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문학/사학/철학」(제17호, 한국불교사연구소 발행)에서 대승경전을 불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교사상사에 대한 무지와 폐쇄적인 신념에 기초한 것일 뿐 교학적·역사적 ‘진실’이 아니며, 아함경과 니카야 또한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본지 1008호 1면) 이런 가운데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이 권오민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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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상대 권오민 교수는 「문학/사학/철학」 제17호에 ‘불설과 비불설’이라는 논문에서 “대승경이 비불설이라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아함 또한 비불설이다”(p.179)라는 핵폭탄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방대한 분량의 논문을 단 몇 문장으로 논평한다는 자체가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워낙 충격적인 주장이기에 우선 몇 가지 문제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현존하는 아함이나 니까야도 전승되는 과정에서 개변(改變)·증광(增廣)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다. 아함이나 니까야 속에는 전승과정에서 불설이 아닌 내용도 많이 포함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함이나 니까야가 붓다의 친설이 아니라는 극단적인 주장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아함이나 니까야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 붓다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논자는 불설과 비불설의 논쟁은 부파불교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불설/비불설 논쟁은 맹목의 논쟁일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비교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각 부파 간에 있었던 불설/비불설 논쟁은 붓다의 법과 율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긴 논쟁이었다. 그러나 후대의 대승불교도들이 찬술한 대승경전을 부파교단에서 비불설이라고 비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불멸후 승단이 분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붓다의 법과 율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파들 간에는 끊임없이 불설과 비불설의 논쟁이 있었다. 논자는 설일체유부(이하 유부로 약칭함)가 당시 분별설부로 알려져 있던 상좌부를 공격하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유부와 상좌부는 상반되는 교리가 많았기 때문에 논쟁이 치열했다. 현존하는 유부의 논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상좌부의 니까야나 아비담마에서는 그러한 부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원래 가짜가 진짜 혹은 원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짜는 자기가 진짜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무시하면 된다. 이러한 사례는 대승경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승경전에서는 부파교단의 가르침을 ‘비구의 복색을 한 악마’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상좌부의 삼장에는 이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다. 전통을 계승한 쪽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상좌부 전통에서는 정법을 유지 전승하기 위해 결집을 통해 비불교적 요소를 하나하나 배제시켜 나갔다.
그런데 자기 부파가 전통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불설과 비불설을 구분하는 잣대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반열반경』에 언급된 ‘사대교법(四大敎法)’에는 그 기준을 ‘법과 율에 합치하느냐?’로 판가름했다. 그러나 유부를 비롯한 다른 부파에서는 거기에 ‘법성(法性, dharmata-)’ 혹은 정리(正理, 올바른 이치)를 삽입함으로써 자기 부파의 설이 불설임을 증명해 나갔다. 특히 논자는 유부의 설이 정설인양 대변하고 있지만, 결국 유부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논자는 결론적으로 아함이나 니까야도 부파불교 시대에 취사선택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대승경전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불설이라고 할 수 있다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유부의 전통을 계승한 비바사사(毘婆娑師)의 논증을 끌어들여 대승경전이 불설임을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대승경전은 후대의 대승불교도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불설로 가탁한 것이다.
대승경전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친설이 아님은 명명백백하다. 다만 대승경전에 서술된 내용이 초기 붓다의 가르침과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 붓다의 친설은 아니라 할지라도 ‘깨달은 자’ 즉 제불(諸佛)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붓다의 가르침’, 즉 불교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아함이나 니까야도 변화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불설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
마성 스님(팔리문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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