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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 모음 - 21. 업에서 생긴 몸 품(Karajakāya-vagga. AN10.211-220)

실론섬 2014. 9. 11. 22:44

제21장 업에서 생긴 몸 품 Karajakāya-vagga (AN 10.211-220)

 

paṭhamanirayasaggasuttaṃ (AN 10.211-지옥과 천상 경1)

211. “비구들이여, 열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어떤 열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자이다.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해침과 폭력을 휘두르는데 몰두하며,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이 없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다. 마을에 있거나 숲에 있는 주어지지 않은 남의 재산과 재물을 도둑처럼 가진다.

 

그는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다. 어머니에 의해 보호되고, 아버지에 의해 보호되고, 형제에 의해 보호되고, 자매에 의해 보호되고, 친지들에 의해 보호되고, 법에 의해 보호되고, 남편이 있고, 심지어 혼약의 정표로 화환을 두른 여인들에 대해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거짓을 말하는 자이다. 의회에 가거나 모임에 가거나 친척 가운데 가거나 조합 가운데 가거나 왕족 가운데 가거나 의무를 가지고 질문을 받는다. ‘여보시오, 그대가 아는 것을 말 하시오’라고. 그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압니다.’라고. 아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봅니다.’라고. 보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남의 목적을 위해서나 어떤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고의로 거짓을 말한다.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다. 여기서 듣고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한다. 저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한다. 이처럼 화합하는 자들을 이간시키고 이간을 조장한다. 불화를 기뻐하고, 불화를 꾀하고, 불화를 즐기며, 불화를 만드는 말을 말한다.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자이다. 거칠고, 험하고, 남을 언짢게 하고, 남을 모욕하고, 주변 사람들에 분노하고, 삼매로 이끌지 않는 그런 말을 말한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이다. 부적절한 시기에 말하는 자이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자이고, 이익되지 않게 말하는 자이고, 법에 맞지 않게 말하는 자이고, 율에 맞지 않게 말하는 자이다. 부적절한 시기에 이치에 맞지 않고(근거 없고), 무절제하고, 이익되지 않는 말을 말한다.

 

그는 간탐하는 자이다. ‘오, 저 사람의 것이 내 것이 되기를!’이라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간탐(慳貪) 한다.

 

그는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 ‘이 중생들이 죽어버리길, 파멸되기를, 멸망해버리길, 없어져버리길!’이라고 거친 마음의 사유를 한다.

 

그는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공양이란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들어 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비구들이여, 열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어떤 열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리고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을 갖고 머문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마을에 있거나 숲에 있는 남의 재산과 재물을 도둑처럼 가지지 않는다.

 

그는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버리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어머니에 의해 보호되고, 아버지에 의해 보호되고, 형제에 의해 보호되고, 자매에 의해 보호되고, 친척에 의해 보호되고, 가문에 의해 보호되고, 법에 의해 보호되고, 남편이 있고, 혼약의 정표로 화한을 두른 그러한 여인들에 대해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리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법정에서나 회의에서나 친척들 사이에서나 조합원들 사이에서나 왕 앞의 증인으로 출두하여 질문을 받는다, ‘여보시오,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해주시오.’라고. 그러면 그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아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압니다.’라고.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보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봅니다.’라고. 이와 같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나 남의 목적을 위해서나 세속의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고의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리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분열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꾀하고, 화합을 즐기고, 화합하게 하는 말을 말한다.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유순하고(침이 튀지 않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 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말한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적절한 시기에 말하는 자이고, 사실을 말하는 자이고, 이익되게 말하는 자이고, 법에 맞게 말하는 자이고, 율에 맞게 말하는 자이다. 적절한 시기에, 이치에 맞는(근거를 갖춘), 절제된, 이익되는 말을 말한다.

 

그는 간탐하지 않는 자이다. ‘오, 저 사람 것이 내 것이 되기를!’이라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간탐하지 않는다.

 

그는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다. ‘이 중생들이 원망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그들 스스로 행복하게 지내기를!’라고 거칠지 않은 마음의 사유를 한다.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보시란 있다. 제물이 있다. 공양이란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dutiyanirayasaggasuttaṃ (AN 10.212-지옥과 천상 경2))

지옥과 천상 경1(AN10.211) 과 동일함.

