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주제(S36) 느낌 상윳따 Vedanā-saṁyutta
제1장 게송과 함께 품
Sagātha-vagga
삼매 경(S36:1)
Samād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느낌이다.”
3. “삼매에 들어 분명히 알고
마음 챙기는 세존의 제자는
느낌들을 알고 느낌들의 일어남을 알며
어디서 이들이 소멸하는지를 알며
그리고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안다.
느낌의 멸진에 도달했을 때 비구는
갈증이 풀려 완전한 평화를 얻는다. ”
행복 경(S36:2)
Suk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느낌이 있다.”
3.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마저도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그 어떤 느낌에 접하든 간에
그 모두를 괴로움으로 아나니
거짓되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
그것들이 부딪히고 또 부딪혀왔다가
사라져 가는 현상을 지켜봄으로써
거기서 탐욕이 사라진다.
버림 경(S36:3)
Pah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느낌이 있다.”
3. “비구들이여, 즐거움을 느낄 때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려야 한다. 괴로움을 느낄 때 적의의 잠재성향을 버려야 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경우에는 무명의 잠재성향(번뇌)을 버려야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즐거움을 느낄 때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리고, 괴로움을 느낄 때 적의의 잠재성향을 버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경우에는 무명의 잠재성향을 버리면, 이를 두고 ‘비구의 잠재성향은 제거되었다. 그는 올바로 보는 사람이다. 그는 갈애를 잘라버렸다. 족쇄를 풀어버렸다. 자만을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어버렸다.’라고 한다.”
4.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느낌을 철저히 알지 못한다면
그는 탐욕에 마음이 쏠려 해탈을 얻지 못한다.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느낌을 철저히 알지 못한다면
그는 적의에 마음이 쏠려 해탈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광대한 지혜를 가진 자, 그것을 평화롭다 가르치지만
그것 또한 맛들에 매달린다면
결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비구가 열의를 가지고
분명히 알아차리는 닦음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
그 현자는 모든 느낌을 철저하게 알게된다.
그 지혜의 달인은 느낌을 철저하게 알아
바로 이생에서 번뇌가 멸진할 것이며
몸이 무너질 때엔 법의 길에 확고하리니
어떤 헤아림으로도 그를 가늠할 길이 없다.”
바닥없는 구렁텅이 경(S36:4)
Pātā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가 ‘큰 바다 속에 바닥 없는 구멍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실제로 있지도 않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바닥없는 구멍은 차라리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해야 옳다.
3.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겪게 되면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그 사람을 일러 바닥없는 구멍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그 속에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겪게 되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도 않는다. 그를 일러 그 바닥없는 구멍을 감내하며 그 속에서 발 디딜 곳을 찾아내는, 참으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라 부른다.”
4.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이 목숨을 앗아갈 듯 일어나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 그는 괴로움을 당하면 당황하여 몸둘 바를 모른다.
그는 울부짖고 큰소리로 통곡한다. 허약하고 무력한 사람,
그는 그 구멍에 맞서지 못하며 발판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데도 떨지 않고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견뎌내는 사람,
그는 진실로 그 구멍을 버티어 낼 뿐만 아니라
그 깊은 곳에서도 능히 안전한 발판을 확보한다.”
보아야 함 경(S36:5)
Daṭṭhabb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3. “비구들이여, 즐거운 느낌들을 괴로움으로 보아야 하며, 괴로운 느낌들을 가시로 보아야 하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을 무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비구가 즐거운 느낌들을 괴로움으로 보고, 괴로운 느낌들을 가시로 보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을 무상한 것으로 볼 때 그를 일러 올바로 보는 사람이라 한다. 그는 갈애를 잘라버렸고 족쇄를 풀어버렸으며 자만을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 버렸다.”
4. “행복에서 괴로움을 읽어내며
괴로운 느낌을 화살처럼 여기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저 평화로운 느낌에서 무상을 인식하는
그 비구야말로 바르게 보는 자이니
이런 자가 바로 느낌을 철저하게 안다.
그 지혜의 달인은 느낌을 철저하게 알아
바로 이 생에서 번뇌가 멸진할 것이며
몸이 무너질 때엔 법의 길에 확고하니
어떤 헤아림으로도 그를 가늠할 길이 없다.”
화살 경(S36:6)
Sal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도 즐거운 느낌을 느끼며, 괴로운 느낌을 느끼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도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 그러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사이에는 어떤 구별이 있으며 어떤 다른 점이 있으며,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호지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을 받들었다.
