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한국불교 논문및 평론

보살윤리의 성격과 그 기준

실론섬 2015. 6. 12. 19:40

보살윤리의 성격과 그 기준

「보살지」 를 중심으로

안성두/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연구원.

 

 

1 들어가는 말. 

2 보살지 에서 제시된 계의 항목. 

3 보살지 의 ‘가벼운 잘못’ 중 항목 9의 분석. 

4 보살의 행위와 선교방. 

5 보살윤리에 있어 자리와 이타의 위계성. 

6 요약과 맺는 말.

 

요약문 

본고에서는 인도대승불교에서 보살윤리를 최초로 정형화시킨 보살지 를 중심으로 보살윤리의 내용과 기준을 살펴 본 것이다. 대승의 보살계는 단순한 행위의 금지규정을 넘어 보살의 사고와 의향 등의 넓

은 의미에 있어 정신적 태도와 사회적 윤리를 포괄하고 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행위자의 의향과 대비를 수반한 선교방편이 제시되고 있다. 나아가 자리와 이타의 문제에 있어 우선적으로 수행되어야할 경우는 무엇인가의 기준을 보살지 의 기술을 통해 살펴보았다.

 

1. 들어가는 말

 

보살의 이념이 대승불교를 특색지우는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보살이란 bodhi-sattva의 음사로서 bodhi-sattva는 일반적으로 ‘覺有情’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보리를 통해 특징지어지는 중생’ 또는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중생’일 것이다. 이 말의 티벳어 번역은 'byang chub sems dpa'로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가진 자’의 의미이다. 이러한 보살은 대승의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반야와 방편(또는 대비)을 겸비한 존재로 위없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기술되고 있다. 그는 반야를 통해 제법의 무자성, 공성을 깨우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소승의 성자들처럼 열반을 향해 갈망하는 자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체지자의 상태를 획득하기 위해 삼아승기겁에 걸쳐 대비심을 갖고 이타행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보살관념이 출현하는 본생담과 같은 초기의 문헌들은 타인을 구제하기 위한 보살의 무수한 영웅적인 행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초기의 대승문헌들은 이타행에 초점을 맞추면서 열반의 획득이라는 自利만을 추구하는 소승의 성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범어술어를 티벳어로 번역하고 그 의미를 확정지은 sGra sbyor Bam po gnyis pa(二卷本譯語釋, ed. Mie Ishikawa, 1990, p.34)에 따르면 bodhi-sattva는 Bahuvrīhi 복합어로서 “그들의 satvan(존재?)가 보리를 향하고 있는 자”를 의미한다. bodhi는 byang chub으로 sattva는 sems dpa' ba(“용감한 마음”) 또는 snying stobs che ba(“큰 힘을 가진 마음”)로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보살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는데 한결같이 수렴되어 있고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당연히 세계의 실상에 대한 존재론적 모델이나 실상을 획득할 수 있는 인식론적 모델의 변화를 수반하고 있겠지만, 어떤 점에서 대승불교도의 실제적 생활을 규제하는 보살계에 있어서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확실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할수 있다. 사실 이러한 기대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승불교에서 戒의 개념은 단순히 계정혜 삼학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를 넘어 수행도 전체를 포섭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즉 보살계는 단순히 어떤 행위를 규제하는 규범의 의미를 넘어 보살의 사고와 행위 전반을 특징지어주는 개념으로 발전적으로 사용되었다. 쫑카파에 따르면 “성문에게 있어 삼학이 처음과 중간, 끝의 선법을 나타내는데 비해 보살에게 있어 계 자체가 그 모두를 포함한다.”

 

반면 초기불교에 있어서 그 윤리적 항목들은 고행주의적인 사문전통에 따라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해탈을 추구하려는데 초점이 놓여 있었다고 보인다. 물론 그러한 태도가 매우 고결한 자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대승의 관점에서 볼 때 초기불교 이래의 윤리적 태도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면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가 사회적, 제도적 변화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대승계를 다룰 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바로 수행자의 정신적 의향(āśaya)이나 태도라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 점에서 여기서 보살윤리라고 부르는 보살계는 좁은 의미에서 윤리를 넘어 하나의 세계관이나 우주관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에서 보살의 삶의 전망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기경전에 있어 慈心(maitrī/mettā)의 가장 중요한 기능의 하나는 수행자들이 외딴 곳에서 홀로 수행할 때 다른 사나운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데 있다. 스스로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 자애로운 마음을 낼 때 다른 생명체들도 그런 마음에 감화되어 그와 일종의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관념이 그것이다. 慈의 범어인 maitrī가 원래 mitra(친구)에서 파생되었다는 것도 원래의 수행론적 전통에서의 그 역할을 추정케 한다. 반면 대승보살에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존재들에 대해 그러한 자심을 내려고 하는 의향, 그들을 해롭게 하지 않으려는 의향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인다. 사무량심의 경우에 있어 자심등을 우주 전체에로 확장시키듯이 자신의 선한(kuśala) 의향을 내외로 확장시키는 태도가 보살윤리의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보살윤리라고 할 때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샨티데바일 것이다. 샨티데바는 티벳전승에 따르면 귀류중관파(Prasaṅgika Mādhyamika)에 속하는 시인이자 철학자로서 그의 『입보리행론』은 중관학파 뿐 아니라 대승불교 일반의 보살행의 원천으로서 애송되고 있는 아름다운 시이다. 이 저작은 인도와 티벳불교에서 보살사상의 실천과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미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다. 샨티데바는 이 책에서 보살행의 근거를 두 가지 심리적 원리 위에 정립시키려고한다. 하나는 자타의 동일성에 의거한 행동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즐거움을 타인의 고통과 교환하려는 적극적 앙가주망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피하려고 원한다. 따라서 보살은 자신을 보호하듯이 타인을 보호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고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살은 자기중심적으로 세계를 보는 대신에 세계중심적인, 타인중심적인 관점에서 자타의 동일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 단계에서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고통과 기꺼이 교환한다. 『입보리행론』에서 이것은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성취하기 위한 최고의 비밀이라고 선언되고 있다. 

