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한국불교 논문및 평론

지눌과 성철의 돈오점수·돈오돈수 논쟁/김태수

실론섬 2015. 4. 19. 14:00

지눌의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 돈오점수론을 중심으로 - 

 연구원  김태수

  

1. 들어가며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1)은 한국불교사에서 원효·의상을 이어 한국불교의 근간을 확립한 사상가인 만큼, 그의 깨달음과 수행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는 것은 도통진경을 지향하는 우리 수도인들에게도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1)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속성(俗性)은 정(鄭), 호는 목우자(牧牛子),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다. 1158년(의종 12년) 동주(洞州, 지금의 황
   해도 서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학(國學)의 학정(學正)을 지낸 정광우(鄭光遇), 
   어머니는 개흥군(開興郡, 지금의 황해도 연백) 출신의 조씨(趙氏)이다. 1165년(의종 
   19년), 8세의 나이로 구산선문(九山禪門) 사굴산파(闍崛山派)의 종휘(宗暉)를 스승
   으로 삼아 출가하였고, 1173년(명종 3년)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어려서 큰 병을 앓아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그의 부모가 병만 나으면 출가를 시키겠
   다고 서원(誓願)을 하였고, 그 뒤 병이 깨끗이 낫자 약속한 대로 출가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닦음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이론을 수증론(修證論, soteriology)라고 하는데, 불교사상사 전체를 통하여 큰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인도불교에서는 돈수와 점수, 티베트에서는 돈오와 점오, 중국에서는 돈오와 점수의 대립을 위시하여 화엄, 천태 및 선에서 다양한 수증론을 꽃피웠다. 이러한 수증론의 문제가 20세기 한국 불교계에서는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한국불교사에서 이러한 논의의 전거를 이루는 수행론이 바로 이 지눌의 돈오점수론이다.  

 

지눌의 돈오점수론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의 깨달음의 세 전기(1)를 통해 얻은 선수행의 삼문[三門: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의 세 가지 수행방법](2) 중에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것(정혜쌍수: 定慧雙修)을 기본으로 하는 성적등지문 및 원돈신해문을 중심으로 한 초기 단계와 양자를 기본으로 하되 간화경절문에 중점을 둔 후기 단계로 나누어 그의 사상의 전개를 고찰해 보는 것이 논의를 위해 유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 동아시아 선불교사에서 전개된 다양한 수증론의 맥락 속에서 지눌선의 위상을 점검해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1) 그 첫 번째는 전남 나주의 청원사에서 수도할 때,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보다가 “진여자성
   (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켜 육근(六根)이 비록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지만 결코 만상에 
   물들지 않고 진여자성은 늘 자재(自在)하다.”는 구절에 큰 깨달음을 체험하였다. 두 번째 
   전기는 28세 때인 1185년,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에서 3년 간 대장경을 열람하던 중 
  『화엄경』,「여래출현품」에 “한 티끌이 대천세계를 머금었다.”는 비유 및 그 후에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아서 중생들 마음에 갖추어져 있지만 어리석은 범부들은 그런 줄을 미처 깨닫
   지 못한다.”는 구절을 만난 후 경을 머리에 이고 굵은 눈물을 떨어뜨린 일이다. 그 이후 이통
   현(李通玄) 장자가 쓴『신화엄론』의 십신초위에 대한 해석을 접하면서 원돈의 관문에 잠심
   (潛心)하고 한층 확신을 지니게 되면서, 33세때인 1190년에 본격적인 수선결사를 시작하였
   다. 세 번째는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대혜종고 선사의「대혜어록」을 보다가 눈에 띈 구절
   에서 비롯된다. “선은 고요한 곳에 있지도 않고 시끄러운 곳에 있지도 않으며, 날마다 객관
   과 상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고요한 곳, 일
   상인연이 따르는 곳,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여의지 않고 참구(參究) 하여야만 한다. 눈이 
   열리기만 하면 선은 그대와 함께 있어 선이 집안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는 구절의 뜻에 계
   합하여 깨치게 되어 “저절로 전에 무엇이 걸려 있던 것과 같은 가슴이 탁 트이며 오랜 체증
   이 내려간 듯 편하고 즐거워졌다.”고 하였다. 이에 그의 수행의 삼 문(세 방법) 중 앞의 두 
   깨달음을 통한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을 거쳐, 세 번째 간화경
   절문(看話徑截門))을 주창하게 된다.
(2) -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 성(惺)은 또렷한 지혜, 적(寂)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힌 선정을 
        뜻한다.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바탕으로 하여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수행법을 말한다. 
     -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화엄경』의 교리를 믿고 이해하여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라고 자각
        한 후에 보살행을 닦아 성불에 이르는 수행법을 말한다.
     -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 : 대혜종고(1089~1163)의 『대혜어록』을 기초로 간화선(看話禪)의 
       수행을 나타낸 것이다. 곧 화두(話頭)를 참구하여 언어를 떠나 단박에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이번 호에서는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관의 이론적 근거 및 핵심이 정초되어 있는 『권수정혜결사문』을 중심으로 수증론에 관한 그의 핵심 논지를 소개한 후, 다음 호에서 지눌의 만년 저작인『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1215년)』과『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1209년)』를 중심으로 후대에 돈오점수·돈오돈수 논쟁으로 이어진 그의 선(禪) 수행관의 위상을 선종사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권수정혜결사문』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것은 1608년(광해군 41)에 
   학명(學明)이 써서 송광사에서 간행한 것과 1635년(인조 13)의 운주산 용장사본(龍
   藏寺本), 1681년(숙종 7)의 울산 운흥사본(雲興寺本), 1860년(철종 11)의 천마산 봉
   인사본(奉印寺本) 등이 있으며, 현대본도 10여 종이 남아 있다.
3)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 당나라 종밀(宗密)이 신회(神
   會)의 뜻을 개진하기 위하여 저술한 『법집별행록』을 간략하게 줄여서 싣고, 여러 
   경전과 조사(祖師)들의 말을 인용, 비판하면서 참다운 수행인의 길을 제시하고자 
   이 책을 저술하였다. 현재 『법집별행록』은 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은 그 원전
   의 내용을 알게 하는 데도 중요한 지침서가 된다.

2. 정혜결사의 성립 배경과 사상의 전개

지눌은 고려 18대 의종 12년(1158)에 태어나 8세에 출가하였다. 그는 43세에 송광산(松廣山) 길상사(吉祥寺)로 옮겨 입적할 때까지 11년 동안 설법하고 선을 수행할 때는 남의 칭찬이나 비방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성품이 인자하고 참을성이 있어 아랫사람을 지도할 때 성질이 못된 사람이 뜻을 거스르더라도 연민으로 감싸주는 그 정리가 마치 자식에 대한 어머니와 같이 하였다. 이처럼 한 평생을 상생적인 자세로 수행하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의 정신으로 바른 수행(修行)을 위한 세 가지 문(수행지침과 방법)을 제시하게 된 계기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 있었다.

