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 34

429칙 조주세발 趙州洗鉢

429칙 조주세발 趙州洗鉢 [본칙] 어떤 학인이 조주에게 물었다. “저는 총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발우나 씻어라!” 그 학인이 확 트인 듯이 크게 깨달았다. 趙州因僧問,“ 學人乍入叢林, 乞師指示.” 師云,“ 喫粥了也 未?” 僧云,“ 喫粥了.” 師云,“ 洗鉢盂去!” 僧豁然大悟. [설화] 총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시기 바랍니다:초심자인 학 인이 총림에 처음 들어와 진실로 확고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깨달음으 로 들어가는 방법을 바르게 찾을 수 없다1)는 뜻이다. 1) ‘진실로 확고한 마음을 ~ 찾을 수 없다’라는 구절은『圜悟心要』「示慧禪人」 卍120 p.721b6에 나온다. 죽은 먹었느냐:만송행수..

417칙 조주구자 趙州狗子

417칙 조주구자 趙州狗子 [본칙] 어떤 학인이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저 가죽 포대 속에 들어갔습니까?” “그 놈이 알면서도 고의로 범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학인이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1)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는데, 개에게는 어째서 없습니까?” “그 놈은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다.”2) 趙州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有.” 僧云,“ 旣 有, 爲什麽却撞入者箇皮袋?” 師云, “爲他知而故犯.” 又有 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無.” 僧云,“ 一切衆生 皆有佛性, 狗子爲什麽却無?” 師云,“ 爲伊有業識在.” 1) 본래 조주의 문답에는 ‘없다’는 대답과 ‘있다’는 대답이 공존하지 ..

411칙 조주끽다 趙州喫茶

411칙 조주끽다 趙州喫茶 [본칙] 조주가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 “있습니다.” “차나 마시게!” 이번에는 다른 학인에게 물었다.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차나 마시게!” 원주가 물었다. “어째서 온 적이 있다고 해도 차나 마시라 하시고, 온 적이 없다고 해도 차나 마시라고 하십니까?” 조주가 “원주!” 하고 부르자 원주가 “예!” 하고 응답했다. 이에 조주가 말했다. “차나 마시게!” 趙州問僧,“ 曾到此閒否?” 僧云,“ 曾到.” 師云,“ 喫茶去!” 又問僧,“ 曾到此閒否?” 僧云,“ 不曾到.” 師云,“ 喫茶去!” 院主問,“ 爲什麽, 曾到也敎伊喫茶去, 不曾到也敎伊喫茶 去?” 師召院主, 主應喏. 師云,“ 喫茶去!” [설화] ‘이곳’이란 조주화상이 주석하고 있는..

399칙 환중식병 寰中識病

399칙 환중식병 寰中識病 [본칙] 대자산의 환중선사가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산승은 질문에 대답할 줄 모른다. 단지 병을 알 뿐이다.” 그때 어떤 학인이 앞으로 나오자 대자는 곧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大慈山, 寰中禪師, 上堂云, “山僧不解答話. 只是識病.” 時 有僧出, 師便歸方丈. [설화] 병이란 부처에 집착하는 병[佛病]과 조사에 집착하는 병[祖病] 등을 말 한다.1) 어떤 학인이 나온 것은 병인가, 병이 아닌가? 대자가 방장으로 돌 아간 것은 병을 안 것인가, 병을 알지 못한 것인가?2) 病者, 佛病祖病等也. 有僧出者, 是病不是病? 便歸云云, 是識 病不是識病? 1) 불병(佛病)과 조병(祖病)이라는 말은 조사선(祖師禪) 이후에 쓰이는 용어이다. “그런 까닭에 옛사람은 부처님의 경지로 향상하는 도..

359칙 위산무심 潙山無心

359칙 위산무심 潙山無心 [본칙] 위산에게 어떤 학인이 물었다. “도란 어떤 것입니까?” “무심이 도이 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모르는 바로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 는가?” “모른다는 바로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바로 그대 자신이며 별 다른 사람이 아니다.” 위산이 다시 말했다. “여기 눈앞에 있는 누구라도 다만 모르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부처요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지금 당장 몸소 알아차리면 될 뿐이다. 만일 자기 밖에서 구하여 하나하나씩 알고 이해하는 것을 선(禪)의 바른 길이라 생각한다면 본질과 전혀 관계 없이 된다. 그것은 똥을 안으로 퍼 들이는 것이라 하며 똥을 밖으로 퍼내 는 것이라 하지 않으니, 그대들의 마음이라는 밭[心田]을 더럽히게 되는 까닭에 도가 아닌 것이다.” ..

