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사 어록/앙산록

앙산록

실론섬 2015. 8. 31. 18:48




앙산록 仰山錄


徑山沙門 語風圓信 無地地主人 郭凝之 編輯


1. 앙산(仰山:803∼887)스님의 휘(諱)는 혜적(慧寂)이며 소주(韶州) 회화(懷化) 땅 섭씨(葉氏)의 아들로, 아홉 살에 광주(廣州) 화안사(和安寺)의 통(通)스님에게 출가하셨다.

   

열 네 살에 부모가 집으로 데리고 가서 결혼시키려 하였으나 따르지 않으셨다. 이윽고 손가락 두 개를 자르고 부모 앞에 꿇어앉아 정법(正法)을 닦아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맹세하니 부모가 허락하셨다.

   

다시 통(通)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러나 아직 구족계(具足戒)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리저리 행각을 떠나셨다. 처음에 탐원(耽源)스님을 배알하여 오묘한 이치를 알았고, 그 후 위산 영우(山靈祐:751∼853)스님을 찾아뵙고서 깨쳤다.


탐원스님께서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혜충(慧忠)스님께서 당시에 육대조사(六代祖師)의 원상(圓相) 97개를  모두 전해받아다가 나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은 뒤 30년이 되면 남방에서 한 사미(沙邇)가 찾아와 이 가르침을 크게 일으키리니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이제 이 원상(圓相)을 그대에게 줄 터이니 잘 받들어 지니거라.” 하고는 그 그림을 가져다 건네주셨는데 스님께서는 한 번 보고는 바로 불태워 버리셨다.

   

탐원스님께서 하루는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지난번에 준 여러 원상들은 깊숙히 잘 간직해야 하네.”

“그때 보고 나서 바로 태워 버렸습니다.”

“우리 불법은 혜충스님과 여러 조사, 그리고 큰 성인만을 제외하고는 알 사람이 없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 원상을 불살랐는가?”

“저는 한 번 보고 그 뜻을 다 알아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저 활용할 뿐 그림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네만, 그대라면 모르겠지만 뒷사람은 믿음이 미치지 못할걸세.”

“스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다시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개를 그려서 바쳤는데 조금도 잘못된 곳이 없었다. 이것을 보고 탐원스님은 “과연 그렇구나” 하셨다.

   

탐원스님께서 상당(上堂)하시자 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와 이 ○ 모양을 만들어 손으로 들어 받치고는 차수(叉手)를 하고 섰다. 탐원스님께서 양손을 맞대서 주먹을 쥐어 보이자 스님은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 여인처럼 절을 하였다. 탐원스님께서 머리를 끄덕이시자 스님은 바로 절을 올렸다.

   

앙산스님이 누더기를 빨고 있는데 탐원스님께서 물으셨다.

“이럴 때는 어찌하는가?”

“이럴 때를 어디서 보셨습니까?”

   

뒷날 위산스님을 찾아뵈었더니 스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어디 있느냐?”

스님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와 서자 위산스님께서 이상하게 여기시니 스님이 여쭈었다.

“어디가 참된 부처가 계시는 곳입니까?”

“생각이 있는 동시에 없기도 한 묘한 경계로 끝없이 타오르는 신령한 불꽃을 돌이켜 생각하고, 생각이 다하여서 본래자리로 되돌아가면 성품[性]과 형상[相]이 항상하고 사(事)와 이(理)가 둘이 아니어서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리라.”

스님은 이 말씀 끝에 단박 깨달으셨다.

이로부터 위산스님을 시봉하였는데 다해서 15년을 모셨다.


2. 스님이 마당을 쓰는데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티끌은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허공은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티끌을 쓸어버릴 수 없다는 것인가?”

스님이 땅을 한 번 쓸자 위산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그러면 무엇이 허공이 스스로 생기지 않는 도리인가?”

스님이 자신의 몸을 가리키고, 다시 위산스님을 가리키자 위산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티끌도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허공도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이 두 길을 떠나면 또 무엇이겠는가?”

그러자 스님은 또 한 번 땅을 쓸고 다시 자신을 가리키고 위산스님을 가리켰다.


3. 위산스님께서 하루는 밭을 가리키시며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이 언덕밭은 저 쪽은 높고 이 쪽은 낮구나.”

“아닙니다. 오히려 이 쪽이 높고, 저 쪽이 낮은걸요.”

“믿지 못하겠거든 중간에 서서 양쪽을 살펴보아라.”

“중간에 설 필요도 없으며, 또한 양쪽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정 그렇다면 물을 놓고 수평을 잡아라. 물로는 사물의 수평을 잴 수 있다.”

“물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는 그저 높은 곳은 높은대로, 낮은 곳은 낮은대로 땅을 고르시면 됩니다.”

이쯤되자 위산스님은 더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4. 시주(施主)가 위산스님께 비단을 보내오자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시주에게서 이러한 공양을 받으시고 무엇으로 보답하시렵니까?”

위산스님께서 선상(禪滅)을 두드리시자 스님은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대중의 물건을 자기 것으로 쓰십니까?”

   

다른 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즉, 위산스님께서 스님께 말씀하셨다.

“속가의 제자가 비단 세 필을 가져왔기에 나는 종(鍾)을 주고 비단과 바꾸었다.  때문에 세상 사람과 함께 복을 받는다.”

“속가의 제자는 비단이 있어 종과 바꾸었습니다만, 스님께서는 무슨 물건으로 그에게 보답하시렵니까?”

그러자 위산스님은 주장자로 선상을 세 번 치시더니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으로 보답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무엇에 쓰려는지요?”

위산스님께서 또 선상을 세 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것'을 무엇에 쓸까 의심하느냐?”

“저는 `이것'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인공[大家]이 아닙니까?”

“그대는 이미 주인공[大家]을 알아버렸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나에게 물건으로 보답하기를 바라느냐?”

“그것은 다만, 스님께서 주인공[大家]을 파악했으면서도 종으로 답례하는 등 자질구레한 일[人事]을 하시는 것이 이상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대는 보지도 못하였느냐, 달마스님이 인도 땅에서 이곳으로 오셨을 적에도 역시 주인공[大家]을 가지고 와서 자질구레한 일[人事]을 하셨던 것을. 그대들은 모두 달마스님의 징표[信物:방편]를 받은 자들이니라.”


5. 스님은 위산에 있으면서 직세(直歲:물건을 짓거나 수리할 때 공사를 책임지는 직책) 소임을 보았다. 일을 하고 돌아오는데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밭에서 옵니다.”

“밭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던가?”

 스님이 삽을 꽂고 차수을 하고 서 있으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남산에서 띠풀을 베는 사람이 여러 명 있더구나.”

그러자 스님은 삽을 뽑아 들고 가버렸다.

   

* * *

현사 사비(玄沙師備:835∼908)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보았다면 즉시 삽을 걷어차서 넘어뜨렸으리라.”

   

어떤 스님이 경청 도부(鏡淸道:864∼937)스님에게 물었다.

“앙산이 삽을 꽂은 뜻이 무엇입니까?”

“사면을 내리는 천자의 칙명을 개가 물고 가니 제후가 길을 피한다.”

“그러면 현사스님이 `걷어차서 넘어뜨리겠다'라고 한 뜻은 무엇인가요?”

“배[船]를 어찌할 수 없어 표주박을 부숴버렸다.”

“그러면 또 `남산에서 띠풀을 벤다'한 뜻은 무엇인지요?”

“이정(李紛:571∼649, 唐初의 공신)이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陳)을 쳤느니라.”

   

운거 청석(雲居淸錫)스님은 말하였다.

“말해 보아라. 경청스님의 이러한 설명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설두 중현(雪重顯:980∼1052)스님은 말하였다.

“제방에선 모두 `삽을 꽂은 화두가 특별하다'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매우 사악하다. 내가 보기에는, 앙산스님이 위산스님의 한 마디 질문에 노끈으로 자신을 결박하여 거의 죽게 된 꼴이다.”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몽둥이 한 대를 맞았을 뿐이다. 여러분은 따로 아는 것이 있느냐?”


6. 스님이 위산에서 소를 칠 때, 천태(天泰)스님을 넘어뜨리자 그 스님이 물었다.

“한 털끝에 나타난 사자는 묻지 않겠다. 백억 털끝에 백억의 사자가 나타나면 이럴 때는 어떠한가?”

그 말이 끝나자 스님은 바로 소를 타고 되돌아와 위산스님을 모시고 서서, 앞의 말을 모두 말씀드렸다. 이때에 천태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스님은 말하였다.

“바로 저 스님입니다.”

위산스님께서 그 스님에게 물으셨다.

“백억의 털끝에서 백억의 사자가 나타났다고 그대가 말하였소?”

천태스님은 말하였다.

“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앙산)이 천태스님에게 말하였다.

“나타날 때는 털 앞으로 나타나는가, 아니면 털 뒤로 나타나는가?”

 나타날 때는 앞뒤를 말할 수 없습니다.”

산스님께서 크게 웃으시자,

스님(앙산)은 “사자의 허리가 꺾어졌습니다.” 하고는 내려가 버렸다.


