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품
7-1. 밧디야(Bhaddiy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의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풋타 존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법에 관해서 난장이 밧디야 장로를 가르치고 각성케 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해주고 있었다. 그러자 사리풋타 존자가 법에 관한 이야기[法談]로 난장이 밧디야 장로를 가르치고 각성케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는 동안에, 그 밧디야 장로의 마음에 집착이 없어져 더러움(번뇌)에서 풀려나왔다.
2. 세존께서는 사리풋타 존자가 법에 관한 이야기로 난장이 밧디야 장로를 가르치고 각성케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는 동안에, 그 밧디야 장로의 마음에 집착이 없어져 더러움에서 풀려나는 것을 보셨다.
(註) Lakumtaka Bhaddiya. 난쟁이 밧디야는 사밧티의 부유한 거주민이었는데, 키가 매우 작고 얼굴이 추하고 보기 흉했다. 그는 세존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듣고 신심을 얻어 비구가 되었다. 그가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는 열매[예류과]를 성취하고 난 뒤, 사리풋타에게 다가가 자기가 더 높은 길을 얻도록 도움이 될 가르침을 청하였다.
3.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위, 아래 그리고 어디에서도 해탈하였으니
“내가 이렇다”라고 보지 않는 사람은
예전에 건넌 적이 없는 큰 물결(번뇌의 강)을 건너서
거듭 태어나지 않고 자유롭게 된다.
註) 내가 이렇다고 보지 않는 사람은 : 이것은 두 가지 모두 아라한에 의해 근절되어온 자만심과 잘못된 견해가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는 조건으로 이루어진 온갖 것들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며,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내 자신이 아니다”라는 통찰로 심사숙고하는 것을 암시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에 의해 아라한과를 성취하는 것이다.
7-2. 밧디야(Bhaddiya) (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의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풋타 존자가, 그가(밧디야 장로) 아직도 배우는 사람(유학)이라고 생각한 이래로 훨씬 더 열심히 다양한 방법을 써서 법에 관한 이야기로 난장이 밧디야 장로를 가르치고 각성케 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해주고 있었다.
註)사리풋타 존자가 법을 가르치고 있는 동안에 밧디야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성취하였다. 그러나 사리풋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따라서 밧디야가 아직도 배워야 할 사람[有學]이라고 생각하면서 가르침의 말을 계속하였다.
2. 세존께서는 사리풋타 존자가 그가(밧디야 장로) 아직도 배우는 사람(유학)이라고 생각한 이래로 훨씬 더 열심히 다양한 방법을 써서 법에 관한 이야기로 난장이 밧디야 장로를 가르치고 각성케 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해주고 기쁘게 하는 것을 보셨다.
3.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그는 번뇌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무욕의 경지를 얻었으니,
가뭄으로 말라버린 강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끊어져 버린 윤회의 고리는 다시 돌지 않는다. – 이것이 바로 고통의 끝이다.
註) 첫째 줄에 인용된 고리(vatta)는 때[煩惱] (kilesvatta)의 순환 고리이고, 그것이 끊어질 때에 업의 순환 고리도 끊어진다. 무욕의 경지(nirasa)는 닙바나이다. 흐름(sarita)은 갈애인데, 이것은 네 번째 길을 성취함으로서 완전히 말라버렸다. “끊어져버린 윤회의 고리는 다시 돌지 않네.”: 때[번뇌]의 [순환] 고리를 뿌리 뽑아버리면,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과보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업의 순환 고리가 방해를 받아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끝이네.”: 미래에 과보의 순환 고리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윤회라는 온갖 고통의 끝, 종식, 진정(鎭靜)이다.
7-3. 집착하는 사람(1)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밧티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감각적 쾌락에 과도하게 집착하였다. 그들은 감각적 쾌락을 몹시 갈망하고, 그것에 얽매이고, 그것에 정신이 빠져 있었으며, 그것을 탐닉하며 살아갔다.
2. 많은 비구들이 오전 중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하러 사밧티 시내로 들어갔다. 탁발을 하기 위해 사밧티 시내에서 걸어 돌아다니고 공양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이 세존께 다가와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떨어져 앉아 이와 같이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이곳 사밧티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감각적 쾌락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그들은 감각적 쾌락을 몹시 갈망하고, 그것에 얽매이고, 그것에 정신 빠져 있었으며, 그것을 탐닉하며 살아갑니다.”
3.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감각적 쾌락에, 감각적 속박에 집착하는 사람은
속박(번뇌) 속에 있는 허물을 하나도 보지 못한다.