당시의 고려 불교는 신라의 도의(道義) 선사4) 가 도입(821년)해 온 남종선 계열의 선종과 기존의 법상종, 화엄종 위주의 전통 교학이 마찰하면서 정권의 비호를 다투고 있었다. 불교 승려들은 이러한 선종과 교종 간의 종파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주장만을 옳다고 여기며 타성에 젖은 수도 생활에 빠져 있었다.   

4) 도의(道義)선사는 신라 선덕왕 5년(784) 경 중국유학에 올라 보리달마-6조 혜능-마조도일 
   법맥인 서당지장(西堂地藏)으로부터 받은 남종선(南宗禪)을 익히고 40년 만에 귀국(821년) 
   해서 선종을 세워 한국 선불교의 종조로 간주된다.

 

선교 간의 갈등의 원인은 우선 그 교리적 이해의 차이에 있었다. 선종에서는 “마음이 본래 깨끗하여 유·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데 무엇 때문에 수고롭게 억지로 수행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교종에서는 경의 법상(法相)에 대한 방편설에 집착하여 스스로의 불성을 믿지 않고 오직 문자에만 집착했다. 이러한 편향에 대해 지눌은 바르게 수행하기를 권하는 결사문인『권수정혜결사문』을 천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삼을 지고 가던 사람이 길에서 금이 가득찬 독을 주웠지만 삼과 금을 함께 가지고 갈 수가 없으므로 수 백리 길을 지고 온 삼을 아껴 금을 버리고 갔다. 그런데 이는 먼저 들은 법을 고집하여 삼은 걸머지고 금은 버리는 격이다.” 나아가 당시 승려들의 실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날마다 하는 소행을 돌이켜 보면 불법을 빙자하여 나와 남을 구별하여 명예를 구하고 재물을 탐하는 길에서 허덕이고 풍진 속의 일에 골몰하여 도덕은 닦지 않고 의식만 허비하니, 비록 출가하였다고 해도 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듯 자신의 종파의 원칙만 고수하면서 타성에 젖은 당시 승려들의 수행에 경종을 울리고 바른 선정과 지혜에 입각한 수행의 지침을 제시하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지눌이 25세에 보제사(普濟寺)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석한 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뜻을 같이 하는 동학 10여 인을 만난 지눌은 이미 승선(僧選)에 합격하였지만 명리(名利)에 기운 당시 승가의 길을 뒤로 하고 동학들과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수행하자.’라는 취지의 결사를 약속한 후 동지들과 헤어져 수도에 전념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이후 지눌은 수행과정에서 세 차례의 큰 전기를 거친 후 1190년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서 25세에 결사하기를 약속했던 동지를 모아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맺고, 정혜를 닦기를 권하는 결사문인『권수정혜결사문』을 짓게 된다.   

 

이 글은 다음의 구절로 시작한다.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니 땅을 여의고 일어날 수 없다.” 그와 마찬 가지로, “한 마음 어두워 끝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것은 중생이요, 한 마음 깨달음으로 끊임없는 묘용을 일으킴은 부처이다. 어두움과 깨달음이 비록 다르나 마음으로 말미암음이니, 마음을 여의고 부처를 찾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5천 권의 불경이 있으나 그 결론은 계·정·혜 삼학에 귀착되는데, 계는 도에 들어가는 문턱이며 그 핵심은 정과 혜를 균등하게 닦는 데 있다.”

 

여기서 그는 어리석은 선[癡禪]이나 문자만 찾는 미친 지혜[狂慧]에서 벗어나 정혜쌍수를 통해 선과 교를 조화해야 하며, 말법시대에 대한 인식 속에서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하여 수행의 기초를 삼고 오만함이 없이 꾸준히 수행에 정진해 나가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역설하게 된다. 특히, 지눌은 말법시대의 가장 큰 문제를 ‘중생의 마음이 박해지는 것으로, 스스로의 불성을 믿지 못하고 견성을 통한 신통력이나 기복신앙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본말도 모르면서 불도를 구하는 것으로, 마치 모난 나무를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에서 벗어나 선정과 지혜(定慧)를 함께 닦는 방법을 그는 성적등지문(性寂等持門), 곧 ‘확연하게 깨어 있으면서도 고요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으로 천명한다. 이러한 성적등지에 기반하여 지눌은 또한, 불교 내적으로는 어리석은 선과 미친 지혜의 시대이고 외적으로는 무신정권의 전횡과 연이은 민란 속에서 미혹에 빠진 낮은 근기로 해오(解悟)하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한 자성과 수행의 출발점으로 원돈신해(圓頓信解)의 중요성 또한 역설하게 된다. 여기서 해오란 ‘모든 중생이 본디 부처임을 자각하는 돈오’를 뜻하는데 오랫동안 미혹에 빠져 살면서 생긴 습(習)으로 인해 깨달음만으로는 완전한 부처라고 할 수 없으므로, 지속적 수행인 점수를 통해 완전한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음을 닦는 이는 우선 조사의 도로써 제 마음의 본래 묘함을 알되 문자에 구애되지 말아야 하며, 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곧 법계의 성품과 모양이 되어 사사무애(事事無碍)5)의 덕과 본체의 자비심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5) 사사무애(事事無碍)현상계 만유의 낱낱 사물이 서로 장애되지 않고, 중중무진(重重無盡; 
   서로에게 끝없이 작용하면서 어우러짐)하게 상융(相融; 서로 융섭)함을 말한다.

 

여기서 해오로서의 깨달음에서 증오로서의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수행방법이 정혜쌍수(定慧雙修)이다.6) 정(定)이란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망념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다. 혜(慧)는 ‘맑은 정신으로 세상의 실상을 환히 비추어보는 지혜’를 가리킨다. 결국 지눌은 이러한 정과 혜를 함께 닦는 수행을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이라고 하면서 그의 수증론의 근간으로 삼는다.

