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론섬 2022. 1. 8. 16:26

황 룡 록

황룡 4가어록 서
(黃龍四家語錄序)

말로써 충분하다면 종일 말해서 도를 다 말하겠으나, 말로는 부족하니 종일 말해도 사물을 다 말할 뿐이다. 그러므로 충분하다 부족하다 함은 둘 다 틀리는 것인데 세상사람이 어찌 그런 줄 알겠는가.


황룡스님의 4세 법손인 혜천(惠泉)스님이 적취(積翠), 회당(晦堂), 사심(死心), 초종(超宗)의 4가어록을 손수 써 놓고 내게 서문을 쓰라 하였다.


저 네 분 대사(大士)는 강서(江西)에서 선종의 불꽃같은 분이니 혹은 마조(馬祖)스님의 후신이라 전하고 혹은 대위(大 )스님의 법석을 지켰다고 하며 혹은 번개에 천둥소리 따르듯 하고, 혹은 6근이 훌륭하게 익어져[熱] 무너지지 않았다 하니 그 참되고 명예로운 도풍을 천하 사람들이 우러러보았다. 기봉을 한번 건드리면 만 게송이 병에서 물쏟듯 하여 마치 커다란 빈 골짜기가 소리에 남김없이 반응하고 커다란 둥근 거울이 모습을 남김없이 비추는 것과 같다. 구슬꾸러미 돈꾸러미 같은 말씀을 인간세상에 뿌려놓으니 달빛어린 창가, 구름 도는 집집마다 만 입으로 불러 외워 적으면 적은대로 크면 큰대로 모두 얻는 바가 있었다.


말로 치자면 가히 사물을 극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있으나 요컨대 사물도 극진히 하고 도(道)도 극진히 하는 것으로는 듣는 자 스스로가 알아차려야 할 일이다. 그 가운데 소위 '종일 말하나 말 한바가 없다' 함은 가죽을 벗겨내고 뼈를 부러뜨리는 것으로도 써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혜천스님이 문답을 편집한 일이 옳은가, 그른가? 옳다고 한다면 대장경[毘盧藏]속의 방대한 경전에서도 본래 문자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르다고 한다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이 뇌성을 감추고 묵묵히 있다 해도 본래 그 소리의 위용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함이 반드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 도리를 알기만 하면 말이 있건 없건 모두 진여이겠으나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말이 있건 없건 모두 사견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혜천스님의 마음이 바로 네 분 조사의 마음이며, 혜천스님의 견해가 바로 네 분 조사의 견해임을 알겠다.


(스님께서는) 그 내용의 우열을 가려 정도(正道)를 보임으로써 네 스님이 중생을 이롭게 하신 자비심을 널리 드러내고 음성의 세계로 들어가 한 몸 아끼지 않음으로써 네 스님이 도를 실천하시던 은혜를 전하였으니 진실로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본 뜻이다. 이 도에 앉아서 수행하는 사람은 이 글로써 한번 평가해 보라.

소흥 11년(紹興 11年 : 1141) 3월 5일,
수인전밀(秀人錢密)이 서(序)를 쓴다.

동안 숭승선원에서 남긴 어록
[同安崇勝禪院語錄]

1.
스님께서 동안(同安)의 숭승선원(崇勝禪院)에 처음 머물면서 개당(開堂)하던 날에 소(疏)를 크게 읽고 난 후 향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 하나의 향으로 우리 황제의 수명이 무궁하시길 바라옵니다."
다시 향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 하나의 향으로 지군낭중(知軍郎中) 문무 신하들의 복과 수명이 늘어나기를 바라옵니다. 다음으로 나라가 안녕하고 법륜이 항상 굴려지기를 바라옵니다."
또 향을 잡고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이 하나의 향은 누구를 위해 피워야 할는지. 많은 사람이 헤아려 보나 귀결점을 모르는구나. 오늘은 호남(湖南)의 자명선사(慈明禪師)를 위하여 하나를 태워서 그것이 널리 퍼져 천하의 총림과 모든 납승들에게 재앙이 되게 하리라."
유나(維那)가 백추(白槌)를 치면서 말하였다.
"이 법회에 모인 용상(龍象) 대중들이여! 첫째 가는 뜻[第一義]을 관(觀)하도록 하라."
스님께서 한숨을 쉬면서 말씀하셨다.
"첫째 가는 좋은 뜻이 다행히도 저절로 완전하더니 이제 유나에게 후려맞고 두 쪽이 났구나. 누가 붙여 줄 사람이 있느냐?"
그리고는 좌우로 대중을 돌아보더니 말씀하셨다.
"붙이지 못한다면 나는 오늘 머리를 꼬리로 만들고 꼬리를 머리로 만들어버리겠다. 물을 말이 있는 자는 잘 살펴야[着眼] 하리라."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이미 봉황고개에 올라 종풍을 널리 펴시니 누구의 법을 이으셨는지요?"
스님께서 일원상(一圓相)을 그리자 그 스님이 이어서 말하였다.
"석상스님의 한 맥이 흘러나와 강서로 들어갔군요."
"밝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 눈먼 사람은 땅을 더듬는구나."
"무엇이 동안(同安)의 경계입니까?"
"볼 수가 없다."
"그런 경계 가운데 있는 사람은 어떤 자입니까?"
"얼굴 없는 사람이다."
"솜씨좋은 선지식은 줄탁( 啄)*하는 것이 아니니, 줄탁하면 솜씨 좋은 선지식이 아닙니다. 대중이 법회에 모였으니 스님께서는 선지식을 만나 보십시오."
스님께서 한발 아래로 늘어뜨리셨다. 그 스님이 "불꽃 속에서 흩날리는 눈을 찾고, 물 속에서 불이 하늘을 태우는군요" 하자 스님께서는 발을 거둬들이셨다.
그 스님이 다시 "대중은 참다운 선지식을 증명합니다"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틀렸고 그대도 틀렸다."
"그렇다면 아직은 두 집이 같이 쓰는 것입니다만, 북을 끌고 와서 깃대를 빼앗으며 한판 붙어보는 일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불자(拂子)를 던져버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아무 일도 없더니 이 자리에 오르자마자 많은 질문과 답변이 있게 되었다. 감히 묻노라. 대중들이여!한 번 묻고 한 번 답변함이 종승(宗乘)에 부합되느냐? 부합된다고 한다면 일대장교(一大藏敎)에 어찌 문답이 없으며 또한 무엇 때문에 '교(敎)밖에서 따로 펴서 상근(上根)의 무리에게 전한다'고 하였겠느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조금 전에 했던 허다한 문답은 무엇을 위함이었겠느냐? 행각하는 납자라면 스스로 눈을 떠서 후회없도록 하라.
이 일로 말하자면 신통(神通)이나 닦아 얻음[修證]으로 도달하지 못하며 다문(多聞)과 지혜로 논할 바도 아니다. 3세 모든 부처님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만 했을 뿐, 일대장교로 설명하고 주석을 내어도 미치질 못한다. 그러므로 영산회상 백천만 대중 가운데서 유독 가섭만이 직접 들었다고 인정하였으며, 황매산(黃梅山) 7백 고승 가운데서 의발(衣鉢)은 행자(行者 : 6조) 에게 부촉하였던 것이다. 어찌 이것이 그대들의 탐심·음행·어리석은 집착·승부심으로 되는 일이겠느냐?
출가한 사람이라면 대장부의 매서운 뜻을 품어 양쪽[兩頭]*을 끊고 집에 되돌아가 편안하게 앉아야 한다. 그런 뒤에 문을 크게 열고 자기 재산을 틀어 왕래하는 사람들을 접대하고 집 없고 외로운 사람을 구제해야만 조금이라도 부처님의 깊은 은혜에 보답했다 하리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전혀 옳지 않다 하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와 인사하는 자리를 베푸셨다.

2.
정월 초하룻날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모든 성인을 구하지도 않고 자기의 신령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해도 이는 납승 본분의 일은 아닙니다. 무엇이 납승 본분의 일입니까?"
"30년 이래로 이런 질문은 드물게 만났다."
"그렇다면 모든 성인을 저버리겠군요."
"대꾸조차 제대로 못하는군. 무엇 때문에 저버린다 하느냐?"
그 스님이 손뼉을 한 번 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음( ), 놓아주어선 안되지."
그리고 말씀하셨다.


*양쪽[兩頭]:이쪽과 저쪽의 뜻으로 상대되는 두 개념. 생과 사, 단견과 상견 등. 4상(四象 : 노소음양)이 밀고 옮기면서 끝났다간 다시 시작하고 2의(二儀 : 음양)가 교대로 형통함이 진실로 이 때에 속한다. 세상의 이치[俗諦]는 여러 갈래여서 각자 왕래하는 법칙을 펴내지만, 진여(眞如)의 경계는 낡고 새로움의 차별이 없다. 왜 그럴까. 이런 말을 듣지 못했느냐.