속박에 얽매어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저 넓고 도도한 물결을 건널 수 없다.
7-4. 집착하는 사람 (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밧티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였다. 그들은 감각적 쾌락을 몹시 갈망하고, 그것에 얽매이고, 그것에 정신이 빠져 있었으며, 그것을 탐닉하며 살아갔다.
2. 세존께서 오전 중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서 탁발을 하러 사밧티 시내로 들어 가셨다. 세존께서는 사밧티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감각적 쾌락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을 보셨다.
3.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감각적 쾌락에 눈이 멀고 애욕의 그물에 빠져 버렸으며
갈애라는 가면에 덮여 있고 게으름이라는 속박에 얽매어 있어
마치 어부가 쳐놓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도 같으니,
어미 소에 매달려 젖을 빨고 있는 송아지처럼
그들은 늙음과 죽음으로 나아간다.
7-5. 밧디야(Bhaddiya) (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난장이 밧디야 존자가 많은 비구들의 뒤를 따라 세존께 다가가고 있었다.
2. 세존께서는 난장이 밧디야 존자가 추하고 보기 흉하며 기형에다가(곱추) 비구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수많은 비구들의 뒤를 따라 오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신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추하고 보기 흉하며 기형에다가 비구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수많은 비구들의 뒤를 따라 오고 있는 저 비구가 보이는기?”
“세존이시여, 예, 보입니다.”
“비구들이여, 저 비구는 위대한 신통력을 지닌 사람이다. 저 비구가 아직 성취하지 못한 그 어떤 성취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는 자기 자신이 직접 깨달은 지혜를 통해 지금·여기에서, 좋은 가문 출신 남자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성스러운 삶이라는, 다른 비구들과 도저히 같아질 수 없는 그 성스러운 목적을 증득하였으며, 그 경지 안에 들어가 거기에 머물고 있다.”
3.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하얀 차양으로 덮여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바퀴 살이 하나 뿐인 수레가 굴러간다.
근심에서 벗어나고 번뇌의 흐름이 끊기고
더 이상 속박도 하나 없는 그가 오는 모습을 보라.
註) “흠 잡을 곳 없는”은 “군침을 흘리고 아첨하는 것과 같은 흠이 없는”에서 유래되었다. 전체 게송이 밧디야의 깨달음 마음에 갖추어진 청정성과 아름다움을 추하게 보이는 그의 겉 모습과 교묘하게 대조를 시킨다. S.iv, 291에서는 재가자인 칫타가 아라한에 대한 묘사로 이런 수수께끼 같은 게송에 대해 설명을 한다. “흠 잡을 곳 하나 없음”은 도덕적 덕성[持戒]을 가리키고, “하얀 차양”은 해탈이나 아라한과의 열매를 의미하며, “바퀴 살이 하나뿐인”은 마음 챙김을 나타내고, “수레”는 몸이며, “흐름”은 갈애이고 “더 이상 속박이 없는 것”은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 아라한을 가리킨다.
7-6. 갈애의 멸진(滅盡)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콘단나 존자가 세존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갈애를 멸진하여 성취한 해탈의 경지를 관(觀)하고 있었다.
註) 콘단나는 붓다께서 최초 설법을 하셨던 다섯 수행자 중 하나였고 진리 법에 관해 통찰력을 증득한 최초의 제자였다.
2. 세존께서 콘단나 존자가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갈애를 멸진하여 성취한 해탈의 경지를 관하고 있는 모습을 보셨다.
3.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뿌리와 흙이 하나도 없고
잎도 하나 없는 사람에게 어찌 넝쿨이 있겠는가?
온갖 형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저 영웅과도 같은 성자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은 사람은 심지어 신들이 칭찬하고
브라흐마(범천) 또한 그를 찬양한다.
註) 둘째 줄(panna natthi kuto lata)을 “넝쿨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 잎이 있을까?”라는 뜻의 natthi lata kuto panna로 읽고 있다. 그것[Comy.]은 어리석음이 개인적인 생존이라는 나무의 뿌리이며 때[煩惱], 장애와 현명치 못한 고찰은, 그것들이 어리석음을 발생시키는 토대이기 때문에, “흙”으로 불린다고 설명한다. 아라한과라는 위없는 길[無上道]로 그것들을 근절하였기 때문에, 고귀한 개인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넝쿨” 다른 말로 해서 자만심과 거만함이 없으니, 그 뒤에 어찌 “잎들” 즉, 허영심, 게으름, 위선, 교활함 등등이 있을 수 있겠는가? Comy.는 또한, 싹이 움터서 자랄 때 잎이 먼저 나타나고 넝쿨은 뒤에 나온다고 설명하면서, 둘째 줄을 문면 그대로 읽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이렇게 읽을 경우, 업은 잎이고 여섯 가지 감관계(感官界) 등등은 넝쿨이다.
