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대각국사 의천

義天 의천•大覺國師文集 대각국사문집 - 6. 文 문

실론섬 2016. 12. 1. 14:15

義天 의천•大覺國師文集 대각국사문집 - 文 문

 

1) 경덕(景德)국사 제문

2) 분황사(芬皇寺) 원효(元曉)성사 제문

3) 용두사(龍頭寺) 우상(祐詳)대사 제문

4) 새로 공부하는 학도 치수(緇秀)에게 보임

5) 새로 공부하는 학도 지웅(智雄)에게 보임

6) 새로 공부하는 학도 혜수(慧修)에게 보임

7) 새로 공부하는 학도 덕칭(德稱)에게 보임

 

1) 경덕(景德)국사 제문

 

유(惟) 몇 년 몇 월 몇 일에 전교(傳敎) 제자인 우세(祐世) 승통(僧統) 의

천은 삼가 다과와 계절 음식의 제찬을 마련하여 돌아가신 스승이신 경덕국

사(景德國師)390)의 영령에 경건히 제사를 받들어 올립니다. 돌아가신 부모

에 못한 효도를 한탄함391)은 옛날의 철인이 남긴 말씀이요, 돌아가신 어버

이를 슬퍼함392)은 선현 유자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어찌 그렇

지 않겠습니까? 다만 풍속이 각박해지고 인심은 거칠어지며 세월이 달라

지고 시대는 변하여, 스승과 제자의 의리는 얕아지고 은혜와 믿음의 도는

타락했습니다. 의리를 논하고 경전을 강연하는데 비록 불법의 종장(宗匠)

이라 하나 말을 살펴보고 행동을 보니 소인이 많습니다. 세상이 이와 같은

데 제가 장차 무어라고 말하겠습니까? 지금 억지로 효도를 생각하여 인륜

에 어긋난 행동이나 벗어나기를 바라나니, 지성의 감동에야 어찌 감응하심

이 없겠습니까?

祭景德國師文393)
維年月日, 傳敎弟子祐世僧統某, 謹以茶菓時食之奠, 敬祭于
先師景德國師之靈. 風樹之嘆, 往哲之遺言, 霜露之悲, 先儒之
格訓. 在吾釋氏, 豈不然乎? 但以俗薄人衰, 時移代變, 師資義
淺, 恩信道隳. 論義講經, 雖云法匠, 察言觀行, 多是小人. 世
也如斯, 予將何言? 今者勉强孝思, 冀逃悖逆, 至誠之感, 寧無
應乎?
390) 경덕국사(景德國師):난원(爛圓, 999~1066). 고려 중기의 화엄종 승려. 안산(安
     山) 출신으로 현종의 국구(國舅)였던 김은부(金殷傅)의 아들이다. 문종 때 개경
     의 영통사(靈通寺)에 있었으며, 화엄종 도승통(都僧統)으로 활동하였다. 1058년
     에 왕명으로 문종의 넷째 왕자 후(煦)를 의천으로 출가시켜 화엄교관을 가르쳤
     다.「영통사 대각국사비문」에는 창원(昶元)과 낙진(樂眞) 등 원래 경덕국사의
     문인이었던 이들이 여러 명 의천의 문도로 올라 있다. 이는 의천이 스승인 난원
     의 문도들을 이끌고 자신의 문하로 재조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391) 바람과 나무의 탄식[風樹之嘆]은 나무는 가만히 있고 싶어 하지만 바람이 멈추
     지 않는다는 뜻.『한시외전(韓詩外傳)』권9에 “나무가 조용히 하려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
     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고 하였다.
392) 서리와 이슬의 슬픔[霜露之悲]은 부모나 선조에 대한 슬픈 마음을 말한다. 비슷
     한 말로 상로지감(霜露之感)은 부모나 조상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말한다.
393)『대각국사문집』권16 韓4 p.554c5~19

 

2) 분황사(芬皇寺) 원효(元曉)성사 제문

 

유(惟) 몇 년 몇 월 몇 일에 법을 구하는 사문 의천은 삼가 다과와 계절

음식의 제찬을 마련하여 해동교주(海東敎主)이신 원효(元曉)보살께 받들

어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이치는 교학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고 도는 사람을 통해

서 널리 퍼집니다. 풍속이 천박해지고 시절이 경박해짐에 미쳐 사람은 떠

나가고 도는 없어지게 됩니다. 스승은 이미 그 종파의 익힘만 경계지을 뿐

이요 제자 또한 그 보고 들은 것만 지킬 뿐입니다. 자은(慈恩)대사의 백본

(百本)394)의 이야기는 오직 명상(名相)에 얽매였고, 천태산(天台山)에서의

구순(九旬)의 설법395)은 단지 이치로 관하는396) 것만을 숭상했습니다. 비록

본받을 만한 글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아직 두루 통하는 가르침이라고 하

기는 어렵습니다. 오직 우리 해동보살만이 성(性)과 상(相)을 원융하게 밝

히시고, 고금을 조용히 묶어내어, 백가의 다른 다툼의 실마리를 화쟁하고

일대의 지극한 공론(公論)을 얻으셨습니다. 하물며 신통력은 헤아리기 어

렵고 미묘한 작용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세상과 함께 하셨으나397) 그 진

면목을 더럽히지 않으셨고, 세상에서 활동하셨으나 그 본체가 달라지지 않

으셨습니다. 빛나는 이름은 중국과 인도에 떨치신 바 되었고, 자비로운 교

화는 이승과 저승에 끼친 바 되었으니, (교화를) 도와서 드날린 업적은 참

으로 비겨 의론하기 어렵습니다.

394) 백본(百本):현장(玄奘)에 이어 중국 법상종을 완성한 자은규기(慈恩窺基)가 여
     러 경론에 대한 주석서를 남겨 백본소주(百本疏主)라 불린다. 자은종(곧 법상종)
     의 가장 중요한 논서인『성유식론』이 백가지의 논을 종합한 것이라 한다.
395) 천태 지의가 천태산에서 90일 동안 설법한 것. 송 종의(從義)의『천태삼대부보주
     (天台三大部補注)』서문(卍28 p.121a11~13)에 “故以五義釋題, 四科文句, 九旬宣
      演, 明靜法門, 解行俱陳, 義觀兼擧, 真可謂行人之心鏡, 巨夜之明燈矣.”라고 하였다.
396) 천태종에서는 현상을 관함[事觀]과 이치로 관함[理觀]을 말한다. 형계잠연(荊溪
     湛然)은『지관의례(止觀義例)』에서『점찰경』을 인용하여 유식관(唯識觀)과 실상
     관(實相觀)을 말했다. 유식관은 삼성에 맡겨 실상의 이치에 이르게 하는 사관이
     고, 실상관은 실상을 통달하여 관하는 이관이라 하였다. 사관은 삼라만상의 차
     별된 현상을 관조하는 것이며 이관은 생함이 없는 평등한 이치를 관조하는 것
     을 말한다.
397) 화광동진(和光同塵)은『노자』에 나오는 말. 빛을 감추고 세상의 티끌에 섞임. 자
     신의 뛰어난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세속에 따름을 말함.『노자』에 “知者不言, 言
     者不知, 塞其兌閉其門, 挫其銳解其粉, 和其光同其塵, 是謂玄同.”이라고 하였다.