351칙 천황쾌활 天皇快活

351칙 천황쾌활 天皇快活 1) 1) 한평생 ‘쾌활하다’고 외치다가 입적하기 직전에는 ‘괴롭다’고 반전시킴으로써 이전의 쾌활함이 하나의 관문(關門)으로 드러났고, 괴롭다는 말 자체도 또 다시 뒤집어질 수 있는 화두가 되었다. 본서 677則「德山啊」와 707則「洞山不病」 도 공안의 소재가 비슷하다. [본칙] 천황도오는 한평생 언제나 “쾌활하다, 쾌활해!”라고 외쳤으나 입적하 려는 순간에 병을 앓으면서 “괴롭다, 괴로워! 원주야, 술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먹여다오. 고기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먹여다오. 염라대왕이 나 를 잡으려 왔구나”라고 부르짖었다. 원주가 “화상께서는 한평생 쾌활하 다고 외치시다가 지금은 어째서 괴롭다고 부르짖으십니까?”라고 물었 다. 도오가 “말해 보라! 그때가 옳은가, 아니면 지금이 ..

324칙 약산삼승 藥山三乘

324칙 약산삼승 藥山三乘 1) 1) 약산의 동일한 질문에 대하여 석두는 부정의 형식으로 답하고 마조는 긍정의= 형식으로 응함으로써 설정된 대립이 이 공안의 관문이다. [본칙] 풍주(灃州) 약산(藥山)의 유엄(惟儼)선사가 석두희천(石頭希遷)에 게 물었다. “3승 12분교2)에 대해서는 저도 대략 알고 있지만, 일찍이 들 은 적이 있는 남방3)의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에 대해 서는 진실로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간곡하게 화상의 자비로운 가르침 을 바라옵니다.” “이렇다 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안 되니, 이렇다 하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안 된다. 이럴 때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 가?”4) 약산이 생각에 잠겨 있자5) 석두가 말했다. “그대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구나. ..

321칙 단하소불 丹霞燒佛

321칙 단하소불 丹霞燒佛 1) 1) 목불을 태웠거나 태우지 않았거나 그 외형에는 이 공안을 타파할 단서가 없고, 이 두 길을 떠나서 새롭게 펼쳐진 길도 없다. 이것이 단하가 목불을 태우고 남긴 공안의 요체이다. 단하가 목불을 태운 것만 주목하고, 원주가 불법을 비방한 결 과로 눈썹이 빠졌다는 이야기의 진실을 외면해도 안 된다. 원주는 단하의 뜻을 오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하의 행위가 진실한 것인지 점검하면서 이 공안 을 완결하는 역할로 등장한 것이다.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상당 법문과 백운지 병(白雲知昺)의 염은 이러한 원주의 진실을 부각하는 측면에서 제시된다. [본칙] 단하가 혜림사(慧林寺)를 거쳐서 갈 때 혹독한 추위를 만나 땔감을 찾 던 중 불전(佛殿)에서 목불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가져다 불을..

313칙 거사세채 居士洗菜

313칙 거사세채 居士洗菜 [본칙] 방거사가 언젠가 집에 없을 때 단하가 찾아왔다가 영조가 나물 씻는 것을 보고 “거사는 계신가?”라고 물었다. 영조가 나물 바구니를 내려놓 은 뒤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일어섰다. 단하가 다시 “거사는 계신가?”라고 묻자, 영조가 바구니를 들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고 단하도 돌아갔다. 방거사가 밖에서 돌아오자 영조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사가 물었 다. “단하는 여기 계신가?” “가셨습니다.” “붉은 진흙을 덜 익은 홍시1)에 바르는구나.”2) 〈어떤 본에는 “이 원수의 자식이 우리 집안의 가풍을 망쳐 놓았구나”라고 되어 있다.〉 龐居土, 一日不在, 丹霞來訪, 見靈照洗菜次問, “居士在 否?” 照放下菜籃, 歛手而立. 又問, “居士在否?” 照提籃便 行, 霞便廻. 士從外歸,..

312칙 방온시방 龐蘊十方

312칙 방온시방 龐蘊十方1) 1) 방거사가 마조도일(馬祖道一)에게 ‘만법(萬法)과 짝이 되지 않는 사람’에 대하 여 물었다가 ‘한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들이켜면 말해주겠다’라고 한 대답에서 깨달음을 얻고 지은 게송을 소재로 한 공안이다 [본칙] 방거사가 게송으로 읊었다. “시방으로부터 함께 이곳에 모여, 사람마 다 무위의 도를 배우네. 이곳은 부처를 뽑는 선불장2)이니, 마음 비우면 급제하여 돌아가리라.” 龐居土頌云, “十方同共聚,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 及第歸.” 2) 選佛場. 부처를 뽑는 시험장이라는 말. [설화] 시방으로부터 함께 이곳에 모여 ~ 급제하여 돌아가리라:방거사가 “다만 존재하 는 모든 현상을 공(空)으로 보기 바랄 뿐, 결코 없는 것을 진실로 존재하 는 것이라 여기지 마라”3)..