 

mātugāmasuttaṃ (AN 10.213-여인 경)
213. “비구들이여, 열 가지 법을 갖춘 여인은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어떤 열 가지인가?

생명을 해치는 자이다. ···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이다. ···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다. ··· 거짓을 말하는 자이다. ···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다. ··· 거친 말을 하는 자이다. ···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이다. ··· 간탐하는 자이다. ···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 ···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춘 여인은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비구들이여, 열 가지 법을 갖춘 여인은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어떤 열 가지인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간탐하지 않는 자이다. ···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다. ···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춘 여인은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upāsikāsuttaṃ (AN 10.214-청신녀 경)
214. “비구들이여, 열 가지 법을 갖춘 청신녀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어떤 열 가지인가?

생명을 해치는 자이다. ···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춘 청신녀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비구들이여, 열 가지 법을 갖춘 청신녀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어떤 열 가지인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춘 청신녀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visāradasuttaṃ (AN 10.215-침착함(평온함) 경)
215. “비구들이여, 열 가지 법을 갖추고 재가에 머무는 청신녀는 평온하지 못하다. 어떤 열 가지인가?

생명을 해치는 자이다. ···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이다. ···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다. ··· 거짓을 말하는 자이다. ···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다. ··· 거친 말을 하는 자이다. ···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이다. ··· 간탐하는 자이다. ···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 ···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추고 재가에 머무는 청신녀는 평온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열 가지 법을 갖추고 재가에 머무는 청신녀는 평온하다. 어떤 열 가지인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간탐하지 않는 자이다. ···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다. ···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 

비구들이여,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추고 재가에 머무는 청신녀는 평온하다."

 

saṃsappanīyasuttaṃ (AN 10.216-어긋남의 경)

216. “비구들이여, 이제 어긋남(비뚤어짐)의 길(행로)에 대한 법문을 설하겠다.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서 '어긋남의 길에 대한 법문(samsappaniya)'이란 어긋남의 원인에 관한 가르침이라 불리는 법의 가르침을 말한다.(AA.v.75)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어긋남의 길에 대한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업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업이 근원이고), 업이 그들의 권속이고, 업의 그들의 의지처이다(업의 도움을 받는다). 선한 업이든 나쁜 업이든 어떤 업을 지으면 그들은 그 업의 상속자가 된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자이다.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죽이고 폭력을 휘두르는데 몰두하며,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에게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이 없다. 그는 몸으로 어긋나고(비뚤어지고), 말로 어긋나고, 마음으로 어긋난다. 그는 어긋난 몸의 업, 어긋난 말의 업, 어긋난 마음의 업을 짓는다. 그에게 어긋난 태어날 곳[行處]이 있고, 어긋난 태어남이 있다.

 

