸經. 說阿羅漢有聖慧眼. 於自解脫

    能自證知. 因白師言. 我等若是阿羅漢者應自證知. 如何但由師之令入都無現智能自證知. 彼卽

    答言. 有阿羅漢但由他入不能自知. 如舍利子智慧第一. 大目乾連神通第一. 佛若未記彼不自

    知.況由他入而能自了. 故汝於此不應窮詰. 是名第四惡見等起.

 

5) ‘道因聲故起’15) 아라한은 이미 苦諦에 대해 깨달음의 혜안이 열리어 있는

경지인데 대천이 어젯밤에 괴롭다고 외친 것에 대해 제자가 이유를 묻자 아라

한이라도 괴로움에 대해 ‘괴로움이다.’ 라고 탄식함으로써 聖道가 생긴다고 하

였다.

15)『阿毘達磨大毘婆沙論』(大正藏 권27, p.511a). 然彼大天雖造衆惡. 而不斷滅諸善根故. 後於中夜

     自惟罪重. 當於何處受諸劇苦. 憂惶所逼數唱苦哉. 近住弟子聞之驚怪. 晨朝參問. 起居安不. 大

     天答言. 吾甚安樂. 弟子尋白. 若爾昨夜何唱苦哉. 彼遂告言. 我呼聖道汝不應怪. 謂諸聖道若不

     至誠. 稱苦召命終不現起. 故我昨夜數唱苦哉. 是名第五惡見等起.

 

위의 五事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2), 3)항목은 아라한으로서의 성문4과를

거치고 無學道를 증득하였지만 아라한으로서의 자질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2)의 경우는 아라한의 깨달음과 관련해서 아라한이

견혹, 사혹을 다 소멸한 灰身滅智의 무여열반 경지에 있는 것으로 존중되는데

있어 아라한의 청명성이 미흡하다는 것과 관련하여 시선을 끌고 있다. 4), 5)는

아라한이 孤調解脫되었다 하였던 것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心解脫, 慧解脫의 자유

경지를 성취하지는 못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5사의 내용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대승불교 발생에 영향을

미치게 한 단서가 당시의 불교도들에게도 어떠한 형태로든 작용됐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왜냐하면, 5사의 내용을 이타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현실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사실적인 가치판단에 한계와 취약점을 초월하여

이상적 가치판단과 깨달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현실로부터 깨달음의

자유로움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사상적 구조 변화를 선호한 불교도들과 연관되어 접근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현실도피가 아닌 현실과 사실적 판단을 넘어 이상적 가치관을 갈망한

그들에겐 변화된 불교가 필요한 것이었을 것이며, 이로 인한 대승불교 발생 원인과

그 관련성을 접근시켜 본다면 그냥 看過할 문제는 아닐 성싶다.

 

3. 아라한의 聖者觀에 대한 한계

앞장에서 大天은 5사를 통해 아라한의 聖者觀에 대해 지적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초기불교에서 성문승은 아라한이 수행의 결실이며 생사해탈을 이루고 윤회를

단멸하여 후세에 업보를 받지 않은 완전한 해탈과 열반을 성취한 성자로 추앙받는

인물로 존중 한다. 철저히 개인의 수행완성도를 성취한 아라한의 증과인 열반의

경지로 표현되는 정형구로서 초기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치었으며 다시는

후세의 업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16)

16)『增壹阿含經』(大正藏 권29, p.127c). 彼云何名爲無餘涅槃界?於是,比丘盡有漏成無漏,意解

    脫, 智慧解脫,自身作證而自遊:生死已盡,梵行已立,更不受有,如實知之,是謂爲無餘涅

    槃界. 此二涅槃界,當求方便,至無餘涅槃界.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위 경문에서 알 수 있듯이 아라한은 3毒인 탐진치 번뇌가 소멸하고 無漏(무루)가

이루어져 생사해탈을 이룬 수행의 완성자로 표현하고 있음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수행의 덕성과 기풍이 일반 범부와는 전혀 다른 것이고, 또한 초보

성문 계위에 들어서서 수행하는 수행자와는 질적으로 다르기에 해탈자라고

하였다. 아라한에게는 해탈의 경지를 두 가지로 표현한다. 하나는 心解脫이고

다른 하나는 慧解脫이다.17) 이것은 아라한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표현이며

아라한으로서의 진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초기불교에서 佛陀와

동일한 명칭으로 사용될 수 있게 된 연유도 번뇌로부터 해탈된 성자로 보았기

때문에 如來十號에서도 아라한은 곧 불타와 같이 존귀한 사람으로서 동위하였다.