한 생각으로 한량없는 세월을 관찰해 보니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머뭄도 없다.
一念普觀無量劫 無去無來亦無住

이미 가고 옴이 끊겼으니 무슨 낡고 새로움이 있으며, 이미 낡고 새로울 것이 없는데 또 무엇 때문에 신년하례를 하느라 특별히 왕래하겠느냐. 한 생각이 항상 고요할 수만 있다면 자연히 3제(三際)를 아득히 잊는데, 어찌 가고 옴에 매이며 무슨 새롭고 낡음을 묻느냐. 그러므로 '이처럼 3세의 일을 철저히 알면 모든 방편을 초월하여 10력(十力 : 여래만이 가진 열 가지 지혜력)을 이룬다'고 하였던 것이다."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으셨다.
"이처럼 거량(擧楊)하고 설법할 줄은 사람마다 다 알지만 둘을 부수어 셋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있겠느냐?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순풍에 돛을 올릴 줄만 알았지 역풍에 키를 붙들 줄은 모르기 때문이다."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동지(冬至)에서 한식(寒食)까지 105일은 묻질 않겠다.모든 스님들이여, 캄캄한 밤중에 바늘귀를 꿰는 한 소식을 어떻게 말하겠느냐. 누가 말할 수 있다면 내가 최고의 값을 쳐주겠지만 못한다면 피차가 손해를 보리라."
그리고는 곧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신은 모습이 없으나 사물에 따라서 형체를 나타내며,반야는 앎이 없으나 인연을 만나면 즉시 비춘다."
그리고는 불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불자를 일으켜 세움을 법신이라 하니 어찌 이것이 '사물에 따라서 형체를 나툼'이 아니랴. 불자를 눕히는 것은 반야라 하니 어찌 이것이 '인연을 만나 즉시 비춤'이 아니랴. 그리고는 하하 하고 크게 웃는데, 홀연히 어떤 사람이 나와서 나의 멱살을 잡고서 침 한 번 뱉고 한 대 후려치며 선상을 번쩍 들어 뒤엎어버리고는 나를 끌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해도 그를 괴이하게 여기진 못하리라. 지금은 이미 돼지를 물어뜯는 개와 같은 이런 솜씨가 없으니 내가 도리어 이 법령을 행하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물고기 깊은 곳에 있는데 그윽한 새는 오래도록 서 있구나."
그리고는 선상을 치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 사월 초파일은 우리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로서 나라 안의 모든 절에는 부처님을 관욕(灌浴)시킨다.
기억해 보니 준포납(遵布衲)이 약산(藥山 : 745∼828)스님 회상에 있으면서 전주(殿主 : 불전의 청소나 향 등을 관리하는 소임,지전)를 맡고 있을 당시 부처님을 관욕시키는 차에 약산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이것>만 목욕시킬 뿐이구나. <저것>도 목욕시킬 수 있느냐?' 준포납이 '저것을 가져와 보십시오'라고 대꾸하자 약산스님은 그만 두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때에 따라 말을 함에 일언반구도 교묘함이 없었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마음과 힘을 다 써서 계산한다 해도 끝내 그들의 경계에 도달하진 못한다. 대중 가운데서는 생각으로 따라서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라 함은 청동불상이며,<저것>이라 함은 법신이다. 불상은 형제가 있어 씻을 수 있으나 법신은 형상이 없는데 어떻게 씻을 수 있으랴. 약산스님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도리어 준포납 스님에게 당하고 곧장 입이 납짝하게 되는 낭패를 면치 못하였다.'
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옛날 성인이 질문했던 것은 납자를 시험하려 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그에게 저것을 물었는데 저것을 가져와 보라고 하면 그것은 색과 소리에 끄달리는 것으로서 그의 말이나 씹으면서 그의 올가미에 올라앉은 셈이다. 약산스님은 그가 이해하지 못했음을 아셨기 때문에 그만둔 것이다.'
또 말할 것이다.
'약산스님이 그렇게 했던 것은 일없는 데서 일을 일으킨 것이니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 한편 준스님은 병통인 줄 모르고서 도리어 부스럼 위에다가 쑥불을 놓았다 하리라.'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옛사람은 완전히 깨쳐서 만나는 곳마다 놀고 가니 가타부타할 것도 없었고, 높다 낮다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너와 내가 있다고 알게 되고부터 후인들은 억지로 분별을 내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식의 이해는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여 한 번 근원을 잃고 미혹하여 회복하질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실한 마음만 믿고 헤아리고 비교함으로써 종승에 부딪쳐 보았으나 조작과 사유가 마음이 있음을 따라 일어난 것임을 잘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사유로써 부처님의 경계를 분별함은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격이어서 미진겁을 지난다 해도 끝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행각하는 고상한 납자라면 스스로 간절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제껏 이야기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며, 필경 무엇을 가지고 저 생사를 대적할 것인가. 조금이라도 들뜨고 거친 알으말이[識見]로 스스로 장애지음을 용납치 말라. 불법은 이러한 도리가 아니다. 나는 오늘 구업(口業)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설파해 준다. 위의 두 분 스님께서는 한 번 나오고 한 번 들어가면서 이기고 짐을 보이질 않으셨다. 30년 뒤에 이 소식을 잘못 말하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성절(聖節)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은 황제께서 태어나신 날로서 온누리 모든 백성이 성수(聖壽)가 연장되기를 축원하는 일은 빠뜨릴 수 없다만, 여러 납자들이여! 왕자를 아느냐? 누가 알았다면 티끌같은 시방세계가 모두 그대의 것이어서 다름이 아니고 열반성 안에 앉아 단정히 팔짱낀 채 함이 없이[無爲] 3계를 자기 집처럼 거느리고 4생(四生)의 부모가 되려니와, 알지 못했다면 법당 안에서 향을 사르고 3문(三門)앞에서 합장해야 하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자 한 스님이 편지를 전해오니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擧].
행사(行思)스님이 석두(石頭)스님더러 편지를 가지고 달려가 남악 회양(南嶽懷讓)스님에게 올리라 하고는, "즉시 돌아오면 그대에게 무딘 도끼를 주어 산에 주지살이하게 하리라"라고 말하였다.
석두스님이 회양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편지를 전달하지도 않고 불쑥 물었다.

"모든 성인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신령함도 대단히 여기지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그대의 질문은 지나치게 고상하다. 왜 향하(向下:俗諦를 써서 중생을 제접하는 쪽의 일)에서 묻질 않는가?"
"영겁토록 생사윤회를 받을지언정 모든 성인으로부터 해탈을 구하진 않겠습니다."
회양스님은 대꾸하지 않았다. 석두스님이 곧 돌아오니 행사 스님이 물었다.
"그대가 떠난 지 오래지 않은데 편지는 전달하였느냐?"
"말도 통하지 못했고 편지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행사스님이 이유를 묻자 석두스님은 앞서의 대화를 말씀드리고 다시 말하였다.
"지난날 스님께서 무딘 도끼를 줄테니 산에 주지하라 하신 허락을 하셨으니 바로 지금 청하옵니다."
행사스님이 한 발을 늘어뜨리자 석두스님은 바로 절하고 남악으로 들어가 산에 주지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두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달려갔던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함께 들었으나 뒷 사람들은 그 근본 뜻[宗由]을 잘 알지 못하여 법을 편 사람이 드물었다. 그리하여 물과 우유를 분별하지 못하고 옥과 돌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오늘 반으로 갈라 보여 대중들에게 보시하리라.
석두스님은 이처럼 잘 달려가 전달하여 종풍을 욕되게 하진 않았으나 너무 허둥대다가 낭패보는 줄을 몰랐는데야 어찌하랴. 이미 손해를 보았다면 돌아와서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무딘 도끼를 얻어 산에 주지하겠느냐. 여기에서 깨칠 수 있다면 산에 주지할 뿐만 아니라 시방세계 티끌티끌마다 호랑이 굴이나 마군의 궁전까지도 모두가 안주할 곳이다. 그러나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감히 장담하노니 여러분은 안심입명할 곳이 없으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운문(雲門)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평탄한 길에서 죽은 사람이 셀 수도 없으니 가시덤불로 가는 것이 상책이리라."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불자를 잡아 일으키더니 말씀하셨다.
"대중아! 이를 불자라고 부른다면 바로 평지에서 죽은 사람이며 불자라 부르지 않는다 해도 가시덤불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상을 치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상당하여 악!하고 할(喝)을 한 번 하고는 말씀하셨다.
"온 누리가 내 할 한 번에 기왓장 깨지듯 얼음녹듯 하였다. 이제 그대들은 어디서 옷 입고 밥을 먹겠느냐. 옷 입고 밥 먹을 곳을 아직 찾지 못했거든 옷 입고 밥 먹을 곳을 찾아야만 하며, 옷 입고 밥 먹을 곳을 알았다면 본래면목[鼻孔]을 알아야 하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큰 파도는 아득히 출렁이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생사의 흐름을 끊고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은 단연코 알음알이를 떨어버리겠지만 짧은 노의 외로운 뱃사람은 밀고 당기느라 상을 찌푸리며 애쓴다. 말해 보라. 바람 자고 물결 고유한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겠느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면 내 그대들에게 보시하리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어부는 어부대로 한가히 선창하고 나무꾼도 저 혼자서 소리 높여 노래하네[漁人閑自唱 樵者獨高歌]."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귀종사로 옮겨 살면서 남긴 어록
〔遷住歸宗語錄〕

1.
스님께서 처음 절에 들어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귀종상사(歸宗上寺)는 큰 선강[禪河]이다. 이미 선강이라면 어찌 낚시꾼이 없으랴. 누가 질문할 사람이 없느냐?"
한참 있어도 묻는 사람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뿔난 짐승 많아도 해태( :성품이 충직한 외뿔 달린 전설상의 동물)는 없고, 털난 짐승 많다 해도 원앙은 적어라. 미묘하구
나, 큰 저 법신이여. 일부러 들어도 듣지 않고 보아도 보지 않도다. 청정하도다. 배울수 없는 지혜여! 어찌 생각해서 얻으며 어찌 배워서 되겠느냐. 그러나 설법이 없다면 누구라서 근본종지를 가려내며, 문답이 없다면 어떻게 삿됨과 올바름을 밝히랴. 지금 이 장로(長老)가 상당하여 법문으로 이끌어 주는데도 대중 가운데선 질문하는 사람이 없구나. 질문하는 사람이 없으니 답변하는 사람도 없구나. 근본종지와 삿되고 바름을 밝히고 분별하려느냐. 삿됨과 바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서 선상을 밀쳐 거꾸러뜨리고 소리를 쳐 대중을 해산한다 해도 그 납승에게 숨을 돌리게 해 주
겠지만, 분별해내지 못한다면 내년에 새 가지가 돋아나 쉴새없이 봄바람에 흔들리리니 기다려 볼 일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손바닥의 마니(摩尼)구슬은 갖가지 색깔 따라 빛이 나뉘고, 하늘에 걸린 보배달은 천강에 달그림자를 드리운다.
여러 납자들이여!한 번 묻고 한 번 답하며, 방망이 한 대, 할 한번 하는 것이 모두다 빛 그림자[光影]이며, 밝고 어두우며 잡고 놓아줌이 모두다 빛 그림자이며, 산하대지도 빛 그림자이며, 일월성신도 빛 그림자이며, 3세 모든 부처님과 일대장교 나아가서는 모든 큰 조사와 천하의 훌륭하신 화상과 문 두드리는 기왓쪽 따위 천차만별까지도 모두 다 빛 그림자이다.