 

이러한 교환이 가능한 것도 모든 법에 정해진 자성이 없고, 공성이기 때문이지만, 우리에게 주목되는 것은 보살의 윤리를 바로 무자성에 입각하여 정립하는 샨티데바의 설명이다. 타인을 자신과 동일하게 여겨야 한다는 윤리적 명제는 모든 고등한 종교와 철학에 공통된 것이다. “네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나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처럼 모든 윤리적 행위의 기초에는 자타의 동일시라는 도덕적 황금률이 근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승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왜 자신이 타인과 동일한가의 근거에 대한 심원한 철학적, 심리학적 설명들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샨티데바에 있어 보살윤리의 근거는 실로 일체제법의 무자성이라는 중관학파의 핵심적 주장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하나의 소박한 의문이 든다. 보살계가 단순히 하나의 생활상의 규칙을 넘어 대승불교도의 삶의 의향을 드러낸 것이라면, 귀류파에 속하는 샨티데바의 보살윤리와 유가행파의 보살윤리는 다른 근거를 갖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양 학파 사이에 사상적 차이가 인정되는 것처럼 유가행파와 중관파의 보살계는 상이한 것이라는 사실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티벳의 전승에 따르면 유가행파와 중관학파의 사상적 차이는 보살계에 있어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 선 대표적 인물로 사캬판디타를 제시할 수 있는데, 그는 『세 가지 율의의 구분』(sDom gsum rab dbye)에서 두 학파가 계에 대해 상이한 윤리적 파악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설명에 따른다면 유가행파의 보살윤리는 보살지 에 나타난 보살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이것이 다시 Candragomin(7세기)의 『보살계 20송』(Bodhisattvasaṃvaraviṃśaka)과 그에 대한 Śāntarakṣita(寂護, 8세기)에 주석에 의해 계승된 반면에, 중관학파의 보살윤리는 Śāntideva(寂天)의 『입보리행론』(Bodhicaryāvatāra)과 『대승집보살학론』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대승집보살학론』에서의 18종의 근본적 잘못(mūla-āpatti)과 관련해 보살의 윤리가 열거되어 있는데, 이것은 『허공장경』의 목록에서 따온 것에 보살지의 4종 중죄를 덧붙이고 다시 대방편경의 내용을 덧붙여 구성한 것으로 보살지 의 그것에 비해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고 평가되고있다.(Tatz(1986) p. 30; p. 168) 그 항목은 1. 자신을 상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 2. 시기심 때문에 물질적 보시와 법시를 하지 않는 것. 3.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4. 대승의 가르침을 버리는 것. 5. 삼보에 속한 재물을 훔치는 것. 6. 삼승의 가르침을 포기하는 것. 7. 비구나 비구니를 해치는 것. 8. 오역죄의 하나를 범하는 것. 9. 전도되고 해로운 견해에 집착하는 것. 10. 도시와 삶의 공간을 파괴하는 것. 11. 심원한 가르침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자에게 대승의 가르침을 설함에 의해 그들이 오해하여 단견을 일으키거나 붓다의 가르침을 허무주의적으로 간주하게 하는 것. 12. 대승을 배우는 자로 하여금 소승의 길을 구하게 하는 것. 13. 제자를 소승의 별해탈계로부터 이탈하게 하는 것. 14. 성문승과 연각승에 대해 폄하하는 말을 하는 것. 15. 소유와 명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고 타인의 공덕을 열등한 것으로 말하는 것. 16. 최종적인 실재성에 대한 직접적 인식을 제시하는 것. 17. 사찰에게 기증된 보시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 18. 수행자로부터 물질적 근거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도불교에 있어 두 학파의 보살계의 상이성 여부는 본고에서 검토되지 못했고, 그것은 아마 추후의 과제가 될 것이다. 지면상의 한계와 시간적 제약 때문에 본고에서는 다만 인도불교에서 대승보살계를 처음으로 확립한 보살지 의 기술을 중심으로 보살윤리의 성격에 대해 몇 가지 점을 해명하고자 한다. 특히 무차별적인 이타성의 강조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관한 보살지 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여기서 이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는지를 검토해 볼 것이다. 그것은 보살행의 구체적 기준을 정하는 문제로서 정해진 교단 내에서 생활하는 대승불교도들에게 있어 실질적으로 매우 긴급한 과제로서 보이기 때문이다.