6) 지눌은「익진기(翼眞記)」를 인용하면서, ‘정혜(定慧)란 계ㆍ정ㆍ혜(戒定慧), 삼학을 
   뜻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계율로서 잘못을 막고 악을 그치며, 선정으로 이치에 맞추어 
   산란한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뜻으로 여섯 가지 욕심(六欲)을 극복하는 것이며, 지혜로
   서 법을 가리고 공을 관한다는 뜻으로서 묘하게 생사를 벗어나게 하는 요체이다. 정
   (定)이 고요한 물이고, 혜(慧)가 물속에 비추어진 천지라면, 계(戒)는 물을 담는 그릇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눌은 돈오돈수 또한 부정하지 않는데, 이를 역설하지 않는 것은 돈오돈수가 소수의 가장 높은 근기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지눌선의 세 번째 수행방법인 간화경절문에 관해서는 돈오점수·돈오돈수 논의와 연계하여 다음 호에서 살펴 보기로 하고, 이번 호에서는 정혜쌍수에 입각한 성적등지의 수행과 원돈신해의 깨달음에 근거한 돈오점수에 관한 지눌의 핵심 논지를 정리해 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3. 지눌 수행론의 핵심 논거

 

(1) 수행은 왜 해야 하나

지눌에 따르면 불교 수행에는 자력과 타력의 여러 가지 길이 있다. 타력수행인 염불은 ‘부처의 모습과 덕을 염송을 통해 마음으로 생각하는 행위’이고, 만행은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를 통해 수행하는 것’이며, 정혜는 ‘참선을 통해 지혜를 깨닫는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법에 우열의 차이가 있지는 않지만 지눌은 마음을 닦는 정혜 수행을 근본으로 보는 까닭에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성을 찾는 것을 염불하고 경전을 읽으며 만행을 닦는 일상적인 수행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말법시대의 중생이라고 해서 최상의 가르침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없다.”는 지눌 설법의 의미는 ‘마음의 본성을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본질적인 가르침이라는 데 있고 이것이 수행을 해야 하는 기본적인 교리적 이해의 근간을 이룬다.

 

지눌은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로서『원각경』에 “말법 시대의 중생이라고 해도 마음에 망상만 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바로 깨달은 보살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수행해서 곧바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라고 현재 뿌린 복되고 좋은 씨앗이 다음 생에 다시 이어져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임”을 천명한다. 이는 마음의 본성이 본래 밝고 깨끗한 데도 마음의 본체를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스스로 일으킨 생각에 얽매이기 때문에 미혹해서 모든 생각이 망념이나 번뇌가 되므로, 마음의 동요가 없는 본체를 밝혔을 때 깨달은 자인 부처가 되어 무시무종한 윤회 바다 속의 고통을 끊을 수 있고, 깨달음을 얻지 못해 윤회하더라도 다음 생에 깨달을 수 있기에 수행을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한편,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임을 밝힌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중국 오대십국기의 승려)의 『수심결』을 인용하면서 지눌은 “바른 가르침은 듣기만 하고 믿지 않더라고 부처가 될 씨앗을 심은 것과 같고, 배우기만 하고 미처 성취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다음 생에서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러한 이유로 “환경과 자신의 능력을 탓하지 말고 참된 가르침에 대한 확신만을 지니고 굳건하게 수행해야 나약한 마음이 사라진다.”는 점을 수행의 이유로 제시한다. 즉, 수행의 인연은 반드시 결과를 낳게 되므로 마음을 찾는 수행을 통해서만 괴로운 현실을 초월하고 극복하기 위한 바른 가르침을 듣고 결단하여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공부가 한층 진전 되어 결국 “번뇌가 다해 태어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본성인 한마음을 보게 될 때, 선정의 고요함과 지혜의 비춤이 드러나 그 무궁무진한 작용으로 인연 있는 중생을 널리 구제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수행의 또 다른 이유가 된다. 곧 “할 일을 마친 사람이 자신과 남을 구원하는 길 없는 길”이라는 말처럼 수행은 자리(自利)에만 그치지 않고 이타행(利他行)을 위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심결』에서 제시되듯이 “얼음(중생의 마음)이 물(불성)은 아니지만 얼음을 쓰기 위해서는 열기로 녹여야 하듯이, 중생과 부처는 본성은 똑같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노력” 또한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2) 돈오가 가능한 교리적·논리적 근거

지눌이 보는 돈오의 교리적·논리적 근거는 깨달음이나 해탈이 성현만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참된 마음의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깨달음의 경지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마음에 있기에 복잡하고 오랜 수련을 거치지 않고서도 단박에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지눌은 점차적 수행을 통하지 않고 단박에 깨달음을 이룬 후에 완전하게 닦아나가는 수행이 가능한 이유로서, 닦음 또한 중생 시각에서의 분별일 뿐 깨달음이란 마음의 본성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달리 닦아야 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 의하면 “만물은 본래 하나의 마음이므로 무명과 번뇌는 지혜와 해탈과 다르지 않고 방편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갖게 된다.” 따라서 정혜수행 또한 모든 것이 마음의 본성이 드러난 것이라는 근본에서 출발하므로 본성에 따르는 수행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고요한 이 마음은 바로 원인과 결과를 갖춘, 변하지도 끊어지지도 않는 깨달음의 본체”로서 단지 성숙도와 밝고 어두운 정도에 따라 달리 부른다는 것이다. 즉 이 마음은 인과를 넘어선 본래적 심성이기에 돈오라는 즉각적 깨달음이 가능한 첫 번째 교리적·논리적 근거가 된다. 

 

이통현의『신화엄론』을 근거로 지눌은 또한 “근본무명이 진리의 몸인 부동지불과 같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깨달음을 향한다.”고 하면서 오랜 기간[삼아승기겁(三阿僧祇劫)]을 거쳐야 불도를 이루는 것과 달리 즉각적인 깨달음이 가능한 인식론적 전제로서 모든 것이 한 마음의 작용임을 모르고 분별하는 근본번뇌인 근본무명이 모든 존재의 본성인 진리로 표상되는 부동지불과 다르지 않음을 든다. 이로써 근본적인 관점에서는 “무명의 중생도 부처도, 닦을 수행도 도달한 목표도 따로 없다.”는 돈오가 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근본적으로는 누구나 돈오가 가능하지만 단지 이러한 돈오의 가능성을 이해하거나 믿지 못하는 수행인들에게는 마음의 본성에서 연기적으로 펼쳐진 시간과 공간을 위주로 설명하는 방편적 가르침인 삼승 권교(三乘權敎: 범부를 위한 방편적 가르침)를 가르치는 것뿐이다. 즉, 법계의 성품과 모습이 자기 마음의 본체와 작용과 다르지 않음을 알 때, 마음의 본성을 터득하여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됨으로써 돈오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렇듯 한 마음을 깨치는 거침없는 진여에 도달하게 되면 우주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자신이 부처와 다름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아직 마음을 투철히 깨치지는 못했기 때문에 마음의 본성이 경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중생이기에 “새의 두 날개와 같이 수행과 성품”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돈오점수론의 교리적 근거에 따르면 번뇌의 독 또한 깨달음의 지혜가 인연을 따라 나타난 것으로 마음의 본성을 떠나 있지 않은 것이므로 번뇌를 통해 마음의 본성을 자각해서 늘 자유롭고, 속박에도 해탈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수심결』에 의하면 “미혹의 상태에 있을 때 지·수·화·풍의 4대가 몸이고 잘못된 생각[妄想]이 자기의 마음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이 단박에 깨침이라는 돈오가 가능한 두 번째 교리적, 논리적 근거로 ‘선지식의 인도’를 제시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의 성품이 부처가 깨달았던 그 참된 진리[眞法身]임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 부처임을 몰라서 방황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선지식에게서 깨달아 들어갈 길을 지시받아 일순간[一念]에 자신의 마음을 향하여 빛을 돌이켜[廻光] 스스로 본래의 성품(本性)을 보는 것이다.7) 그런데 이 성품은 원래 번뇌가 없고 완전한 지혜의 성품[無漏智性]이 본래부터 스스로 다 갖추어져 있기에[本自具足] 모든 부처와 더불어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돈오라고 하는 것이다.”

