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구법승의 기록/남해기귀내법전

남해기귀내법전 제2권

실론섬 2023. 2. 20. 02:04

남해기귀내법전 제2권
南海寄歸內法傳卷第二

10. 의식소수(衣食所須)

 

무릇 의지함이 필요한 누추한 몸은 옷과 음식의 도움을 빌려야 비로소 생명을 건져갈 수 있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묘한 지혜는 적멸(寂滅)의 진리에 의거해야만 비로소 흥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것이 율의에 어긋난다면 곧 걸음걸음마다 죄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투명하게 맑은 마음이 궤도(軌道)를 잃게 되면 생각생각마다 미혹됨을 이루게 될 것이다.
原夫有待累形,假衣食而始濟;無生妙智,託滅理而方興。若其受用乖儀,便招步步之罪;澄心失軌,遂致念念之迷。

 

이런 이유 때문에 의식(衣食)을 수용하는 가운데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성인의 말씀에 순응해서 수용하여야 하며, 투명하게 맑은 마음이 있는 곳에 자리 잡아 진리를 실현하는 사람은 선대의 가르침에 부합함으로써 마음을 투명하고 맑게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모름지기 아래로 굽어 인생을 살펴보면 그것이 곧 길 잃은 중생들의 감옥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적멸의 언덕이 밝혀져 깨달음과 적막의 빈 관문이 됨을 쳐다보고 그것이 오적(悟寂)의 빈 관문이 됨을 알아야만 비로소 고해의 나루터에 법의 배[法舟]를 띄울 수 있고 오래 지속되는 어두운 밤에 지혜의 횃불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爲此於受用中求脫者,順聖言而受用;在澄心處習理者,符先敎以澄心。卽須俯視生涯是迷生之牢獄,仰睎寂岸爲悟寂之虛關,方可艤法舟於苦津,秉慧炬於長夜矣。

 

그러나 의복의 제작이나 음식의 법도에 있어서 만약 그것이 계율을 지킨 것인지 범한 것인지를 환하게 밝히려 한다면 계율에 만들어진 법칙이 있기 때문에 처음 배우는 무리라도 역시 무겁고 가벼운 차이를 알게 된다. 이것은 곧 그 득실이 사람마다 따로 한정되어 있기에 원래 번거롭게 비교하고 헤아려 정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두드러지게 율검(律檢)에 어긋남으로써 장차 지남석(指南石)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하게 한다.
然於所著衣服之製、飮食之儀,若持犯昞然律有成則,初學之輩亦識重輕。此則得失局在別人,固乃無煩商攉。自有現違律撿而將爲指南。

 

혹 사람들은 익혀온 풍속대로 사는 것이 상도(常道)이니 거기에 허물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는 서쪽 나라에 태어나셨기에 그곳에서 출가한 사람은 서쪽 나라의 형식과 행동에 근거하게 되지만 우리처럼 동천(東川)에 살면서 속가를 떠난 사람들은 동천의 궤칙(軌則)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중국의 고상한 복장을 바꾸어 인도의 색다른 풍속을 받아드릴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기도 한다.
或可習俗生常謂其無過;或道佛生西國,彼出家者依西國之形儀,我住東川,離俗者習東川之軌則,詎能移神州之雅服,受印度之殊風者。

 

잠시 이러한 무리들을 위하여 대강 가려 뽑은 것이다. 무릇 이 의복의 율의는 곧 출가한 사람의 강요(綱要)이니 이치로 따져도 반드시 그 제작의 법도를 으뜸으로 삼아야 하는데 어찌 가볍게 보고 모든 것을 생략할 수 있겠는가? 또한 법중(法衆)들의 3의(衣)와 같은 것은 오천축국에서는 모두가 자엽(刺葉:여러 개의 천을 바느질하여 꿰매는 것)을 하는데 오직 동하(東夏)에서만은 벌려둔 채 바느질하지 않는다.
聊爲此徒,粗銓衡也。凡是衣服之儀,斯乃出家綱要,理須具題其製,豈得輕而略諸。且如法衆三衣,五天竝皆刺葉,獨唯東夏開而不縫。

 

내가 몸소 『사분율(四分律)』을 행하는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 물어보았더니 모두가 같이 자엽(刺葉)한다 하였고 그냥 벌려두는 곳은 전혀 없었다. 서방에서 만약 중국의 법복을 얻게 된다면 꿰매야만 걸칠 수 있게 된다. 여러 부의 율문에도 모두 자합(刺合)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몸에 충당되는 여섯 가지 물건에도 나름대로 엄격한 조문이 있으며 13자구(資具)에 대한 상세한 것은 율장의 설명과 같다.
親問北方諸國行四分律處,俱同刺葉,全無開者;西方若得神州法服,縫合乃披。諸部律文皆云刺合。然而充身六物,自有嚴條;十三資具,廣如律說。

 

6물(物)이라 말하는 것은 첫째는 승가지(僧伽胝)번역하면 복의(複衣)이다며, 둘째는 올달라승가(嗢呾囉僧伽)번역하면 상의(上衣)이다이며, 셋째는 안달바사(安呾婆娑)번역하면 내의(內衣)이다이다이 세 가지 옷은 모두를 지벌라(支伐羅:法服)라고 부른다.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흔히 법의를 가사라 부른다. 이것은 빨간 색의 옷이란 뜻이며 율법의 문전에 나오는 말은 아니다. 넷째는 바달라(波呾囉)발우를 말한다이며, 다섯째는 니사단나(尼師但那)좌와구(坐臥具)이다이며, 여섯째는 발리살라벌나(鉢里薩囉伐拏)물을 걸러내는 수라(水羅)이다. 계를 받을 때는 반드시 이 여섯 가지 물건을 갖추어야 한다이다.
言六物者:一僧伽胝譯爲複衣也、二嗢呾囉僧伽譯爲上衣也、三安呾婆娑譯爲內衣也。此之三衣皆名支伐羅。北方諸國多名法衣爲袈裟,乃是赤色之義,非律文典語、四波呾囉鉢也、五尼師但那坐臥具也、六鉢里薩囉伐拏濾水羅也。受戒之時要須具斯六物也。

 

다음 13자구(資具)라고 하는 것은 첫째 승가지, 둘째 올달라승가, 셋째 안달바사, 넷째 니사단나, 다섯째 군(裙), 여섯째 부군(副裙), 일곱째 승각기(僧脚崎)엄액의(掩腋衣)라 한다, 여덟째 부승각기(副僧脚崎), 아홉째 식신건(拭身巾), 열째 식면건(拭面巾), 열한째 체발의(剃髮衣), 열두째 복창개의(覆瘡疥衣), 열세째 약자구의(藥資具衣)이다.
十三資具者:一僧伽胝、二嗢呾囉僧伽、 三安呾婆娑、 四尼師但那、 五裙 、 六副裙、 七僧腳崎掩腋衣也、 八副僧腳崎、九拭身巾、 十拭面巾、 十一剃髮衣、十二覆瘡疥衣、 十三藥資具衣。

 

게송으로 말한다.
頌曰:

 

삼의와 좌구(坐具)와
군(裙)과 배자는 각각 두 개씩 있고
몸과 얼굴 닦는 수건과 머리 깎을 때 입는 옷과
부스럼 가리고 약 달일 때 입는 옷이라네.
三衣幷坐具,
裙二帔有兩,
身面巾剃髮,
遮瘡藥直衣。

 

이 열세 가지의 옷은 출가한 스님이 소유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미 거기에는 정해진 격식이 있으니 반드시 가르침에 따라 이를 사용하여야 하며, 이는 그밖에 갖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 열세 가지는 모두 따로 그 일을 기록해 두고 청정한가를 점검해서 잘 보존하고 간직하여야 한다. 얻게 되면 이를 간직하되 자신에게 만족한 모든 것을 아우르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
十三種衣,出家開畜。旣有定格,卽須順敎用之,不比自餘所有長物。此之十三,咸須別牒其事、點淨守持,隨得隨持無勞摠足。

 

그 밖에 남는 옷은 일을 헤아려 분별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주단으로 된 이부자리나 털방석으로 된 자리같은 것은 반드시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이것을 받아 사용한다. 이것을 3의(衣) 10물(物)이라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번역한 사람의 생각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눈 것이며, 범본(梵本)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餘外長衣量事分別,若氈褥毯席之流,但須作其委付他心而受用也。有云“三衣十物”者,蓋是譯者之意離爲二處,不依梵本。

 

따로 3의를 말하고 10물을 분석하여 전개하고 있으며, 그 열 가지의 수효도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의심스런 추측을 하게 하여 모두가 허망한 것에 근거하여 만들었으며, 십(什)을 해석하여 잡(雜)이라 한 것은 선인들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약자구의(藥資具衣)는 부처님께서 이것을 소유하는 것을 정하셨는데 마땅히 명주를 써야 하고 약 2장(丈)이나 혹 1필(疋) 되는 것들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미 병이 생겼는데 평소에 준비된 것이 없다면 갑자기 구해도 구하기가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것을 갖고 있을 것을 정하신 것이며 미리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 이것은 병이 생겼을 때 필요한 것이므로 마땅히 아무때나 문득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
別道三衣、析開十物。然其十數不能的委,致使猜卜皆悉憑虛,訓什爲雜未符先旨。其藥直衣,佛制畜者,計當用絹,可二丈許或可一疋。旣而病起無恒,卒求難濟;爲此制畜,可豫備之。病時所須,無宜輒用。

 

그러나 수행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문(門)에는 그 뜻이 모두를 공통적으로 구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미 근기에 세 가지 구분이 있으니 한정하여 하나의 방법으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4의(依)1)ㆍ4작(作)ㆍ12두다(杜多)2)는 수행이 뛰어난 자[上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축방(畜房)ㆍ수시(受施)ㆍ13자구(資具)는 수행이 보통이거나 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해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욕심이 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득 차서 남아도는 허물이 없게 하고 많이 구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한 허물이 없게 한 것이다. 위대하시구나. 자부(慈父)시여, 능숙하게 근기에 응하시어 인간계와 천계로 훌륭하게 인도하시니 조어자(調御者)라 일컬어졌도다.
然修行利生之門,義在存乎通濟。旣而根有三等,不可局爲一途。四依四作十二杜多,制唯上行;畜房受施十三資具,益兼中下。遂使少欲者無盈長之過,多求者亡闕事之咎。大哉慈父!巧應根機,善誘人天,稱調御者。

1)①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 ②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는 것. ③뜻[義]에 의지하고, 말[語]에 의지하지 않는 것. ④지혜에 의지하고, 의식[識]에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①재아란야처(在阿蘭若處):인가를 멀리 떠나 산속이나, 광야의 한적한 곳에 있는 것. ②상행걸식(常行乞食):

   늘 밥을 빌어서 생활하는 것. ③차제걸식(次第乞食):빈ㆍ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걸식하는 것. ④수일식법

   (受一食法):한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아니하는 것. ⑤절량식(節量食):발우 안에 든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⑥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정오가 지나면 과실즙ㆍ석밀(사탕) 따위도 마시지 아니하는 것. ⑦착폐납의

   (着弊衲衣):헌 옷을 빨아 기워 입는 것. ⑧단삼의(但三衣):중의(重衣)ㆍ상의(上衣)ㆍ내의(內衣) 외에는

   쌓아두지 아니하는 것. ⑨총간주(塚間住):무덤 곁에 있으면서 무상관(無常觀)에 편리케 하는 것. ⑩수하지

   (樹下止):있는 곳에 대한 애착을 없애기 위하여 나무 밑에 있는 것. ⑪노지좌(路地坐):나무 아래서 자면 습기ㆍ

   새똥ㆍ독충의 해가 있으므로 노지에 앉는 것. ⑫단좌불와(但坐不臥):앉기만 하고 눕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공신백일(供身百一)이라 하는 표현은 4부(部)의 율문에는 보이지 않는 표현으로 비록 경전에 그런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이것은 특별한 경우의 내용일 것이다. 일 많은 속인들의 무리라도 오히려 가구(家具)가 50개가 넘지 않는데 인연을 줄여야 하는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도리어 가구가 백의 숫자를 넘기는 일이 어떻게 용납되겠는가? 도리(道理)에 기준해서 증명해보면 통용되는 것과 제약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而云供身百一,四部未見律文。雖復經有其言,故是別時之意。且如多事俗徒家具尚不盈五十,豈容省緣釋子翻乃過其百數?准驗道理,通塞可知。

 

무릇 시견(絁絹:거친 비단과 고운 비단)을 논해보면 이는 곧 성인께서 허용하신 일인데 무슨 일로 억지로 이를 제약하는가? 부질없는 절목(節目)을 위해서 생각으로 이를 단절하고 복잡하게 되는 것을 줄이고자 하지만 오천축국의 사부대중들은 모두가 이를 착용하고 있으니 어떻게 구하기 쉬운 거친 명주를 버리고 찾아도 얻기 어려운 가는 베를 찾아서야 되겠는가? 도를 방해하는 극치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凡論絁絹,乃是聖開,何事强遮徒爲節目,斷之以意欲省招繁。五天四部竝皆著用,詎可棄易求之絹絁,覓難得之細布。妨道之極,其在斯乎。

 

제약할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제약한다는 것이 곧 그러한 유(類)에 속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것은 계율을 지키는 호사자(好事者)로 하여금 자만심을 더 부풀리게 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게 한다. 구함 없이 욕심을 줄이는 사람에게는 안으로 부끄러움이 일어나서 밖으로 얼굴을 붉히게 한다. 이것은 곧 몸을 가로막고 도를 키우는 것이니 또한 다시 무슨 일을 말하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의 뜻은 곧 목숨을 해치는 곳에서 온 사람을 상자(傷慈)의 극치라 하고, 함식(含識:생명체)을 슬퍼하고 가엾게 여기는 일은 도리어 이치상 이것을 단절해야 한다고 한다.
非制强制,卽其類也。遂使好事持律之者,增己慢而輕餘;無求省欲之賓,內起慚而外恧。斯乃遮身長道,亦復何事云云。而彼意者,將爲害命處來,傷慈之極。悲愍含識,理可絕之。

 

만약 그렇다면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일마저도 인연이 많아서 생명을 손상시키는 일인데 땅강아지나 지렁이 같은 것에는 한 번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던 사람이 번데기나 누에에게는 어찌 그다지도 마음을 주는가? 만약 그 사람이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사람이라면 존재하는 몸이 기탁할 곳마저 없게 되니 목숨을 던진다 해도 무엇에 인연하겠는가? 이치로 미루어 이를 따져보아도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소락(酥酪)을 먹지 않고 가죽신을 신지 않고 사면(絲綿)으로 된 옷을 입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이러한 부류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
若爾者,著衣噉食緣多損生,螻蚓曾不寄心,蛹蠶一何見念?若其摠護者,遂使存身靡託、投命何因!以理推徵,此不然也。而有不噉酥酪、不履皮鞋、不著絲緜,同斯類矣。

 

무릇 살생을 논할 때는 먼저 고의로 그 생명체의 뿌리를 끊을 경우에만 비로소 업도(業道)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반드시 고의가 아니라면 부처님께서는 생명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삼처청정(三處淸淨)이면 이는 허물이 없는 곳에 있다고 판정된다. 설사 이 취지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다만 가벼운 허물만이 초래되니 이는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원인이 극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만약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되어 환하게 드러난다면 깨달음으로 인하여 명백하게 되어 허물이 없어진다.
凡論殺者,先以故意,斷彼命根,方成業道,必匪故思,佛言無犯。三處淸淨制在亡愆,設乖斯旨但招輕過,無殺心故因乃極成。猶若受餘喩便彰著。因喩旣其明白無過。

 

그렇게 되면 종지(宗旨)에 근거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밝혀지며, 3지(支)의 도리로도 또한 이미 명백한 일이다. 하물며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일을 무엇 때문에 수고스럽게 다시 천착(穿鑿)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5일(日)의 의심을 작자(作者)의 붓끝에서 나오게 하고 삼시(三豕)3)의 잘못으로 신봉하여 받들 말을 전하게 만들었다.
依宗自顯。三支道理且已皎然,況復金口自言!何勞更爲穿鑿,遂使五日之疑出於作者之筆,三豕之謬傳乎信受之言。

3)글자를 잘못 읽는 일. 기해(己亥)를 잘못 보고 삼시(三豕)라 하고, 금은(金銀)을 잘못 보고 금근(金根)이라 

   읽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만약 그가 스스로 누에고치를 살려 달라고 빌면서 눈으로는 벌레가 손상되는 것을 경험하였다면 이는 세상 사람들도 오히려 행하지 아니할 일이거늘 하물며 마음으로 속세의 잡념을 끊기를 바라는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이런 비유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는다면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이루게 될 것이다. 만약 어떤 시주가 청정한 뜻으로 갖고 온 물건이 있다면 곧 기쁜 마음을 내어 그것을 받아서 몸을 돕고 덕을 길러 간다면 실로 허물은 없는 것이다.
若其自乞生繭、目驗損虫,斯則俗士尚不應行,何況情希出離。引斯爲證,深成未可。若有施主淨意持來,卽須唱導隨喜以受之,用資身而育德,實無過也。

 

오천축국의 법복은 바느질하는 것에 맡겨 옷의 실이 가로이든 세로이든 상관하지 않고 만드는 날짜도 15일을 넘기는 일이 없다. 계산해보면 비단 한 필로 7조(條)ㆍ5조 가사를 만들 수 있고, 내엽(內葉)은 3지(指)이며 바깥 가장자리[外緣]는 1촌(寸)이다. 바깥 가장자리에는 세 가닥의 자수(刺繡)가 있으나 내엽은 모두가 봉합한 것이다. 일을 충실히 행하고 위의를 나타내는데 또 무엇 때문에 정교한 솜씨를 빌릴 필요가 있겠는가?
五天法服,任刺任縫。衣縷不問縱撗,爲日無過三五。計絹一疋作得七條五條,內葉三指、外緣一寸,外緣有刺三道,內葉悉皆縫合。充事表儀,亦何假精妙?

