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불교 특히 대승을 표방하는 사람들이 계율을 무시하는 듯한 경향이 팽배한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계.정.혜. 삼학의 가르침에 비추어 봐서도 절대로 용납이 되어서는 안될뿐더러,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무장도 하지 않은 것 만큼이나 말이 안되는 소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붓다는 진리를 깨닫고 체득하여 불교의 교조가 되었지만 붓다 스스로 누구보다도 계율을 엄수했다.
그리고 당시 승가에 속한 수행승들의 계율 엄수가 어떠했는가는 布薩(포살)과 自恣(자자)의 법회
의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포살이란 POSHADHA 의 음사이며 포살법회는 매달 그믐과 보름에 열렸다. 당시 인도는 보름을 한달로하는 음력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살법회는 오늘날로 치면 매달 그믐과 보름날에 행하여
졌다. 해가 넘어가고 등불이 켜진 가운데 비구들이 사찰의 뜰이나 포살법회를 행할 수 있을만한
수행처의 조용한 빈 공간에 모이고 난후 이윽고 장로가 戒本(계본)을 소리높이 한조목 한조목씩
읽어가되, 같은 조목을 세번씩 되풀이 했다.
그렇게 계율의 조목을 하나씩 읽어감으로해서 그동안 읽어가는 조목에 대해서 과오가 있는 사람은
일어나 참회할 것이 요구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비구라도 마을이나 수행처에서 훔치려는 마음으로 주어지지 않은 물건을 가졌다 하면
바라이죄에 해당되며 더이상 같이 승가에 머물수 없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묻는다. 이점에 대해
청정한가. 다시 묻는다. 이점에 대해 청정한가. 세번째 묻는다. 이점에 대해 청정한가.] 라는
식으로 읽어 갔다. 그리고 대중의 침묵은 청정의 뜻으로 해석되고 받아 들여졌다.
自恣(자자)법회란 우안거가 끝나는 보름날의 포살일에 행하여졌다. 자자란 PAVARANA 의 역어로써
스스로 자기의 죄나 과실을 지적해 달라고 동료 비구들에게 청하는 의식인바, 중국의 승려였던
현장은 이를 수의(隨意)라고 번역했다.
율장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자자법회는 다음과 같이 진행 되었다. 날이 저물고 보름달이 떠오는 시각에 모든 승려가 뜰에 나와 엄숙한 태도로 원을 그으며 둘러 앉는다. 그 때 한 비구가 일어나서 소리높여 말한다.
[비구들이여, 오늘은 자자의 날 입니다. 만약 승가로써 시기나 모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자자를 행할 것입니다]
이라하여 자자법회가 시작되면 먼저 장로 비구부터 시작해서 교대로 일어나 합장한 손을 높이
쳐들고 동료 비구들에게 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승가에 대해 자자를 행 합니다. 나에 대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또는 나에 대해
의심나는 생각을 지닌 이가 있다면 여러 비구들이시여, 나를 가엾이 여기시고 그를 말씀해
주십시요. 저에게 죄 있음을 지적해 주시면 그를 제거 하겠습니다.] 이를 세번 반복하는 것이다.
상응부경전에 보면 어느해 붓다가 직접 자자법회에 참석한 감동적인 모습을 전하고 있다.
그날 해가 지자 달이 떠 오르고, 뜰에 둘어 앉은 비구의 수효가 대략 500여명 되었다. 그 속에는 붓다도 있었으며 또한 수제자인 사리뿟타의 모습도 보였다. 자자법회는 장로(윗사람) 부터 하는 것이 규정이므로 제일먼저 붓다가 일어 났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자자를 행 합니다. 비구들은 내 행동과 언어에서 무엇인가 비난할 만한 것을 보고 듣고 또는 의심을 품지는 않으셨습니까.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가엾이 여겨 부디 지적해 주십시요.]
붓다는 합장한 손을 높이 들고 세번 이말을 반복했다. 엄숙한 침묵이 뜰 전체를 감싼다. 침묵은 청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붓다의 자자에 그냥 침묵만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견딜 수 없었던 사리뿟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붓다앞으로 나아가 엎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무도 세존의 행위와 언어에서 비난할 만한 점을 발견한 자는 없습니다.]
그 다음은 사리풋타 차례였다. 그도 역시 손을 높이 들고 감동에 넘치는 어조로 자자를 행했다.
다시한번 엄숙한 침묵이 뜰안 가득 내려 앉았다. 이번에는 붓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언행을 찬양 했다. 이런식으로 오백여명의 비구가 자자를 행하였으나 누구 하나 비난의 대상이 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굳이 우란분절에 대한 해석이나 그 의미를 되새기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우란분절에 행해지는 모든 행사에 대해서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꼭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안거가 끝나는 날 보름날 밤에 우리 불교의 승가는 자자법회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지 않고 있는가??? 종정 스님이 하안거 해제법문은 있는데 자자법회에 스스로 나아가 자신의 허물을 대중들에게 되물었는가??
상기 대답에 NO 이면서도 우란분절 행사만 떠들썩하게 하는 승가의 모습이라면 그것은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포살법회와 붓다께서도 직접 행하신 자자법회를 하지않는 승가는 불교의 승가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변명거리가 안되며 용서가 안되는 파계행위이다.
포살과 자자법회는 승가 스스로의 도덕성을 높이 세우고 청정함을 되돌아 보도록 붓다께서 제정하신 계율이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이 두 법회를 하는 것을 거의 볼 수가 없다. 포살과 자자법회만큼 중요한 모임은 없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위경인 우란분경에 따른 우란분절 행사는 떠들썩하게 하면서 그리고 종정스님이나 큰 스님들이 해제법문은 여기저기 하시면서도 자자법회 했다는 소식 들어 본적 없다. 이건 재삼 말씀 드리지만 분명 불교의 모습 아니다. 그분들애 붓다보다 청정하고 덕이 높아서 자자법회 안 합니까?
자자법회 하라고 해제법문 하셔야지 왠 몇백년전 썩어빠진 이야기는 왜 들고 나옵니까?
그게 자자법회 하라고 몸소 실천하신 붓다의 가르침보다 더 높은 가르침 입니까?
계율이 망가진 조직은 존재 가치가 없다.
그것은 대중들에게 감동도 못주며 가르침을 더더욱 줄것이 없다.
붓다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승가는 이미 불교의 승가가 아니다.
'자유로운 야단법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외도의 황당한 윤회관 (0) | 2014.03.24 |
---|---|
기적이 필요하십니까? (0) | 2014.03.20 |
승가교육은 백지에 새로 짜야 합니다. - 일아스님 (1) | 2014.03.17 |
오늘에 되돌아 보는 3차 상가띠(Sanghiti)정신 (0) | 2014.03.17 |
[스크랩] 자신을 파 엎는 어리석은 얼간이 (0) | 2014.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