3.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인 괴로움을 겪게 되면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결국 그는 이중으로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다. 즉 육체적 느낌과 정신적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고 연이어 두 번째 화살에 또다시 맞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은 두 화살 때문에 오는 괴로움을 모두 다 경험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을 때,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그래서 이중으로 느낌을 겪는다. 즉 육체적 느낌과 정신적 느낌이다.
4.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게 되면, 그는 그것에 적의를 품는다. 그처럼 괴로운 느낌에 적의를 품는 그에게는 그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번뇌)이 자리 잡게 된다. 그가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이제 그는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말고는 그 괴로운 느낌으로부터 벗어나는 다른 출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게 된다. 그는 그러한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처럼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게 된다.
그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괴로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을 일러 배우지 못한 범부라고 하나니,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에 매여 있으며 그는 괴로움에 매여 있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가지 느낌, 즉 육체적 느낌만을 경험할 뿐이며 결코 정신적 느낌은 겪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았지만 그 첫 번째 화살에 연이은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하나의 화살로 인한 괴로움만을 겪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결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가지 느낌, 즉 육체적인 느낌만을 경험할 뿐이다.”
괴로운 느낌에 접하더라도 그는 그것에 적의를 품지 않는다. 그처럼 괴로운 느낌에 적의를 품지 않으면 그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그가 괴로운 느낌에 닿더라도 그는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말고 그 괴로운 느낌으로부터 벗어나는 다른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그는 그러한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처럼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아는 사람에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그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괴로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을 일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라고 하나니,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에 매이지 않으며 그는 괴로움에 매어 있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간의 차이점이고, 특별한 점이고, 다른 점이다.”
6. “지혜 있는 이, 많이 배운 이,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이나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 겪지 않나니,
현자와 범부 간에 능숙함의 차이가 이렇듯 크다.
법을 터득한 이, 많이 들은 이,
이 세상과 피안의 세계를 올바로 보는 이,
기꺼운 법에 그 마음 설레지 않고
원하지 않은 것에 적의를 가지지 않는다.
올바르고 올바르지 않은 것이 모두 흩어지고 꺼져서
이미 존재하지 않나니
때 없고 근심 없는 길을 알아 올바로 철저히 아는 자
존재의 피안에 도달했다고 이른다.”
간병실 경1(S36:7)
Gelaññ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홀로 앉음을 풀고 일어나서 간병실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마음 챙기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 챙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분명히 알아차리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불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을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들 때도 잠에서 깰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4.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마음 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방일하지 않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정진하는 중에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면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안다.
‘지금 나에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났다. 이것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緣而生]이며,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에 의해 조건 지워졌는가? 바로 이 몸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그런데 이 몸은 참으로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緣而生]이다. 이렇듯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몸에 조건 지워진 이 즐거운 느낌이 어찌 항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몸에 대해 그리고 즐거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어버림을 관찰하며 머무른다. 그가 몸에 대해 그리고 즐거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물면 몸에 대한 그리고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마음 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방일하지 않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정진하는 중에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안다.
‘지금 나에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다. 이것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며,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에 의해 조건 지워졌는가? 바로 이 몸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그런데 이 몸은 참으로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듯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몸에 조건 지워진 이 괴로운 느낌이 어찌 항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무른다. 그가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물면 몸에 대한 그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마음 챙겨, 분명히 알아차리며, 방일하지 않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정진하는 중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나면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안다.
‘지금 나에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났다. 이것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며,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에 의해 조건 지워졌는가? 바로 이 몸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그런데 이 몸은 참으로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듯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몸에 조건 지워진 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어찌 항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무른다. 그가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물면 몸에 대한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5. “만일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철저히 안다. 그것이 집착할만 것이 못되는 줄 철저히 안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철저히 안다. 만일 그가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철저히 안다. 그것이 집착할만 것이 못되는 줄 철저히 안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철저히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경우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철저히 안다. 그것이 집착할만 것이 못되는 줄 철저히 안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철저히 안다.
만일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느낀다. 만일 그가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매인다. 만일 그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느낀다.
그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나는 지금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안다.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나는 지금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곧 이 몸 무너져 목숨이 끊어지면,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도 바로 여기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기름을 조건하여 심지를 조건하여 기름 등불이 타는데 기름과 심지가 다하면 불꽃은 받쳐주는 것이 없어져 꺼지고 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비구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지금 나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안다.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나는 지금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곧 이 몸 무너져 목숨이 끊어지면,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도 바로 여기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철저히 안다.”
