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관한 여덟 가지 담론]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 마성
불교평론 [66호] 2016년 06월 01일 (수)
1. 머리말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현응(玄應) 스님이 2015년 9월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 제하의 기조 발제문에서 ‘깨달음이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른바 ‘깨달음 논쟁’이 촉발되었다. 처음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조차 없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의견들을 개진함으로써 불필요한 논쟁을 가중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논쟁 자체가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논쟁을 계기로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은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논쟁이 보다 깊이 있게 진행된다면, 불교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문제점은 ‘깨달음에 대한 정의’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논자들 간에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뿐이다. 이 논쟁이 더욱 생산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붓다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글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초기불교에서 본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초기성전에 묘사된 깨달음
1) 율장 《대품》의 논거 검토
현응 스님은 ‘깨달음이란 잘 이해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증명하기 위해 율장(律藏)의 《대품(大品)》에 언급된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빨리어로 기록된 율장(Vinayapiṭaka)의 《대품(Mahāvagga)》은 초기불교의 깨달음을 언급한 문헌이 아니다.
빨리 율장은 크게 숫따비방가(Suttavibhaṅga, 經分別), 칸다카(Khandhaka, 犍度), 빠리와라(Parivāra, 附隨)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경분별(經分別)은 율장의 본문 골자인 조문(條文), 즉 빠띠목카(pātimokha, 波羅提木叉)를 설명한 부분이다. 둘째, 건도(犍度)는 교단의 제도와 규정을 편품(編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부분이다. 셋째, 부수(附隨)는 앞의 경분별과 건도에서 설명한 사항을 분류하고 요약 정리한 보유편(補遺編)이다.
그러나 빨리성전협회(PTS)에서 발행한 로마자 빨리 율장은 건도, 경분별, 부수의 순으로 편찬되어 있다. 이것은 빨리 율장을 로마자로 편찬한 독일의 헤르만 올덴베르크(H. Oldenberg, 1854~1920)가 율장의 건도(犍度)부터 편찬했기 때문이다. 그는 승려들이 지켜야 할 바라제목차보다 교단의 제도나 규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너(I. B. Horner, 1896~1981) 여사는 원래의 빨리 율장 그대로 경분별, 건도, 부수 순으로 영역(英譯)했다.
어쨌든 율장의 《대품》 첫 번째 편은 마하칸다까(Mahākkhand-haka, 大犍度 또는 受戒編)이다. 이 마하칸다까는 출가입단법(出家入團法), 즉 수계의 방법, 수계자의 자격 등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 수계편(受戒編)에 언급된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붓다는 깨달음을 이루고 제일 먼저 바라나시로 가서 꼰단냐(Koṇ-ḍañña), 밥빠(Vappa), 밧디야(Bhaddiya), 마하나마(Mahānāma), 앗사지(Assaji) 등 다섯 고행자들에게 법을 설했다.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제일 먼저 꼰단냐가 깨달음을 이루었다. 그때 꼰단냐는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 upasampadā)를 받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붓다는 “오라, 비구여(ehi bhikkhu, 善來比丘). 법은 잘 설해져 있으니, 바르게 괴로움의 끝을 이루기 위해 범행(梵行)을 닦으라. 이것이 사실 이 존자의 구족계였다.”고 말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선래비구구족(善來比丘具足, ehi-bhikkhu-upasampadā)’이다.
비록 붓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이루었더라도 반드시 구족계를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상가(Saṅgha, 僧伽)’의 구성원이 되기 때문이다. 제자가 구족계를 받는 것은 승가 성립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이다. 이어서 밥빠, 밧디야, 마하나마, 앗사지 등도 같은 방식으로 구족계를 받았다. 그때 비로소 ‘승가’가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율(律)에서 승가의 최소 단위는 네 명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섯 비구가 모두 구족계를 받았기 때문에 승가, 즉 승단(僧團)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율장에서는 승가 성립에 관한 언급은 없다. 다만 “그때 세간에 여섯 명의 아라한이 있었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야사(Yasa)를 찾아 나섰던 야사의 아버지가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그 자리에서 삼귀의를 외우고 최초로 재가신자가 되었다. 율장에서는 “이와 같이 그는 삼귀의를 외움으로써 이 세상에서 첫 번째의 우바새가 되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다섯 비구가 구족계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승가’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율의 편찬자들도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뒤 야사도 구족계를 받아 붓다의 여섯 번째 제자가 되었다. 이어서 야사의 친구, 즉 위말라(Vimala), 수바후(Subāhu), 뿐나지(Puṇṇaji), 가밤빠띠(Gavampati) 등도 똑같은 방식으로 구족계를 받아 승가에 합류했다. 또한 야사의 친구였던 50명의 젊은 귀족의 자제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구족계를 받아 승가에 합류했다. 율장에는 “그때 이 세상에는 61명의 아라한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때 붓다는 60명의 제자에게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전도선언(傳道宣言)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교화를 하게 되면 출가를 원하는 자에게 구족계를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승가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선래비구구족’에 의해 승가에 합류시켰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구족계 의식이 제정되었다. 그것이 바로 ‘삼귀의에 의한 구족계(tīhi saraṇagamanehi upasampadā)’ 의식이다.