17) 심해탈과 혜해탈에 설명함에 있어 심해탈은 번뇌를 제멸한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 것이고,혜해

    탈은 지혜의 성취를 강조한 의미로 이지적인 의미를 갖는다. 李弼元,「阿羅漢の硏究」 佛敎大學

    大學院 文學硏究科 仏敎學 專攻 博士學位 論文, 2007, p.31에서 인용.

 

그러나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여래와 아라한은 엄연히 구별되고 불타는

여래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아라한은 聖者로 표현된다. 이때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하고 배움의 지위에 있는 이들은 有學聖者이고 배움이 완성된

아라한은 無學聖者로 표현된다. 즉, 4향4과의 길로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를

성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4향4과를 향하여 나아가는 여덟 사람을 표현할 때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예류자와 예류과인 깨달음의 경지로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자, 일래자와

일래과인 깨달음의 경지로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자, 불환과와 불환과인

깨달음의 경지로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자, 아라한과 아라한인 깨달음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자.”18)

18) AN Ⅳ p.204, p.292, p.372; DN Ⅲ p.255; Ud p.56; Pug p.73 .

 

이상과 같이 정리하여 볼 때 분명히 아라한은 무학성자로서의 인격을 갖춘

자이며 聖諦를 성취하였고 聖道의 길에 완전히 도달한 聖人으로 초기불교 교단

내에서는 覺者로 숭배되었다. 그럼에도 대천이 아라한의 자질과 수행의 증득에

대해 성자인 아라한으로서 부족함과 결점이 있다는 것을 제기한 5사의 내용과

관련시켜 살펴볼 때 이점은 종래의 아라한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와는 정면으로

충돌된다. 보수적인 견해에서는 아라한을 見道, 修道, 無學道를 이룬 성자로 보고

있음에 반해 대천5사의 주장은 聖者에 대한 자질적 부족함과 覺知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대천 자신도 아라한이면서 아라한에 대해 성자로서 구족해야 할 자질에 대해

문제와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5사 사건은 어쩌면 대천 자신이 자기 체험을 통해

佛陀와 비교함으로써 아라한으로서 증득하는 깨달음에 한계가 있음을 통감하고

불타의 지혜와 공덕으로 향하여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의 성자인

아라한이 되며 수행의 완성을 이루는 해탈자가 되는 것으로 간주해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조명해 볼 때 아라한으로서의 간단없는 수행을 통해

아라한의 舊態依然한 보수적 自相을 벗어버리고 아라한을 초월하는 깨달음의

이상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이 대천의 입장이라고 보겠다.

 

Ⅲ. 불타와 아라한에 대한 상좌부, 대중부의 異論

 

1. 불타와 아라한의 相異

아라한은 초기불교에서 성문승에게는 수행의 출발이면서 목표이며 깨달음의

인격체를 갖춘 성인의 경지로 불타와 같은 명호를 사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불타는 처음 성도 하고 난 후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5비구에게 법을 설함으로써

최초 6인의 아라한이 되었다.19) 라고 하였다. 또한 여래십호에서는 여래와 동일한

명칭으로 표현되고 있다.20) 이처럼 불타와 동등하게 아라한을 표현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히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점에 대해선 앞장

(Ⅱ-3)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아라한은 심해탈, 혜해탈을 성취한 무학성자 이다.