 

만약 납의(納衣)를 입을 경우 이는 그 뜻이 일을 간략히 하는 데 있다. 이 경우 혹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것을 주워 입기도 하고, 혹 묘지[屍林]에 버려진 것을 취하기도 하는데, 얻는 것에 따라 곧 바느질하여 이를 사용하여 추위와 더위를 막을 따름이다.
若著納衣者,意存省事,或拾遺於糞聚、或取棄於屍林,隨得隨縫,用祛寒暑耳。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율장 가운데 와구(臥具)라 한 것은 그것이 곧 3의(衣)라고 말하는가 하면, 야잠(野蠶)을 규제한 글을 보고 곧 이의(異意)를 제기하며 더욱이나 법의(法衣)는 견직물[絹織]이 안된다고 하면서 마침내 무명[布]을 간절히 찾는다. 어찌하여 본문에 원래 요[褥:이부자리]라고 한 풀이에 맡기지 않는가? 고세야(高世耶)라는 말은 곧 누에의 이름인데 비단으로 짜여지고 나서 다시금 이 이름이 부여된 것이요 그 바탕이 귀한 물건이기 때문에 사용이 허용되지 않을 뿐이다.
而有說云“律中臥具,卽是三衣。”見制野蠶便生異意,剩謂法衣非絹,遂卽覓布慇懃。寧委本文元來是褥,高世耶乃是蠶名,作絹還受斯號,體是貴物,制不聽用。

 

이부자리를 만드는 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혹 바느질해서 자루를 만들어 그 속에 털을 쟁여 넣는 경우가 있고, 혹 실을 짜서 만들어도 된다. 이것이 곧 담요나 모포 따위들이다. 그 요의 형태는 너비가 2주(肘), 길이가 4주(肘)이며, 시기에 따라 두텁고 얇게 만든다. 스스로 달라고 청하는 것은 금지되지만 다른 사람이 줘서 받는 경우는 죄가 없다. 전혀 허용되지 않는 것은 크게 엄금한 과목(科目)을 범하였을 때다. 이 여러 가지 까는 도구[敷具]는 3의가 아니다.
作褥之法有其兩種:或縫之作袋貯毛在中,或可用絲織成,卽是氍毹之類。其褥樣闊二肘長四肘,厚薄隨時。自乞乃遮,他施無罪。全不許用者,大事嚴科。此諸敷具,非三衣也。

 

또한 다시 율에서 정명(正命)이라고 말한 것은 입과 배를 먼저 해결해야 되는 것을 말한 것이며, 땅을 일구고 갈 때에는 반드시 그 적절하게 해야 하며 씨를 뿌리고 심을 때도 가르침이나 규정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법에 따라 먹고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죄가 생기지는 않는다. 처음에 이르기를, “몸을 세우면 능히 그 복을 자라나게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율의 가르침 그대로 거기에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又復律云正命,謂是口腹爲先。耕墾須得其宜、種植無違敎網,應法食用不生其罪,始曰立身能長其福。依如律敎。

 

승가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모름지기 정인(淨人)이나 다른 가족들과 함께 그 수확물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모두가 똑같이 여섯으로 나누어 그 하나를 갖게 된다. 스님은 다만 소를 공급하고 땅을 주면 되고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모두 몰라도 된다. 또 수확물을 나눌 때에는 때를 잘 헤아려 짐작해야 한다.
僧家作田須共淨人爲其分數,或可共餘人戶,咸竝六分抽一。僧但給牛與地,諸事皆悉不知。或可分數量時斟酌,西方諸寺多竝如是。

 

혹 인색하고 탐욕스러워 수확물을 나누어 갖지 않고 스스로 노비를 시켜 몸소 영농을 점검하는 스님도 있으나 계율을 지키는 비구는 그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스님이 스스로 농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바르지 못한 생활로 몸을 자양하는 것이다. 노비를 부리자면 파종할 수 있도록 땅을 일굴 때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으며 벌레와 개미도 많이 상하게 된다. 하루에 먹는 것이 1승(升)에 불과한데 어느 누가 온갖 죄[百罪]를 감당하겠는가?
或有貪婪不爲分數,自使奴婢躬撿營農,護戒苾芻不噉其食。意者以其僧自經理邪命養身、驅使傭人非瞋不可、壞種墾地虫蟻多傷;日食不過一升,誰復能當百罪?

 

그런 까닭에 바르고 곧은 사람은 그 일의 번다함을 싫어하여 물병을 지니고 발우를 끼고 그곳을 버리고 멀리 달아나서 홀로 고요한 숲이 있는 들에 앉아 새 사슴과 짝이 되어 즐거워하고 명예와 이익으로 시끄러운 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열반의 적멸을 닦게 된다.
是以耿介之士疾其事繁,攜甁挾鉢棄之長鶩,獨坐靜林之野、歡與鳥鹿爲儔,絕名利之諠囂、修涅槃之寂滅。

 

만약 대중들의 집을 위하여 경영하고 구하여 이익을 취한다면 이는 율법에서는 허용되는 일이지만 흙을 일구어 목숨을 해치는 것은 교문(敎門)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벌레를 손상케 하고 업을 방해하는 것이 어찌 이보다 더한 일이 있겠는가? 죄가 있는 사생(邪生)의 10경(頃)은 드러나 있는 것에는 그 조목의 해석이 나타나 있지 않으나 허물없는 바른 행의 3의(衣) 또한 어찌 문장과 글월의 수고를 빌릴 필요가 있겠는가?
아, 믿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으나 의심하는 사람과는 말하기 어려우니 이는 법을 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견해를 고집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若爲衆家經求取利,是律所聽,墾土害命敎門不許。損虫妨業,寧復過此!有罪邪生之十頃,著作則不見爲疏條;無過正行之三衣,還復幾勞於文墨?

 

내가 처음 탐마입저국(耽摩立底國)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원 바깥에는 한 네모진 토지가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재가자가 채소를 가져와서 세 몫으로 나누어 스님에게 한 몫을 주고 두 몫은 자기가 갖고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대승등법사(大乘燈法師)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嗚呼!可爲信者說,難與疑者言,由恐傳法之家尚懷固執耳。

 

그가 대답하였다.
“이 절의 스님들은 모두가 계의 수행을 많이 한 분들로서 스스로 씨뿌리고 심는 일은 큰 성인께서 금지하신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 곡물을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른 생활[正命]이 되는 것이며, 연(緣)을 줄여 자활하는 길이고, 거기에는 밭 갈고 개간하고 물을 대주면서 살생하는 죄가 없는 길입니다.”
初至耽摩立底國,寺院之外有一方地,忽見家人取菜,分爲三分:與僧一分:自取兩歸。未解其故:問大乘燈法師曰:“斯何意焉?”

 

또한 일을 맡아보는 비구[知事苾蒭]를 만났더니 새벽에 우물가에서 물을 관찰하고 벌레가 없어야 사용할 수 있고 일단 생명체가 있으면 반드시 수라로 걸러내야 한다고 하였다.
答曰:此寺僧徒竝多戒行,自爲種植大聖所遮。是以租地與他、分苗而食,方爲正命省緣自活,無其耕墾漑灌殺生之罪矣。”

 

또 나는 다만 그것이 외부 사람이 가지고 와서 주는 물건일 경우에는 보잘것없는 한 포기의 채소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꼭 대중들에게 물어 본 후에 비로소 이를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보았다.
又見知事苾芻,晨旦井邊觀水,無虫得用;一日有命,卽須羅濾。

 

또한 절 안을 보니 강유(綱維:강령)를 세우지 않고 어떤 일이 있게 되면 모든 대중이 함께 헤아려 허락하였다. 만약 혼자의 생각에 연유하여 마음대로 일을 처단하고 승도들에게 손해나 이익이 되는 일을 대중의 바람에 따르지 아니하게 되면 이것을 구라발저(俱羅鉢底)라 부르며 대중들이 함께 그를 승단에서 몰아내었다.
又見但是外人取與,下至一莖之菜,竝須問衆方用。

 

또한 비구니가 비구 절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아뢴 후에 비로소 앞으로 나아갔고, 비구가 비구니들의 승방에 갈 때에도 물어 본 뒤에 나아갔다. 만약 절 밖으로 나갈 때는 두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길을 떠났고, 반드시 가야할 인연의 일이 있어 속인의 집에 가야만 할 때에는 대중에게 아뢰고 허락을 받은 다음 네 사람이 함께 길을 떠났다.
또한 달마다 네 번의 재일(齋日)에는 온 절 안의 대중이 저녁 때에 모두 모여서 함께 절의 규율을 듣고 거기에 따라 봉행하면서 깊은 경앙심(敬仰心)이 생겨났다.
又見寺內不立綱維,但有事來合衆量許。若緣獨意處斷隨情、損益僧徒不遵衆望者,此名俱羅鉢底,衆共驅之。

 

또한 나는 어떤 소사(小師:上弟)가 그의 동자(童子)를 보내서 쌀 2승(升)을 가지고 오게 하여 집사람인 부녀자에게 보내 주는 것을 보았다. 이는 사정이 사사롭고 바르지 못한 것에 관련되는 일이라 어떤 사람이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니 대중이 그를 불러와서 대질하여 조사하였다. 셋이 모두 이를 승인하자 비록 악한 일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자책하여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 곧 절 문을 나와서 스님의 이름을 버리고 멀리 떠나가니 그의 스승은 다른 사람을 시켜 그의 옷과 물건들을 보내 주었다. 이것은 다만 모두 함께 준수할 대중의 법이며 관제(官制)에 구애될 것이 아니었다.
또한 부인이 절 안에 들어오면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낭하에서 함께 이야기하다가 잠시 후에는 곧 떠났다.
又見尼入僧寺,白乃方前。僧向尼坊,問而後進。若出寺外,兩人方去。必有緣事須至俗舍者,白衆許已,四人共去。又見每月四齋之日,合寺大衆晡後咸集俱聽寺制,遵而奉行深生敬仰。

 

또 절 안에 갈라시라밀달라(曷羅尸羅蜜呾羅)라는 이름의 비구가 있었는데 당시 나이가 약 30세 가량 되었다. 그는 몸가짐과 행실이 뛰어나 이름이 높아 멀리까지 알려진 스님으로 하루에 『보적경(寶積經)』4)에 있는 7백 수의 게송을 외우고 내전(內典)의 삼장을 익히고 속언(俗言)의 사명(四明)을 훤히 꿰뚫어 동성방(東聖房:동인도)지방에서 추대하여 상수(上首)로 삼고 있었다. 그는 구족계를 받은 이후로 한 번도 여자와 마주하여 말한 일이 없었고 비록 어머니나 누이가 온다고 하더라도 나가서 볼 따름이었다.
又見有一小師,遣其童子將米二升送與家人婦女,情涉曲私。有人告衆,喚來對勘。三皆承引。雖無惡事,而自負慚心,卽出寺門棄名長去,師遣餘人送彼衣物。但是衆法共遵,未勞官制。又見婦人入寺,不進房中,廊下共語,暫時便去。

4)보물을 쌓아 놓은, 즉 법보의 누적이라는 뜻을 가진 경전으로 보통 원명을 따라 『대보적경』이라고 한다. 

   120권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이것은 단독경이 아니라 여러 경들을 모아서 편집한 혼합경이다. 당나라의

   보리류지가 왕명으로 그 당시까지 유포되었던 경전들을 모아서 이미 번역되어 있는 23권과 뜻이 통하지

   않는 것을 다시 번역한 15권과 아직 번역되지 않은 12권을 번역하여 편집한 것으로 주로 보리류지가

   번역했지만 축법호ㆍ의정ㆍ달마급다 등 명성 높은 번역가들의 한역 부분도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보적경』 120권은 49회 77품으로 되어 있는데 매 회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보살의 실천덕목ㆍ보리심의

   행위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당시 나는 그에게 “이것은 성인의 가르침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가?”라고 물었다.
又見寺內有一苾芻,名曷羅戶羅蜜呾羅,于時年可三十,操行不群,名稱高遠,一日誦『寶積經』有七百頌。閑內典之三藏,洞俗言之四明,東聖方處推爲上首。自從受具,女人曾不面言,母姊設來出觀而已。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천성이 번뇌와 성욕이 많아서 이렇게 하지 않고는 그 근원을 막을 수 없다. 비록 이것이 성인이 금하는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도(邪道)를 방지하는 것이 또한 무슨 잘못된 일인가?”라고 대답하였다.
當時問曰:“斯非聖敎,何爲然乎?”

 

또한 나는 학식이 많은 대덕(大德)을 만났는데, 혹 사람에 따라서는 창고에 쌓을 만큼 많은 경을 정밀히 연구한 사람도 있었다. 대중들은 이들에게 상방(上房)을 제공하였고 또한 정인(淨人)을 붙여주어 공양드리게 하며 그에게 강설을 하게 하였다. 보통 때는 승단의 일에서는 면제되며 출타할 때는 흔히 가마를 탔으나 안장을 갖춘 짐승의 등에는 타지 않았다.
答曰:“我性多染,非此不杜其源。雖復不是聖遮,防邪亦復何爽。”

 

또 보니 객승이 처음 절에 찾아왔을 경우 5일 동안 대중들과 화합하게 하고 그에게 좋은 음식을 주며 그가 짐을 풀고 쉬기를 바라다가 그 후에는 곧 스님들의 일상과 같이 하였다. 만약 그가 좋은 사람으로 스님들과 화합할 경우 그에게 그곳에 머물기를 청하고 그 해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와구(臥具)를 베풀어준다. 그러나 만약 학식이 없는 스님일 경우에는 보통 스님과 일체로 대우하며 학식을 갖춘 스님일 경우에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예우하며 이름을 승적에 걸어놓고 예전부터 머물고 있었던 사람처럼 대우하였다.
又見多聞大德,或可一藏精硏。衆給上房,亦與淨人供使,講說尋常、放免僧事,出多乘輿,鞍畜不騎。

 

또 보니 좋은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이 있으면 자세히 찾아온 인연과 유래를 물어 보고 만약 그가 출가하기를 원하면 스님들과 화합시켜 머리를 깎아 이름이 왕적(王籍:호적)과 저촉되지 않게 하였다.
대중 스님들에게는 나름대로 부서(部書)가 있다. 뒤에 만약 파계를 하거나 비행을 저지를 경우 건치(犍稚)를 울리고 그를 쫓아낸다. 이것은 대중 스님들이 스스로 서로 검찰하기 때문에 허물을 일으키려 하여도 그 싹이나 조짐이 생기기 어렵다.
又見客僧創來入寺,於五日內,和衆與其好食,冀令解息,後乃僧常。若是好人,和僧請住,准其夏歲,臥具是資。如無學識,則一體常僧,具多聞乃准前,安置名挂僧籍同舊住人矣。

 

나는 당시 감탄하여 “예전에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스스로 율법에 밝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곳에 이르니 도리어 미혹된 사람이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만약 내가 전에 서방세계로 발걸음을 옮겨놓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 바른 법칙을 살펴볼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又見好心來至,具問因由。如求出家,和僧剃髮。名字不干王籍,衆僧自有部書。後若破戒行非,鳴揵稚而驅遣。爲此衆僧自相撿察,起過難爲萌漸。

 

이것은 곧 절집의 대중들이 제정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별도로 행해지는 요심(要心)일 경우도 있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율문에 나타나 있다. 이는 말대(末代)의 주지에게는 극히 중요한 일들이며, 이것은 모두가 탐마입저국(耽摩立底國)의 발라하사(跋羅訶寺)의 법식이다.
于時歎曰:“昔在神州自言明律,寧知到此反作迷人。向若不移步西方,何能鑑斯正則!”

