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벽암록 제001칙 - 010칙

실론섬 2023. 2. 21. 15:01

 

[제001칙] 불식(不識. 모른다) - 달마대사와 양무제

[수시]
산 너머에 연기가 오르면 불이 난 줄 알고, 담 너머 뿔이 보이면 소인 줄 알며, 하나를 들으면
셋을 알고, 눈짐작이 저울눈보다 정확하다는 따위는 선가에서는 밥 먹고 차 마시듯 당연한
일이다. 온갖 흐름을 끊게 되면, 동에서 솟고 서로 사라지고, 거꾸로 하고 바로 하고, 세우고
눕히고, 주고 받음에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바로 이렇게 되었을 때, 자 말해 보아라, 이러한
사람의 딛고 가고자 하는 곳, 의도하는 바를 ...

[본칙]
양무제가 달마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근본이 되는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텅 비어 성스럽다 할 것도 없습니다."
"나와 마주한 당신은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무제는 그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달마스님은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에 이르렀다.
무제가 후에 그 일에 대해 지공에게 물으니, 지공이 말하였다.
"폐하, 이 사람을 모르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이는 관음대사이며 부처님의 심인을 전하는 분입니다."
무제는 후회하고 사신을 보내어 모시려 하자,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폐하, 사신을 보내어 모시려 하지 마십시오. 온 나라 사람이 부르러 가더라도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송]
성제확연이라, 어찌 참뜻을 밝혔다 하랴
내 앞에 있는 이 누구요에 모른다는 대답
남몰래 양자강 건거가 버리니
가시더불 돋아남 면하기 어렵겠네
온 나라 사람 뒤쫓아도 돌아올 리 없으니
천년만년 후회해도 모두 헛일이리
후회는 말아라. 맑은 바람 어디에나 불고 있나니.
설두화상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요즈음에도 달마가 있느냐?"
설두스님이 스스로 답하여 말했다.
"있다. 그 달마를 불러오너라. 내 발이나 씻게 해야겠다."

 

*양무제가 질문한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聖諦第一義)’는 {육조단경}에서 홍인이 제자들에게 과제로 제시한 ‘불법의 대의’를 말한다. 불법의 대의란 번뇌 망념을 텅 비우는 공(空)의 실천으로 반야의 지혜를 체득하는 반야사상과 반야의 지혜를 언제 어디서고 마음대로 전개하는 자각의 주체인 불성사상을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第001則]不識
〈垂示〉垂示云。隔山見煙。早知是火。隔牆見角。便知是牛。擧一明三。目機銖兩。是衲僧家尋常茶飯。至於截斷衆流。東湧西沒。逆順縱橫。與奪自在。正當恁麽時。且道。是什麽人行履處。看取雪竇葛藤。
〈本則〉擧。梁武帝問達磨大師。如何是聖諦第一義。磨云。廓然無聖。帝曰。對朕者誰。磨云。不識。帝不契。達磨遂渡江至魏。帝後擧問志公。志公云。陛下還識此人否。帝云。不識。志公云。此是觀音大士。傳佛心印。帝悔。遂遣使去請。志公云。莫道陛下發使去取。闔國人去。他亦不回。
〈頌〉聖諦廓然。何當辨的。對朕者誰。還云不識。因茲暗渡江。豈免生荊棘。闔國人追不再來。千古萬古空相憶。休相憶。淸風匝地有何極。師顧視左右云。這裏還有祖師麽。自云。有。喚來與老僧洗脚。

 

[제002칙] 지도무난(至道無難.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 지극한 불도는 조금도 어려움이 없다
“미혹함과 깨달음에 대한 분별심을 초월하라”

[수시]
하늘과 땅이 오히려 좁고 옹생하며, 해와 달 온갖 별들이 빛을 잃었다. 설사 방망이를 비오듯
쳐 대고, 천둥치듯 할을 터뜨려 본들, 최고의 가르침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다. 비록 삼세의
부처님들이라 한들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역대 조사인들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일체의 경전들의 설명도 미치지 못하고, 눈밝은 이들이라도 스스로 구제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 어떻게 가르침을 청하여 배워야 하겠느냐. 부처라고 말하는 것도 진흙 속을
해메고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꼴이요, 선(禪)이라 부르는 것도 얼굴 가득히 부끄러움만 드러낼
뿐이다. 구참 상사들은 말을 기다리지 않고 다 아는 것이지만, 초심자들은 모름지기 곧바로
궁리하여 취해야 한다.