간병실 경2(S36: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홀로 앉음을 풀고 일어나서 간병실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마음 챙기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분명히 알아차리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불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을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들 때도 잠에서 깰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4.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마음 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중에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면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지금 나에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났다. 이것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며,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에 의해 조건 지워졌는가? 바로 이 감각접촉[觸]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그런데 이 감각접촉은 참으로 무상하고 형성되었고[有爲]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緣而生]이다. 이렇듯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감각접촉에 조건 지워진 이 즐거운 느낌이 어찌 항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감각접촉에 대해 그리고 즐거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그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무른다. 그가 감각접촉에 대해 그리고 즐거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그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물면 감각접촉에 대한 그리고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7.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마음 챙겨, 분명히 알아차리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중에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지금 나에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다. 이것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며,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에 의해 조건 지워졌는가? 바로 이 몸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그런데 이 몸은 참으로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듯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몸에 조건 지워진 이 괴로운 느낌이 어찌 항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그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무른다. 그가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그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물면 몸에 대한 그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마음 챙겨 분명히 알아차리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중에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나면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지금 나에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났다. 이것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며,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에 의해 조건 지워졌는가? 바로 이 몸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그런데 이 몸은 참으로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듯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몸에 조건 지워진 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어찌 항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그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무른다. 그가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그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물면 몸에 대한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8. “만일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꿰뚫어 안다. 그것이 연연할 것이 못되는 줄 꿰뚫어 안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꿰뚫어 안다. 만일 그가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꿰뚫어 안다. 그것이 연연할 것이 못되는 줄 꿰뚫어 안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꿰뚫어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경우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꿰뚫어 안다. 그것이 연연할 것이 못되는 줄 꿰뚫어 안다. 그것이 즐길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꿰뚫어 안다.”
9. “만일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느낀다. 만일 그가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느낀다. 만일 그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느낀다.”
10. “그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나는 지금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꿰뚫어 안다.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나는 지금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곧 이 몸 무너져 목숨이 끊어지면,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도 바로 여기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기름을 조건하고 심지를 조건하여 기름 등불이 타는데 기름과 심지가 다하면 불꽃은 받쳐주는 것이 없어져 꺼지고 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비구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지금 나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꿰뚫어 안다.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나는 지금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곧 이 몸 무너져 목숨이 끊어지면,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도 바로 여기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무상 경(S36:9)
Anicc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有爲],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緣而生]이고 견고하지 않은 법을 지닌 것이고, 달라지는 법을 지닌 것이고, 영원하지 않은 법을 지닌 것이고, 항상하지 않은 법을 지닌 것이고, 탐욕이 소멸하는 법을 지닌 것이다.”
3. “어떤 것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느낌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有爲],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緣而生]이고 견고하지 않은 법을 지닌 것이고, 달라지는 법을 지닌 것이고, 영원하지 않은 법을 지닌 것이고, 항상하지 않은 법을 지닌 것이고, 탐욕이 소멸하는 법을 지닌 것이다.”
감각접촉에 뿌리박음 경(S36:10)
Phassamūla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3.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은 감각접촉에서 생긴 것이며, 감각접촉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감각접촉을 원인으로 하며, 감각접촉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어떤 것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3. “비구들이여, 즐겁게 느껴지기 마련인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즐거운 느낌이 일어난다. 즐겁게 느껴지기 마련인 감각접촉이 소멸하며,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느낌 – 다시 말해 그 감각접촉에 의존해 일어난 그 즐거운 느낌 – 역시 소멸하고 가라앉는다.
괴롭게 느껴지기 마련인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괴로운 느낌이 일어난다.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기 마련인 그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느낌 – 다시 말해 그 감각접촉에 의존해 일어난 그 괴로운 느낌 – 역시 소멸하고 가라앉는다.
비구들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게 느껴지기 마련인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게 느껴지기 마련인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느낌 – 다시 말해 그 감각접촉에 의존해 일어난 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 역시 소멸하고 가라앉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두 개의 나무토막을 맞대어 비비고 마찰하면 열이 생기고 불이 붙지만 이러한 두 개의 나무토막을 따로 떼어서 놓아두면 거기서 생긴 열도 꺼지고 가라앉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이들 감각접촉에서 생겼고 감각접촉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감각접촉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접촉에 의해 조건 지워진 세 가지 느낌도 꼭 그러하나니, 어느 한 가지 감각접촉에 조건하여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일어나며, 그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그에 상응하는 느낌은 가라앉는다.”
제1장 게송과 함께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