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벽암록 제011칙 - 020칙

실론섬 2023. 2. 21. 20:12

[제011칙] 당주조한(噇酒糟漢. 술지게미 먹고 취해 다니는 놈들) - 황벽화상과 술 찌꺼기나 먹은 놈(酒糟漢)
“수행자 흉내낸다고 깨달음 얻어지지 않는다”

[수시]
부처님과 조사들의 큰 솜씨를 모두 제 손아귀에 넣고, 하늘과 사람 온갖 생명들이 모두 그의
지시를 받으며, 대수롭지 않은 일구일언으로 모든 무리를 놀라 움직이게 하고, 일거수 일투족으로
사슬을 쳐서 깨고 목에 씌운 칼을 부수며, 향상의 길에 있는 이들을 만나면 향상의 일로 
이끄는 사람이 있다. 자 말해보아라. 어떤 사람이 일찍이 그런 일을 해 보였는가를. 이 말의
가리키는 곳을 이제 알았는가를 ...

[본칙]
황벽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가 술지게미(술찌꺼기)나 먹고 진짜 술을 마신 듯이 취해 다니는 놈들이다. 할 일 없이
이 절 저 절로 공밥이나 얻어 먹고 다닌다면 언제 깨닫겠느냐. 아무리 찾아다녀도 이 당나라에는
큰 선사가 없다는 것을 너희가 알고는 있느냐?"
그때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고 거느린 것들은 무엇입니까?"
황벽스님이 말하였다.
"선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스승이 없다는 말이다."

(황벽 화상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그대들은 모두가 술찌꺼기나 먹고 진짜 술을 마시고 취한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이 언제 불법을 체득할 수가 있겠는가? 위대한 당(唐)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때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전국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고 거느린 선승들은 무엇입니까?”
황벽 화상이 말했다.
“선(禪)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사(禪師)가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송]
느름하고 고고한 기풍 스스로 자랑 않고
천하에 앉아서 용도 뱀도 다스린다
대중천자가 일찍이 슬쩍 건드렸다가
세 번이나 직접 혼이 났다네

 

*{벽암록}에서 원오는 “황벽(?~850) 선사는 7척의 큰 키에다 이마에는 둥근 구슬이 있었고, 천성적으로 선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 체구도 당당한 천성의 선승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특히 황벽의 문하에 임제의현이라는 걸출한 선승이 배출되어 당대 선불교의 사상을 극대화한 사실은 어록의 왕이라고 불리는 {임제어록}에 유감없이 잘 전하고 있다.

 

[第011則]噇酒糟漢
〈垂示〉垂示云。佛祖大機。全歸掌握。人天命脈。悉受指呼。等閑一句一言。驚群動衆。一機一境。打鎖敲枷。接向上機。提向上事。且道什麽人曾恁麽來。還有知落處麽。試擧看。
〈本則〉擧。黃檗示衆云。汝等諸人。盡是噇[口+童]酒糟漢。恁麽行脚。何處有今日。還知大唐國裏無禪師麽。時有僧出云。只如諸方匡徒領衆。又作麽生。檗云。不道無禪。只是無師。
〈頌〉凜凜孤風不自誇。端居寰海定龍蛇。大中天子曾輕觸。三度親遭弄爪牙。

 

[제012칙] 마삼근(麻三斤. 내 베옷 무게가 세 근이다) - 동산화상의 삼 세근(麻三斤)
“세근 짜리 삼베가사 입은 그대가 부처라네”

[수시]
살인도 활인건은 옛부타의 법도이며,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것이다. 죽여도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살린다 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향상의 외길은 온갖 성인들도 전할 수
없다 하였다. 학자들이 헛되이 애를 쓰는 것은 마치 달 그림자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은 원숭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자, 말해 보아라. 이미 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번잡한 이야기와
공안 따위가 그렇게 많은지를 ... 눈 똑바로 뜬 자라면 다음의 본보기를 잘 살펴보아라.

[본칙]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입은 삼베옷 세 근이라네."