 

제자 의천은 하늘의 도움으로 일찍 부처님의 법을 사모하여 선대 철인

들의 사이에서 두루 보았으나 성사보다 나은 이는 없었습니다. 미묘한 말

씀이 꼬이고 묶인 것을 애통해 하며 지극한 도가 쇠퇴해 감을 애석히 여겨,

멀리 명산을 찾아 멀리서 사라진 저술을 구하였습니다. 지금 계림(鷄林)398)

의 옛 절399)에서 다행히 살아 계신 듯한 모습을 뵙고,400) 영취산(靈鷲山)401)

의 옛날 (부처님 설법하시던) 봉우리에서 처음 뵈옵던 회상을 만난 것 같았

습니다.402) 겨우 변변치 못한 공양에 기대어 감히 작은 정성을 드리오니,

바라건대 두터운 자비로 밝게 굽어 살펴 주소서.

398) 계림(鷄林):경주(慶州). 신라를 계림이라고도 불렀으며,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
     주를 계림이라고도 하였다.
399) 옛 절:원효가 주석했던 경주의 분황사(芬皇寺). 원효의 아들 설총(薛聰)이 이     

      절에 원효의 뼈를 갈아 만든 상을 봉안하고 예경하였다고 한다.

400)『삼국유사』에는 원효의 아들인 설총(薛聰)이 원효의 유골을 모아 형상을 빚어     

      분황사(芬皇寺)에 봉안하여 예경하였다고 한다.(권4 의해 元曉不羈) 의천이 경주    

      의 옛 절에서 보았다는 것은 이 분황사의 소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401) 영취산:영취산(靈鷲山, Gr3 dhrakūt3a). 음역하여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고      

       한다. 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 왕사성(王舍城, Rājagrha)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 모양이 독수리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많은 경전을 설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의 성지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402) 원효의 소상을 본 것을 부처님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실 때 뵈온 것에
     비유하여 말한 것.


祭芬皇寺曉聖文403)
維年月日, 求法沙門某, 謹以茶菓時食之尊, 致供于海東敎主
元曉菩薩. 伏以理由敎現, 道藉人弘. 逮俗薄而時澆, 乃人離
而道喪. 師旣各封其宗習, 資亦互執其見聞. 至如慈恩百本之
談, 唯拘名相, 台嶺九旬之說, 但尙理觀. 雖云取則之文, 未曰
通方之訓. 唯我海東菩薩, 融明性相, 隱括古今, 和百家異諍之
端, 得一代至公之論. 而況神通不測, 妙用難思. 塵雖同而不汚
其眞, 光雖和而不渝其體. 令名所以振華梵, 慈化所以被幽明,
其在贊揚, 固難擬議. 某資天幸, 早慕佛乘, 歷觀先哲之閒, 無
出聖師之右. 痛微言之紕繆, 惜至道之陵夷, 遠訪名山, 遐求墜
典. 今者雞林古寺, 幸瞻如在之容, 鷲嶺舊峯, 似値當初之會.
聊憑薄供, 敢敍微誠, 仰冀厚慈, 俯垂明鑑.
403)『대각국사문집』권16 韓4 p.555a9~b4

 

3) 용두사(龍頭寺)404) 우상(祐詳)대사 제문

404) 용두사(龍頭寺):충청북도 청주시 남문로에 있던 절. 현재는 962년에 세운 국보
     제41호 철당간(鐵幢竿)만이 남아 있다. 이 절은 962년 이전에 창건되어 1011년
     에는 현종이 이곳에 이르러 연등회(燃燈會)를 베풀었으며, 1090년에는 범종(梵
     鐘)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후 몽고의 침공 등으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유(惟) 몇 년 몇 월 몇 일에 흥왕사(興王寺) 주지이며 전현수교관(傳賢首

敎觀)인 우세(祐世) 승통(僧統)은 삼가 시자(侍者) 아무개를 보내 다식(茶

食)의 제찬을 갖추어 돌아가신 용두사(龍頭寺) 유가(瑜伽)405) 강주의 영령

께 제사를 올리나이다.

405) 유가(瑜伽):유가는 yoga의 음사. 상응(相應)이라고 의역하며, 깨달음에 이르
     는 실천, 수련, 정신통일로 해석된다. 인도 불교의 유가행파(瑜伽行派,
     Yogācāra)에서는 유식사상에 의하여 유가행을 체계화하였다. 유가 유식의 교의
     는 현장(玄奘)의 인도 유학과 신역 경전을 통해 중국에 본격적으로 전해져서,
     이를 바탕으로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에 의해 법상종(法相宗)이 개창되었다.
     법상종은 유가종, 유식종(唯識宗) 등으로도 불리며, 고려시대에는 유가업(瑜伽
     業), 자은종(慈恩宗), 상종(相宗) 등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생각건대 대사께서는 재주와 이름이 일찍 드러났고 덕행이 일찍 알려져,

보처(補處)보살406)의 글을 강론하는 데 이치와 본성을 다하였고 자은(慈

恩)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은밀한 뜻을 드러내고 깊은 뜻을 열었습니다. 바

야흐로 가르치고 이끄는 공에 부지런하였고 법문을 유통시켜 교화함을 크

게 도왔습니다. 어찌 나이가 아직 한참인데, 어찌하여 홀연히 돌아가셨습

니까? 나고 죽는 것이 끝이 있음은 비록 인연의 이치라 하지만, 소리와 모

습이 살아있는 것 같은데 어찌 슬프고 가슴 아픈 마음을 다할 수 있겠습니

까? 한번 제사지내는 의례를 펼치게 하여 천년의 작별407)을 고할까 합니다.

밝은 혼이시여 이 슬픈 마음을 아소서.

406) 보처(補處)보살:이번 한 생만 미혹의 세계에 묶여 있는 자. 다음 생에서는 미혹     

       을 벗어나 세간에서 성불하는 자. 보살의 최고위인 등각을 말한다. 흔히 미륵보     

      살이 지금 도솔천에 있으면서 이 생이 끝나면 인간세에 하생하여 성불하여 석
     존의 불위를 돕게 되므로 일생보처보살이라 한다
.

407) 천년의 작별[千齡之訣]은 죽어서 작별하는 영원한 이별을 말함.