[본칙]
조주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고 오직 간택을 하지 않으면 될 뿐이다. 말하는 순간 간택에 떨어지거나
명백함에 떨어질 것이니 나는 명백한 속에도 있지 않느니라. 그런데 너희는 밝고 밝은 것을
오히려 소중이 여기고 있지는 않느냐?"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이미 밝고 밝음에도 머물지 않는다 하셨는데, 스님은 무엇을 소중히 여기십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나도 모른다."
그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 이미 모른다 하셨으면 어째서 밝고 밝음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하셨습니까?"
조주스님은 말하였다.
"제법 따지는 재주는 있었구나. 절이나 하고 물러가거라."

(조주화상이 대중스님들에게 법문 하였다.
“‘지극한 불도는 조금도 어렵지 않다. 오직 취사 선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말하는 순간에 벌써 취사선택(揀擇)하는 마음에 떨어지거나 깨달음(明白)의 세계에 떨어진다.’ 나는 깨달음(明白)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대들은 이 깨달음(明白)의 경지를 수행의 목적으로 삼고 보호하고 아끼려고 하는가? ”
그 때에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깨달음(明白)의 경지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호하고 아껴야 할 것이 있습니까?”
조주화상이 말했다.
“나도 모른다(不知)”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 모르신다면 어째서 깨달음(明白)의 경지에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씀 하십니까?”
조주화상이 말했다.
“나에게 질문하는 일이 끝났으면 인사나 하고 물러가게!”}

[송]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말도 맞고 글도 맞네
하나 속에 수많은 뜻 다 들었으니
둘이라고 두 개만은 아니라네
하늘에는 해가 뜨고 달이 저물고'
난간 앞에 산은 깊고 물은 차구나
해골처럼 앎이 다해 기쁨인들 서리만
마른 나무 용의 노래 덜 말랐구나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어라
간택 명백 네 스스로 살펴보아라.

 

*2칙에 인용된 [신심명]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지극한 불도를 체득하는 일은 조금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오직 취사선택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미워하고 사랑하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깨달음의 경지는 분명히 들어나리라.”

*{신심명}은 이러한 조사선의 선사상을 토대로 하여 불도를 깨닫는 법문과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로 읊은 선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특히 조주화상은 신심명을 많이 인용하여 독자적인 법문을 펼치며 학인들을 지도하고 있다.

 

[第002則]至道無難
〈垂示〉垂示云。乾坤窄。日月星辰一時黑。直饒棒如雨點。喝似雷奔。也未當得向上宗乘中事。設使三世諸佛。只可自知。歷代祖師全提不起。一大藏敎詮注不及。明眼衲僧自救不了。到這裏。作麽生請益。道箇佛字。拖泥帶水。道箇禪字。滿面慚惶。久參上士不待言之。後學初機直須究取。
〈本則〉擧。趙州示衆云。至道無難。唯嫌揀擇。纔有語言。是揀擇是明白。老僧不在明白裏。是汝還護惜也無。時有僧問。旣不在明白裏。護惜箇什麽。州云。我亦不知。僧云。和尙旣不知。爲什麽。卻道不在明白裏。州云。問事卽得。禮拜了退。
〈頌〉至道無難。言端語端。一有多種。二無兩般。天際日上月下。檻前山深水寒。髑髏識盡喜何立。枯木龍吟銷未乾。難難。揀擇明白君自看。

 

[제003칙]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

 

[수시]
어느 때는 행위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느 때는 경계를 들어 주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짧은
한 마디 대꾸로 깨우쳐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고운 살에 상처를 내어 흠집 투성이로
만드는 것이다. 대도의 활동이 드러남은 세간의 법칙 속에 있지 않다. 지극한 도가 하늘을
덮고 땅을 덮음을 헤아려 안다 하여도, 그것은 손으로 더듬어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찾아낼 
수 있어도 좋고, 찾아낼 수 없어도 좋다.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찾아낼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잘못이고, 찾아낼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잘못이다. 아주 위험한 일이다. 찾아낼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찾아낼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안된다 하면, 이를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본칙]
마조스님이 노환으로 몸이 편치 않았다. 원주가 찾아와서 물었다.
"스님,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마조스님이 말하였다.
"일면불도 있고 월면불도 있다."