294칙 부배잉어 浮盃剩語

294칙 부배잉어 浮盃剩語1) 1) 이 공안의 문답에서 노파가 ‘창천(蒼天)’이라 한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 는 ‘푸른 하늘’이라는 뜻이며, 또 하나는 ‘아이고!’ 하는 통곡소리이다. [본칙] 부배(浮盃)화상에게 능(凌)이라는 노파2)가 찾아와서 절을 하고 물었 다. “있는 힘을 다해도 말할 수 없는 구절은 누구에게 전해줍니까?” “부 배에게는 쓸데없이 남아도는 말이 없습니다.” “스님께 찾아오지 않았더 라면 틀림없이 의혹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별도로 더 좋은 말이 있 다면, 집어내 보이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노파가 두 손을 모으고 곡소 리를 내며 “아이고! 그 사이에 원통한 일이 또 있었군요”라고 하였으나 부배는 아무 말도 없었다. 노파가 말했다. “말로는 편위와 정위3)의 차별 을..

284칙 분주망상 汾州妄想

284칙 분주망상 汾州妄想 [본칙] 분주무업선사는 학인들이 질문할 때마다 “망상 피우지 마라!”고 대답 하는 경우가 많았다. 汾州無業禪師, 凡學者致問, 師多答之云,“ 莫妄想.” [설화] 각범(覺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구경』에 ‘만일 정진하겠다는 마 음을 일으키면 이는 곧 망상이요 정진이 아니다’라 하였고,『원각경』에는 ‘말세의 중생일지라도 마음에서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부처 님께서 이와 같은 사람은 현세에 있는 그대로 보살이라고 하셨다’1)라 하 였다. 이러한 말은 본성과 합치하는 말이며, 도에 들어가는 문이다. 그러 나 학인들이 그 말을 경시하여 도리어 깊고 미묘한 도를 구하려 하니 가 소로운 일이다.” 覺範云,“ 法華2)經云,‘ 若起精進心, 是妄非精進.’ 圓覺經云, ‘末世諸衆生..

261칙 귀종기권 歸宗起拳

261칙 귀종기권 歸宗起拳 [본칙] 귀종에게 이발1)이 “대장경 전체의 교설은 어떤 일을 밝힌 것입니까?” 라고 물었다. 귀종이 주먹을 세우고 말했다.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 다.”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더니 다 헛일이었군요,2) 주먹조차 모르다니.” 歸宗, 因李渤問, “一大藏敎, 明什麽邊事?” 師竪起拳云, “會麽?” 李云,“ 不會.” 師云,“ 空讀萬卷書, 拳頭也不識.” 1) 李渤(?~831). 당(唐)나라 때 인물. 낙양(洛陽) 출신으로 자는 준지(濬之). 강서성 (江西省) 성자현(星子縣)의 여산오로봉(廬山五老峯) 아래 백록동(白鹿洞)에 은 거하다가 821년(長慶1) 강주자사(江州刺史)가 되었다. 2) 이발이 백록동에서 독서하며 은거한 것을 가리킨다. 백록동은 후대에 중국 4대 서원 중 으뜸인 ..

250칙 반산심월 盤山心月

250칙 반산심월 盤山心月1) 1) 반산보적(盤山寶積)이 제시한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진 경계’의 대척점에 동산 양개(洞山良价)가 ‘빛과 경계가 사라지지 않은 경계’를 제시하여 두 가지를 모두 열거나 차단함으로써 설정된 공안이다. 다른 주안점 하나는 ‘마음의 달’이라는 하나의 허언(虛言)을 조성하여 분별로 포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함정에 빠뜨리 는 것이다. [본칙] 반산이 대중에게 말했다. “홀로 둥근 마음의 달이 그 빛으로 만상을 머 금었다. 빛은 경계를 비추지 않고 경계 또한 남아 있지 않아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으니, 이것은 그 무엇일까?” 동산이 말했다. “빛과 경계가 아 직 사라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그 무엇일까?” 盤山, 示衆云, “心月孤圓, 光呑萬象. 光非照境, 境亦非存, 光境俱亡, 復是何..

207칙 남전참묘 南泉斬猫

207칙 남전참묘 南泉斬猫1) 1) 남전이 고양이를 두 토막 낸 것과 조주였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 는 말을 두고 살(殺)·활(活)을 나눈 것이 이 공안의 관건이다 [본칙] 남전이 어느 날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의 대중들이 고양이를 놓고 서로 자신들의 것이라고 다투는 것을 보고, 마침내 고양이를 집어 들고 말했다. “대중들이여, 제대로 말을 하면 이 놈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고,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면 베어서 죽이겠다.” 대중들이 아무 대꾸도 하 지 못하자〈법진수일(法眞守一)이 대중을 대신하여 말했다. “나라면 ‘도둑이 도둑의 물 건을 훔쳤구나’2)라 하고, 곧바로 따귀 한 대를 때려주었으리라.”〉 남전은 두 토막으 로 베어버렸다. 다시 이 일화를 들어 조주에게 묻자 조주는 짚신을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