7. 스님이 위산스님을 따라 산을 유람하다가 위산스님께서 둥근 반석 위에 앉게 되어 그 옆에서 모시고 서 있는데, 갑자기 까마귀가 홍시 한 개를 물어다가 앞에 떨어뜨렸다. 위산스님께서 홍시를 주워 스님에게 주자 얼른 받아서는 깨끗이 씻어 다시 건네드리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어디서 났느냐?”

“스님의 도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너에게도 몫이 없을 수 없지.”

위산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반쪽을 쪼개어 스님에게 주셨다.

  

* * *

현사스님은 말하였다.

“못난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한 방 얻어맞고 지금까지 일어나질 못하는구나.”


8.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갑자기 너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꾸하겠느냐?”

“동사(東寺)의 사숙(師叔)이 계시면 저는 적막하기까지는 않을 겁니다.”

“그대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죄를 한 번 용서해 준다.”

“사느냐 죽느냐가 다만 이 한마디 말에 달려 있습니다.”

“그대의 견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만,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다.”

“누군데요?”

위산스님께서는 노주(露柱:법당 앞 큰 돌기둥)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것이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자 위산스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야말로 무슨 말을 하느냐?”

“흰 쥐는 변해도 은대(銀臺)는 변치 않습니다.”


9. 스님이 위산스님께 여쭈었다.

“눈앞에 나타나는 대용(大用)을 스님께서는 분명히 지적해 주십시오.”

그러자 위산스님은 법좌에서 내려오시더니 방장실로 돌아가셨다.

스님이 뒤를 따라 들어가자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조금 전에 내게 무어라 물었지?”

스님이 했던 질문을 되풀이하자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답한 말을 기억하고 있느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말해 보아라."

그러자 스님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오는데,

위산스님이 “틀렸어” 하자 머리를 홱 돌리고는 말하였다.

“지한(香嚴智閑:?∼898) 사제가 오면, 제가 대꾸를 못했다고 전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10. 스님이 위산의 앞 언덕받이에서 소를 치고 있던 중에 한 스님이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오래지 않아 바로 내려오자 그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무엇 때문에 위산스님의 회상에 머물지 않는가?”

“인연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연인지 나에게 말해 보아라.”

“위산스님께서는 저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귀진(歸眞:진리의 자리로 돌아간다)이라고 대답했더니, 돌아가 진리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꾸를 못했습니다.”

“스님, 다시 돌아가서 큰스님에게 `제가 그것을 말씀드릴 수 있읍니다' 라고 하라. 큰스님께서 어떻게 말하겠느냐라고 물으시거든 다만 `눈 속·귀 속·콧구멍 속입니다' 라고 말하라.”

그 스님이 돌아가서 일러준대로 하였더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헛된 거짓말 하는 놈아, 그 대답은 5백명의 선지식(善知識)을 거느리는 정안종사의 말이니라.”


11. 스님이 누워 있다가 미륵의 내원중당(內院衆堂)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자리가 다 찼는데 오로지 두번째 자리가 비어 있어 그 자리로 가니, 한 존자(尊者)가 백추[白槌:선방에서 개당(開堂)할 때 추(椎)를 쳐서 대중에게 알리는 것]를 치면서 말하였다.

“지금 두번째 자리에서 설법하시오.”

앙산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백추를 치면서 말하였다.

“대승의 가르침[摩詞衍法]은 4구(四句)를 여의고 100비(百非)가 끊겼다. 자세히 잘 들으라!”

스님의 이 말을 듣고는 대중이 모두 흩어져 버렸다.

잠에서 깨어나 위산스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그대는 이미 성인의 경지[聖位]에 들어갔군” 하자

스님은 바로 절을 올렸다.


 * * *

위산 수(山秀)스님은 말하였다.

“그저 문장대로만 의미를 이해한다 해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홀연히 미륵의 회상에서 눈 밝은 납자[作者]가 있어, 대승법을 말하는 앙산스님을 보고 대번에 `입 닥쳐!' 한다면 스님의 잠꼬대를 그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인들이 꿈속에서 꿈 이야기 하는 것을 면하게 하였으리라.”

   

낭야 혜각(慧覺)스님은 말하였다.

“말해보라. 성중(聖衆)들이 앙산스님을 긍정해야 할지, 아니면 앙산스님을 긍정하지 말아야 할지를. 긍정한다면 결국 앙산스님을 저버리는 것이며, 긍정하지 않는다 해도 앙산스님은 평평한 땅에서 넘어지는 꼴이 될 것이다.

산승[낭야]은 오늘 눈썹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대승법을 설파해 주리라. 4구를 여의고 100비를 끊는다고 한 것을 여러분들이 제방에서 말하듯이 하고, 제방에서도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동선 관(東禪觀)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이 백추를 치자 성중들이 곧바로 흩어졌으니 확실히 사람을 의심하게 한다. 다시 한번 구정물 맛을 봐야만 정신을 차리리라. 대승법은 4구를 여의고 100비가 끊겼다고 이미 다 말해버렸다. 여러분은 이제 앙산을 알겠느냐!”


12. 스님이 위산스님을 모시고 가다가 앞에서 먼지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눈 앞에 무엇이냐?”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나서는 문득 모양을 만들었다. 그것을 보시고 위산스님은 머리를 끄덕이셨다.


13. 위산스님께서 시중(示衆)하시되

“일체 중생은 모두가 불성(佛性)이 없다” 하였는데,

염관 제안(鹽官齊安:?∼842)스님은 반대로 시중하기를

“일체 중생은 모두가 불성이 있다” 고 하였다.

   

염관스님의 회상에 있던 두 스님이 위산스님께 가서 따져 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위산에 도착하여 위산스님의 설법[擧揚]을 들었으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업신여기며 오만한 태도를 보이다가, 하루는 스님(앙산)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때에 그 스님이 스님에게 말하였다.

“사형(師兄)께서는 부지런히 배우셔야 합니다. 불법을 쉽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자 앙산스님이 바로 동그라미[○]를 그려 손으로 들어 보이고는 뒤로 던져 버리더니, 이어서 두 손을 편 채 그 두 스님에게 다가가서는 동그라미를 찾았다. 그 두 스님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자 스님은 말하였다.

“형씨들[염관의 두 스님]께서는 부지런히 배우셔야 합니다. 불법을 쉽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바로 일어나서 가버렸다.

   

그 뒤에 이 두 스님은 다시 염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던중, 한 30리쯤 가서 한 스님에게 갑자기 깨달음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 스님이 말하였다.

“위산스님께서 `일체 중생은 모두가 불성이 없다' 라고 하신 말씀은 믿어도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는 위산으로 다시 되돌아가 버렸다. 남은 한 스님은 계속하여 앞으로 몇 리를 더 가다가 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그때 갑자기 깨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였다.

“위산스님께서 `일체 중생은 모두가 불성이 없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분명히 그 분에게 어떤 도(道)가 있었구나.”

그리고는 그 스님 또한 위산으로 되돌아와서 오랫동안 법석(法席)을 떠나지 않았다.


14. 염관스님의 회상에 있던 몇 사람이 위산에 찾아와서는 승복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하루는 그 스님들과 함께 서쪽 들판에서 볏단을 나르게 되었는데, 스님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볏단을 내려놓자 뒤따르던 십여명도 거기다가 볏단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스님은 볏단을 일으켜세워 걸머지고는 여러 스님들을 한 바퀴 빙 돌더니 말하였다.

“있느냐, 있어?”

모두 대꾸가 없자 스님은

“사람을 속였군” 하고는 볏단을 걸머지고 휙 가버렸다.


15. 위산스님께서 스님과 함께 소를 치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가운데도 보살이 있을까?”

“있습니다.”

“어디에서 보았느냐? 보았다면 어디 있는지 가리켜 보아라.”

“그러면 스님께서는 보살이 없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지적해 보십시오.”

그러자 위산스님은 그만두셨다.


16. 스님이 위산스님께 과일을 올리자 받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어디서 났느냐?”

“집 뜰에서 났습니다.”

“먹을만 하더냐?”

“감히 맛보지 못하고 먼저 스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누구 것인데?”

“저, 혜적의 것입니다.”

“그대의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나더러 먼저 맛보라고 하는가?”

“스님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맛보십시오.”

그러자 위산스님이 맛을 보고는 “시고 떫구나” 하자

“시고 떫은 것은 반드시 스스로가 알아야 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위산스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7. 스님이 여름 결제 끝에 위산스님께 문안을 드렸더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한여름 내내 문안하러 올라오지 않더니, 아래 있으면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

“제가 아래에 있으면서 한 기 새밭을 매다가 종자 한 웅큼을 얻었습니다.”

“그대는 금년 여름을 헛되게 보내진 않았군.”

그러자 스님이 도리어 위산스님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한여름 동안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나는 해가 뜨면 밥 먹고, 밤이 되면 잠을 잤다네.”

“스님께서도 금년 여름을 헛되게 보내진 않으셨군요.”

이렇게 서로 대화를 끝내고 한참 있다가 앙산스님이 죄송스러운 마음에 혀를 낼름 내밀었는데, 이것을 보시고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혜적아, 무엇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상하게 하느냐!”

   

* * *  

위산 철(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4천하(四天下)를 비추는 눈으로 대원경지(大圓境地)가 앞에 실현되었으나 도리어 깨끗한 자리에서 대원경지에 걸려 넘어졌도다. 그러니 자식 기른 인연이 후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면치 못했다 할 만하다.”

