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구법승의 기록/왕오천축국전 3

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 왕오천축국전 慧超 혜초 * 원문의 교감은 필사본을 위주로 하여 부분만 남은 글자를 복원하거나 의미상 추정하기도 하였고, 필사본에서 잘못 썼다고 생각되는 글자를 추정하기도 하였다. 한국불교전서의 대본은韓3 p.374b1~381a2. 교감 글자의 표시는 다음과 같다. [ ]:불완전한 글자를 복원한 글자나 필사하면서 잘못된 것을 알고 수정부호를 붙인 글자를 바로잡은 글자 ( ):의미상 빠진 글자를 추정하거나 잘못된 글자를 바르게 추정한 글자 ** 주석은 기존의 연구를 많이 참조하였다. 구와야마 쇼신(桑山正進)의 『혜초왕오천축국전연구(慧超往五天竺國傳硏究)』 (1992, 京都大學人文科學硏究所), 장이(張毅)의『왕오천축국전전석(往五天竺國傳箋釋)』(1994, 中華書局), 정수일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세계로 열린 길- 왕오천축국전 설명

1. 세계로 열린 길- 왕오천축국전 1) 돈황문서와 왕오천축국전의 발견 지금부터 1300년 전의 먼 옛날에 저 멀리 인도를 여행하고 여행기를 남 긴 신라인이 있다. 일찍이 세계화의 문을 열고 넓은 마음으로 문화를 받아 들인 그는 혜초(慧超)였다. 그가 남긴 여행기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 傳)』이다. 광대한 타클라마칸 사막지대의 오른쪽 끝이자 중국의 서쪽 변방에 오아 시스 도시 돈황(敦煌)이 있다. 돈황은 중국 문물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첫걸음이자 서양 문물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으로 비단길의 길목이 었다. 돈황의 명사산(鳴沙山) 막고굴(莫高窟)은 남북조시대부터 수당을 거 쳐 원대까지 불상과 불화로 가득찬 수많은 석굴(石窟)이 있어 흔히 천불동 (千佛洞)으로 불린다. 1900년 봄에 천불동을 관..

왕오천축국전 - 해제

왕오천축국전 1. 해제 1908년 3월에 프랑스의 동양학자이며 탐험가인 폴 펠리오(Paul Pelliot)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 천불동(千佛洞)에서 필사본(筆寫本)의 각종 경전(經典)을 비롯하여 고문서 •불화(佛畵) 등 값진 문화재 29상자를 꺼냈다. 그는 그것들을 프랑스로 가져가 곧 연구에 착수하여, 정리 조사하던 중 앞 뒤가 잘려진 두루마리로 된 필사본(筆寫本)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도 저자 이름도 없이 겨우 230줄에, 한 줄은 30자 내외, 총 6천 여 글자에 불과한 짤막한 글이었다. 그는 그 내용을 검토해 보고 인도방면을 여행한 구도승(求道僧)의 기행문임을 알았다. 그는 전부터 이용하던 당나라 스님 혜림(慧林)이 지은 제 100권 속에 있는 에 보이는 낱말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