 

祭龍頭寺祐詳大師文408)
維年月日, 興王寺住持傳賢首敎觀祐世僧統, 謹遣侍者某, 備
茶食之奠, 致祭于故龍頭寺瑜伽講主之靈. 惟靈, 才名早著, 德
行夙彰, 講補處之文, 窮理盡性, 傳慈恩之敎, 現微闡幽. 方勤
訓導之功, 式助流通之化. 何年齡之未永, 奈奄忽以云歸? 生
滅有涯, 雖曰因緣之理, 音容如在, 詎殫惻愴之心? 俾陳一祭
之儀, 用叙千齡之訣. 魂兮不昧, 知此悲懷.
408)『대각국사문집』권16 韓4 p.555b12~21

 

4) 새로 공부하는 학도 치수(緇秀)에게 보임

 

경전에 이르기를, “만일 위없는 마음이 있으면 결정코 큰 일을 즐거워하

며, 부처의 몸을 보이기 위해 다함 없는 불법을 설하리라.”409) 라고 하였으

니, 다함 없는 불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법계(法界)의 법문이다. 진실

로 그 법은 중생에게는 만 가지 미혹이 되고, 보살에게는 만 가지 실천이

되며, 여래에게는 만 가지 덕이 된다. 그러므로 비로자나불이 그것을 얻으

면 과분(果分)410)이라 하고, 보현보살이 얻으면 인분(因分)411)이라 한다. 중

생들은 날마다 쓰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법계의 도가 드러남이 적은 것

이다. 구태여 그것을 말해 보면 대략 세 가지가 된다. 만일 깨달아 그것을

버리면, 본디 하나도 있는 것이 아니어서, 차거나 이지러지거나 나나 너나

하는 것은 나에게는 다 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범부의 지견이 부

서지면 법계가 뚜렷이 나타나서 모든 중생이 성불하지 않을 이가 없다”412)

라고 하였으니, 진실되도다, 이 말이여! 어찌 부질없이 한 말이겠는가?

409)『대방광불화엄경』(60) 권26「십지품」大9 p.567c19~20. 若有無上心, 決定樂大
     事. 爲示於佛身, 說無量佛法. 이 구절을 지엄은『수현기』(大35 p.14b16~17)에서
     경문 그대로 인용하였으나, 법장의『오교장』(권1 大45 p.478b11~12)이나 의상의
    『일승법계도』(韓2 p.8a7)에서도 모두 이곳과 같이 說無盡佛法으로 인용하였다.
410) 과분(果分):다음의 인분(因分) 참조
411) 인분(因分):분은 분제(分齊)의 뜻. 인의 범위. 이에 대해 과의 범위를 과분(果
     分)이라 함.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인 진여의 세계는 불과(佛果)를 깨달은 이가
     아니면 알 수 없고 중생에게는 설명해 보일 수 없는 것이어서[果分不可說], 불타
     가 될 인의 위치에 있는 중생을 위해 그 기연에 따라 설한 가르침은 그 중생이
     알 수 있는 것[因分可說]이라 한다.『십지경론』에서 설한 것을『화엄오교장』
     에서 해설하였다.
412)『화엄경탐현기』권16 大35 p.413c13~14.

 

그러므로 청량(淸凉)국사는 찬탄하여, “천개의 문에 서로 비추고 만유를

하나로 녹였으니, 법계를 다하는 술법은 오직 대화엄뿐이다.”413) 라고 하였

으니 묘함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경전이 세상에 유행하기는 하나 능통한

사람은 드물다. 옛날 우리 조사 두순(杜順) 존자도 찬탄하여, “위대하여라,

법계의 경전이여! 십지(十地)에 오른 보살이 아니면 누가 능히 그 글을 읽고

그 법을 볼 수 있겠는가?”414)라 하고, 이에『법계관문(法界觀門)』415)의 

삼중십문(三重十門)과「선복송(漩澓頌)」416) 3수를 지어 그 수제자 지엄

(智儼)존자에게 전하고, 지엄 존자는 그것을 법장(法藏) 국사에게 전하였는데, 

다 직접 말하고 마음으로 전해 주어 삼대 동안 꽃다움을 드날렸다. 그 뒤에 한

종파의 여러 논사들은 저술할 때에는 모두 삼관(三觀)으로 귀감을 삼지 않

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회계(會稽) 가상사(嘉祥寺)417)의 신수(神秀)418)

사는『화엄경소(華嚴經疏)』가운데서「선복송」을 인용하여, “두순 선사께

서 이르기를, ‘한 경계 가운데 일체의 지혜가 있고, 일체의 지혜 가운데 모

든 법계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곧 화엄의 큰 가르침의 소용돌이이

다. 또『탐현기(探玄記)』의 미묘한 이치와 지상(至相)대사의 십문(十門) 같

은 것은 다 근거가 있는 데서 받은 것이요 의리가 제 혼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지금 자세히 서술하여 그 근본적인 뜻을 밝히리라.” 고 하였다.〈이

상이 그 글이다〉 또 청량국사는『법계현경(法界玄鏡)』419) 가운데서 주변함용

관(周遍含容觀)을 해석하여 십현(十玄)으로 십문에 짝지어 해석하고 그 결

론에, “그러므로 십현도 이로부터 나온다.”420) 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내가 일찍이 학도들에게 교관(敎觀)의 본말을 보이며 말하기를, “지상대

사가 이를 얻어, 그것을 부연하여 십현을 만들고, 그것을 변화하여 오교로

만들었다.”고 하였으니, 그 말은 거짓이 아니다.