[송]
일면불이니 월면불이니
오제 삼황 그것들 다 무엇이더냐
이십 년 내내 괴로웠던 나날들
그것들 찾아 청룡굴 몇번이나 들락였나
능히 감당하여 이을지언정
눈밝은 이들이여 가벼이 여기지 마라.

 

*이공안은 〈조당집〉14권 마조화상전에 전하고 있는 유명한 선문답인데, 마조화상이 입적하기 얼마 전에 병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마조화상에게 원주가 건강을 여쭙는 인사말이다.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에 대해서 〈불명경(佛名經)〉 제7권에는 “월면이라는 부처님이 있는데, 그 월면불의 수명은 일일일야(一日一夜)이며, 일면(日面)이라는 부처님이 있는데 그 일면불의 수명은 1800세라고 한다.” 라고 설하고 있다. 마조화상은 불명경에서 설하고 있는 월면불과 일면불을 입장을 예로 들어 자신의 경지에서 대답하고 있다.

 

[第003則]日面佛月面佛
〈垂示〉垂示云。一機一境。一言一句。且圖有箇入處。好肉上剜瘡。成窠成窟。大用現前不存軌則。且圖知有向上事。蓋天蓋地又摸索不著。恁麽也得。不恁麽也得。太廉纖生。恁麽也不得。不恁麽也不得。太孤危生。不涉二塗。如何卽是。請試擧看
〈本則〉擧。馬大師不安。院主問。和尙近日。尊候如何。大師云。日面佛月面佛。
〈頌〉日面佛月面佛。五帝三皇是何物。二十年來曾苦辛。爲君幾下蒼龍窟。屈。堪述。明眼衲僧莫輕忽。

 

[제004칙] 설상가상(雪上加霜. 눈위에 서리를 얹으면)

[수시]
푸른 하늘의 밝은 태양은 동쪽을 가리키지도 서쪽을 선긋지도 않고 모두를 끌어안고 밝게
비춘다. 그러나 시절인연에 따르려면 마땅히 병에 따라 적당한 약을 주어야만 하다. 말해
보아라. 적극적으로 풀어 줄 것인가, 아니면 절대적으로 침묵할 것인가.

[본칙]
덕산스님이 위산에 이르러 바랑을 멘 채 법당에서 동에서 서로, 서쪽에서 동으로 왔다갔다
하더니 뒤돌아보며 말했다.
"없다, 없어!"
그리고는 곧바로 나가버렸다. 덕산스님이 문 앞에 이르러 말하였다.
"너무 경솔했나 ... 좀 더 살펴봐야겠다."
그리고는 몸가짐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가 뵈었다. 위산스님이 앉으려 하니, 덕산스님이 
좌구(방석)를 집어들면서 말하였다.
"스님!"
위산스님이 불자를 잡으려 하자, 덕산스님이 갑자기 소리 지르고는 소맷자락을 떨치며
나가버렸다.
덕산스님은 법당을 뒤로 하고 짚신을 신고는 곧바로 떠나버렸다.
위산스님이 저녁나절에 수좌에게 물었다.
"아까 새로 찾아온 스님은 어디 있는가?"
"그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 떠나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훗날 고봉정상에 암자를 짓고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할 것이다."


[송]
한 번 보고 또 다시 가서 살피니
눈 위에 서리 더해 위험할 뻔하였다.
비기장군 포로되어 고생한 꼴 될 뻔했네
온전히 돌아 나올 자 몇이나 될까
곧장 달려 나왔구나. 우물쭈물하지 않고
고봉정상(높은 산 봉우리)의 풀 속에 편히 앉아 있구나.