[송]
금까마귀는 날고 옥토끼는 달린다
훌륭한 대답 어찌 가볍게 응수했다 하겠는가
온갖 격식 다 갖추고 동산을 만나다니
절름발이 잘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짝에 떨어진 꼴이로다

꽃은 만발하고 비단은 눈부시다
남녘에는 대숲, 북녘에는 나무 숲
문득 생각이 나네. 장경과 육대부
도를 아는  이들이라 울지 않고 웃었다네

 

*동산은 두 사람이 유명한데, 당대 조동종의 개창자인 동산양개 화상과 동산수초(洞山守初(910~990) 화상이 있다. 여기는 운문문언의 제자인 동산수초 선사이다. 이 공안은 {무문관} 18칙에도 제시하고 있는데, {전등록}23권 명교대사전과 {오등회원}15권 동산전 등에 수록하고 있다. 동산 화상이 처음 운문 화상을 참문하고 깨달음을 체득한 이야기는 ‘평창’에 자세히 싣고 있으며 {무문관}15칙에도 제시하고 있다.

*因思長慶陸大夫(인사장경육대부) 남전보원이 죽자 그의 제자 육환대부가 스승의 관 앞에서 통곡은 하지 않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에 자리를 지키던 주승(主僧)이 이 모양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그러자 육환대부는 이번에는 대성통곡을 하며 소리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우리 스승께서는 이제 세상을 버리고 멀리 가셨구나. 나중에 장경대안이 이 육환대부의 말을 듣고는 칭찬했다.

*[통전(通典)] 제6권에 의하면 당나라에는 세근(三斤)의 마사(麻絲)가 하나의 단위로서 한 뭉치 마사(麻絲)의 무게가 세 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삼 세근의 실은 가사 한 벌(승복)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이다. 당시에는 삼베(麻布)로 가사나 승복을 만들었다. 동산의 스승인 운문문언의 〈비문〉에도 “兩斤麻 一段布” 혹은 “三斤麻 一匹布”라는 문답이 있다.


[第012則]麻三斤
〈垂示〉垂示云。殺人刀活人劍。乃上古之風規。亦今時之樞要。若論殺也。不傷一毫。若論活也。喪身失命。所以道。向上一路。千聖不傳。學者勞形。如猿捉影。且道。旣是不傳。爲什麽。卻有許多葛藤公案。具眼者。試說看。
〈本則〉擧。僧問洞山。如何是佛。山云。麻三斤。
〈頌〉金烏急玉免速。善應何曾有輕觸。展事投機見洞山。跛鱉盲龜入空谷。花簇簇錦簇簇。南地竹兮北地木。因思長慶陸大夫。解道合笑不合哭。咦。

 

[제013칙] 은완성설(銀椀盛雪. 은주발에 소복한 하얀 눈) - 파릉(巴陵) 화상에게 제바종(提婆宗)의 종지를 밝힘
“교종과 선종은 방법 달라도 목적지는 같아”

[수시]
구름이 큰 들판에 모이니 온 법계에 간직되지 않은 데 없고, 눈이 갈꽃을 덮으니 온통 흰빛이다.
차다고 하면 눈같이 차고, 작다고 하면 쌀가루같이 작으며, 깊고 깊어 눈으로 엿볼 수 없고,
은밀하여 마구니 외도가 헤아릴 수 없다. 하나를 보고 셋을 아는 자라면 그런대로 안심이 된다.
천하 사람들의 말문을 콱 막을 수 있는 한마디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자 말해 보아라. 
이 어떤 사람의 경지인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파릉스님에게 물었다.
"제바종이란 무엇입니까?"
파릉스님이 말하였다.
"하얀 은주발에 소복히 담은 흰 눈."

(어떤 스님이 파릉 화상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제바(提婆)의 종지 입니까?”

파릉 화상이 대답했다.

“은쟁반에 흰눈을 가득 담았다.”)

[송]
신개원의 노승 견식도 뛰어나지
하얀 은주발 속 소복한 흰 눈이라
구십육종 외도들은 스스로 알아야 하리
그래도 모른다면 하늘 가 달에나 물어 보아라
제바종 제바종
붉은 깃발 아래 끝없이 이는 맑은 바람.

