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사 어록/조산록

조산 본적(本寂) 선사의 어록

실론섬 2015. 7. 4. 00:59

오가어록(五家語錄) - 조산록

               

1. 행 록


스님의 휘(諱)는 본적(本寂)이며, 천주(泉州) 포전(蒲田) 황씨(黃氏) 자손이다. 어려서는 유학(儒學)을 공부하다가 19세에 복주(福州)의 영석산(靈石山)에 가서 출가하였고, 25세에 구족계단(具足戒壇)에 올랐다. 그리고는 동산(洞山)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동산스님께서 물었다.

"스님은 이름이 무엇인가?"

"본적(本寂)입니다."

"저런, 쯧쯧."

"본적(本寂)이라 이름붙일 수 없습니다."

동산스님은 스님을 깊이 그릇으로 여겼다.


「승보전(僧寶傳)」에는 스님의 이름을 탐장(耽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는 「전등록(傳燈錄)」에 실린 것을 그래로 따랐다.


이로부터 입실(入室)하여 여러 해를 지내다가 떠나겠다고 하직하자 동산스님은 드디어 동산(洞山)의 종지를 가만히 전수하고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변하지 않는 곳에 어떻게 감(去)이 있으랴."

"간다 해도 변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조계(曹溪)로 가서 육조(六祖)의 탑에 절하고 길수(吉水)로 돌아 갔더니 대중들이 스님의 명성을 듣고 개법을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육조를 흠모하여 그 산을 조산(曹山)이라 이름하였다.

  

마침 난리를 만나 의황(宜黃)으로 갔더니 거사 왕약일(王若一)이 하왕관(何王觀)을 희사하여 스님께 주지(住持)하시기를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하왕(何王)을 하옥(荷玉)으로 고쳤는데, 이때부터 법석(法席)이 크게 일어나 학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니, 동산의 종풍이 스님에 와서 널리 퍼졌다.


2. 시중


1.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범부의 마음과 성인의 지견(凡情聖見)이 모두가 오묘한 금사슬 길이니, 그저 회호(回互)하면 될 뿐이다. 정명식(正命食)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세 가지 함정(三種墜)이 있다. 첫째는 축생이 되는 것이며(披毛載角), 둘째는 성색을 끊지 않음이며(不斷聲色), 셋째는 음식을 받지 않음(不受食)이다."

그러자 그때 법회에서 성긴 베옷을 입은 선승이 물었다.

"축생이 된다 함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부류에 떨어짐(類墜)이다."

"음식을 받지 않음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존귀함에 떨어짐(尊貴墜)이다."

이어서 말씀하셨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본분의 일이다. 본분인 줄 알면서도 취하지 않으므로 이를 '존귀에 떨어짐(尊貴墜)'이라 한다. 만일 처음 마음(初心)에 집착하면 자기와 성인의 지위가 따로 있는 줄 알기에 '부류에 떨어짐(類墜)'이라 한다. 처음 마음을 가질 때는 자기가 있다고 자각하다가도 회광반조(回光返照)할 때에는 소리.색.향기.맛.감촉.법을 물리치고 평안하고 조용한 것으로 공부를 이루어 더 이상은 6진(六塵)등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분적으로 어두워져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여섯 외도(六師外道)가 너의 스승이 된다' 하였으니 스승이 떨어지는 곳에 따라서 떨어지게(隨墜)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어야 할 밥을 가려먹는 것이라야 정명식이다. 그것을 6근의 견문각지(見門覺智)로도 말할 수 있다. 6근의 그것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는데도 '함정에 빠졌다' 한다면 이는 그것과 균등했던 전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본분의 일도 취하지 않았는데 그 나머지 일이야 어떠하겠는가?

  

스님께서 말하는 '함정(墜)'이란 뒤섞어서도 안되고 부류를 같게 해서도 안된다는 의미이고, 또한 '처음 마음(初心)'이라 하는 것은 깨닫고 나서가 깨닫기 전과 같다는 의미이다."


2.

한 스님이 5위군신(五位君臣)의 요지를 묻자 조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위(正位)는 공계(空界)로서 본래 아무것도 없는 자리이며, 편위(偏位)는 색계(色界)로서 만상으로 형태가 나타난 자리다.


정중편(正中偏)이란 이치를 등지고 현상을 향하는(背理就事)자리이며, 편중정(偏中正)이란 현상을 버리고 이치로 들어가는(舍事入理)자리다.

  

겸대(兼帶)란 뭇 인연에 그윽히 감응하면서 모든 유(有)에 떨어지지 않는 자리다.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며, 정위도 아니고 편위도 아니므로 텅 빈 대도(大道)이며, 집착 없는 진종(眞宗)이라 하는 것이다. 옛 큰스님들도 바로 이 자리를 쓰셨으니, 가장 현묘하므로 자세히 살펴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임금(君)은 정위(正位)이며, 신하(臣)는 편위(偏位)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향하는 것은 편중정(偏中正)이며, 임금이 신하를 살피는 것은 정중편(正中偏)이다.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는 것은 겸대(兼帶)라고 한다."

  

그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임금입니까?"

"오묘한 덕은 세상에 드높고 밝아 허공에 환하다."

"무엇이 신하입니까?"

"신령한 기틀로 성인의 도를 널리 펴고, 진실한 지혜로 뭇 생령을 이롭게 한다."

"무엇이 신하가 임금에게 향하는 것입니까?"

"이류(異類) 중생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을 모아 성인의 모습을 바라본다."

"무엇이 임금이 신하를 살피는 것입니까?"

"오묘한 모습 움직이지 않으나 밝은 빛은 본래 빠짐없이 비춘다."

"무엇이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는 것입니까?"

"뒤섞여 안팎이 없고, 녹아져 상하가 공평하다."


조산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임금과 신하, 편위와 정위로써 말한다면 중(中)을 범하려고 하질 않는다. 그러므로 신하는 임금을 지칭하는데 감히 배척해서 말하지 않는다 함이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 법문의 요점이다."

  

그리고는 게송을 지었다.


    학인은 무엇보다 자기 종지를 알아야 하니

    진리(眞際)로 허공(頑空)을 뒤섞지 말아라

    묘하고 밝은 바탕 다하면 상함을 알 것이니

    힘써 인연을 만날 뿐 중도를 빌릴 것 없다네

    말을 꺼냈다 하면 불타지 못하게 하며

    가만히 행함은 옛사람과 같아야 하리

    몸 없고 일 있음에 갈림길을 벗어나고

    일 없고 몸 없으니 시종에 떨어진다네.

    學者先須識自宗  莫將眞際雜頑空

    妙明體盡知傷觸  力在逢緣不借中

    出語直敎燒不著  潛行須與古人同

    武身有事超岐路  無事無身落始終


다시 다섯 가지 모양을 만들고 게송을 붙였다.


    서민을 재상에 임명하는 일

    이 일은 이상할 것 없다네

    대대로 내려온 벼슬아치들이여

    숨 떨어질 때를 말하지 말라.

    白衣須拜相  此事不爲奇

    積代者□□  休言落鼻時


    자시(子時)가 정위(正位)에 해당하니

    밝음과 올바름이 임금과 신하에 있어라

    도솔세계를 떠나지 않았는데

    검은 닭은 눈 위로 간다네.

    子時當正位  明正在君臣

    未離도率界  曹溪雪上行


    불꽃 속에 찬 얼음 맺히고

    버들꽃은 9월에 날리네

    진흙소는 물 위에서 포효하고

    목마는 바람따라 울부짖네.

     裏寒永結  楊花九月飛

    泥牛吼水面  木馬遂風嘶


    황궁에 처음 강생(降生)하신 날

    하늘 나라를 떠날 수 없었네

    쓸 것(功)없는 종지를 얻지 못하니

    인간. 천상은 어찌 그리 더딜가.

    王宮初降日  玉兎不能難

    未得無功旨  人天何太遲


    이치와 현상을 섞어 갈무리하니

    그 조짐 끝내 밝히기 어려워라

    위음왕불(과거불)도 깨닫지 못했는데

    미륵불(미래불)이 어찌 깨닫겠는가.