말해 보라. 무엇이 마니 구슬이며 무엇이 보배달인지를. 마니구슬과 보배달을 모르고서 말[言句]을 기억하여 빛 그림자를 그것이라고 잘못 안다면 마치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리고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격이니 그 수를 다 헤아리고 밝은 거울을 만들려 하나 만부당한 일이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문자의 의미를 널리 찾음은 거울 속의 물건을 구하는 것과 같고, 그렇다고 생각[念]을 쉬고 공(空)을 관(觀)함은 물 속의 달을 붙들려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라고 한 말을. 납승이라면 이쯤에서 몸을 바꿀 만한 길 한 가닥[傳神一路]이 있어야만 한다. 몸을 바꿀 수만 있다면 벌여놓은 것과 모인 무더기마다 다 대사(大事)가 나타난[現前] 것이라서 종횡으로 자유로와 다시는 모자라거나 남는 법이 없으려니와, 몸을 바꾸지 못한다면 푸대 속의 늙은 거위와 같아서 살아있다 해도 죽은 목숨과 같으니라.
나는 산에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본래 식견이 없다. 그러나 어제는 이 군(郡)의 전승판관비서(殿承判官秘書)에게 특별히 초청을 받았으니 명령을 받고서 감히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로 귀종사(歸宗寺)를 맡아달라는 명령이 있었다.
나아가고 물러남을 곰곰히 살펴보았더니 염치없음만 깊이 더하였다. 이는 전승판관이 옛날에 부처님의 수기(受記)를 받들어 왕의 신하로 모습을 보이심이다. 항상 정사를 베푸는 여가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혜풍(慧風)과 요풍(堯風)을 아우러 선양하려 하였으며 불일(佛日)과 순일(舜日)이 함께 밝기를 기대했으니 진실로 중생에 뜻[意]을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처럼 마음을 극진히 할 수 있었으랴.
이 날에 또 조정의 수레가 영광스럽게도 법회에 임하여 시종 성쇠하던 중에 진실로 영광을 더하게 되었다. 옛날에 배상국(裵相國)은 높은 벼슬 자리에 있었으나 황벽(黃檗)스님에게 인정을 받았고, 한문공(漢文公)은 당세에 명성이 지중하였으니 태전(太賞)스님을 모시었다. 지금의 이 일을 옛날에 비교한다면 무슨 차이가 있으랴. 할말은 많으나 보고 듣느라고 번거로울까 염려스럽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령을 극진히 하여 기강을 잡음은 범부와 성인 양쪽에 다 통하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한 가닥 길을 놓아주면 알음알이[商量]가 생긴다.
곧 이어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주장자가 서니 시방세계가 일시에 서는구나."
그리고는 다시 주장자를 눕히더니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주장자를 눕히니 시방세계가 일시에 눕는다. 어째서인가? 듣지도 못했느냐. '가장 작은 것은 가장 큰 것과 같아서 경계를 끊어 잊었고,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아서 테두리를 보지 못한다'고 한 말씀을."
그리고는 주장자를 높이 세우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제형(提刑:지방에서 형벌이나 옥사의 일을 맡는 벼슬)이 산에 들어와 좌석에 오르자 한 스님이 청하였다.
"제형의 수레가 멀리서 법좌에 나오셨으니 스님께서는 깨달음의 종지[向上宗乘]를 한 번 결단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자(一字) 모양 두건[ 頭]이며 챙이 뾰족한 모자로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비단, 제형만 이 훌륭함을 받들 뿐 아니라 저도 절하며 스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눈섭을 잡아 벗기고 그대의 콧구멍을 두드려서 떨어뜨린다면 또 어떻하겠느냐?"
그 스님이 "허허(噓噓)"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수를 만들려면 그 고을 밀가루로 빚어야 하고, 노래를 부르려면 천자의 고향 사람이라야만 한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유정(有情)의 근본은 지혜 바다로 근본을 삼고, 함식(含識)의 부류는 모두 법신으로 자체를 삼는다. 다만 미혹한 생각[情]이 생겨 지혜가 막혔기 때문에 매일 작용하면서도 모르며, 생각[想]이 바뀌는대로 몸이 달라지기 때문에 업연(業緣)을 쫓아가 되돌아 올 수 없다. 아득한 예와 지금에 뉘라서 근본 원인을 확인히 아는가. 고단한 사랑과 증오는 망정의 근본으로서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석가모니 조어사(調御師)께서는 일찌감치 깨달음을 얻으시고 우리가 수고로운 삶으로 생사유전을 자초함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런 뒤에 큰 지혜를 얻고 오묘한 모습으로 몸을 나투시어 49년을 세상에 머무시면서 12분교(十二分敎)를 연설하셨다. 그리하여 영리하고 둔한 근기에 맞추어 교화 방편을 세워 상·중·하의 근기가 각자  정도〔漸〕에 맞게 얻기를 바라셨다. 마치 큰 바다가 작은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서, 가령 모기·등애·아수라왕이 그
물을 마시는데 모두 배부르게 되는 것과도 같았다. 그 뒤 교화할 인연이 다하여 쌍림(雙林)에서 열반을 보이려 하면서 인간·천상의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안장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는데 마하대가섭(摩訶大迦葉)에게 부촉하여 교(敎)밖에 따로 펴서 상근기들에게 전하게 하노라.'
이 법은 조작이나 사유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통이나 닦아서 깨달음[修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유심(有心)으로써 알지도 못하며 무심(無心)으로써 체득하지도 못한다. 이를 깨달으면 3계(三界)를 단박에 초월하려니와 이에 미혹되면 만겁토록 생사에 빠진다.
오늘은 왕의 관리가 두루 모이고 승속이 자리에 함께 하여 앉고 섬이 염연하고 보고 들음이 어둡지 않으니 이는 미혹이겠느냐, 깨달음이겠느냐? 여기에서 체득할 수 있다면 3아승지겁[三祗劫]을 다 채우거나 만행(萬行)의 공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일념에 초월하여 다시는 전·후가 없으리라.
오늘은 우리 절에 영광스럽게도 이 지반의 제형도관(提刑都官)과 제형사인(提刑舍人)이 직접 조정의 수레로 내려오셔서 보잘 것 없는 이 절을 빛내 주시려고 하룻밤이나 걸려 찾아왔으니 나날의 기거(起居)에 만복 있으소서. 더구나 존귀한 두 분 관리는 숙세에 덕의 근본을 심어 재관(宰官)의 몸으로 시현(示現)하여 자비와 은혜로 백성들에게 임하셨음에랴. 지금 밤낮으로 급한 천자의 일을 대신하여 스님·속인·귀인·천인들이 모조리 복과 수명의 은혜를 하사받았으니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영광스럽게도 왕림해 주신 덕을 보았으니 우선 귀한 보살핌을 여유있게 받으라.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은 설명함도 없고 보여줌도 없으며, 법을 듣는 사람도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니(仲尼 : 孔子)가 온백설자(溫伯雪子)를 오랫동안 보고 싶어하던 중, 하루는 수레를 타고 가다 길에서 만났는데 피차 말없이 각자 되돌아갔다.
그 뒤에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온백설자를 보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만나서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으셨으니 무슨 뜻인지요?' 하자 중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군자의 만남은 눈빛이 마주치는 데에 도가 있다.'
말해 보라. 옛사람의 만남이 눈빛 마주치는 데에 도가 있다 하였는데 산승은 오늘 북을 울리고 법당에 올라 유난스레 말이 많았으니 한바탕 손해를 보았노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호랑이 수염을 순조롭게 뽑으려거든 응당 자기부터 살펴야 하며, 뱀꼬리를 거꾸로 잡으려거든 뱀이 하는대로 맡겨두어라.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중국사람이 오면 중국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니 밝은 거울을 높은 경대에 걸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자소봉(紫 峰) 위의 검은 구름은 아련한데 파양호( 陽湖) 속의 흰 파도는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한 기운〔一氣〕은 일어남 없이 일어나고 만법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러하구나. 여기서 따지고 헤아리다면 10만 8천리 밖으로 멀어지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주장자를 잡더니 말씀하셨다.
"옆으로 잡고 거꾸로 휘둘러 미륵의 눈동자를 열어제치고, 밝음이 가고 어둠이 오니 조사의 콧구멍을 두드려 떨어뜨린다. 바로 이런 때라면 목건련과 사리자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임제(臨濟)와 덕산(德山)은 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말해 보라. 무엇을 두고 웃었는지를. 쯧쯧…"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목주(睦州)스님께서는 뛰어난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언젠가 만났을 때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무엇을 아는가?"
"24가(二十四家)의 서법(書法)을 압니다."
목주스님은 주장자로 공중에다 점 하나를 찍더니 말하였다.
"알겠느냐?"
제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24가의 서법을 안고서 다시 말해 보라. 영자8법(永字八法)도 모르고서는…"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목주스님의 한 점은 곧장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 있더니 영자8법으로 글씨를 논함에 이르러선 도리어 속인에게 간파당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공자 문하의 제자는 아는 사람 없었는데 눈 푸른 달마는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이는구나."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趙州)스님에게 말하였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놓아버리게"
"이미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걸머지게"
존자는 이 말끝에 깨달았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한 물건도 가져 온 것 없건만
어깨에 짐을 지고 일어나지 못했었네
말 끝에 홀연히 잘못임을 알아
마음 속은 무한히 기쁘고
나쁜 독을 마음에서 잊었으니
뱀과 호랑이도 친구라네
몇백 년 세월 흘렀건만
맑은 바람 그치질 않네
一物不將來 肩頭擔不起
言下忽知非 心中武限喜
毒惡旣忘懷 蛇處爲知己
光陰幾百年 淸風物未己
주장자를 선상에 세우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임제스님이 감원(監院:원주)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고을에서 쌀을 사옵니다."
임제스님은 주장자로 그 앞에서 한 획을 긋더니 말씀하셨다.
"이것도 살 수 있겠느냐?"
감원이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은 바로 후려쳤다.
전좌(典座:선방에서 좌구나 의복 생활용품을 담당하는 소임)가 찾아오자 임제스님이 앞의 대화를 말하였더니 전좌가 말하였다.
"원주(院主)는 스님의 의도를 몰랐군요."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전좌가 절을 하자 임제스님은 역시 후려쳤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할을 해도 후려치고 절을 해도 후려쳤다. 여기에 가까이함과
멀리함이 있겠느냐? 가까이함과 멀리함이 없었다면 임제스님은 옳지 않으니 맹목적으로 묶어놓고 방망이질을 한 것이다. 나라면 그
렇게 하지 않겠다. 원주가 할을 할 때 놓아주어선 안되며, 전좌가 절을 할 때 놓아주어서도 안된다."
다시 말씀하셨다.
"임제스님은 법령을 행하였고, 나는 놓아주었다. 30년 뒤에 설명해 줄 사람이 있으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한 스님이 남원(南院)스님에게 물었다.
"해와 달은 번갈아 옮겨가고 추위와 더위는 차례차례 뒤바뀝니다. 추위와 더위를 겪지 않는 수도 있습니까?"
"자줏빛 비단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속곳 허리에 수를 놓는다."
"가장 뛰어난 근기라면 여기서 이미 깨달았겠지만 중하(中下)의 부류는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잿더미 속에 몸을 숨겨라."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남원은 한 번에 상대를 이롭게 하였지만 병에 맞게 약을 쓴다는 면에서 보면 잘못 되었다. 납승의 문하라면 천지처럼 현격하게 다르다. 말해 보라. 납승에겐 더 나은 점이 무엇이겠느냐?"
"쯧쯧" 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정이 다하면 진상(眞常)이 그대로 드러나고, 허망한 인연을 여의기만 하면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이니라' 하였는데, 쯧쯧! 이 무슨 말인가?"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스님을 뵙기 전에는 무엇 때문에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쳤습니까?"
"뽕나무 뿌리는 못[釘] 같으며 물소뿔은 넓다."
"뵌 뒤엔 무엇 때문에 꽃을 물어다가 바치지 않았을까요?"
"잠방이에는 배자( :덧조끼)가 없고 홑바지엔 바지 구멍이 없다."
그 스님이 또다시 여쭈었다.
"뵙지 않았을 땐 어떻습니까?"
"나라가 맑으면 인재가 존경을 받고, 집이 넉넉하면 어린 아이가 버릇없다."
"뵌 뒤엔 어떻습니까?"
"세상의 인정은 차고 따뜻함을 살피며, 사람의 얼굴은 높고 낮음을 좇는다."
스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학륵나(鶴勒那) 존자는 저 공중(空中)에서 갖가지 모습을 나투고 만나라(蔓拏羅) 존자는 땅을 가리키니 샘이 되었다. 덕산(德山)의 회상은 전후가 끊어졌고[光前絶後]임제의 문전에선 한 쪽만을 얻을 뿐이다."
한참 잠자코 있더니 "무엇이 그 한 쪽이겠느냐?"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균주 황벽산에서 남긴 법어
[筠州黃檗山法語]