 

*본칙의 공안은 〈연등회요〉 26권과 〈선문염송〉 27권 등에 전하고 있다. 파릉 화상은 운문문언 선사의 법을 이은 뛰어난 걸승으로 법명은 호감(顥鑑)이라고 하며, 호남의 파릉 신개원(新開院)에서 교화를 펼친 선승이다. 그에 대한 생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평창’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특히 호감 화상은 독특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잘 지도하였기 때문에 ‘감다구(鑒多口)’라는 별칭이 있었다.

*제바종에 대해서 평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천 15대 제바(迦那提婆) 존자는 처음 외도의 한 사람이었다. 제14대 용수 존자를 친견하고 바늘을 발우 속에 던지자 용수 존자는 그를 큰 그릇으로 여기고 불법의 심종을 전수하여 15대 조사로 삼았다. 〈능가경〉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佛語心)을 근본(宗)으로 삼고 고정된 문이 없는 무문(無門)을 법문으로 삼는다”라고 하고, 마조스님은 “대개 언구(言句)가 있으면 제바의 종지이다. 제바종은 언어 문자를 주요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용수의 제자 제바 존자는 〈백론(百論)〉의 저자로서 불법의 논의에 뛰어난 변론가였다. 그는 당시 96종의 외도를 논쟁으로 항복받고 불교인으로 전향시킨 인물이다. 따라서 여기서 ‘제바종’이란 제바 존자의 종지를 중심으로 한 대승 반야사상의 불교교단을 말한다. 마조가 “대개 언구(言句)가 있으면 제바종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제바 존자가 날카로운 논법으로 많은 외도들을 논파한 것에서 언구에 의거하여 불법의 대의를 교시한 입장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제바종이란 삼론종을 가리킨다. 제바종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당시의 불교학승들에게 유행한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주장한 삼론종에 대한 선적인 견해를 물은 것이라 할 수 있다.     


[第013則]銀椀盛雪
〈垂示〉垂示云。雲凝大野。遍界不藏。雪覆蘆花。難分朕跡。冷處冷如冰雪。細處細如米末。深深處佛眼難窺。密密處魔外莫測。擧一明三卽且止。坐斷天下人舌頭。作麽生道。且道是什麽人分上事。試擧看。
〈本則〉擧。僧問巴陵。如何是提婆宗。巴陵云。銀碗裏盛雪。
〈頌〉老新開端的別。解道銀碗裏盛雪。九十六箇應自知。不知卻問天邊月。提婆宗提婆宗。赤旛之下起淸風。

 

[제014칙] 대일설(對一說. 그때 그때 하신 말씀)

“설법은 환자따른 처방…언구에 매이지 말아야”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일대시교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하신 말씀이다."

[송]
그때 그때 한 말씀 참으로 뛰어나다

구멍 없는 철추로 쐐기 거듭 박았도다
한바탕 웃음소리 온 우중 가득 차니
어젯밤 검은 용의 뿔이 꼬인 채 기죽었네
대단하고 대단하다. 소양의 노인에게는
아직도 쐐기 하나 남아 있구나

(구멍 없는 철추로 거듭 쐐기를 박았다. 
염부제 나무아래서 껄껄대고 웃으니, 
어젯밤 검은 용의 뿔이 요절났네. 
별나고 별났네. 운문노인이 용의 뿔을 하나 꺾었도다.”)

[第014則]對一說
〈本則〉擧。僧問雲門。如何是一代時敎。雲門云。對一說。
〈頌〉對一說太孤絶。無孔鐵鎚重下楔。閻浮樹下笑呵呵。昨夜驪龍拗角折。別別。韻陽老人得一橛。

 

[제015칙] 도일설(倒一說. 아무 말도 안 했겠지) - 운문화상의 도일설(倒一說)
“병든 환자가 없다면 처방전도 필요 없어”

 

[수시]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검은 옛부터의 규범이며 지금에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지금 당장 어떤 것이 살인도이고 활인검인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설법을 듣는 사람도, 설법을 할 일도 없다면 그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한 말씀도 안 하셨을 것이다."

(어떤 스님이 운문 화상께 질문했다.