    渾然藏理事  朕兆卒離明

    威音王未曉  彌勒豈惺惺


3.

조산스님께서 행각할 때에 오석 관(烏石觀)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의 주인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따로 있는 것이 된다."


스님께서 동산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좋은 대화이긴 하다만 그대가 한 마디를 덜 했구나. '어째서 말씀해주지 않습니까' 하고 왜 묻질 않았더냐."


스님께서 다시 가서 앞 말에 이어 묻자 오석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를 벙어리로 만드는 셈이며, 말을 했다고 한다면 나를 말더듬이로 만드는 것이다."

  

스님께서 돌아와 동산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깊이 수긍하셨다.


4.

운문(雲門)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동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절 밥 먹는 것이다."

"그렇게 해나가고 있을 땐 어떻습니까?"

"쌓아 모을(畜)수도 있느냐?"

"모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모으려느냐?"

"옷 입고 밥 먹는데 무슨 어려움 있겠습니까?"

"왜 털 쓰고 뿔 달린 축생이라고 말하지 않느냐?"

 그러자 운문스님은 절하였다.


조산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제방에서는 모두들 격식을 붙들고 있는데, 어째서 딱 깨치게 해 줄 한 마디를 던져 그들의 의심을 없애주지 않느냐."

운문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오더니 물었다.

"아주 부사의한 곳에서는 어째서 있는 줄을 모릅니까?"

"바로 그 부사의함 때문에 있는 줄을 모른다."


 설두스님은 달리 대답(別語)하였다.

 "달마가 왔군."


운문스님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가까워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주 부사의한 곳에서는 가까이 하지 말게."

"매우 부사의한 곳에서가 아니라면 어떻습니까?"

"비로소 가까이 할 줄 안다 하겠네."

운문스님은 녜, 녜 하였다.


묘희(妙喜)스님은 말하였다.

"탁한 기름에 다시 검은 등심지를 붙이는군."


운문스님이 "뒤바뀌지 않는 사람이 찾아오면 스님께서는 맞이하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조산은 그런 쓸데없는 짓은 안한다."


5.

미화상(迷和尙)이 찾아와 만나보기도 전에 선상에 앉자 스님께서는 아예 나와보지도 않았고 미화상도 그냥 떠나버렸다. 그러자 일을 주관하는 스님이 물었다.

"스님, 선상에 어째서 다른 사람이 앉게 되었습니까?"

"떠난 뒤에 다시 돌아올걸세."

미화상은 과연 돌아와서 조산스님을 만났다.


6.

지거(智炬)스님이 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옛사람은 저쪽 사람을 이끌어주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체득해야 하겠습니까?"

"뒤로 물러나 자기에게 나아가면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다."

지거스님은 말끝에 현묘한 이해(玄解)를 싹 잊었다.


7.

금봉지(金峯志)스님이 오자 조산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엇하러 왔느냐?"

"지붕을 덮으러 왔습니다."

"다 했느냐?"

"이쪽은 끝냈습니다."

"저쪽 일은 어찌 되었느냐?"

"공사 끝나는 날 스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래, 그렇지" 하셨다.


8.

청세(淸稅)라는 스님이 물었다.

"저는 외롭고 가난하오니 스님께서 구제해 주십시오."

"청세는 이리 가까이 오게나."

청세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청원(淸原) 백가(百家)의 석 잔 술을 마시고서 입술도 축이지 못했다 하는구나."


현각(玄覺)스님은 말하였다.

"어느 곳에서 그에게 술을 마시라고 주었느나."


9.

경청(鏡淸)스님이 물었다.

"맑고 텅 빈 이치라서 아예 몸이 없을 땐 어떻습니까?"

"이치(理)로야 그렇다치고 사실(事)은 어떡하려고."

"이치로나 사실로나 여여합니다."

"나 한 사람 속이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치고 여러 성인의 눈을 어찌하겠느냐?"

"여러 성인의 눈이 없다면 그렇지 않은 줄을 어찌 비춰보겠습니까?"

"법으로야 바늘만큼도 용납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레도 통할 수 있는 법이지."


대위철(大 喆)스님이 말하였다.

 "조산이 비록 옥을 잘 다듬기는 하나 경청의 옥에는 본래 흠집이 없었는데야 어찌하랴. 알고 싶으냐. 잽싼 솜씨를 빌리지 않으면 결국 못쓰는 그릇을 만든다."


10.

스님께서 덕상좌(德上座)에게 물었다.

"'보살이 선정에 들어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너는 소리를 듣는다'하였는데 무슨 경에 나오는 말씀이냐?"

"「열반경」에 나옵니다."

"선정에 들기 전에 들었겠느냐, 선정에 든 뒤에 들었겠느냐?"

"스님, 흘러갑니다."

"말을 하려면 분명하게 해야 비로소 반쯤 했다 할 수 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울물 아래서 맞이해 오겠네."


11.

지의도자(紙衣道者)가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물었다.

"지의도인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무엇이 종이 옷(紙衣) 속의 일이더냐?"

"옷 하나 몸에 걸쳤다 하면 만법이 모두 다 여여합니다."

"무엇이 종이 옷 속의 작용이더냐?"

지의도인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끄덕끄덕하더니 선 채로 죽어(脫去)버렸다.

조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렇게 떠날 줄만 알았지, 어째서 이렇게 올 줄을 모르느냐?"

그러자 지의도인이 홀연히 눈을 뜨더니 물었다.

"신령하고 진실한 성품 하나가 어미 뱃속을 빌리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오묘함은 아닐세."

"어찌해야 오묘함입니까?"

"빌리지 않는 빌림이라네."

지의도인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더니 그대로 천화해 버렸다.


스님께서는 게송을 지어 법문하셨다.


    원명(圓明)한 각성(覺性)은 모습 없는 몸이니

    지견으로 멀다 가깝다 망상떨지 말아라

    한 생각 달라지면 현묘한 바탕에 어두어지며

    마음이 어긋나면 도와 이웃하지 못하리

    마음(情)이 만법에 흩어져 목전의 경계에 잠기고

    의식(識)으로 여러 갈래 비추어 본래 진실 잃는구나

    이상의 말 속에서 완전히 깨달으면

    옛날 일 없던 그 사람이라네.

    覺性圓明無相身  莫將知見妄疏親

    念異偏於玄體昧  心差不與道爲隣

    情分萬法沈前境  識鑑多端喪本眞

    如是句中全曉會  了然無事昔時人



12.

스님께서 강상좌(强上座)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되, 물에 달이 비치듯 사물에 응하여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응해 주는 도리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나귀가 우물을 보는 격입니다."

"말을 하려면 확실히 해야 얼추 맞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13.

육긍대부(陸亘大夫)가 남전(南泉)스님에게 물었다.

"성이 무엇입니까?"

"왕씨(王氏)요."

"왕에게도 권속이 있습니까?"

"네 명의 신하가 어둡지 않습니다."

"왕은 어느 자리에 거처합니까?"

"옥전(玉殿)에 이끼가 끼었습니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擧揚) 조산스님께 물었다.

"옥전에 이끼가 끼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정위(正位)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팔방에서 찾아와 조회할 땐 어떻습니까?"

"그는 절을 받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찾아와서 조회를 할까요?"

"어기면 목을 베기 때문이지."

"어기는 것은 신하의 일(分上)입니다만, 임금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추밀원(樞密院: 왕명 출납기관)은 왕명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치를 빛낸 공로가 고스란히 재상에게 돌아가겠군요."

"너는 임금의 의도를 아느냐?"

"밖(外方)에 감히 어쩌고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네."


14.

한 스님이 말했다.

"저는 온몸이 병들었으니 스님께서 치료해 주십시오."

"치료해 주지 않겠네."

"어째서 치료해 주지 않으십니까?"

"그대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련다."


15.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나에게 큰 병이 있는데 세속에서 고칠 병이 아니다'하였는데 무슨 병인지 모르겠습니다."

"치료해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다."

"일체중생에게도 이 병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 있다."

"스님도 이 병이 있습니까?"