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해는 동쪽에서 떠오르고 달은 서쪽으로 진다. 하나가 뜨면 하나가 짐을 예로부터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모두 알고 모두 보아왔다.
비로자나부처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어 매일매일 천차만별로 인연따라 자유로운데,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보지 못하느냐? 아마도 마음에 헤아림이 남아 있고 견해가 인과에 머물러서 성인이라는 생각을 넘고 모든 자취를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념연기(一念緣起)함이 남이 아님[無生]을 안다면 해와 달이 누리를 비추듯 하고 하늘과 땅이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주듯 하겠지만 알지 못한다면 지옥귀신이 발칵 성을 내어 그대들의 머리를 일격에 부숴놓으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은 5월 1일, 중하(仲夏:음력5월)로 들어서는 아침이다. 여러 지사(知事:절의 관리를 맡은 여러 소임)와 수좌(首座)와 대중은 도체(導體)가 안락하여 하루밤을 긴 선상 위에서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하여 남을 개의치 않았다. 날이 밝아 일어나서는 호떡과 대궁밥과 떡을 야금야금 씹으면서 배 부르면 쉰다.
바로 이런 때라면 옛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며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으니 귀신도 그의 자취를 찾지 못하고 만법이 그의 짝이 되질 못하며 땅이 싣지 못하고 하늘도 덮지 못한다. 그렇긴 하나 눈 속에는 눈동자가 있어야 하며, 살 속에는 피가 흘러야 한다. 눈에 눈동자가 없다면 눈먼 사람과 무엇이 다르며, 살 속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랴. 30년 뒤에 나를 괴이하게 여기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마자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고는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아무 일도 없는데 할은 해서 무엇하겠느냐?"
또 할을 한 번 하더니 말씀하셨다.
"한 번 할하고 두 번 할한 뒤엔 어떠하겠느냐?"
불자로 공중에 한 획을 긋더니 말씀하셨다.
"백장(百丈)스님이 '귀가 먹었던 일'은 그런대로 그렇다 하겠으나 삼성(三聖)스님의 '눈먼 나귀'는 사람을 근심하게 하는구나."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화장세계(華藏世界)에 끝도 없이 계속 유람하고 다니다가 연등불(然燈佛)의 처소에 이르러선 한 법도 없다. 그러므로 무(無) 속에도 유(有)이며 덕산스님의 몽둥이는 별똥이 튀듯 하니 유 속의 무이다. 임제스님의 할은 우뢰가 진동하듯 하며 귀 먹은 듯 벙어리인 듯 하다. 천지를 곽 채우고 아픔과 가려움을 아는 이 몇이나 있을까.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도는 닦음[修]을 빌리지 않으니 더럽히지만 않으면 될 뿐이며 선(禪)은 배움을 빌리지 않으니 마음 쉼[息心]을 중히 여긴다. 마음이 쉬었기 때문에 마음마다 생각이 없고 닦지 않기 때문에 걸음마다 도량이다. 생각이 없으면 벗어날 3계도 없고 닦지 않으면 구해야 할 보리도 없다. 벗어날 것도 구할 것도 없다는 것은 오히려 교종[敎乘]에서 하는 말이니, 납승이라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머리 없는 보살은 부질없고 합장하고 다리 없는 금강역사는 아무렇게나 주먹을 폈다 쥐는구나[菩薩無頭空合掌 金剛無脚 張拳]."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어떤 때는 큰 길로 가고 어떤 때에는 잡초 속으로 달린다. 그대들 납자여! 날카로운 송곳 끝을 보지 말지니, 뚫어야할 귀퉁이를 잃어버린다. 듣지도 못했더냐. 옛날에 말하기를, '열어 놓고 막지를 못하면 도적을 불러다가 집을 파산 시키며, 끊어야 하는데 끊지 않으면 도리어 그 난리를 만난다'라고 했던 말을."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림은 부질없이 힘만 허비하는 일이고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듦은 쓸데없는 헛공부이다. 보지도 못하였느냐. 높고 높은 산 위의 구름은 스스로 걷히고 스스로 퍼지는데 무슨 가깝고 멀고가 있으며, 깊고 깊은 산 골 물은 굽은 길 곧은 길 만나는대로 흘러가면서 여기저기 가리지 않음을. 중생이 매일 작용함은 구름같고 물같으니 구름과 물도 그러한데 사람만 그렇지 않구나. 그러함을 체득했다면 3계 윤회가 어느 곳에서 일어나겠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금란가사(金 袈裟)가 전해지고 나서도 아난은 오히려 의심을 품었고 찰간(刹竿)대를 거꾸러뜨리지 않아서 가섭이 수고를 면치 못하였다.
여러 스님들이여! 말해 보라. 어떤 찰간대를 거꾸러뜨렸는지를. 초학자든 만학이든 모두 헤아리지 못함은 평소에 총림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열이면 열, 모두가 흐리멍텅해서이니 성인의 시대와 간격이 멀어 사람들에게 게으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고을에 가느라고 절에서 나갔다가 되돌아와서 상당하더니 말씀하셨다.
"흐르는 물이 산에서 내려감은 그리움이 있어서가 아니며, 조각 구름이 동구로 되돌아오나 본래 무심하다. 대나뭇집·띳집은 누가 주인일까. 달 밝은 밤중에 늙은 원숭이가 읊조리는구나."
선상을 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설날 아침에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묵은 해는 이미 갔고 새해가 찾아왔습니다. 이 두 길을 지나지 않는 길을 스님께서는 지적해 보여 주십시오."
"동방(東方)은 갑을목(甲乙木)이다."
"인간과 천상이 귀를 쯩긋하고 오로지 흘러 통하는[流通]소리를 들을 뿐입니다."
"흘러 통하는 일은 어떠한데?"
"흐르는 물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찌 다른 산으로 지날 수 있겠습니까?"
"30년 뒤에 잘 헤아려 보라."
그리고는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셨다.
한 스님이 경청(鏡淸)스님에게 물었다.
"신년 벽두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것이 신년 벽두의 불법인지요?"
"초하룻날 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다."
"스님의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구나."
다시 그 스님이 명교(明敎)스님에게 물었다.
"신년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없다."
"해마다 좋은 해이고 나날이 좋은 날인데 무엇 때문에 없다 하시는지요?"
"장공(張公)이 술을 마셨는데 이공(李公)이 술에 취한다."
"원, 무슨 말씀을, 용두사미로군요."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경청스님이 손해본 것은 묻질 않겠다. 그대 납자들이여!무엇이 명교스님이 손해본 곳이더냐? 가려낼 사람이 있다면 문수의 머리는 하얗고 보현의 머리는 까맣겠지만, 가려내지 못한다면 오늘은 내가 손해를 보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늑담( 潭)스님이 편지를 보내오자 그 일로 상당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5조 사계(五祖思戒)스님이 지문(智門)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덕산(德山)스님에게 도착하였더니 원명(圓明)스님이 편지를 받고는 물었다.
'이것은 지문(智門)스님의 것이니 어느 것이 바로 심부름꾼의 것이냐?'
오조스님은 곧장 올라가 덕산스님을 보면서 말하였다.
'앞 사람을 보려 한다면 우선 심부름꾼을 관찰하십시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산 너머로 연기만 보아도 바로 불이라는 것을 알았다는데 나는 그에 비해 얼마나 다행인가. 늑담스님께서 영광스런 편지를 멀리 보내와 내 마음을 자상하게 위로해 주시니 실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받는다. 더구나 스님께서는 바다같은 학문에 훤히 밝고 고금에 박식하게 통달한 사람이 아닌가. 하늘의 일월을 높이 떠받들고 사람을 가르치는데 게으름이 없었다 할 만하다. 나는 또 무슨 지푸라기같은 사람이기에 이같은 은덕을 입는가."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12.
성절(聖節)에 상당하더니 말씀하셨다.
"오늘은 영광스럽게도 우리 황제가 탄생하신 날이니 온 누리가 모두 축하하고 온 나라에서 공경히 받듭니다. 요임금같은 천명(天命)과 순임금같은 덕은 일월과 똑같이 밝고, 금과 옥같은 자손은 산같이 바다같이 영원히 견고하소서. 만국을 가엾게 여기는 은혜를 베푸시고 다른 나라까지도 은택을 내리소서. 감옥에는 오래 갇혀 있는 죄수가 없게 하고 전쟁하는
말은 소와 양과 함께 골짜기에 놀게 하소서. 문덕(文德)을 닦으시고 무덕(武德)을 쉬어 전쟁을 그만두게 하시니 만민은 우물을 파서 물 마시고 백성은 스스로 농사 지어 밥을 먹으며 집안과 나라는 편안하고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눈이 내리자 상당하더니 말씀하셨다.
"눈은 송이송이 다르지 않고 어지럽게 흩날리며 시절에 응하는구나. 알쏭달쏭한 선문답도 모르는데 말뚝을 지키며 토끼 기다리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주랴."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3현3요(三玄三要)와 5위군신(五位君臣)과 4종장봉(四種藏鋒)*과 8방주옥(八方珠玉)을 30년 전에는 다투어 구하느라 저마다 날카로운 기량[機鋒]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태평스러워져 소박순수함으로 되돌아가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다.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른데 흰 구름 깊은 곳이로다. 3의(三儀)와 한 벌 누더기뿐, 만사에 생각 없는데 무얼 염려하랴."
선상을 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5.
영가대사(永嘉大師)는 말하였다.
"강과 바다에 다니고 산과 개울을 건너 스승을 찾고 도를 묻는 것으로 참선이라 하다가 조계의 길[曹溪路]을 알고부터는 생사가 나를 어찌하지 못함을 분명히 알았다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들이여! 어느 것이 돌아다닌 산천이며, 어느 것이 찾아다닌 스승이며, 어느 것이 참구할 선이며, 어느 것이 물을 도이더냐?
회남(淮南)과 양절(兩浙:절강을 중심으로 위 아래 고을)과 여산과 남악에서 운문과 임제가 스승을 구하고 도를 물었고 동산(洞山)과 법안(法眼)이 참선을 하였으니 이는 밖으로 치달려 구하는 것으로서 외도(外道)라 한다. 비로자나 자성으로서 바다를 삼고 반야 적멸의 지혜[智]로서 선을 삼는다면 안에서 구함[內求]이라 하겠지만, 밖에서 구한다면 그대를 쫓아낼 것이며, 5온(五蘊) 안에 안주하여 구하면 그대를 속박하리라. 그러므로 선(禪)이란 안도 아니며 밖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며 없음도 아니며 실제도 아니고 허망도 아니다. 듣지도 못했느냐? '안으로 보고 밖으로 봄이 모두 잘못이며 부처의 도와 마군의 도가 모두 악이다'라고 했던 말을.