제자들이 전도를 떠난 뒤, 붓다는 다시 마가다국의 우루웰라(Uruvalā)로 돌아왔다. 그때 붓다는 우루웰라의 숲 속에서 유흥을 즐기고 있던 30명의 젊은이를 교화시켰다. 그들은 붓다로부터 ‘오라. 비구들이여!(etha bhikkhavo)’라는 구족계를 받고 승가에 합류했다. 그런 다음 깟사빠(Kassapa, 迦葉) 3형제와 그들의 추종자를 교화시켜 승가에 합류시켰다. 이른바 우루웰라깟사빠(Uru-velakassapa)와 그의 제자 500명, 나디깟사빠(Nadīkassapa)와 그의 제자 300명, 가야깟사빠(Gayākassapa)와 그의 제자 200명이었다. 이들을 동시에 개종시킨 것은 큰 사건이었다. 특히 우루웰라깟사빠와 같은 당대 최고의 종교 지도자를 개종시킴으로써 붓다의 명성은 크게 드높아졌다.
그 후 마가다국의 라자가하(Rājagaha, 王舍城)에서 산자야(Sañ-jaya)의 제자였던 사리뿟따(Sāriputta)와 목갈라나(Moggallāna)가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이어서 산자야의 제자 250명도 개종했다. 그들은 모두 붓다로부터 ‘오라. 비구들이여!’라는 구족계를 받고 승가에 합류했다. 율장의 《대품》에는 여기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율장의 《대품》에 언급된 내용은 초기 승가의 성립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장의 《대품》은 다섯 비구가 어떻게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는가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붓다의 제자 중에서 최초로 꼰단냐(Koṇḍañña)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은 상윳따니까야의 《전법륜경(轉法輪經)》(SN56:11)에 설해져 있다. 《전법륜경》의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먼저 붓다의 깨달음, 즉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붓다는 앗삿타(assattha, pippala라고도 함) 나무 아래에서 명상하다가 드디어 ‘위없는 바른 깨달음(anuttara sammāsambodhi, 無上正等覺)’을 얻어 붓다(Buddha), 즉 각자(覺者)가 되었다. 이것을 중국 · 한국 · 일본에서는 ‘성도(成道)’라고 부른다. 붓다의 성도는 출가의 목적인 해탈의 완성이며 현세의 열반을 실현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붓다의 깨달음 자체가 바로 불교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이것은 예로부터 매우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테면 중국의 선승(禪僧)들이 ‘무엇이 곧 부처인가’라든가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도 ‘붓다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체득한 경지가 붓다의 깨달음과 일치하는가를 점검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성전에서는 붓다의 깨달음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로 서술하고 있다. 초기경전에 언급된 붓다의 깨달음에 관한 내용은 일치하지 않으며 많은 이설(異說)들이 나타난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열다섯 가지 정도의 이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열다섯 가지 이설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사성제(四聖諦)나 십이연기(十二緣起)와 같은 이법(理法)의 체득에 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 四念處 · 四正勤 · 四如意足 · 五根 · 五力 · 七覺支 · 八正道)과 같은 수행도(修行道)의 완성에 의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오온(五蘊) · 십이처(十二處)와 같은 제법(諸法)의 관찰에 의했다는 것이다. 넷째는 사선(四禪) · 삼명(三明)의 체득에 의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붓다의 깨달음은 문헌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붓다가 자신의 깨달음을 특정한 교설로서 고정하여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붓다는 듣는 자의 근기에 따라 설하는 방법을 달리했기 때문에 깨달음의 내용이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붓다의 깨달음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붓다의 깨달음은 연기(緣起)의 자각(自覺)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때의 연기(緣起)는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처럼 완성된 형태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기의 자각이란 다른 말로 사성제에 대한 통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기법을 실천수행의 체계로 조직한 것이 사성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성제(苦聖諦)와 집성제(集聖諦)는 유전연기(流轉緣起)에 해당되고, 멸성제(滅聖諦)와 도성제(道聖諦)는 환멸연기(還滅緣起)에 해당된다. 부파불교 시대에 ‘깨달음에 이르는 서른일곱 가지 부분’이라는 삼십칠조도품(bodhipakkhiya-dhamma)으로 조직화된 사념처(四念處) · 사정근(四正勤) 등의 실천 수행법도 연기의 역관(逆觀)에서 드러나는 무명(無明) · 갈애(渴愛)를 소멸하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붓다의 최초 설법으로 알려져 있는 《전법륜경(轉法輪經)》에서는 붓다가 사성제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ṃ)을 통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전법륜경》에 의하면 붓다는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과 열두 가지 형태[三轉十二行]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지 못했다면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했다고 신(神)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붓다는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통찰함으로써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게 되었다.