"병이 생겨나는 곳을 딱 집어내지 못한다."

"일체중생은 어째서 병들지 않습니까?"

"일체중생이 병들면 중생이 아니기 때문이지."

"모든 부처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있지."

"있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병들지 않습니까?"

"그는 깨어있기(惺惺) 때문이다."


16.

한 스님이 물었다.

"사문(沙門)이라면 큰 자비를 갖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여섯 도적이 찾아오면 어찌해야 합니까?"

"역시 큰 자비로 무장해야 한다."

"어떻게 큰 자비로 무장합니까?"

"단칼에 휘둘러 없애야지."

"없앤 뒤엔 어떻습니까?"

"비로소 그들과 동화될 수 있다."


17.

한 스님이 물었다.

"눈썹과 눈이 서로를 알까요?"

"모른다."

"어째서 모를까요?"

"한 곳에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나누질 못하겠군요."

"눈썹은 눈이 아니다."

"무엇이 눈입니까?"

"또록또록한 것이다."

"무엇이 눈썹입니까?"

"나도 의심한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의심하십니까?"

"의심하지 않으면 똑바로 가기 때문이지."


18.

한 스님이 물었다.

"5위(五位)가 손님을 맞이할 땐 어떻습니까?"

"그대는 지금 어느 지위를 묻고 있는가?"

"저는 편위에서 오겠으니 스님께서는 정위에서 맞이해 주십시오."

"맞이하지 않겠네."

"어째서 맞이하지 않으십니까?"

"편위 속에 떨어질까 두려워서지."

조산스님께서 되물었다.

"맞이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손님대접을 한 것인가, 안한 것인가?"

"벌써 손님대접을 마쳤습니다."

"그래, 그렇다."


19.

한 스님이 물었다.

"만법은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전도(顚倒)에서 나온다."

"전도하지 않을 땐 만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있지."

"어디 있습니까?"

"전도해서 어찌하겠나."


20.

한 스님이 물었다.

"싹 트지 않은 풀이 어떻게 큰 코끼리(香象: 마음자리)를 간직할 수 있습니까?"

"그대는 다행히도 작가(作家: 선지식)로구나."

그리고는 다시 "나 조산은 어떤가?" 하고 물었다.


21.

한 스님이 물었다.

"3계(三界)는 시끄럽고 6취(六趣)는 어두운데 어떻게 색(色)을 분별해야 합니까?"

"색을 분별할 수 없다."

"어째서 분별할 수 없습니까?"

"색을 분별했다 하면 어두워진다."


22.

스님께서 종소리를 듣고 야! 야! 하시니 한 스님이 "스님께선 무얼 하십니까?" 하고 묻자 말씀하셨다.

"내 마음을 때리는구나."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남의 마음 훔치는 도적아."


23.

스님께서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식초통을 끌고 왔습니다."

"험한 길을 가게라도 되면 또 어떻게 끌고 가겠느냐?"

유나는 대꾸가 없었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잘 해보겠습니다."


소산(疏山)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진정 놓아버려야 할 것입니다."


24.

스님께서 하루는 큰방에 들어가 불을 쬐는데 한 스님이 말했다.

"오늘은 매우 춥군요."

"춥지 않은 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누가 춥지 않은 자입니까?"

조산스님께서 젓가락으로 불을 집어 보이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겠군요."

조산스님께서 불을 던지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모르겠는걸요."

"해가 차가운 물을 비추니 더욱더 밝아지네."


25.

한 스님이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홍주성(洪州城)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를."


2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날 없는 칼입니까?"

"물에 담갔다 갈아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을 쓰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닥치는대로 죽이지."

"만나지 않은 자는 어찌됩니까?"

"역시 머리가 떨어지지."

"닥치는대로 죽인다는 것은 굳이 그렇다쳐도 만나지 않은 자는 무엇 때문에 머리가 떨어집니까?"

"모두 다 없앨 수 있다고 하지 않더냐."

"다 없앤 뒤에는 어찌됩니까?"

"이 칼이 있는 줄을 비로소 알게 된다."


27.

한 스님이 물었다.

"모습에 있어서 무엇이 진실입니까?"

"모습 그대로가 진실이다."

"당장 어떻게 보여주시겠습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웠다.


28.

한 스님이 물었다.

"허깨비의 근본은 어떤 진실입니까?"

"허깨비의 근본이 원래 진실이다."


법안(法眼)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허깨비의 근본은 진실이 아니다."

"당장 허깨비를 가지고 어떻게 드러내 보이시겠습니까?"

"허깨비 그대로가 드러나고 있다."

 

법안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허깨비라면 아무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종 허깨비를 떠나는 적이 없겠군요."

"허깨비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29.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 한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것입니까?"

"토끼 뿔은 없다 할 필요가 없고, 소 뿔은 있다 할 필요가 없다."


30.

"어떤 사람이 항상 있는 사람입니까?"

"내가 잠시 나왔을 때 마침 만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항상 있지 않는 사람입니까?"

"만나기 어렵지."


31.

한 스님이 물었다.

"움찔했다 하면 부류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움찔하지 않아도 부류에 떨어진다."

"무엇이 다른 점입니까?"

"아픈지 가려운지를 알아야 하리라."


32.

한 스님이 물었다.

"사람마다 다 있다 하였는데, 티끌 속에 있는 저에게도 있습니까?"

스님께서는 "손을 내 보아라" 하시더니 점을 찍으면서 말씀하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꽉 찼구나."


33.

한 스님이 물었다.

"노조 보운(魯祖寶雲)스님께서는 면벽해서 무엇을 보여주려 하셨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서 넘어지면 누구나 땅을 딛고 일어선다' 하니, 무엇이 넘어지는 것입니까?"

"하려 하면 넘어지지."

"무엇이 일어남입니까?"

"일어나게."


35.

한 스님이 물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돌아왔는데 어째서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까요?"

"도리상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자식지간의 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비로소 부자간의 은혜가 이루어진다."

"어떤 것이 부자간의 은혜입니까?"

"칼과 도끼로 찍어도 쪼개지지 않는 것이지."


36.

"영의(靈衣: 죽어서 입는 옷)를 걸치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나 조산 효만(曹蒜孝滿)이지."

"조산 효만, 그 뒤엔 어떻습니까?"

"나는 전주(顚酒)를 좋아한다네."


37.

한 스님이 물었다.

"경에서 말하기를, '큰 바다는 죽은 시체를 머물러두지 않는다'하였는데, 어떤 것이 큰 바다입니까?"

"만유(萬有)를 포함하는 것이다."

"만유를 포함한다면서 어째서 죽은 시체는 머물러두지 않습니까?"

"호흡이 끊긴 자는 붙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

"만유를 포함한다면 무엇 때문에 호흡이 끊긴 자는 붙어 있지 못합니까?"

"만유의 경우는 자기 힘이 아니기 때문이며, 호흡이 끊긴 자는 자기 성품이 있어서이지."

"본래자리(向上)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있다느니 없다느니 해도 되겠지만 용왕이 칼을 어루만지는데야 어찌하겠나."


3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지해(知解)를 갖추어야 대중이 묻고 따지는 것에 능란하게 대꾸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지 않는 구절(不呈句)이다."

"묻고 따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칼과 도끼로 찍어도 들어가지 않지."

"이렇게 묻고 따지는데도 긍정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있지."

"그게 누군데요?"

"나일세."


39.

한 스님이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비싼 물건입니까?"

"죽은 고양이가 가장 비싸다."

"어째서 죽은 고양이가 가장 비쌉니까?"

"아무도 값을 매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말 없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그렇게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어젯밤 선상에서 돈 서푼을 잃었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해뜨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나 조산도 그렇게 왔다."

"해가 뜬 뒤엔 어떻습니까?"

"나 조산보다야 반달만큼 낫지."


42.

조산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하느냐?"

"바닥 청소를 합니다."

"부처님 앞에서 청소하느냐, 부처님 뒤에서 청소하느냐?"

"앞뒤 한꺼번에 청소합니다."

"내게 신발을 갖다다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그 스님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슨 마음을 그렇게 쓰십니까?"