   

용문 원(龍門遠)스님은 말하였다.

“위산과 앙산의 부자(父子)가 항상 서로 마주 보면서 신통한 경지에서 노닐어 좀스러운 무리와는 전혀 같지 않았다. 자! 알 수 있겠느냐? 내가 여러분에게 설명해 보여주겠다.


한 기 새밭 개간하니

빈틈없고 끊임없어라.

한 번은 죽 먹고 한 번은 밥 먹으니

그 도가 스스로 분명하구나.


나는 여름 안거 동안 내내 여러분을 살펴보았으나 여러분 스스로 한 소식 하질 못했다. 한 조각만이라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조각이겠느냐? 문(門)에 있는 화살을 살펴보라!”


서선 유(西禪儒)스님은 말하였다.

“위산과 앙산의 부자(父子)가 들락거리며 말기도 하고 펴기도 하면서 자유자재하였다. 여러분에게 간절히 바라노니 세속적인 이치〔世諦〕로써 이리저리 따지지를 말라. 그렇다고 불법으로 따져서도 안된다. 이렇게 모든 것을 알음알이로 헤아리지 않으면 결국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겠는가?


한 기 새밭 개간하여

한 웅큼 곡식 심었네.

고개를 들어 한가하게 바라보니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러라.

낮이면 밥 먹고

밤이 되면 그저 잠잘 뿐이네.

피곤하면 다리 뻗고 잠자니

모든 것 만족하여라.

팔월 구월이 돌아오면

타리 그득하게 노란 국화 피어 있으리.”


동림 안(東林顔)스님은 말하였다.

“요즈음 시대에 스승 노릇하는 스님들은 백천명이나 되지만 겨울을 지내고 여름을 보내면서 세월만을 허비하며, 옛사람을 아주 욕되게 하는구나. 나 동림은 요즘 사람과 달라 선대 성인을 점검해 보았더니 앙산스님은 잘난체가 지나쳤고, 혀를 낼롬 내민 것은 반쯤을 얻었을 뿐이다.”


18. 위산스님께서 하루는 제자인 스님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두 손을 맞댄 채로 지나가시면서 양 손을 세 번씩 벌리더니,

갑자기 한 손가락을 세우셨다.


   이것을 보고 스님도 두 손을 맞댄 채로

   양 손을 세 번씩 벌리더니,

   다시 가슴께로 가져가서

   한 손은 위로 한 손은 아래로 놓고서 위산스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위산스님은 그만두셨다.


19. 위산스님께서 까마귀에게 생반(生飯:재 지낼 때 짐승이나 귀신 몫으로 떼어주는 음식)을 주시다가 머리를 돌려 스님을 보더니 말씀하셨다.

“오늘은 까마귀를 위해 상당(上堂)하여 설법 한번 하리라.”

“그럼 저는 이제껏 그래왔던 대로 `그것'을 듣겠습니다.”

“무엇을 듣는다는 말이냐?”

“까마귀는 까마귀소리를 내고, 까치는 까치소리로 지저귑니다.”

“그것은 겉모습이 아니냐?”

“스님께서는 조금 전에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나는 `이것'을 위해 상당(上堂)하여 한번 설법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겉모습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기는 하나 이렇게 시험해보는 것도 무방하다네.”

“그러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은 또 어떻게 시험하시렵니까?”

위산스님께서 주먹을 쳐들자, 스님은 말하였다.

“이것은 결국 애매모호한 말씀입니다.”

“자네가 조금 전에 무슨 말을 하였지?”

“스님께 일대사인연을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애매모호하다고 했는가?”

“겉모습에 집착하시는 것 같아서 그렇게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 일을 분명히 깨치진 못했네.”

“어떻게 해야 이 일을 분명히 깨칠 수 있는지요?”

“혜적아, 그대의 겉모습은 노승의 것이다.”

“달 하나가 천 강에 비칠 때 그 달은 물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그래야 할 것이다.”

“같은 금끼리는 전혀 다르지 않은 것과도 같습니다. 물질[色]인들 어찌 이름이 다르겠습니까?”

“무엇이 이름이 다르지 않은 도리인가?”

“병, 소반, 비녀, 팔찌, 그릇, 항아리입니다.”

“혜적이 선(禪)을 말하면 마치 사자의 포효에 여우, 이리, 야간(野干)들이 놀라 흩어지는 것과 같구나.”


20. 스님이 하루는 위산스님을 모시고 있다가 홀연히 새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위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새가 참 성급하게 무어라고 말하는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

“어째서지?”

“너무 직설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잘것없는 법문을 혜적이 일시에 밀쳐 버리는군.”

“밀쳐버리다니, 어떻게요?”

위산스님은 선상을 세 번 내리치셨다.


21. 스님이 왕망산(王莽山)에 머물다가 부모님을 뵈러 가려는데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이미 선지식이라고 불리우니 제방에서 온 사람들이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에게 스승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교학승인지 선승인지를 어떻게 가려내는지 나에게 말해 보게나.”

스님이 대답하였다.

“제게는 그것을 시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방의 선객이 찾아오면 대뜸 불자(拂子)를 치켜세우고 그에게 `제방에서도 이것을 말하더냐?' 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묻기를, `이것은 우선 그만두더라도 제방 노숙(老宿)들의 생각은 어떠하던가?' 라고 합니다.”

이말을 듣고는 위산스님께서 탄복하여 말씀하셨다.

“이는 옛부터 종문(宗門)을 지키는 손톱이요, 어금니이니라.”

   

위산스님께서 또 물으셨다.

“온누리 중생들의 업식(業識)은 끝이 없어 기댈 근본이 없다. 그대는 어떻게 그들에게서 그 업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느냐?”

그러자 위산스님이 대답했다.

“제게는 그것을 시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때 바로 앞에 지나가는 스님을 보고는 스님이 불렀다.

“스님!”

그 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위산스님께 말씀드렸다.

“스님이시여, 이것이 바로 의거할 근본이 없는 망망한 업식입니다.”

위산스님께서 탄복하여 말씀하셨다.

“이는 사자의 젖 한 방울로 노새의 젖 여섯 섬을 물리쳐 버린 격이로다.”


22. 스님이 쌍봉(雙峯)스님에게 물었다.

“사제, 요즈음의 보는 경지가 어떠한가?”

“제가 보기에는 실로 알음알이라 할 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대의 견해는 오히려 경계에 걸려 있다.”

“저는 그렇다치고, 그럼 사형께서는 어떠하신지요?”

“알음알이라 할 법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지 않는가?”

위산스님께서 들으시고는 말씀하셨다.

“혜적의 이 한 마디가 천하 사람들을 의혹으로 몰아넣는구나.”


* * *  

현각(玄覺)스님은 말하였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실로 연등불(然燈佛)이 아무 법도 나에게 수기(授記)하지 않으셨다' 라고 하였고, 그(쌍봉스님)도 `실로 알음알이라 할 법이 아무것도 없다' 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알음알이가 경계에 남아 있다고 하였을까? 자, 말해 보아라. 잘잘못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23. 하루는 비가 내리는데 천성(天性)스님이 스님에게 말하였다.

“좋은 비로군요.”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

천성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하였다.

“나는 말할 수 있다네.”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스님이 비를 가리켰는데 천성스님은 또 대꾸가 없자, 스님은 말하였다.

“왜 큰 지혜를 얻고도 말이 없느냐?”


24. 하루는 제1좌스님(위산)께서 불자(拂子)를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든지 도리를 말한다면, 그에게 이것을 주리라.”

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도리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 도리를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자 스님이 불자를 빼앗아 가지고는 가버렸다.

   

* * *    

운거 석(雲居錫)스님은 말하였다.

“어느 곳이 앙산의 도리인가?”


25. 방(龐)거사가 물었다.

“우러러 보는 산[仰山]이라 오래 전부터 들었는데, 와서 보니 어째서 굽어보시오?”

스님이 불자를 세웠더니 방거사가 "그럴 듯 하군” 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는 우러러보는 것입니까, 굽어보는 것입니까?”

그러자 방거사는 노주(露柱)를 치면서 말하였다.

“아무도 없으나 이 노주(露柱)가 증명하고 있소.”

스님이 불자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제방에 찾아가거든 마음대로 전하게.”

   

* * *  

은정 잠(隱靜岺)스님은 말하였다.

“가엾게도 `작은 석가(앙산스님)'가 방거사에게 한 번 밀리고서는 그대로 정신을 못차리는군.

방거사가 노주(露柱)를 한 번 두들긴 뜻이 무엇인가?

고래가 바닷물을 모두 삼켜버리고

이슬이 산호가지에 맺혔네.”


26. 삼성 혜연(三聖慧然)스님이 찾아와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혜적(慧寂)입니다.”

“혜적은 나의 이름이라네.”

“저의 이름은 혜연(慧然)입니다.”

그러자 스님은 크게 웃으셨다.


27. 어떤 관리가 찾아왔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관직이 무엇인가?”

“추관(推官:시비를 가리는 벼슬)입니다.”

스님께서 불자를 세우시더니 말씀하셨다.

“이것도 심문할 수 있는가?”