《전법륜경》에서 붓다는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에 대응하는 한역 《전법륜경》에서는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과거에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사유하라. 그러면 그때 눈[眼] · 지혜[智] · 밝음[明] · 깨달음[覺]이 생길 것이다.”고 설해져 있다.
이와 같이 붓다는 사성제라는 진리를 통해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통찰지[慧]가 생기고, 명지[明]가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던 것이다. 한역에서는 이것을 안(眼) · 지(智) · 명(明) · 각(覺)이 생겼다고 옮기고 있다.
3. 수행의 단계와 깨달음의 경지
1) 초기경전에 묘사된 아라한
《전법륜경》에 의하면 붓다의 설법을 들고 마침내 “꼰단냐(Ko-ṇḍañña) 존자에게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라는 티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이 생겼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때 세존께서는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라고 읊었다. 이렇게 해서 꼰단냐 존자는 안냐꼰단냐(Aññāta-Koṇḍañña)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꼰단냐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 ‘일어난 법은 모두 소멸한다(集法卽滅法).’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꼰단냐가 사성제에 대한 붓다의 설법을 듣고 연기(緣起)의 이치를 터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진리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법안(法眼, dhamma-cakkhu)이 생겼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율장의 《대품》에서는 최초의 다섯 비구를 비롯한 야사와 그의 친구 네 명, 그리고 귀족의 자제 50명이 붓다의 설법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실제로 초기경전에서는 붓다께 귀의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한 제자들은 곧바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를테면 최초의 다섯 비구들은 붓다께 귀의한 지 5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붓다의 상수제자였던 사리뿟따(Sāriputta)는 라자가하에서 유행하다가 다섯 비구 중 한 명이었던 앗사지(Assaji, 馬勝)를 만나 그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게 되었다. 앗사지는 사리뿟따에게 “모든 법은 인(因)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여래께서는 이 인(因)을 설하셨다. 모든 법의 소멸에 대해서도 위대한 사문은 그와 같다고 설하셨다.”라고 게송을 읊었다. 사리뿟따는 이 게송을 듣고 먼지와 때를 멀리 여읜 법안을 얻었다. 곧 ‘생겨난 것은 모두 소멸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소따빤냐(sotāpanna, 預流果)를 얻었다. 목갈라나(Mogallāna)도 사리뿟따로부터 앗사지가 전해준 게송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 그리고 목갈라나는 붓다께 귀의한 지 7일 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했고, 사리뿟따는 2주가 지나기 전에 아라한이 되었다.
