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숫자 12의 비밀

성스러운 숫자 12의 비밀

왜 서양에서는 1부터 12까지의 이름이 제각각일까

태양계의 행성 이미지.

최근 조선일보에 미국의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용한 흥미 있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 중고등학생의 수학 실력이 한자(漢字)문화권 국가인 중국, 한국, 일본, 대만 학생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1부터 20까지 기수(基數)의 호칭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정확하게 십진법을 적용해 11, 12를 10+1, 10+2라는 뜻의 ‘십일’, ‘십이’라고 하는데 비해, 미국은 ten one, ten two라고 하지 않고 별개의 수인 eleven, twelve를 쓴다. 동양권에서 17은 10+7인 ‘십칠’이라고 하는데 비해 미국은 ‘칠십’으로 느껴질 수 있는 seventeen을 사용하므로 수학의 기본인 演算(연산)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자문화권의 기수는 정확하게 10진법으로 불리지만, 영어의 기수는 1부터 20까지 좀 불규칙하다. 1에서 12까지는 고유의 이름이 있고 13부터 19까지는 앞에 three, four 등 단수, 뒤에 10을 의미하는 -teen이 붙는 방식이다.

1에서 12까지 별도의 고유 명칭이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서양문화권에서 12는 성수(聖數)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신(神)들의 숫자는 12이다. 인도 힌두교의 경전 베다에 나오는 신도 인드라 등 12이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던 히타이트 왕국의 신들도 12. 이집트에도 최고의 신 ‘라’를 포함하여 12 신이 있다. 12는 이밖에도 유태인의 12지파, 예수의 12 제자, 달력의 12달에 나오고, 동양에도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라는 12(지지)地支가 있다.

수메르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12의 기원(起源)은 이집트문명보다 최소한 1000~2000년 전의 문명으로 인정받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定說)이다. 프랑스 고고학자 P. E. Botta가 1842년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코르사바드를, 이어 영국인 학자 A. H. Layard 등이 또 다른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 등지(모두 현재의 이라크 모술 지방 부근)를 발굴, 글이 쓰여 있는 수십만 장의 점토판(粘土板)을 발굴했다. 점토판에 쓰여 있는 글자는 쐐기문자의 일종으로 많은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현대어로 해독되었다.

그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12 신과 관련된 신화(神話)다. 점토판에는 수메르에 최고신인 안(An)을 포함하여 엔릴, 엔키, 난나, 우투, 이시쿠르 등 남신(男神) 6명과, 안의 부인 안투, 닌릴, 닌키, 닌갈, 인안나, 닌후르쌍 등 여신(女神)  6명을 포함하여 12명의 신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신이란 인간의 상상력 속에만 있는 허상(虛像)이 아니다. 천체(天體) 가운데 태양을 공전(公轉)하는 12개의 행성(行星)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는 현재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이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등 9개 밖에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천왕성은 1779년, 해왕성은 1846년에 수학적 계산에 의해 발견됐으며, 명왕성은 1930년대에 처음으로 그 존재가 알려진 행성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기원전 수 천 년 전에 18세기 이후에 그 존재가 알려진 행성을 포함시켜 12신으로 삼았겠느냐는 것이다.

행성의 수 12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수메르의 점토판에는 이들 9개 외에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3,000여개의 소행성, 달, 그리고 3,600년을 주기로 태양을 타원형으로 공전하는 미지의 행성(점토판에는 ‘마르둑’으로 표기돼 있다) 등 3개가 포함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렇게 계산하면 12개가 맞다. 소행성은 어느 시점까지 지구보다 더 큰 ‘티아마트’라는 이름의 행성이었으나 다른 천체와 충돌하여 파괴된 흔적이라는 것. 달은 본래 행성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지구의 위성(衛星)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다만 최근 240년 간 수학과 과학의 발달 덕분에 발견된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기원전 수천 년 전에 그려진 점토판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수께끼다. 수학으로 계산하여 추정했거나, 망원경 같은 광학기구가 있어서 관측했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봤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만일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을 기록한 것이라면 수메르 인, 그들은 과연 누구이며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