 

후대에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의 유행을 통해 인도불교에서 「보살지」 의 영향은 축소되었지만, 불교에 있어 학파의 성립이 독립된 계율의 확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보살지」 「계품 」의 성립을 통해 비로소 대승불교가 독립된 승단을 가진 학파로서 존속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더욱 영향사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보살지 에서의 보살계의 설명은 중국불교에서의 보살계의 확립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보살지 에 나타난 대승의 보살윤리에 대한 전반적 검토는 현금의 한국불교계의 상황에서 매우 필요하다고 보인다.

 

2. 「보살지」 에서 제시된 계의 항목

 

보살계는 인도불교사상사에 있어 보살지 계품 에서 처음으로 체계화되었는데, 이를 통해 대승보살도를 핵심으로 하는 대승학파가 불교승가 내에서 하나의 독립된 戒壇으로서 확립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보살지 는 세 번 한역되었는데, 『유가사지론』에 편입되기 이전에 독립된 경전으로 유통되었다.

 

(1) 『菩薩善戒經』 9권, Guṇabhadra (求那跋多羅) CE 341년

(2) 『菩薩地持經』10권, Dharmarakṣa (曇無懺) CE 418년

(3) 『유가사지론』 내 菩薩地 , 玄奘 CE 648년

 

「보살지」와 『섭대승론』에서 一切戒는 律儀戒와 攝善法戒및 饒益有情戒의 삼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여기서 율의계는 別解脫戒로서 다른 두 가지의 계의 기초가 되며, 다른 두 계는 그것을 대승적으로 보충해 주는 것이다. 별해탈계가 주로 부정이나 금지의 방식으로 계를 규정하는데 비해, 다른 두 계는 긍정적 방식으로 보살의 행동방식과 의향을 규정짓고 있다. 즉 초기불교의 별해탈계에서는 깨달음이라는 최고의 목적에 전념하는 수행자가 승가의 공동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섭선법계에서 대보리의 증득을 위해 모든 선법을 모으는 것이다. 여기서 선법이란 주로 6바라밀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익유정계는 대승보살이 다른 중생의 행복을 위해 병자를 구하고 방편으로서 도움을 주는 등의 중생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요익유정이란 단순히 가르침을 베푸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타적인 정신적 태도를 넘어 실질적인 면에서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도 포함하고 있다. 보살지 는 이를 11종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병자를 돌보는 것, 세간적이고 출세간적 목표에 대해 올바르게 설하는 것, 받은 것을 알고 은혜를 갚으려는 자세, 맹수나 왕, 도둑, 물과 불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는 일, 불행에 빠진 자들을 위로하는 것, 가난한 자에게 보시하는 일, 자애를 갖고 제자를 이끌고 그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제공하는 일, 타인의 요구에 응하는 일, 타인의 좋은 특성을 칭찬하는 일, 불선한 일을 하는 타인으로 하여금 불선한 일을 버리고 그들을 선한 상태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연민심을 갖고 꾸짖고 처벌하고 추방하는 것, 불선한 일의 결과로서 지옥 등을 신통력을 갖고 보여주는 일이다. 이와 같이 요익중생계의 항목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정신적 의향뿐 아니라 사회적 이타행의 항목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살이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의 행복에 대해 우선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보살의 윤리를 처음으로 정형화시켜 규정해 놓은 보살지 계품 에 잘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서 계의 항목들은 4종의 무거운 잘못(他勝處法, pārājayikasthānīya-dharma)과 43종의 가벼운 잘못(違犯, āpatti)13)으로 분류되어 열거되고 있다.

 