43.

한 스님이 물었다.

"옥석(□玉)스님께 드리오니 잘 다듬으십시오."

"다듬지 않겠네."

"어째서 다듬지 않습니까?"

"훌륭한 내 솜씨를 알아야 하네."


44.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권속입니까?"

"백발이 줄을 이었고 정수리에는 한 떨기 꽃이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온 누리에 이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였는데,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겹쳐보이는 달(第二月)이 있어선 안되지."

"무엇이 겹쳐보이는 달입니까?"

"그대가 대답할 일이오."

"무엇이 진짜 달(第一月)입니까?"

"험(險)!"


46.

한 스님이 물었다.

"일상생활 가운데서 제가 어떻게 간직해야(保任) 하겠습니까?"

"벌레와 독이 있는 고을을 지나듯 물 한 방울도 축여서는 안된다."


47.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신의 주인입니까?"

"이 나라엔 사람이 없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그것 아닐런지요."

"목을 베어버려라."


4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도반을 가까이 해야 몰랐던 것을 항상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이불을 덮어야 한다."

"이는 그래도 스님께 들을 수 있습니다만 어떤 것이 몰랐던 것을 항상 듣는 것입니까?"  

"목석(木石)과는 다르다."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입니까?"

"듣지도 못했는가. 몰랐던 것을 항상 듣는다 한 것을."


49.

한 스님이 물었다.

"성 안에서 칼을 어루만지는 자는 누구입니까?"

"나 조산이지."


법등(法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구를 죽이려 하십니까?"

"다 죽이겠다."

"홀연히 낳아주신 부모를 만나면 어떻하시렵니까?"

"무얼 가리겠나."

"자기자신이야 어쩌겠습니까?"

"누가 나에게야 어찌하겠느냐?"

"왜 스스로를 죽이지 않습니까?"

"손을 쓸 수가 없어서이다."


50.

한 스님이 물었다.

"가난한 집에서 도둑을 맞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다 바닥낼 수는 없다."

"어째서 바닥내지 못합니까?"

"도둑이 집안 식구이기 때문이지."


51.

한 스님이 물었다.

"한 마리 소는 물을 마시고 다섯 마리의 말이 울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나는 입 조심할 줄 알지."


52.

한 스님이 물었다.

"항상 생사 바다에 침몰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겹쳐보이는 달(第二月)이로구나."

"벗어나려합니까?"

"벗어나려 해도 길이 없을 뿐이다."

"벗어나면 어떤 사람이 그를 맞이합니까?"

"무쇠형틀을 걸머진 자가."


53.

한 스님이 물었다.

"눈이 모든 산을 덮었는데 무엇 때문에 한 봉우리는 하얗지 않습니까?"

"다름(異)속에 다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름 속의 다름입니까?"

"갖가지 산색(山色)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54.

약산(藥山)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가?"

"일흔 둘입니다."

"일흔 둘이라고?"

"그렇습니다."

약산스님은 그대로 후려쳤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묻기를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자, 조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된 듯했는데 뒤에 쏜 화살은 사람을 깊이 맞첬다."

"어찌해야 이 몽둥이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왕명이 시행되니 제후들이 길을 비킨다."


55.

한 스님이 향엄 지한(香嚴智閑: ?∼898)스님께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고목(古木)속에서 용이 우짖느니라."

"무엇이 도 가운데 사람입니까?"

"해골 속의 눈동자이지."


그 스님은 알아듣지 못하고서 석상(石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고목 안에서 용이 우짖는 것입니까?"

"그래도 기뻐하는 빛을 띠고 있구나."

"어떤 것이 해골 속의 눈동자입니까?"

"그래도 식(識)을 띠고 있구나."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조산스님께 물었다.

"어떤 것이 고목 속에서 용이 우짖는 것입니까?"

"혈맥이 끊기지 않는다."

"어떤 것이 해골 속의 눈동자입니까?"

"다 마르지 않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들을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온 누리에 듣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잘 모르겠습니다. 고목 속의 울음이란 무슨 법문(章句)입니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듣는 자는 모두 죽는다."


그리고는 이어서 게송을 들려주셨다.


    고목에 용이 우짖을 때 진실로 도를 보고

    해골에 식이 없어야 눈이 비로소 밝아지리

    기쁨과 식이 다할 때 소식도 다하는데

    바로 그 사람, 어떻게 탁함 속의 맑음을 분별하랴.

    枯木龍吟眞見道  壻�無識眼初明

    喜識盡時消息盡  當人那辯촉中淸


5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도랑과 골짜기를 꽉 메웠다."


5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짐승이 사자입니까?"

"아무 짐승도 가까이 하지 못하지."

"어떤 짐승이 사자새끼입니까?"

"부모를 능히 삼킬 수 있는 자이다."

"이미 뭇 짐승이 가까이 하지 못한다 했는데 무엇 때문에 새끼한테 먹힐까요?"

"새끼가 포효하면 할애비까지도 다 없어진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는가?"

"다한 뒤엔 어찌됩니까?"

"온몸이 아비에게 돌아가지."

"할애비가 없어졌는데 아비는 어디로 돌아가는지요?"

"돌아갈 곳도 없다."

"앞에서는 무엇 때문에 온몸이 아비에게 돌아간다 하셨습니까?"

"비유하면 왕자가 한 나라의 일을 해내는 것과 같다."

다시 말씀하셨다.

"여보게, 이 일은 한쪽에 막혀서는 안되니, 고목 위에서 다시 몇 송이 꽃을 따와야 하리라."


58.

한 스님이 물었다.

"시비가 일자마자 어지럽게 마음을 잃을 땐 어찌합니까?"

"베어버려라."


59.

스님께서 두순(杜順: 화엄종 초조)과 부대사(傳大士)가 지은 법신게(法身偈)를 읽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다."

문도들이 다시 지어주십사 청하여 게송을 짓고 거기에 주석을 달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본래 나 아니며(내가 아니요)

    나도 본래 그가 아니라오(그가 아니요)

    그는 내가 없으면 죽고(너 때문에 살아가노라)

    나는 그와 같으니, 부처이고(그래도 부처는 아니고)

    내가 그와 같으니, 노새라네(둘 다 될 수 없도다)

    공왕(空王: 佛)의 봉급을 먹지 않는데(임금의 밥을 받거든 그대로 토해낼 것이요)

    어느 겨를에 기러기 서신 전하랴(소식이 통하지 않는구나)

    나는 횡신창(橫身唱)을 부르리니(멋대로 불러봐라)

    그대는 배상모(背上毛)를 추어라(너와는 같지 않다)

    백설곡(白雪曲:고상한 노래)을 부르려나 했더니(백설곡이라 여겼더니)

    파가(巴歌: 저속한 노래)가 될까 두렵구나.(이 구절에는 주를 붙일 수 없다)


60.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허공에 떴을 땐 어떻습니까?"

"그래도 섬돌 아래 있는 자이다."

"스님께서 섬돌 위로 맞이해 주십시오."

"달이 진 뒤에 보세."


61.

스님께서 법어를 내리셨다.

"만 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겠느냐?"

대중이 대꾸가 없자 도연(道延)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없다는 것이 무엇인데?"

  "이제는 후려쳐도 부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를 깊이 긍정하셨다.


62.

서원(西園)스님이 하루는 스스로 목욕물을 데우는데 한 스님이 물었다.

"왜 사미를 시키지 않습니까?"

서원스님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조산스님께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무리들은 손뼉을 치며 손바닥을 비볐는데 그 중 서원스님은 이상하구나. 구지(俱脂)스님의 한 손가락 선(禪)*은 알아차릴 곳에서 살피지 못했다 하리라."

그 스님이 되물었다.

"서원스님이 손뼉을 쳤던 일은 종(奴)이나 하는 짓이 아닙니까?"

"그렇지."

"본래자리(向上)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본분사(向上事)입니까?"

조산스님께서는 "이 중놈아!" 하면서 꾸짖으셨다.