별안간 이렇게 되어버림이여
달에 서산에 지는구나
자꾸만 소리와 모습[聲色]을 찾음이여
이름과 모습이 어디에 있는가.
瞥然與�去兮 月落西山
更尋聲色兮 何處名邈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황룡산에서 남긴 어록
[黃龍山語錄]

1.
절에 들어가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황룡산의 경계입니까?"
"어제서야 여기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아직 자세히 보질 못하였다."
"어떤 것이 그 경계에 있는 사람입니까?"
"긴 것은 길고 짧은 것은 짧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도는 의심과 막힘이 없으며 법은 본래 인연을 따르니 일이 어찌 억지로 되랴. 아마도 그렇지 않으면서 그러한 것이리라. 적취암(積翠菴)에 있으면 적취암 사람이라 하고, 황룡산(黃龍山)에 들어가면 바로 황룡장로(黃龍長老)라 한다. 조사의 심인(心印)을 어떻게 알랴. 무쇠소를 만드는 틀과도 흡사하여 도장을 떼면 무늬[印文]가 찍히고 도장을 누르고 있으면 무늬가 뭉개진다. 떼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을 경우엔 또 어떻게 도장을 찍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안개 낀 마을에 3월 비 내리는데 어떤 집 하나만은 색다른 봄이로구나[煙村三月雨 別是一家春]."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방거사(龐居士)가 조리( 籬)를 팔러 다리로 내려오다가 땅바닥에 입을 박고 엎어지자 딸인 영조(靈照)도 아버지 곁에 거꾸러지니 거사가 말하였다.
"너는 무얼 하느냐?"
"아버지께서 땅에 거꾸러진 것을 보고 제가 부축해 드리는 겁니다."
"다행히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 망정이구나."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가련한 사람은 비웃는 줄도 모르고 도리어 가다 말고 진흙탕에서 뒹구는구나. 내가 당시에 보았더라면 이 원수를 한 방망이에 쳐죽였으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은 세상은 출현하여 방편으로 말씀[言詮]을 시설하였으나 조사가 서쪽에서 찾아와서는 입도 뻥긋 않으셨다. 가령 허공에서 놓아버린다면 3천세계(三千世界) 모든 티끌의 낱낱 티끌 가운데 법계를 머금겠지만, 만일 걸음마다 높은 데 오르려 한다면 나귀의 안장은 너의 아버지 아래턱뼈가 아니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큰 도는 중간이 없으니 다시 무엇이 전후가 되며, 긴 허공은 자취가 끊겼는데 어찌 헤아림이 필요하랴. 허공이 이미 이와 같은데 도를 어찌 말하랴. 상근기라면 설명[言詮]을 빌리지 않겠지만 중·하의 부류라면 또 어떻게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한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운문의 한 곡조입니까?' 하자 '납월 25일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오늘이 바로 납월 25일이다. 그대들은 잘 알겠느냐? 잘 모르겠다면 자세히 들으라. 내 여러분을 위해서 거듭 한 번 더 노래하리라.