“현재 눈앞에 직면한 상대의 마음 작용(機)도 없고, 현재 눈앞에 직면한 문제(事)도 없을 경우는 어떻습니까?”
운문 화상이 대답했다.

“일대일(一對一)의 설법도 끝났다(倒一說)”)

[송]
도일설은 대일설의 한 부분
생사를 같이할 뜻 각별하기도 하다
팔만사천 대중들 모두 다 장님
삼심삼 조사 모두 호랑이 굴 들어갔네
훌륭하고 또 훌륭하여라 어지럽고 바쁘게 흐르는 물 속의 달이여 ...


[第015則]倒一說
〈垂示〉垂示云。殺人刀活人劍。乃上古之風規。是今時之樞要。且道。如今那箇是。殺人刀活人劍。試擧看。
〈本則〉擧。僧問雲門。不是目前機。亦非目前事時如何。門云。倒一說。
〈頌〉倒一說分一節。同死同生爲君訣。八萬四千非鳳毛。三十三人入虎穴。別別。擾擾匆匆水裏月。

 

[제016칙] 줄탁(啐啄. 알 껍질을 깨 주시면) - 경청화상과 형편없는 수행자(草裏漢)
“형식적 줄탁이 아니라 내용의 진지함 있어야”

[수시]
지극한 도에는 샛길이 없고, 그 도에 있는 사람에게는 감히 다가가기 힘들다. 정법은 보고
들을 수 없으며, 말이나 글과는 아득히 떨어져 있다. 만약 가시밭을 헤치고 나가, 부처님과
조사의 밧줄을 풀어 버리고, 은밀한 경지를 얻게 되면, 온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외도가 엿보려 해도 문이 없다. 하루종일 일을 해도 한 일이 없고, 하루종일 설법해도 한 
가르침이 없다. 자유자재이어서, 줄탁의 솜씨를 펴고, 살활의 칼을 쓸 수가 있다. 비록 그렇다
해도, 교화의 일에 종사하게 되면, 한 손은 들어올리며 한 손은 잡을 줄 알아야 조금은 
쓸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분의 일을 할 때에는 그런 것은 거의 쓸데가 없는
것이다. 이 본분의 일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본칙]
어떤 스님이 경청스님에게 물었다.
"학인이 알에서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으니, 톡 쪼아 주십시오."
경청스님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과연 살 수 있겠느냐?"
그 스님이 말했다.
"살아나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경청스님은 말하였다.
"역시 형편없는 놈이로구나."
(어떤 스님이 경청 화상에게 질문했다. 
“학인이 달걀 속에서 나오려고 신호하면(?) 화상께서는 병아리가 태어나도록 달걀을 쪼아(啄) 주십시오”
경청 화상이 말했다. 
“과연 살아날 수 있겠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만약 살아나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경청 화상이 말했다. 
“역시 형편없는 놈(草裏漢)이군!”)

[송]
옛 부처에게는 뚜렷한 기풍이 있으니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혼쭐이나 난다네
어미와 새끼도 서로 모르는 일을
누가 알아 동시에 쫀단 말인가
톡 톡 쪼으면 깨어나련만
아직도 껍질 속에 갇혀만 있구나
힘껏 두드려 깨어주려 해도
천한 납승들 헛된 수작 싫다네

 

*원오는 ‘평창’에 경청 화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처음 설봉 화상을 친견하고 종지를 얻은 뒤에 항상 줄탁(啄)의 기연으로 후학을 지도하고, 학인의 근기에 맞추어 설법하였다. 그는 대중법문에서 ‘대개 수행하는 사람은 줄탁(啄) 동시의 안목을 가지고 줄탁동시의 지혜작용이 있어야 비로소 수행승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병아리가 달걀 속에서 껍질을 쪼면 어미 닭이 밖에서 달걀 껍질을 쪼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고 하였다. 그 때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질문했다. ‘어미 닭이 쪼고 병아리가 쪼면 화상의 경지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 좋은 소식이다.’ ‘ 반대로 병아리가 쪼고 어미닭이 쪼면 학인의 경지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본래면목이 들어나지.’ 이 때문에 경청 화상의 문하에서는 줄탁의 기연(이야기)이 있게 되었다.”