관리가 말이 막히자 대중들에게 대답해 보라고 하였으나 모두가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때에 삼성스님은 몸이 편치 못하여 열반당(涅槃堂)에서 쉬고 있었다. 스님께서 대답을 받아오라고 시자를 보내니, 삼성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돌아가서는 다만 `스님께서는 오늘 일이 있군요' 라고만 하라.”

이 말을 전해 듣고 스님은 다시 시자에게,

“잘 모르겠다. 어떤 일이 있는지를.” 이라고 물어보라 하셨다.

이 소리를 전해듣고 삼성스님은 말하였다.

“재범(再鮎)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


28. 남탑 광용(南塔光涌)스님이 북쪽으로 유람하여 임제(臨濟)스님을 뵙고, 다시 돌아와서 스님을 모시고 있었다. 스님께서 남탑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엇을 하러 왔느냐?”

“스님께 절을 올리려 합니다.”

“스님을 뵈었느냐?”

“뵈었습니다.”

“스님이 노새와 얼마나 닮았더냐?”

“제가 스님을 보니 역시 부처님과도 닮지 않았더군요.”

“부처님과도 닮지 않았다면 무엇과 닮았더냐?”

“닮아야 할 그 무엇이 있다면 노새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스님은 크게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범부와 성인을 둘 다 잊고 알음알이가 다하여 자성자리가 드러났구나. 나는 이것으로 납자들을 20년이나 시험하였는데 확실하게 깨달은 사람이 없었다. 그대는 잘 간직하거라.”

그 후 스님은 매양 사람들에게 남탑스님을 육신불(肉身佛)이라고 말씀하셨다.


29. 곽산 경통(山景通)스님이 찾아와서 절을 하려고 하는데 스님은 눈을 감고 앉아계셨다. 그러자 곽산스님이 오른쪽 발을 들고는 말하였다.

"이렇구나, 이렇구나. 인도의 28대 조사도 이렇고, 중국의 6대 조사들도 이렇고, 나아가 스님도 이러하며, 나 경통(景通)도 이렇구나.”

그러자 스님께서 일어나 오시더니 등나무 주장자로 네 차례 때리셨다.

곽산스님은 이 일로, 스스로 `등나무 주장자로 맞은 자리가 네 줄기가 남아 있는 집운봉(集雲峯) 밑에 사는 천하의 대선사(大禪師)' 라 자칭하였다.


30. 적간(赤干)행자가 종소리를 듣더니 스님께 여쭈었다.

“귀가 있어서 종을 칩니까, 귀가 없어서 종을 칩니까?” 

"너는 묻기만 할 뿐 내가 대답하지 못할까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말라.”

“벌써 물었는걸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님께서 “할!” 하고는, 가라고 하셨다.


31. 판사[侍榮] 벼슬을 지내는 유(劉)거사가 ‘마음을 깨치는 종지’ 에 대해 물으니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음을 깨치려면 무심(無心)해야만 한다.

깨달으려는 마음조차 없는 것이 참된 깨우침이다.”


32. 상공(相公) 육희성(陸希聲)이 스님을 배알하려 하면서, 먼저 동그라미 ○ 를 그려 봉투에 봉하여 앙산스님께 보냈다. 앙산스님은 봉투를 열어, 동그라미 바로 밑에다 이렇게 쓰셨다.

“생각하지 않고 알아도 두번째에 떨어지며,

그렇다고 생각하여 알면 세번째에 떨어진다.”

그리고는 다시 봉해서 되돌려 보냈다.

   

육상공이 보고 나서 바로 산으로 들어가자 스님은 문에서 맞이하셨다.

상공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스님께 물었다.

“3문(三門)이 활짝 열렸는데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믿음의 문[信門]을 따라 들어가시오.”

   

상공이 법당에 이르러 또 여쭈었다.

“마군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은 그대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갈 경우는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거꾸로 들어 세 번 내려치자 상공이 얼른 절을 올리고는 또 여쭈었다.

“스님께서도 계율을 지니십니까?”

“계율을 지니지 않소이다.”

“좌선은 하십니까?”

“좌선도 하지 않소이다.”

상공이 말 없이 한참 있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알았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앙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승의 게송 하나를 들어보시오.”


도도하여 계율도 지니지 않고 滔滔不持戒

올올히 좌선도 하지 않네. 不座禪

그저 진한 차 서너 사발에 茶三兩椀

마음은 저 밭에 가 있도다. 意在頭邊


게송을 다 읊은 뒤 다시 물으셨다.

“듣자오니 상공께서는 경을 보다가 깨달았다고 하던데 그런지요?”

“제자는 『열반경』에서 `번뇌를 끊지 않고 그대로 열반에 <들어간다>' 고 한 귀절을 보고서 편안한 경지를 얻었습니다.”

스님은 불자를 일으켜 세우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들어가겠소?”

“들어간다는 말도 필요치 않습니다.”

“들어간다는 한 마디의 말은 상공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오.”

이 말을 듣자 상공은 일어나더니 그만 가버렸다.

   

* * *

법등(法燈)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들은 말해 보아라.

`들어간다' 라는 한 마디의 말이 누구에게 소용있는지를."

또 말하였다.

“상공은 무엇보다 번뇌를 일으키지 마소서."

   

설두 중현스님은 앙산스님이 불자를 들었던 것에 대해 달리 대꾸하였다.

“불자가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또, 뒷말에 대해서도 이렇게 달리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속인이라고 생각했었네.”


33. 위주(韋宙)스님이 위산스님께 게송 하나를 써달라고 하자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얼굴을 마주하고 전해 주어도 모르는 둔한 놈이거늘,

하물며 종이나 먹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이번에는 스님에게 와서 청하니,

스님은 종이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주(註)를 달았다.

“생각하여 알면 두번째에 떨어지고,

생각하지 않고 알면 세번째에 떨어진다.”


34. 스님이 사미였을 때, 화안 통(和安通)스님이 스님을 부르며 침상을 가져오라고 하여 가지고 가자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어라.”

스님이 그대로 갖다 두자 화안스님이 “혜적아!” 하고 불렀다.

스님이 “예” 하고 대답하자 화안스님은 말하였다.

“침상 저쪽은 어떤 물건이더냐?”

“베개입니다.”

“베개 이 쪽은 어떤 물건이냐?”

“물건이 없습니다.”

화안스님은 다시 “혜적아” 하고 불렀다.

스님이 “예” 하고 대답하자 화안스님은 말하였다.

“이것이 무엇이냐?”


35. 스님이 사미였을 때, 어떤 스님이 석상(石霜)스님에게 물었다.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석상스님이 대답해 주었다.

“천 길 우물 속에서 한 치의 노끈도 쓰지 않고 빠져나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너에게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오신 뜻을 대답해 주겠다.”

그러자 그 스님은 또 말하였다.

“요즈음 호남지방에는 창(暢)스님이란 분이 나와 사람들이 이런 말 저런 말을 한다던데요.”

석상스님은 사미(앙산)를 부르시더니 “이 시체를 끌어내라” 하셨다.

그 후 스님(앙산)은 탐원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우물 속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됩니까?”

탑원스님은 말씀하셨다.

“쯧쯧, 어리석은 놈아! 누가 우물 속에 있다더냐?”

그 후에 위산스님께 다시 이것을 여쭈었더니 위산스님께서 “혜적아!” 하고 부르셨다. 스님(앙산)이 “예” 하고 대답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벌써 빠져나왔구나.”


스님이 앙산에 살게 된 뒤로 항상 이 이야기를 대중에게 들려주셨다.

“나는 탐원스님 회상에서 이름[名]을 들어 보았고, 위산스님 회상에서 경지[地]를 얻었다.”


36. 스님이 사미였을 때, 소리 높여 경전을 외우자 유원(乳源)스님이 혀를 차면서 말하였다.

“경전 외우는 소리가 마치 사람 죽었을 때 곡하는 소리같군.”

이 말을 듣고 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이러할 뿐입니다만, 스님께서는 어떠하신지요.”

유원스님이 돌아보자 스님은 또 말하였다.

“이렇다면 곡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유원스님은 그만두어 버렸다.


37. 스님이 동사 여회(東寺如會:744∼823)스님을 찾아뵙자 동사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 사람이냐?”

“광남(廣南) 땅 사람입니다.”

“내가 들으니 광남 땅에는 진해(鎭海)의 명주(明珠)가 있다던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 구슬이 어떠한가?”

“보름 이후는 숨고, 보름 이전엔 나타납니다.”

“가져 왔느냐?”

“가지고 왔습니다.”

“왜 나에게 보여주질 않느냐?”

스님이 차수를 하고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 말하였다.

“어제 위산스님께서도 이 구슬을 찾으셨는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치로 드러낼 것도 아닙니다.”

동사스님은 말하였다.

“진짜 사자새끼라서 포효를 잘 하는군.”

   

* * *  

장산 근(張山)스님은 말하였다.

“동사스님은 구슬 한 개를 찾았을 뿐이지만

앙산스님은 도리어 한 소쿠리를 모두 얻었다.”


38. 스님은 절을 올리고는 태도를 가다듬고 올라가 절을 하였다. 동사스님이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미 보았는데….”

“이렇게 보았으면 되지 않을는지요.”

동사스님은 방장실로 되돌아가 문을 닫아 버리셨다.