4종의 무거운 잘못을 요약해서 제시하면

(1) 이익과 명성을 탐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타인을 경멸하는 것.
(2)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 인색함 때문에 곤궁하고 의지할 바 없는 사람에게 재물을 보시하지 않는 것과 가르침을 베푸는 것에 인색하기 때문에 적절한 방식으로 배우고자 청하는 사람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 것.
(3) 분노에 차 있을 때 거친 말을 할 뿐 아니라 손이나 발, 진흙덩어리와 칼, 몽둥이를 갖고 중생을 상하게 하며, 속으로 강한 분노의 생각을 품고 타인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원한을 풀려고 하지 않는 것.
(4) 보살장을 부정하고 사이비 정법을 세워 이 사이비 가르침을 스스로 믿고 타인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 네 가지 무거운 잘못은 보살의 서원과 어긋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차례대로 별해탈계의 네 가지 바라이죄(pārājika)에 대응한다. 즉 (1)은 사음에 대응하고, (2)는 도둑질에 해당되고, (3)은 살생에 해당되고, (4)는 획득하지 않은 정신적 성취를 얻었다고 뽐내는 것과 대응한다. 그렇지만 이들 보살계의 무거운 죄의 항목들은 별해탈계의 바라이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별해탈계의 경우 바라이죄를 한번 범했다면 비구는 승단으로부터 추방되어 금생 중에는 다시 불교승단의 일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즉 그것은 한번 훼손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반면 대승보살의 경우 비록 한 순간 이들 중죄중의 하나를 범했다고 해도, 그가 보리심을 완전히 끊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들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지 않는 한, 다시 보살계를 받아 서원을 세운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BoBh(D) 124, 10ff (T 30: 521a19ff); BoBh(D) 95, 11ff(T 30: 510c14ff). 여기서 보살의 自性戒(svabhāva-śīla)는 네 가지 특성에 의해 결합되기 때문이라고 설하고 있는데, 즉 ① 타인으로부터 올바로 [계를] 받고, ② 극히 청정한 의향을 갖고, ③ 범한 후에 다시 청정해지고, ④ 주의력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특히 세 번째 특성에 의해 보살이 설사 계를 범했다고 해도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또 그 잘못에 대해 참회한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발심에 대해서도 동일한 회복가능성이 인정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회복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긍정이야말로 대승불교의 가장 큰 정신적 태도의 하나라고 보인다. 이러한 것은 종성론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유가행파의 5종 종성론을 하나의 확정적인 선천적인 범주로서, 따라서 불변하는 것으로서 해석하는 후대 중국불교계의 입장은 보살지 의 유연한 입장에서 볼 때 받아들여 질 수 없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가벼운 잘못은 선법을 계발하지 못하거나 중생들의 행복을 성취시키지 못하는 경우이다. 보살지 는 43종의 잘못된 행위를 열거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그 행위가 죄가 되고 어떤 경우에는 죄가 되지 않는지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1) 불법승의 진실한 공덕을 찬탄하지 않는 것.
(2) 큰 욕심과 만족하지 못함을 통해, 이익 및 공경 등에 대해 탐착하는 것.
(3) 함께 법을 구하는 연장자와 덕이 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도 양보하지 않는 것.
(4) 타인으로부터 의복 등의 생활용품 등을 요청받았을 때 교만심에 빠져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5) 타인의 면전에서 보석 등의 보물을 얻을 경우 이를 받지 않는 것.
(6) 가르침을 구하는 타인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 것.
(7) 포악하고 계를 법한 중생에 대해 무시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무시하게 하는 것.
(8) 별해탈계에서 타인을 보호하고 또 신심을 일으키기 위해 정해 놓은 항목들은 성문들과 공통적으로 지킨다. 그렇지만 별해탈계에서 작은 이익이나 사업, 덜 방해받고 주하는 일에 관해서 죄가 된다고 정
해놓은 사항들은 성문들과 공통적으로 지키지 않는다.
(9) 보살이 선교방편을 갖고 본성적으로 죄에 속하는 행위를 했을 때에는 그 행위는 죄가 되지 않고 오히려 큰 공덕이 된다.
(10) 5종의 잘못된 생활방식(邪命)에 탐닉해 수치심이 없는 것.
(11) 흥분에 빠져 산란하여 적정을 즐겨하지 않고 유희를 즐기는 것.
(12) 보살은 삼아증기겁 동안 윤회생사하면서 대보리를 구해야 하기에 열반을 즐겨해서는 안되고 열반에 대해 거부해야 하며 번뇌와 수번뇌에 대해 두려워하여 단멸시키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
(13) 불신을 초래하는 악담을 스스로 절제하지 않는 것.
(14) 강력한 노력이 중생들에게 이익됨을 보지만 심적 우울함 때문에 그러한 노력을 행하지 않는 것.
(15) 타인들에게 모욕당했을 때 똑같이 모욕하고, 맞았을 때 때리는 것으로 앙갚음하는 것.
(16) 타인에게 잘못을 하거나 잘못된 행동에 의해 손해가 일어났을 때 상응하는 사과를 하지 않는 것.
(17) 타인이 잘못을 행하고 사과하러 왔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18) 타인에 대해 분노의 의향을 가지는 것.
(19) 공양하는 일에 탐착하여 애욕을 갖고 대중을 통솔하는 것.
(20) 게으름에 빠져 때를 가리지 않고 잠자기 좋아하고 눕기 좋아하는 것.
(21) 염착심을 갖고 세상사를 논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
(22) 심을 적정케 하고자 바라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청하지 않는 것.
(23) 이미 일어난 탐욕의 장애(蓋)를 받아들여 그것을 조복하지 않는 것.
(24) 4선정에 탐닉하여 그것에 대해 장점을 보는 것.
(25) 보살은 성문과 상응하는 법을 듣지도 말고 수지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26) 보살장이 존재할 때 보살장에 연구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성문장에 연구노력을 기울이는 것.
(27) 불설이 존재할 때 불설에 연구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비불교도와 세속적 논서에 연구노력을 기울이는 것.
(28) 보살의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비불교도와 세속적 논서에 익숙하며 기쁜 모습으로 즐겁게 연구하는 것.
(29) 보살장에 관해 심원한 요점들을 들은 후에 그 요점들과 그 의미 및 불보살들의 신통력에 관해 깊이 믿지 않고 비방하는 것.
(30) 염오된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의 앞에서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
(31) 자만심에 압도되어 정법의 청문과 논의와 결택을 가서 듣고자 하지 않는 것.
(32) 법사를 의도해서 경시하고 공경하지 않으며, 단지 문자에 의지하고 의미에 의지하지 않는 것.
(33) 중생들의 일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조력하지 않는 것.
(34) 중병에 걸린 중생을 만났을 때 봉사와 존경을 하지 않는 것.
(35) 현세와 내세의 이익을 위해 올바르지 않게 행하는 중생을 본 후에 올바른 도리를 설하지 않는 것.
(36) 도움을 받은 중생에 대해 은혜를 갚지 않고 은혜를 모르는 것.
(37) 친척과 재산이 상실된 고통받는 중생들의 비탄을 어루만져 주지 않는 것.
(38) 음식 등의 생활필수품을 구하는 자가 왔을 때 그것들을 주지 않는 것.
(39) 그룹을 이끌고 있을 때 수시로 올바로 가르치고 지도하지 않는 것. 물건이 궁핍하지만, 신심있는 바라문과 거사들의 앞에서 여법하게 의복과 음식 등을 공급하지 않는 것.
(40) 증오심을 품고 다른 중생들을 위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
(41) 타인의 진실한 공덕과 아름다운 모습, 바른 행위를 현양하지 않는 것.
(42) 꾸짖어야 할 중생이나 벌해야할 일을 한 중생들을 꾸짖지 않고 벌하지 않는 것.
(43) 마땅히 두려움에 떨어야할 중생들이나 또 인도되어야할 중생들이 믿음을 통해 보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양한 신통력과 위신력을 구비한 보살이 그들에게 공포를 주지도 않고 인도하지도 않는
것이다.