 

[第004則]雪上加霜
〈垂示〉垂示云。靑天白日。不可更指東劃西。時節因緣。亦須應病與藥。且道。放行好。把定好。試擧看。
〈本則〉擧。德山到潙山。挾複子於法堂上。從東過西。從西過東。顧視云。無無便出。德山至門首卻云。也不得草草。便具威儀。再入相見。潙山坐次。德山提起坐具云。和尙。潙山擬取拂子。德山便喝。拂袖而出。德山背卻法堂。著草鞋便行。潙山至晩。問首座。適來新到在什麽處。首座云。當時背卻法堂。著草鞋出去也。潙山云。此子已後。向孤峰頂上。盤結草庵。呵佛罵祖去在。
〈頌〉一勘破。二勘破。雪上加霜曾嶮墮。飛騎將軍入虜庭。再得完全能幾箇。急走過。不放過。孤峰頂上草裏坐。咄。

 

[제005칙] 여속미립(如粟米粒. 좁쌀 알 만한 대지) - 설봉의 온 대지

“좁쌀 한 알에도 모든 진리가 다 들어있다”

[수시]
근본적 가르침을 굳게 세우러면, 영특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성불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영특한 사람은 상대방의 능력을 알아채는 것고 거기에 알맞은 대응수단을 쓰는 것을 동시에
하며, 펴고 말고 죽이고 살리며 주고 빼앗는 것을 마음대로 하며, 유(有)에 구애되지 않고
공(空)에 얽혀 있지 않으며, 이치와 실생활에 조금의 차이도 없이 병행해 나간다. 가령 한 걸음
양보하여 제이의적인 입장에 섰다가도, 곧바로 문자어구들을 끊어버린다면, 초심자들은 전혀
머무를 데가 없어지고 만다. 어제 그런 소리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오늘도 이런
소리하고 있으니 내 죄가 하늘에 닿을 만한다. 여기 만일 눈밝은 자가 있다면, 이 원오와
설봉을 조금도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눈밝지 않다면 호랑이 아가리 속에 몸을 눕힌
것과도 같이 몸을 망치고 목숨 잃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칙]
설봉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온 대지를 쥐어 들면 좁쌀만 하구나. 이를 면전에다 던져도 새까만 칠통 같아 알지 못하네.
보청고 북을 치고 모두들 찾아보도록 하여라."

(설봉화상이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온 대지를 손가락으로 움켜서 집어 들면 좁쌀 크기만 하네. 이것을 눈앞에 내던졌지만 새까만 칠통같이 (대중은) 전혀 알지 못하네. 북을 쳐서 전 대중이 노동(普請)이나 참여 하도록 하라.”)

[송]
우두도 마두도 모습을 갖추었고
조계의 거울에는 티끌 하나 없네
북치고 찾으라 하나 그대들은 못 보리
봄 맞은 갖은 꽃들 누굴 위해 피었는가

 

{벽암록}에 원오선사는 설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설봉화상이 대중들에게 ‘온 대지를 손가락으로 움켜서 집어 들면 좁쌀크기만 하네.’라고 법문 하였다. 옛사람이 사람들을 지도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행화는 뛰어난 지혜와 방편이 있었으니 참으로 고생하였다. 설봉화상은 투자산(投子山)에 세 번 오르고, 동산(洞山良价)화상을 아홉 차례나 찾아뵙는 수행을 하였다. 그는 물통과 주걱을 들고 가는 곳마다 밥 짓는 소임을 맡아서 수행한 것도 이 생사대사의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第005則]如粟米粒
〈垂示〉垂示云。大凡扶豎宗敎。須是英靈底漢。有殺人不眨眼底手脚。方可立地成佛。所以照用同時卷舒齊唱。理事不二。權實並行。放過一著。建立第二義門。直下截斷葛藤。後學初機難爲湊泊。昨日恁麽。事不獲已。今日又恁麽。罪過彌天。若是明眼漢。一點謾他不得。其或未然。虎口裏橫身。不免喪身失命。試擧看。
〈本則〉擧。雪峰示衆云。盡大地撮來如粟米粒大。抛向面前漆桶不會。打鼓普請看。
〈頌〉牛頭沒馬頭回。曹溪鏡裏絶塵埃。打鼓看來君不見。百花春至爲誰開。

 

[제006칙] 일일호일(日日好日. 하루 하루가 좋은 날) - 운문의 날마다 좋은 날
"매순간 깨달음의 삶 살아가면 ‘날마다 행복’"

[본칙]
운문이 말했다.
"15일 전의 일은 그대들에게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에 대해 한마디 해보아라."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운운 스스로 답하여 말했다.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다."

