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율장

[스크랩] 재가자는 승려의 범계와 무관한가

실론섬 2014. 8. 19. 18:25

 

재가자는 승려의 범계와 무관한가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승려의 범계(犯戒) 행위가 뭇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고로 존경받아야 할 승려가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조계종 고위층 승려들의 범계가 세상에 알려져 조롱거리가 되었다. 범계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러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한국불교와 승려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계율은 제정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 반영되었다. 다시 말해서 계율은 당시 사회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붓다시대의 인도에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집을 버리고 출가한 유행자(遊行者)들은 모두 사의법(四依法)에 의존하여 생활했다. 이른바 걸식 · 분소의 · 수하좌 · 진기약 등은 출가자의 상징이었다. 붓다 재세시 불교의 승려를 포함하여 외도의 출가자들도 모두 사의법에 의존해 생활했다.

 

그러나 불교승가의 출가자 중에는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간혹 출가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위를 저질러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한 비난은 곧바로 전체 승가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계율을 지키지 않는 불교승가에 대한 공양 거부로 나타난다. 그래서 붓다는 승려 개개인의 행동이 곧 승가 전체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승려의 일탈(逸脫)을 방지하기 위해 계율을 제정하게 되었다.

 

계율은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적용의 잣대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상좌불교 국가에서는 승려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용인되지 않는다. 그 사회에서는 아직도 수행자라면 맨발로 탁발하는 승려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승려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대승불교 국가에서는 승려가 차량을 소유하고 운전하는 것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승려가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모름지기 출가자라면 세속인보다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교의 계율은 그 사회의 전통과 관습에 따라 용인되기도 하고 용인되지 않기도 한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승려의 도박, 폭력, 성매매 등은 사회에서도 무거운 범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용인되지 않는다. 이러한 범죄 행위에 승려가 연루되었다는 것은 이미 출가자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가자가 출가자를 존경하는 것은 자신들이 지키지 못하는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가자가 재가자보다 더 못된 행위를 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실 출가자의 일탈에는 언제나 재가자가 관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도박장을 마련하거나 룸살롱을 주선하는 것도 환속한 자이거나 재가자들이다. 특히 승려 주변에서 온갖 이권에 관여하는 브로커들도 재가자들이다. 이들은 승려의 타락을 부추기거나 함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승려의 공양물, 즉 삼보정재를 빼앗아 간다.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승려에게 접근하여 파계하도록 유혹하는 꽃뱀들도 많이 늘어났다. 독신 승려의 주적은 여자의 유혹이다.

 

상좌불교 국가나 대만에서는 한국불교에 비해 승려가 계율을 어기기 쉽지 않다. 만일 승려가 계율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려고 하면 재가자들이 사전에 차단해 버린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승려가 파계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상좌불교 국가에서 비구가 비행을 저지르면 곧바로 경찰에 연락하여 체포해 간다. 경찰은 그 당사자를 승가에 인계하거나 경중에 따라 즉각 환속시킨다. 대만에서는 승려가 채식 전문 식당이 아니면 출입할 수조차 없다. 하물며 승려가 술집이나 유흥장에 출입하는 것이 허용되겠는가.

 

특히 상좌불교 국가에서는 승려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신심 돈독한 재가자들이 출가한 승려가 이러면 안 된다고 타일러 보낸다. 그리고 그 못난 비구에게 존경의 예를 표한다. 그러면 그 승려는 부끄러워서 스스로 참회하고 올바른 수행자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재가자들이 훌륭한 수행자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훌륭한 재가자에 의해 훌륭한 출가자가 배출되는 것이다.

 

한편 재가자들은 출가자가 수행과 교화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외호함과 아울러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뒷받침을 해준다. 그리고 열심히 수행 정진하는 승려에게는 최상의 공경의 예를 표한다. 반면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승려에게는 애정 어린 질책으로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를테면 승려에게는 술이나 담배 등을 팔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승려의 일탈을 사전에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팔지 않는 것과 같다.

 

상좌불교의 전통에서는 지금도 승려 곁에 정인(淨人)을 두고 있다. 승려는 금이나 은 및 화폐를 소지할 수가 없다. 정인이 승려를 대신해 돈을 지불하기도 하고, 승려가 사소한 계라도 범하지 않도록 곁에서 보좌한다. 그래서 승려 곁에는 언제나 정인이 따라 다니며 승려를 시봉한다. 또한 정인은 승려의 파계를 막는 호법신장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한국불교가 이처럼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된 데에는 재가자들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재적사의 승려가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재가자의 몫이다. 재가자들이 승려들이 일탈할 수 없도록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면, 한국불교가 이처럼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교는 출가자인 비구 · 비구니의 전유물이 아니다. 불교교단은 사부대중, 즉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로 구성되어 있다. 출가자인 비구 · 비구니의 잘못된 행위로 불교의 위상이 추락한다면, 재가자인 우바새 · 우바이가 나서서 불교의 위상을 되살려야만 한다.

 

특히 불교계의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재가자들도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 재가 신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재가자는 승려의 범계와 무관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 《B&I》제2호, 2013년 10월 1일, 6면 ―

 

출처 : 팔리문헌연구소

글쓴이 : 마성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