 

그곳 나란타사(那爛陀寺)의 법은 훨씬 더 엄격하여 마침내 승려와 도반의 수효가 삼천 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그 봉읍(封邑)된 마을은 2백 곳이 넘었다. 이는 모두 여러 대에 걸쳐 군왕들이 받들고 보시한 것으로 그 맥을 이어 융숭하여 끊어지지 않게 된 것은 율법의 힘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을 논하겠는가?
此乃或是寺家衆制,或是別行要心,餘竝著在律文,末代住持極要。此皆是耽摩立底跋羅訶寺之法式也。

 

또한 나는 세속의 관리가 관청에 정좌하여 앉아 있으면 승도는 걸어다니거나 그 옆에 서 있으면서 속이고 경멸하고 부르짖는 것이 일반 범부의 무리와 다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얼마나 길에서 고단하였던가? 만약 점검(點檢)이 이르지 않으면 공문(公門)으로 달려가서 조사(曺司:관청)에 명을 구하는데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았다.
其那爛陁寺,法乃更嚴,遂使僧徒數出三千、封邑則村餘二百,竝是積代君王之所奉施。紹隆不絕,非律而論者哉。

 

무릇 출가한 사람은 본래 감정이 속세를 떠나기를 바라기에 5외(畏)5)의 위태로운 길을 버리고 8정도(正道)6)의 평탄한 길을 따르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다시 속세에 달려가 거듭 번뇌의 그물에 걸려드는 일이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완전한 침묵함을 구하고자 하더라도 어찌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전연 해탈과는 어긋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고, 조용한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리로 보아 모름지기 12두다행과 13자구(資具)를 갖추어 인연따라 목숨을 건져 옛 습관을 말끔히 제거하고, 사승(師僧)과 부모의 큰 은택에 보답하고 천룡(天龍)제왕의 깊은 자애에 보답해야 한다. 이것이 곧 슬기롭게 조어사(調御師)의 율의에 순응하여 힘써 채찍질하며 수양하는 길과 일치하는 것이다.
亦未見有俗官乃當衙正坐,僧徒則爲行側立,欺輕呼喚不異凡流,送故迎新幾倦途路;若點撿不到,則走赴公門、求命曹司,無問寒暑。

5)초학(初學)의 보살에게 있는 다섯 종류의 두려움으로서 불활외(不活畏)ㆍ악명외(惡名畏)ㆍ사외(死畏)ㆍ

   악도외(惡道畏)ㆍ대중위덕외(大衆威德畏)를 말한다.
6)8성도(聖道)라고도 한다.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덟 가지 길로서 정견(正見:올바른 견해)ㆍ

   정사유(正思惟:올바른 생각)ㆍ정어(正語:올바른 말)ㆍ정업(正業:올바른 행동)ㆍ정명(正命:올바른 생활)ㆍ

   정정진(正精進:올바른 노력)ㆍ정념(正念:올바른 마음씀)ㆍ정정(正定:올바른 정신통일)을 말한다.

 

생명을 보전하는 일을 논하는 과정에서 실제 행해지는 것을 다시 말했지만, 여러 대덕들이 번거롭게 반복되는 것을 꺼리지 않기를 바란다.
夫出家之人,本爲情希離俗,捨五畏之危道、遵八正之平衢。豈有反更驅馳重嬰羅網,欲求簡寂寧能遂意?可謂全乖解脫、不順蕭然者乎。理須二六杜多十三資具,隨緣濟命盪除舊習,報師僧父母之鴻澤,酬天龍。帝主之深慈。斯則雅順調御之儀、善愜策修之路。

 

그런데 사부대중의 다른 점은 입은 치마[裙]로써 그 차이를 표시한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스님들은 두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향해 두 개의 주름을 잡은 치마를 입고, 대중부(大衆部)에서는 오른편 자락을 줄여서 왼편에 있게 하여 안으로 향해서 이를 꽂아놓고 그것이 떨어져 내리지 않게 한다. 서방의 부녀자들이 입는 치마도 대중부의 스님과 다르지 않다. 상좌부(上座部)와 정량부(正量部)의 옷차림도 이와 같다. 다만 밖으로 향해 곧바로 뒤집어 옆에 꽂는 것만이 다르다.
허리띠의 격식도 역시 같지 않다. 비구니도 부파(部派)에 준하는 것은 비구와 같아 전연 다른 격식 없다.
因論護命之事,且復言其現行。願諸大德勿嫌煩重耳。

 

또한 중국의 기지(祇支)ㆍ편단(偏袒)ㆍ복박(覆膊)ㆍ방군(方裙)ㆍ선고(禪袴)ㆍ포유(袍襦)와 같은 것은 모두 본 격식과는 어긋나는 것들인데 어찌 단지 동수(同袖)와 연척(連脊)으로 된 옷을 걸쳐서 입는 것만이 율의에 맞지 아니하겠는가? 이것을 입고 사용하는 것은 모두 죄를 얻게 되는 일이다. 이런 옷을 입고 서방에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 사람들 모두에게 비웃음을 산다. 그리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 속으로 치욕이라 생각하여 찢어서 잡다한 용도로 쓰이게 되는데 이는 곧 모두가 법에 어긋난 의복이기 때문이다.
然四部之殊,以著裙表異:一切有部則兩邊向外雙襵;大衆部則右裾,蹙在左邊向內插之不令其墮,西方婦女著裙與大衆部無別;上坐正量製亦同斯,但以向外直翻傍插爲異。腰絛之製亦復不同,尼則准部如僧,全無別體。

 

만약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알 길이 없어지고 또 만약 바른 말을 하고자 하면 또한 듣는 사람에게서 원망을 사게 될까 두렵다. 그런 까닭에 짧은 생각으로 글을 짓고 나아갈까 물러날까를 깊이 주저하고 있으니, 원컨대 지혜있는 사람은 소상하게 살펴서 의복의 본래의 율의를 알기 바란다.
且如神州祇支偏袒覆膊,方裙禪袴袍襦,咸乖本製,何但同䄂及以連脊。至於披著不稱律儀,服用竝皆得罪。頗有著至西方,人皆共笑,懷慚內恥,裂充雜用。此卽皆是非法衣服也。

 

또한 서방의 속인[俗侶]ㆍ관인(官人)ㆍ귀한 사람들은 오직 한 벌의 흰 명주옷만을 입고 빈천한 무리들은 오직 무명옷만을 입는다. 출가한 대중[法衆]들은 다만 3의(衣)와 6물(物)만을 소유하고 가득 채워 남아도는 것을 좋아하는 장자의 경우라야 비로소 13자구(資具)를 사용한다.
若默而不說,知者無由;如欲直言,復恐聞者見怨。是以杼軸於短懷、沈吟於進退,願智者詳察識衣服之本儀也。

 

중국에서 동수(同袖)와 연척(連脊)으로 된 옷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대개 나름대로 중국에서 배워서 함부로 서쪽 나라를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섬부주(贍部洲)의 중부 및 여러 변두리 해안 지역 사람들의 의복에 대해 간략하게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又西方俗侶官人貴勝所著衣服,唯有白㲲一雙,貧賤之流只有一布。出家法衆但畜三衣六物,樂盈長者方用十三資具。

 

또한 모하보리(莫訶菩提)에서 동쪽 임읍(臨邑)에 이르기까지 20여 개의 나라가 있는데 이는 바로 환주(驩州)의 남쪽 경계에 해당한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가면 바다에 이르게 되고 북쪽은 갈습미라(羯濕彌羅)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남해에는 10여 개의 나라와 사자주(師子洲)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 두 벌의 감만(敢曼:하체를 가리는 천)을 입는다. 이 옷은 허리띠도 없고 또한 마름질하거나 꿰매지도 않고 곧바로 넓게 두 길[尋]의 천으로 허리를 둘러 아랫도리를 보이지 않게 한다.
東夏不許同䄂及連脊衣者,蓋是自習東川妄談西國耳。卽如贍部洲中及諸邊海人物衣服,可略言之。

 

서천축국의 바깥 큰 바다의 변두리 구석진 곳에는 파랄사(波刺斯:페르시아)와 다저국(多底國)이 있다. 이곳에서는 모두 적삼과 바지를 입고 있으며, 나국(裸國)에서는 아무 의복도 없이 남녀가 모두 벌거숭이다.
且從莫訶菩提東至臨邑,有二十餘國,正當驩州南界也。西南至海北,齊羯濕彌羅,幷南海中有十餘國及師子洲,竝著二敢曼矣。旣無腰帶亦不裁縫,直是闊布兩尋繞腰下抹。

 

갈습미라에서 속리국(速利國)의 여러 오랑캐 나라와 토번(吐蕃)과 돌궐(突厥)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서로 비슷하다. 감만을 착용하지 않고 모직물과 가죽 옷을 주로 입는다. 그곳에는 적은 양의 겁패(劫貝 : 목화)가 있어 때로는 이것을 입는 사람도 있다. 그곳이 추운 땅인 까닭에 적삼과 바지는 보통 다 입는 옷이다.
西天之外大海邊隅,有波刺斯及多底國,竝著衫袴。裸國則迥無衣服,男女咸皆赤體。

 

이 여러 나라 가운데 오직 파랄사(波剌斯) 및 나국(裸國)ㆍ토번ㆍ돌궐에서만 원래부터 불법이 없고, 그밖에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불법을 신봉하고 있으나, 적삼과 바지를 입는 고을에서는 모두 몸을 씻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오천축국의 땅은 나름대로 청정하고 고매함을 자랑하고 있다.
從羯濕彌羅已去,及速利諸胡吐蕃、突厥,大途相似,不著敢曼,氈裘是務,少有劫貝。時存著者,以其寒地,衫袴是常。

 

그러나 그 풍류가 부드럽고 반듯하며 예절을 갖추어 사람들을 만나고 영접하며 음식 맛이 순박하고 짙으며 인의(仁義)가 풍성하기로는 오직 중국뿐이며 나머지 다른 나라는 이곳을 능가할 만한 곳이 없다. 다만 식사 때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고 대소변을 본 뒤 손을 씻지 않으며 버드나무 가지를 씹지 않는 등의 이런 일들이 서역과 다를 뿐이다.
卽此諸國之中,唯波刺斯及裸國、吐蕃、突厥元無佛法,餘皆遵奉。而於衫袴之鄕,咸不洗淨,由是五天之地自恃淸高也。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에 맞지 않는 의복을 입고도 곧 허물이 없다고 하는 어떤 사람이 그곳의 약교(略敎)의 글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이 지방에서 부정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지방에서 청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행하는데 죄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곧 번역한 사람의 오류이며 뜻은 그렇지 않다. 상세한 것은 다른 곳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然其風流儒雅、禮節逢迎、食噉淳濃、仁義豐贍,其唯東夏餘莫能加,但以食不護淨、便利不洗、不嚼楊枝,事殊西域。

 

만약 그렇다면 중국의 비구들에게는 3의(衣)를 제외하면 다른 옷은 모두 성인의 위의가 아니니, 이미 거기에 범한 죄가 있다면 이치상으로 보아서 입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서방은 따뜻한 땅이라 단포(單布)로도 나름대로 한 해를 마칠 수 있으나 설령(雪嶺)은 추운 고을이거늘 생존하며 견뎌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而有現著非法衣服將爲無過,引彼略敎文云“此方不淨,餘方淸淨,得行無罪”者,斯乃譯者之謬,意不然矣!具如別處。

 

몸이 편안해야 업이 진척된다는 성인의 가르침이 있으니, 몸을 고통받게 하고 부단히 고단하게 하는 것은 곧 외도의 가르침이다. 버리고 취하는 이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성인께서 입파(立播)의 의복을 허용하시어 공통적으로 추운 고을 사람들에게 덮게 하신 것은 이는 몸을 보양할 만하기 때문이리니, 이 또한 무슨 도에 방해가 되는 일이겠는가? 범어로 입파(立播)라 하는 말은 번역하면 과복의(裹腹衣) 즉 배를 싸는 옷이란 뜻이다. 그것을 만드는 방법과 그 형태와 모양을 간략하게 말하겠다.
若爾,神州苾芻除三衣外,竝非聖儀。旣其有犯、理難服用者,且如西方煖地,單布自可終年;雪嶺寒鄕欲遣,若爲存濟?

 

이 옷은 곧 정배(正背)를 제거하고 곧바로 한쪽 어깨만을 드러내고, 한쪽에는 소매를 붙이지 않고 오직 한 폭만으로 겨우 손이 들어갈 수 있게 뚫는다. 어깨ㆍ소매는 넓지 않게 하여 왼쪽 옆에 붙여두는데 넓고 크게 만드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오른편에서 허리띠를 묶을 때에는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솜을 많이 넣어 두텁고 따뜻하게 하여야 한다. 또한 오른쪽을 바느질해서 합쳐 머리에서 관통하여 겨드랑이를 묶는다. 이것이 그 본래의 제작방식이다. 서방에서 눈으로 목격한 일이며 오랑캐 땅에서 온 스님들이 이 옷을 휴대하여 입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란타사(那爛陀寺)가 있는 곳에서는 이 옷을 보지 못했는데, 이는 그곳이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身安業進聖有誠言,苦體勞勤乃外道敎。去取之理其欲如何?然聖開立播之服通被寒鄕,斯乃足得養身,亦復何成妨道?梵云立播者,譯爲裹腹衣。其所製儀,略陳形樣。

 

이에 기준해 보면 이 옷을 입기를 허락하신 뜻은 바로 추운 고을의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 편단(偏袒)과 정배(正背)를 고증해 보면 원래 이것은 이 옷을 뒤이어 만든 옷이며, 오른편 가장자리를 남아돌게 덧붙인 것은 본래의 위의를 잃은 것이다. 옷을 만드는데 자기 스스로 멋대로 한다면 결국 정해진 법을 어기는 죄를 초래할 것이다. 심지어 입파(立播)로 배를 감싸고 나름대로 혹독한 추위를 면하며 두터운 치마를 통째로 걸치면 차가움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만하지만, 부처님의 형상이 있는 곳에서 예불하고 존상을 대할 때에는 어깨를 드러내는 것이 상례(常例)이며, 어깨를 가리면 곧 죄를 범하는 것이다.
卽是去其正背、直取偏袒,一邊不應著䄂,唯須一幅纔穿得手。肩䄂不寬,著在左邊,無宜闊大,右邊交帶勿使風侵,多貯緜絮事須厚煖;亦有右邊刺合貫頭紐腋,斯其本製。目驗西方,有胡地僧來,多見攜著;那爛陁處不睹斯衣,良由國熱,人咸不用。

 

그렇다면 출가한 사람은 일을 줄여야 하는 것인데 겨울에 방에 있을 때는 수시로 숯불을 피우면서 어째서 수시로 수고롭게 옷을 많이 껴입는가? 반드시 병이 있을 경우에만 꼭 입도록 하고 때에 따라 처단하여 위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准斯開意,直爲寒鄕老者,其偏袒正背,無是踵斯而作,剩加右畔失本威儀,非製自爲定招越法。至如立播抱腹,自免嚴寒;厚帔通披,足遮隆凍。形像之處禮佛對尊,露髆是恒、掩便獲罪。