*'어긋난다(비뚤어진다)'는 것은 그 업을 행할 때 그는 기어 다니게 되고(asappati), 천천히 기게 되고(parisappati), 꿈틀꿈틀 기어간다(vipphandati)는 듯이다. '어긋난 태어날 곳'이라는 것은 그 업으로 그가 갈 곳도 어긋나고, '어긋난 태어남'이라는 것은 어떤 곳에 태어날 때에도 어긋난다는 뜻이다.(AA.v.75-76)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십불선업도를 행하는 것을 바르게 걷지 못하고 옆으로 기어 다니는 것에 견주어서 말씀하고 계신다. 이처럼 기어 다니는 것과 같은 십불선업을 지은 사람은 직립 보행을 못하고 옆으로 기어 다니는 존재, 즉 축생계에 태어나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비구들이여, 어긋난 곳으로 가고, 어긋난 곳에 태어나는 자에겐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오직 괴로움뿐인 지옥이거나, 기어 다니는 축생의 모태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기어 다니는 축생의 모태인가? 뱀, 전갈, 지네, 몽구스, 고양이, 쥐, 올빼미, 그리고 사람을 보고 기어서 도망가는 모든 축생들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존재로부터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난다. 태어난 그곳에서 감각접촉(촉.觸)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그들 각자의 '업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한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주지 않은 것을 가진다. ··· 음행(淫行)에 대해 삿되게 행한다. ··· 거짓을 말한다. ··· 이간질 하는 말을 한다. ··· 거친 말을 한다. ··· 꾸며대는 말을 한다. ··· 간탐한다. ··· 성냄의 마음을 가진다. ··· 삿된 견해를 가진다.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공양이란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들어 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전도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그는 몸으로 어긋나고, 말로 어긋나고, 마음으로 어긋난다. 그는 어긋난 몸의 업, 어긋난 말의 업, 어긋난 마음의 업을 짓는다. 그에게 어긋난 태어날 곳이 있고, 어긋난 태어남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긋난 곳으로 가고, 어긋난 곳에 태어나는 자에겐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오직 괴로움뿐인 지옥이거나, 기어 다니는 축생의 모태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기어 다니는 축생의 모태인가? 뱀, 전갈, 지네, 몽구스, 고양이, 쥐, 올빼미, 그리고 사람을 보고 기어서 도망가는 모든 축생들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존재로부터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난다. 태어난 그곳에서 감각접촉(촉.觸)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그들 각자의 '업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업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들의 친척이고, 업의 그들의 의지처이다. 선한 업이든 나쁜 업이든 어떤 업을 지으면 그들은 그 업의 상속자가 된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리고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에 대해서 자비하고 관대한 마음을 갖고 머문다. 그는 몸으로 어긋나지 않고, 말로 어긋나지 않고, 마음으로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어긋남이 없는 몸의 업, 어긋남이 없는 말의 업, 어긋남이 없는 마음의 업을 짓는다. 그에게 어긋남이 없는 갈곳이 있고, 어긋남이 없는 태어남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긋남이 없는 곳으로 가고, 어긋남이 없는 곳에 태어나는 자에겐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오직 행복뿐인 천상이거나,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소유한 것이 많고, 금.은이 풍부하고, 토지와 도구가 풍부하고, 재산과 곡식이 풍부한, 끄샤뜨리야 가문이나 바라문 가문이나 장자의 가문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존재로부터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난다. 태어난 그곳에서 감각접촉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그들 각자의 '업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한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 간탐하지 않는 자이다. ···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다. ···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보시란 있다. 제물이 있다. 공양이란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그는 몸으로 어긋나지 않고, 말로 어긋나지 않고, 마음으로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어긋남이 없는 몸의 업, 어긋남이 없는 말의 업, 어긋남이 없는 마음의 업을 짓는다. 그에게 어긋남이 없는 갈곳이 있고, 어긋남이 없는 태어남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긋남이 없는 곳으로 가고, 어긋남이 없는 곳에 태어나는 자에겐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오직 행복뿐인 천상이거나,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소유한 것이 많고, 금.은이 풍부하고, 토지와 도구가 풍부하고, 재산과 곡식이 풍부한, 끄샤뜨리야 가문이나 바라문 가문이나 장자의 가문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존재로부터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난다. 태어난 그곳에서 감각접촉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그들 각자의 '업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업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들의 권속이고, 업의 그들의 의지처이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어떤 업을 지으면 그들은 그 업의 상속자가 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어긋남의 길에 대한 법문이다.”

 