운문의 한 곡조는 스물 다섯이라
궁상각치우에 속하지 않았네
내 곡조의 유래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남산에 구름 일어나니 묵산에 비 내린다 하리.
雲門一曲二十五 不屬宮南角徵羽
若人問我曲因由 南山起雲北山非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승당앞에서 종을 치면 종이 울리고 법당 위에서 북을 치면 북이 메아리쳐서 3세 모든 부처님이 북소리 속에서 큰 법륜을 굴린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을 하려느냐? 억지로 부리는 어떤 납승이 있어 탁하고 청정함을 모른 채 문득 '동서남북과 사유상하와 오늘은 7, 다음날은 8을 말하며 승당 안에서 밥을 먹고 요사채에서 불을 쪼이거나 혹은 면전에 한 획을 굿기도 한다. 이렇게 했다간 4은(四恩)을 등지리니 그것은 그래도 괜찮다 하겠지만 서쪽에서 오신 눈 푸른 달마를 저버리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황매산(黃梅山)에서 한밤중에 심게(心偈)를 전하고 소실암전(少室巖前)에서 팔을 끊었으니 긁어 부스럼 만들면서 아픔을 모르고 지금까지 시비거리를 만드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7.
월주(越州) 대주(大珠)스님이 지난날에 마조(馬祖)스님을 뵈었을 때 마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얼 하러 왔느냐?"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집을 버리고 생업을 잃었느냐. 왜 머리를 돌이켜 자기 집의 보배창고를 알고 갖질 않느냐."
"무엇이 자기 집의 보배 창고입니까?"
"지금 묻고 있는 자가 그것이다. 그대가 머리를 돌이킨다면 일체가 구족하여 누리고 씀[受用]이 끝도 없어서 다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대주스님은 여기에서 구하는 마음을 홀연히 쉬고 대도량에 앉았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각자에게 자기의 보배창고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용하질 못하느냐. 머리를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다."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한 사람은 아침에는「화엄경」을 보고 저녁엔「반야경」을 보면서 밤낮으로 정근하느라 잠시도 겨를이 없으며, 한 사람은 참선도 하지 않고 논의도 하지 않은 채 헤진 방석을 붙들고 대낮에 졸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를 찾아왔다. 한 사람은 함이 있고 한 사람은 함이 없다. 어떤 사람을 인정해야 옳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공덕천(功德天:毘沙門王의 왕비)과 흑암녀(黑暗女)를 지혜 있는 주인은 둘 다 받질 않는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각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해서 깨달음을 잘 간직[保任]하나니 이 일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너희들은 이 삼매를 부지런히 정진해야 된다'고 하셨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정진이라면 없질 않다만 여러분은 무엇을 삼매라 하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가섭의 분소의(糞掃衣) 값은 백천만금이고, 전륜왕 상투 속의 보배는 반푼어치도 못된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제는 죽을 지나치게 늦게 먹더니 오늘은 또 죽을 너무 일찍 먹는구나. 이는 주지하는 사람의 위엄스러운 명령이 근엄하질 못해서이냐, 아니면 일 보는 사람[執事人]의 몸과 마음이 게으르기 때문이냐? 대중들은 한번 판단해 보라. 법도가 혼란해지고 나면 모든 일이 들쑥날쑥하며 한 사람이 일을 실수 하면 여러 사람이 불안해진다. 절 내외의 1,2백 사람들은 곡좌(曲坐)가 이미 그 지위에 있으니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낱낱이 가까이 목전에서부터 반조하고 되돌아보아야만 하며 일을 경솔히 하고 대중을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이처럼 할 수만 있다면 낱낱이 원각(圓覺)이며 걸음마다 도량이다. 어찌 밖에서 천착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랴."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달마는 서쪽에서 십만 리를 찾아와 소림에서 팔구년을 면벽했는데 오직 신광(神光:이조 혜가)이 이 뜻을 알고 묵묵히 3배(三拜)하여 헛되게 전하지 않았다. 후대의 아손은 정각(正覺)을 잃고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으며 삿된 말을 숭상하여 죽는 날에 이르러선 빚진 원수같은 몸으로 황천에 들어가는구나."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불자로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눈이 있으면 모두 보고 귀가 있으면 다 들었을 것이다. 이미 보고 들었으니 말해 보라. 무엇을 들었는지를. 만학이든 초학이든 분명하고 분명하게 설파해야만 한다. 우리 부처님께선 마갈타국에서 이 법령을 직접 시행하였고, 28조사는 차례차례 전수하였다.
그 뒤 석두(石頭)와 마조(馬祖)스님에 이르러선 망아지 한 마리가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인 격이고, 임제와 덕산의 몽둥이와 할은 우뢰와 번개처럼 빨랐다. 뒤의 법손은 변변치 못하여 그 법령을 내세우긴 했으나 시행하진 못하고 화려한 언구만 드러냈을 뿐이다.
내가 세간에 태어난 시대는 말세운에 해당하여 다 망가져가는 법고(法鼓)를 치고 떨어져 버린 현묘한 강령을 정돈하였다. 여러분은 중간에 여러 해를 매어둔 채 보내지 말라. 4대해(四大海)의 물이 여러분의 머리 위에 있음을 알아야만 하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한 스님이 건봉(乾峰)스님에게 물었다.
"시방 제불의 한 길 열반문이라 하였는데 그리로 가는 길목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건봉스님은 주장자로 가르키면서 말하였다.
"여기에 있다."
그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청하였더니 운문스님은 부채를 잡아 일으키면서 말하였다.
"부채가 껑충 뛰어 33천에 올라 제석(帝釋)의 콧구멍에 부딪치고 동해의 잉어가 한 방망이를 치니 비가 동이물을 붓듯 쏟아지는구나. 알겠느냐, 알겠어?"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건봉스님이 한 번 지적한 일은 초학자[初機]를 위한 자상한 방편이며 운문스님에 와서야 변화에 통하여 후인들이 게으르지 않게끔 하였다. 여러분은 두 분 스님의 뜻을 깊이 캘지언정 두 분의 말씀을 좇진 말라. 뜻을 얻으면 바른 길로 되돌아와 집으로 돌아 가려니와, 말을 찾는다면 삿된 길로 미끄러져 더욱 멀어지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정(妄情)이 다하여 진상(眞常)이 그대로 드러나고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하면 바로 여여한 부처라 하였다.
이는 옛사람이 먹다 남긴 국이고 쉰 밥이긴 하나 상당한 사람들이 먹질 못하고 있다. 내가 이 말을 들먹였으니 손해가 적지를 않구나. 점검해낼 사람이 있다면 바로 부처의 병과 조사의 병을 알리라. 만일 점검해내지 못한다면 섬부(陝府)의 무쇠소*가 천지를 삼키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게송

조주감파
趙州勘破
(*조주스님이 사는 오대산에 들어오는 길가에 노파가 있으면서 납자들이 오다가 "오대산은 어디로 갑니까?"하고 물으면 "곧장가시오"하여 그가 서너 걸음 내딛으면 "멀쩡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군"하였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은 "내가 직접 간파해 보리라"하였다. 이튿날 가서 그렇게 물으니 노파는 여전히 그렇게 대답하는지라 스님은 돌아와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내 그대들을 위해 그 노파를 간파했다.)


총림에서 걸출한 조주여
노파를 간파한 일, 이유가 있었구나
지금 세상이 거울처럼 맑으니
길 가는 사람은 길과 원수맺지 말지어다.
傑出叢林是趙州 老婆勘破有來由
而今四海淸如鏡 行人莫與路爲


한유시랑이 태전스님을 봄
韓愈侍郞見大顚
(태전스님에게 한유가 물었다. "제자는 군주(軍主)에 일이 많으니 긴요한 말씀 한마디를 일러주십시오."스님이 잠자코 있자 문공(한유)이 어리둥절하거늘 삼평(三平)이 시자로 있다가 선상을 3번치니 스님이 "무슨뜻인고?"하자 삼평이 "먼저 선정으로써 동(動)하고 나중에 지혜로써 뽑아 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문공이 삼평에게 절을하고 사례하면서 "화상의 가풍은 높고 거세어 제자는 시자에게서 들어갈 자리를 얻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일등가는 종사(宗師)가 가풍을 펴서
정성을 다한 법문으로 한공(韓公)을 위했으니
사자 굴 속에는 다른 짐승 없고
코끼리왕 가는 곳 여우 자취 끊겼네.
宗師一等展家風 盡情施設爲韓公
師子窟中無異獸 象王行處絶狐

보수스님이 개당을 하니 산성스님이 어떤 스님을 밀침
寶壽開堂三聖推僧

(보수스님이 개당하는 날 삼성스님이 중 하나를 밀어냈다. 보수스님이 그를 때리자 "그런 식으로 사람을 위해서야 그 중만 눈멀개 할 뿐 아니라 진주성 사람을 온통 눈멀게 할 것이다" 하자 보수스님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보화왕좌(寶華王座)에 처음 오를 때
삼성이 한 스님을 밀쳐 대중의 의심 결단했네
방망이 끝엔 분명히 노소가 없는데
천하에 눈먼 사람들 몇이나 알랴.
寶華王座始登時 三聖推僧決衆疑
棒頭分明無老少 天下盲人幾箇知


비마암스님이 곽산스님이 찾아온 인연을 봄*
秘魔巖見�u山到因綠

(* 오대산 비마암 스님은 항상 나무 집게[木枚] 하나를 들고 있다가 납자들이 와서 절을하면 목덜미를 집고 말하되 "어느 마군이가 너를 중을 만들었으며 어느 마군이가 너를 행각하게 했는가? 대답을 하더라도 집어서 죽이고 못하더라도 집어서 죽이리라. 속히 말하라"하였다. 그때 곽산스님이 와서 품안으로 뛰어드니 비마암스님은 등을 세 차례 문질렀다. 곽산스님이 튀어나가 손을 들고 말하기를 "삼천리밖에서 나를 속였구나" 하였다.)

사숙과 조카 서로 만나 둘 다 꺼릴 것 없거늘
마침내 등을 어루만져 바보짓을 하였네
머리를 돌이키니 사람들이 비웃을까 두려워
천리 밖에서 나를 속이러 왔다 하네.
叔姪相逢兩不猜 到頭撫背似癡
廻首恐人生怪笑 報云千里 余來

임제스님이 삼성스님에게 부탁함
臨濟屬三聖

(임제스님이 세상을 뜰 때 삼성스님이 원주로 있었는데 임제스님이 상당하여 말하기를 "어찌 감히 스님의 정법안장을 멸망케 하겠습니까?"하였다. 이제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갑자기 누군가가 물으면 그대는 무었이라 대답하겠는가?" 하니, 삼성스님이 말하기를 "갑자기 누군가가 물으면 그대는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하니, 삼성스님이 할을 하거늘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당나귀에게 멸망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하였다.)

열반[圓寂]으로 돌아가려 하며 이별의 마음 펼 때
정법안장을 잘 지니라 간곡히 당부하였네
할(喝) 소리에 진흙탕 길 열리지 않으니
이로부터 눈먼 나귀 타는 사람 적었으라.
圓寂將歸 別時 法眼好任持
喝下不開泥水路 驢從此少印騎

영운스님이 복사꽃을 보고 도를 깨달음*(3수)
靈雲見桃花悟道

(복주(福州) 영운 지근(靈雲志勤)스님이 위산에서 복숭아꽃을 보고 깨닫고는 시를 한수 읊었다. 30년 동안 검(劍)을 찾던 나그네/몇 차례나 잎지고 가지 돋았는가. 복사꽃을 한차례 본뒤로는/오늘까지 다시는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는 위산스
님에게 이야기하니 위산스님이 "인연따라 깨달으면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리니 잘 간진하라" 했다. 어떤 스님이 현사스님에게 이야기하니 현사스님이 말하되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나 노형께선 아직 철저히 깨닫지 못했다고 확신하노라"하였다. 대중이 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므로 현사스님은 지장스님에게 묻되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지장스님은 "계침(桂琛)이 아니었다면 세상 사람들을 몹시 바쁘게 했을 것이니라" 하였다.)