413) 원(元) 보서(普瑞)가『화엄현담회현기(華嚴玄談會玄記)』에서 인용한 당(唐) 배
     휴(裴休)가 지은 징관의 탑기인 「묘각탑기(妙覺塔記)」 중에 나오는 말. 징관
     이 무명(無名)대사를 찾아 선지를 배울 때의 말이다. (『華嚴玄談會玄記』권1 卍8
     p.93b10~12. 卽曰, 明以照幽, 法以達迷, 然交暎千門, 融治萬有, 廣大悉備, 盡法界之術,
     唯大華嚴.)
414) 이 구절은 종밀(宗密)의『주화엄법계관문』에 붙인 당 배휴의 서문 중에 나온
     다. 본문의 바로 앞 구절도 이 글에 그대로 나온다.(「註華嚴法界觀門序」大45
     p.683b19~22. 然此經雖行於世, 而罕能通之. 有杜順和尚, 歎曰, 大哉法界之經
     也, 自非登地, 何能披其文, 見其法哉. 吾設其門以示之. 於是著法界觀, 而門有三
     重.)
415)『법계관문(法界觀門)』:『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觀門)』. 화엄법계의 관법을 
     ①진공관(眞空觀) ②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 ③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의 세 가지
     로 밝힌 책. 두순(杜順)이 지은 것으로 전승되는데, 법장의『발보리심장(發菩提
     心章)』을 초략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징관의 『법계현경(法界玄鏡)』이나 종밀
     의『주화엄법계관문(註華嚴法界觀門)』에도 수록되어 있다.
416)「선복송(漩澓頌)」:화엄종의 초조 두순(杜順)이 지었다고 전하는 글. 두 책에 인
     용된 부분이 있다. 송(宋) 연수(延壽)『주심부(註心賦)』(권3 卍63 p.138b11~12. 
     漩澓頌云, 若人欲識真空理, 心內真如還遍外. 情與無情同一體, 處處名爲真法界.)와 
     명(明) 전겸익(錢謙益) 『반야심경약소초(般若心經略疏鈔)』(권1 卍26 p.763c1~3. 
     杜順漩澓頌曰, 若人欲識真空理, 心內真如還徧外. 不離幻色別見空, 卽此真如含一切. 
     祗用一念觀一境, 一切諸境同時會.)이다. 앞 구절은 같지만 뒷부분이 서로 다르다.
     일본의 전승인『화엄종장소병인명록(華嚴宗章疏并因明錄)』에는 혜원의 저술에
     같은 이름이 있다.(大55 p.1133b23. 華嚴旋復章一部〈未知卷數 慧苑述〉)
417) 가상사(嘉祥寺):절강성 회계(會稽)에 있던 절. 동진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376~396) 연간에 군수 낭야왕 회인(薈因)이 축도일(竺道壹)의 풍도를 우러러 주
     석하도록 세운 절이다. 축도일은 내외 경전에 박통하고 계율행이 철저하여 사
     방의 승려들이 모두 의지하여 구주도유나(九州都維那)라고 불렀다고 한다. 수
     대에 길장(吉藏)이 이 절에서 8년 동안 강경하여 이름이 천하에 떨쳐, 가상사 길
     장이라고들 불렀다.
418) 신수(神秀):선종의 북종 신수가 아니라 화엄종 조사 신수이다.(金煐泰, 1988「均
     如傳 妙理圓成觀의 著者」『韓國佛敎學』11)『화엄경소』30권과『묘리원성관(妙
     理圓成觀)』3권을 저술하였는데,(『新編諸宗敎藏總錄』. 의천이 차례지운 것으로 
     보면 慧苑과 澄觀 사이이다.)『묘리원성관』은『법계도기총수록』에 두 군데,『관
     음지식품별행소』에 한 군데 인용되어 전한다. 이는 신수의 화엄교학이 신라와 고
     려 화엄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되어 왔음을 말해 준다.
419)『법계현경(法界玄鏡)』:『화엄법계현경(華嚴法界玄鏡)』. 징관이 지은 화엄종 
     초조 두순이 지었다는『화엄법계관문』의 주석서. 진공관(眞空觀)·이사무애관(理
     事無礙觀)·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의 법계삼관에 대해 사법계를 서술한 것이
     다. 종밀의『주화엄법계관문(注華嚴法界觀門)』은 이 책을 계승하여 요지를 주석
     한 것이다. 이 두 책이『화엄법계관문』이 널리 유통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420)『화엄법계현경(華嚴法界玄鏡)』권하 大45 p.683a11~12.

 

배움에 뜻을 둔 군자들로 일승에 뜻을 같이 하고 만행을 같이 닦으며,

큰 마음을 변하지 않고 큰 서원을 몸에 두어, 보현의 교리를 손에 쥐고 노

사나불의 경지에서 자유로이 노닐고자 하는 이는, 먼저 3관(三觀)과 5교

(五敎)421)로 법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도에 들어가는 안목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421) 3관(三觀)과 5교(五敎):의천의 중심 사상인 교관겸수(敎觀兼修)의 구체적인 내
     용. 화엄의 관법과 교학 체계의 기준인 교판을 아울러 든 것. 3관은 화엄종의 관
     법인 법계삼관(法界三觀)이다. ①진공관(眞空觀)은 4법계 중의 이법계(理法界)
     에 해당하는 것으로 잘못된 정념을 가려내 진성을 드러내 평등한 공성(空性)에
     돌아가게 하여 진공의 묘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②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에 해당하는 것으로 삼라만상의 차별된 사법과 평
     등무차별한 이법을 관하여 사로 화합하여 걸림이 없이 자재한 것을 말한다. ③
     주변함용관(周徧含容觀)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에 해당하는 것으로 진
     여의 본성은 일미평등하여 하나하나의 사상(事相)에 두루 일체 법계를 포용하
     는 것을 관하여 일과 다가 상호 무애하여 중중무진한 것을 말한다. 5교는 화엄
     종의 오교인 소승·대승시교·대승종교·돈교·원교를 말한다. 교학의 대표로
     화엄의 교판을 든 것이다. 이교와 관을 함께 실천하는 교관겸수가 의천의 주장
     이다.

 

진실로 이 보법(普法)을 떠나서는 달리 성불할 길이 없으니, 권교(權敎)

의 최고의 지위는 실다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조사도 일찍이 말씀

하시기를, “돌아보면 정법의 시대에도 오히려 맑은 빛이 숨었는데, 다행히

도 상법 말법의 시대에 이런 현묘한 교화를 만났다.”422) 라고 하고, 나아가

“지금은 탑사견고(塔寺堅固)423)의 말기에 살고 있고 장차 투쟁견고(鬪諍堅

固)424)의 시기가 다가오는데, 도리어 생각하기 어려운 경전을 들으니 몸을

부수어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다.425) 마치 큰 바다에 빠졌을 때 좋은 배를

만나고, 높은 공중에서 떨어졌을 때 신령스러운 학을 타게 된 것과 같다.

이에 기뻐 뛸 듯하여 손으로 춤추며 계단을 오르니, 감격스럽고 경사스럽

다. 오직 성현이라야 나를 아실 것이다.”426)라고 하셨다.

422)『대방광불화엄경소』권1 大35 p.503b13~15. 顧惟正法之代, 尚匿淸輝, 幸哉像季
     之時, 偶斯玄化. 況逢聖主, 得在靈山, 竭思幽宗, 豈無慶躍.
423) 탑사견고(塔寺堅固):5오백년 또는 5견고의 하나. 조사견고(造寺堅固). 부처님께
     서 입멸하신 후 2천 5백년 동안 5백년 단위로 불법 흥망의 추세를 나타낸다. ①
     제1 오백년은 해탈견고(解脫堅固) 또는 학혜견고(學慧堅固)의 시기이다. 지혜
     로 도를 깨달은 해탈을 얻은 자가 매우 많은 시기이다. ②제2 오백년은 선정견
     고(禪定堅固)의 시기이다. 선정을 얻은 자가 많은 시기이다. ③제3 오백년은 다
     문견고(多聞堅固)의 시기이다. 부처님의 법문을 열심히 듣는 자가 매우 많은 시
     기이다. ④제4 오백년은 조사견고(造寺堅固)의 시기이다. 열심히 사원을 건립
     한 이가 많은 시기이다. ⑤제5 오백년은 투쟁견고(鬥諍堅固)의 시기이다. 서로
     치고 받아 자신의 견해가 낫고 다른 사람의 견해가 못하다고 싸우는 기운이 성
     행하는 시기이다. ①,②는 정법(正法) 시기로서 해탈 선정을 수행하는 이가 있
     는 시기이고, ③,④는 상법(像法) 시기로서 수행은 하지만 증득하는 결과가 없는
     시기로서 많이 듣고 보시하는 이들만 있는 시기이고, ⑤는 말법(末法) 시기로서
     수행도 증과도 없는 시기로 투쟁만을 일삼는 시기이다.
424) 투쟁견고(鬪諍堅固):위의 주 탑사견고 참조
425)『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권2 大36 p.14a15~17. 今居塔寺之末, 將隣鬪諍之
     時, 翻聞難思之經, 碎身莫酬其慶.
426)『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권2 大36 p.14b7~9. 其猶溺巨海而遇芳舟, 墜長空
     而乘靈鶴, 慶躍之至手舞何階, 是故感之慶之. 唯聖賢之知我也.