[송]
하나를 버리고 일곱을 가졌으니
온 천지 어디에도 그만한 사람 없네
깊은 계곡 물소리에 천천히 걸으며
날아가는 새의 자취 보는대로 그려내네
무성한 풀과 낮게 드리운 구름
수보리 앉은 바위에는 꽃들 흩어져 있네.
가련하고 가련하다 허공신 순야타여
꼼짝하지 말아라 꼼짝하면 30방

 

*당송대의 선원에서는 주지가 법당에서 대중들에게 정기적으로 설법하는 것을 상당(上堂), 혹은 시중(示衆)이라고 한다. 선원의 주지 설법은 1일, 5일, 10일, 15일, 20일, 25일 실행된 상당 법문을 대참(大參)이라고 하고, 또한 아침저녁에 수시로 설법하는 것을 소참(小參)이라고 한다.
주지가 법당에서 대중들을 위해서 설법하는 것은 중생교화의 보살행으로 학인들이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여 정법의 안목을 구족하도록 하는 전인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운문의 법문도 15일 실시하는 정기설법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운문이 말하는 ‘15일 이전’과 ‘15일 이후’는 한달을 반으로 나눈 중간인데, 마침 15일은 정기 설법으로 상당법문이 있었기 때문에 이 15일을 기준으로 하여 학인들의 안목을 점검하는 문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第006則]日日好日
〈本則〉擧。雲門垂語云。十五日已前不問汝。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自代云。日日是好日。
〈頌〉去卻一拈得七。上下四維無等匹。徐行踏斷流水聲。縱觀寫出飛禽跡。草茸茸。煙羃羃。空生巖畔花狼籍。彈指堪悲舜若多。莫動著。動著三十棒。

 

[제007칙] 여시혜초(汝是慧超. 네가 부처니라) - 법안화상과 혜초스님
“그대 자신외에 다른데서 부처를 찾지 말라”

[수시]
말 이전의 참 진리는 어떠한 성인도 전해 줄 수 없다. 직접 터득하지 못하면 끝없는 우주
저 편 만큼이나 멀리 있다. 가령 약간 터득한 바가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말머리를 꽉 막아
버려도, 그것으로 영리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이 엎을 수 없고, 땅이 실을 수
없으며, 허공이 다 담지 못하고, 해와 달이 다 비출 수 없으며, 부처도 없고, 유아독존의 나도
없다고 할 정도는 되어야, 조금은 뭘 하는 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아직 멀었다.
하나의 털끝 위에서도 진리를 깨닫고, 대광명을 뿜으며, 온갖 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어,
모든 사물에서 자유를 얻으며, 무엇을 가져 와도 옳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자 말해 보아라.
어떤 것을 얻었기에 이같이 기묘하고 특별할 수 있는지를 ... 대중은 알아들었는가. 옛사람의
한마의 노고를 겪고 세운 공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세상을 덮을 공을 다시 논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그만 두고라도, 설두스님의 공안은 어떻게 하여야
알아들을까.

[본칙]
어떤 스님이 법안스님에게 물었다.
"혜초가 스님께 여쭙겠습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법안스님이 대답했다.
"네가 혜초니라."