3. 「보살지」 의 <가벼운 잘못> 중 항목 9의 분석

현장역에 따른 43종의 잘못 중에서 제9 항목이 『보살지지경』의 서술에 빠져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후대에 편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사실 내용과 형식면으로 볼 때에 이 항목은 다른 항목에 비해 큰 차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술방식에 있어 다른 항목들은 염오된 마음으로 행한 죄와 염오되지 않은 마음으로 행한 죄와 죄가 되지 않는 경우를 구분하고 있지만 이 항목에는 그 구분이 보이지 않으며, 또 내용면에서도 여기서는 다른 경전의 설명을 전제하고 있는 예가 제시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이 항목이 분명 후대에 삽입되었을 것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항목이 삽입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항목에서 제시되고 있는 7종의 경

우를 분석해야만 할 것이다. 이 항목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비록 그것이 본질적으로 죄를 수반한 행위(sāvadya)라고 해도 보살은 그러한 형태의 선교방편(upāya-kauśalya)에 의해 그 [죄를] 행한다. 그럼에 의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공덕을 낳는다.”

 

여기서 죄를 수반한 행위는 살, 도, 음, 망어, 악구, 양설, 기어의 7종 죄로서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이 선교방편에 의해 이타적 목적으로 행해졌을 경우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공덕을 낳는다고 설한다. 여기서는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살, 도,음의 경우에 한정하여 보살지 의 설명을 도식화하여 설명해 보자.

 

일반적 죄                      살인                                           도둑질                                             음행
상황         * 도적이 많은 사람 또는 성문,              * 도적이 타인의 재물이나 승가와         * 음욕을 품은 여인이
                   연각, 보살등을 죽이려고 하거나          탑의 물건을 훔치려고 함.                     非梵行을 하고자 함
                   무간업을 지으려고 함.                       * 사원의 관리자가 승가와 탑의 
                * 왕의 높은 대신이 자비심 없이               물건을 훔쳐 즐기고자 함
                  사람들을 괴롭힐 때                                                                                                                                    
보살의      * 도적을 죽여 그 대신 스스로              * 도둑질한 물건을 향유하지                 * 재가보살은 증오심을
의향과        지옥에 떨어지는 업을 받고자              못하도록 다시 빼앗아 그것을                누그러뜨리고 공덕을
그 결과       자비심을 갖고 살해                              원주인에 되돌려 줌                               얻게하기 위해 자비심
                 * 그에 대한 자비심으로 그를               * 잘못된 업의 고통을 벗어나게                을 갖고 음욕행을 함. 
                    폐하거나 직위에서 축출                     하기 위해 애민심을 갖고 그를               단 출가보살의 경우
                                                                              직위로부터 축출함                                  비범행은 금지됨           
훼범 여부    죄를 범하는 것이                                같음                                                        같음
                    아니라 많은 공덕을
                    낳음                                                                                                                                                        