 

아아, 조사님이 계실 때는 상법의 탑사견고 시대인데도 이처럼 간절히

탄식하셨거늘, 하물며 지금은 오탁악세(五濁惡世)427)로 말법의 투쟁견고

시대인데도 원돈교를 듣게 되었으니 어찌 슬픈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

러나 성인이 떠나신 지 차츰 멀어지고 더구나 변방인지라, 세상에는 바른

도(를 행하는 이)가 적어 공부하는 이는 곧 삿된 것을 따라서 마침내 우리

불법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다. 내가 항상 한탄하는 것은, 해동의 선대 여러

스님들의 남기신 기록은 그 학문이 정묘하거나 넓지 못한데다가 억설이 더

욱 많아서 몽매한 후생들의 모범이 될 만한 것은 백에 한 책도 없기 때문

에, 이 성스러운 가르침으로 밝은 거울을 삼아 제 마음을 비쳐보지 못하고

일생 동안 구구히 남의 보배만 세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균여

(均如)·범운(梵雲)·진파(眞派)·영윤(靈潤) 등 여러 사람들의 잘못된 책

들은 그 말은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그 뜻은 변통이 없으니, 조사들의 도를

황무지로 만들고 후생을 미혹하게 하는 것으로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428)
427) 오탁악세(五濁惡世):사람의 수명이 차차 줄어드는 감겁(減劫)에 일어나는 다섯
     가지 부정이 있는 시대. 오탁은 ①겁탁(劫濁, kalpa-kasāya). 감겁 중에 재앙이
     일어나 중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음이 없는 것. ②견탁(見濁, drsti-kasāya). 사
     견이 늘어나 선도를 닦지 않는 것. ③번뇌탁(煩惱濁, kleśa-kasāya). 애욕이 많
     아 삿된 법을 받아들여 심신이 어지러운 것. ④중생탁(衆生濁, sattva-kasāya).
     폐악이 많아 효경하지 않고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고 금계를 지키지 않는 것. ⑤
     명탁(命濁, āyu-kasāya). 수명이 줄어드는 것
428) 이 구절이 의천이 고려 전기 균여의 화엄사상을 비판하고 징관의 화엄사상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였다는 근거가 되는 부분이다. 의천이 보는
     균여 화엄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내 비록 못났으나 말로써 그것을 밝힐 뜻이 진실로 있었거니와, 하물며

내가 어려서『화엄경』을 배울 때 선재(善財)동자가 법을 구하는 뜻을 자세

히 보았음에랴! 문수(文殊)보살이 선재동자에게 가르침을 보여 이르기를,

“선남자여, 여러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공양하는 것이 일체지(一切智)429)

를 갖추는 최초의 인연이다. 그러므로 그 일을 힘들어 하거나 싫어하지 말

라.”430) 라고 하였고, 또 “만일 여러 보살이 생사의 괴로움을 싫어하지 않으

면, 곧 보현의 도를 갖추어 어떤 것도 깨뜨리지 못하리라.”431) 라고 하였다.

또 규산(圭山)432)은, “도를 구하는 이는 반드시 지혜의 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혜의 눈은 스스로 뜰 수 없으니 반드시 스승을 구해 그 꺼풀을 벗

겨내야 한다.”433) 라고 하였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책을 덮고 길게

탄식하였다.

429) 일체지(一切智): sarvajña. 일체의 법상을 아는 지혜. 모든 존재에 관해서 총괄
     적으로 다 아는 지혜. 일체 세계, 중생계, 유위 무위, 인과의 차별, 과거 현재 미
     래의 삼세, 이들을 모두 다 아는 지혜.
430)『대방광불화엄경』(80) 권62「입법계품」大10 p.333c1~2.
431)『대방광불화엄경』(80) 권62「입법계품」大10 p.333c14~15.
432) 규산(圭山):종밀(宗密, 780~841). 중국 화엄종의 제5조. 당의 과주(果州, 四川省)
     출신으로 속성은 하(何)씨이다. 규봉(圭峰)선사 또는 규산(圭山)대사라고 부른
     다. 종남산 초당사(草堂寺)에 있다 그 남쪽의 규봉난야(圭峰蘭若)에 주석하여 생
     긴 이름이다.
433) 이 구절은 종밀의『주화엄법계관문』에 붙인 배휴(裴休)의 서문 중에 나온
     다.(「註華嚴法界觀門序」 大45 p.683b7)

 

가만히 생각하면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편 목적은 행을 일으키는 것을 귀

하게 여기신 것으로서, 다만 입으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으로 행

동하게 하려는 것이니, 어찌 한쪽에만 매여 쓸모 없는 사람처럼434) 의리에

쓸모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몸을 잊고 도를 물어 여기에 뜻을 두었더니 다

행히 과거의 인연으로 선지식을 두루 참배하다가, 진수(晋水) 대법사의 강

석 밑에서 교관을 조금 배웠다. 강연하여 가르치는 틈에 일찍이 깨우쳐 말

하기를, “관은 배우지 않고 경만 배우면 비록 오주(五周)의 인과(因果)435)

를 들었더라도 삼중(三重)의 성덕(性德)436)은 통하지 못하며, 경은 배우지

않고 관만 배우면 비록 삼중의 성덕은 깨칠지라도 오주의 인과는 알지 못

한다. 그러므로 관도 배우지 않을 수 없고 경도 배우지 않을 수 없다.”437)

라고 하셨다. 내가 교관에 마음을 다 쓰는 것은 이 말에 감복하였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청량국사께서 “한 치 마음을 비춰 보지 않으면 헛되이 성품의

신령함을 저버린다.”438)고 하신 것도 또한 이런 뜻이다. 이를 알아서, 화엄

을 전수받으면서 관문을 공부하지 않는 이는 아무리 강주(講主)라 하더라

도 나는 믿지 않는다.

434) 원문의 포계(匏繫)는 시렁에 걸려 있는 바가지라는 뜻으로서, 쓸모 없는 사람을
     말한다.
435) 오주(五周)의 인과(因果):징관이『화엄경』(80) 전체의 의리를 다섯 가지로 나누
     어 밝힌 것.(『華嚴經疏』 권3·4) ①소신인과(所信因果). 제1회 보리도량에서 설한
     여래의 과보법문. 제1권~11권의 6품. 비로자나불의 과덕과 부처의 근본인을 천
     명하여 사람들이 신심을 내어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한 법문. ②차별인과(差別因
     果). 제2회~제7회. 12~48권의 29품. 십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의 51
     위의 차별 인과를 밝힌 법문. ③평등인과(平等因果). 제7회. 49~52권의 2품. 보
     현 평등의 인과 비로자나 평등의 과가 둘이 아님을 밝힌 법문. ④성행인과(成行
     因果). 제8회. 53~59권의 1품. 오위 인행과 팔상으로 부처가 되는 과상을 보인
     법문. ⑤증입인과(證入因果). 제9회. 60~80권의 1품. 불과의 대용과 보살의 수인
     을 드러내 인과가 함께 증입함을 밝힌 법문.
436) 삼중(三重)의 성덕(性德):삼중관문(三重觀門). 화엄종의 실천 수행 관법인 법계
     삼관. 진공관, 이사무애관, 주변함용관.
437) 의천 사상의 핵심인 교관겸수의 내용을 살필 수 있는 구절이다.
438)『화엄법계현경(華嚴法界玄鏡)』권하 大45 p.683a21.