따라서 해탈의 力用은 불타의 법용에 포함되고 열반 성취자인 성자에 속하므로

불타의 覺知 경지에 한 부분적인 法用으로 성취되어져 있음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아라한을 불타와 함께 보는 입장일 것이다. 이 점을 상좌부 계통인 법장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9) Vinayapiṭka vol Ⅰ. p.14.

20)『雜阿含經』第20卷.(大正藏 권02, p.141c), 南無南無佛世尊, 如來, 應供, 等正覺, 能離欲貪諸

    繫著, 悉能遠離貪欲縛及諸見欲, 淨根本.

 

“불타와 2승은 해탈이 같지만 성도에는 차이가 있다.”21)

21)『異部宗輪論』(大正藏 권49, p.17a). 佛與二乘解脫雖一. 而聖道異

 

해탈은 아라한에게 심혜탈, 혜해탈인데 불타에게도 해탈은 갖추어져 있다.

오히려 아라한이 성취한 해탈보다 더 큰 법력을 나타내는 解脫知見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차별을 하지 않고 해탈의 능력정도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이를

수용하고 이해한다면 상좌부 계통인 법장부가 주장하는 해탈관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불타와 아라한의 상이점은 어떠한가? 불타와 아라한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신체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으로 각각의 특징을 아라한과 비교할 수 있다. 신체적인 측면은 불타의 덕상이

그대로 외형상 드러나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점이 아라한과의 차이점이다.

이를 32상 80종호라고 하며, 불타의 지혜와 공덕으로 장엄된 최고, 최상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22)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해탈과 성도로서 아라한이

성취한 해탈 성격을 초월해 있다. 이는 지혜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해탈의 내용이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라한이 해탈이라면 불타는

해탈지견으로 한 단계 더 높이 오른 것이다. 이를 유부에서는 성문, 연각, 불타의

차이를 토끼, 말, 코끼리에 비유하여 지혜의 능력을 설명하고 있다.

22)『雜阿含經』(大正藏 권02, p.166c). 此處菩薩現三十二相, 八十種好, 莊嚴其體紫磨金色.

 

“만약 2종 무지인 염무지와 불염무지를 끊으면 불타라 한다. 성문, 독각은 오직

염무지만 끊고 불염무지는 끊지 못하는 까닭에 불타라 하지 않는다.”23)

23)『阿毘達磨大毘婆沙論』(大正藏 권27, p.735b). 故經喩以三獸渡河. 謂▩馬象. ▩於水上但浮而

    渡馬或履地或浮而渡. 香象恒時蹈底而渡. 聲聞獨覺及與如來. 渡緣起河如次亦爾. 有說. 若斷二

    種無知. 謂染不染. 說名爲佛. 聲聞獨覺唯能斷染. 不斷不染. 故不名佛.

 

다시 말하면 염오무지를 단멸하여 생사윤회를 해탈하는 점에서는 불타와

이승에 구별이 없으나 불타는 不染汚無知마저 단멸하여 一切智와 一切種智를

얻어 세계와 인생의 가치에 관한 판단과 동시에 개개의 사물에 대하여서도 정확한

진실을 가지고 있음에 반해, 이승은 다만 가치에 대해 바른 판단을 하여 얻었을

뿐이라 한다. 이처럼 무지, 번뇌의 문제에서 볼 때 불타와 이승은 엄연히 구별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24) 특히 불타와 아라한의 차이를 더욱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불타가 구족한 위덕과 지혜의 力用으로서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오로지 불타만의 뛰어난 덕성을 갖추고 있다. 이 점을『아비달마대비바사론』

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24) 魯權用,「佛陀觀의 硏究」, 圓光大學校大學院 佛敎學科博士學位論文, 1987, p.23.

 

“만약 18불공법의 불법인 십력, 4무소외, 대비, 3불공염주 갖추면 불타라

하지만 3승은 그렇지 못하다.”25)

25)『阿毘達磨大毘婆沙論』(大正藏 권27, p.735b). 若具十八不共佛法. 十力. 四無所畏. 大悲. 三不

    共念住. 說名爲佛. 二乘不爾.