또한 사마(Sāmā) 장로니는 아난다 존자의 법문을 듣고 통찰력을 얻은 후 7일째 되는 날 아라한이 되었다. 수자따(Sujātā) 장로니는 사께따(Saketa)의 백만장자의 딸이었는데, 같은 부류의 남편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그녀는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안자나와나(Añjanavana)에서 붓다를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다. 그녀는 붓다의 법문을 듣고 곧바로 아라한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허락을 얻어 출가했다. 한편 닷바 말라뿟따(Dabba-Mallaputta) 장로는 여섯 살에 아라한이 되었으며, 밧다(Bhadda) 장로는 일곱 살에 아라한이 되었다. 이러한 기술은 붓다에게 귀의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들이 어떻게 도(道)를 구했는가 하는 사실을 설명하는 동시에 아라한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초기경전에서는 붓다의 제자가 된 사람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수행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나누었던 것은 아니며, 사과(四果: 預流果 · 一來果 · 不還果 · 阿羅漢果)라는 것도 일단의 목표로서 설해졌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왜냐하면 초기불교의 네 가지 수행 단계는 나중에 체계화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중에 체계화된 네 가지 수행 단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예류과(預流果, sotāpanna, 須陀洹)로서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단계이다. 둘째는 일래과(一來果, sakadāgāmin, 斯陀含)로서 한 번만 욕망 · 미혹의 세계로 돌아오고 해탈을 얻는 단계이다. 셋째는 불환과(不還果, anāgamin, 阿那含)로서 다시 미혹한 세계에 태어나지 않는 단계이다. 넷째는 아라한과(阿羅漢果, arahant)로서 최고의 해탈을 완성한 단계이다.
이 가운데 세 번째까지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유학(有學)의 성자’라고 한다. 반면 마지막 아라한은 모든 수행을 완전히 실천하여 더 이상 배워야 할 어떠한 것도 없는 단계이기 때문에 ‘무학(無學)의 성자’라고 한다. 이러한 네 가지 단계는 다시 그것으로 향하는 상태와 거기에 도달한 상태로 나누어 모두 여덟 가지의 상태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것을 사향사과(四向四果) 또는 사쌍팔배(四雙八輩)라고 부른다.
그러나 후대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논사들에 의해 수행의 단계는 매우 복잡한 체계로 정리되었다. 그 결과 마지막 아라한과는 대단히 높은 수준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 설해져 있는 아라한은 수행에 의해 도달되는 것이지 아비달마 교학의 그것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최초기 아라한의 경지는 어떤 것인가? 나중에 체계화된 네 가지 수행 단계에 의하면, 처음 다섯 비구가 터득한 경지는 성자의 초기 단계인 예류향(預流向)이나 예류과(預流果)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꼰단냐의 경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비록 꼰단냐가 연기의 원리를 터득함으로써 법안(法眼)이 생겼지만, 그가 궁극의 목적인 열반을 증득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열반은 탐(貪) · 진(瞋) · 치(癡)의 삼독(三毒)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율장의 《대품》에서는 “오라. 비구여, 법은 잘 설해져 있으니, 바르게 괴로움의 끝을 이루기 위해 범행(梵行)을 닦으라.”고 설해져 있다. 이것은 꼰단냐가 비로소 법의 눈[法眼]을 뜨게 되었으므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 범행을 닦으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비록 다섯 비구가 붓다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도선언(傳道宣言)’을 통해서도 초기 아라한들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상윳따니까야의 《올가미경(pāsa-sutta)》(SN4:4)에 “비구들이여, 나는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빨리어 빠사(pāsa)는 ‘올가미’ ‘덫’을 의미한다. 이 경과 대응하는 잡아함 권39 《제1096경》에는 “나는 이미 인간과 천상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인간과 천상의 속박을 벗어났다.”고 설해져 있다.
붓다는 60명의 제자에게 전도의 길의 떠나라고 당부하면서 제일 먼저 “나는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대들도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법자의 자격’을 말한 것이다. 즉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와 체험이 갖추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은 붓다 시대의 바라문들의 전변설(轉變說)과 사문들의 적취설(積聚說)을 상징한 것이다. 바라문들의 전변설은 상주론(常住論)이고, 사문들의 적취설은 단멸론(斷滅論)이다. 붓다는 연기의 자각을 통해 전별설과 적취설, 혹은 상주론과 단멸론이 진리가 아님을 깨달았던 것이다.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60명의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러자 60명의 제자들은 짧은 기간에 그 이치를 터득했다. 그래서 붓다는 각자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때 60명의 제자들이 터득한 경지는 그렇게 높은 차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필자는 초기불교 아라한들의 경지는 ‘진리에 대한 눈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되며 점차 그 깊이를 더하게 된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것을 해탈의 완성, 혹은 현세에서의 열반을 실현한 것이라고 한다.