 

그러나 중국의 혹독한 추위는 몸이 쪼개지듯이 심하니 만약 따뜻한 옷을 입지 않는다면 돌아가며 병들고 죽는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재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는 이치로 보아 널리 구제하여야 하는 것이다.
然則出家省事,冬月居房炭火隨時,詎勞多服?必有病緣要須著者,臨時處斷勿使乖儀。

 

방군(方裙)과 편단(偏袒)의 형태는 속인의 무리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오직 입파만은 추운 겨울에 잠시 입는 옷이니 본래의 법제가 아님을 알 수 있고 목숨을 위하여 임시방편으로 허용한 것이다. 비유하면 수레에 기름을 두르는 것과 같다. 마음속으로 커다란 부끄러움이 생길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것을 입지 않는다면 이는 극히 좋은 일이다.
然而東夏寒嚴劈裂身體,若不煖服交見羸亡。旣爲難緣,理須弘濟。方裙偏袒形簡俗流,唯立播衣寒冬暫著,知非本製爲命㩲開,如車置油內生慚厚。必其不著,極是佳事。

 

이밖에 승포(僧袍)ㆍ바지ㆍ잠방이ㆍ적삼 등의 종류는 모두 다 입어서는 안 되며 엄동설한이 지나고 난 후에도 이것을 몸에 두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다시 편삼(偏衫)을 입는 것은 실제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곧 번거로운 것을 제거하고 요체를 얻는 일로 우러러 성인의 정에 따라 스스로 거기에 따라간다면 곧 옳은 길로 가게 될 것이다.
自餘袍袴褌衫之類,咸悉決須遮斷。嚴寒旣謝,卽是不合擐身,而復更著偏衫,實非開限。斯則去繁得要,仰順聖情。自墮乍可。

 

내 한몸에 전수받는 것이 혹 대중을 잘못 인도할까 두렵다. 만약 능히 이 옛 수레바퀴 자국을 고쳐서 새로운 발자취를 힘써 따를 수 있다면 곧 소실봉(小室峯)7)의 뒤를 이어 가파른 영취산(靈鷲山)에 걸터앉고 왕사성(王舍城)에 나란히 앉아 제향(帝鄕)으로 통하게 하면서 함께 에워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홍하(鴻河)는 문지(文池)에서 차수(泚水)와 합류한다. 가는 버들은 보리수처럼 빛나서 뽕나무밭이 변해서 무성하게 치솟아 겁석(劫石)이 다하도록 빛남을 드높이게 될 것이니 참으로 감탄할 일이며 참으로 힘써야 할 일이다. 다만 불일(佛日)이 이미 가라앉아 가르침은 후대 말세에 머물고 있기에 이를 행한다면 위대한 스승과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겠지만, 가르침을 등지고 나면 수많은 허물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경에 이르기를, “만약 계율을 받들 수 있다면 내가 존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하셨다.
一身傳授,恐爲誤衆。如能改斯故轍務軌新蹤者,卽可謂蟬聯少室,架鷲峯而竝峻;櫛批王舍,通帝鄕而共圍。鴻河則合泚於文池,細柳乃同暉於覺樹;變桑田而騰茂,盡劫石而揚輝。誠可嗟矣!誠可務哉!但佛日旣沈、敎留後季,行之則大師對面,背敎則衆過現前。故經云“若能奉戒,則我存無異”。

7)숭악(嵩岳)의 별봉(別峯). 위나라의 효문제가 불타(佛陀)선사를 위하여 이곳에 소림사를 세웠다. 

   달마대사가 9년 동안 면벽(面壁)했던 곳이다.

 

혹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예전부터 상덕 스님들도 모두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오늘날 후세 사람이 무슨 근거로 법칙으로 삼는가?’라고 하지만, 이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법에 근거한 것이며 사람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교에 광범위한 설명이 있으니 율장을 고찰해 보라. 의식에 죄가 없는 것이라야만 비로소 취해도 되는 것이다. 이는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듣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인도한 사람에게야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或云:“舊來上德竝悉不言,今日後人何事移則?”固不然矣。依法匪人敎有弘說,考之律藏,衣食無罪者方可取也。非知之艱,行之爲難。聞若不行,導者寧過?

 

거듭 말한다.
重曰:

 

생명을 지닌 무리
먹고 입는 것 우선으로 삼나니
이것이 목칼 쇠사슬이 되어
삶의 터전으로 끌어당기는구나.
含生之類,
衣食是先,
斯爲枷鎖,
控制生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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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말씀과 법칙 받들면
소연(蕭然)히 속세를 벗어날 수 있지만
스스로의 뜻에 맡기면
곧 죄와 번뇌에 끌려 다닌다.
奉聖言則,
蕭然出離,
任自意乃,
罪累相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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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있는 사람이면 반드시 비추어 보라.
일은 눈 앞에 있느니라.
옥이 진흙 속에 처해 있듯
연꽃이 물 속에 자리잡듯
智者須鑑,
事在目前,
如玉處泥,
若水居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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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풍(風)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5포(怖)로 어찌 몸을 감으랴?
옷은 겨우 몸을 가리고
밥은 다만 목숨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니
八風旣離,
五怖寧纏,
衣纔蔽體,
食但支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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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해탈을 구하고
인간계와 천계 원하지 아니하며
두타로 목숨 마치고
중생구제로 해를 다하여
專求解脫,
不願人天,
杜多畢命,
拯物窮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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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문(門)8)의 허위 버리고
10지(地)9)의 원견(圓堅) 희구하면
500제자에게서 보시받기에 합당하여
삼천세계에 복덕과 이익되리라.
棄九門之虛僞,
希十地之圓堅,
合受施於五百,
爲福利於三千。
8)9거(居)와 같은 말이다. 앞의 서(序) 주 19) 참고.
9)보살이 수행해야 하는 52단계 중 특히, 제41위에서 제50위까지를 10지라고 한다. 이 10위는 불지(佛智)를 

   생성하고, 능히 주지(住持)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온갖 중생을 짊어지고 교화 이익되게 하는 것이, 마치

   대지가 만물을 싣고 이를 윤택하고 이롭게 하는 것과 같아서 지(地)라 이름한 것이다.

 

11. 착의법식(着衣法式)

3의(衣)를 입거나 또는 구뉴(呴紐)10)를 만드는 법식을 율에 근거하여 설명해 보겠다.
其著三衣及施𢂁紐法式,依律陳之。

10)가사를 입을 경우 그 양끝에 붙인 고리와 끈을 연결하여 떨어지지 않도록 한 용구이다.

 

5주(肘) 길이의 옷감을 취해 접어서 세 번 주름잡아 어깨머리의 접은 곳은 천의 가장자리의 태를 4, 5지(指) 가량 없애고 사방 5지 가량으로 방첩(方帖)을 만들어 네 변(邊)을 두루 바느질한다. 중심에 해당하는 곳을 송곳으로 뚫어서 작은 구멍을 만들고 그곳에 옷 끈코를 만든다. 그 끈코는 혹 끈으로 만들기도 하고 혹 비단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굵고 가는 것은 적삼 끈코와 비슷하게 하여 길이는 2지(指) 가량 되게 하고 동심결(同心結) 모양으로 매듭짓는다.
可取五肘之衣疊作三襵,其肩頭疊處去緣四五指許安其方怗,可方五指。周刺四邊,當中以錐穿爲小孔用安衣怐。其怐或絛或帛,麤細如衫怐相似,長可兩指結作同心。

 

그 나머지는 잘라내고 끈코를 구멍에 넣어 밖으로 끌어내서 십자(十字)형으로 바꾸어 가며 잡아매면 곧 두 개의 끈코가 된다. 다음에 끈을 그 속으로 넣어서 가슴 앞 접은 곳 가장자리 테두리에 끈을 안치하는 것도 역시 적삼의 끈과 같이 한다. 이것이 곧 그 법식이다. 먼저 근본 제도를 보여 주고 줄여서 그 대강에 준하여 만들면 된다. 만약 오묘하게 그 법을 체득하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직접 대면해서 전수받아야 할 것이다.
餘者截卻,將怐穿孔向外牽出十字反繫,便成兩怐,內紐此中。其胸前疊處緣邊安紐亦如衫紐。卽其法也。先呈本製略准大綱,若欲妙體其法,終須對面而授。

 

옷의 아래쪽[下畔]도 역시 코와 끈을 베푼다. 뜻에 따라 거꾸로 걸친다 하더라도 이것은 성인이 허용한 일이다. 두 머리의 모서리에서 8지(指) 가량 되는 곳에 각기 코와 끈 하나를 만드는 것은 식사할 때 필요한 것으로 뒤집어 가슴 앞에서 주름잡아 끈이 서로 합치게 하는 것이 그 요령이 된다.
衣之下畔怐紐亦施,隨意到披,是聖開許。兩頭去角可八指許各施一怐一紐,此爲食時所須。反襵胸前紐使相合,此成要也。

 

무릇 절 안에 있을 때나 혹 때로 대중들과 상대할 때는 반드시 허리끈과 어깨를 덮어 옷을 걸치는 법은 없다. 그러나 만약 외부로 나가서 유행(遊行)하거나 또는 욕사(浴舍)에 들어갈 때에는 바야흐로 끈을 휴대할 필요가 있으나 나머지 다른 때에는 다만 어깨 위에 얹어놓을 따름이다. 개인적인 것을 물리치고 집무할 때는 마음대로 뒤집어 줄여도 되지만, 만약 존용(尊容)을 대할 경우에는 일을 모름지기 정제(整齊)하게 갖추어야 한다. 옷의 오른편 모서리를 넓게 왼쪽 어깨 위에 걸어 등 뒤로 드리우게 하되 팔꿈치 위에 얹어서는 안 된다.
凡在寺內或時對衆,必無帶紐及籠肩披法,若向外遊行幷入俗舍方須帶紐,餘時但可搭肩而已。屛私執務隨意反抄,若對尊容事須齊整,以衣右角寬搭左肩,垂之背後勿安肘上。

 

만약 끈을 휴대하고자 할 때에는 곧 온 어깨에 걸치고 나서 끈을 코로 넣어서 돌려 어깨 뒤로 향하게 하고 그것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모서리를 어깨 위에 걸치게 되면 옷이 곧 목을 에워싸게 되고 두 손은 밑으로 나오며 한쪽 모서리는 앞을 향하게 된다. 아육왕상(阿育王像)이 바로 그런 법식에 해당된다.
若欲帶紐,卽須通肩披已,將紐內怐迴向肩後勿令其脫。以角搭肩衣便繞頸,雙手下出,一角向前,阿育王像正當其式。

 

밖으로 나갈 때 일산(日傘)을 잡고 가면 그 형용과 거동이 좋다. 이것이 곧 가르침에 근거한 정제(整齊)된 상의(上衣)를 입는 법이다. 일산은 대나무로 짜서 만드는 것이 좋고 대바구니와 같게 홑겹으로 얇게 한다. 크고 작은 것은 사정에 따라 정하고 넓이는 2, 3척(尺)이면 된다. 정수리 가운데를 이중으로 겹쳐서 만드는 것은 거기에 손잡이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손잡이의 길고 짧은 양은 덮개의 넓이와 같게 하고 혹 엷게 옻칠을 하여도 된다. 또 혹 갈대를 짜서 만들어도 되며 혹 등모(藤帽)의 종류와 같은 것으로 거기에 종이를 끼우게 되면 단단해진다.
出行執傘形儀可愛,卽是依敎齊整著上衣也。其傘可用竹織之,薄如竹簟一重便得,大小隨情寬二三尺。頂中複作,擬施其柄,其柄長短量如蓋闊,或可薄拂以漆、或可織𥯤爲之,或如藤帽之流,夾紙亦成牢矣。

 

중국에서는 비록 전부터 행해지지는 않았으나 이것을 하려면 역시 그 요령이 필요하다. 이 일산을 지니게 되면 갑자기 비가 내려도 의복이 비에 젖지 않으며 몹시 더운 날에는 실로 서늘한 바람을 부를 수 있다. 이렇게 이미 율에 근거하여 몸을 돕는 것이니 이를 받쳐든다 하더라도 물론 손상이 없다. 이렇게 논한 것 등등에는 요긴한 일이 많아도 모두 중국에서는 행해지지 않고 있다.
神州雖不先行,爲之亦是其要,驟雨則不霑衣服、赫熱則實可招涼。旣依律而益身,擎之固亦無損。斯等所論要事,多竝神州不行。

 

가사의 모서리를 밑으로 드리우는 것은 바로 코끼리의 코에 해당한다. 인도 스님들이 여기에 오게 된다면 모두 또한 놀라게 될 것이니, 이는 자못 명주가 매끄러워 어깨에서 떨어져 내릴 것이기 때문인데 결정코 이것은 정칙(正則)을 잘못 바꾸어지게 만든 것이다. 그 후 당(唐)의 삼장법사(三藏法師)11)가 인도에서 돌아와 어깨에 걸치는 법[搭肩法]을 전하였으나 옛 대덕들 가운데는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았다. 과거의 습관을 고수하여 지키려 드는 미혹됨은 도처에 모두 있는 것이다.
袈裟角垂正當象鼻,梵僧縱至皆亦雷同,良爲絹滑墮肩,遂令正則訛替。後唐三藏來傳搭肩法,然而古德嫌者尚多,黨舊之迷在處皆有。

11)경ㆍ율ㆍ논의 3장에 정통한 승려에 대한 존칭으로 가령 구마라습에 대해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당나라의 현장(玄獎)법사를 말한다.

 

그 가운데 3의에 짧은 끈을 매달고 긴 끈을 잘라내는 것은 가르침을 어기는 허물을 실제로 면하게 되고 횡군(橫裙)을 착용하면서 허리의 태[腰緣]를 없애는 것은 바느질하는 수고도 행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갖고 있는 병과 발우는 각기 어깨에 걸어놓고 겨우 겨드랑이 밑에 이르게 하되 서로 얽히게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 옷고름은 길지 않고 다만 어깻죽지를 통과할 정도일 뿐이다. 만약 가슴 앞에서 서로 얽히게 되면 사람의 호흡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는 원래 근본제도가 아니므로 행하여서는 안 된다. 발우를 담는 주머니의 양식은 곧 아래에서 살펴볼 내용과 같다.
其三衣,若安短紐而截長絛,則違敎之愆現免;著撗裙而去腰緣,乃鍼線之勞交息。所有甁鉢各挂兩肩,纔至腋下不合交絡,其襻不長但容穿髆而已,若交絡胸前令人氣急。元非本製,卽不可行。鉢袋之儀如下當辯。

 

북방 속리국(速利國)의 여러 사람들은 흔히 가슴 앞에서 얽는 법[交絡]을 많이 행하고 있는데, 이는 지방에 따라 바뀌어진 것으로 사실은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는 아니다. 이밖에 설사 다른 옷이 있다고 하더라도 길게 어깨 위로 걸쳐놓은 후에 완전히 걸쳐서 그 옷과 발우를 덮는다. 만약 그때 절로 향하거나 혹은 속인의 집을 찾아가는 경우라면 반드시 승방이나 요사에 이르러 산개(傘蓋)를 내려둔 다음에야 비로소 옷끈을 풀고 그의 옷과 발우를 걸어 놓는다.
北方速利諸人多行交絡,隨方變改實非佛制。設有餘衣長搭肩上,然後通披覆其衣鉢,若其向寺及詣俗家,要至房舍安置傘蓋,方始解紐挂其衣鉢。

 

승방 앞의 벽 위에는 대개 상아(象牙)를 놓아두었는데 임시로 물건을 갖다 놓을 곳이 없게 하여서는 안 된다. 나머지 일은 제26장의 객구상우(客舊相遇)에서 말할 내용과 같다. 그러나 그 엷은 비단으로 가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개 그것이 매끄러워 어깨에 붙어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예배할 때 곧 땅에 떨어지지 않는 천을 반드시 취해서 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굵고 거친 명주나 흰 모직물 등을 취하는 것이 곧 그 요령이다.
房前壁上多置象牙,勿使臨時安物無處。餘同第二十六客舊相遇章說也。然其薄絹爲袈裟者多滑,不肯著肩,禮拜之時遂便落地。任取不墮物爲之,絁紬白㲲卽其要也。