 

위 내용은 불타만이 독특하게 성취되는 위덕과 덕성 그리고 지덕을 나타내고

있는 十八不共法인 것이다. 이러한 불타관은 대승불교에 이르러 초인화된

법신으로서 불타의 이상향을 구체화하게 된다. 이처럼 불타와 아라한의 相異點은

근본적으로 成道와 覺知의 역량에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설사 불타와 아라한이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이미 아라한은 불타의 각지 영역의 한 부분에

속해 있는 것이기에 불타와 아라한의 각지가 동등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다만 聲聞 수행계위의 上位인 무학과를 이룬 아라한으로서의 각지 역량을

표현하고자 불타와 동등하게 명칭을 사용된 것이라 보아진다.

 

2. 대중부 계통의 교상학적 견해

『이부종륜론』에 의하면 대천5사 사건에 의해 근본 2부의 분열을 시작으로 해서

불멸 200년경부터 지말 분열로 전개되어 대중부 본말9부가 되고, 상좌부 본말11

부로 400년 초까지 이어졌음을 설하고 있다. 이 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는 불타의

교법에 관한 연구와 분석이 활성화되는 양상으로 나아가 장대한 교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로 인해 상좌부와 대중부 간의 교의 학설은 상호 간에 다른 점도 있고 때론

공통점도 있으며 정도 이상의 분석과 해석을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양부파간에

교상학적 견해차이를『이부종륜론』에서는 불타와 아라한에 대해 상호 다른 견해로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중부계통인 一說部, 設出世部, 雞胤部, 多聞部

등에서 주장하는 佛陀觀(불타관)의 교상학적 견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불타 세존은 출세간적 존재이다.

2) 일체 여래는 유루법이 없다.

3) 불타의 말씀은 모두 전법륜이다.

4) 불타는 일체법을 한 음성으로 설법하신다.

5) 불타의 말씀은 不如義가 없다.

6) 여래의 색신은 邊際가 없다.

7) 여래의 위신력은 변제가 없다.

8) 모든 불타의 수명은 끝이 없다.26)

26)『異部宗輪論』(大正藏 권49, p.15a). 諸佛世尊皆是出世. 一切如來無有漏法. 諸如來語皆轉法輪.

    佛以一音說一切法. 世尊所說無不如義. 如來色身實無邊際. 如來威力亦無邊際. 諸佛壽量亦無

    邊際. 佛化有情令生淨信無厭足心. 佛無睡夢. 如來答問不待思惟. 佛一切時不說名等. 常在定

    故. 然諸有情. 謂說名等歡喜踊躍. 一刹那心了一切法. 一刹那心相應般若知一切法. 諸佛世尊盡

    智無生智恒常隨轉.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중부의 불타관은 다분히 현실적인 측면을 넘어

이상적인 불타관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상은 대승불교에서

보여주는 불타의 法身사상과 그 연계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초기

대승불교 경전인 반야부 계통에서 불타의 眞身을 空性, 또는 法身으로 보아 영원한

법의 당체로 간주하고 있는 법신사상과 상통하는 일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부의 주장은 대단히 진보적인 견해의 주장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내용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대중부에서는 역사적인 불타의 인간적인 모습을

초인화된 법의 당체로 인격화하여 불타관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교단 분열의 쟁점이 되었던 아라한에 대해 살펴보자. 이 문제는 본

논문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사안으로 아라한에 대한 각 부파별 견해의 상이점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더 교단 분열의 원인에 대한 사상적 차이와

주장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 예류자는 물러남의 뜻이 있다.

2) 아라한은 물러남의 뜻이 없다.

3) 세간의 正見이 없다.

4) 세간의 信根이 없다.27)

27)『異部宗輪論』(大正藏 권49, p.15a). 預流者有退義. 阿羅漢無退義. 無世間正見. 無世間信根. 無

    無記法. 入正性離生時. 可說斷一切結. 諸豫流者. 造一切惡唯除無間.