 

이제 백 개의 성을 두루 다니면서 본래의 뜻을 폈으니, 앉아서 여러 책들

을 탐구하는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해서이다. 내가 세상의 의학의 무리들을

보니 종일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까닭을 모르는 이가 많다. 혹은 치우치고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기도 하고, 명예와 이익에 빠지기도 하며, 혹은 교만

하거나 게으르고 혹은 (배우려는 마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기 때문에

그 몸을 마치도록 도에 들어가지 못한다.

 

示新叅學徒緇秀439)
經云,“ 若有無上心, 決定樂大事, 爲示於佛身, 說無盡佛法.”
無盡佛法是何? 卽是法界法門. 良以此法, 在衆生爲萬惑, 在
菩薩爲萬行, 在如來爲萬德. 故使毗廬得之, 謂之果分, 普賢
得之, 謂之因分. 衆生日用而不知, 故法界之道鮮矣. 皆强而
言之, 其略爲三. 若悟而遣之, 未始有一, 虧盈自彼, 於我無爲.
所謂“情見苦破, 法界圓現, 一切衆生無不成佛”者, 誠哉, 是
言! 豈徒然也? 所以淸凉嘆曰, “交映千門, 融冶萬有, 盡法界
術, 唯大花嚴,” 妙在玆焉. 然此經文, 雖行於世, 罕能通之. 在
昔吾祖杜順尊者, 嘆曰,“ 大哉, 法界之經也! 自非登地, 何能
披其文, 見其法哉?” 於是著法界觀三重三十門, 并漩澓頌三
首, 傳于高弟儼尊者, 儼傳藏國師, 皆面言心授, 三葉騰芳. 厥
後一宗諸師, 凡有著撰, 未嘗不以三觀爲龜鏡. 故會嵇嘉祥寺
神秀法師, 花嚴疏中, 引漩澓頌云,“ 順禪師曰,‘ 於一境中一
切智, 一切智中諸法界.’ 斯乃大敎之漩澓也. 且如探玄妙賾,
至相十門, 皆禀有所從, 義非孤超, 今具述之, 以明宗意也.”〈已
上彼文〉 又淸凉國師玄鏡中, 解周遍含容觀, 却將十玄, 配釋十
門, 其後結云, “是故十玄, 亦自此出.” 以此而推, 予甞謂學徒,
示敎觀本末云, “至相得之, 演之爲十玄, 變之爲五敎.” 其言不
誣也. 其有義學君子, 同志一乘, 同修萬行, 大心不變, 弘誓在
躬, 掌握普賢之乘, 優遊盧舍之境者, 莫若先以三觀五敎, 硏窮
法義, 用爲入道之眼目也. 良由離此普法, 更無異路得成佛, 故
權敎極果, 無實事. 故吾祖甞有言曰,“ 顧惟正法之代, 尙匿淸
光, 幸哉像季之時, 遇斯玄化.” 乃至云, “今居塔寺之末, 將隣
鬪諍之時, 翻聞難思之經, 碎身莫酬其慶. 猶溺巨海而遇方舟,
墜長空而乘靈鶴, 慶躍之至手舞何階, 感之慶之, 唯聖賢之知
我也.”
噫, 祖師之世, 猶在像法塔寺之中, 而亦發嘆若斯之切, 況今濁
世, 正在末法鬪諍之時, 而有得聞圓頓敎者, 豈不感傷哉? 然
爲去聖漸遙, 加之邊地, 世寡正道, 學則隨邪, 遂使吾道, 或幾
乎息矣. 予常恨海東先代諸師, 所流遺記, 學非精博, 臆說尤
多, 方軌來蒙, 百無一本, 不能以聖敎爲明鏡, 炤見自心, 一生
區區, 但數他寶. 世所謂均如梵雲眞派靈潤諸師謬書, 語不成
文, 義無通變, 荒蕪祖道, 熒惑後生者, 莫甚於斯矣. 予雖末陋,
辭而闢之, 實有志焉, 況吾幼學大經, 備見善財求法之志! 而
文殊敎示曰, “善男子, 親近供養諸善知識, 是具一切智最初因
緣, 是故於此, 勿生疲厭.” 又云,“ 若有諸菩薩, 不厭生死苦,
則具普賢道, 一切無能壞.” 又圭山云,“ 夫求道者, 必資於慧
目. 慧目不能自開, 必求師以抉其膜也.” 每至斯文, 掩卷長嘆.
竊謂聖人設敎, 貴在起行, 非但宣之於口, 實欲行之於身, 豈可
以匏繫一方, 無用於義? 亡軀問道, 立志於斯, 幸以宿因, 歷叅
知識, 而於晋水大法師講下, 粗承敎觀. 講訓之暇, 甞示誨曰,
“不學觀唯授經, 雖聞五周因果, 而不達三重性德, 不授經唯學
觀, 雖悟三重性德, 則不辨五周因果. 夫然則觀不得不學, 經
不得不授也.” 吾之所以盡心於敎觀者, 佩服斯言故也. 故淸凉
云,“ 不鏡方寸, 虛負性靈”者, 亦斯意也. 是知傳大經而不學觀
門者, 雖曰講主, 吾不信也. 今者行詣百城, 已酬曩志, 坐探群
藉, 正在此時. 吾觀世之義學之流, 終日學而不知所以學者多
矣. 或失於偏邪, 或失於聲利, 或慢或怠, 若存若亡, 故終其身,
而不能入其道.
439)『대각국사문집』권16 韓4 pp.555c5~556c12

 

5) 새로 공부하는 학도 지웅(智雄)에게 보임

 

대개 스승과 제자의 도는 바로 큰 인연이다. 그러므로『남산초(南山

鈔)』440) 에,“불법이 더욱 늘고 광대해지는 것은 진실로 스승과 제자가 서로

협조하는 것에 연유한다.”441)고 하였다. 요즈음 현묘한 가르침이 쇠퇴하고

지혜의 바람이 부채에 가려지는 것은, 스승은 이끌어 인도하려는 마음이

없고 제자는 받들어 행하려는 뜻이 없는데 연유한다. 그들 둘이 서로 버리

고 함부로 더러운 경계에 빠진다면, 아무리 도를 빛내고자 한들 어찌 가능

하겠는가?

440)『남산초(南山鈔)』:남산율종을 개창한 도선(道宣)의 사분율(四分律) 관련 저작
     중 가장 중요한『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12권. 남산종
     의 사분율초를 줄여 말한 것.『사분율』을 잘라내고 보완하여 30편으로 나누어
     그 중요한 뜻을 서술하고, 여러 율사의 설을 참작하여 계율을 행하는 실제 규
     정을 상세히 서술한 것이다. 이후 승풍과 위의를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분율』은 당대 율종의 근본 서적으로서 가장 깊고 넓게 영향을 미친 계율 서
     적이다.
441)『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권상 大40 p.30c21 佛法增益廣
     大, 寔由師徒相攝.