[송]
강남에는 봄바람 산들산들
자고새는 꽃그늘 우짖는다
용문삼급 넘어야 물고기 용되건만
어리석은 이는 밤새 못물만 펴내누나

 

*법안은 당말 오가(五家) 종풍으로 선풍을 떨친 법안종(法眼宗)의 개창자인 문익(文益) 선사이다. 문익 선사는 젊은 시절 도반과 전국을 행각할 때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 어떤 암자에 뛰어 들어갔다. 암자의 주인인 나한계침(羅漢桂琛) 선사는 법안이 인물인줄 알고 차를 마시며 여러 가지 불법의 대의를 논의하였다. 법안은 특히 화엄사상과 유식사상에 조예가 깊었다.
*날씨가 맑아져 법안은 지장원을 떠나 다시 행각하려고 할때 나한 선사는 뜰 앞의 돌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대는 어제 ‘삼계는 오직 마음이며 , 만법은 오직 인식에 있다(三界唯心, 萬法唯識)’고 말했는데, 지금 이 돌은 그대의 마음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법안은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그 돌은 마음 안에 있지요.” 라고 대답하자, 나한 선사는 탄식하며, “행각하는 수행자가 어째서 하나의 돌을 마음 안에 짊어지고 다니는가?”라고 말하자 말문이 막혀, 그 암자의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법을 탐구하게 되어 나한 선사의 법을 계승하게 되었다.

[第007則]汝是慧超
〈垂示〉垂示云。聲前一句。千聖不傳。未曾親覲。如隔大千。設使向聲前辨得。截斷天下人舌頭。亦未是性懆漢。所以道。天不能蓋。地不能載。虛空不能容。日月不能照。無佛處獨稱尊。始較些子。其或未然。於一毫頭上透得。放大光明七縱八橫。於法自在自由。信手拈來無有不是。且道得箇什麽。如此奇特。復云。大衆會麽。從前汗馬無人識。只要重論蓋代功。卽今事且致雪竇公案又作麽生。看取下文。
〈本則〉擧。僧問法眼。慧超咨和尙。如何是佛。法眼云。汝是慧超。
〈頌〉江國春風吹不起。鷓鴣啼在深花裏。三級浪高魚化龍。癡人猶戽夜塘水。

 

[제008칙] 미모재마(眉毛在麽. 눈썹이 아직 남아 있는가) - 취암 화상의 눈썹
“선승은 일체만법을 자기것으로 만드는 사람”

[수시]
참진리를 터득하면, 길을 가면서도 참진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이, 용이 물을 얻고, 
호랑이가 산을 의지하는 것과도 같다. 참진리를 터득하지 못하면, 세속적으로 처신함이,
숫양이 담당을 치받고 뿔이 울타리에 걸려 꼼짝 못하는 꼴이 되거나, 나무를 지키며 
토끼가 부딛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도 같다. 참진리를 터득한 사람의 한마디는 때로는
웅크린 사자와도 같고, 때로는 금강왕의 보검과도 같으며, 때로는 모든 이의 말문을 
막아버리고, 때로는 잔물결을 따르고 큰물결 타는 것과도 같다. 또 길을 가다가도 참진리를
씀이, 마음을 알아주고, 기분을 헤아리며, 희비를 알아차려, 서로 꼭 마음이 들어낮아 서로의 
밝음을 증명할 수도 있다. 세속적으로 처신하는 자에게는, 지혜의 눈을 갖추고서, 시방을
방비하며, 깎아지른 천길 절벽을 세울 수도 있다. 그래서 참진리의 큰 쓰임이 나타남은 
법칙에 얽매어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때로는 한 포기 풀이 일장육척 금빛 부처님으로 
쓰이게 하고, 때로는 일장육척 금빛 부처님이 풀 한 포기로 쓰이게 하기도 한다. 자 말해
보아라. 이 어떤 도리인가. 그래 자세히 알았는가.

[본칙]
취암스님이 하안거 끝에 대중법문을 하였다.
"한여름 결제 이후로 여러분들을 위해서 설법했는데, 취암의 눈썹이 붙어 있는가?"
보복스님이 답했다.
"도둑질하는 놈이 정직할 리 없다."
장경스님이 답했다.
"눈썹이 자꾸 자라고 있다."
운문스님이 답했다.
"함정이다. 함정. 조심해."

(취암 화상이 하안거 끝에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하안거 동안에 형제 여러분들을 위해서 설법 했는데, 잘 보게! 나(취암)의 눈썹이 붙어 있는가?”

보복(保福) 화상이 말했다.