 

위의 1)항의 내용과 관련해서 예류자에게 물러날 뜻이 있다는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는 유부의 학설을 담고 있는『아비달마구사론』에 의해 대중부의 입장을

연관시켜 볼 수 있다.『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예류자의 지위를 배우는 단계의

성자라고 하여 有學聖者28)임을 밝히고, 근기의 둔함과 영리함의 차별이 있다고

했다. 또한 성자의 입지를 설명함에 있어 聖者(성자)는 4성제를 닦는 성도의 길을 가는

자를 聖者라고 했다.29)

28)『阿毘達磨俱舍論』(大正藏 권29, pp.126b-127b). 聖者住本性. 如何名有學. 學意未滿故. 如行

    者暫息. 或學法得常隨逐故. 學法云何. 謂有學者無漏有爲法 諸有學聖用有漏道離下八地修斷染

    時. 能具引生二離繫得. 用無漏道離彼亦然.

29)『阿毘達磨俱舍論』(大正藏 권29, p.113c). 是聖者諦故得聖名. 於非聖者此豈成妄. 於一切是諦性

    無顚倒故. 然唯聖者實見非餘. 是故經中但名聖諦. 非非聖諦顚倒見故.

 

특히 물러남의 기준이 되고 있는 중심사상은 수행상에 있어 둔한 근기의 부류에

있는 성자인데 4향4과 중 최고의 阿羅漢果에 있는 아라한도 근기가 약하면 利養

등과 같은 번잡한 허물이 있어 이미 성취된 現法樂住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고

물러남이 있다고 밝히고 있음과 같이30), 이 점은 수행에 있어 근기가 둔한

유학성자에게 해당되는 문제점이 아닌가 싶다.

30)『阿毘達磨俱舍論』(大正藏 권29, p.129c). 然由利等擾亂過失有於所得現法樂住退去自在. 謂諸

    鈍根. 若諸利根則無退失. 故於所得現法樂住有退無退故名退不退法.

 

다음 2)항의 경우는 아라한에게 물러남의 뜻이 없다고 했는데, 이 점과

관련해서는『구사론』에서 6종의 아라한31)을 설명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다. 6종 아라한 가운데 不時解脫 아라한은 물러남의 뜻이 없다는 것이다.32)

다시 말해 이 부류의 아라한은 부동심해탈의 경지를 갖춘 예리한 근기가 되어

아라한과를 증과한 것이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라한이

성자이지만 수행의 功果에 따라 아라한에 대한 구별의 조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1) 아라한 근기의 利鈍에 따라 6종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①퇴법(退法): 법에서 물러

    난다. ②사법(思法): 물러날까 염려하여 자살하길 생각함. ③호법(護法): 얻을 법을 두호함. ④

    안주법(安住法): 법에 잘 머물러서 물러나거나 加行함이 없음. ⑤감달법(堪達法): 鍊根 닦기를

    좋아하여 속히 不動에 달함. ⑥부동법(不動法): 번뇌로 인하여 물러나거나 움직이지 않음.

32)『阿毘達磨俱舍論』(大正藏 권29, p.129a). 動法性說名爲後. 卽此名爲不動心解脫. 以無退動及

    心解脫故. 亦說名爲不時解脫. 以不待時及解脫故.

 

3. 상좌부 계통의 교상학적 견해

상좌부계통인 설일체유부 등 本末부파의 사상적 견처는 처음부터 대천의 5

사설로 인해 대중부와 호각을 이룬 상태로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경향에

있었다. 그러나 지말 분열이 일어나는 교파마다 대중부와는 상충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사상적 경향이 진보성에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상좌부에서 갖는 불타관을 교상학적 견해에서 살펴본다.

 

1) 여래의 말씀이 모두 轉法輪이 되는 것은 아니다.

2) 불타는 一音으로 일체의 법을 설하지 않는다.

3) 세존의 말씀에도 不如義가 있다.

4) 불타께서 설하신 경이 모두 了義가 아니다.