   

스님이 돌아와 위산스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혜적아, 무슨 심사[心行]냐?”

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 * *  

보복 종전(保福從展:?∼928)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이 한 짓은 모기가 무쇠소에 올라탄 꼴이다.”

   

승천 전종(承天傳宗)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동사스님을 알았으니 억지로 도리를 설명해주면 안된다. 설사 위산스님이 직접 동사스님에게 갔다고 하더라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39. 스님이 동사스님께 여쭈었다.

“한 길을 빌려 저쪽으로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출가사문이라면 단지 한 길[一路]이라도 용납해서는 안된다. 달리 무엇이 있느냐?”

스님이 한참 잠자코 있자 이번에는 동사스님께서 물으셨다.

“한 길을 빌려서 저쪽을 지날 수 있느냐?”

“모름지기 출가사문이라면 단지 한 길이라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달리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어서 동사스님이 “다만 `이것'이 있을 뿐이다.” 하자

스님은,

“이 나라[唐] 임금님은 분명히 성(性)이 김씨(金氏)입니다. (당나라는 李씨가 세웠다)” 하였다.


40. 스님이 중읍 홍은(中邑洪恩)스님의 회상에 있으면서 사계(謝戒:선림에서 사미가 득도수계한 뒤에 스승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절을 올리는 것)하자, 중읍스님은 입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었다. 스님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니 또 입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었다.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니 또 입을 두드리면서 박자를 맞추었다. 그리고 나서 스님이 중읍스님의 바로 앞에 서서 사계(謝戒)했더니 중읍스님은 말하였다.

“어디에서 이 삼매(三昧)를 얻었느냐?”

“조계(曹溪)스님으로부터 도장[印子]을 찍어 내왔습니다.”

“말해 보아라. 조계스님은 이 삼매로 어떤 스님을 지도했는가?”

“일숙각(一宿覺:玄覺)을 지도했습니다.”

스님은 중읍스님에게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어디에서 이 삼매를 얻으셨습니까?”

“나는 마조(馬祖)스님의 회상에서 이 삼매를 얻었다네.”

   

* * *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근심있는 사람은 근심있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41. 스님이 중읍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불성의 의미를 깨칠 수 있습니까?”

“나는 그대에게 비유로써 설명해 주겠다. 예컨대 한 방에 여섯 개의 창문이 있는데, 그 안에 원숭이가 한 마리 있다고 하자. 밖에 있는 원숭이가 동쪽에서 부르면 안에 있는 원숭이가 그 쪽으로 가서 대답하는데, 여섯 창문에서 모두 그렇게 하는 것과 같다.”

이 말을 듣고 스님은 중읍스님께 절을 올리고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마침 스님께서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시어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는 어찌 됩니까? 즉, 안에 있는 원숭이가 졸고 있는데 밖에 있는 원숭이가 보려고 할 경우엔 말입니다.”

중읍스님은 법상에서 내려오시더니 앙산스님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말씀하셨다.

“원숭이와 그대가 서로 만났네. 비유하자면, 초명(螟)벌레가 모기의 눈썹 위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사거리에서 말하기를 `땅덩어리는 넓은데 사람이 드무니 사람 보기 힘들다'라고 한 것과 같다네.”

   

* * *    

운거 청석스님은 말하였다.

“중읍스님이 당시에 앙산스님의 이 한 마디 말을 듣지 못했더라면 어찌 중읍(中邑)이 있었으랴?”

   

숭수 계조(崇困契稠)스님은 말하였다.

“이 도리를 알 사람이 진정 다시 있느냐? 정녕코 이 도리를 알지 못한다면 알음알이만을 희롱할 뿐 불성의 의미는 찾지 못한다.”

   

현각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이 아니었다면 중읍스님을 어떻게 볼 수 있었으랴. 다시 말해 보아라. 앙산스님이 중읍스님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42. 스님이 암두 전할(巖頭全:828∼887)스님께 절을 올리자 암두스님은 불자를 세우셨다. 스님이 좌구(坐具)를 펴자 암두스님은 불자를 얼른 뒤에다 두셨다. 다시 스님이 좌구를 어깨 위에 메고 나오니 암두스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가 놓아 버리는[放下] 것은 긍정하지 않고,

다만 거두어들이는[收] 것만을 긍정할 뿐이네.”


43. 스님이 장사 경잠(長沙景岺)스님과 함께 달 구경을 하다가 말하였다.

“사람마다 모조리 이것이 있으나 사용하지 못할 뿐이라네.”

이 말을 듣고 장사스님은 말하였다.

“그대야말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네.”

“그러면 스님은 어떻게 사용하는가?”

장사스님이 정면으로 가슴을 한 번 걷어차자 스님이 "으르릉” 하는데 그대로 호랑이소리였다.

   

* * *

장경 혜릉(長慶慧稜: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앞에서는 피차 모두 본색종장이었는데, 뒤에서는 피차 모두가 본색종장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말하였다.

“삿된 법은 남아 있기 어렵다.”

   

보복 종전(保福從展)스님은 말하였다.

“좋은 달이긴 하지만 그 작용이 대단히 크다. 그에게 밟히고 나서 갑자기 두 개가 되었으니 사람마다 높은 산 호랑이(경잠스님의 별명)가 참으로 굉장하다고들 하는구나. 모름지기 알아야 할 것은 앙산스님에겐 호랑이를 얽어맬 덫이 있었다는 점이다.”

   

덕산 연밀(德山緣密)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다시 한 번 밟아주어라.”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이릉(李陵)이 솜씨가 좋긴하나 새밭에 몸이 빠지는 것을 면할 수 있으랴.”

   

경산 종고(徑山宗果)스님은 말하였다.

“깨끗하고도 밝은 달빛이 싸늘한 광채를 만리에 뻗친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낙엽이 지면 가을인 줄 알겠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진심에서 나오는 말을 해줘도 싫어하리라. 쉬었느냐, 쉬지 못했느냐? 그만두었느냐, 그만두지 못하였느냐? 작은 석가(앙산)에게 호랑이를 잡는 덫이 있었으나 늙은 호랑이는 어금니가 없었다. 당시의 한 번 밟은 것이 어찌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겠으며, 갑자기 거꾸러진 것이 우연이 아니다. 대중 가운데 있는 승·속 중에서 누가 두 늙은이를 꺼내올 수 있느냐?”

한참 말이 없더니,

“설사 있다고 해도 방망이를 휘두르며 달을 치는 격이다” 라고 했다.


44. 스님이 낭주 고제(朗州古提)스님께 절을 올리자 고제스님은 말씀하셨다.

“떠나라. 너에겐 불성이 없다.”

스님이 차수하고 앞으로 가까이 세 걸음을 가서, “예” 하고 대답하자,

고제스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디에서 이 삼매를 얻었느냐?”

“저는 탐원스님의 회상에서 이름[名]을 들어 보았고, 위산스님의 회상에서 경지[地]를 체득했습니다.”

“그렇다면 위산스님의 아들이 아닌가?”

“세속적인 뜻으로 말하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불법의 측면에서 본다면 감히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도리어 고제스님께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이 삼매를 얻으셨는지요.”

고제스님은 대답했다.

“나는 장경(章敬)스님의 회상에서 이 삼매를 얻었다네.”

그러자 앙산스님은 놀라며 말하였다.

“너무도 불가사의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나룻배를 어디에 대야할지 모르겠군요!”


45. 스님이 건주(虔州)의 처미(處微)스님을 찾아가니 그 스님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혜적입니다.”

“어느 것이 혜(慧)이며, 어느 것이 적(寂)인가?”

“눈앞에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앞이니 뒤니 하는 생각을 갖고 있군.”

“앞이니 뒤니 하는 것 말고 스님께서는 무엇을 보십니까?”

“차나 마시고 가게.”


46. 스님은 뒤에 왕망산(王莽山)에서 법을 설하시고 어떤 스님에게 물으셨다.

“요즈음 어느 곳에 있다 왔느냐?”

“여산(廬山)에 있었습니다.”

“강서(江西)의 오노봉(五老峯)에 가본 적이 있느냐?”

“글쎄요, 가보질 못했습니다.”

“스님은 산도 제대로 다녀 보지 못했군.”

   

* * *  

운문 문언(雲門文偃:864∼949)스님은 말하였다.

“이 말을 모두가 자비 때문에 세속에 맞게 수준을 낮춘 얘기라고 한다.”

   

위산 수(山秀)스님은 말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모두가 자비 때문에 세속에 맞게 수준을 낮춘 얘기라고 하나, 달을 잡을 줄만 알았지 물이 깊은 줄은 몰랐다 하리라. 만약 운문스님이 당시에 입을 조심했더라면 아마도 후인들이 이렇게 말로 이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파리는 눈이 없기 때문에 먹이를 구하려면 반드시 새우를 의탁해서 구해야만 한다.”

   

황룡 심(黃龍心)스님은 말하였다.

“운문스님과 앙산스님은 구슬을 받을 마음만 있었지 성(城)을 나눠 보상해 줄 의사는 없었다. 이 스님에게 한꺼번에 허물을 뒤집어 썼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나 황룡은 오늘 다시 죽은 말 고치는 의사[死馬醫:쓸데없는 짓 하는 사람]가 되리라.”