7) 부처님과 조사들은 두 가지 차원에서 말한다. 하나는 진리(法)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평범한 사람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기 때문에 미
   혹됨과 깨달음이 있고, 범부와 성인이 있게 된다. 지눌은 미혹함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돈(頓)이며, 범부가 변해 성인이 되는 것이 바로 점(漸)이라고 말한다. 돈오란 미혹함에서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미혹함이란 바로 지ㆍ수ㆍ화ㆍ풍 4대가 임시로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을 영원히 존재하는 몸이라 여기고, 잘못된 집착으로 만들어 낸 망상을 자기의 마음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렇듯 헤매는 중생의 삶에서 돌연 참된 스승인 선지식의 가르침에 의하여 한 마음을 돌려 스스로의 본성을 보게 되면, 원래 번뇌가 없는 완전한 지혜의 성품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닦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불성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서도 지눌은 다음과 같이 돈오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좋은 벗의 인도’ 를 돈오가 가능한 매개로서 제시한다. “돈오란 이른바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마음이 미혹하고 전도되어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며 그것을 전부 통틀어 ‘나’라고 말하다가 혹 좋은 벗[善友]을 만나 불변·수연(不變隨緣: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을 따르는 것)과 성(性)·상(相)과 체(體)·용(用)의 이치를 듣고는 홀연히 신령스럽고 밝은 지견이 생김으로써 자신의 참 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마음의 본체가 항상 고요하고, 성품과 모양이 없는 그것이 바로 법신(法身)이며,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 그것이 바로 진아(眞我)로서 여러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돈오(頓悟)가 가능한 것이다.  

 

(3) 왜 분별이 나쁜가?

초기불교이래 사려분별과 판단이 가해지기 이전의 주관·객관의 구별이 없는 경험 그대로의 식(識: 의식 작용 및 현상)과 분별·판단이 가미된 상(想)은 오온의 설정에서부터 구분되어 왔다. 가장 초기 경전 중 하나로 간주하는 『숫타니파타』에서도 분별을 없앤 인식을 강조함으로써 초기 대승의 반야나 유식의 무분별지에서부터 화엄 및 선의 맥락에 이르기까지 그 거시적인 맥락을 같이 한다. ‘분별’이라 함은 하나의 대상을 둘로 나누어 아는 인식작용이기에 대상의 일부만을 지각하는 것은 그것 자체의 관점에서 볼 때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부파불교 이래 대승에 이르러 유식에서는 진지(盡智)8)에 대한 통찰적 앎을 방해되는 장애로 여긴다. 분별지가 제거되어야 착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야·중관에서도 분별은 아상(我相)의 자기 내세우기를 통한 집착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경계함으로써 사물의 궁극적 공성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인위적 지각, 감각의 문제점을 제기함으로써 초기 부파 불교이래의 부정적 관점을 잇고 있다. 

8) 진지(盡智): 십지(十智)의 하나로 자신은 이미 사제(四諦)를 체득했다고 아는 지혜.

 

한편, 지눌이 이론적 근거로서 선과 융합한 화엄에서도 연기분과 구분되는 정분(訂分)의 법성은 지정각 세간(智正覺世間)9)으로서 모든 분별을 초월한 무애(無礙)적 관점10)에 서 있다. 또한 지눌의 깨달음에서 전거가 되었던 이통현의『신화엄론』을 정리한『화엄론절요』에서도 “중생이 중생인 까닭이 마음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사물의 서로 다른 모습에 미혹한 분별하는 마음 때문이나, 그 분별심이나 미혹 또한 마음의 근본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하여『권수정혜결사문』에서는 “좋고 싫어하는 분별심이 강한 사람이 정혜를 닦아 선행해서 정토에 태어난 후, 다시 이 땅에 와서 중생을 제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이들은 분별심이 강하기 때문에 마음의 본성을 깨치는 공부를 하더라도 이름과 형상에 집착하기 쉬워 공부에서 물러서게 될까 염려”하기도 한다. 

9) 지정각 세간은 화엄에서 부처님께서 깨달은 세계로 생사윤회의 세계인 연기분과 
   대비되는 세계를 지칭한다. 법화에서도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8계의 구분이 없어
   져 중생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한꺼번에 평등하게 도장 찍어 놓은 것 같다고 
   보는 ‘깨달은 세계’ 를 뜻하기도 한다. 
10) 무애(無礙)적 관점은 모든 바깥 경계에 장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것을 뜻한다.

 

또한 “거울이 맑으면 비추는 상만 보이듯 마음의 티가 없는 분별없는 사유”를 강조하는『육조단경』을 발전시킨 지눌은『정혜결사문』에서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위한 선수행자의 의식지표로서 성적 등지를 들면서 이 또한 “분별 및 번뇌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끔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고 천명한다. 여기서 선정이란 마음의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이고, 지혜란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의 본 모습을 비추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육조단경』에서처럼 선정을 등불에, 지혜를 등불에서 나오는 빛에 비유하는 것이다.

『정혜결사문』에서 거듭 강조되듯이 깨달음이란 마음의 본성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정혜를 닦아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번뇌와 분별하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 정혜결사의 목적으로서 누구나 똑같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본성을 깨쳐 부처가 될 수가 있다는 대승적 관점에서 분별의 제거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한다.

 

“오직 뜻을 세우고 마음을 닦아서 생사의 질곡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인데 어찌 개념과 이론에 얽매여 논란하면서 수행에 장애를 일으키겠습니까? 생각을 떠난 마음의 본체를 알게 되면 곧 부처님의 지혜와 같아질 것인즉 어찌 삼현과 십성의 지위가 있는 점차적인 가르침을 말하겠습니까?”