[第016則]啐啄
〈垂示〉垂示云。道無橫徑。立者孤危。法非見聞。言思逈絶。若能透過荊棘林。解開佛祖縛。得箇穩密田地。諸天捧花無路。外道潛窺無門。終日行而未嘗行。終日說而未嘗說。便可以自由自在。展啐啄之機。用殺活之劍。直饒恁麽更須知有建化門中一手抬一手搦。猶較些子。若是本分事上。且得沒交涉。作麽生是本分事。試擧看。
〈本則〉擧。僧問鏡淸。學人啐。請師啄。淸云。還得活也無。僧云。若不活遭人怪笑。淸云。也是草裏漢。
〈頌〉古佛有家風。對揚遭貶剝。子母不相知。是誰同啐啄。啄覺猶在殼。重遭撲。天下衲僧徒名邈。

 

[제017칙] 좌구성로(坐久成勞. 오래 앉아 있어야 피곤하기만 하다) - 향림화상과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의미
“지식으로 알기보다는 삶 자체를 바꿔야”

[수시]
못을 자르고 쇠를 끊어야 본분종사라 할 수 있다. 화살을 겁내고 칼을 두려워한 대서야
어찌 사통팔달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경지는 그런대로
되었다 치더라도, 흰 파도가 하늘에 넘칠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본칙]
어떤 스님이 향림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향림스님이 말하였다.
"오래 앉아 있어 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어느 스님이 향림 화상에게 질문했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향림 화상이 대답했다. 
“오랫동안 앉아서 좌선하니 피곤하군.”)

[송]
한 사람 두 사람 천만 사람들
모두들 굴레 벗고 짐을 풀었네
왼 쪽 오른 쪽 살피며 따르는 이 있다면
자호가 유철마 치듯 맞아야 하리

*이 공안은 〈오등회원〉 15권 향림장에 전하고 있다. 향림 화상은 운문문언의 법을 이은 징원(澄遠: 908~987)선사다. 그의 전기는 〈전등록〉22권, 〈회요〉26권 등에 전하고 있다. 중국 사천성(蜀) 성도의 향림사 주지로서 운문 선사의 선풍을 정통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원오도 ‘평창’에서 인정하고 있다. 이 공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향림 화상은 운문 선사의 문하에서 18년간 시자로 있었기 때문에 ‘원시자(遠侍者)’로 잘 알려진 선승이다. 운문의 불법을 직접 체득하는 시기는 늦었지만 참으로 그는 그릇이 큰 선승이었다고 원오도 ‘평창’에 칭찬하고 있다.

[第017則]坐久成勞
〈垂示〉垂示云。斬釘截鐵。始可爲本分宗師。避箭隈刀。焉能爲通方作者。針箚不入處。則且置。白浪滔天時如何。試擧看。
〈本則〉擧。僧問香林。如何是祖師西來意。林云。坐久成勞。
〈頌〉一箇兩箇千萬箇。脫卻籠頭卸角馱。左轉右轉隨後來。紫胡要打劉鐵磨。

 

[제018칙] 무봉탑(無縫塔. 되는 대로 쌓은 탑) - 혜충국사의 ‘무봉탑’
"삼라만상 그대로가 이음새 없는 ‘무봉탑’"

[본칙]
숙종 황제가 혜충국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혜충국사는 말하였다.
"노승에게 무봉탑을 만들어 주십시오."
"스님께서 탑의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혜충국사가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말했다.
"알았습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법을 배운 탐원이라는 제자가 있는데 이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묻도록 하십시오."
국사가 집적한 뒤 황제는 조서를 내려 탐원에게 물었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탐원이 말하였다.
"상강은 남으로 흐르고 담강은 북으로 흐른다. 그 가운데 황금이 있어 온 나라를 가득 채운다.
그늘 없는 나무 아래 같이 타고 가는 배, 유리궁전에 사는 이들 중에는 알 만한 이 없노라."