 

『발진초(發眞鈔)』442)에 말하기를, “출가한 뒤에는 못난 이는 뛰어난 이

에게 의지하고 범부는 성인에게 의지해야 성불에 이르게 되니, 바로 이것

을 스승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443) 라고 하였다. 또『필삭기(筆削記)』444)

는, “선지식과 수행하는 사람이 서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발심한 사람이 있어도 참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거나, 참된 선지식이 있

어도 발심한 사람을 보지 못한다면 도에 감응하여 사귀기가 실로 쉽지 않

다.”445) 라고 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도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 의혹을 분별

한다는 것은 세상에 어려운 일이라 할 것이다. 혹은 같은 시대에 있으면서

도 서로 친하지 못하고 혹은 다른 시대에 나서 서로 접촉하지 못하면, 현재

와 과거가 분명히 있게 되어, 결코 스스로 보리를 증득하여 생사를 초월할

것을 서원하지 못할 것이다. 넓고 트인 도를 통달하려고 멀고 큰 뜻을 품

고 교관(敎觀)으로써 자기 임무를 삼아 마침내 부처와 조사의 은덕을 갚으

려고 하는 것인데, 그 누가 책상자를 짊어지고 경권을 손에 끼고 먼 길임을

잊고 유익함을 구하겠는가?

442)『발진초(發眞鈔)』:송(宋) 윤감(允堪, 1005~1061)이 당 도선이 지은『정심계
     관법(淨心誡觀法)』에 주석한 책. 윤감은 송대의 이름난 율학승으로 내외전에 통
     달하고 인화(仁和)에게서 남산율을 배워 깊은 뜻을 깨우쳤다. 항주의 대소경사(大
     昭慶寺)와 소주의 개원사(開元寺), 수주의 정엄사(精嚴寺) 등에 계단을 세워 남산
     율종을 드날렸다. 도선의 저술 10부에 대해 주석서를 써서 십본기주(十本記主)
     라고 불렸다. 불상에 예배할 때 오른쪽으로 도는가, 왼쪽으로 도는가의 문제나
     승복의 길고 짧음에 대해 영지사(靈芝寺)의 원조(元照)율사가 지은『사분율행
     사초자지기(四分律行事鈔資持記)』와 견해가 달라, 사람들이 윤감을 회정종(會正
     宗), 원조를 자지가(資持家)라고 불렀다.
443) 송(宋) 윤감(允堪),『정심계관발진초(淨心誡觀發真鈔)』권하본 卍59 p.578a17~18.
     人以出家之後, 劣依於優, 凡依於聖, 直至五分法身成立, 乃至成佛, 方曰無師.
444)『필삭기(筆削記)』:『대승기신론필삭기(大乘起信論筆削記)』. 송의 화엄종 승려
     자선(子璿)이 지은 책. 종밀이 지은『기신론주소(起信論注疏)』를 상세하게 풀이
     한 것이다.『기신론』을 오교의 원교일승에 배당하여 천태의 원교 해석과 같아져
     후세의 비판을 받았다.
445)『기신론필삭기』권14 大44 p.371a15~17. 然善友與行人相值誠難, 且如世間有欲
     發心者, 則不遇真善知識, 有真善知識, 則不見發心之人, 感應道交實爲不易.

 

그런데 지금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지 5백년이 되어 법이 쇠퇴한 말세

요, 사람들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때이다. 대강 배우는 무리는 많으나 뜻을

굳게 가진 사람은 적어, 시작하는 사람은 없지 않으나 잘 끝맺는 이는 거

의 없다. 그러므로 『정심계관법(淨心誡觀法)』446)에서는, “지금은 말법 세상

이라 중생들의 마음은 각박하여 은혜를 저버리며 의리를 끊고, 홀로 조용

하고 한가함을 즐기며 마음에 맞게 자재하니, 법과 같이 되지 않아 악도(惡

道)에 떨어질까 두렵다.”447)고 하였다. 규봉종밀(圭峰宗密)대사가 이른바,

“부처의 문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그 잘못이 치우치고 삿된 데 있다.”448)

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446)『정심계관법(淨心誡觀法)』:당 도선이 문인들이 스스로 수행하고 교화하는 
     도로서 마음을 정화하고 잘못을 떠나 진리를 관찰하는 내용을 30편으로 나누어
     말한 책. 2권.
447)『정심계관법』권2 大45 p.833b20~22. 今時末法衆生心薄背恩絕義, 易厭師僧樂
     獨遊居, 適情自在, 恐不如法墮於惡道.
448) 종밀,「권발보리심문서(勸發菩提心文序)」(배휴의 『普勸僧俗發菩提心文』에 대한
     서문) 卍58 p.485c12.

 

그대 공부하는 학도들이 법을 구하려는 정성을 오로지하여 멀리서 왔으

니, 내 비록 변변치 못하나 또한 즐겁지 않은가?449) 혹은 만행을 같이 닦고

일승에 함께 뜻을 두면서, 법계의 문에서 걸림없이 노닐고 무위(無爲)의 경

계에서 활달하게 지내면, 태어날 때마다 항상 좋은 벗이 되고 있는 곳마다

서로 착한 친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내 말을 그대들이 따르고 그대들의

마음에 내가 맞추어 항상 보현행(普賢行)을 익히고 늘 원돈의 경전을 펼쳐,

티끌마다 해탈의 경계에 들어가는 법문이 되고 구절마다 비로자나의 본성

의 바다를 깨달을 것이다. 제도할 것이 없는 것을 널리 제도하고 이룰 것이

없는 것을 마침내 이루어, 스스로 힘쓰기도 이렇게 하고 남을 가르치기도

또한 그렇게 하여, 일체 중생들과 함께 맹세하여 위없는 묘각(妙覺)450)

오르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내 소원이다.