paṭhamasañcetanikasuttaṃ (AN 10.217-의도에 속함 경1)
217.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다음 생에 일어나거나 간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소멸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여기서,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과.果),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보.報), 몸으로 행한 세 가지 해로움이 있다.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말로 행한 네 가지 해로움이 있다.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마음으로 행한 세 가지 해로움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의 잘못된 몸의 업의 해로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생명을 해치는 자이다. 그는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해침과 폭력을 휘두르는데 몰두하며,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이 없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다. 그는 마을에서나 숲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남의 재산과 재물을 도적질로써 가진다.
그는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다. 어머니에 의해 보호되고, 아버지에 의해 보호되고, 형제에 의해 보호되고, 자매에 의해 보호되고, 친지들에 의해 보호되고, 법에 의해 보호되고, 남편이 있고, 심지어 혼약의 정표로 화환을 두른 여인들에 대해 성행위를 저지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의 잘못된 몸의 업의 해로움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의 잘못된 말의 업의 해로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거짓을 말하는 자이다. 그는 법정에서나 회의에서나 친척들 사이에서나 조합원들 사이에서나 왕 앞에서 증인으로 출두하여 질문을 받는다, ‘오시오, 선남자여.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해주시오.’라고. 그러면 나는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압니다.’라고 말하고, 알면서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한다. 보지 못하면서 ‘나는 봅니다.’라고 말하고, 보면서 ‘나는 보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나의 목적을 위해서나 어떤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고의로 거짓말을 한다.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다. 그는 여기서 듣고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한다. 저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한다. 이처럼 화합하는 자들을 이간시키고 이간을 조장한다. 그는 불화를 기뻐하고, 불화를 즐기며, 불화를 만드는 말을 한다.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자이다. 그는 거칠고, 험하고, 남을 언짢게 하고, 남을 모욕하고, 분노에 휩싸이고, 삼매로 이끌지 못하는 그런 말을 한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이다. 그는 부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무익한 것을 말하고, 법에 어긋나는 것을 말하고, 율에 저촉되는 말을 하고,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없는 말을 한다. 그는 이치에 맞지 않고, 무절제하며, 유익하지 못한 말을 부적절한 시기에 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 잘못된 말의 업의 해로움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잘못된 마음의 업의 해로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간탐하는 자이다. 그는 ‘오, 저 사람 것이 내 것이 되기를!.’이라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간탐한다.
그는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 그는 ‘이 중생들이 죽어버리길, 파멸되기를, 멸망해버리길, 없어져버리길.’라고 성냄의 마음을 가진다.
그는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공양이란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들어 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움을 경험하는, 세 가지 잘못된 마음의 업의 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잘못된 몸의 업의 해로움으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 잘못된 말의 업의 해로움으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잘못된 마음의 업의 해로움으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모든 면이 균형 잡힌 주사위를 위로 던지면 그것이 어디에 떨어지든지 반듯하게 떨어진다. 그와 같이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잘못된 몸의 업의 해로움으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 잘못된 말의 업의 해로움으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의도에 속한, 괴로움을 낳고, 괴로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잘못된 마음의 업의 해로움으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다음 생에 일어나거나 간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소멸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여기서,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몸의 업의 성취가 있다.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 말의 업의 성취가 있다.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마음의 업의 성취가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몸의 업의 성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떠난 자이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을 갖고 머문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그는 마을에서나 숲속에서 남의 재산과 재물을 도적질로써 가지지 않는다.
그는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그는 어머니에 의해 보호되고, 아버지에 의해 보호되고,  형제에 의해 보호되고, 자매에 의해 보호되고, 친척에 의해 보호되고, 가문에 의해 보호되고, 법에 의해 보호되고, 남편이 있고, 혼약의 정표로 화한을 두른 그러한 여인들과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몸의 업의 성취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 말의 업의 성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그는 법정에서나 회의에서나 친척들 사이에서나 조합원들 사이에서나 왕 앞의 증인으로 출두하여 질문을 받는다, ‘오시오, 선남자여.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해주시오.’라고. 그러면 그는 알지 못하면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고, 알면 ‘나는 압니다.’라고 한다. 보지 못하면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하고, 보면 ‘나는 봅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나 남의 목적을 위해서나 세속의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고의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분열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그는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점잖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가슴에 담아둘 만한 말을 한다. 그는 이치에 맞고, 절제가 있으며, 유익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 말의 업의 성취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마음의 업의 성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그는 간탐하지 않는 자이다. 그는 ‘오, 저 사람 것이 내 것이라면.’이라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
그는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다. ‘이 중생들이 원망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그들 스스로 행복하게 지내기를.’하고 성냄의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보시란 있다. 제물이 있다. 공양이란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마음의 업의 성취이다.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몸의 업의 성취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 말의 업의 성취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마음의 업의 성취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모든 면이 균형 잡힌 주사위를 위로 던지면 그것이 어디에 떨어지든지 반듯하게 떨어진다. 그와 같이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몸의 업의 성취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네 가지 말의 업의 성취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선한 의도에 속한, 행복을 낳고, 즐거운 과보를 경험하는, 세 가지 마음의 업의 성취로 인하여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다음 생에 일어나거나 간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소멸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dutiyasañcetanikasuttaṃ (AN 10.218-의도에 속함 경2)

218. 의도에 속함 경1(A10:217)과 동일함.