율장의 《대품》에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구족계를 받은 제자가 60명이 되었을 때, “그때 이 세상에는 61명의 아라한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붓다도 아라한들 가운데 한 명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이처럼 초기 승가에서는 붓다도 다른 아라한들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점차 후대로 내려오면서 붓다와 다른 아라한들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아라한들은 붓다의 가르침으로 인해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붓다누붓다(buddhānubuddha)’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2) ‘법을 본다’는 의미와 점차적 수행
맛지마니까야(MN28)에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상윳따니까야(SN22: 87)에서 붓다는 왁깔리 존자(āyasmā Vakkali)에게 “법을 보는 자는 나[붓다]를 보고, 나[붓다]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고 설했다. 왁깔리 존자는 이러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곧바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자결했다.
여기서 ‘본다’는 동사 빳사띠(passati)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철저한 부정의 사고로 내부의 성품이나 본연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를 지니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진리(법)를 보는’이란 무아(無我)를 이해하는 것이고, ‘연기를 보는’이란 인과법을 이해하는 과학적 눈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은 상관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깨우치는 진리의 눈(法眼, dhamma-cakkhu)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붓다는 사성제를 통찰함으로써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성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이를테면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차례대로 하나씩 깨달아 나간다. 이처럼 사성제의 깨달음은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시각이다.
맛지마니까야(MN70)에 “비구들이여, 나는 완전한 지혜(aññā)의 성취가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반대로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적으로 실천하고 점차적으로 닦아 완전한 지혜의 성취가 있게 된다.”고 설해져 있다. 이것은 완전한 지혜의 성취, 즉 아라한과는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붓다는 점차적인 닦음에 의해 점진적으로 무르익는 깨달음을 가르쳤다.
초기불교에서 가르치는 깨달음에 대해 임승택 교수는 “사성제를 내용으로 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결코 현실과 유리된 초월적 상태가 아니다. 이것은 붓다의 가르침과 행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붓다가 이룬 사성제의 깨달음이란 일상에서 출발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실현하여 완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단박에 성취하였던 것이 아니며 또한 성취하고 나면 그만인 그러한 경지도 아니다. 그것은 탐욕과 집착이 남아 있는 한에서 끊임없이 닦아나가야 할 과제로 제시되는 그러한 경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3) 선정 없는 지혜는 없다
현응 스님은 선정이 없어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정 없는 지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초기불교에서 팔정도(八正道)는 수행의 근간이다. 또한 팔정도는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三學)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불교수행의 핵심은 계 · 정 · 혜 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초기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 고유의 전통설이다.
붓다는 선정을 배척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의 수행자들이 수행의 목적을 선정에 두었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했을 뿐이다. 즉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을 붓다가 지적했을 뿐, 선정 자체를 배척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정 없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바른 견해라고 할 수 없다. 불교의 모든 수행은 계 · 정 · 혜 삼학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사마타(samatha, 止)와 위빠사나(vipassanā, 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따라서 지관겸수(止觀兼修)는 초기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수행의 지남침이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디가니까야의 《대반열반경(Mahāparinibbāna-sutta)》에 의하면, “이것이 계(戒)이다. 이것이 정(定)이다. 이것이 혜(慧)이다. 계(戒)가 실천되었을 때, 정(定)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정이 실천되었을 때, 혜(慧)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혜가 실천되었을 때, 마음은 번뇌, 즉 욕루(欲漏, kammāsava) · 유루(有漏, bhavāsavā) · 견루(見漏, diṭṭhāsavā) · 무명루(無明漏, avijāsavā)로부터 해탈하게 된다.”고 했다.
《법구경(Dhammapada)》에서도 “지혜 없는 자에게 선정이 없고, 선정이 없는 자에게 지혜가 없다. 선정과 지혜를 갖춘 사람은 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계(戒)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기초 없이는 어떠한 정신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계는 선정이나 지혜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지계를 다른 말로 ‘심신(心身)의 조정(調整)’이라고도 한다. ‘심신의 조정’ 없이는 정신을 통일 · 집중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선정이 필요한가? 통일 · 집중된 정신을 통해 올바른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선정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붓다 당시 외도(外道) 중에는 선정을 수행의 최후 목적으로 삼아 선정을 얻으면 그것으로 열반의 이상경(理想境)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붓다가 성도 전에 사사(師事)했던 알라라 깔라마(Āḷāra Kālā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āmaputta)라는 두 선인과 62견(見) 가운데 초선(初禪) 내지 제사선(第四禪)의 선정 그 자체를 열반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을 주정주의자(主定主義者) 혹은 수정주의자(修定主義者)라고 부른다. 붓다가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체험했지만, 그들의 곁을 떠났다. 이것은 붓다가 선정이나 수정주의를 버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선정 수행 자체를 그 목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곁을 떠났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붓다가 수정주의를 버린 것으로 잘못 해석하지만, 붓다는 결코 선정이나 수정(修定)을 버리지 않았다. 또한 붓다는 선정이 무익(無益)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선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초기경전은 수없이 많다.