그리고는 불자를 집어 한 스님에게 건네주었는데, 그 스님이 받는 순간 갑자기 몽둥이질을 하였다.

   

위산 철(喆)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전무후무한 사람[光前絶後]이었다고 할 만 하다. 운문스님이 이처럼 종요를 펴서 천하의 납승을 단련하기는 했으나, 바람도 없는데 풍랑을 일으켰는데야 어찌하랴. 여러분은 이 스님을 알겠느냐? 직접 여산에서 왔느니라.”

   

황룡 진(黃龍震)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이미 콧구멍(자기면목)을 잃어 버렸는데 운문스님이 다시 주해한들 어찌 그 잘못을 구제할 수 있으리요. 나는 이렇게 하진 않겠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여산입니다.'

`일찌기 오노봉에 가보았느냐?'

`아직 가보질 못했습니다.' 라고 하면,

나는 그에게

`향 하나를 따로 피워서 불어 이 사람에게 공양하라' 고 말해주리라.”


47. 상당(上堂)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각자 회광반조(廻光返照)할지언정 나의 말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라. 그대들은 비롯함이 없는 옛부터 밝음을 등지고 어두움과 합하여 망상의 근원을 단박에 뽑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방편을 시설하여 그대들의 거친 업식(業識)을 뽑아 버리려고 한다. 이것은 마치 누런 낙엽을 돈이라고 속여 어린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과도 같으니, 그것이 정말 돈이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갖가지 물건과 금은보배로 가게를 차려서 장사를 할 때, 사람들의 재산 정도에 따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석두(石頭)스님의 가게는 금방(金房)이요, 나의 가게는 잡화상이다' 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와서 쥐똥을 찾으면 나는 그에게 쥐똥을 주고, 순금을 찾으면 순금을 준다.”

   

언젠가 한 스님이 물었다.

“쥐똥은 필요치 않습니다. 스님께 순금을 청하노니 순금을 주십시오.”

“활촉을 물고 입을 열려고 하는 일은 당나귀 해(12간지에 없는 해로 기약없다는 뜻)가 되어도 불가능하다.”

그 스님이 대답이 없자 앙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찾는 이가 있으면 거래〔交易〕가 있고, 찾는 이가 없으면 거래도 없다. 내가 선종(禪宗)의 본면목을 이야기하자면 옆에 한 사람을 동반하려고 하여도 되지 않거늘 어찌 5백명, 7백명이 있을 수 있으랴. 내가 만일 도가 이러니저러니하고 횡설수설하면 앞을 다투어서 내 말을 들으려 올 터니니, 이것은 빈 주먹으로 아이들을 속이는 것과 같아서 도무지 진실함이 없다. 내가 이제 분명히 말하노니, 거룩한 쪽의 일에도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자기자신의 성품바다를 향해 여실히 수행하되 3명(三明) 6통(六通)을 바라지 말라. 왜냐하면 이는 성인들의 주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음을 알아 근본을 통달하기 바란다. 근본만 얻을 뿐 지말은 신경쓰지 말라. 언젠가 뒷날에는 저절로 갖추어지리라. 만일 근본을 얻지 못하면 비록 알음알이를 가지고 배운다 해도 되지 않으리라. 그대들은 보지도 못하였느냐?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여 참되고 항상함이 그대로 드러나면, 사(事)와 이(理)가 둘이 아니어서 여여한 부처[如如佛]다' 라고 하셨다.”


48.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인지요?”

스님께서 허공에다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불(佛)자를 써서 보여주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49. 스님께서 제1좌[수좌]에게 말씀하셨다.

“착함도 생각하지 않고 악함도 생각하지 않는 이럴 때는 어떠하겠는가?”

“이러할 때가 바로 제가 신명을 놀리는 곳입니다.”

“왜 나에게 묻지 않느냐?”

“이러할 때는 스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를 부축해 준다면서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구나.”


5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유주(幽州)에서 옵니다.”

“내 마침 유주의 소식을 알고 싶었는데 그곳 쌀값이 얼마던가?”

“제가 떠날 때에 무심코 시장을 지나오다가 그곳 다리를 밟아 무너뜨렸습니다.”

스님은 그만두셨다.

   

* * *

후영 용(侯寧勇)스님은 말하였다.

“그대에게 30대를 때리겠다.”


51. 스님께서 한 스님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불자를 세우자 그 스님은 대뜸 “할” 하였다. 앙산스님은 말씀하셨다.

“ `할' 이야 못할 것 없지만 말해보아라. 노승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 스님은 말하였다.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맞지 않습니다.”

스님은 갑자기 그 스님을 후려치셨다.


52. 인도에서 공중으로 날아 온 스님이 있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요즈음 어디에 가 있다 왔는가?”

“인도[西天]에서 왔습니다.”

“언제 그곳을 떠났는가?”

“오늘 아침에 떠났습니다.”

“어찌해서 이리 늦었는가?”

“산도 유람하고 물도 구경했기 때문입니다.”

“신통유희는 없지 않다만 불법 일랑 나에게 돌려줘야 하겠네.”

“중국[東土]에 찾아와 그저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했는데 도리어 `작은 석가'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 스님은 범서(梵書) 패다라엽(貝多羅葉)을 꺼내어 스님께 드리고 절을 올리고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로부터 스님은 `작은 석가[小繹迦]'라 불리우게 되었다.

   

* * *

동림 총(東林總)스님은 말하였다.

“이에 대해 모두들 삼대와 좁쌀처럼 헤아리면서 말하기를, `이 눈 푸른 오랑캐가 온 종적도 없고 떠난 자취도 없으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 앙산스님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자재하게 쥐었다 놨다 하기는 어려웠으리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선덕(禪德)들은 이 눈 푸른 오랑캐가 허공을 타고 왔다가 허공을 타고 가 일생을 허공 속에서 살 궁리를 하였다는 것은 사뭇 몰랐으니 무슨 전무후무한 소식이 있으랴. 가엾은 앙산스님도 그에게 두통의 구정물 세례를 받았다 하리라. 당시 집운봉(集雲峯) 아래에 애초부터 올바른 법령이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시행하지 않았을까? 대중은 말해보라. 어떤 것이 진정한 법령인지를……. 쯧쯧.”

   

황룡 신(黃龍新)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앙산스님이 그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고 또 범서불경을 꺼내자 다시 한번 얼버무렸다. 이제 또다시 낯선 승려가 허공을 타고 온다면 이 운암(雲巖)의 문하에선 불러다가 다리나 씻기라고 하리라.”

   

늑담 준(潭準)스님은 말하였다.

“애석하도다, 앙산스님이 이 놈을 놓아주다니. 당시에 나 보봉(峯)이었더라면 멱살을 움켜쥐고서 유나(維那)더러 종을 치라 하여 큰방 앞에 대중을 집합시켜 놓고 죄상을 따지고 쫓아냈으리라. 하물며 불법은 인정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 이미 아라한(阿羅漢)이라 불리우게 되었다면 모든 번뇌가 다하고 범행(梵行)이 섰을텐데, 무엇 때문에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있지 않고 산수나 유람하였겠는가.”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농사꾼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사람의 음식을 빼앗는 것이 옛부터 종문의 날랜 솜씨다. 이 아라한은 많은 신통묘용을 갖추었으나 앙산스님 앞에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헤 벌렸을 뿐이다. 왜냐하면 학이 깊은 연못에 있으면 휠휠 날아오르기 어렵고, 용마[馬]는 천리 길이 아니면 제멋대로 날뛰기 때문이다.”

   

대위 태(大泰)스님은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앙산스님은 사슴을 아 앞으로 나갈 줄만 알았지 제몸이 그물에 떨어지는 줄은 몰랐다 하리라. 존자(尊者)가 문장을 이루었는데 납승의 호흡이 상당히 들어 있다. 알아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호랑이 수염을 뽑았다고 인정하리라.”


53. 스님이 동평(東平)스님의 회상에 머물 때 위산스님께서 동평스님을 통해 편지와 거울을 보내주셨다. 스님은 상당하여 거울을 꺼내 들고 대중들에게 보여주면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이것이 위산스님의 거울인지 동평스님의 거울인지를. 동평스님의 거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위산스님께서 보내온 것이 아닌가? 반대로 위산스님의 거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동평스님의 손아귀에 있다. 바로 말한다면 깨뜨리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깨뜨려 버리겠다.”

아무 대꾸가 없자 스님은 이윽고 거울을 깨뜨리고 바로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 * *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다시 도리를 설명해 주십시오. 그대로 빼앗아서 깨부숴 버리겠습니다.”


54. 한 스님이 스님께 절을 올리면서 불쑥 물었다.

“스님께서는 글자를 아십니까?”

“조금 알지.”

그 스님이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바치자

스님께서는 옷소매로 그것을 쓱쓱 지워버리셨다.

   

그 스님이 또 다시 동그라미를 그려 바치자,

스님은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등 뒤로 던져버리는 시늉을 하셨다.

그 스님이 눈으로 던져지는 동그라미를 쫓아가자

스님은 머리를 휙 저으셨다.

   

그 스님이 스님 주위를 한 바퀴 돌자,

스님께서 갑자기 후려치셨는데 그 스님은 그냥 나가버렸다.