2월 3월엔 햇빛도 따사롭더니
여기저기 복사꽃 나무마다 붉었어라
종장(宗匠)은 깨달아도 철저하지 못하여
지금도 여전히 봄바람에 벙글거리네.
二月三月景和融 遠近桃花樹樹紅
宗匠悟來猶未徹 至今依舊笑春風

용과 코끼리[龍象] 서로 만남 세상에 드물어
한 번 오고 한 번 감에 친소가 나타나네
요즘 사람 그 속의 뜻 깨닫지 못하고
잎을 따고 가지 찾아 객진(客塵)을 키우네.
龍象相逢世不群 一來一去顯疏親
時人不悟其中旨 摘葉尋枝長客盡

한 번 복사꽃 보더니 다시는 의심치 않았는데
총림에선 깨닫지 못했다고 옳다 그르다 하네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 사심없는 한 기운이라야
마른 나무에서 다시 싹 트게 할 수 있음을.
一見桃花更不疑 叢林未徹是兼非
須知一氣無私力 能令枯木更抽枝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름*(2수)
國師三喚侍者

(남양 혜충국사가 시자를 불러 시자가 네!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세 번을 불러
세 번을 대답하니 국사가 말하기를 "내가 너를 저버린다 하렸더니 네가 나를 저버
리는구나" 하였다.)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르니
풀을 헤침은 뱀을 놀라게 하려 함 뿐이었네
뉘라서 알랴. 산골물 푸른 소나무 아래
천 년 묵은 복령(茯 : 버섯의 일종)이 있음을.
國師三喚侍者 打草祗要蛇驚
誰知澗底靑松下 有千年茯

국사는 말을 꺼냈다 하면 헛소리를 낸 적 없은나
시자를 세 번 불렀어도 소식이 없었구료
평생에 속마음을 남에게 기울였으나
알고 지냄이 모를만 못하였네.
國師有語不虛施 侍者三喚無消息
平生心膽向人傾 相識不如相識


조주스님의 '차나 마시게'*(2수)
趙州喫茶
(조주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묻기를 "여기에 왔던적이 있던가?"하여 "그렇습니다"하면 "차나마시게" 하였다. 또 다른 스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여 이번에는 "왔던 적이 없습니다"하면 이 때도 역시 "차나 마시게"하였다. 이에 원주가 뭍기를 "어째서 왔던 이도 차를 마시게하고 온 적이 없는 이도 차를 마시게 합니까?" 하니 스님이 "원주야!" 하고 불러 원주가 대답하거늘 "차나 마시게" 하였다.)


조주가 사람 시험한 분명한 경계
무심코 입을 열어도 바로 속마음을 알았네
얼굴을 마주할 때 푸른 눈 없었더라면
종풍이 어찌 지금에 이루렀으랴.
趙州驗人端的處 等閑開口便知音
面若無靑白眼 宗風爭得到如今

서로 만나 묻고는 내력을 알아
친소를 가리지 않고 바로 차를 주었네
돌이켜 기억하니 바쁘게 왕래한 자들이여
바쁜 중에 뉘라서 항아리에 가득한 꽃향기를 알았으리.
相逢相問知來歷 不揀親疏便與茶
蒜 憧憧往來者 忙忙誰辨滿 花

뜰 앞의 잣나무*(3수)
庭前伯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자 "뜰 앞 잣나무니라" 하였다.)

 

조주가 뜰 앞의 잣나무를 말하니
납지들이 고금에 서로 전하였네
잎을 따고 가지 찾아서 이해를 했다 해도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루지 못함을 어찌 알랴.
趙州有語庭前柏 禪者相傳古復今
摘葉尋枝雖有解 那知獨樹不成林

짙푸른 뜰 앞의 잣나무 조사의 마음 보이니
조주의 이 말씀 총림에 퍼졌네
구비서린 뿌리는 절개지켜 기름진 땅에 섰으니
납자들이여, 틀 밖에서 찾는 일을 쉬게나.
庭柏蒼蒼示祖心 趙州此語播叢林
盤根抱節在金地 禪者休於格外尋

온갖 나무는 시절 따라 시들기도 하지만
조주의 잣나무는 영원히 무성하네
서리를 견뎌내고 절개를 지킬 뿐 아니라
맑은 바람 맞으며 밝은 달 마주함이 얼마이던고.
萬木隨時有凋變 趙州庭樹鎭長榮
不獨凌霜抱貞節 幾奏淸風對月明

여릉의 쌀값*
廬陵米賈
(청원 행사 스님에게 한 스님이 불법의 요지를 물으니 "여릉(강서성 부근으로 쌀의
주산지)에는 쌀값이 얼마냐 하더냐?" 하셨다.)


여릉의 쌀값은 해마다 새로운데
길 가다가 듣는 헛된 말 다 진실은 아니라네
큰 뜻은 꼭 갈림길에서 물을 것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하며 본래의 행인을 보아야 하리.
廬陵米賈逐年新 道聽虛傳未必眞
大意不須岐路問 高低宜見本行人


수미산
須彌山

선지식은 자재로와 결코 헛되지 않아서
근기에 맞추어 수미산을 뿜어냈다네
서로 쫓아가며 해마다 길에서 시달리네.
作者從橫終不虛 應機踊出須彌盧
人窮不到金剛際 相逐年年役路途


북두에 몸을 숨김
北斗藏身
(한 스님이 운문 스님께 묻기를 "무엇이 법신을 꿰뚫는 도리입니까? 하자 "북두
에 몸을 숨기느니라"하였다.)


하늘에 있는 별 모두 북두로 향하고
땅 위의 물은 모두 다 동해로 빠진다
요즘 사람 몸을 숨길 곳 알려 한다면
키[ 箕]들고 딴 곳에서 방아 찧어야 하리.
天上有星皆拱北 人間無水不朝東
時人若識藏身病 拈取 箕別處春


위산스님의 물빛 암소*(3수)
山水 牛
(위산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내가 죽은 뒤엔 산 밑 마을에 가서 한 마리 물
빛 암소가 되어 왼쪽 겨드랑이 밑에 '위산의 중 아무게'라 쓰겠다. 그때 만일
위산이라 하면 암소를 어찌하여 암소라 하면 내 이름은 어찌하겠는가?" 그러자
앙산 스님이 나와 절을 하고 물러갔다.)


옛날 위산에 물빛 암소 있더니
지금은 늙어 거친 언덕에 누웠네
겉모습은 엉성하여 힘은 없어도
물 먹이니 여전히 좋은 소라오

사방의 푸른 들에 마음대로 놓아주었다가
천봉(千峰)에 눈이 하얗거든 재빨리 거두네
시절에 맞추어 들고 놓을 수 있다면
사방 가득한 뽕밭인데 무슨 근심을 하랴.
昔日 山有水 而今老倒臥荒丘
形容貞立雖無力 灌啖依前是好牛
四野草靑隨處放 千峰雪白早須收
若能擡擧及時節 極目桑田何用憂

천군만대(千群萬隊)의 물빛암소도
위산의 한 마리에서 벗어나진 않네
무심히 몸에 지니면 항상 현전(現前) 하려니와
마음을 내서 찾는다면 찾지 못하리
크지도 작지도 않으나 근력은 있어
한 몸에 두 이름, 아는 사람 적어라
인연 따라 놓아주니 초목은 푸르고
늦은 석양에 거두니 천지가 어둡다네
끌고 놓아줌은 코 끝의 고삐여야만 하니
고삐 얻지 못하면 잡을 도리 없으리
고삐 없는 많은 세상 사람들
빤히 보면서도 이 도둑소를 놓쳐버렸네.
天群萬隊水 牛 不出 山這一隻
無心管帶常現前 作意追尋尋不得
不大不小有筋力 一身兩號少人識
隨綠放去草木靑 遇晩收來天地黑
收放須得鼻頭繩 若不得繩無準則
世間多少無繩人 對面走却這牛賊
위산의 물빛암소 뼈만 앙상하여
철 따라 털옷을 바꾸어 입는다
동자는 뿔에 받힐 줄 모르면서
덜렁대는 마음으로 별안간 허리에 타고서
홀연히 그림자를 가이없이 희롱하다가
모르는 곁에 몸 뒤집혀 구렁창에 빠져버렸네
곧장 일어났으나 소는 간데 없어지고
온몸은 진흙 속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네.
山水 骨羸錐 改變毛衣隊四時
童子未知攀角上 序心便要驀腰騎
忽然弄影無邊際 不覺蒜身墮

납자에게 주는 글
示禪者

남북을 분간 못하고
천지를 속이면서
현묘한 도리를 논함은
당나귀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南北不分 欺天罔地
說妙談玄 驢鳴狗吠

전대도에게 답함
和全大道

음광(飮光)존자는 한량 없는 세월을 좌선하였고
포대(布袋)화상은 일생동안 정신이 빠졌다
학질 걸린 개는 천상에 태어남을 원치 않고
도리어 구름 속의 백학(白鶴)을 비웃네.
飮光論劫坐禪 布袋終年落魄
疥狗不願生天 却笑雲中白鶴

남악의 높은 누각에서 납자에게 주는 글
南嶽高臺示禪者

풀을 헤치고 바람을 맞아 삿됨과 바름을 가려내려면
우선 눈[眼]속의 모래를 집어 내게나
머리를 들고 천황(天皇)스님의 떡을 맛보면
빈 마음으로 조주스님의 차 마시기는 어려우리
남전(南泉)스님은 말 없이 방장실로 돌아가고
영운(靈雲)스님은 복사꽃 보고 깨달아 오도송 읊었네
처음부터 나를 위해 고친 글[雌黃]을 꺼내어
총림의 올바른 선지식을 보려 해야 한다.
撥草占風辨正邪 先須拈却眼中沙
擧頭若味天皇 虛心難喫趙州茶
南泉無語歸方丈 靈雲有頌悟桃花
從頭爲我雌黃出 要見叢林正作家
남악에서 수납자를 전송함
南嶽送秀禪者