이러한 지눌의 언급은 정토에 대한 경전 구절을 이해하는데 있어 “실재하는 마음과 국토가 있어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생각에 주력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본마음이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고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도 아니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분별과 구분을 넘어서야 비로소 마음의 본체(空寂靈知心)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4. 나가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눌은『권수정혜결사문』에서 수행인들이 마음을 밝히는 일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탐하고 헛되이 의식을 허비하는 현실을 개탄하였다. 권두 서언에 이어, 몇몇 문답을 통해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는 이유 및 수행하는 이들이 갖기 쉬운 의문을 풀어주는 부분은 우리 수도인들 에게도 도움이 되는 부분으로 보인다.  

 

서(序)에서는 “한 마음 미혹하여 가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요, 한 마음 깨달아 가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가 부처”라고 정의하였고,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전제하면서, ‘모든 불교의  가르침은 “대상에 대한 의존심[반연(攀緣)]11)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가만히 합해 밖에서 도를 구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는 데 있다.”고 정의한다. 

11) 攀緣(반연): 부딪치는 대상[대경(對境)]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제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칡덩굴이 나무나 풀줄기가 없으면 감고 올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또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야 일어나는 것처럼 마음이 일어
    날 때는 반드시 부딪치는 대상을 의지하고 일어나니, 이런 경우 칡덩굴은 나무
    나 풀을, 노인은 지팡이를, 마음은 대경을 반연한다고 한다. 이 반연은 일체 번
    뇌의 근본이 된다.

 

그런데 이는 우리 수도인들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외부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비롯된 것’ 이라는 해원상생의 대전제에 대한 ‘자각[頓悟]’ 속에서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이 고쳐나가는 끊임없는 수행[漸修]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교훈이 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도과정에서 또한 ‘자각이 없이는 확신이 없다’고 하셨던 『대순지침』의 말씀처럼,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남을 존중하며 배우고자 하는 해원상생의 진리에 대한 자각이 전제가 될 때, 끊임없는 포덕, 교화, 수도 속에서 진리에 대한 확신에 이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오로써 깨달음을 열어나감’을 통해 완성에 이르는 과정 또한 참고할 만한 필요가 있다.지눌의 돈오점수론은 돈오를 강조하는 같은 선불교의 돈종 내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최근에는 지눌과 같이 깨달음[解悟]를 돈오로 보면서 돈오 이후의 점수로서 완성을 기하는 돈오점수 수행론은 정통 간화선이 아니라는 돈오돈수론 으로 부터의 비판이 그 한 예이다. 이 비판에 따르면 지눌도 만년에야 간화경절문을 인정하면서 돈오점수를 부정했듯이, 화두수행을 통해 일단 깨친[頓悟] 이후에는 더 이상 수행이 필요 없기에 간화선 이외의 다른 수행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지이다. 

 

하지만 지눌이 마지막으로 발표한『간화결의론』및『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서 정리된 사상에서는 간화선을 통한 돈오 이후 더 이상 수행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12) 오히려 다양한 수행법을 인정함으로써 최상근기의 수행자 뿐만 아니라 많은 점수가 필요한 많은 수행자들을 포용하는 회통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돈오돈수론과 대비된 지눌선의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 다음 호에서는 지눌의『간화결의론』·『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및 성철의 『선문정로』를 중심으로 그의 세 번째 깨달음에 근거한 선수행의 특성과 그 적실성(適實性)을 선종사의 맥락 속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12) 현재 화두 중심의 간화선을 표방하는 한국 불교 수행의 근간은 도의(道義) 선사에 
    의해 형성된 한국 선종의 중흥조로서 평가받는 지눌이『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및『간화결의론』에서 제시한 수행법은 성철스님의 ‘무자화두’ 중심의 간화선과는 
    다르다. 첫 번째 해오와 완전한 깨달음인 증오를 구분하여 돈오인 증오 이후에는 
    수행이 필요 없다는 돈오돈수의 수행론보다는 돈오 이후에도 점수를 강조하는 지눌
    의 수행론이 상근기가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대승불교의 전통이나 우리 
    도의 정신에 한층 가깝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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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과 성철의 돈오점수·돈오돈수 논쟁: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간화결의론』·『선문정로』를 중심으로

연구원  김태수  

 

1.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에 나타난 지눌의 선수행관

 

지난 호에서는『권수정혜결사문』·『수심결』 등 지눌 초기저작들에 나타난 돈오점수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지눌의 만년 저작인『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와 그의 사후 출간된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등에 나타난 선수행관을 살펴본 후, 지눌의 돈오점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돈오돈수관을 주창한 성철(性徹, 1912~1993)의 비판을『선문정로(禪門正路)』를 중심으로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우선, 지눌의『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은 그의 저술 가운데 선(禪)의 깨달음과 수행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저서로서 지눌 전체 사상을 통괄하는 역작이다. 이는 선교일치론을 세운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의『법집별행록절요』1)에 대한 지눌의 주석서다. 이 저작은 17세기 전반에 정비된 강원의 승려 교육과정인 이력과정(履歷科程)에서 교학을 방편으로 선을 결합한 사집과(四集科)의 주요 과목이기도 했다. 한국 불교가 선을 표방하면서도 화엄을 정점으로 한 교학과 간화선 수행방식을 병립시킨 선교겸수 전통을 확립시킨 데에는 여기서 제시된 지눌의 수행론이 사실상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 법집별행록절요 : ‘법집(法集)’은 ‘가르침(法)을 모아놓은 선집’이라는 뜻이고,
   ‘별행(別行)’은 ‘별도로 출간함’ 의 뜻을 ‘절요(節要)’는 ‘요약’을, ‘병입사기(幷
   入私記)’는 ‘함께 포함시킨 사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이 저작에서 지눌은 규봉종밀의 사상과 연관된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 및 북종·우두종·홍주종·임제종의 중국 4대 선에 대해 소개하면서2), 하택신회의 공적하고 신령스러운 지혜[空寂靈知]에 기반한 마음 이론 및 종밀의 수행론을 발전시킨다. 또 다른 한편으로 종밀과 달리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을 통한 화엄적 돈오의 길을 제시하면서, 그에게 세 번째 깨달음을 주었던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의 영향 아래 종밀이 접하지 못했던 경절문 화두 참구의 길을 제시한다.