(*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삿갓을 쓰고 구지(俱脂)스님을 찾아 세 번 돌고 난 뒤에 말했다. "바로 말하면, 삿갓을 벗으리다." 이렇게 세 번 물었으나 모두 대답치 않으니, 비구니가 그대로 떠나려 하자 스님이 말했다. 

"해가 이미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어가라." 

"바로 말하면 자고 가겠소." 

대답이 없자 비구니가 떠나니 이렇게 탄식하였다. 

"나는 비록 대장부의 형체를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가 없다." 

그리고는 암자를 버리고 제방으로 참선을 하러 떠나려 하니, 그날 밤에 산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산을 떠나지 마시오. 오래지 않아 큰 보살이 와서 스님께 설법을 해주실 것이오." 

과연 천룡(天龍)스님이 암자에 오니 스님이 맞이하고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천룡스님이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이매 스님이 당장에 깨달았다. 이로부터 학인이 오면 스님은 손가락을 세웠다. 돌아 와서 말하니, 스님이 칼로 손가락을 끊었다. 펄펄 뛰면서 달아나는 것을 "동자야!" 하고 부르니, 동자가 머리를 돌렸다 스님이 손가락을 세우니, 동자가 활연히 깨달았다.)


63.

남주(南州) 장수 남평종왕(南平鍾王)이 평소에 스님의 도를 전해 듣고 극진한 예우로 모시려 하였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가지 않고 게송을 써서 심부름꾼에게 부쳤을 뿐이었다.


    꺾여진 고목나무는 찬 숲을 의지하여

    몇 차례 봄을 만났지만 그 마음 변치 않았네

    나무꾼은 오히려 보고도 캐지 않는데

    이름난 목수가 애써 무얼 찾는가.

     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山

    樵客見之猶不採   人何事苦수尋


64.

스님께서 네 가지 하지 말라는 게송(四禁偈)을 지으셨다.

   

    마음의 길 가지 말고

    본래의 옷 걸치지 말라

    어찌 딱 이것만이랴

    정녕 나지 않았을 때를 조심하라.

    莫行心處路  不 本來衣

    何須正恁�  切忌未生時


65.

학인에게 게송으로 법문하셨다.


    인연 따라 알아차리면 빨리 상응할 것이나

    자체에서 없애고 막으면 더디게 힘을 얻으리

    자리자리 없는 곳에서 문득 일어나

    우리 부처님, 불가사의 법문을 잠깐 들려주시네.

    從緣薦得相應疾  就體消停得力遲

    瞥起本來無處所  吾師暫說不思議


66.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스님네들이여, 이렇게 법복을 입었으면 도리상 본분사(向上事)를 통달해야 하니, 어정거려서는 안된다.


만일 분명히 깨쳤다 해도 저 모든 성인을 자기 등뒤로 던져 버려야(轉) 자유로워질 것이다. 던져버리지 못한다면 설사 완전한 법(十成)을 배운다 해도 그들 등뒤에서 차수(叉手)해야 할 것이니, 무슨 큰 소리를 치겠느냐.

  

자기를 던져버릴 수만 있다면 온갖 잡된(녹重) 경계가 다가온다 해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가령 진창에 처박힌다 해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스님이 약산(藥山)스님에게 묻기를, '삼승교(三乘敎)에도 조사의 뜻이 있습니까?' 하자, '있지'하였다. '이미 있다면 달마스님은 무엇하러 오셨습니까?' 하자 약산스님은 '까닭이 있어서 왔지'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주인공이 되고 나서 자기를 던져버리는 그곳으로 귀결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경전에서는 말씀하시기를,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은 십겁(十劫)을 도량에 앉아 있었으나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질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하였는데, 여기서 겁(劫)이라는 말은 '막힌다'는 뜻이다. 생각컨데 '완전히 이루다(十成)' 또는 '스미는 번뇌를 끊다' 하는 것은 온갖 길이 끊겼으나 부처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붙들고 앉아 탐착함을 <차례차례 깨달아 가면서 귀천을 분간하지 못함>이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 총림을 보건대, 항상 이렇게 저렇게 의론하기를 좋아한다. 그래가지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저 지난일(向去事)을 늘어놓는 것일 뿐이다. 듣지도 못했는가. 남전(南泉: 748∼834)스님이 '설사 너희들이 완전히 이루었다 해도 내 한 가닥 길에 비하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신 말씀을.

이쯤 되어서는 정말 치밀해야만 명백하고 자재하리라. 천당.지옥.아귀.축생을 막론하고 어딜 가나 변함없으면 원래 옛사람이나 옛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기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막히고, 벗어난다면 꺼릴 것이 없다. 옛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윤회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하였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느냐.

  

요즈음 사람들은 청정한 경계를 말하며 지난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이것이 가장 난치병이다. 잡된 세속사는 오히려 가벼우나 청정함은 중병이니, 예컨대 부처에 맛들리고 조사에 맛들리면 모두 막힘과 집착이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헤아리는 마음이 바로 파계이다' 하셨으니, 맛을 챙긴다면 재(齋)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맛이라고 하겠느냐. 부처 맛, 조사 맛을 말한다.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면 바로 파계이다. 여기서 재를 파하고 계율을 파한다 함은 바로 지금 3갈마(三�i磨)의 경우에 벌써 파괴해 버린 것이다.

 

거칠고 무거운 탐.진.치는 끊기 어렵다 해도 도리어 가벼우나, 함이 없고 할일 없는 청정한 이것이 바로 더할 나위 없는 중병인 것이다. 조사도 이것 때문에 세상에 나오셨으며 유독 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당장 부질없는 짓을 하지 말아라. 검둥이 종(曺)과 흰 암소가 수행하는 편이 빠를 것이니, 그들은 선(禪)이다 도(道)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부처니 조사니 나아가서는 보리열반까지 갖가지로 치달려 구한다. 그러니 언제나 쉬고 결판을 보겠느냐. 그것은 모두 생멸하는 마음이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검둥이 종이나 흰 암소만도 못한 것이다. 그들은 부처도 모르고 조사도 모르며 보리열반과 선악인과까지도 모른다. 배고프면 풀 뜯어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실 뿐이다. 이럴 수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까 근심할 것도 없다.

  

'헤아려서는 이루지 못한다' 했던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러므로 있는 줄(有) 알아야만 축생도 끌어올 수 있다. 이 방편을 터득해야 좀 낫다 하겠다. 미륵보살과 아촉불과 모든 묘희세계(妙喜世界) 등을 보지 못했는가. 그들 향상인(向上人)을 부끄러움과 게으럼이 없는 보살이라 하나 그들 역시 또 변역생사(變易生死)*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게으를까 두려운데 본


분사에 있어서 어찌해야 하겠느냐. 매우 치밀해야 할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씩 앉을 자리가 있는데 부처가 세상에 나온다 해도 그것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체득해서 닦아가야지 재빠른 이익을 쫓아서는 안된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당장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된다 해도 그저 이럴 뿐이며, 삼악도(三惡塗)인 지옥과 육도(六道)에 떨어진다 해도 그저 이럴 뿐이다. 이렇게 아무 작용할 틈이 없으나 그렇다고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에게 주인공이 되어 주어야 하리라.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변역생사를 하지 않으며, 주인공이 되어 주지 못하면 변역생사를 하게 된다.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리로다'* 하신 영가(永嘉)스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더냐.

'무엇이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는 것입니까?'

'모두 다이다'

'어떻게 해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있음을 알면 된다. 면하여 무얼 하겠느냐. 보리.열반.번뇌.무명 등도 전혀 벗어날 필요가 없으며 잡된 세간사도 있음을 알면 될 뿐, 벗어날 필요가 없으니 벗어나면 변역생사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며,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등의 재앙은 적은 것이 아니다. 어째서 그런가? 변역생사를 하기 때문이다. 변역생사를 하지 않으려거든 그저 부딪치는대로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 번역생사(變易生死):나고 죽으면서 몸을 바꾸는 범부의 분단생사(分段生死)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미세망상이 남아 있는 보살의 생사를 일컬음.

 

3. 천화


스님께서 천복(天復) 신유(辛酉)년 밤에 지사(知事)에게 물었다.