[송]
무봉탑 보려해도 참으로 어렵다
맑고 깊은 연못에는 청룡이 깃들 수 없네
층층이 높고 높아 그림자 드리운다
천년 만년 사람들과 더불어 바라보리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無縫塔)이란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탑을 말한다. 

*이 얘기는 〈전등록〉 제5권에 전하고 있는 것으로, 혜충 국사가 입적하기 직전 대종(代宗)황제와 하직할 때에 나눈 대화이다. ‘평창’에서도 숙종과의 대화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혜충(? ~775)국사는 육조혜능의 제자로 하남성 남양의 백애산(白崖山) 암자에서 40년간 거주하였다. 그의 도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숙종과 대종황제의 국사로 초빙되었기 때문에 혜충 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第018則]無縫塔
〈本則〉擧。肅宗皇帝問忠國師。百年後所須何物。國師云。與老僧作箇無縫塔。帝曰。請師塔樣。國師良久云。會麽。帝云。不會。國師云。吾有付法弟子耽源。卻諳此事。請詔問之。國師遷化後。帝詔耽源。問此意如何。源云。湘之南潭之北。中有黃金。充一國。無影樹下合同船。琉璃殿上無知識。
〈頌〉無縫塔見還難。澄潭不許蒼龍蟠。層落落。影團團。千古萬古與人看。

[제019칙] 지수일지(只竪一指. 손가락 하나 치켜세워) - 구지화상의 한 손가락 법문
“손가락 하나에 우주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

[수시]
한 점 티끌 일어도 온 대지가 포함되어 있고, 꽃 한 송이 피어도 온 세계가 일어난다. 티끌이
일어나지 않고 꽃이 아직 피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옛말에도 한 타래 실은
한번만 자르면 모두 끊어져 조각이 나고, 한군데만 물들여도 모두 물들고 만다고 하였다.
지금 그와 같이, 온갖 갈등을 끊어버리고, 참된 자기의 보배를 이끌어내며, 높고 낮음에 두루
응하고, 앞뒤에 차이가 없으면, 본래 면목 스스로 이룰 수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래의 글을 잘 살펴보아라.

[본칙]
구지스님은 묻기만 하면 오로지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 보였다.

[송]
구지화상의 손가락 불쑥 치킨 깊은 사랑
온 우주 통틀어도 그와 같은 이 다시 없네
일찍이 넓은 바다 띄워놓은 널빤지 하나
캄캄한 밤바다에서 눈먼 거북 건져줬네

*조사들의 행장을 모아놓은 {조당집} 19권 '구지화상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구지 화상은 천룡(天龍)의 법을 이었고 경안주(敬安州)에 살았다. 그 밖의 행적은 알 수가 없어 기록하지 못한다. 선사가 암자에 살고 있을 때에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와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선사의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주장자를 우뚝 선사 앞에 세우고 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선사가 대답을 하지 못하니 비구니는 그냥 떠나려고 했다. 이에 선사는 말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하루 저녁 묵어가도록 하시오' 비구니가 말했다. '제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묵어가겠지만 대답을 못하시면 이대로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떠나 가버렸다.
이때 선사는 혼자 탄식하였다. '나는 명색이 사문이라고 하면서 비구니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외람되이 장부의 형상은 갖추었으나 장부의 작용이 없구나! 이 산을 떠나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리라.' 그리고 조용히 선정에 드니 갑자기 어떤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삼(三), 오(五)일 안에 큰 보살이 오셔서 화상께 설법해 드릴 것이요' 그런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 천룡 화상이 왔거늘 선사는 뛰어나가 말에 절을 하고 맞아들여 모시고 서서 앞에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한 즉 천룡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니 즉시에 환히 불법을 깨달았다.
선사는 그 뒤로 대중에게 말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룡 화상에게 일지선(一指禪)을 얻은 뒤로 평생 동안 사용해도 다 사용하지 못했다.'" 구지 화상은 항상 구지관음다라니(俱觀音陀羅尼: 七俱佛母心陀羅尼經)를 외우고 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마조도일의 제자 법상(法常: 752~839)의 법을 이는 천룡 화상의 제자이다. 천룡 화상의 전기도 잘 알 수가 없다.
구지 화상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법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을 할지라도 단지 한 손가락만을 세웠다고 한다. 