7-7. 증식·확산의 멸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증식·만연에서 생겨난 지각 작용과 개념들을 포기하신 데 대하여 관하면서 앉아 계셨다.
註) Papanca-sanna-sankha-pahana. 이것은 심오한 의미가 있는 매우 어려운 구절이며, 여러 그것이 나타나는 다양한 맥락에 따라 매우 다르게 번역되어 왔다. 장애물은 중요한 용어인 papanca였었는데, 이것은 심지어 고대의 주석가들도 정의하기 어렵게 여겼었다. 나는 여기서 자신의 저서 «개념과 본질․실체Concept and Reality»에서 그것을 “개념형성의 만연”으로 본 나나난다 비구의 해석을 따른다. 갈애, 자만심과 잘못된 견해를 통해 우리들은 감관을 통하여 그리고 마음에 의해 지각되는 것을 개념화하고, 본래는 유동적인 “살아 움직이는” 상황인 것을 고정된 라벨을 붙여 왜곡하고 있다. 보통 사람은 깨달음을 증득하게 되면 소멸될 궁극의 개념인 “나, 자아”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지각 내용을 재고 평가하며, 선택하고 거부한다. 붓다께서는 갈애 등등을 포기하시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개념화하지 않으신다. («법구경» 제 195와 254게송을 보라. 역자: 제 195, 196게송 - “세존이시든 그 분들의 제자들이든/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과/ 장애를 극복하고 슬픔과 비탄을 없애버린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람./ 그같이 평화롭고 두려움 없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그의 가치는 어느 누구든 헤아릴 수가 없네.” 제 254게송 - “하늘에 (새의) 발자취 없고,/ 바깥 세상에 성인은 없네./ 사람들이 장애물에 갇힌 채 기뻐하지만/ 세존께서는 온갖 장애에서 벗어나셨네.”)
2. 세존께서는 증식·만연(널리 퍼짐)에서 생겨난 지각 작용과 개념들을 포기하신 것을 아시고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밧줄 (속박)과 빗장(장애)을 극복해왔으며
증식·만연(자라고 널리 퍼짐)과 침체·부진이 전혀 없는 그 사람,
살아가면서 갈애가 없는 저 성자를 신들과 함께 하는 세상도 경멸하지 않는다.
註) thiti를 “만연에 의해 발생하는 윤회 속의 침체․부진”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윤회 속에서 사람을 지연시키는 요소들이다. 밧줄(saandana)을 갈애와 잘못된 견해로 동일하게 여기는데, 이것들은 속박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밧줄과 비슷한 것들이다. 빗장(paligha)은 어리석음인데, 이것은 닙바나라는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로막는 점에서 빗장과 닮았다.
7-8. 캇차나(Kaccan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마하캇차나 존자가 세존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자기 몸을 곧추 세우고서, 몸에 관한 마음 챙김을 자기 내부에 잘 확립하고 있었다.
註) 진리 법에 관해서 정교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에 뛰어났던 마하카찻나는 앞서 5.6경에 나오는 소나의 스승이였다.
2. 세존께서는 마하캇차나 존자가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자기 몸을 곧추 세우고서, 몸에 관한 마음 챙김을 자기 내부에 잘 확립하고 있는 것을 보셨다.
3.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과거에 없었다면, 현재 내게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내게도 없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항상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은
만약 그가 차차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것을 곰곰이 생각한다면
조만간 몸에 대한 집착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註) "과거에 없었다면, 현재 내게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내게도 없을 것이다.” 이 수수께끼 같이 불가해한 말씀은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부도덕한 행위들이 “없었다면”, 이번 생애에서 지금 그것이 익어서 열매가 되는 경험이 “내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아라한이 되면 그 어떤 부도덕한 행위들도 “없을 것”이므로, 따라서 미래에는 익어야 할 그 어떤 열매도 “없을 것이다.”
7-9. 우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말라족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 중에 투나라고 부르는 말라족의 바라문 마을에 들어 가셨다. 투나에 살고 있는 바라문 재가자들은 '사키야족에서 출가한 사키야족의 아들, 고타마 사문이 많은 비구들과 함께 말라족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 중에 투나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그들은 “머리를 깎은 비구들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게 하자”고 생각하면서 잡초와 쓰레기로 우물 언저리까지 메워 버렸다.