"오늘이 몇 월 몇 일이냐?"

"6월 15일입니다."

"나는 평생 행각해 왔는데, 가는 곳마다 90일로 한 철을 삼았을 뿐이다. 내일 진시(辰時)에 행각을 떠나련다."


그 시각이 되자 분향하고 편안히 앉아서 천화(遷化)하시니, 세수 62세, 법랍은 37세였다. 전신(全身)을 서쪽 산비탈에 안장하고, 시호는 원증선사(圓證禪師), 탑은 복원(福圓)이라 하였다.



조당집(祖堂集) - 조산록

               

1. 행  록


동산(洞山)스님의 법을 이었고, 항주(抗州)에 살았다. 법명(謂)은 본적(本寂)이며, 천주(泉州) 포전현(蒲田縣) 사람으로 속성은 황씨다. 어릴 적부터 9경(九經)을 익혀 출가하기를 간절히 바라더니, 1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의 허락이 나서 복당현(福唐縣) 영석산(靈石山)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2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은사가 계 받을 것을 허락하였는데 거동과 몸가짐이 마치 오랫동안 익힌 것 같았다. 그 길로 행각을 나서서 처음으로 동산스님 법회를 찾으니, 동산이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아무개라고 대답하니, 동산스님이 다시 말했다.

"본분(向上)에서 다시 말해 보아라."

"말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말할 수 없는가?"

"아무개라고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자 동산스님이 근기를 깊이 인정하였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 몇해 만에 비밀한 방에서 종지를 이어받았다.


어느날 동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동산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함없는 곳으로 가렵니다."

"변함없는 곳이라면서 어떻게 감이 있겠는가?"

"가더라도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로부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게 노닐었는데 도반될 만한 사람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깊이 숨어 자유로운 활동을 하지 않더니, 교화할 인연이 이르자 처음에는 조산(曹山)에 살다가 나중에는 하옥(荷玉)으로 옮겼다.

  

종릉(鍾陵) 대왕이 스님의 높은 덕망을 흠모하여 두세 번 사신을 보내 청했으나 스님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세번째 사신을 보낼 때, 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조산대사를 데리고 오지 못하면 나를 만날 필요도 없다."

사신이 왕명을 받들고 산에 와서 슬피 울며 말했다.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일체중생을 구제해 주옵소서. 스님께서 이번에도 왕명에 따라 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잿가루가 됩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신께 후환이 없도록 보증하기 위해 가실 때 옛 어른의 게송 한 수를 전하리다."

그리고는 다음의 시를 보냈다.


    꺾여진 고목나무 푸른 숲에 끼어 있어

    몇 차례 봄을 만났건만 그 마음 안 변했네

    나무꾼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이름난 목수가 무얼 애써 찾겠는가.

     殘枯木倚靑林  幾度逢春不變心

    蕉客見之猶不顧   人那更苦追尋


사신이 돌아와서 게송을 바치니, 왕이 보고 멀리 조산 마루를 향해 절을 하면서 말씀하셨다.

"제자는 금생에 영영 조산대사를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곳의 법석(法席)에서 20년 동안, 여름 겨울없이 대중이 항상 천 2, 3백명이나 되었다.


2. 상당


스님께서 항시 상당하면 대중에게 이렇게 법문하셨다.


"여러분은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제방에는 말로 선사된 이가 많아서 여러분의 귓속이 모두 가득할 것이다. 온갖 법을 의지하지도 않고 접하지도 않고 다만 그렇게 체득하면, 그들의 차별된 알음알이가 그대들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아득한 천지에 온갖 일이 삼(麻)같이 갈대(초)같이 가루(粉)같이 칡덩굴(葛)같이 많은데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며 조사께서 세상에 나오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니 오직 끝까지 체험해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천만가지 경론으로 도를 이룬 이가 자유롭지 못하고 시종(始終)을 초월치 못했음을 보았을텐데, 대체로 자기 일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일을 밝히면 저 모든 일을 굴려 그대 자신의 살림을 삼게 되겠지만 만일 자기 일을 밝히지 못하면 그대들이 여러 성인에게 연(緣)이 되어주고, 여러 성인이 그대에게 경계(境)가 되어 경계와 인연이 서로 어울려도 깨달을 기약이 없을 것이니 어찌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몸소 완전히 체득하지 못하면 저 모든 일을 굴려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며, 만일 완전히 체득하여 묘연히 얻으면 모든 일을 굴려 등 뒤로 던져 두고 하인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본체는 미묘한 곳에 있으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 하셨다. 이 경지에 이르면 귀천(貴賤)도 없고 친소(親疎)도 없어 마치 큰 부잣집 금고지기(守錢奴)가 물건을 쓸 때 동과 서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다. 이 경지에 이르면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는 것이며, 청탁(淸濁)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이때, 만일 낮은 사람이 나서서 주인보다 더 좋게 옷을 입고 단장했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데야 어쩌랴. 내가 여러분께 말해주겠다. 향해 가는 말(向去語: 向上語)은 맑고 깨끗하나 일 위의 말(事上語: 向下語)은 맑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니, 무엇을 일 위의 말이라 하겠는가? 여기서는 격식을 벗어난 큰 사람을 가려낼 수 없다."


3. 대기


1.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스님 회상에 온 뒤로 지금까지, 몸 빼낼 길(出身處)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으니, 스님께서는 몸 빼낼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어떤 길을 걸었던가?"

"여기서는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몸 빼낼 길을 찾지 못했구나!"


2.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싹을 보고서 땅을 가리고 말을 듣고서 사람을 안다' 했는데 지금 말하고 있으니 스님께서 가려 주십시오."

"가릴 수 없다."

"어째서 가리지 못하십니까?"

"내 솜씨가 좋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3.

한 스님이 물었다.

"노조(魯祖)스님이* 벽을 향해 앉았던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스님께서 손으로 귀를 막았다.


4.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이 없을 때엔 어떻게 나타납니까?"

"여기에는 나타날 수 없다."

"어디에서 나타나야 합니까?"

"어젯밤 삼경에 돈 세 닢을 잃었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나오기 전엔 어떻습니까?"

"지난날 나도 그랬다."

"나온 뒤엔 어떻습니까?"

"그래도 나에 비한다면 석달 쯤은 밥을 더 먹어야겠구나."


6.

"옛사람이 벽을 향해 앉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두 그루의 고운 계수나무가 시들어가는구나."


7.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 원각(圓覺)을 말하면 그 원각의 성품도 윤회와 같다'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각을 말하는 것입니까?"

"마치 어떤 사람이 객지에서 집안 일을 이야기하는 격이다."

"어떤 것이 그 원각의 성품도 윤회와 같다는 것입니까?"

"분명히 도중(途中)에 있구나."

"길을 걷지 않고도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할 길이 있으면 원각이 아니다."

"그 말할 수 없는 자리도 유전(流轉)합니까?"

"역시 유전한다."

"어떻게 유전합니까?"

"또렷또렷하지 않아야 한다."


8.

한 스님이 물었다.

"눈썹과 눈이 서로를 알아봅니까?"

"알아보지 못한다."

"어째서 알아보지 못합니까?"

"같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누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눈썹이 눈은 아니다."

"무엇이 눈입니까?"

"뚜렷한 것이다."

"무엇이 눈썹입니까?"

"나도 그것을 의심한다."

"스님께선 어찌하여 의심하십니까?"

"내가 만일 의심치 않는다면 뚜렷한 것이기 때문이다."


9.

한 스님이 물었다.

"항상 생사 바다에 빠져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겹쳐보이는 달(第二月)이다."

"벗어나고자 합니까?"

"벗어나려 하나 길이 없을 뿐이다."

"벗어날 때엔 어떤 사람이 그를 맞이합니까?"

"무쇠칼(鐵가) 쓴 자가 맞이한다."


10.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중천에 떴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래도 섬돌 밑의 첨지이다."

"스님께서 섬돌 위로 끌어올려 주십시오."

"달 떨어진 뒤에 만나자."


11.

한 스님이 물었다.