2) “홍주종은 돈오문에는 가깝지만 정확히 들어맞지 않고, 점수문에는 완전히 어긋난다. 
   우두종을 돈오문은 반쯤 알았지만, 점수문에는 어긋남이 없다. 북종에서는 다만 점수
   를 말하고 돈오문은 없으므로 닦음이 진정한 것이 아니다. 이에 비해 하택종에서는 
   먼저 돈오하고 그에 의지해서 닦아 나간다. …그러므로 말세에 마음을 닦는 이들은 
   먼저 하택이 가르친 말의 가르침으로, 자기 마음의 성(性)ㆍ상(相)ㆍ체(體)ㆍ용(用)
   에서 판단하고 택하여 공적에도 수연에도 걸리지 않은 진정한 이해를 얻은 후에 홍
   주ㆍ우두의 두 종지를 살펴보면 꼭 들어맞을 것이다.” 한편, 종밀의 사상은 ‘교를 통
   해서 마음을 깨달으려는’ 이들에게 휼륭한 관행의 귀감이 된다고 본다. 선 수행자들
   이 우선 선에 대한 확실한 지적 이해를 지니는 것을 중요시 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본래 마음인 공적영지심(空寂靈知心)에 대한 지해(知解, 깨달아서 앎)를 먼저 갖추고 나서 수행하는 돈오점수의 길과 이에 대비하여 돈오돈수의 기반이 되는 경절문을 함께 제시하면서, 경절문이 돈오문의 자성정혜를 능가하는 경지인 무심합도문(無心合道門)이라는 점을 천명한다.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에서 제시했던 ‘정혜쌍수(定慧雙修)’ 및 원돈신해문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무심’의 경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간화경절문은 크게 볼 때, 돈오점수의 과정을 거친 이후 마무리 단계의 수행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지해를 떨쳐버리기 위해 화두를 참구하는 방식과 돈오점수 과정 없이 직접 화두로 뛰어들도록 하는 수승한 근기의 수행자를 위한 처방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무심을 바로 깨달아 어디를 가나 걸림이 없는 사람은 장애 없는 해탈지가 나타나기 때문에”, 수행자가 번뇌를 떠나는 문인 이 무심합도에 이르기 위해 경절문을 통해 들어가게 하려는 취지는 동일하다. 

 

그런데 이 무심합도는 선정과 지혜의 구속을 받지 않는 경지로서 다음과 같은 두 단계의 경절문 수행법으로 제시된다. “말세에 수도하는 사람은 우선 진실한 지해로 제 마음의 진실과 허망과 생사의 밑과 끝을 환히 가리어 결정하고 난 후, 세밀하고 상세히 참구하여 몸을 빼어낼 곳을 찾게 되면, 이른바 책상 네 다리가 땅에 꼭 붙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아서 삶과 죽음에 나오거나, 들어가거나 큰 자유를 얻을 것이다.” 

 

2. 『간화결의론』에 나타난 지눌의 선 수행관

 

한편, 지눌 만년의 선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관점을 한층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는 저작은 『간화결의론』이다. 이는 그의 사후 직제자 혜심(慧心, 1178~1234)에 의해 출간되었는데, 여기서 지눌은 수행자의 단계를 삼현문(三玄門)으로 설명하면서 이에 따른 간화선 수행체계를 (1)원돈문/(2)참의(參意: 뜻 새김)/(3)참구(參句: 말 새김)의 단계로 제시한다. 

 

지눌의 설명에 따르면 선 수행의 세 단계 가운데 첫 단계인 초현문은 체중현(體中玄)3)이고, 두 번째는 구중현(句中玄)4)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로 생사와 지해(知解)의 장애인 쇄락(洒落)한 지견5)(知見)을 벗어나지 못할 때 필요한 것이 세 번째 단계인 현중현(玄中玄)6)으로 구중현의 쇄락한 지식과 견문을 부수는 공능으로 강조된다. 즉, 여기서 ‘삼현을 시설한 것은 병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 각각의 수행단계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3) 체중현(體中玄) : 유심(唯心)과 유식(唯識)의 도리에 의거하여 들어가는 첫 현문(玄門)
   으로 원교(圓敎)의 사사무애(事事無碍)에 해당한다. 
4) 구중현(句中玄) : 자기 자신의 본래성의 쇄락한 지견에 의거하여 초현문의 불법지견을 
   부수는 것이다. 이 오묘한 문에도 경절문인 ‘뜰 앞의 잣나무,’‘마 세근’ 등의 화두가 있다.
5) 쇄락한 지견이란 ‘흔적 없이 평등하고 항상한 상쾌하고 깨끗한 言句’로써 하여금 지식적
   으로 ‘알고 보는 것’, 혹은 지식과 견문을 뜻한다. 
6) 현중현(玄中玄) : 침묵, 방망이로 때리기, 소리 지르기 등의 작용을 세워 구중현의 쇄락
   한 지견을 부수는 것이다.

 

(1)수행체계 상의 첫 단계는 ‘자신이 부처’ 임을 깨닫는 원돈신해이다. 이를 거쳐, 

(2)둘째 단계인 참의(參意)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수행에 필요한 화두와 관련한 제반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방식의 화두 참구(參究, 참선하여 진리를 찾음)는 수행과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규범적으로 적용하는 원돈문의 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 지눌이 원돈문과 참의의 공능을 분명히 인정하는 이 점은 후에 성철에 의해 비판된다. 

(3)세번째 단계인 참구 또한 성철은 사구(死句)로서 비판한다. 이와 달리, 지눌은 ‘활구(活句)가 사구를 기초로 사구를 버리듯, 참구(參句)는 원돈문의 지혜를 기초로 해서 참의를 거친 후 이를 벗어던지는’ 구도로 설명한다. 화두를 드는 두 번째 단계인 참구는 뜻을 새기는 데 그치지 않고 ‘온몸으로 일심을 증득하며 반야지혜를 발휘하여 넓고 크게 유통시키는 것’으로 그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눌은 돈교(頓敎)나 원교(圓敎)와 구별되는 간화의 위상을 인정했다. 대혜선사를 인용하면서 현수국사 법장(法藏, 643~712)과 같이 화엄 돈교의 꽉 막힌 도리에 막히지 않고, 학인으로 하여금 화두를 참구케 하여 열 가지 선병(禪病)에 걸림 없이 곧바로 깨치게 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성철의 입장과는 달리 지눌은 ‘원돈문의 언교가 비록 사구이기는 하지만 결코 무용지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초심자들은 활구를 참구할 수 없고, 사구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원돈신해의 여실한 언교가 황하의 모래알처럼 많지만 이를 사구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을 지적인 이해에만 몰두하도록 하는 장애가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아울러 초심자들은 아직 경절문의 활구를 참구할 수 없으므로 근기에 맞는 원만한 말들을 보여 주어 믿고 이해해서 물러서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지눌의 선수행관을 개관해 보았다. 살펴보았듯이 그의 선수행관이 자신의 첫 번째, 두 번째 깨달음에 근거한 성적등지문과 원돈신해문을 두 축으로 했다고 해서 세 번째 깨달음인 간화경절문을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고 근기를 지닌 수행자들을 위해서는 자성정혜(自性定慧) 및 나아가 간화경절문을 제시했다. 이로써 최상의 근기를 지니지 못한 일반 수행자들을 위해 성적등지문과 원돈신해문에 입각한 돈오점수론을 근기에 맞게 제시한 삼원(三元)수행 체계를 완성시킨 것이다. 