“도둑놈은 늘 마음이 편치 못하지.”
장경(長慶) 화상은 말했다.

“(눈썹이) 생겼네!”

운문(雲門) 화상이 말했다.

“관문이다.(關)”)

 

[송]
취암이 보인 뜻
천고에 상대할 이 없네
함정이다 조심해 응수하다니
돈 잃고 죄 덮어 쓴 꼴

보복의 완곡한 말씀도
칭찬인지 비난인지 알 수가 없네
말 많다 취암이여
정녕코 도둑놈이로다

흰옥에는 티가 없으나
누가 가려내겠는가
장경화상 똑똑히 알아
눈썹 자꾸 자란다 했네


*여기에 등장하는 취암, 보복, 장경, 운문은 모두 당대 설봉의존(雪峰義存) 문하의 대표적인 제자들이다. 〈전등록〉에는 설봉의 법을 이은 제자 45명을 싣고 있는데, 운문(雲門), 현사(玄沙), 장경(長慶), 보복(保福), 경청(鏡淸) 등의 순서로 열거하고 있다.


[第008則]眉毛在麽
〈垂示〉垂示云。會則途中受用。如龍得水。似虎靠山。不會則世諦流布。羝羊觸藩守株待免。有時一句。如踞地獅子。有時一句。如金剛王寶劍。有時一句。坐斷天下人舌頭。有時一句。隨波逐浪。若也途中受用。遇知音別機宜。識休咎相共證明。若也世諦流布。具一隻眼。可以坐斷十方。壁立千仞。所以道。大用現前。不存軌則。有時將一莖草。作丈六金身用。有時將丈六金身。作一莖草用。且道。憑箇什麽道理。還委悉麽。試擧看。
〈本則〉擧。翠巖夏末示衆云。一夏以來。爲兄弟說話。看翠巖眉毛在麽。保福云。作賊人心虛。長慶云。生也。雲門云。關。
〈頌〉翠巖示徒。千古無對。關字相酬。失錢遭罪。潦倒保福。抑揚難得。嘮嘮翠巖。分明是賊。白圭無玷。誰辨眞假。長慶相諳。眉毛生也。

 

[제00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언제나 열려있는 진리의 문) - 조주화상과 사문(四門)
“진리의 세계는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있다”

[수시]
밝은 거울이 경대 위에 있으면 아름답고 못생김 저절로 가려지고, 막야 경검이 손에 있으면
죽이고 살림 그의 마음대로다. 한나라 사람이 가고 오랑캐가 오건, 오랑캐가 가고 한나라
사람이 오건 거울은 그대로 비춰 줄 따름이요, 죽을 사람 살릴 수도 살 사람 죽일 수도 있는
것은 막야검을 쥔 사람의 마음이다. 자 말해 보아라.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를.
만약 관을 꿰뚫어 보는 눈과 몸을 바꾸는 수단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경우에 어쩔 수도
없을 것이 뻔하다. 자 말해보라. 어떠한 것이 관을 꿰뚫어 보는 눈과 몸을 바꾸는 수단인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주의 모습입니까?"
조주스님이 말했다.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다."

[송]
조주가 뭐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금강의 눈에는 티끌 하나 없다네
동서남북 어디에나 문은 있지만
쳐도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다네

 

*조주 화상은 제2칙에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고 설한 종심 선사(778~897)선사를 말한다. 하북성 서족에 있는 조주성(趙州城) 관음원에 머물면서 선법을 펼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조주 화상 혹은 그냥 조주라고 불렀다.
조주는 60살에 다시 구법행각의 길에 올라 선지식을 두루 참문 하였다. ‘7살 아동이라도 나보다 뛰어난 불법의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면 나는 그에게 나아가 불법을 자문하고, 100살 노인이라도 나보다 견해가 못하면 나는 곧장 그에게 불법을 가르치리라’라고 서원을 세우고 80살 때 까지 깨달음을 체득한 이후(悟後)의 수행을 계속한 선승이다.