 

karajakāyasuttaṃ (AN 10.219-업(業)에서 생긴 몸 경)

219.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다음 생에 일어나거나 간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소멸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으로 짓고 쌓은 업들의 경우,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철저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겨서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열중않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자비[慈]를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비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전에는 내 마음이 제한되었고 닦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은 무량하고 잘 닦아졌다. 제한되게 지어진 업은 무엇이든지 거기에 남아 있지 않고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젊은이가 어릴 적부터 자비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았는데도 악업을 지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가 악업을 짓지 않는데도 괴로움을 경험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악업을 짓지 않았는데 어떻게 괴로움을 경험하겠습니까?”

“비구들이여, 여자든 남자든 자비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아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이 몸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다. 죽어야 하는 사람은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나에게 업에서 생긴 몸에 의해 이전에 지어진 이 악업들은 어떤 것이든 모두 여기서 경험될 것이다. 다음 생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닦여진 자비를 통한 마음의 해탈은 여기서 더 높은 해탈을 체득하지 못한, 지혜를 가진 비구를 불환자의 상태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철저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겨서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열중않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연민[悲]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연민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전에는 내 마음이 제한되었고 닦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은 무량하고 잘 닦아졌다. 제한되게 지어진 업은 무엇이든지 거기에 남아 있지 않고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젊은이가 어릴 적부터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았는데도 악업을 지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가 악업을 짓지 않는데도 괴로움을 경험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악업을 짓지 않았는데 어떻게 괴로움을 경험하겠습니까?”
“비구들이여, 여자든 남자든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아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이 몸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다. 죽어야 하는 사람은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나에게 업에서 생긴 몸에 의해 이전에 지어진 이 악업들은 어떤 것이든 모두 여기서 경험될 것이다. 다음 생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닦여진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은 여기서 더 높은 해탈을 체득하지 못한, 지혜를 가진 비구를 불환자의 상태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철저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겨서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열중않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기뻐함[喜]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기뻐함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전에는 내 마음이 제한되었고 닦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은 무량하고 잘 닦아졌다. 제한되게 지어진 업은 무엇이든지 거기에 남아 있지 않고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젊은이가 어릴 적부터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았는데도 악업을 지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가 악업을 짓지 않는데도 괴로움을 경험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악업을 짓지 않았는데 어떻게 괴로움을 경험하겠습니까?”
“비구들이여, 여자든 남자든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아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이 몸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다. 죽어야 하는 사람은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나에게 업에서 생긴 몸에 의해 이전에 지어진 이 악업들은 어떤 것이든 모두 여기서 경험될 것이다. 다음 생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닦여진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은 여기서 더 높은 해탈을 체득하지 못한, 지혜를 가진 비구를 불환자의 상태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철저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겨서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열중않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평정[捨]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전에는 내 마음이 제한되었고 닦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은 무량하고 잘 닦아졌다. 제한되게 지어진 업은 무엇이든지 거기에 남아 있지 않고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젊은이가 어릴 적부터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았는데도 악업을 지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가 악업을 짓지 않는데도 괴로움을 경험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악업을 짓지 않았는데 어떻게 괴로움을 경험하겠습니까?”
“비구들이여, 여자든 남자든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아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이 몸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다. 죽어야 하는 사람은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나에게 업에서 생긴 몸에 의해 이전에 지어진 이 악업들은 어떤 것이든 모두 여기서 경험될 것이다. 다음 생에 그 과보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닦여진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은 여기서 더 높은 해탈을 체득하지 못한, 지혜를 가진 비구를 불환자의 상태로 이끈다.”

 

adhammacariyāsuttaṃ (AN 10.220-법답지 못한(비법.非法)의 행위 경)
220. 그 무렵
어떤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그것은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입니까?”

“바라문이여, 그것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 때문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것은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입니까?”