인공(人空)과 법공(法空)을 깨닫고
문득 나를 하직하고 수많은 봉우리를 떠나려 하는구려
아 - 아!그대의 지견(知見) 아직 통달치 못하였으니
인연 따라 시설해선 실로 통하기 어려워라
연못에 비친 달을 마음에 두어 붙들지 말고
절개를 지녀 눈 맞은 소나무를 속여야 하네
여기를 떠나 안온한 곳을 알려는가
천태(天台)와 안탕(上蕩)은 강동(江東)땅에 있다네.
悟得人空與法空 便擬辭予出亂峯
嗟汝見知猶未達 任錄施設信難通
在心勿守澄潭月 秉節須欺帶雪松
此去欲知安穩處 天台上蕩在江東

황벽산 초유나에 부침
寄黃檗初維那

방망이를 얻어맞고는 단제(황벽)스님을 붙들어 도와주었고
병을 걷어차고는 그 자리에서 위산 스님을 얻었다네
시비거리는 총림의 입을 식히지 않았는데
무슨 사건이 세간에 가득 퍼지나.
喫棒祗因扶斷祭 甁當下得 山
是非未寒叢林口 何事流傳滿世間
운전좌에게 주는 글
示雲典座

훌륭하신 우리 황제의 도 순박하여
순조로운 비와 바람 곳곳에 들리네
채소밭 푸른 채소에 벼는 벼대로 익으니
때맞은 변통은 모조리 그대 덕분이라네.
當今明聖道唯淳 塊雨條風處處聞
園裡菜靑禾又熟 時中通變盡由君

남악의 파초암 주인에게 부침
寄南嶽芭蕉庵主

영원(靈源)에서 헤어진 후 또 한번의 봄을 맞으니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나 만날 길 없음이 한스러워라
대사껜 파초를 심는 비결 있으니
다음 사람을 뽑아서 전수하는 일 삼가시오.
一別靈源又一春 欲期再會恨無因
吾師有種芭蕉訣 愼莫傳持取次人

절에서 물러나 여산을 이별함
退院別盧山

10년 여산 살던 중이
하루아침에 층층 바위를 나오네
옛 친구와 강가에서 이별하는데
와로운 배는 날아오르는 학을 실었네
물결은 강언덕을 따라 구비치고
돛은 바람 부는대로 휘어지니
가고 머뭄에 본래 집착이 없어
선가에선 사랑과 미움이 끊어졌다오.
十年廬嶽僧 一旦出巖層
舊友臨江別 孤舟帶鶴登
水流隨岸曲 帆勢任風騰
去住本無著 禪家絶愛憎

옥산으로 되돌아가는 사백을 전송함
送師伯歸玉山

오실 땐 가을바람 불더니
가실 땐 봄바람 이는군요
바람의 성품 본래 집착이 없듯
사백의 마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옛 절 되돌아가 옥산을 그리워하시니
아득히 천리길이군요
떠나보내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득히 넘실대는 텅 빈 강물뿐이군요
來時秋風生 去時春風起
風性本無著 師心亦復爾
舊寺歸懷玉 千百里
送別何所談 浩渺空江水

앙산 원감원에게 베장삼으로 보답함
酬仰山圓監院布衫

먹물옷 난삼[ 衫]을 누가 알아보랴
소매 끝과 옷깃이 퍽이나 잘 어울리네
조주는 일찍이 일곱 근의 무게를 보였고
동산[洞上]에선 두팔기(竇八機)를 온전히 제창했다오
칠하지 않은 산색 물색은 눈에 넘치고
단엄한 몸은 지조를 기대할 만하구려
자재롭게 염부제를 붙어 살면서
도리어 요란한 서리바람 비웃는다오.
墨 衫誰辨別 袖頭打領頗相宜
趙州曾示七斤重 洞上全提竇八機
溢目不粧山水色 嚴身堪作歲寒期
綜橫著在閻浮世 蒜笑霜風遼亂吹

훈·안 두 납자를 전송함
送勛顔二禪者

선(禪) 밖엔 별다른 일 없어
봄기운 타고 수려한 물로 가는구나
나에게 반게(半偈)를 구하고
나아가서 고달픈 중생을 위로한다네
해가 나오니 안개 구름 흩어지고
바람이 훈훈하니 초목이 무성하다
거듭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랴
법마다 본래 원만히 이루어진 것을.
禪外無餘事 乘春秀水行
就予求半偈 前去慰勞生
日出雲霞散 風和草木榮
何須重話會 法法本圓成

부가 한두 번 나와서 문병한 데 대해 감사드림
謝富一二修造問病

어리석음을 따라 애욕이 있으니
곧 나의 병 생겼고
유마가 모범을 보이자
문수가 이윽고 떠났네
지·수(地·水)가 서로 어긋나
화·풍(火·風)이 서로 부딪쳐
각각 어울리는 곳 없는데
어찌 분별해 앎을 용납하랴
오가는 말은 다함 있어도 생각은 다함이 없어
달은 차가운 연못에 교교한데 가을 이슬은 방울방울 맺히네.
從癡有愛 則我病生
淨名垂節 文殊遂行
地水相違 火風相擊
名無所從 寧容辨識
分飛言盡意不盡 月皎寒潭秋露滴

착유나를 전송함
送著維那

청정한 원력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소매를 걷어부치고 다시 미혹한 뭇중생 교화하는구려
떠나보내며 오직 보름달에 부탁할 뿐이니
밤마다 같이 다니지만 다른 시내에 이르리다.
淸淨願力心未捨 卷衣又出化群迷
送行唯託金論月 夜夜相隨到別谿

스스로 초상화에 찬을 지음
自述眞讚

한 납자가 나의 초상화를 그려놓고는 나에게 찬문(讚文)을
청하였다. 아 - 아! 그리는 것도 잘못이거니와 찬을 지음
은 더더욱 잘못이로다. 고집스런 명령 바꾸지 않기에 이에
그 뜻에 따라준다.

한 폭의 하얀 명주에
울긋불긋 나를 닮게 그려놓고
나의 모습이라 말하나
그 도적이로다
나의 진면목은 모양 없으니
나의 모습 그려낼 수 없도다
꿈 속에 번개 같은 세월 쉰 한 살이고
고향은 옥산(玉山), 속성은 장(章)씨라오.
一幅素繒 丹靑模勤
謂吾之眞 乃吾之賊
吾眞匪狀 吾貌匪狀
夢電光陰五十一 桑梓玉山俗姓章

늑담의 월장로가 짚신을 보내주신 데 대해 보답함(2수)
酬 潭月長老惠草履

그때 서쪽 조사가 일찍이 남겨놓더니
오늘은 스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구려
짚신을 마주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나 누가 나를 알겠소
달 밝은 밤 신고서 묘고대(妙高臺)에 오릅니다.
當年西祖曾留下 今日蒙師特惠來
覩物思人孰知我 月明著上妙高臺

뼈 찾고 살 찾는 마음 죽지 않았는데
그 때에 한 번 신었는데 다시 무얼 부러워하랴
지금은 2백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으니
마음 알아주는 벗이 아니면 들고 오지 않으리.
尋骨尋皮心未灰 當年一著更何猜
而今二百年前事 不是知音不擧來

절땅으로 들어가는 영·통 두 납자를 홍주에서 전송함.
洪州送永統二禪人入浙

황벽은 마음 물었으나 마음 다하지 않고
홍도(洪都)에서 송별하니 이별이 가볍지 않아라
옛 산으로 돌아갈 날 의론할 겨를 없어
그대 위해 배회하며 가는 길 말한다네
숲 속의 흩날리는 낙엽은 옷에다 찬란함을 다투고
고향의 다듬이소리는 지팡이소리와 뒤섞이리
물물마다 내 집 물건이니
티글 생각[情塵]으로 일일이 밝음을 취하려 하지 말라.
黃檗問心心不盡 洪都送別別非輕
舊山未暇論歸日 爲爾徘徊說去程
林葉 紛衣鬪爛 鄕砧 亮錫交聲
頭頭總是吾家物 莫把情盡取次明

황룡으로 가는 이를 전송함
送人之黃龍

지난날 봉령(鳳嶺)에서 봉황의 털을 얽고
강서와 남악에서 유람을 쉬었다오
이제 황룡(黃龍)의 뿔을 잡으려는가
몸에다가 칠성도(七星刀)를 비껴차야 하리라.
鳳嶺昔曾綴鳳毛 江西南嶽罷遊
而今欲 黃龍角 橫身須佩七星刀

화납자를 전송함
送和禪者

비로자나의 성품은 청정하나
청정은 지킴을 필요치 않네
헤지고 때 묻은 옷 입고
세속에 들어가 간탐과 소유를 타파하라
5·6·7·8·9
남쪽을 향해 북두칠성을 보라
이 가운데 현묘함을 얻는다면
마음대로 포효하게 하리라.
毘盧性淸淨 淸淨不須守
宜著弊垢衣 人俗破�h有
五六七八九 面南看北斗
此中若得玄 縱橫任哮吼

주납자를 전송함
送周禪者

붙잡아 일으키면 쓰러지고
뒤집으면 엎어지는구나
세속[假]을 따르고 진제[眞]를 따르며
그것에게 값을 되돌려주라
사자는 기지개를 켜고
코끼리왕은 되돌아보며
붉게 타오르는 햇빛 속에
구름은 날고 안개는 일어난다
천차만별을 앉은 자리에서 끊고
가만히 요로(要路)를 여니
대장부라면 죽은 토끼는 잡지 말라.
扶起放� 蒜來覆去
隨假隨眞 還伊價數
師子嚬呻 象王廻顧
赤日光中 騰雲起霧
坐斷千差 密開要路
大丈夫漢 莫打死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