55. 스님께서 앉아계신데 한 스님이 찾아와 절을 올렸다. 스님께서 돌아보시지도 않자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글자를 아십니까?”

“조금 알지.”

그 스님은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더니 말하였다.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께서 땅 위에 열 십[十]자를 써서 대답하자,

그 스님은 다시 왼쪽으로 한 바퀴 돌더니 말하였다.

“그러면 이것은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께서 열 십[十]자를 만(卍)자로 고치자

그 스님은 동그라미를 그려서 마치 아수라가 두 손으로 해와 달을 떠받친 자세를 하면서 말하였다.

“이는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께서 ○卍 모양을 그려 대꾸하자

그 스님이 우는[婁至] 시늉을 하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네, 그래. 이는 모든 부처님이 보호하고 아끼는 것으로써 그대도 그러하고 나도 그러하네. 스스로 잘 보호해 지니도록 하게나.”

이 말이 끝나자 그 스님은 절을 올리고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때에 한 도교 수행인(道者)이 있었는데 이를 보고는 닷새 뒤에 가서 스님께 그 일에 대해 여쭈어보자 스님께서 그 도교 수행자에게 물었다.

“그대도 보았는가?”

“저는 문을 나왔을 때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읍니다.”

“이는 인도의 아라한으로 일부러 찾아와 나의 도를 염탐한 것이다.”

“저는 갖가지 삼매를 보기는 했지만 그 이치를 분별하진 못합니다.”

“그대에게 그 뜻을 설명해주겠다. 여기서 말하는 8가지 삼매는 `깨달음[覺]의 차원'을 `설명[義]차원'으로 돌린 것인데, 그 바탕[體]은 마찬가지다. 의미를 설명하는 데에는 당연히 인(因)도 있고 과(果)도 있으며, 동시[卽時]일 수도 있고 시차가 있을[異時]수도 있는데, 총체[總]적이든 개별[別]적이든 은밀한 삼매신[隱身三昧]을 떠나있지 않다.”


55. 한 인도승(印度僧)이 와서 절을 올리자

스님은 땅 위에다 반달 모양을 그리셨다.

그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서는 반쪽을 마저 그려 보름달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발로 지워 버리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께서 두 손을 펴시자

그 스님은 소매를 떨치면서 나가버렸다.


57.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요즈음 어디 있다가 왔느냐?”

“남방에 있다 왔습니다.”

스님은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그곳의 큰스님도 이것을 말하시더냐?”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저것은 말하더냐?”

“말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스님!” 하고 부르니 “예!” 하고 대답하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법당에 참례하고 가거라.”

그 스님이 막 나가려는데 스님은 다시 “스님!” 하고 부르셨다.

그 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이

“이리 가까이 오너라.” 하여 가까이 가자

주장자로 머리를 한 대 때리고는 “가라” 하셨다.

   

* * *

운문 문언(雲門文偃)스님은 말하였다.

“뒷말이 없었다면 어떻게 앙산스님인 줄을 알랴.”


58. 스님께서 하루는 법당에 앉아계시는데 한 스님이 밖에서 들어오더니, 곧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는 차수하고 동쪽에 서서 스님의 눈치를 살폈다. 스님께서 왼발을 아래로 내렸더니 그 스님은 서쪽으로 가서 차수하고 섰다. 스님께서 오른발을 내리자 이번에는 중간에서 차수하고 섰다. 스님께서 두 발을 오무리자 그 스님은 절을 올렸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에 살면서 아직 한 사람도 때리지 않았다.”

하시고는 주장자를 집어 들고 그대로 후려치자

그 스님은 갑자기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59. 스님께서 눈덩어리로 만든 사자를 가리키시며 대중에게 물으셨다.

“이 색(色)보다 나을 것이 있겠느냐?”

대중이 대꾸가 없었다.

   

* * *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그때 그대로 밀쳐서 쓰러뜨렸어야 좋았을 터인데….”

   

설두 중현(雪重顯)스님은 말하였다.

“운문스님은 밀쳐서 쓰러뜨릴 줄만 알았지 붙들어 일으킬 줄은 몰랐군.”


60. 앙산스님께서 누워계신데 한 스님이 물었다.

   “법신(法身)도 설법할 줄 아는지요?”

   “나는 말할 수 없네만 다른 어떤 사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퇴침[巖子]을 쓱 내밀었다.

   

   위산스님께서 뒤에 이 말을 들으시고는,

   “혜적이 칼날 위의 일을 잘 활용하였구나.” 하셨다.

  

* * *

경산종고(徑山宗果)스님은 말하였다.

“위산스님은 귀여워 하는 아이 버릇없는 줄 모르는 꼴이다. 앙산스님이 퇴침을 밀어냈던 자체가 이미 허물인데, 거기다가 칼날 어쩌고 하며 토〔名字〕를 달았다. 그리하여 저 말 배우는 부류들이 이처럼 헛된 메아리를 받아서 퍼뜨리도록 그르쳤다. 나 묘희는 물을 빌려서 꽃을 바치더라도, 이치를 잘못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 자리에 나를 긍정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나오너라. 그에게 베개를 밀쳐낸 것이 `법신도 설법할 줄 아는지요'한 말에 맞는지 묻고 싶다.”

   

천동 화(天童華)스님은 말하였다.

“칼날 위의 일이라면 혜적이 어찌 일찌기 쓸 줄 알았으랴. 홀연히 어떤 스님이 나와서 `법신도 설법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에게 `나는 설명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해주리라. 그리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3생(生) 60겁(劫) 지나야 말해주겠다'하리라.”

   

영은 악(靈隱嶽)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원래 한 가닥의 척추가 무쇠처럼 단단했는데 이 스님에게 연달아 두들겨 맞고서는 사지를 뻗었다. 위산스님은 한번을 참아내지를 못하여 한쪽 눈을 잃는 줄도 몰랐다. 어떤 스님이 야부(冶父)스님에게 `법신도 설법할 줄 압니까' 라고 묻자 그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차서 거꾸러뜨리고는 일으켜서 쓸만한 놈으로 만들었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물소는 달 구경하다가 뿔에 무늬가 새겨지고, 코끼리는 우뢰소리에 놀랄 때 꽃이 어금니로 들어간다' 라고 했던 것을.”


61. 스님께서 눈을 감은 채 앉아계신데 한 스님이 가만히 곁에 와 섰다.

스님은 눈을 뜨시더니 땅 위에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는 그 속에 수(水)자를 쓴 뒤에 그 스님을 되돌아보았으나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62. 스님께서 주장자를 하나 짚고 다니시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은 얼른 등 뒤로 숨기시면서 “보이느냐?” 하니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63.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무엇을 할 줄 아느냐?”

“점을 칠 줄 압니다.”

스님은 불자를 번쩍 세우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64괘(卦) 중에서 어느 괘에 해당되는가?”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조금 전엔 뇌천대장괘(雷天大壯卦:길한 괘)이더니 지금은 지화명이괘(地火明夷卦:흉한 괘)로 변했구나.”


6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이름이 무엇이냐?”

“영통(靈通:영험한 신통이라는 뜻)입니다.”

“등롱(燈籠)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벌써 들어와 있는걸요.”

   

* * *  

법안(法眼)스님은 말하였다.

“무엇을 등롱이라 하는가?”


65. 한 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물질[色]을 보는 그것이 마음을 보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선상(禪滅)은 물질입니다. 스님께서는 물질을 떠나서 저의 마음을 지적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이 되물었다.

“어느 것이 선상인지 가리켜 보아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 * *

현각스님은 말하였다.

“홀연히 그가 선상(禪滅)을 가리켰다면 어떻게 대꾸해야 하겠는가?”

그러자 어떤 스님이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하니,

현각스님은 대답 대신에 손뼉을 세 번 쳤다.


66. 한 스님이 묻기를

“누가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스승입니까?” 하자,

스님은 그를 꾸짖으셨다.

그 스님이 다시 “누가 스님의 스승입니까?” 하니,

스님은 “무례하게 굴지 말라.” 고 하셨다.


67. 스님께서 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곁에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말 하면 문수이고, 묵묵히 있으면 유마힐입니다.”

“말하지도 않고, 묵묵하지도 않음은 네가 아니냐?.”

그 스님이 묵묵히 있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왜 신통을 나타내지 않느냐?”

“신통을 나타내는 것이야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스님께서 교학에 빠져들까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그대가 하는 짓을 살펴보니 교학 바깥 경계를 볼 안목이 없구나.”


68. 한 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천당과 지옥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스님은 주장자로 땅에다 휙 그으셨다.


69. 스님께서 관음원(觀踵院)에 계실 때 다음과 같은 벽보를 거셨다.

“내가 경을 보는 동안에는 아무도 문안인사를 오지 말라.”

 떤 스님이 문안을 드리러 왔다가 스님께서 경을 보시는 것을 보고는 곁에 서서 기다리자, 스님은 보던 경을 덮으시며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저는 경을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 스님이 암두스님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암두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강서(江西)의 관음원에서 옵니다.”

“스님께선 요즈음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그 스님이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이 케케묵은 종이에 매몰당했다고 말해주려 했더니 그렇지는 않았군.”


70. 사익(思)스님이 물었다.