"매우 희박할 땐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들릴락말락(希夷)하지 않느니라."

"무얼 하십니까?"

"재채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코를 흘려야겠습니다."

"재채기하지 않는데 무슨 코를 흘리겠느냐."


12.

한 스님이 물었다.

"소 한 마리가 물을 마시니 말 다섯 마리가 울지 못했는데 어떻습니까?"

"조산(曹山)에 효도가 가득하다."


13.

한 스님이 물었다.

"형상(相)에서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형상 그대로가 진실이다."

"무엇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 찾종지를 번쩍 들어올렸다.


14.

한 스님이 물었다.

"도성 안에서 칼(劍)을 휘두르는 이는 누구입니까?"

"나 조산이다."

"누구를 죽이려 하십니까?"

"닥치는대로 다 죽인다."

"갑자기 전생(本生)의 부모를 만나면 어찌하시렵니까?"

"무엇을 가리겠는가?"

"자기 자신이야 어쩌겠습니까?"

"누가 나를 어쩌겠는가?"

"어째서 죽이지 않습니까?"

"손을 쓸 수가 없어서이다."


15.

한 거사(俗士)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누구에게나 있다' 했는데 티끌세상에 사는 저에게도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손을 펴서 손가락을 꼽으면서 말했다.

"하나.둘.셋.넷.다섯 꽉 찼구나."


16.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 쓰러진 이가 땅을 딛지 않고 일어나는 법은 없다' 하였는데 무엇이 땅입니까?"

"한 자(尺), 두 자."

"무엇이 쓰러지는 것입니까?"

"긍정하는 그것이다."

"무엇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일어났다."


1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지해(知解)를 갖추어야 대중의 물음에 잘 대답하겠습니까?"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말로써 표현하지 않는다면 묻기는 무엇을 묻겠습니까?"

"칼과 도끼로 쪼개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물음에 대답했을 때에도 긍정치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

"있다."

"어떤 사람입니까?"

"나 조산이다."


18.

한 스님이 물었다.

"환(幻)의 근본이 어찌 진실입니까?"

"환의 근본은 원래 진실이다."

"환인데 어떻게 나타납니까?"

"환 그대로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환을 떠나 있지 않았겠습니다."

"환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19.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도반을 가까이해야 듣지 못했던 것을 항상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이불을 덮는 자이다."

"그것은 스님께서나 들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항상 듣는 것입니까?"

"목석(木石)과 같을 수는 없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입니까?"

"듣지 못했는가? 듣지 못했던 것을 항상 듣는다 하였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들과 조사들은 알지 못하는데 삵과 암소는 알고 있다' 하였는데 부처님들과 조사들은 어째서 알지 못합니까?"

"부처님들은 비슷하기 때문이며 조사들은 인가(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삵과 암소는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삵과 암소라는 사실이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어째서 비슷하거나 인가에 집착합니까?"

"사람들이 막힘이 없으면 이 가운데서 묘하게 알 것이다."


21.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천제(闡提: 성불할 가망이 없는 종자) 한 사람을 

죽이면 한량없는 복을 받는다' 하였는데 무엇이 천제입니까?"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는 자이다."

"무엇이 죽이는 것입니까?"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다시 그에게 물으셨다.

"이것은 밝은 천제인가 어두운 천제인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흰 뱃속에 검은 웃옷을 입었다."


이렇게 말한 뜻은 소견을 일으킨 것은 밝음이므로 희다 하고 소견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어두움이므로 검다 하였다.

  

22.

스님께서 경전에 있는 일을 들어 대중에게 물었다.

"묻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설법하여 도 닦는 것을 칭찬한다는데 무엇이 묻는 이 없이 부처님 스스로 설하는 것이겠는가?"

누군가가 대답했다.

"온 누리 안에서 한 사람도 듣는 이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한 글자를 따내고 한 글자를 보탠들 불법이 크게 퍼지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온 누리에 한 사람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다."


23.

스님께서 법어를 내리셨다.

"이 자리는 높고 넓어서 나는 오를 수가 없으니, 무슨 자리라 불러야 되겠는가?"

강(强)상좌가 대답했다.

"이 자리라고 불러도 벌써 더럽힌 것입니다."

"오를 이가 있기는 하겠는가?"

"있습니다."

"누구인가?"

"발을 떼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를 수 있는 이는 자리 위의 사람이 아니겠는가?"

"역시 왼쪽과 오른쪽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리 위의 사람인가?"

"이 자리에 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르지 않는다면 자리는 해서 무엇하겠는가?"

"없으면 오를 수 없습니다."

"그 자리는 따로 사람이 있는가, 자리 그대로를 최상의 몸으로 삼는가?"

"자리 그대로를 최상의 몸으로 삼습니다."

스님께서 칭찬했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다."


2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대광(大光)에서 옵니다.

"올 때에 광명이 나타나던가?"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항상 나타납니다."

"비추던가?"

"비추지는 않습니다."

"큰 광명(大光)은 어디에 있던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자 조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옥새(玉璽)로 여겼더니, 알고 보니 천남각(天南角)*이로구나!"

조산스님께서 다시 대신 말씀하셨다.

"비추지 않아야 비로소 큰 광명이 됩니다' 하라."


25.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자리를 차지하고 옷을 입는다' 했는데 무엇이 자리를 얻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이쪽 저쪽을 살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옷을 입는 것입니까?"

"벗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옷이기에 벗을 수가 없습니까?"

"사람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옷이 그것이다."

"이미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다면 입어서 무엇하겠습니까?"

"일어서건 쓰러지건 항상 따라다니며 어디를 가나 살 길이 트인다' 한 말을 듣지도 못했는가?"

"이 뒤에 저절로 보게 될 일은 무엇입니까?"

"옷 입었음을 인정히 않는 것이다."

스님께서 또 말했다.

"옷을 벗고 와서 나를 만나라."


26.

한 스님이 물었다.

"10년을 돌아가지 못해 오던 길을 잊었다 하니, 무슨 뜻입니까?"

"즐거움을 얻고는 근심을 잊어버린다."

"어떤 길을 잊었습니까?"

"열 곳(十處)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의 길도 잊습니까?"

"그것까지도 잊는다."

"어째서 9년이라 하지 않고, 꼭 10년이라 하였습니까?"

"만일 한 곳이라도 돌아가지 않는 곳이 있으면 나는 몸을 나타내지 않는다."


27.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동자가 몸을 던지니, 야차(夜叉)가 게송 반마디를* 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동자가 몸을 던진 것입니까?"

"단정(端正)함을 잃은 것이다."

"어떤 것이 게송 반마디를 읊은 것입니까?"

"흰 구름이 가시덤불에 얽힌 것이다."

"어떤 것이 단정함을 잃는 것입니까?"

"소부(少父) 잃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8.

한 스님이 물었다.

"대궐(玉殿)에 이끼가 끼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제자리(正位)를 지키지 않는다."

"팔방에서 조공을 바쳐올 때엔 어찌합니까?"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하러 조공을 바치러 왔겠습니까?"

"어기는 건 잠시 어긴다 해도 순응하는 것이 신하의 분수이다."

"임금의 뜻이 무엇입니까?"

"추밀(樞密: 왕명을 출납하는 관직)도 그 속 마음을 모른다."

"그렇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공은 몽땅 대신들에게 돌아가겠습니다."

"임금의 성격을 알기나 하는가?"

"바깥 사람들은 감히 논할 것이 아닙니다."


29.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지륜(智輪)입니다."

"지륜과 법륜(法輪)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지륜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막공(邈公)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합니다."


소공(紹公)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털끝만치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강(强)상좌가 대신 말하였다.

"가까워지려면 가까워지고 멀어지려면 멀어집니다."

이에 조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가까워지려면 가까워지는 것인가?"

"같은 바퀴 자국(轍)에 실린 것입니다."

"무엇이 멀려면 먼 것인가?"

"여러 수레와 같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것이 먼저인가?"

"뭇 수레와 함께하지 않는 것이 먼저입니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다."


30.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신의 주인입니까?"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가 깊지(玄) 않으면 속된 중으로 타락하리라' 하셨다는데 무엇이 깊음입니까?"