 

승각기의(僧脚崎衣)라 하는 것은 곧 어깨를 덮는 옷인데 다시 1주(肘)의 길이를 더해야만 비로소 본래 위의법에 맞게 된다. 그것을 입고 걸치는 법은 마땅히 오른편 어깨가 나오게 하여 교차시켜 왼쪽 어깨 위에 걸친다. 방 안에서 항상 착용하는 것은 이것과 치마뿐이다. 밖으로 나가서 존귀한 사람에게 예를 행할 때는 마음에 맡겨 다른 옷을 더 입는다.
其僧腳崎衣卽是覆髆,更加一肘始合本儀。其披著法,應出右肩交搭左髆,房中恒著。唯此與裙,出外禮尊任加餘服。

 

치마를 입는 법식에 관해서 잠시 그 대체의 정황만을 말해 주겠다. 가령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스님들이 입는 치마의 제작을 예로 든다면 크기가 가로 5주(肘) 세로 2주이며, 굵은 올의 명주나 무명으로 있는 것에 따라 이를 만든다.
其著裙法式聊陳大況。卽如有部裙製,撗五肘豎兩肘,絁絹及布隨有作之。

 

서국에서는 모두 홑겹옷으로 만들지만 중국에서는 사정에 따라 겹옷으로도 만든다. 가로 세로의 크기는 임의대로 정하여 몸에 둘러 추켜올려서 배꼽 위를 넘게 하고 오른손으로 왼쪽 가장자리의 웃모서리를 안으로 끌어당겨 허리의 오른편을 향하게 한다. 왼쪽 상군(上裙)은 밖의 가장자리를 취하여 좌반(左畔)을 가린다오른손에 가까운 것이 우군(右裙)이 되고 왼손에 가까운 것이 좌군(左裙)이 된다.
西國竝悉單爲,神州任情複作。撗豎隨意,繞身旣訖擡使過臍,右手牽其左邊上角,在內牽向腰之右邊。左邊上裾取外邊而掩左畔近右手邊爲右裾,近左手邊爲左裾。

 

두 손으로 두 끝을 들어올려 바르고 평평하게 하고 중간은 뾰족하게 곧게 하면 곧 세 개의 주름을 이루게 된다. 그 후에 두 손으로 각기 조여서 허리에 이르게 하며 다만 세 겹으로 접은 것을 가지고 뒤를 향하게 하여 이를 가린다.
두 모서리는 각기 3지(指) 가량 추켜올려 함께 꽂아 등뼈를 향해서 아래로 내려오게 하고 허리사이에서 3지 가량 안으로 넣는다. 이렇게 하면 이는 설사 아직 실끈을 매달지 아니한 것이라 할지라도 곧 몸에 붙어 떨어져 내리지 않는다.
兩手二畔擧使正平,中閒矗 勅六反直卽成三襵。後以兩手各蹙至腰,俱將三疊向後掩之,兩角各擡三指俱插向脊使下,入腰閒可三指許。斯則縱未繫絛,亦乃著身不落。

 

그 후에 길이 5주(肘) 가량의 허리띠 끈으로 바로 중심에 갈고리를 채워서 들어올려 배꼽 아래를 향하게 한다. 치마의 웃 테두리를 없애 뒤를 향해 나란히 두개를 안배하여 바꾸어 가며 재서 앞으로 뽑아내고 한편으로는 좌우로 끌어당긴다. 또한 각기 한 손으로 굳건하게 두 가장자리를 누르고 거기에 두 개의 실을 감아 세 번 감게 한다. 그리하여 남아도는 것이 있으면 잘라버리고 적으면 다시 덧붙인다. 허리띠의 끝은 비단을 모아 만들어서는 안 된다.
後以腰絛長五肘許,鉤取正中擧向臍下,抹裙上緣向後雙排,交度前抽傍牽左右,各以一手牢擪兩邊,纏彼兩絛可令三度,有長割卻、少則更添。絛帶之頭不合緝綵。

 

이것이 원정(圓整)하게 치마를 입는 법이며 살바다부를 이루는 법이다. 발리만다라착니바사(鉢履曼茶羅著泥婆娑)12)가 곧 그 진짜 호칭이다. 이것을 번역하면 ‘원만하고 정돈되게 치마를 입는다’는 뜻이 된다. 그 끈의 넓이는 손가락 표면과 같으며 신발의 끈과 속옷 허리띠 따위는 혹 네모나기도 하고 혹 둥글기도 하나 둘 모두 손상됨은 없다. 삼 줄[麻繩] 같은 종류는 율문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斯謂圓整著裙。成薩婆多之部別,鉢履曼荼羅著泥婆娑,卽其眞也,譯爲圓整著裙矣。其絛闊如指面,則靴絛韤帶之流,或方或圓,雙亦無損”麻繩之流,律文不許。

12)발리(鉢履)는 원(圓), 만다라(曼茶羅)는 정(整), 니바사(泥婆娑)는 군(裙)이란 뜻이다.

 

무릇 작은 걸상이나 나무 받침대에 걸터앉을 때는 치마 위와 자락 아래의 모서리를 끌어당겨 팽팽하게 치마단을 눌러 사타구니 아래로 누른다. 그리하여 다만 두 무릎만을 가리고 정강이는 노출되어도 손상됨은 없다. 높이는 모름지기 배꼽둘레를 덮어야 하며, 아래로는 복사뼈에서 4지(指)를 올라간다. 이는 곧 속가에서의 의법(儀法)인데 만약 절 안에 있을 경우에는 장딴지 반 정도가 된다.
凡踞坐小牀及拈之時,牽裙上裾下角,急抹裙緣擪於胯下,但掩雙膝露脛無傷。高須上蓋臍輪,下至踝上四指。斯乃俗舍之儀。若在寺中,半踹亦得。

 

이 제한을 둔 것은 부처님께서 몸소 친히 제정한 것이며 사람의 뜻으로 곧 높고 낮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찌 고의로 교지를 어기고 스스로 보통 사람들의 정에 따를 수 있겠는가? 입은 치마가 길게 퍼져 땅을 쓸게 되면 첫째는 믿는 마음으로 깨끗하게 보시한 것을 손상시키는 것이고, 둘째로는 큰 스승의 격언(格言)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되니, 설사 간절하게 알려 준다고 하더라도 누가 능히 그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만 사람 가운데 자못 한두 사람이라도 그런 일에 마음을 두겠는가?
此之齊限佛自親製,非是人意輒爲高下。寧合故違敎旨、自順凡情,所著裙衣長申拂地,一則損信心之淨施,二乃慢大師之挌言。設告慇懃,誰能見用?萬人之內頗有一二存心?

 

서쪽 나라의 치마는 모두 가로로 입는다. 그 지방의 흰 모직물은 폭의 넓이가 2주(肘)이거나 혹 그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은 구하기 어렵다. 그것을 얻으면 곧 양쪽 끝을 바느질해서 서로 합쳐지게 하고 안을 열어서 일에 충당한다.
西國裙衣竝皆撗著,彼方白㲲幅寬二肘,若其半故貧者難求,卽須縫兩頭令相合,割內開以充事。

 

이 옷을 입는 위의는 율문에 자세하게 그 제도가 있으나 여기서는 다만 그 큰 강요(綱要)만을 간략하게 말하였다. 세밀하게 논하자면 면대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또한 출가한 모든 사람의 의복은 염색해서 건타(乾陀)로 만들어야 한다. 물감으로는 혹 지황(地黃)13)의 노란 가루나 혹 형벽(荊糪)의 누런 것 등을 사용하는데 이는 모두 붉은 흙이나 붉은 돌로 갈아서 즙을 내서 이를 섞고 빛깔의 얕고 깊음을 헤아려 요령 있게 일을 해나가야 한다.
此著衣儀,律文具有其制,但且略陳大綱要,細論非面不可。又凡是出家衣服,皆可染作乾陁,或爲地黃黃屑或復荊蘖黃等,此皆宜以赤土赤石硏汁和之,量色淺深要而省事。

13)현삼과의 다년생 식물로 뿌리는 보혈 강장ㆍ지혈의 약재로 쓰인다.

 

혹은 한 가지 극심(棘心:가시나무의 속) 만을 사용하기도 하거나 혹 붉은 흙이나 붉은 돌을 사용하기도 하고 혹 당리(棠梨)의 자줏빛 흙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 번 염색하면 떨어질 때까지 지속되는데 무엇 때문에 다른 것을 구하겠는가? 그러나 뽕나무 껍질의 푸른빛과 녹색은 바로 금지하는 조항이다. 순수한 자주색과 갈색은 서방에서는 입지 않는다. 신발과 짚신 등속도 나름대로 가르침을 이룬 것도 있으며 장화(長靴)와 실로 짠 짚신은 전혀 법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채색하고 수놓아 문채가 드러나는 물건은 모두 부처님께서 제약하여 끊게 하셨으니, 그 내용은 피혁(皮革)에 관한 일 가운데서 자세히 설명한 내용과 같다.
或復單用棘心、或赤土赤石、或棠梨土紫,一染至破,亦何事求餘。而桑皴靑綠正是遮條,眞紫褐色西方不著。鞋履之屬自有成敎,長靴線鞋全爲非法,彩繡文章之物佛皆制斷,如皮革事中具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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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니의상제(尼衣喪制)

 

동하(東夏)의 비구니의 옷은 모두가 속세와 관련되어 있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착용하면 의법(儀法)과 어긋나는 것이 많다.
東夏諸尼衣皆涉俗,所有著用多竝乖儀。

 

율문에 설명한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비구니에게는 다섯 가지의 옷이 있다. 첫째는 승가지(僧伽知)이며, 둘째는 올달라승가(嗢呾羅僧伽)이며, 셋째는 안달바사(安呾婆娑)이며, 넷째는 승각기(僧脚崎)이며, 다섯째는 군(裙)이다.
准如律說,尼有五衣:一僧伽知、二嗢呾羅僧伽、三安呾婆娑、四僧腳崎、五裙。

 

이 가운데 네 가지 옷은 큰 스님들의 위궤(儀軌)와 다르지 않으나 오직 치마만은 틀린 점이 있다. 범어로 구소락가(俱蘇洛迦)라 하는데 번역하면 천의(篅衣)라는 뜻이다. 그 양쪽 머리를 꿰매므로 형태가 작은 대나무로 만든 통과 같기 때문이다. 그 길이는 4주(肘)이며 너비는 2주이다. 위로는 배꼽을 덮을 수 있고 아래로는 복사뼈 위 4지(指)에 이르게 한다. 입을 때는 안으로 들어가서 추켜올려 배꼽을 지나게 하여 양 가장자리를 각각 졸라 두 곳 모두 밀쳐내서 등뼈를 누르게 한다. 끈을 매는 법과 끈의 크기는 스님들의 경우와 같다.
四衣儀軌與大僧不殊,唯裙片有別處。梵云俱蘇洛迦,譯爲篅衣。以其兩頭縫合形如小篅也,長四肘寬二肘,上可蓋臍下至踝上四指。著時入內擡使過臍,各蹙兩邊雙排擪於恊反脊。繫絛之法,量與僧同。

 

가슴과 겨드랑이 사이에는 매고 누르는 것이 조금도 없다. 가령 젊고 건장한 사람이거나 혹 노쇠한 나이의 비구니라도 가슴에 두껍게 살이 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참으로 허물이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니 어찌 사람들에게 부끄럽다 하여 교검(敎檢)을 살펴보지 않는가? 함부로 거동을 꾸며서 옷을 입고 벗는 일은 허물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임종 때가 되면 죄가 앞이 보이지 않는 빗줄기와 같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 만 가지 경우라 해도 한 때에 다시금 고칠 수도 있다.
胸腋之閒迥無繫抹,假令少壯或復衰年,乳高肉起誠在無過。豈得羞人不窺敎撿,漫爲儀飾著脫招愆;臨終之時罪如濛雨,萬中有一時復能改。

그러나 그들이 외부로 나가든지 혹은 비구 앞에 있을 때나 아울러 속인의 집으로 가서 다른 사람이 청한 음식을 받아먹을 때는 가사로 목을 두르고 몸을 덮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때는 어깨끈을 풀고 가슴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여 밑으로 손을 내밀어 식사를 하여야 한다. 기지(祇支)ㆍ편단(偏袒)ㆍ삼고(衫袴) 따위는 큰 성인께서 친히 막으신 일이니 그것을 입지 말아야 한다.
然其出外及在僧前,幷向俗家受他請食,袈裟繞頸覆身,不合解其肩紐,不露胸臆下出手飡。祇支偏袒衫袴之流,大聖親遮,無宜服用。

남해의 여러 나라에서는 비구니 대중들은 따로 한 가지 옷을 착용한다. 이것은 비록 그 제도가 서방의 제도는 아니지만 그것을 함께 승각기복(僧脚崎服)이라 부르고 있다. 이 옷은 길이도 2주(肘), 너비도 2주인데 양쪽 끝을 함께 꿰매고 1척(尺) 가량을 남겨 두며 모서리 끝을 1촌(寸) 가량 바느질해 붙인다. 위로 들어올려 어깨를 꿰뚫고 머리를 꿰뚫어서 오른편 어깨를 뽑아낸다. 다시 허리띠는 매지 않고 겨드랑이를 가리고 가슴을 덮고 아래로 무릎을 지나게 한다. 만약 이 옷을 입고자 한다 하더라도 법에 손상되는 것은 없다. 오직 두 가닥의 실만 소비하는 것으로도 형체의 추한 부분을 가리고 막을 만하다. 그러나 만약 이 옷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큰 비구승과 같은 승각기복을 입으면 된다.
南海諸國,尼衆別著一衣,雖復制匪西方,共名僧腳崎服。長二肘寬二肘,兩頭縫合留一尺許,角頭刺著一寸,擧上穿膊貫頭拔出右肩,更無腰帶掩腋蓋乳,下齊過膝。若欲此服,著亦無傷。線則唯費兩條,彌堪掩障形醜。若不樂者,卽可還須同大苾芻著僧腳崎服。

그들의 절 안에서나 승방 가운데서는 구소락가(俱蘇洛迦)와 승각기 두 가지 옷으로 충분하다범본(梵本)에 기준하여 점검해 보니 어깨를 덮지 않는 옷의 이름이 곧 승각기의(僧脚崎衣)이다. 이는 곧 기지(祇支)의 원래 이름인데 기왕에 이것을 치마라 말하지 않은 것은 대개의 경우 번역한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땅히 법에 어긋나는 옷을 버리고 법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其寺內房中俱蘇洛迦及僧腳崎,兩事便足准撿梵本,無覆肩衣名,卽是僧腳崎衣。此乃祇支之本號,旣不道裙,多是傳譯參差。應捨違法之服,著順敎之衣。

승각기는 혹 명주나 무명 한 폭 반을 취하여 길이는 4, 5주(肘) 가량 되게 하고 마치 5조(條) 가사를 걸치듯 반대로 어깨 위에 걸치는 것이 곧 그 의법이다. 만약 다른 곳으로 향할 경우에는 꼭 형상을 가리고 마치 병방(屛房)에 있을 때와 같이 하여 어깨를 드러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봄이나 여름같은 계절에는 이것으로 몸을 가릴 수 있으나 가을이나 겨울에는 사정에 맡도록 따뜻하게 입는다.
僧腳崎取一幅半,或絹或布,可長四肘,五肘如披五條反搭肩上,卽其儀也。若向餘處須好覆形,如在屛房袒膊非事。春夏之節此可充軀,秋冬之時任情煖著。