 

이렇듯 지눌이 진리적 이해에 입각한 해오(解悟)·견성(見性)을 돈오로 보는 돈오점수를 강조했다고 해서 돈오돈수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현실적 고려에서 규봉종밀의 입장을 택하여, ‘돈오돈수 역시 과거 생까지 미루어 보면 먼저 깨닫고 후에 닦는 근기(先悟後修)’라고 하여 돈오돈수를 돈오점수의 틀 안에 포함시키는 구조를 제시한 것이다. 

7) 해오(解悟) 즉 요해각오(了解覺悟), 곧 ‘도리를 깨달아 아는 것’으로서 지눌은 해오를 
   곧 돈오로 보는 데 비해, 성철은 ‘진리를 증득하여 깨달음’을 뜻하는 증오를 완전한 
   깨침인 돈오로서 ‘지혜적 깨달음’인 해오와 구분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철은 그의『선문정로』서문에서, ‘견성이란 오직 궁극적 깨달음, 즉 증오에 도달할 때에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구분하면서, 해오ㆍ견성을 돈오로 보는 지눌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돈점논쟁이 시작된다. 그럼 이제 성철의 지눌 수행론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 비판의 적실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8) 돈점논쟁은 지눌의 돈오점수에 이의를 제기한 성철(性徹, 1912~1993)이 오랫동안 지지
   되어 왔던 지눌의 종합적 접근 방식을 이단이라고 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돈오점수가 
   아닌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선종 수행의 관행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3.『선문정로』에서 나타난 성철의 지눌 수행론 비판

 

『선문정로』에서 성철은 “선문에서의 견성이란 진여자성을 깨친 구경각(究竟覺)11을 말하며 이 견성을 돈오라고 하므로, 돈오는 곧 성불이어야 하는데 보조 지눌은 초보적 깨달음인 해오를 견성이라고 주장했다.”고 비판하면서 돈점논쟁을 촉발시킨다. 그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교가(敎家)에서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의 원칙에 따라 해오(解悟)에서 새로 시작하여 3현(賢)과 10성(聖)의 여러 지위를 차례로 닦아 올라 궁극적으로 증오(證悟), 즉 묘각(妙覺)에 들어가지만, 선문의 깨달음인 견성은 한순간에 대각원통(大覺圓通)을 완전히 깨치는 구경각(究竟覺)이다. 이처럼 견성이란 궁극적인 깨달음인 증오에 이를 때만 쓸 수 있는 말이므로 부분적 이해에 기반한 해오가 아니라 삼현십성(三賢十聖)을 초월하여 무여열반의 무심지(無心智)인 증오에 곧바로 들어감을 철칙으로 하니, 이는 선문에서 외치는 ‘한번 뛰어 곧바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감[一超直入如來]’이다.”

 

2.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으뜸가는 이는 삼현십성을 한 생각에 뛰어넘어 완전히 깨친다. 따라서 ‘견성 방법은 불조(佛祖) 공안을 참구함이 지름길이며, 경론을 익히고 외우는 것만큼 수도에 장애가 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지눌은 “경전과 조사들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을 역설했으므로 지해(알음알이)이며, 정법에 대한 최대의 장애를 조장한 지해종도(知解宗徒, 수행은 하지 않고 지식과 견해만을 중시하는 무리)이다. 깨달은 후 깨끗한 마음을 원래대로 지켜나가는 보임[悟後保任]은 닦음으로써 요청되지 않고 무애자재한 해탈일 뿐이다.”

 

3. “선문의 바른 수도법은 돈오돈수, 즉 단박에 깨닫고 수행을 마치는 것이다. 그런데 지눌은 먼저 해오로서 깨닫고 그 다음에 점차적으로 닦는 돈오점수론을 제시하여 삿된 지식과 나쁜 견해를 주장했다. “돈수라야 돈오요, 돈오면 돈수라야 한다. … 돈오 이후에 여전히 점수가 필요하다면, 이는 돈오가 아니다.”

 

4. “한국 선종사에서의 참선은 마조·황벽·임제·대혜로 이어지는 돈오돈수적 공안선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신회·종밀·지눌로 이어지는 돈오점수적 화엄선을 따르므로, 겉은 임제이지만 속은 종밀인 셈이다. 겉으론 화두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돈오점수’ 사상이므로 이단잡설의 혼란에 빠져 있다.”

 

4. 성철의 문제제기 적실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

 

성철의 문제제기는 해방 이래 비구-대처간의 갈등 속에서 타성에 젖은 수행에 경종을 울리고 청정한 수행정신을 고무시키기 위해 정통성을 확립하려 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던 맥락 속에서 그 비판의 의의를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가 여래 이래의 지관(止觀) 수행 전통의 맥락을 이은 정혜쌍수에 기반한 돈오점수론을 비판한 성철의 근거는 그다지 적실해 보이지 않는다. 

 

요약적으로 볼 때, 성철은 보조 지눌에 대해 ‘해오에 의지해서는 증오에 이를 수 없다.’ 는 논지로 비판을 전개했다. 하지만 지눌은 성철이 비판하듯이 해오와 돈오를 혼동하여 돈오점수의 돈오를 증오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서는 “돈오점수라고 하니 이는 해오에 해당된다.”고 하였고, 『원돈성불론』에서도 “깨달음이란 먼저 닦은 후에 깨닫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해오이다.” 하고 하였다. 오히려 해오와 돈오를 구분하면서 증오에 이르기 위해서 부단한 예비수행을 전제로 하는 성철의 입장은 ‘먼저 해오를 이룬 후,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구경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지눌의 의미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혹은 해오를 비판하는 성철의 돈오돈수를 시간적 인과적 개념이 아니라 궁극적 깨달음을 재차 강조하려는 논리적 맥락에서 볼 경우, 양자의 수행론은 유사한 지향점을 갖는다.  