[第019則]只竪一指
〈垂示〉垂示云。一塵擧大地收。一花開世界起。只如塵未擧花未開時。如何著眼。所以道。如斬一綟絲。一斬一切斬。如染一綟絲。一染一切染。只如今便將葛藤截斷。運出自己家珍。高低普應。前後無差。各各現成。儻或未然。看取下文。
〈本則〉擧。俱胝和尙。凡有所問。只豎一指。
〈頌〉對揚深愛老俱胝。宇宙空來更有誰。曾向滄溟下浮木。夜濤相共接盲龜。

 

[제020칙] 서래무의(西來無意. 서쪽에서 온 뜻은 없다) - 용아화상과 달마가 오신 뜻
“조사의 뜻을 편견으로 재단하지 말라”

[수시]
온 산 봉우리에도 담장의 돌 위에도 참 진리 가득하다. 망설이거나 우두커니 꾸물대면 정녕
헛수고일 뿐이다. 혹 개중에 썩 나서서, 바다를 뒤집고, 수미산을 걷어차며, 할로 흰 구름
걷어내고, 허공을 쳐부수며, 당장에 어떤 때 어떤 곳에서도, 모든 사람의 말문을 막고, 그 누구도
가까이 하기 어렵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자, 말해 보아라. 옛부터 어떤 사람이
그러할 수 있었는지를 ...

[본칙]
용아스님이 취미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취미스님이 말했다.
"나에게 선판(禪板)을 가져 오너라."
용아스님이 선판을 가져다가 주자, 취미스님은 받자마자 그대로 후려쳤다.
용아스님이 말하였다.
"치려면 마음대로 치십시오. 그래도 조사께서 오신 뜻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용아스님은 다시 임제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임제스님이 말했다.
"내게 방석 좀 갖다 주게."
용아스님이 방석을 가져다 주자, 임제스님이 받자마자 방석으로 후려쳤다.
용아스님이 말하였다.
"치는 것은 마음대로 치십시오.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송]
용아산 속 용에겐 눈이 없구나
썩은 물이 어찌 고풍을 드날리리
선판이고 포단이고 다 쓸 줄 모르니
노행자나 불러다 주어야 하리

저 늙은이 이것으로 끝내기에는 미진한 것이 있어 다시 한 게송 덧붙인다.
노공에게 주어야 무슨 소용 있으랴
앉아서나 기대서나 불조의 맥 이을 생각 없다네
저녁 구름 돌아와도 산 감싸기 미흡하나
먼 산은 첩첩 한없이 푸르구나

 

*선판은 좌선 수행중에 잠시 턱을 기대고 쉴 수 있는 도구이다.
*용아 화상은 동산양개의 법을 이은 거둔(居遁: 835~923)선사로 호남 용아산 묘제선원에서 선풍을 떨친 선승이다. 그의 전기는 {조당집} 8권, {송고승전} 13권에 전하고 있는데, 여기에 제시한 공안은 {전등록} 17권과 {임제록}, {굉지송고} 80칙 등에도 전하고 있다.

[第020則]西來無意
〈垂示〉垂示云。堆山積嶽。撞牆磕壁。佇思停機。一場苦屈。或有箇漢出來掀翻大海。踢倒須彌。喝散白雲。打破虛空。直下向一機一境。坐斷天下人舌頭。無爾近傍處。且道從上來。是什麽人曾恁麽。試擧看。
〈本則〉擧。龍牙問翠微。如何是祖師西來意。微云。與我過禪板來。牙過禪板與翠微。微接得便打。牙云。打卽任打。要且無祖師西來意。牙又問臨濟。如何是祖師西來意。濟云。與我過蒲團來。牙取蒲團過與臨濟。濟接得便打。牙云。打卽任打。要且無祖師西來意。
〈頌〉龍牙山裏龍無眼。死水何曾振古風。禪板蒲團不能用。只應分付與盧公。這老漢。也未得勦絶。復成一頌。盧公付了亦何憑。坐倚休將繼祖燈。堪對暮雲歸未合。遠山無限碧層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