449)『논어』에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論語』「學而」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구절을 연상하게 한다.
450) 묘각(妙覺):보살 수행의 52위 또는 41위의 하나로 마지막 단계. 깨달은 행이 원
     만한 구경의 불과(佛果)를 말하므로 불과의 곧 불타의 불가사의한 무상정각의
     별칭으로 쓰인다. 등각(等覺)의 단계에서 다시 1품의 무명을 끊어 이 묘각위에
     오르게 되며, 이 계위에서는 일체의 번뇌를 끊고 지혜가 원만 미묘하고 열반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示新叅學徒智雄451)
夫師資之道, 是大因緣. 所以南山钞云,“ 佛法增益廣大, 寔由
師資相攝.” 比玄敎凌遲, 慧風掩扇, 并由師無率誘之心, 資闕
奉行之志. 二彼相捨, 妄流鄙境, 欲令光道, 其可得乎? 發眞钞
云,“ 出家之後, 劣依於優, 凡依於聖, 乃至成佛, 方曰無師.”
又筆削記云,“ 善友與行人, 相値誠難. 有發心者, 不遇眞善知
識, 有眞善知識, 不見發心之人, 感應道交, 實爲不易.” 以此
觀之, 就有道以辨惑, 世所難也. 或同時而不相親, 或異代而不
相接, 今之與古, 歷歷而有, 自非決證菩提, 誓超生死. 達恢廓
之道, 懷遠大之志, 能以敎觀爲己任, 終報佛祖之恩德者, 其
孰能負笈橫經, 忘遐求益者哉? 然今如來沒後, 後五百歲, 法
衰末世, 人濁亂時. 泛學者衆, 秉志者小, 靡不有初, 鮮克有終.
451)『대각국사문집』권16 韓4 pp.556c14~557a23

 

6) 새로 공부하는 학도 혜수(慧修)에게 보임

 

대개 출가한 선비는 마음에 원대한 뜻을 품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여러 근기의 사람들을 인도하고 교화해야 하니 실로 그 책

임이 무겁다. 혹은 갖가지 방편으로 거두어들이고 혹은 한 가지 맛의 평등

함을 보이며, 혹은 괴롭고 즐거우며 선도(善道)에 낳고 악도(惡道)에 떨어

지는 것으로 힘쓰게 하고 혹은 인과와 응보(應報)로 인도해야 하되, 밖으로

는 근기를 따라 만 가지로 변하면서 안으로는 법계로 함께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법계의 도가 됨이 넓고 모두 갖추어져 있어, 이치를 파헤치고 사리

를 다하여도 생각할 수 없다.

 

내 비록 영민하지 못하지만 다행히 진수(晋水)452)대사와 각엄(覺嚴)453)

대사 문하에서 법을 전해 받고 조금이나 대강을 깨닫게 되었으니, 내 평생

의 만남에 이보다 더한 일이 없다. 너희 공부하는 학도들이 혹 그 몸을 도

에 맡겨 마침내 큰 일을 기약하려 한다면 내 어찌 감히 사양하여 피하겠는

가? 그러나 이 원돈(圓頓) 일승의 도는 다 수행하는 사람들의 알아야 할 경

지이다. 만일 그것을 배우지 않고 헛되게 일생을 보낸다면, 보배 산에서 빈

손으로 돌아온다 해도 원통해 할 것이 없을 것이다. 만일 교관에 정신을 집

중하여 시작할 때처럼 끝까지 조심하면 도가 멀리 있겠는가? 어질게 하고

자 하면 어짊이 이르는 것이다.454)
452) 진수(晋水):의천이 화엄을 배운 송의 고승 정원(淨源)
453) 각엄(覺嚴):낙양에 있던 절 이름이나, 여기서는 이곳에 주석하던 유성을 말함.
     의천이 송에 가서 불법을 배우고자 할 때 화엄종을 배우기 위해 송 황제에게 글
     을 올렸더니, 양가 공덕사에 법을 전해줄 만한 이를 추천하도록 하였는데 화엄
     을 강의한 지 오래되어 학자들에게 성가가 높은 각엄사의 유성(有誠)법사가 상
     대가 되도록 하였다. 유성은 다시 항주 혜인원의 정원을 추천하여 자신을 대신
     하도록 하였고, 이에 칙명으로 양걸(楊傑)이 의천과 함께 혜인원에 가서 법을
     받도록 하였다.(『불조통기(佛祖統紀)』권14 大49 p.223b28~c5. 義天上表, 乞
     傳賢首教, 勅兩街, 擧可授法者. 以東京覺嚴誠禪師對, 誠擧錢唐慧因淨源以自代. 
     乃勅主客楊傑送至慧因受法.)
454)『논어(論語)』에 나오는 말.『논어』술이(述而)편 제7에 “공자께서 이르시되 
     ‘어짊은 먼 것인가? 내가 어질고자 하니 여기 어짊이 이르렀구나.’라고 하셨다.”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라는 구절이 있다.

示新叅學徒慧修455)
夫出家之士, 心懷遠大, 利物爲先, 誘化群機, 實爲任重. 或攝
之以種種方便, 或示之以一味平等, 或勉之以苦樂昇沈, 或導之
以因果報應, 外則隨機萬變, 內則法界同歸. 然法界之爲道也,
廣大悉備, 窮理盡事, 不可得而思議矣. 予雖不敏, 幸於晋水覺
嚴門下, 得蒙傳授, 微領大綱, 平生所遇, 更無過此. 汝等義學,
其或以身許道, 終期大事, 則吾豈敢辭避也? 然此圓頓一乘之
道, 盡是行人所應知境. 如其不學, 虛度一生, 空返寶山, 未足
爲痛. 若也潜神敎觀, 愼終如始, 則道遠乎哉? 欲仁, 仁至矣.
455)『대각국사문집』권16 韓4 p.557b1~15

7) 새로 공부하는 학도 덕칭(德稱)에게 보임

 

대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는 실로 쉬운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가?

시험삼아 말해 보리라.

 

그 스승이 된 자가 도를 얻어 그 자리에 있으면 그것은 진실되고 외람된

것이 아니며, 그 도를 잃고 그 이름만 훔치면 그것은 외람된 것이요 진실됨

이 아니다. 그 제자가 된 자가 그 교훈을 받고 그 일을 행하면 그것은 의리

요 아첨이 아니며, 그 법만 취하고 그 은혜를 저버리면 그것은 아첨이요 의

리가 아니다.

 

외람됨과 아첨은 군자가 부끄럽게 여기니, 내가 만일 너희를 외람됨으로

써 인도하면 그것은 내가 너희를 속이는 것이요, 너희들이 만일 내게 아첨

으로써 구한다면 그것은 너희들이 나를 속이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

들 중에는 다만 스승과 제자의 이름만 알고 스승과 제자의 진실을 알지 못

하는 이가 때때로 있다. 진실로 스승과 제자가 그 도로써 행하지 않으면 부

처와 조사의 가르침이 무엇에 의지하여 행해지겠으며, 뒷날의 스승되는 사

람은 무엇을 따라 그 자리에 서겠는가?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진실로 그

때문이다. 아아, 나나 너희들이 외람된가 아첨하는가는 다 여러 사람을 기

다려 증명될 것이니, 너희들은 그런 줄 알라.

 

示新叅學徒德稱456)
夫師資之道, 實爲不易, 汝知之乎? 甞試言之. 其爲師也, 得其
道而處其位, 實而非濫也, 失其道而竊其名, 濫而非實也. 其爲
資也, 禀其訓而行其事, 義而非謟也, 取其法而背其恩, 謟而
非義也. 濫而又謟, 君子恥之, 吾若誘汝以濫, 則吾誑汝也, 汝
若求吾以謟, 則汝誑吾也. 世人但識師資之名, 而不知師資之
實者, 往往有之. 苟或師資, 不以其道, 則佛祖之敎, 依何而行,
後之爲師者, 從何而立? 道之不行, 職由斯也. 嗚呼, 吾也汝
也, 濫乎謟乎, 盡俟衆人訂之, 汝其識之.
456)『대각국사문집』권16 韓4 p.557b16~c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