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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남을 탓하는 가르침이 아니다

실론섬 2015. 1. 13. 19:19

불교와 정치의 관계

불교가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에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지금의 한국처럼 모든 국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강하고 사회적인 문제에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국가에서는 이 문제는 재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굳이 경전속에서 붓다께서는 정치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했느냐를 거론하면서 일정한 잣대를 모든 국가에 들이대기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있는게 사실이다. 붓다 시절에 비해 국가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이 변모하여 왔고 또한 각 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이 복잡다난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현재 불교국가라고 하는 태국이나 미얀마 그리고 스리랑카의 현 상황과 불교가 정치와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하나의 방편으로써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스리랑카에서 불교와 정치.사회는 어떤 관계에 있으며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붓다의 가르침을 어떻게 현실문제와 접목하고 있는지에 대한 좋은 모범이 될 것 같다.


불교와 정치.사회문제

종교가 현실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곳도 환영받지 못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첨예하고 대립하는 현안에 대해서도 왈가불가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불교계는 하나의 대원칙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정부에서 술 판매를 확대하기 위하여 라이센스를 늘리거나 매춘업 또는 육식 장려책을 쓰거나  비불교적인 법을 만들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면 불교계가 개입을 한다. 즉 다시말해서 불교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훼손하는 문제라면 어떠한 경우에라도 불교계는 개입을 한다. 술 육식 유흥문화등등은 분명히 불교의 계율이나 정체성이나 가치관에 배치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처럼 tv 방송에서 처럼 공공연하게 펄펄 끓는 물에 낙지를 넣어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좋아라고 박수치는 얼빠진 장면을 내 보낸다면 이는 불교계의 반발에 바로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불교계가 뚜렷하게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개입의 한계와 선을 긋고 있기 때문에 수행승들이 무분별하게 개인적인 정치적 발언을 일삼거나 이념적인 문제에 휘둘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세속의 문제에 관여를 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교적인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것일뿐 결코 개인적인 정치성향이나 이념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의 정체성을 지켜야 

불교를 표방하는 몇몇 카페나 개인 블로거들의 글에서 보면 붓다의 가르침을 앞세워 자신의 정치적 생각이나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된다. 경전에서 그럴싸한 문구를 옮겨와서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인 현안에 아전인수격으로 갖다 붙여서 해석을 하는 것도 자주 목격된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붓다의 제자로써 잘못된 자세이며 경전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예를 들어서 종북문제에 대해서 불교계가 왈가불가할 일은 없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나라가 불교를 핍박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왜곡비방한다면 이는 불교계가 좌시해서는 안되는 문제이다. 또한 세월호 사건도 불교계의 진정한 지도자라면 불교적인 가르침에 의거하여 풀어가야지 이를 정치.사회적인 문제와 연관시킨다면 이는 이미 불교도로써의 한계를 넘은 것이다.


나아가 불교계가 정치.사회적인 현안에 대해서 어떻게 불교계가 대처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킬것인가하는 문제는 모든 불교의 지도자급들이 모여서 붓다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지혜를 모아야 할 사안이다. 


불교는 남을 탓하는 종교가 아니다

진정한 불제자라면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에 따른 시시비비를 말하는 것을 삼가하는 것이 청정을 지키는 길이다. 시민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베푸는 것에 한정되어야 하며 정치적 이념적 목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좀더 확대해석을 해 본다면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없다. 따라서 불교의 가르침을 마음대로 전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불교도라고 하면서 종북주의자가 된다면 이는 엄청한 악업을 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차라리 승복을 벗고 종북주의자가 되든 이념적 노예가 되든 하는게 낫다.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TV 등에서 살아있는 낙지를 펄펄 끓는 물에 넣어서 죽이는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영하고 그것을 오락거리로 삼는게 한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불교계 어느 누구도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를 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살아있는 생명을 오락거리로 삼아 죽이면서 박수치며 깔깔웃는 것을 방영하는 나라는 없다. 수행승이든 불제자이든 불교계는 전부다 벙어리뿐이다. 


그런데 정치적 이념적 문제에 대해서 마치 정의의 사도인냥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치는 수행승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며 지극히 비불교적인 자세이다. 정말 불제자라면 방송국의 생명경시 프로그램부터 지적하는 그런 진정한 불심이 정의이고 불교적이다. 


불교는 자업자득이며 인과법이며 연기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이 아닌 남의 탓으로 내게 복과 화가 미치는 것이 아니다. 모두다 내가 지은 업에 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