위의 도표에서 예시한 세 가지 상황은 결코 일반적 의미에서나 율의 경우에 있어서도 가벼운 죄에 해당되는 상황이 아니다. 살생의 경우나 음욕의 경우 결과론적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심중한 죄에 해당되지만 동기론적 측면에서 볼 때 그 결과는 가벼운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불교윤리의 특색이라고 불리는 동기론적 윤리학이 전면에 드러나지만, 일단 동기론적 윤리학이 가진 문제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 개소의 설명방식은 「보살지」의 온건한 설명방식과 잘 화합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초기 대승의 극단적 형태의 보살의 이상을 채택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불전문학에서 상용되는 하나의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살생과 도둑질의 경우 재가보살과 출가보살의 구분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 집단에 허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음욕행의 경우 아직 출가보살에게 있어 명백히 비범행이 허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직 율장의 금지조항이나 승려=梵行者라는 사회적 인식의 영향이 상존해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아마 이러한 논의의 핵심에 놓여있는 것은 이 항목의 도입부에서 언급된 보살의 선교방편이라고 보인다. 선교방편에 의해 어떤 행위를 한다면 설사 그 행위 자체는 죄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타적인 동기론적 성격 때문에 오히려 그 행위는 상찬되게 된다는 것이다. 예문에서 제시한 보살의 의향이 동기론적 이타성을 말하며 자비심을 갖고 죽이는 등의 행위가 선교방편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보살지 에 있어 이러한 선교방편에 의한 보살행위의 정당성 확보는 어디에서 수용한 것인가? 보살지가 함축하고 있는 텍스트가 어떤 것인지 그 정확한 출전은 제시할 수 없지만 적어도 살생의 경우와 관련된 첫 번째 기술은 도입부의 선교방편이란 단어에서도 암시되고 있듯이 분명 『大方便經』에서의 비유를 전제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하 이 경에서의 살생의 경우의 예를 보자.

 

4. 보살의 행위와 선교방편

 

『大方便經』의 티벳역 경전21)은 ‘大悲’라고 불리는, 붓다의 전생 보살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배의 선장으로서 오백인의 상인을 운송하고 있었다. 어느 날 천신이 그에게 한 상인이 실은 도둑으로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때 그는 도둑으로 하여금 살생을 저지르게 한다면 그는 억겁 동안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고, 반면 만일 그가 다른 상인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들은 그를 죽일 것이고 따라서 살생의 죄 때문에 그들이 지옥에 가게 되리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도둑과 상인들을 위해 자신이 살생죄를 저지르기로 결심하고 도둑을 죽였다. 따라서 그의 대비심과 선교방편에 의해 그 자신은 지옥의 고통을 받았지만 도둑을 그 고통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매우 극화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초기불교의 수행자에게 이러한 상황이 닥쳤다면 그의 선택은 매우 달랐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성자의 평정심(捨)을 갖고 그는 그들이 받아야만 하는 업보를 초연하게 지켜보았을 것이며, 어떤 경우든 스스로 살생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승보살은 이 갈등상황 속에서 이타를 선택하고 스스로 살생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한다. 살생의 죄로 인해 스스로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도둑에 대한 자비심으로 인해그를 죽이는 것이다.23) 물론 이것은 대승불교가 폭력을 무한정하게 허용한다는 것은 아니다. 폭력의 허용은 하나의 예외적인 갈등 상황에서 매우 엄격한 이타적 조건 하에서만 허용되는 것을 보여

준다.

(보살의 이타적 살생의 정당화에 대한 논의는 「대승열반경」(T 12: 434b26-c7)에서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대승경전을 수지독송하게 만들 수 있을 경우 또 그를 무상정등각으로 이끌 경우 파계가 허용되고 있다. 여기서 파계는 그로 하여금 대승의 가르침에 대해 비방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내용적으로 그를 죽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즉 그를 죽여 자신은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게 하려는 보살의 ‘자비로운’ 의향이 설해지고 있다. 그 경우 보살에게는 전혀 죄가 없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진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비심에 근거한 살인이라고 하더라도 높은 정도의 제한은 필요할 것이며(Harvey(2000) p. 137 참조), 호법적인 맥락에서라고 하더라도 과연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갈등상황은 이미 보살행의 성립 초기에 있어서도 예견되고 있었다. 이 경은 살생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극화시킴에 의해 이런 갈등적 상황에 처했을 때의 능숙한 방편의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방편의 지나친 강조가 갖는 위험은 별도의 설명으로 미루더라도 여기서는 이러한 방편의 사용에 대한 능숙함이 보살의 실존적 상황에서 부딪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선교방편이 반야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할 것이고, 이런 점에서 방편이 반야와 더불어 대승의 두 기둥이라는 대승불교의 선언은 부연할 필요조차 없이 명백할 것이다.

