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때 얌전하고 보수적, 북쪽 일에 관심 가질 아가씨로 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깜짝 놀랐어요.
그 친구가 책을 쓰라고 내게 몇 번 권했지만…

신은미씨가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보도를 봤을 때 그쪽 동네 일로만 여겼다. 더 알고 보니 수상(授賞)기관이 한 언론사와 관계있는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었다. 재단 이사장도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씨였다. 이러면 사정이 달라진다.
언론사 부설 재단이 실정법 위반 혐의로 강제출국된 신씨에게 굳이 상(賞)을 주겠다는 것은 '특별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소위 진보 진영은 신씨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다수 국민이 신씨에 대해 황당하게 느꼈던 감정을 대놓고 비웃는 것처럼.
이번 수상 이유로 '신씨가 5·24 조치(천안함 피격 사건의 책임을 물어 취한 대북 제재) 해제를 촉구했고 5·24 조치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금방 와닿지 않는다. 아마 신씨가 '종북(從北) 논란'으로 한바탕 난리를 피운 게 점수를 얻었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심정" 운운하며 떠난 신씨를 '탄압받는 투사(鬪士)'로 인정한 것 같다. 이번 수상과 관련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친북 매체 '민족통신'은 "신은미는 국내외에 '북부조국(북한) 바로 알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선전했다.
해석은 자유이나 사실 관계는 확실히 해야 한다. 신씨는 피해자였을까. 오히려 존재조차 몰랐던 그녀는 종북 논란으로 유명 스타가 됐다. 그쪽 동네에선 '선생님'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이제 신씨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일본 강연을 마치고 평양에 와 있다. 공항에 수양딸이 마중 나왔다"고 자신의 동선을 알리면 매스컴에 중계될 정도가 됐다. 북한 관광을 다녀와 이런 벼락출세를 한 경우는 여태껏 없었다.
또 하나의 사실 관계도 따져야 한다. 신씨는 과연 북한 바로 알기에 '지대한 역할'을 했을까. 신씨는 다섯 차례 방북해 3권의 책을 썼으니 어떤 열정과 신념은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 출간된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에서 다음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공부할 때 만났던 그분은 그 시절부터 북한의 농업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셨다. 북한의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며 농작물 품종 개발에 지금까지도 당신의 평생을 던지고 계신다. 훌쩍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신 선생님은 북한에서 '목화 할머니'로 통하신단다. 선생님과의 반가운 재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지난날, 무심히 살아온 내 삶을 반성해본다."
신씨가 이렇게 존경심을 표한 주인공은 일흔여덟 살의 재미(在美) 농학박사 김필주씨다. 김 박사는 1989년 처음 방북한 뒤로 북한 내 협동농장 5곳을 운영하고 있다. 미(美)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에 뽑힌 적도 있다. 방북 횟수만 110회가 훨씬 넘는 김 박사에게 '신씨의 책이 북한을 바로 알리고 있는지' 판단을 구하는 게 더 객관적일 것이다.
"오래 소식이 끊겼다가 몇 년 전 우연히 재회했어요. 처녀 때는 얌전하고 보수적이었어요. 북쪽 일에 관심 가질 아가씨로 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는 깜짝 놀랐어요. 그 친구가 내게 책을 쓰라고 몇 번 권했어요. 박사님의 북한 얘기를 듣고 싶어할 것이라며. 나는 북한을 26년간 다녔지만 아직도 너무 모른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가 '용감하게' 책을 쓰는 것에 대해 두어 번 조언했어요. 책 쓸 때 조심하라고."
―조심하라는 건 무슨 뜻이지요?
"그 친구는 겨우 몇 번 가봤는데. 물론 북한에서 보고 만난 걸 썼겠지만 그쪽에서 안내하고 보여준 것만 봤는데 그게 연출된 건지, 설령 사실이라도 그게 전체적 사실인지도 모르니까요."
―신씨의 책을 읽어 보니 어떻던가요?
"작년에 신씨가 책이 또 나왔다며 두 권 보내줬는데 나는 일이 바빠 못 읽었고 다른 사람이 들고 갔어요. 책에 내가 나온다는 것도 전해 들었고. 글쎄, 들리는 얘기만으로도 내용에 문제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신씨는 북한을 바로 알리기 위해 싸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신씨를 통해 북한 독재정권에 매수돼 그 실상을 미화 선전하는 세력을 봤던 것이다. 당초 의도와는 반대되는 각성(覺醒) 효과였다. 이 때문에 인도적 북한 지원 활동에 헌신해온 사람들까지 신씨와 같은 부류로 오인되는 피해를 보았다.