“선종(禪宗)에서 단박 깨달아[頓悟] 완전한 경지에 든다고 하는 이치가 무엇입니까?”

“이 이치는 지극히 어렵다. 조종문하(祖宗門下)의 상근상지(上根上智)라면 하나를 듣고 천을 알아 대법문을 깨닫겠지만 근기가 미약하고 지혜가 얕은 이들은 선(禪)을 닦지 않거나 생각을 고요히 하지 않으면,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조리 아득해진다.”

“이 방법 말고 또다른 방편이 있습니까?”

“있지.”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그 곳의 일을 생각한 적이 있느냐?”

“항상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주체는 마음이며, 생각되어지는 대상은 경계이다. 그곳에는 누각과 술과 사람과 말 따위가 들끊는데 그대는 그 생각하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 앞에 이야기한 그 많은 경계들이 있느냐?”

“이 경계에서는 모조리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알음알이가 남아 있으니 믿음의 경지[信位]까지는 갔으나 깨달음의 경지[人位]는 얻지 못했다.”

“이것 밖에 다른 뜻이 있는지요?”

“다른 뜻이 있거나 없거나 그대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대가 이해한 정도는 단지 현묘함만을 얻었을 뿐이니 자리를 잡고 앉아 옷을 풀어헤치면 뒷날 저절로 알게 되리라.”

사익스님은 절을 하고 물러갔다.


71. 한 스님이 물었다.

“대이 삼장(大耳三藏)**이 세번째에는 무엇 때문에 혜충(慧忠)국사를 보지 못하였을까요?”

“앞의 두 차례는 경계에 빠졌기 때문이며, 뒤에는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깨치고 나서 스스로 법락을 누리는 경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인도 대이(大耳)삼장이 장안에 왔는데 타심통(他心通)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왕이 혜충국사에게 시험해보라고 하여 국사가 삼장에게 물었다.

"타심통을 얻었다니 정말이오?"

"부끄럽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시오."

"스님께선 한 나라의 국사가 되어 가지고 어찌 인도에 가서 뱃놀이를 구경하십니까?"

국사가 잠자코 있다가 다시 물었다.

"지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시오."

"스님께선 한 나라의 국사가 되어 어째서 천진교(天津橋)에 가서 원숭이 놀음을 구경하십니까?"

국사가 세번째 같은 질문을 던지니 삼장이 어쩔 줄 몰랐다.

국사가 "이 여우 같은 혼신아, 타심통이 무슨 말이냐" 하고 꾸짖자 삼장은 말이 없었다.


72.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백장(百丈)스님이 두번째 마조(馬祖)스님을 참례한 인연*에서 이 두 큰스님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큰 본체와 그 작용[大機大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 마조스님이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는데 몇 사람이 대기를 얻고 몇 사람이 대용을 얻었겠느냐?”

“백장스님은 본체를 얻었고 황벽(黃)스님은 작용을 얻었으며, 나머지는 모조리 남의 말이나 읊조리는 창도사(唱導師)들이었습니다.”

위산스님은 “그래, 그렇지” 하셨다.


* 백장스님이 두번째로 마조스님을 뵈니 마조스님이 불자(拂子)를 세웠다.

백장스님이 "이것을 통해서 활용하오리까.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오리까?" 하고

물으니, 마조스님은 불자를 제자리에 세워 두었다. 백장스님이 잠자코 있으니 마조스님이 "그대는 뒷날 무엇으로 중생들에게 설법하려는가?" 하니 백장스님이 불자를 세웠다. 마조스님이 "이것을 통해서 하겠느냐, 이것을 떠나서 하겠느냐?" 하니 백장스님도 그것을 제자리에 세워 두었다. 그러자 마조스님이 벼락같이 할(喝)을 하니 백장스님은 사흘간 귀가 먹었다.


73. 위산스님께서 백장스님의 야호화두(野狐話頭)를 들려주고는 스님에게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황벽스님은 항상 이 기연을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을 날 때부터 얻었느냐, 배워서 얻었느냐?”

“스승께 받기도 하였고, 자성(自性)으로 종지를 깨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위산스님은,

“그렇지, 그렇네” 하셨다.


74. 백장스님이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대웅산(大雄山) 밑에서 버섯을 따옵니다.”

“호랑이를 보았느냐?”

황벽스님이 ‘어흥’ 소리를 내자 백장스님은 도끼를 들고 찍는 시늉을 하였다.

황벽스님이 백장스님을 한 대 후려치자,

끙끙 신음하다가 웃고는 돌아가 큰방에 올라가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대웅산 밑에 큰 호랑이가 한 마리 있으니 그대들은 살펴다니라.

나도 오늘 된통 한 차례 물렸느니라.”

   

위산스님께서 이 기연을 들려주고는,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떠한가?”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백장스님이 그때 그 자리에서 도끼 한 방에 찍어 죽였다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장스님은 호랑이의 머리만 탈 줄 알았을 뿐,  꼬리를 붙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대는 말이 좀 험악하구먼.”


75. 남전스님이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정(定)과 혜(慧)를 균등하게 배워 불성을 분명히 본다고 한 이 이치는 무엇인가?”

“하루종일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그런 경계를 보았는가?”

“감히 그렇겠습니까.”

“물[奬水]값은 우선 그만 두고라도 짚신값은 누구에게 받지?”

황벽스님은 그만두어 버렸다.


이 기연에 대해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황벽스님이 남전스님을 붙들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습니다. 황벽스님에겐 호랑이를 사로잡는 덫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대의 견처가 이렇게나 자랐다니….”


76. 황벽스님이 남전스님의 처소에서 수좌(首座)가 되었다. 하루는 발우를 들고 남전스님의 자리에 앉았는데, 남전스님이 큰방에 들어가 보더니 물었다.

“장로는 언제 적에 도를 닦았는가?”

“위음왕불(威踵王佛) 이전입니다.”

“그래도 이 남전의 손자뻘이 되는군.”

황벽스님이 곧 두번째 자리로 가서 앉자 남전스님은 거기서 그만두었다.


이 기연에 대해서 위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적을 속이는 자는 망한다. 자! 말해보라.”


77. 황벽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그대들은 모조리 술찌꺼기나 먹는 놈들이다. 이처럼 수행하다간 어찌 다시 오늘을 맞겠는가! 이 큰 나라에 선사가 없는 줄을 아느냐!”

이때에 어떤 스님이 말하였다.

제방에서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대중을 거느리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선(禪)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스승이 없을 뿐이다.”


이런 기연에 대해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위 왕은 우유만을 골라 먹으니 아예 기러기 따위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그것은 정말로 가려내기 어려운 일이다.”


78. 할상좌가 백장스님의 처소에 도달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일이나 물건을 놓고 그것을 통해 물으려는가.”

“말이 아니었다면 어찌 갈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안남(安南)을 수습하더니 이제는 북쪽 변방을 근심하는군.”

그러자 할상좌는 가슴을 열어제치고 말하였다.

“이렇습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참으로 붙들기 어렵군.”

“알면 됐습니다. 알면 됐습니다.”


이 기연에 대해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두 사람의 귀결점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하다 하겠지만, 분별하지 못하면 대낮에 길을 잃은 격이다.”


79. 오봉(五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들에서 옵니다.”

“소를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왼쪽 뿔을 보았느냐, 오른쪽 뿔을 보았느냐?”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오봉스님이 대신

“보는 데는 좌우가 없다” 라고 하였다.


이 기연에 대해 스님께서 달리 말씀하셨다.

“어찌 좌우를 분별하느냐!”


80. 한 행자(行者)가 법사를 따라서 법당으로 들어갔는데 행자가 부처님에게 침을 뱉자 법사는 말하였다.

“행자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 침을 뱉느냐?”

“부처님이 없는 곳을 말해 보시오. 그러면 그곳에다 침을 뱉겠습니다.”

법사가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이 일에 대해 위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어진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이 도리어 어진 사람이 되었군.”

스님은 법사를 대신하여 “행자에게 침을 뱉아라!” 하시고는, 다시 “행자가 말을 하는 순간 이렇게 말해주리라. 나에게 행자(行者)가 없는 곳이 어디인지를 말해 보라.” 고 하였다.


81. 스님은 기연(機緣)에 따라 지도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여 종문의 표준이 되셨다. 입적하시려고 동평산(東平山)으로 돌아가셨는데 임종에 앞서 몇분 스님이 모시고 서 있자 스님은 게송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반듯한 눈이 다시 쳐들고 살핀다

두 입 한결같이 혀 없는 것이

바로 나의 종지이다.


一二二三子 平目復仰視

兩口一無舌 卽是吾宗旨


정오가 되자 법좌에 오르시어 대중을 하직하면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이 일흔 일곱이 되도록

    덧없이 오늘까지 살았네

    둥근 해는 한 가운데 떴는데

    두 손으로 굽은 무릎 잡아보네.


    年滿七十七 無常在今日

    日輪正當午 兩手攀屈膝


말이 끝나자 두 손으로 무릎을 안고 임종하셨다.


그 이듬해에 남탑 광용(南塔光涌)스님이 영골(靈骨)을 옮겨 앙산으로 돌아가서, 집운봉(集雲峯) 기슭에 탑을 세웠다. 시호는 지통(智通)선사이고, 탑호는 묘광(妙光)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