 

이렇듯, 지눌이 해오를 증오로 혼동한 적이 없었고 해오와 증오의 단계를 구분해서 보지도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성철의 비판 근거가 적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지눌이 ‘지견(知見)의 병통을 털어 버리기 위해 용맹 정진해야 한다.’ 고 강조한 점을 상기해 본다면 지해의 성격을 지닌 깨침이라고 해서 ‘해오가 증오가 아니다.’라는 논지 아래 돈오점수론을 이단으로까지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돈오돈수론을 지지하는 입장인 박성배 교수는 돈오돈수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는 법성·법정 스님 및 김호성 교수 등의 비판에 대해 반론하면서 ‘보조 스님이 번뇌 앞에 무력한 해오라고 불리는 깨달음과 번뇌를 극복한 증오라는 깨침의 구별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수증론에 경지론을 포함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지눌은 어느 저작에서도 해오와 증오를 구별해서 경지론을 전개하지 않았다. 즉, 지눌은 근기에 따른 수행법의 단계를 제시하기는 했지만, 성철과 같이 깨달음[解悟]과 깨침[證悟]의 단계를 설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눌은 해오를 단순한 지식이 아니고 부처님의 탄생으로 강조했다. 단지 인간이 본래 구족한 본래성을 자각하는 해오가 근기에 따라 지해(알음알이)로 될 수 있기 때문에 수행단계 및 근기에 따라 경절문을 제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선문정로』에서 지눌에 대한 성철의 비판을 보면 이러한 오해는 한층 명확해진다. 이병욱 등이 지적하듯 “보조가 만년에 돈오점수를 부정하고 간화선[頓修]로 나아갔다.” 고 하거나 “돈오점수만 잘 수행하면 여실하게 간변하고 본말을 잘 요해하며, 그것으로 성현이 될 수 있다.” 고 하면서 간화선을 간과했다는 성철의 비판은 『간화결의론』을 잘못 읽거나 다른 관점에서 지나치게 단순화한 결과로 보인다. 

 

지눌이 간화선을 간과했다는 이러한 주장은 한국 선종사의 주류가 돈오돈수/증오점수를 주창한 공안참선 위주의 임제선 일색이었다는 주장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한국 간화선의 법맥은 성철의 임제선 유일주의 해석과는 달리, 신라의 구산선문(九山禪門) 이래 화엄선·염불선·우두선·하택선 등이 다양하게 존재하다가 고려말 원나라 몽산덕이(蒙山德異, 1231~1308)의 ‘무(無) 자(字) 화두’ 위주의 간화선만을 절대화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급기야 성철의 ‘간화선 및 증오 지상주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히려 간화선을 처음 소개한 지눌 이후, 그의 후계자인 혜심은 대혜종고의 간화선법을 알리는 『구자무불성간화론(狗子無佛性看話論)』을 저술함으로써 화두 참구법을 발전시키면서 간화선을 계승·발전시켜 나갔는데, 이 당시에도 간화선은 유일한 수행문이 아니었다. 혜심은 화두를 위한 공안집인 『선문염송(禪門拈頌)』을 편집했고, 그가 총괄하던 수선사에서 대혜종고의『정법안장(正法眼藏)』이 간행됨으로써 간화선법이 지눌의 계통에서 이어져 내려왔지만 여전히 근기에 따른 균형 있는 수행문 체계를 유지해 나갔던 것이다. 나아가 지눌이 지향했던 방향에서 많이 달라진 조선 불교에서 이해한 삼문, 곧 간화문·원돈문·염불문에서도 “원돈신해문에 의해 여실지견(如實知見)을 세운 후, 간화선에 의해 지해의 병을 제거하여 활로를 제시하자”나 “교를 버리고 선으로 나아가자”[사교입선(捨敎入禪)]라는 방식이 선수행의 기본과정으로 제시될 때에도 지눌의 저술은 승려들의 교육을 위한 기본 지침서로 포용되었다.9)

9) 최연식 교수에 따르면 성철은 원간섭기에 수용된 몽산덕이의 사상적 영향으로 대혜
   종고에서 비롯된 무(無) 자 화두에 의한 간화선만을 절대화하여, 이 수행법과 본분 
   종사에 의한 인가만을 정통으로 인정했고, 이에 나옹을 이어 중국에 다녀오기만 했
   을 뿐인 태고 보우를 본분종사로서 한국선의 종조로 인정한다. 최 교수는 한국의 
   선이해의 폭이 좁아진 이유로 고려말이래로 몽산덕이의 저술을 제외한 다른 간화선 
   관련 서적, 즉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와 중봉명본(中峯明本, 1238~1295)
   의 저술이나 중국ㆍ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선종 서적으로 인정되던 『무문관(無門關)』
   등도 유통되지 않았던 점을 든다.

 

따라서 ‘지눌이 말년에 간화선으로 충분하게 전회하지 못했다는 성철의 비판은 적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눌 수행론의 다양성은 석가여래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중생들의 병 치유에 관심을 둔 것이기에 충분하게 전회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근기에 따른 다양한 수행법을 포괄한 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눌의 의도는 화두 이외의 이론에 의한 깨달음 또한 포괄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뿐만 아니라 하택신회나 규봉종밀의 선사상까지도 포괄하는 회통적 입장이었지 ‘벽이단(闢異端)’을 주창하는 종파주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 점은 종파를 초월해 다양한 이론과 수행을 겸용했던 진표·원효·의상을 이은 한국불교의 주된 흐름으로서 고려말 몽산덕이의 영향 이전의 간화선 사상에 또한 적용되는 정신이라고 본다.   

 

다만, 지눌이 당시의 타성에 젖은 당시 사회의 수행 경시 풍토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돈오점수론의 기치를 높이 들었듯이, 성철 또한 해방 이후 타성에 젖은 선 수행 풍토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돈오돈수론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 지향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철이 강조한 간화선 수행의 최고단계는 ‘동정일여(動靜一如: 활동하거나 가만히 있거나 한결같음)’와 ‘몽중일여(夢中一如: 꿈속에서도 한결같음)’를 넘어 ‘숙면일여(熟眠一如)’ 즉 “잠이 아주 꼭 들어서 꿈이 없을 때에도 한결같이 화두를 놓지 않는” 단계에 이르러야 ‘깨쳤다’ 고 보았다는 점에서 지눌의 수행정신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진표·원효·의상·지눌 등 한국불교의 근간을 이루었던 고승들은 한결같이 뼈를 깍는 엄격한 수행과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구제관에 입각한 회통적 입장에서 올바른 깨달음과 실천을 위한 수행론을 제시했다. 이렇듯, 고승들이 제시했던 돈오점수, 돈오돈수 등 그 수행법의 방식은 상이해 보이지만, 중생들에게 효과적인 수행과 깨달음의 길을 제시하려 했던 그 정신과 노력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귀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