 

5. 보살윤리에 있어 자리와 이타의 위계성

 

보살의 윤리에서 기본적으로 自利보다는 이타적 측면에 중점이 놓여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리와 이타가 대립하는 상황에 부딪쳤을 경우이다. 초기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자신의 깨달음이라는 自利는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대방편경의 대비보살의 경우에서 보듯이 대승보살의 이상은 전적인 이타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실존적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보살의 이타성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게 되었고 제한이 주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도 물론 일반적인 보살윤리의 성격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이타적 측면이 강조되었지만, 그 이타성은 반드시 모든 경우에 무조건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절대적 명령은 아니었다. 이것이 다른 가치, 예를 들어 자신의 깨달음이라는 불교 고유의 목표와 충돌하는 경우 어떤 한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보살윤리를 위계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보살지」 는 먼저 自利와 利他를 구분하면서, 보살은 원칙론적으로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택하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절제된 입장은 보살지 의 전형적인 태도로 보인다. 초기의 『본생담』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극단적 형태의 이타적 이상은 구체적인 승려의 행위를 위한 규범을 제공하는 「보살지」 의 입장에서 볼 때 완화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이는 또한 교단으로서의 대승의 성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즉 아란야에서 홀로 수행하는 독립된 수행자로서가 아니라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승단에 소속된 보살로서 고려해야할 규칙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교단의 성립이라는 상황 속에서 대승의 보살에게 어느 정도 제한된 절제된 이타성이 제시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더욱 전통적인 별해탈계를 포섭하고 있는 보살계에 있어 일반적인 의미에서 깨달음이라는 자리 없이 이타적 행위는 완성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승단에서 생활하는 보살에게 있어 현실적인 측면에서 여러 대립적인 윤리적 갈등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떤 행위를 하도록 선택받을 경우 대승의 일반적인 이타성에 입각하여 자리를 포기하고 이타성에 우선하도록 획일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권고하기 위해서 「보살지」 는 이러한 여러 갈등상황을 가정하여 그 경우 보살이 선택해야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즐거움(sukha)과 이익(hita), 원인에 포섭된 것과 결과에 포섭된 것, 현세와 관련된 것과 내세와 관련된 것, 궁극적인 것과 궁극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네 쌍의 개념을 분석하고 있다.

 

그 중에서 즐거움과 이익은 항시 동일한 외연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즐거운 것은 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며, 반면 이로운 것은 처음에는 괴로운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살지 는 이런 상황을 네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현세에는 즐겁지만 내세에 고를 초래하는 것. 둘째 현세에는 괴롭지만 내세에 즐거움을 초래하는 것, 셋째 현세에도 즐겁고 내세에도 고를 초래하는 것, 넷째 현세에도 괴롭고 내세에도 괴로움을 초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살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당장은 괴롭지만 내생의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보살의 어떤 행동기준은 현세의 즐거움보다는 그것이 후에 어떤 이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

지의 여부에 달려 있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기준점은 어떤 행동이 이익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는가와 관련된다. 즉 어떤 행동의 목적이 현세적으로 향하고 내세로 행하고 있지 않은 경우와, 내세에 행하고 있지만 현세에 향하고 있지 않은 경우와, 내세와 현세 양자에 관련되어 있는 경우와, 그 양자의 어디에도 향하고 있지 않은 경우이다. 마지막 경우는 출세간적 목표로서 이해되는 반면 다른 세 경우는 세간적인 목표로서 간주된다. 여기서 열반과 같은 궁극적인 목적이 최종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출세간적 목표로서, 즉 열반이나 해탈과 관련되어 있는지가 최종적 가치판단의 근거가 된다. 이렇게 볼 때 어떤 행위의 위계성을 제시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1) 자리 < 이타

(2) 즐거움 < 이익

(3) 현생에 관련된 것 < 내생에 관련된 것 < 열반 또는 해탈과 관련된 것

 

이러한 원칙론적 기술은 「보살지」 의 다른 개소에서 구체적 경우에 적용되어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계품 의 ‘一切戒’ 항목에서 戒 개념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경우를 들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전통적인 계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계는 자신을 절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정신적 수행의 근본적인 요소를 포함하며 또한 다른 중생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항목들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 항목들의 조직을 통해 보살지 는 전통적인 별해탈계와 비교해 보살을 위한 별해탈계를 새롭게 해석, 제시할 수 있었고, 이것이 근본적인 잘못과 43종의 부차적인 잘못으로 열거되고 있다.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떤 행동은 잘못이 되고 어떤 것은 잘못이 되지 않는지를 설명함에 있어 보살행의 위계적 성격은 뚜렷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어떤 행동의 성격이 행동의 동기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는 불교의 동기주의적 윤리설의 측면이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아래에서 몇 가지 구체적인 경우를 들어 설명해 보자.

 

전통적인 별해탈계의 경우 계의 각각의 항목이 갖는 중심적 기능은 승가의 평화와 화합, 정신적 수행을 위한 조건의 확보에 있을 것이다. 전통적 항목들 중에서 보살지 는 사회와 재가집단에 대해 승원의 위엄과 안녕을 보장하는 항목의 경우는 이를 보존하라고 권한다. 반면 세존께서 승려들의 수행을 위해 세속적인 분주함이나 혼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안해 놓은 항목들은 적극적인 이타행을 위해 폐기된다. 예를 들어 재가집단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옷이나 그릇, 돈과 은 등의 보시를 요구하는 행위는 전통적 성문들의 별해탈계에서는 금지되었지만, 보살들이 타인을 돕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규정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이것은 보살에게 있어 타인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위보다 높은 등급이 매겨졌기 때문이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타행의 수준이 적어도 자리행과 동등한 차원을 향하고 있을 경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그다지 갈등적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해결될 수 있지만, 보다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잘못이 되고 어떤 것이 잘못이 되지 않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보살지 는 보살이 타인에게 도움주기를 거절하는 경우 생겨나는 긴장을 세 가지 경우로 나누어 예를 든다.