5) 불타 스스로 不了義經이 있다고 말씀하시다.33)

33)『異部宗輪論』(大正藏 권49, p.15a). 非如來語皆爲轉法輪. 非佛一音能說一切法. 世尊亦有不如

    義言. 佛所說經非皆了義. 佛自說有不了義經.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면 대중부와는 확연히 상이점이 보이는데, 상좌부의

불타관은 불타를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소극적 견해로 주장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4)와 같은 경우는 불타의 설법 내용에 있어 了義(요의)가

아니라고 한 것은 불타의 설법을 소극적인 견해로 보려는 입장이다. 불타의

자내증을 중생에게 전달함에 있어 이를 수용하는 중생 입장에서는 한계가 있다.

요의경이 불타의 제일의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여기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중생

근기에 맞게 가르침의 교의가 있는 바, 了義를 방편으로 돌려 불요의경에 의해 對

機說法(대상설법)으로 궁극적 깨달음의 세계로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 불타의 

본래 서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련성으로 볼 때 대중부가 불타관을 초인간적인 법신의 불타로

보았다면, 상좌부의 불타관은 다소 현실에서의 情意的인 인간으로서의 불타로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고 상좌부가 불타를 아라한과 같은 동일한 覺者로 보았다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生身으로 법을 깨달은 불타로서의 法으로

보았으며 깨달은 법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불타관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보겠다.

 

다음은 阿羅漢의 대한 내용이다.

 

1) 예류자는 물러남의 뜻이 없다.

2) 아라한은 물러남의 뜻이 있다.

3) 불타와 이승의 해탈에는 차이가 없다.34)

34)『異部宗輪論』(大正藏 권49, p.15a). 預流者無退義. 阿羅漢有退義, 有世間正見. 有世間信根. 有

    無記法諸阿羅漢亦有非學非無學法, 佛與二乘解脫無異. 三乘聖道各有差別.

 

상좌부 계통의 주장을 보면 대중부와의 상이점이 드러나 보인다. 1)항의 경우

‘예류자는 물러남의 뜻이 없다.’ 고 한 것은 예류자는 유학성인으로서 번뇌를 점점

단멸해 가는 과정과 범부에서 벗어나 聖人의 지위를 갖는 正性離生의 위치에 있는

것이므로 물러날 뜻이 없고 오직 성인으로서의 자격을 겸비하고 수행 정진하는

위치에 있음을 보이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주장의 뒷받침이 될 수 있는 근거는

『구사론』인데 예류자는 견도에서 身見에 대해 깨달음을 증득한 경지이므로

물러남이 없다고 하였다.35)

35)『阿毘達磨俱舍論』(大正藏 권29, p.129c). 又亦無退先所得果. 後所得果容有退義. 是故定無退預

    流果.

 

이 점을 대중부의 입장과 대비해서 살펴보면, 역시 근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데 물러남의 뜻이 없는 예류의 성자는 예리한 근기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2)항의 아라한은 물러남의 뜻이 있다고 한 것 역시『구사론』에서 밝히고

있는 六種 阿羅漢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불시해탈은 부동종성으로 물러남이 없지만

나머지 時解脫에 해당하는 5종은 물러난다고 했는데36) 이러한 견해는 비록 阿羅

漢이 성자일지라도 근기 따라 수행의 功果가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36)『阿毘達磨俱舍論』(大正藏 권29, p.129c). 不動種性必無退理. 前之五種皆有退義.

 

특히 3)의 경우를 보면, 대천5사와 대립되는 관점에 있다. 즉 상좌부는 아라한의

聖者性을 완전함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아지며 그 경지를 부처님과 二乘인 성문,

연각의 해탈에는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앞장(Ⅲ-1)에서 설명 하였듯이

아라한의 해탈에는 불타와 같이 완점함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타는

성문 0제자들의 해탈 능력을 세속적 입장을 넘어선 상태에 도달한 해탈의 力用을

인정하고 섭수한 것으로 보아진다.