발우를 받쳐 들고 걸식하면 몸을 보양할 만하니 비록 여자라 하더라도 대장부의 뜻을 가져야 한다. 어찌 항상 베틀에서 일하며 여러 잡된 업을 짓고 온통 의복을 만들기 위해서 10중(重)ㆍ5중으로 일하는가? 선송(禪誦)에는 한 번도 마음을 두지 않아 쫓기듯 바빠 늘 마음와 정신을 고달프게 하면서 속인과 같이 화장하고 멋을 내면서 계경(戒經)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 용납되겠는가? 마땅히 문도들과 함께 서로 점검하여야 한다. 서쪽 나라의 비구니 대중들에게는 이런 일이 전연 없다. 모두가 나란히 걸식하여 몸을 떼우고 가난한 곳에 살며 소박한 생활을 지킬 따름이다.
擎鉢乞食足得養身。雖曰女人有丈夫志,豈容恒營機杼作諸雜業,廣爲衣服十重五重,禪誦曾不致心,驅驅鎭惱情志,同俗粧飾不顧戒經。宜可門徒共相撿察,西國尼衆斯事全無,竝皆乞食資身居貧守素而已。

만약 그렇다면 출가한 비구니 대중에게는 이양(利養)은 아주 희귀한 일이고 머물러 거처하는 절에도 흔히 여러 가지 음식이 없으리니 만약 분수 따라 살아가지 않는다면 목숨을 살릴 길이 없게 되어 번번히 계율의 가르침을 어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인의 마음과 어긋나게 되니 나아가고 물러설 두 갈래 길에서 절충할 수 있겠는가? 몸이 편안하면 도가 성한다는 말을 자세히 듣지 못하였는가?
若爾出家尼衆利養全稀,所在居寺多無衆食,若不隨分經求活命無路,輒違律敎便爽聖心。進退兩途,如何折中?身安道盛可不詳聞。

이에 대한 해답은 본래 출가를 기약하고 마음으로 해탈을 희구하면서 세 그루의 해로운 종자[三株之害種]14)를 끊고 네 폭포의 큰 물줄기[四瀑之洪流]15)를 막으려면 끝까지 두타행에 뜻을 두어 고락(苦樂)의 잘못된 길을 제거하고 마음을 두텁게 하여 욕심을 적게 하고 침묵의 진실한 길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계율을 받들면 이것이 곧 도를 융성하게 하는 것이다. 어찌 몸을 편안히 할 것만을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겠는가?
答本契出家情希解脫,絕三株之害種、偃四瀑之洪流,宜應畢志杜多,除苦樂之邪徑:敦心少欲,務閑寂之眞途。奉戒昏旦斯卽道隆,豈念身安將爲稱理。

14)삼주(三株)란 탐(貪)ㆍ진(瞋)ㆍ치(癡)의 세 가지 독(毒)을 말한다.
15)4폭류(瀑流)로 번뇌가 마음속 선한 성질을 씻어내는 것이 폭류와 같은 까닭에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폭류라고 한다. ①욕폭류(欲瀑流):욕계에서 일으키는 번뇌. 중생은 이것 때문에 생사 세계를 바퀴 돌 듯

    한다. ②유폭류(有瀑流):색계ㆍ무색계의 번뇌 ③견폭류(見瀑流):3계의 견혹(見惑) 중에 4제(諦)마다 각각

    그 아래서 일어나는 신견(身見)ㆍ변견(邊見) 등의 그릇된 견해. ④무명폭류(無明瀑流):3계의 4제와 수도

    (修道)에서 일어나는 우치(愚癡)의 번뇌.

 

만약 계율을 지켜 거짓됨으로부터 진실을 구별해낼 수 있다면 용과 귀신과 하늘과 인간 존재들이 자연히 따르고 공경하게 될 것이니 무엇 때문에 살길이 없다고 근심하여 부질없이 괴로움을 일삼겠는가? 심지어 5의(衣)16)와 병과 발우만으로도 충분히 몸을 보전할 수 있으며 한 칸의 작은 방에서도 더욱 목숨을 보양할 만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일을 간소하게 하여 문도의 수고로움을 줄여준다면 옥이 진흙 속에 있듯이 또는 연꽃이 물 속에서 피어나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근기가 아래인 중생[下衆]이라 하더라도 그 지혜는 실로 상인(上人)과 같아질 것이다.
若能守律決鍊眞疏,則龍鬼天人自然遵敬,何憂不活徒事辛苦?至如五衣甁鉢足得全軀,一口小房彌堪養命,簡人事、省門徒,若玉處泥、如蓮在水,雖云下衆,實智等上人矣。

16)비구의 3의(이에 대해서는 앞의 권1의 주 47) 참고)에 대하여 비구니의 정장으로서의 5의를 말한다. 

    3의에 복견의(覆肩衣:오른쪽 어깨를 덮음)와 궐수라의(厥修羅衣)를 더한 것이다.

 

또한 부모가 죽어 장례를 치를 경우 스님이나 비구니들은 거기에 멋대로 예의(禮儀)를 마련하게 된다. 혹은 속인과 똑같이 슬퍼하고 곧 효자가 되려하여 혹 승방에 영궤(靈几)를 설치하여 거기에 공양을 드리기도 한다. 혹 참포(黲布)를 걸치고 승단의 평상 법식을 어기기도 하고 혹 긴 머리카락을 남겨두어 법칙을 어기기도 하고 또 혹 곡장(哭杖:상중에 짚는 지팡이)을 짚고 혹 여막(廬幕)의 거적자리에서 자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들은 모두가 교의(敎儀)가 아니다. 행하지 않아도 허물이 없다.
又復死喪之際,僧尼漫設禮儀,或復與俗同哀將爲孝子,或房設靈、机用作供養,或披黲布而乖恒式,或留長髮而異則,或拄哭杖、或寢苫廬,斯等咸非敎儀,不行無過。

 

이치로 보아서 마땅히 그 죽은 사람을 위해서 방 하나를 깨끗하게 꾸미고 혹 때에 따라 일시적으로 덮개와 휘장을 설치하고 독경ㆍ염불하면서 향화를 갖추어 죽은 혼령이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로소 효자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보은이 되는 것이거늘 어찌 3년 동안 피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자신의 공덕을 드러내는 것으로 삼으며 7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야 비로소 은혜를 갚는 일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理應爲其亡者淨飾一房,或可隨時㩲施蓋慢,讀經念佛具設香花,冀使亡魂託生善處,方成孝子、始是報恩。豈可泣血三年將爲賽德,不飡七日始符酬恩者乎?

 

이런 일은 곧 반복해서 진로(塵勞:번뇌)를 맺어 다시 쇠사슬에 얽히는 결과가 될 것이며 어둠에서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연기(緣起)의 3절(節)을 깨닫지 못하고 죽음에서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이니 어떻게 원성(圓成)한 10지(地)의 경지를 증득할 수 있겠는가?
斯乃重結塵勞、更嬰枷鎖,從闇入闇,不悟緣起之三節,從死趣死,詎證圓成之十地歟!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면 비구로서 죽은 사람은 결정적으로 그의 죽음이 확인되면 그날로 두 사람이 시신을 마주 들고 태울 곳으로 가서 곧 불로 태워야 한다. 시신을 태울 때가 되면 친한 벗들이 모두 모여 한쪽에 앉는데 혹 풀을 엮어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혹 흙을 모아 대(臺)를 만들기도 하며 혹 벽돌을 갖다놓고 이것으로 앉을 자리를 충당하기도 한다. 경을 잘 외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상경(無常經)』17)을 반 장 혹은 한 장 외우게 하되 피곤하게 오래 지속하지 못하게 한다그 경은 별록(別錄)에 첨부하였다.
然依佛敎,苾芻亡者觀知決死,當日舁向燒處,尋卽以火焚之。當燒之時,親友咸萃在一邊坐,或結草爲座、或聚土作臺、或置甎石以充坐物,令一能者誦無常經半紙一紙,勿令疲久,其經別錄附上。

17)1권으로 되어 있다. 당나라 의정이 번역한 것으로 노(老)ㆍ병(病)ㆍ사(死)의 3법을 설하였다. 후에 5언송 12수, 

    7언송 4수를 부가해 무상게라 하였고 서천(西天)의 승려들이 장례 때에 이것을 염송했다.

 

그런 다음에 각기 무상(無常)을 생각하면서 다시 거주하는 곳으로 돌아와서 절 밖 연못 안에서 옷을 입은 채 함께 목욕한다. 연못이 없는 곳에서는 우물에 나아가 몸을 씻는다. 이 경우 모두 헌옷을 사용하고 새 옷은 더럽히지 않고 따로 마른 옷을 입은 후에 방으로 돌아가서 땅을 소똥으로 깨끗이 바른다. 그 밖의 다른 일은 모두 예전과 같이 한다. 의복의 위의는 일찍이 한 조각도 다른 점이 없다.
然後各念無常,還歸住處。寺外池內連衣竝浴,其無池處就井洗身,皆用故衣不損新服,別著乾者然後歸房。地以牛糞淨塗,餘事竝皆如故,衣服之儀曾無片別。

 

혹 그의 사리를 거두어 죽은 사람을 위하여 탑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구라(俱攞)라 부르며 형상이 작은 탑과 같으나 위에 윤개(輪蓋)가 없다. 그러나 탑에는 보통사람과 성인의 구별이 있음은 율장 안에서 자세히 논한 것과 같다. 어찌 석가모니의 성교(聖敎)의 가르침를 버리고 주공(周公)의 속례(俗禮)를 쫓아 몇 달을 호곡(號哭)하고 3년 동안 상복을 입는 일이 용납되겠는가?
或有收其設利羅爲亡人作塔,名爲俱攞,形如小塔上無輪蓋。然塔有凡聖之別,如律中廣論。豈容棄釋父之聖敎、逐周公之俗禮,號咷數月、布服三年者哉!

 

일찍이 듣건대 영유법사(靈裕法師)란 스님이 있어 거상(擧喪)과 발상(發喪)을 하지 않고 상복(喪服)을 입지 않고 먼저 죽은 분을 추모하면서 그를 위하여 복업을 닦았는데, 수도에 사는 여러 스님들 가운데도 역시 이 전철(前轍)을 따른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효도가 아니라고 하였으나 그것이 곧 율의 뜻에 부합된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曾聞有靈裕法師,不爲擧發、不著孝衣,追念先亡爲修福業。京洛諸師亦有遵斯轍者,或人以爲非孝,寧知更符律旨。

 

13. 결정지법(結淨地法)

 

정지(淨地)에는 다섯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기심작정지(起心作淨地)이며, 두 번째는 공인지정지(共印持淨地)이고, 세 번째는 여우와정지(如牛臥淨地)이며, 네 번째는 고폐처정지(故廢處淨地)이고, 다섯 번째는 병법작정지(秉法作淨地)이다.
有五種淨地:一起心作、二共印持、三如牛臥、四故廢處、五秉法作。

 

첫 번째, 기심작정지라 하는 것은 처음 절을 지을 때 주춧돌을 정하고 나서 한 비구가 검교(檢校)하는 사람이 되었을 경우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이 한 절에 혹은 한 승방에 스님들을 위하여 곧 깨끗한 주방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起心作者,初造寺時定基石已,若一苾芻爲撿校人者,應起如是心:“於此一寺或可一房,爲僧當作淨廚也。”

두 번째, 공인지정지라 하는 것은 절의 기초를 정할 때 만약 세 사람의 스님이라면 마땅히 한 사람의 비구가 다른 비구들에게 고하기를, “스님[具壽]들이여, 모두 마음을 써서 이곳을 정하여 한 절에 혹은 한 승방에 스님들을 위하여 청정한 주방을 만들기로 합시다”라고 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스님도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인지정지이다.
共印持者,定寺基時若但三人者,應一苾芻告餘苾芻言:“諸具壽!皆可用心印定此處。於此一寺或可一房。爲僧作淨廚。”第二第三應如是說。

세 번째, 여우와정지라고 말하는 것은 그 절의 집들이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처럼 되어 방과 문이 정해진 장소가 없다. 설사 법으로 만든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곳이 곧 그 청정을 이루게 되는 곳이다.
言如牛臥者,其寺屋舍猶如牛臥,房門無有定所。縱使無不作法,此處卽成其淨。

네 번째, 고폐처정지라 하는 것은 이곳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스님이 버리고 폐사가 되었던 곳인데 만약 다시 온 사람이 있어 예전에 접촉하였던 곳에 이르게 되면 곧 그곳이 정지가 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하룻밤을 묵지 않게 되면 곧 법을 만들어야 한다.
言故廢處者,謂是經久僧捨廢處,如重來者至舊觸處便爲淨也。然此不得經宿,卽須作法也。

다섯째, 병법작정지라 말하는 것은 백이갈마(百二羯磨)18)를 주도하는 사람이 경계를 결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관한 글은 백일갈마(百一羯磨)에서 설한 내용과 같다.
言秉法作者,謂秉白二羯磨結界也,文如百一羯磨中說。

18)백일갈마와 같다. 백일의 뜻은 백일공신(百一供身)의 백일과 같다. 법이 많으므로 백이라고 한 것인데, 

    그 많은 법이 각각 일종의 갈마가 있으므로 백일갈마라 하였다. 갈마는 승가 가운데서 무슨 일이고 하려면

    대중의 동의와 찬성을 얻어서 그 일을 하는 작법(作法)이다.


앞에서 말한 다섯 종류의 정법을 짓고 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비구들에게 두 종류의 안락함을 얻게 한다. 첫 번째는 안에 있는 사람은 음식을 익히고 밖에 있는 사람은 저장하게 되며, 두 번째는 밖에서 음식을 익히게 되면 안에서 저장하게 되어도 모두 허물이 없다고 하셨다.
如前五種作淨法已,佛言令諸苾芻得二種安樂:一在內煮、在外貯;二在外煮、在內貯,竝無過也。

 

나는 사부대중의 스님들을 검험(檢驗)해 보고 눈으로 당장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을 보았으며 아울러 다시 율장의 취지를 소상하게 보았더니 대략 이 정지를 건립하는 일과 같았다. 아직 정지를 만들기 전에 만약 함께 음식을 먹거나 같은 경계에서 잠을 잤을 경우에는 모두에게 요리하고 잠자는 것의 허물이 있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 법이 더해진 경우에는 비록 같은 경계안에서 함께 잠을 잤다고 하더라도 요리하고 자는 죄는 없으니 이것이 그곳의 가르침이었다.
撿驗四部衆僧,目見當今行事,幷復詳觀律旨,大同如此立淨。但未作淨之前,若共飮食同界宿者,咸有煮宿之過。旣其加法,雖共界宿無煮宿之罪,斯其敎也。

여기서 한 절이라고 말한 것은 총체적으로 머무는 곳 전체를 깨끗한 주방으로 삼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경우 방마다 날 것과 익힌 것을 모두 저장하게 된다. 만약 그 안에서 자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어찌 스님들을 밖으로 내보내서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첫째 스님들이 숙소를 수호하지 못하게 되고 둘째로는 비축을 한다 하더라도 허물이 없다. 서쪽 나라에서 이어온 전통은 모두가 온 절 안을 정주(淨廚)로 삼는 것이다. 만약 국한하여 한쪽만을 취하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허용되는 한계가 있으니 이 점은 중국의 율사들의 견해와 같지 않다. 또한 아직 의복을 둘 장소를 결정하지 아니하고 숙소를 떠나는 것은 허물을 초래하게 된다. 승단에서 만약 경계가 결정되었다면 떠나도 잘못은 없다. 정주(淨廚)도 또한 그렇다.
言一寺者,摠唱住處以爲淨廚,房房之內生熟皆貯。如其不聽內宿,豈可遣僧出外而住?一則僧不護宿,二乃貯畜無愆。西國相承,皆摠結一寺爲淨廚也。若欲局取一邊,竝在開限,不同神州律師見矣。且如未結衣界,離宿招愆;僧若結已,離便無失。淨廚亦爾。

이미 그것이 성인이 허락하신 일이니 보통 사람들의 정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옷을 지키는 법의 경계는 나무나 또 다른 장소가 있다. 다만 경계의 몫을 지킨다는 것은 그 뜻이 여자를 삼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인(淨人)이 주방 안에 들어갈 경우 어찌 이것을 곧 마을에서 거두어들인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가령 누군가 마을에 들어갈 때 법의를 지니는 것은 원래 여자에 대해 자신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유나(維那)가 옷을 가지고 가 검교하는 것은 또한 함부로 손상시킴이 심한 것이다.
旣其聖許,勿滯凡情。又復護衣之法,界有樹等不同,但護界分,意非防女。淨人來入廚內,豈得卽是村收?假令身入村坊,持衣無不護女。維那持衣撿挍,斯亦漫爲傷急矣。