2. 세존께서는 큰 길에서 벗어나 어떤 나무 아래로 가시어 세존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곳에 앉으신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아난다여! 저 우물에 가서 물을 좀 가져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난자 존자가 세존께 “세존이시여, 지금 막 투나에 살고 있는 바라문 재가자들이 “머리를 깎은 비구들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게 하자”고 생각하면서 잡초와 쓰레기로 우물 언저리까지 메워 버렸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재차 “아난다여, 저 우물에 가서 물을 좀 가져 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재차 세존께 “세존이시여, 지금 막 투나에 살고 있는 바라문 재가자들이 "머리를 깎은 비구들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게 하자"고 생각하면서 잡초와 쓰레기로 우물 언저리까지 메워 버렸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세 번째로 “아난다여! 저 우물에 가서 물을 좀 가져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세존이시여,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드리고는 발우를 갖고서 우물로 갔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가 그곳에 다가가자 우물이 입구에서 잡초와 쓰레기들을 모두 뱉어내, 마치 흘러넘치는 것처럼 언저리까지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찼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생각했다.
'여래의 신통력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참으로 경탄할 만하구나. 내가 이 우물에 다가오자 입구에서 잡초와 쓰레기들을 모두 뱉어내고, 마치 흘러넘치는 것처럼 언저리까지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찼구나.라고.'
3. 그리고는 발우에 물을 담아 가지고 세존께 다가와 말씀 드렸다.
“여래의 신통력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참으로 경탄할만 하옵니다. 이 우물이 마치 흘러넘치는 것처럼 언저리까지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찼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을 드시옵소서. 행복한 분이시여, 물을 드시옵소서.”
4.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으셨다.
세상 어디에든지 모두 물이 있다면,
우물은 무엇에 사용할까?
갈애의 뿌리를 끊어버렸으니
무엇을 찾으러 돌아 다녀야 할까?
7-10. 우데나(Uden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코삼비 근처 고시타의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우데나 왕의 궁전에 있는 여인들의 숙소가 불에 타 무너졌고 사마바티가 이끌던 여자들 500명이 숨졌다.
註) 우데나 왕의 후궁 중 하나인 사마바티는 자애심(metta)이 탁월했던 세존의 여자 재가 신자였다. Comy.에 따르면, 화재는 왕의 또 다른 후궁인 마간디야가 고의로 일으킨 것이었다. 이 여자는 세존을 증오했고 사마바티가 세존께 헌신적이었기 때문에 사마바티 또한 증오했다. 전체 이야기는 «불교 설화Buddhist Legends»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많은 비구들이 오전 중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서 탁발을 하러 코삼비 시내로 들어갔다. 탁발을 하기 위해 코삼비 시내를 걸어 다니고 공양을 마치고 난 뒤에 돌아온 그들은 세존께 다가와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떨어져 앉아 세존께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우데나 왕의 궁전에 있는 여인들의 숙소가 불이 타 무너져서 사마바티가 이끌던 여자들 500명이 숨졌습니다. 저들 여자 재가 신자들(우바이, 청신녀)의 운명은 어떻겠습니까, 내생은 어떻겠습니까?”
“비구들이여, 이들 여자 재가 신자들 중 일부는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사람들(예류.豫流)’이었고, 몇몇은 ‘한 번만 돌아올 사람들(일래.[一來)’이었으며, 일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불환.不還)’이었다. 저들 여자 재가 신자들 중 어느 누구의 죽음도 열매[果]가 없는 것은 없다.”
3.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 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었다.
세상은 망상으로 해서 속박 되어 있으면서도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집착으로 해서 속박되어 있고
어두움 속에 갇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그것[세상]이 영원한 것이라고 보이지만
실상을 제대로 보는 현명한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소품이 끝났다.
'우다나(Udana. 자설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다나(Udana) - 8. 파리닙바나(Parinibbana) (0) | 2014.05.30 |
---|---|
우다나(Udana) - 6. 생명력을 포기하심 (0) | 2014.05.30 |
우다나(Udana) - 5. 소나 품(Sona vagga. 5:1-5:10) (0) | 2014.05.29 |
우다나(Udana) - 4. 메기야의 품[Meghiyavagga. 4:1-4:10] (0) | 2014.05.29 |
우다나(Udana) - 3. 난다의 품[Nandavagga. 3:1-3:10] (0) | 2014.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