 

첫 번째로 만일 보살이 증오심 때문에 도움을 거절했을 경우 그것은 염오된 잘못(kliṣṭā āpatti)으로 간주된다. 

두 번째로 단순한 부주의나 게으름 때문에 도움을 거절했을 경우 가벼운, 염오되지 않은 잘못(akliṣṭā āpatti)으로 여겨진다. 

세 번째로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 전혀 잘못이 되지 않는(anāpatti) 경우가 있다. 우리의 관심에서 볼 때 이 설명이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우리는 전혀죄가 되지 않는 경우를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만일도움의 요청이 요청하는 사람 자신에게 불이익과 잘못된 업과를 초래할 경우, 둘째 도움을 거절함으로써 요청자를 오히려 不善한 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경우, 셋째 보살이 긴급한 자신의 수행

에 몰두해 있을 경우,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보살이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앞의 두 가지 ‘잘못’은 자체적으로는 명백할 것이다. 그렇지만 세 번째 잘못이 되지 않는 경우의 네 가지 예들은 각각 함축적으로나 문맥상으로 수행상의 위계성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 앞의 두 예들은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현금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보살의 선교방편의 능력이 보다 요구될 것이다. 왜냐하면 실존적 상황 속에서 과연 어느 행위가 상대방에게 미래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세 번째 예는 타인의 세속적 관심이 자신의 궁극적인 해탈이라는 목적과 충돌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이 경우 보살이 해탈이라는 自利를 위해 보다 낮은 가치를 갖는 타인의 세간적 관심을 거절한다고 해도 보살의 이타성을 손상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설명했던 3종의 위계성 중에서 세간적 관심보다 출세간적 관심이 우선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네 번째 예는 전적으로 양적 기준에 의거하고 있다. 몇몇 사람에게 도움을 거절함에 의해 그들의 분노를 사더라도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살의 윤리로서 타당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수의 행복과 이익이 한 사람의 행복과 이익에 우선한다는 공리주의적 윤리설의 입장은 여기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 경우에도 양방의 이익이 적어도 동등한 차원에 있거나 또는 많은 사람의 이익이 높은 위계에 있다는 것이 전제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6. 요약과 맺는 말

 

대승의 윤리가 소승불교의 그것에 비해 다른 점이 이타성에 대한 강한 강조에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알려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에서 계의 외연이 확장되었다는 것도 대승의 계, 즉 대승의 윤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승의 계율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보다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보살계가 처음으로 정형화된 형태로 등장했던 「보살지」 에서의 대승계의 내용과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교단사적으로 대승의 교단으로서의 성립이 독립한 계율을 지니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졸고에서는 보살지 계품 에서의 4종의 무거운 잘못과 43종의 가벼운 잘못을 중심으로 보살윤리의 규정을 먼저 간단히 스케치했다. 초기의 별해탈계의 각 항목이 규제적 상황이 생겨났을 경우 추가되었듯이 보살지 의 보살계의 각 항목도 체계적으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필요한 경우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43종의 가벼운 잘못 중에서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이는 제9번째 항목에 나타난 살인과 도둑질, 음욕의 경우를 고찰해 보았다. 그 각각의 경우가 어떤 경전의 예를 염두에 두고 서술되었는지는 명백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살인의 경우의 첫 번째 예는 『대방편경』에서의 대비보살의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을 이롭게 하려는 대비의 의향(āśaya)과 구체적 상황 속에서 적절하게 대비를 적용시킬 수 있는 선교방편의 능력이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 대승불교에 있어 살인과 폭력의 허용이라는 핵심적인 윤리적 문제가 의식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대승불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제시한 답변은 대승경전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보인다. 그러나 보살지 의 기술은 초기대승이나 후대 밀교에서와 같은 극단적 입장을 회피하면서 매우 실용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마 당시 대승교단이 성립 초기에 있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살지 의 보살윤리에 있어 자리와 이타의 위계성의 기준을 논의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수행자에게 매 순간 자리와 이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승보살로서 일반적 경우에 이타성이 우선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이러한 이타의 우선성에도 어느 정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작고 하찮은 도움을 요청받았을 경우 그것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무상정등각과 같은 자신의 가장 고귀한 목표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은 일반적 경우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를 위한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보살지」 는 여러 가치론적 범주들을 설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즐거움’(sukha)과 ‘이익’(hita)이라는 한 쌍의 개념을 분석하고 이를 현세

와 내세, 궁극적 목표와 관련시킴에 의해 무엇이 보살에게 있어 우선되어야 하는가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위에서 언급한 43종의 경우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타인의 도움의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긴급한 수행 때문이라면 그것은 전혀 염오되지 않은 행위라고 설명되고 있는 등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승윤리의 기준의 필요성이 「보살지」 에서 의식되고 있고 나름대로 제시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