 

따라서 해탈에 차이가 없다는 본질은 불타의 각지 능력에 한 범주 경계 속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에서 볼 때면 상좌부에서 주장하는 의미를 가능성 있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후대 대승불교에서는 불타와 아라한의 차이가 현격히

구분되어지는 것으로 대승불교의 불타관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불타와 아라한에 대해서 대중부와 상좌부 간에 논쟁하는 견해의

차이점을 살펴보았듯이 교단의 분열은 사상과 이념에 있어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까닭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이부종륜론』에서

대천5사가 주장한 내용은 아라한과 불타의 거리는 분명히 간격과 차이가 있는

것이고, 또한 아라한 자질과 覺知의 力用에 대해 한계와 취약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라고 본다.

 

Ⅳ. 맺음말

 

불교는 화합을 근본정신과 생명으로 여긴다.『이부종륜론』에서는 불멸후 100

년경에 上座部와 大衆部 2부로 근본 분열되고, 교단은 재분열하여 지말분열로

이어져 기원전, 후 무렵에 이르기까지 20부에 달하는 부파가 발생한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분열현상에 대한 의미는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초기불교 교단의 구성원은 대승불교와는 달리 교단의 구성 중심인물들

모두가 출가 수행자이며 또한 그 가운데에는 阿羅漢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이미

아라한의 경지나 수행의 과위 또는 아라한의 본질적 의미는 초기 불교교단에서

성문4과에 해당하는 최고위인 성자에 위치하고 見惑, 思惑을 모두 단멸하여

수행의 완성을 이루어 해탈인 무여열반에 이른 이상적인 득과의 성현으로 그

수행과 과위에 청명성과 존중을 받고 있는 지위이다.

 

그러나 경제, 문화발달에 따른 사회 변천,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라 아라한의

자질과 존귀함에 대한 적법성 문제 제기 및 수행완성의 이상향을 제시하는 사상의

발달과 지적 안목의 증대 속에 아라한에 대한 자각의 검토는 마침내 교단 분열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의 蓋然性을 고찰해볼 수 있는 문증으로

북전문헌인『이부종륜론』,『대비바사론』,『부집이론』 등을 통해 살펴볼 때 불멸후

100년경 대천의 5사 주장으로 교단이 대중부, 상좌부로 분열되고, 후에 지말

분열이 가속화되어 20부파로 분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교단 분열의 원인은 곧 아라한의 자질에 대한 비평적 안목에서 일어났음을

제시하고 있는데, 5사의 내용은 1) 餘所誘, 2) 無知, 3) 猶豫, 4) 他令入, 5) 道因聲

故起이다. 1), 2), 3)은 아라한의 해탈 문제로서 완전한 해탈열반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반면 4), 5)는 아라한의 한계와 취약점, 苦에 대해 절실한

통감과 마음 챙김에 의해 끊임없는 수행을 할 때 성도가 현기한다고 전하고 있듯이

아라한으로서의 기존의 보수적 틀을 벗어나 진보적인 정신과 자세로 수행의 길을

갈 때 아라한을 초월한 깨달음의 이상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

 

이런 관점에서 아라한의 성자관 그리고 불타와 아라한의 상이점의 핵심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본 바, 각 부파 간에 주장하는 사상적 견처는 同論과 異論이

혼재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반면에 대중부와 상좌부 간에 교학적 異論의 주장은

교학사상에 있어 自派의 정통성과 우수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모든 부파의

중심사상으로 자리매김하려는 歸一的 교학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경향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점 또한 볼 수 있다.

 

물론 부정적 시각에서는 불교의 화합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광의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대천의 5사 주장으로 인한

교단 분열 사건은 대승불교 발생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대천이 아라한이면서도 아라한의 자질에 대한 한계, 수행의 취약점 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주장했던 그 시대의 불교 교단 내 생활에는 분명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불교의 역할 상에도 불교의 본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크게 작용하였으리라 본다.

 

따라서 이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불교교학의 발전과

불교사상을 고양시키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대천 5사에 의해

근본 2부로 분열된 사건은 대승불교의 태동에도 적잖은 영향력으로 작용되어

마중물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해보면서 이에 대해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