14. 오중안거(五衆安居)

전안거(前安居)의 경우는 5월의 흑월(黑月:한 달의 뒷 15일)의 첫날에 하고 후안거(後安居)의 경우는 6월 흑월의 첫날에 한다. 오직 이 두 날에만 안거를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 중간의 날짜에 대해서는 안거를 허락한 글이 없다. 그리하여 8월 보름에 이르게 되면 전안거(前安居)가 끝나게 되고, 9월 보름에 이르면 후안거가 끝나게 된다.
이때는 법승과 속인들이 크게 공양을 일으킨다. 8월 보름 이후를 가율저가월(歌栗底迦月)이라 이름하는데, 강남에서는 가제(迦提)라 하여 모임을 마련한다. 바로 이때가 전안거가 끝나는 때이다. 8월 16일은 곧 갈치나의(羯絺那衣:공덕의)를 걸치는 날이다. 이것이 그 옛 법이다.
若前安居,謂五月黑月一日。後安居,則六月黑月一日。唯斯兩日合作安居,於此中閒文無許處。至八月半是前夏了,至九月半是後夏了,此時法俗盛興供養。從八月半已後名哥栗底迦月,江南迦提設會,正是前夏了時。八月十六日卽是張羯絺那衣日,斯其古法。

또 율문에 이르기를, ““무릇 하안거 기간 안에 불법의 규칙에 따르는 인연이 있을 경우에는 모름지기 수일(受日:휴가)하여야 한다. 많고 적은 인연이 찾아옴에 따라 곧 소요되는 날짜에 준해서 말미를 받아야 한다. 하룻밤 자고 올 일이 생기게 되면 하루의 말미를 받고 이와 같이 하여 7일에 이르면 모든 다른 사람과 상대한다”라고 하였다.
又律文云,:凡在夏內有如法緣須受日者,隨有多少緣來,卽須准日而受。一宿事至,受其一日;如是至七,皆對別人。

그 후 다시 인연 있는 사람이 찾아오면 율에서는 거듭 청해서 떠나도록 하고 있다. 만약 7일을 넘을 경우 8일로 국한하여 그 이상 40일 밤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갈마에서는 8일 이상이 소요되는 날짜의 말미를 받고 떠난다. 그러나 하안거의 절반이 넘도록 외부에 있으면서 숙식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것은 오직 40일 밤만 허락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병으로 말미암거나 그밖에 여러 어려운 일이 있어 꼭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경우에는 비록 수일(受日)하지 않아도 안거를 깨는 것이 아니다. 출가한 5부대중이 안거를 시작하고 나서 하중(下衆)에게 바깥에 나갈 인연이 생길 경우 말미를 내려 줄 것을 부탁하고 떠난다.
更有緣來,律遣重請而去。如過七日齊八日已去,乃至四十夜中閒羯磨受八日等去,然不得過半夏在外而宿,爲此但聽四十夜矣。必有病緣及諸難事須向餘處,雖不受日不破安居。出家五衆旣作安居,下衆有緣囑授而去。

하안거에 이르기 전에 미리 방과 요사[房舍]를 나누고 상좌 스님은 그 가운데 좋은 곳을 취하여 차례로 나누어서 마지막 스님에 이르게 한다. 나란타사(那爛陀寺)에서는 현재 이 법을 행하고 있다. 대중들은 해마다 언제나 방과 요사를 나누고 있는데 이는 세존께서 친히 가르치신 법으로 매우 요익한 것이 되나니, 첫째는 그들의 아집을 제거하게 되고, 두 번째는 두루 승방을 보호하게 된다. 출가한 대중은 이치로 보아 모름지기 이 법을 지켜야 할 것이다.
未至夏前豫分房舍,上坐取其好者,以次分使至終。那爛陁寺現行斯法,大衆年年每分房舍。世尊親敎深爲利益:一則除其我執,二乃普護僧房,出家之衆理宜須作。

그러나 강 남쪽의 여러 절에서는 때로 절을 나누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고덕(古德)들이 전해온 법으로 아직도 그 법을 행하고 있다. 어찌 한 선원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곧 그것을 자기 소유로 삼고 합당한 곳인지 합당하지 않은 곳인지를 관찰하지 않고 마침내 형체가 다할 때까지 그곳에 있는 것이 용납되겠는가? 이는 참으로 상대(上代)에서 행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후세 사람들이 법을 잃어버리게 된 결과이다. 만약 가르침에 준하여 나눌 수 있다면 참으로 깊은 이익이 있을 것이다.
然江左諸寺時有分者,斯乃古德相傳,尚行其法。豈容住得一院將爲己有,不觀合不遂至盡形?良由上代不行,致使後人失法。若能准敎分者,誠有深益矣。

 

15. 수의성규(隨意成規)

 

무릇 하안거를 마침으로써 한 해의 안거가 끝나는 때가 되면 이 날을 마땅히 "수의(隨意)"라 이름지어야 한다. 즉 이것은 그의 의사에 따라 3사(事)19) 가운데에서 어떠한 것이라도 거론하고 발설하여 죄를 설하고 허물을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 날을 자자(自恣)라 한 것은 뜻으로 번역한 말이다.
凡夏罷歲終之時,此日應名隨意,卽是隨他於三事之中任意擧發說罪除愆之義。舊云自恣者,是義翻也。
19)탐욕[貪]ㆍ성냄[瞋]ㆍ어리석음[痴]의 세 가지를 말한다.


그러나 반드시 14일 밤에 한 분의 경사(經師)를 초청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불경을 암송하게 한다. 이때는 속인 대중들[俗士]이 구름같이 많이 달려오고 법도들이 안개처럼 모여들어 등을 켜서 계속 밝히며 향화를 공양한다. 이튿날 아침에는 모두 밖으로 나가서 마을과 성을 돈다. 이때 각자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여러 제저(制底)에 예배하며 붕거(棚車)에 불상을 싣는다. 북소리와 음악이 하늘에 울려 퍼지고 당번[幡]과 일산[蓋]이 그물처럼 얽혀 바람에 나부끼며 해를 가리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삼마근리(三摩近離)라 부른다. 이 말을 번역하면 화집(和集)이란 뜻이 된다. 큰 재일(齋日)에는 모두가 이와 같이 하는데 이것이 곧 중국에서의 행성법(行城法)이다.
必須於十四日夜請一經師昇高座誦佛經,于時俗士雲奔、法徒霧集,燃燈續明、香花供養。明朝摠出旋繞村城,各竝虔心禮諸制底,掤車輿像鼓樂張天,幡蓋縈羅飄揚蔽日,名爲三摩近離,譯爲和集,凡大齋日悉皆如是。卽是神州行城法也。

그리하여 우중(禺中:巳時)이 되면 비로소 절로 돌아와서 해가 오시(午時)가 되면 바야흐로 큰 재를 하게 된다. 오시가 지나면 모두 모여서 각기 신선한 잔디 한줌 가량을 취하여 손에 쥐고 발로 밟으며 수의(隨意)의 일을 하게 되는데 비구가 먼저 하고 난 뒤에 비로소 비구니 대중이 하며 마지막으로 아래 위치의 삼부대중이 하게 된다.
禺中始還入寺,日午方爲大齋。過午咸集,各取鮮茅可一把許,手執足蹈作隨意事,先乃苾芻、後方尼衆、次下三衆。

이 경우 만약 대중들이 시간이 지연될까 몹시 두려워한다면 마땅히 많은 사람을 차출해서 나누어 수의를 받게 하여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이 행한 죄를 거론하면 곧 법에 준해서 그 죄를 제거하는 법을 설법해 준다.
若其衆大恐延時者,應差多人分受隨意,被他擧罪則准法說除。

이때가 되면 혹 속인들이 보시를 하거나 또 혹 대중승단에서 스스로 보시하여 가지고 있는 물건이 곧 대중 앞에 이르게 되면 그 가운데 오덕(五德)을 지닌 스님이 마땅히 상좌스님에게 “이 물건들을 대중스님들에게 주어 수의물(隨意物)로 삼아도 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이때 상좌스님이 “된다”라고 대답하면 거기 있는 의복과 칼ㆍ바늘ㆍ송곳 따위들을 받고 나서 균등하게 나눈다. 이것이 그곳의 가르침이다. 이날 칼ㆍ바늘 등을 받드는 이유는 그 스님들이 총명하고 예리한 지혜를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當此時也,或俗人行施、或衆僧自爲,所有施物將至衆前。其五德應問上坐云:“此物得與衆僧爲隨意物不?”上坐答云:“得。”所有衣服刀子鍼錐之流,受已均分,斯其敎也。此日所以奉刀鍼者,意求聰明利智也。

수의의 행사가 끝나게 되면 마음대로 각각 동서남북으로 떠난다. 이것은 곧 좌하(坐夏)20)가 이미 두루 끝났으니 다시 하룻밤을 지낼 수고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상세한 것은 다른 곳에서 설명한 내용과 같으며 여기서는 상세히 말하지 않겠다.
隨意旣訖任各東西,卽是坐夏已周,無勞更經一宿。廣如餘處,此不詳言。

20)여름 우기(雨期) 때 90일간 많은 수도승이 한 장소에 거주하며 수해하는 것. 안거(安居)를 말한다.

여기서 설죄(說罪)라 말한 것은 죄를 진술하고자 자기가 앞서 저지른 허물을 말하고, 지난 허물을 고쳐 다가올 미래의 수행을 하고자 지성으로 간절하게 자책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름마다 포쇄타(褒灑陀)를 하고 아침 저녁마다 범한 죄를 기억한다포쇄(褒灑)는 장양(長養)이란 뜻이며, 타(陀)는 정(淨)이란 뜻이다. 뜻풀이를 하면 선(善)을 길이 길러서 파계한 허물을 깨끗이 제거한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것을 포살(布薩)이라 한 것은 와전되고 생략된 말이다.
言說罪者,意欲陳罪說已先愆,改往修來至誠懇責。半月半月爲襃灑陁,朝朝暮暮憶所犯罪襃灑是長養義,陁是淨義。意明長善淨除破戒之過。昔云布薩者,訛略也。

첫 편(篇)에서 만약 범한 죄가 있을 경우 이는 다스릴 수가 없다. 둘째 편에서는 어긴 것이 있을 경우 20명이 필요하다. 만약 가벼운 허물을 저질렀을 경우 자신과 처지가 같지 않은 사람과 마주하여 이를 제거하고 참회하게 한다.
初篇若犯,事不可治。第二有違,人須二十。若作輕過,對不同者而除悔之。

이것을 범어로 아발저발라저제사나(痾鉢底鉢喇底提舍那)라 하는데, 아발저라는 것은 죄ㆍ허물을 뜻하며, 발라저제사나는 곧 다른 사람과 상대해서 말한다는 뜻이다. 자기의 잘못을 말하고 청정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각기 제한된 분수에 근거하여야만 죄가 소멸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총체적인 모습으로 허물을 말하게 된다면 이것은 계율에서 허락한 일이 아니다.
梵云痾鉢底鉢喇底提舍那。痾鉢底者,罪過也。鉢喇底提舍那,卽對他說也。說己之非冀令淸淨。自須各依局分,則罪滅可期;若摠相談愆,非律所許。

예전에 참회라고 말한 것은 설죄(說罪)와 관계되는 일이 아니다. 왜냐 하면, 참마(懺摩)라는 말은 서쪽 발음인데 나름대로 참는다[忍]는 뜻에 해당한다. 회(悔)라는 것은 동하(東夏)의 문자며 지난 일을 뒤쫓아 후회한다는 것이 골자가 된다. 그러므로 후회하는 것과 참는 것과는 멀어 서로 관련이 없는 일이다. 만약 정확하게 범본(梵本)에 근거한다면 모든 죄를 면제받을 때는 마땅히 진심으로 설죄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소상히 살펴본다면 참마(懺摩)를 추회(追悔)라 번역한 것은 그 유래가 거의 없는 듯하다.
舊云懺悔,非關說罪。何者?懺摩乃是西音,自當忍義。悔乃東夏之字,追悔爲目。悔之與忍迥不相干。若的依梵本,諸除罪時應云至心說罪。以斯詳察,翻懺摩爲追悔,似罕由來。

서쪽 나라 사람들은 다만 잘못 건드렸거나 몸이 잘못하여 서로 부딪치기만 하여도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을 가리지 않고 연장자는 손을 드리우고 서로 마주 보며 어린 사람의 경우는 합장하여 경건하게 공경을 표시한다. 혹 몸을 쓰다듬어도 되고 혹 때로는 어깻죽지를 잡고 입으로 참마(懺摩)라 말한다. 이 뜻은 용서를 청하며 원컨대 성을 내서 책망하지 말라는 뜻이다.
西國之人但有觸誤及身錯相觸著,無問大小,大者垂手相向,小者合掌虔恭。或可撫身、或時執膞、口云懺摩,意是請恕願勿瞋責。

율장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 사과를 할 때는 곧 참마라는 말을 하고 만약 자기의 죄를 말할 경우에는 곧 제사나(提舍那)라 말한다고 하였다. 뒤에 원한이 남아있을까 두려워하여 이 말을 써서 앞의 미혹한 일을 아뢰는 것이다. 오래도록 풍속과 습관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일은 모름지기 근본에 근거하여야 한다.
律中云提舍那矣,恐懷後滯、就他致謝,卽說懺摩之言。必若自己陳罪,乃云提舍那矣,恐懷後滯、用啓先迷。雖可習俗久成,而事須依本。

범어로 발라바라나(鉢刺婆刺拏)라는 말을 번역하면 수의(隨意)란 뜻이 된다. 이는 또한 배부르고 풍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며, 또한 이는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그가 범한 허물을 들어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梵云鉢剌婆剌拏,譯爲隨意,亦是飽足義,亦是隨他人意擧其所犯。

16. 시저합부(匙筯合否)

 

서방의 식사하는 법은 오직 오른손만을 사용하는데, 모름지기 병을 앓을 경우에만 숟가락을 지니는 것이 허용된다. 젓가락은 오천축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했고, 4부(部)에서도 역시 보지 못하였는데 오직 중국에서만 이 두 가지를 함께 쓴다. 속인의 무리에서는 나름대로 이것이 예전부터 내려온 법이나, 승려의 경우에는 사정에 따라 이것을 쓰거나 쓰지 않기도 한다. 젓가락은 이미 허락되지도 않았고 금지되지도 않아 이것은 곧 약교(略敎)에 해당하여 이를 사용할 때에도 대중 사이에 비난하는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것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도 이것을 사용하면 속인들 가운데 비웃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서쪽 땅에서는 원래 이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약교의 뜻이 이런 것이다.
西方食法唯用右手,必有病故開聽畜匙。其筯則五天所不聞、四部亦未見,而獨東夏共有斯事。,俗徒自是舊法,僧侶隨情用否。筯旣不聽不遮,卽是當乎略敎。用時衆無譏議,東夏卽可行焉;若執俗有嗤嫌,西土元不合捉。略敎之旨,斯其事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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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지시이례(知時而禮)

무릇 절하고 공경하는 법은 모름지기 그 위의에 맞아야 한다. 만약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평지에서조차 넘어지고 엎어질 것이다.
夫禮敬之法須合其儀,若不順敎則平地顚蹶。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 더러움에 접촉[汚觸]했을 경우 절을 받아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하여서도 안 된다. 만약 가르침을 어기는 사람은 절할 때마다 나쁜 행동을 하는 죄[惡作之罪]를 초래할 것이니라.”
故佛言:“有二種污觸,不應受禮亦不禮他。若違敎者,拜拜皆招惡作之罪。”

무엇이 두 가지 더러움에 접촉함인가? 첫째는 음식의 더러움이다. 즉 만약 여러 가지 음식물을 먹었을 때부터 한 조각의 약을 삼키고 씹는 일에 이르기까지 먹고 난 후 만약 입을 양치질하고 손을 씻고 오지 않는다면 모두 절을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하여서는 안 된다. 혹 장(漿)이나 물을 마셨거나 차(茶)ㆍ꿀 등의 끓인 물 및 소락(酥酪)ㆍ사탕 따위를 먹었을 경우에도 만약 양치질하고 손을 씻지 않고서 절하거나 절을 받으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죄를 범하는 것이다.
何謂二污?一是飮食污,謂若食噉一切諸物,下至呑嚼一片之藥,若不漱口洗手已來,竝不合受禮禮他。若飮漿或水,乃至茶蜜等湯及酥糖之類,若未漱口洗手,禮同前犯。

두 번째는 깨끗하지 못한 더러움이다. 즉 대소변을 보고 나서 아직 몸을 깨끗이 씻지 않았거나 세수나 양치질을 하지 않았을 때이다. 또는 몸이나 옷에 대소변의 깨끗하지 못한 것과 콧물이나 침 등이 묻어 더렵혀진 것을 아직 깨끗하게 닦지 않았을 경우이다.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직 치목(齒木)을 씹지 않고 절하거나 절을 받을 경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죄를 범하는 것이다.
二是不淨污,謂大小行來身未洗淨,及未洗手漱口;或身或衣被便利不淨涕,唾等污未;淨已來若旦起未嚼齒木,禮同前犯。

또한 대중이 모여 재(齋)모임을 갖는 차례에는 합장하면 그것으로 공경을 표하는 것이며 일부러 완전한 절을 할 필요는 없다. 절을 하면 곧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 된다. 또 혹 비좁고 시끄러운 곳이나 혹 부정한 땅이나 혹 길 가운데서 절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죄를 범하는 것이다.
又於大衆聚集齋會之次,合掌卽是致敬,故亦不勞全禮,禮便違敎。或迮鬧處、或不淨地、或途路中,禮亦同犯。

이러한 여러 가지 일은 모두 율문에 나타나 있다. 다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받고 추운 나라에 살다가 보니 가르침대로 따르기를 갈구한다 한들 역시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와 같은 사람이 많다는 점을 끌어들여 그것으로 스스로를 위안 삼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조그마한 죄에 마음을 머물러 있게 하려 하는가?
斯等諸事竝有律文,但爲日久相承、地居寒國,欲求順敎事亦難爲,莫不引同多以自慰,詎肯留心於小罪耳!