"그대가 질문하기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대로가 깊음이 아니겠습니까?"

"깊다면 속된 중으로 타락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깊음입니까?"

"질문을 바꾸어라."


31.

한 스님이 물었다.

"3승 12분교에도 조사의 뜻이 있습니까?"

"있다."

"이미 조사의 뜻이 있었다면 다시 서쪽으로부터 와서 무엇하겠습니까?"

"그저 3승 12분교에 조사의 뜻이 있기 때문에 서쪽에서 왔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그렇게 술취한 놈에게 물어서 무엇하겠는가?"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그대가 묻지 않았더라면 나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33.

"어떤 것이 다른 종류(異類)입니까?"

스님께서 "다른 가운데서는 종류를 대답치 않는다" 하시고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에게 말로 해준다면 나귀해(□年)엔들 다름을 알겠는가?"

또 말씀하셨다.

"나에겐 단지 한 쌍의 눈썹이 있을 뿐이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문수(文殊)는 어째서 부처님(瞿曇)에게 칼을 뽑았습니까?"

"그대의 오늘을 위해서이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잘 해친 이라 칭찬하셨습니까?"

"대비(大悲)로 뭇 중생을 가엾이 여겨 덮어 주었기 때문이다."

"다 죽인 뒤엔 어찌 됩니까?"

"죽지 않는 자임을 비로소 안다."

"그 죽지 않는 자는 부처님에게 어떤 권속입니까?"

"그대에게 이름을 지어주면 되겠으나 권속이 되지 않을까 걱정일 뿐이다."

"하루 동안 어떻게 시봉해야 됩니까?"

"그대는 반드시 잘 해치는 이가 될 것이다."


35.

한 스님이 물었다.

"「화엄경」에 말씀하시기를, '큰 바다는 시체를 간직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큰 바다입니까?"

"온갖 것(萬有)을 포용한다."

"무엇이 시체입니까?"

"숨이 끊어진 자이니 그들을 붙여두지 않는다."

"이미 만유를 포용한다면 어째서 숨이 끊어진 자를 붙여두지 않습니까?"

"큰 바다는 그러한 공덕이 없는데 숨이 끊어진 자는 그러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큰 바다에도 본분사(向上事)가 있습니까?"

"있다 해도 되고 없다 해도 되겠지만 용왕이 칼을 빼들고 있음이야 어찌 하겠는가?"


36.

조산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손에 든 것이 무엇인가?"

"부처님 머리 위의 보배 거울입니다."

"부처님 머리 위의 보배 거울이라면 어째서 그대 손에 들어 있는가?"

대답이 없으니, 조산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부처님들도 역시 저희 후손들입니다' 하라."


37.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도 도를 알지 못하니, 내 스스로 수행을 해야 한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부처님이 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의 경계에는 안다 할 것이 없다."


석문(石門)스님이 말씀하셨다.

"더 알아서 무엇에 쓰겠는가?"

"어떤 것이 내 스스로 수행을 하는 것입니까?"

"위로 향하는 일에는 일이 없다."

"그것뿐입니까, 아니면 별다른 도리가 있습니까?"

"그것뿐이라 한들 누가 어찌하겠는가?"


38.

한 스님이 물었다.

"잘 간직(保任)하는 사람이 한 생각을 잃을 때는 어찌됩니까?"

"비로소 간직을 하게 된다."

"큰 마왕(魔王)이 되었을 때는 어찌합니까?"

"부처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지막 일(末後事)은 어떻습니까?"

"부처도 그 일을 하지 않는다."


39.

한 스님이 물었다.

"큰 이익을 짓는 사람도 비슷해질 수 있습니까?"

"비슷할 수 없다."

"어째서 비슷하지 못합니까?"

"듣지도 못했는가? 큰 이익을 짓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존귀한 분을 압니까?"

"존귀한 분을 모른다."

"어째서 존귀한 분을 모릅니까?"

"그가 나 조산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조산입니까?"

"큰 이익을 짓지 않는 자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감천(甘泉)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밭 가는 농부에게서 소를 빼앗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 했다는데, 무엇이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는 것입니까?"

"노지(路地)를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것입니까?"

"제호(醍 )를 물리치는 것이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얕으나 쓸 때엔 깊다' 하였다는데, 볼때에 얕고도 얕다는 것은 그만 두고, 무엇이 깊은 것입니까?"

이에 스님께서는 차수(叉手)하고 눈을 감으셨다. 학인이 더 물으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칼(劍)은 빠뜨린 지 오랜데 무엇하러 뱃전에다 표시를 하려는가?"


4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함(玄)입니까?"

"어째서 진작 묻지 않았는가?"

"무엇이 현묘함 가운데의 현묘함입니까?"

"원래 한 사람이 있느니라."


43.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신풍(新豊: 동산)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한 빛깔이 있는 곳에 나눌 수 있는 이치와 나눌 수 없는 이치가 있다'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나눌 수 있는 것입니까?"

"한 빛깔과는 같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今日)을 따르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렇다."

"어떤 것이 나눌 수 없는 이치입니까?"

"가릴 수가 없는 곳이다."

"가릴 수 없는 그 자리야말로 부자(父子)가 온통 한 몸이 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그런데 그대도 알고 있었던가?"

"바야흐로 한 빛이 될 때엔 깨달음(向上事)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깨달음엔 본래 한 빛이랄 것도 없다."

"그 한 빛이란 것도 종문(宗門)의 종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람에게 말해 줍니까?"

"종문에 알아들을 이가 없기 때문일 뿐이니, 그러기에 그런 사람을 위해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활짝 깨치는 이(頓)도 있고 근기가 낮은 이(弱)도 있겠습니다."

"내가 활짝 깨치는 이와 근기 낮은 이를 말했다면 삿됨에 빠지는 것이다."

"종문 안의 일을 어떻게 알아야 되겠습니까?"

"그 안의 사람이라야 한다."

"어떤 사람이 그 안의 사람입니까?"

"내가 이 산에 살기 시작한 이래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 사람 중에는 그런 이가 없다 해도 스님께서는 옛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받으시겠습니까?"

"손을 펴지만 말라."

"그렇게 하면 스님께서 무엇인가를 주시겠습니까?"

"옛사람이 그대를 꾸짖는구나."


44.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칼날없는 칼입니까?"

"삶거나 단련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맞서 오는 자는 모두가 죽는다."

"맞서는 이가 없으면 어찌합니까?"

"역시 몰살을 당해야 한다."

"오지 않는 이가 어째서 모두 몰살되어야 합니까?"

"듣지 못했는가? 모두 다 해치운다는 말을."

"다한 뒤에는 어찌 됩니까?"

"이러한 칼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沙門)의 모습입니까?"

"눈을 까뒤집고 봐도 안보이는구나."

"그렇다면 가사는 입었습니까?"

"가사를 입었다면 사문의 모습이 아니지."

"그렇다면 무엇이 사문의 행(行李)입니까?"

"머리에는 뿔을 이고 몸에는 털을 썼다."

"이 사람은 누구의 힘을 빌어 이렇게 되었습니까?"

"종일 남의 힘을 얻어 쉬지 않고 다닌다."

"이 사람은 무엇을 귀하게 여깁니까?"

"머리에 뿔을 이지 않는 것과 몸에 털을 쓰지 않은 것이다."


 4. 천화


스님께서 천복(天復) 원년(元年) 신유(辛酉) 여름에 졸연히 한마디 하셨다.

"운암 노스님도 62세를 사셨고, 동산스님도 62세에 열반에 드셨다. 나 조산도 올해 62세이니, 앞 사람의 뒤를 따라 하나의 관례를 이루는 것이 좋겠다."

윤(閏) 6월 15일, 밤이 되자 주사(主事)에게 물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윤 6월 15일입니다."

"조산은 한평생 행각을 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90일로 한 철을 삼았다."

그리하여, 이튿날 진시(辰時)가 되자 열반에 드시니, 춘추는 62세, 승랍은 37세이며, 시호를 원증(圓證)대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