[第009則]趙州四門
〈垂示〉垂示云。明鏡當臺。姸醜自辨。鏌鎁[金+耶]在手。殺活臨時。漢去胡來。胡來漢去。死中得活。活中得死。且道到這裏。又作麽生。若無透關底眼轉身處。到這裏灼然不柰何。且道如何是透關底眼。轉身處。試擧看。
〈本則〉擧。僧問趙州。如何是趙州。州云。東門西門南門北門。
〈頌〉句裏呈機劈面來。爍迦羅眼絶纖埃。東西南北門相對。無限輪鎚擊不開。

 

[제010칙] 약허두한(掠虛頭漢 에라, 이 멍텅구리 사기꾼) - 목주화상과 사기꾼
"가짜로 소리만 지르는 것은 ‘사기꾼’에 불과"

[수시]
옳다 옳다 그르다 그르다 시끄럽기도 하다. 논쟁을 벌인다면, 나름대로 근거는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했다. 만일 절대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석가도 미륵도 문수도 보현도
그리고 온갖 성인들도, 천하의 종사들도 모두 별 것 아니다. 모두 다 숨 들이키고 소리 삼킴 뿐
끽소리도 못한다. 그러나 상대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초파리나 눈에놀이나 온갖 꿈틀거리는
모든 생명들도, 하나하나의 대광명을 뿜고, 만길 벼랑을 세운다. 만약 절대적인 것에도 상대적인
것에도 의거하지 않고 말해야 한다면, 자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규정이 있으면 규정을
따라야 하고, 규정이 없다면 선례를 따라야 할 것이다.

[본칙]
목주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즘 어디에 있다 왔느냐?"
스님이 갑자기 꽥, 소리 질렀다. 목주스님이 다시 말했다.
"노승이 너에게 일할을 당하였구나."
스님이 또다시 소리 지르자 목주스님이 말했다.
"서너 차례 소리 지른 다음에는 어찌하려고 하느냐?"
스님은 말이 없었다. 목주스님이 그 스님을 후려치며 말했다.
"이런 멍텅구리 사기꾼!"

(목주 화상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최근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갑자기 고함(喝)을 쳤다.
목주 화상이 말했다.
“노승이 그대의 고함(一喝)에 한번 당하게 되었군!”
그 스님이 또 고함(喝) 쳤다.
목주 화상이 말했다.
“그렇게 서너 차례 고함(喝)친 다음에는 어찌 하려는가?”
스님이 아무 말이 없자,
목주 화상은 곧장 그 스님을 치면서 말했다.
“이 사기꾼 같은 놈!”)

[송]
꽥꽥 또 꽥꽥 잘도 꽥꽥대누나
선의 도리 나름대로 아는 듯도 하다
이 중이 범대가리 올라탔다 말한다면
탄 놈이나 그러는 놈이나 모두 애꾸눈
누가 애꾸눈이냐
잡아다 세상 사람들과 구경 좀 하자

 

*목주 화상(780~877)은 황벽희운 선사의 제자로 그의 전기는 {조당집} 19권, 〈전등록〉12권 등에 전한다. 임제의현과 동문이며, 젊은 운문의 발을 문지방에 치게 하여 깨달음을 체득하게 한 진존숙(陳尊宿)이라고 불리는 선승이다. 그는 명리(名利)를 멀리하고 한 평생 은거하며 짚신을 만들어 팔아서 노모를 봉양한 효행이 알려지면서 진포혜(陳蒲鞋)라고 불리게 되었다.

[第010則]掠虛頭漢
〈垂示〉垂示云。恁麽恁麽。不恁麽不恁麽。若論戰也。箇箇立在轉處。所以道。若向上轉去。直得釋迦彌勒。文殊普賢。千聖萬聖。天下宗師。普皆飮氣呑聲。若向下轉去。醯雞蠛蠓。蠢動含靈。一一放大光明。一一壁立萬仞。儻或不上不下。又作麽生商量。有條攀條。無條攀例。試擧看。
〈本則〉擧。睦州問僧近離甚處。僧便喝。州云。老僧被汝一喝。僧又喝。州云。三喝四喝後作麽生。僧無語。州便打云。這掠虛頭漢。
〈頌〉兩喝與三喝。作者知機變。若謂騎虎頭。二俱成瞎漢。誰瞎漢。拈來天下與人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