신씨의 책에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북한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본인에게는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떠들어대는 동안 정작 그 속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더욱 절망적이고 의지할 곳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신씨에게 북한 정권이 공로 메달을 걸어주기 전에 우리 진보 진영에서 상을 주겠다고 하니 희귀한 '뉴스'인 것은 틀림없다.
언론사 부설 재단이 실정법 위반 혐의로 강제출국된 신씨에게 굳이 상(賞)을 주겠다는 것은 '특별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소위 진보 진영은 신씨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다수 국민이 신씨에 대해 황당하게 느꼈던 감정을 대놓고 비웃는 것처럼.
이번 수상 이유로 '신씨가 5·24 조치(천안함 피격 사건의 책임을 물어 취한 대북 제재) 해제를 촉구했고 5·24 조치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금방 와닿지 않는다. 아마 신씨가 '종북(從北) 논란'으로 한바탕 난리를 피운 게 점수를 얻었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심정" 운운하며 떠난 신씨를 '탄압받는 투사(鬪士)'로 인정한 것 같다. 이번 수상과 관련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친북 매체 '민족통신'은 "신은미는 국내외에 '북부조국(북한) 바로 알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선전했다.
해석은 자유이나 사실 관계는 확실히 해야 한다. 신씨는 피해자였을까. 오히려 존재조차 몰랐던 그녀는 종북 논란으로 유명 스타가 됐다. 그쪽 동네에선 '선생님'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이제 신씨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일본 강연을 마치고 평양에 와 있다. 공항에 수양딸이 마중 나왔다"고 자신의 동선을 알리면 매스컴에 중계될 정도가 됐다. 북한 관광을 다녀와 이런 벼락출세를 한 경우는 여태껏 없었다.
또 하나의 사실 관계도 따져야 한다. 신씨는 과연 북한 바로 알기에 '지대한 역할'을 했을까. 신씨는 다섯 차례 방북해 3권의 책을 썼으니 어떤 열정과 신념은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 출간된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에서 다음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공부할 때 만났던 그분은 그 시절부터 북한의 농업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셨다. 북한의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며 농작물 품종 개발에 지금까지도 당신의 평생을 던지고 계신다. 훌쩍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신 선생님은 북한에서 '목화 할머니'로 통하신단다. 선생님과의 반가운 재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지난날, 무심히 살아온 내 삶을 반성해본다."
신씨가 이렇게 존경심을 표한 주인공은 일흔여덟 살의 재미(在美) 농학박사 김필주씨다. 김 박사는 1989년 처음 방북한 뒤로 북한 내 협동농장 5곳을 운영하고 있다. 미(美)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에 뽑힌 적도 있다. 방북 횟수만 110회가 훨씬 넘는 김 박사에게 '신씨의 책이 북한을 바로 알리고 있는지' 판단을 구하는 게 더 객관적일 것이다.
"오래 소식이 끊겼다가 몇 년 전 우연히 재회했어요. 처녀 때는 얌전하고 보수적이었어요. 북쪽 일에 관심 가질 아가씨로 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는 깜짝 놀랐어요. 그 친구가 내게 책을 쓰라고 몇 번 권했어요. 박사님의 북한 얘기를 듣고 싶어할 것이라며. 나는 북한을 26년간 다녔지만 아직도 너무 모른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가 '용감하게' 책을 쓰는 것에 대해 두어 번 조언했어요. 책 쓸 때 조심하라고."
―조심하라는 건 무슨 뜻이지요?
"그 친구는 겨우 몇 번 가봤는데. 물론 북한에서 보고 만난 걸 썼겠지만 그쪽에서 안내하고 보여준 것만 봤는데 그게 연출된 건지, 설령 사실이라도 그게 전체적 사실인지도 모르니까요."
―신씨의 책을 읽어 보니 어떻던가요?
"작년에 신씨가 책이 또 나왔다며 두 권 보내줬는데 나는 일이 바빠 못 읽었고 다른 사람이 들고 갔어요. 책에 내가 나온다는 것도 전해 들었고. 글쎄, 들리는 얘기만으로도 내용에 문제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신씨는 북한을 바로 알리기 위해 싸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신씨를 통해 북한 독재정권에 매수돼 그 실상을 미화 선전하는 세력을 봤던 것이다. 당초 의도와는 반대되는 각성(覺醒) 효과였다. 이 때문에 인도적 북한 지원 활동에 헌신해온 사람들까지 신씨와 같은 부류로 오인되는 피해를 보았다.
신씨의 책에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북한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본인에게는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떠들어대는 동안 정작 그 속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더욱 절망적이고 의지할 곳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신씨에게 북한 정권이 공로 메달을 걸어주기 전에 우리 진보 진영에서 상을 주겠다고 하니 희귀한 '뉴스'인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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