선정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지혜를 얻기 위한 전제 조건임은 분명하다.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연기의 도리를 깨달은 것은 선정의 상태에서였다. 올바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얻고자 하는 지혜가 고도로 순수한 것일수록 선정도 극도로 순화되고 통일되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선정은 올바르고 뛰어난 반야의 지혜를 획득하는 데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미 얻은 지혜 · 경험을 최고도로 활용하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다. 가령 우리가 이미 뛰어난 지혜 · 경험을 얻었다고 해도, 정신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냉철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그 지혜 · 경험을 충분히 구사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팔정도가 없는 수행은 바른 수행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깨달았다는 자가 사성제와 연기법을 잘못 이해하거나 존재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의 삼특상(三特相)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그의 깨달음은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다. 사성제, 연기법, 삼법인에 벗어난 것이라면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깨달았다는 자가 아직도 탐 · 진 · 치 삼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바르게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
4)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열반증득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고, 현세에서 열반을 증득하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은 열반을 죽어서 얻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열반은 살아 있는 동안 ‘지금 여기서’ 획득하는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는 것, 즉 생천(生天)을 이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다. 이것을 현법열반(現法涅槃, diṭṭha-dhamma-nibbāna)이라고 한다. 현법열반은 죽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가진 상태에서 무지와 탐욕을 벗어나 해탈하기만 하면 곧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열반의 빨리어 표기인 ‘nibbāna’는 산스크리트어 ‘nirvāṇa’에서 유래한 것이다. nirvāṇa는 nir-√vā(to blow)에서 파생된 중성명사로 ‘불어서 끄다’ ‘불어서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 상윳따니까야(SN38:1)에서는 “벗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을 열반이라고 한다.” 잡아함 권18 《제490경》에서도 “열반이란 탐욕이 영원히 다하고, 성냄이 영원히 다하며, 어리석음이 영원히 다하고, 일체의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초기경전에서는 탐 · 진 · 치 삼독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또한 상윳따니까야(SN12:16)에 “비구여, 만일 늙음과 죽음을 싫어하여 떠나고, 소멸하여 취착(取著) 없이 해탈하면 그를 현법열반(現法涅槃)을 실현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고 했다. 이처럼 초기경전에 나타난 현법열반은 탐 · 진 · 치의 삼독 혹은 음욕[婬] · 성냄[怒] · 어리석음[癡]의 삼독을 제거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이와 같이 열반이란 이 세상에서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기본적 입장이다. 이를테면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그는 열반에 도달했다고 묘사되었다. 초기경전에서는 “현세에서 열반을 얻는다(pāpuṇāti diṭṭhe va dhamme nibbānaṃ).”고 되어 있다. 또한 열반은 “현세에서 당장 볼 수 있는 것”(sandiṭṭhika)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열반은 현세에 관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원래 초기불교에는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라는 관념이 없었다. 열반은 현세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4.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즉 아라한의 경지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구경각(究竟覺)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깨달음의 개념이나 정의가 전혀 다르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오직 자신의 견해만 옳고 다른 사람의 견해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불교사상 전체를 이해하는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불교는 단일한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교설은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모든 불교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불교사상사나 불교교리발달사 또는 경전성립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현법열반(現法涅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현응 스님의 기조발제문은 논리정연하지는 않지만, ‘불교의 핵심은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다’고 강조한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불교의 핵심은 보리(bo-dhi, 깨달음)와 살타(sattva, 역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응 스님의 불교관은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지혜와 자비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이런 의미에서 현응 스님은 한국의 많은 승려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깨달음’에 함몰되어 있는 것을 지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현응 스님은 ‘지금 여기서’ 대승의 보살로서 보리살타(菩提薩埵)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급선무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마성 / 팔리문헌연구소장.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 스리랑카팔리불교대학교 불교사회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철학석사(M.Phil.), 동방대학원대학교에서 〈삼법인설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마음비움에 대한 사색》 등이 있으며,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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