“바라문이여, 그것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 때문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고따마 존자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것의 뜻을 상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것의 뜻을 제가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듣고 마음에 잘 새기십시오. 나는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라고 바라문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가 있고, 말로 짓는 네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가 있고,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라문이여, 무엇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 선하지 않은 행위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자는 생명을 해치는 자입니다. 그는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해침과 폭력을 휘두르는데 몰두하며,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입니다. 그는 마을에서나 숲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남의 재산과 재물을 도적질로써 가집니다.
그는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다. 어머니에 의해 보호되고, 아버지에 의해 보호되고, 형제에 의해 보호되고, 자매에 의해 보호되고, 친지들에 의해 보호되고, 법에 의해 보호되고, 남편이 있고, 심지어 혼약의 정표로 화환을 두른 여인들에 대해 성행위를 저지릅니다.

이것이, 바라문이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그러면, 바라문이여, 어떤 것이 말로 짓는 네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자는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그는 법정에서나 회의에서나 친척들 사이에서나 조합원들 사이에서나 왕 앞에서 증인으로 출두하여 질문을 받습니다, ‘오시오, 선남자여.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해주시오.’라고. 그러면 나는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압니다.’라고 말하고, 알면서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보지 못하면서 ‘나는 봅니다.’라고 말하고, 보면서 ‘나는 보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나의 목적을 위해서나 어떤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고의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입니다. 그는 여기서 듣고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합니다. 저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합니다. 이처럼 화합하는 자들을 이간시키고 이간을 조장합니다. 그는 불화를 기뻐하고, 불화를 즐기며, 불화를 만드는 말을 합니다.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자입니다. 그는 거칠고, 험하고, 남을 언짢게 하고, 남을 모욕하고, 분노에 휩싸이고, 삼매로 이끌지 못하는 그런 말을 합니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입니다. 그는 부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무익한 것을 말하고, 법에 어긋나는 것을 말하고, 율에 저촉되는 말을 하고,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없는 말을 합니다. 그는 이치에 맞지 않고, 무절제하며, 유익하지 못한 말을 부적절한 시기에 합니다.

이것이, 바라문이여 말로 짓는 네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그러면, 바라문이여, 어떤 것이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자는 간탐하는 자입니다. 그는 ‘오, 저 사람 것이 내 것이 되기를!.’이라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간탐합니다.
그는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이 중생들이 죽어버리길, 파멸되기를, 멸망해버리길, 없어져버리길.’라고 성냄의 마음을 가집니다.
그는 삿된 견해를 가진 자입니다.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공양이란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들어 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삿된 견해를 가진 자입니다.

이것이, 바라문이여,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바라문이여, 이러한 법답지 못한 행위와 잘못된 행위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바라문이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가 있고, 말로 짓는 네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가 있고,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라문이여, 무엇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을 갖고 머뭅니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그는 마을에서나 숲속에서 남의 재산과 재물을 도적질로써 가지지 않습니다.
그는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그는 어머니에 의해 보호되고, 아버지에 의해 보호되고, 형제에 의해 보호되고, 자매에 의해 보호되고, 친척에 의해 보호되고, 가문에 의해 보호되고, 법에 의해 보호되고, 남편이 있고, 혼약의 정표로 화한을 두른 그러한 여인들과 성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라문이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입니다.


그러면, 바라문이여, 어떤 것이 말로 짓는 네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자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그는 법정에서나 회의에서나 친척들 사이에서나 조합원들 사이에서나 왕 앞의 증인으로 출두하여 질문을 받습니다, ‘오시오, 선남자여.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해주시오.’라고. 그러면 그는 알지 못하면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고, 알면 ‘나는 압니다.’라고 합니다. 보지 못하면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하고, 보면 ‘나는 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나 남의 목적을 위해서나 세속의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고의로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습니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분열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그는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점잖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합니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가슴에 담아둘 만한 말을 합니다. 그는 이치에 맞고, 절제가 있으며, 유익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합니다.

이것이, 바라문이여, 말로 짓는 네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입니다.

그러면, 바라문이여, 어떤 것이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자는 간탐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 저 사람 것이 내 것이라면.’이라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탐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성냄이 없습니다. ‘이 중생들이 적의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해악에서 벗어나기를. 그들 스스로 행복하게 지내기를.’하고 성냄의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집니다. ‘보시란 있다. 제물이 있다. 공양이란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고 바른 견해를 가집니다.

이것이, 바라문이여,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입니다.
바라문이여, 이러한 법다운 행위와 선한 행위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한 일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를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제21장 업에서 생긴 몸 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