18. 변리지사(便利之事)

대소변을 보는 일에 대해서 간략하게 그 율의(律儀)를 설명하겠다.
아래에는 씻고 목욕할 때 입는 치마[裙]를 입고 위에는 승각기복(僧脚崎服)을 걸친 다음 촉병(觸甁)을 가지고 와서 물로 가득 채우고 이것을 가지고 변소에 오른 뒤 문을 닫아서 몸을 가린다. 이때 흙은 반드시 14개의 덩어리를 화장실 밖의 벽돌 위나 혹은 작은 판자 위에 놓아둔다. 그 벽돌이나 판자의 크기는 길이가 1주(肘), 너비는 반 주이다. 그때 그 흙을 부숴 가루로 만들어서 열지어 두 줄로 만들고 하나하나를 따로 모아 다시 한 덩어리를 안배하고 다시 세 덩어리를 가지고 변소 안에 들어가 한쪽 가장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그중 하나는 몸을 닦는 데 쓰고 하나는 몸을 씻는 데 쓴다.
便利之事,略出其儀。下著洗浴之裙,上披僧腳崎服,次取觸甁添水令滿持將上廁,閉戶遮身。土須二七塊,在其廁外,於甎石上或小版上而安置之。其塼版量,長一肘闊半肘。其土碎之爲末,列作兩行,一一別聚。更安一塊,復將三丸入於廁內安在一邊,一將拭體、一用洗身。

몸을 씻는 법은 반드시 왼손으로 먼저 물로 깨끗하게 씻는다. 나머지 한 개로는 대강 한 번 그의 왼손을 씻는다. 만약 산대조각이 있다면 가지고 들어가도 좋다. 그것을 사용하고 나면 변소 밖으로 던져버려야 한다. 반드시 헌 종이를 사용하되 그것은 변소 속에 버려야 한다. 깨끗이 씻기를 마치면 비로소 오른손으로 그 옷을 끌어내리고 물병을 한쪽에 두고 오른손으로 옆문을 밀어 연 다음 다시 오른손으로 병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혹은 왼팔로 물병을 안고 왼손은 주먹 쥐고 오른손을 사용하여 문을 닫고 떠나도 된다.
洗身之法,須將左手先以水洗,後兼土淨。餘有一丸麤,且一遍洗其左手。若有籌片,持入亦佳,如其用罷須擲廁外;必用故紙,可棄廁中,旣洗淨了,方以右手牽下其衣,甁安一邊,右手撥開傍戶,還將右手提甁而出。或以左臂抱甁,拳其左手,可用右手閉戶而去。

그 후 그 흙이 있는 곳에 나아가 웅크리고 한쪽에 앉는다. 이때 만약 앉을 물건이 필요하면 때에 따라 적당한 곳을 헤아린다. 그 후 물병을 왼쪽 허벅지 위에 놓고 왼팔로 아래를 향하여 누른다. 먼저 몸 가까이에 있는 일곱 개의 흙덩어리를 취하여 따로따로 그의 왼손을 씻고 나서 나머지 일곱 덩어리를 하나씩 사용하여 양손을 함께 씻는다. 그때 벽돌이나 나무 위는 반드시 깨끗하게 씻어야 하고 남아있는 한 덩어리의 흙으로 병을 씻는다. 다음으로 팔과 허벅지와 발을 씻어 모두 청결하게 한다. 그런 다음에 마음대로 그곳을 떠난다. 이 병의 물을 입에 넣어서는 안 된다.
就彼土處蹲坐一邊,若須坐物隨時量處。置甁左䏶之上,可以左臂向下壓之,先取近身一七塊土,別別洗其左手,後用餘七,一一兩手俱洗,其塼木上必須淨洗。餘有一丸,將洗甁器,次洗臂踹及足竝令淸潔,然後隨情而去。此甁之水不合入口脣。

다시 방안에 이르러 깨끗한 병의 물로 입을 헹구어야 한다. 만약 그 일을 하다가 이 병을 건드린 사람은 다시 손을 씻고 입을 헹구어야 비로소 다른 기구를 잡을 수 있다. 이것이 곧 대변을 보는 의식이다. 이것은 대략 설명하면 이와 같으나 반드시 일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가 스스로 하도록 맡긴다. 다행히 모시는 사람이 있어 씻게 한다고 하더라도 허물은 아니다.
重至房中,以淨甁水漱口。若其事至觸此甁者,還須洗手漱口方可執餘器具。斯乃大便之儀,麤說如此。必其省事,咸任自爲;幸有供人,使澆非過。

소변을 본 뒤에는 한두 덩어리의 흙을 사용하여 손을 씻고 몸을 씻으면 된다. 이는 곧 청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공경의 기본이 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작은 일이라 생각하려 하지만 율의 가르침에서 크게 꾸중하신 대목이 있다. 만약 깨끗이 씻지 않는다면 승상(僧牀)에 앉아서도 안 되고 또한 삼보에 절을 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신자(身子:舍利弗)가 외도들을 굴복시킨 법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로 인하여 총체적으로 비구를 위해 제도로 정하셨으니, 그것을 수행하여 율법을 받들면 복이 생겨날 것이요, 행하지 않으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겨 죄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小便則一二之土可用洗手洗身,此卽淸淨之先爲敬基本。或人將爲小事,律敎乃有大呵。若不洗淨,不合坐僧牀,亦不應禮三寶。此是身子伏外道法,佛因摠制苾芻。修之則奉律福生,不作乃違敎招罪。

이 법은 중국에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그 유래는 오래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설령 이를 계시(啓示)한다 하더라도 마침내 혐오하는 마음이 일어나 곧 이르기를, “대승은 허허로워 두루 통하는 것이거늘 무엇이 깨끗하고 무엇이 더럽단 말인가? 뱃속에 항상 가득한 것을 밖에서 씻는다고 어찌 이익이 되겠는가?”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그것이 교검(敎檢)을 경멸하고 기만하며 성심(聖心)을 속인다는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또한 절을 받거나 절을 하거나 모두 죄와 허물을 초래하고 옷을 입고 밥을 먹어도 천신(天神)이 함께 혐오할 것이다. 만약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오천축국이 함께 비웃을 것이며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에게서 모두 비난받게 될 것이다.
斯則東夏不傳,其來尚矣;設令啓示,遂起嫌心。卽道:“大乘虛通,何淨何穢?腹中恒滿,外洗寧益?”詎知輕欺敎撿、誣罔聖心,受禮禮他俱招罪過,著衣噉食天神共嫌。若不洗淨,五天同笑,所至之處人皆見譏。

크게 법통을 계승할 사람은 특히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옳을 것이며 이미 더러운 세속을 싫어하여 속세를 떠나서 집을 버리고 집이 아닌 곳에 달려갔다면 곧 간절하게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거늘 어떻게 율법에서 말씀하신 것에 눈을 흘기고 외면할 수 있겠는가? 만약 믿지 못한다면 이 말에 근거해 살피면 다행한 일일 것이니, 즉 씻은 뒤 5, 6일이 지나면 문득 씻지 않았던 허물을 알게 될 것이다.
弘紹之賓,特宜傳敎。旣而厭離塵俗、捨家趣非家,卽須慇懃用釋父之言,何得睚眥於毘尼之說!如其不信,幸可依此洗之五六日閒,便知不洗之過。

그리고 추운 겨울날에는 반드시 물을 따뜻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 세 계절의 일은 곧 그 마음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화장실에 통(筒)ㆍ조(槽)ㆍ백불(帛拂)이 있다는 것은 본래의 율문이 아니다. 또 혹 물을 입에 머금고 가는 것도 역시 정법(淨法)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然而寒冬之月須作煖湯,自外三時事便隨意。然有筒槽帛拂,非本律文。或有含水將去,亦乖淨法。

무릇 스님들의 거처에서는 먼저 반드시 화장실을 깨끗하게 다스려야 하는데, 만약 스스로는 힘이 없다면 교화해서 그것을 만들어 시방(十方)의 스님들에게 말씀드려 이치로써 속세와 성인에게 모두 통하게 하며 소요되는 비용도 많이 쓰지 않게 한다. 이것이 그 요점이다. 이것은 청정하게 바로잡는 업으로서 처음부터 허망한 일이 아니다. 이치로 보면 1, 2석(石)들이 큰 물통에 흙을 담아 화장실가에 놓아둘 필요가 있다. 대중들은 개인이 쓰는 방 안에 흙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凡是僧坊,先須淨治廁處,若自無力,敎化爲之供十方僧。理通凡聖,無多所費,斯其要焉。是淨方業,固非虛矣。理須大槽可受一兩石,貯土令滿置在圊邊,大衆必無私房可畜。

만약 갑자기 물병이 없을 경우에는 자기ㆍ기와 등으로 만든 주발을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며 여기에 물을 담아 가지고 들어가 한쪽에 놓아두었다가 오른손으로 물을 뿌려 씻는 것도 역시 법에 손상되는 것은 없다. 강회(江淮)지방에서는 항아리로 변기를 삼는 경우[瓮厠]가 많은데, 여기에서는 깨끗하게 씻을 수가 없으니 마땅히 다른 곳에 따로 씻는 곳을 만들어 물이 흘러 통하게 하여 나오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若卒無水甁,許用瓷瓦等鉢,盛水將入安在一邊,右手澆洗亦無傷也。江淮地下瓫廁者多,不可於斯卽爲洗淨,宜應別作洗處,水流通出爲善。

또한 분주(汾州)의 포복산(抱腹山)과 대악(岱岳)의 영암사(靈巖寺)와 형주(荊州)의 옥천사(玉泉寺)와 양주(楊州)의 백탑사(白塔寺)의 화장실이 설치된 곳에는 제법 그 법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물과 흙을 안배해 놓는 일만은 빠져 있다. 과거에 일찍이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를 가르쳐 행하게 하였더라면 그 법은 왕사성(王舍城)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곧 선현들이 아득하고 멀었기 때문이니 어찌 후진들이 어리석음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겠는가?
且如汾州抱腹、岱嶽靈巖、荊府玉泉、楊州白塔,圊廁之所頗傳其法,然而安置水土片有闕如。向使早有人敎,行法亦不殊王舍。斯乃先賢之落漠,豈是後進之蒙籠者哉。

그리고 화장실 안에 흙을 저장해 놓고 물병을 갖다놓는 일은 모두 편안하게 해야 하며 빠뜨린 일이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물병에 붙어있는 두레박에는 마개를 붙이는 것이 좋으며 군지(君持:물병)를 비축할 경우 앞에서 말한 내용에 준하면 된다. 구리병은 뚜껑을 꽂아 입은 넓으나 원래 씻고 청정하게 하는 데는 맞지 않다. 만약 그 배 언저리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어 놓고 정수리는 주석으로 이를 굳혀서 높이 뾰족한 대(臺)가 나오게 하여 그 가운데 작은 구멍을 안배한다면 이것도 역시 일시적으로 사용하여 때에 따른 필요성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然其廁內貯土置甁,竝須安穩勿令闕事。添甁之罐著嘴爲佳,如畜君持准前爲矣。銅甁插蓋而口寬,元來不中洗淨,若其腹邊斲爲一孔、頂上以錫固之,高出尖臺中安小孔,此亦㩲用,當時須也。

거듭 말한다.
重曰:

종이와 붓을 사용하여 수고롭게 기록하면서 몇 번이나 간절히 말했던가? 흐름에 따르고 충고에 따르는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載勞紙筆幾致慇懃,順流從諌冀有其人?

 

큰 성인께서는 이미 쌍림에서 열반[寂體]하셨고, 보살들도 역시 오인(五印:五忍)21)으로 몸이 재가 되었다. 그 분들이 남기신 법과 가르침의 영향은 이 중국에도 미친다. 행(行)은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을 짝하여 의거하고 흥(興)은 속세를 버린 사람들을 손님으로 삼아 따른다. 혼돈된 세계의 번뇌와 더러움을 버리고 교교(皎皎)한 맑은 경계를 그리워한다.
大聖旣雙林而寂體,羅漢亦五印而灰身,遺餘法敎影響斯晨,行寄捐生之侶、興由棄俗之賓,捨渾渾之煩濁、慕皎皎之淸塵。

21)보살이 법리를 깨닫고 마음이 편안히 머무는 정도에 따라 세운 다섯 가지 법위(法位)로 복인(伏忍)ㆍ

    신인(信忍)ㆍ순인(順忍)ㆍ무생인(無生忍)ㆍ적멸인(寂滅忍)을 이른다.

외부의 때묻은 것과 내부의 헷갈림 함께 없어지고 위에서 맺은 것[上結]과 아래로 얽은 것[下縛]이 함께 인멸하면 그 자취 쓸쓸해지고 그 정신 맑으리라. 4위의(威儀)22)에 연루됨이 없으면 3존(尊)23)과 친숙해진다.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데 어찌 죽은 왕의 노여움 살 것을 무서워하겠는가? 9거(居)24)를 이롭게 하면서 크게 근심한 것이 꽃다운 인연이 되었으니 다행히 만에 하나라도 고칠 수 있게 된다면 어찌 20년의 어려움과 고통을 마다하겠는가?
外垢與內惑而俱喪、上結共下縛而同湮,蕭條其迹、爽亮其神,四儀無累、三尊是親,旣不被生人之所笑,豈復怖死王之見瞋?利九居而軫念,成三代之芳因。幸希萬一而能改,亦寧辭二紀之艱辛。
南海寄歸內法傳卷第二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22)인간의 행동을 네 종류로 구별한 것으로 행(行:가는 것)ㆍ주(住:머무는 것)ㆍ좌(坐:앉는 것)ㆍ

    와(臥:눕는 것)의 네 가지를 말한다.
23)중존(中尊)과 협시(脇侍)의 한조로, 석가 삼존은 석가ㆍ문수ㆍ보현 보살을, 미타삼존은 미타(彌陀)ㆍ

    관음(觀音)ㆍ세지(勢至) 보살을, 약사 삼존은 약사ㆍ일광ㆍ월광 보살을 말한다.
24)앞의 서(序)의 주 19)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