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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治의 결과가 이런 것인가

실론섬 2017. 3. 1. 12:15

法治의 결과가 이런 것인가


政治는 자신의 책임을 법치에 내던졌다
삼일절 도심 광장은 법치 의존이 만든
두 쪽 난 나라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낼 것이다

선우정 논설위원
선우정 논설위원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 정치와 법치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대통령 진퇴 문제를 정치적 타협 노력 없이 이렇게 내동댕이치듯 헌법재판소에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법치는 정치적 난관을 해결해주는 특효약일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법치(法治)'만큼 강력한 주장과 원칙이 없다. 이 원칙을 내세워 대통령 탄핵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때 무언가 의심스러우면서도 마땅한 반론을 찾지 못했다. '법대로 하자'는데.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도서관에 갈 때마다 법에 관한 책을 뒤져봤다. 법조인을 만나면 질문했다. 비전공자로서 난수표 같은 법 논리가 어려웠지만 몇 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정치와 법치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공정한 법치는 공정한 정치에서 나온다는 것, 실패한 정치는 실패한 법치를 부른다는 것이다. 눈을 가린 법의 여신처럼 정치로부터 초연한 법치가 세상의 혼돈을 말끔히 정리한다는 믿음을 '탐미적 법치' '우매한 법치'라고 표현한 학자도 있었다. 카를 슈미트의 명언대로 법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법치는 언제나 사회를 안정시킬까. 대통령의 진퇴를 법치에 내맡긴 후 실제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주말 광장에 나가면 답을 알 수 있다. 오늘 삼일절 도심 광장은 법치가 만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낼 것이다. 분노, 분열, 증오…. 요즘 "법대로 하자"던 사람들이야말로 헌재의 탄핵 심판 후 사회 혼란을 걱정한다. 분노, 분열, 증오가 폭력으로 폭발할까 염려한다. 탄핵이든 아니든 혼란이 눈에 보인다. 법대로 하면 해결될 것이라더니 왜 세상은 더 암울할까. 실패한 정치는 정말 실패한 법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태가 여기에 오기까지 몇 차례 정치적 타협의 기회가 있었다. 의미가 있었던 것은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포함한 모든 것을 국회의 합의에 맡기겠다고 한 3차 대국민 담화였다. 정치권 원로들이 '4월 퇴진, 6월 대선' 방안을 제시한 때라 마음만 먹으면 타협할 수 있었다. 물론 타협에 성공했어도 한동안 혼란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라를 두 쪽 내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제안을 야당은 바로 걷어찼다. 결정권을 쥐고 있던 여당의 비박(非朴) 세력은 촛불 눈치를 보다가 야당에 붙었다. 요즘은 태극기 눈치까지 보는지 유력 당직자가 정치적 해법을 주장하면서 탄핵 전 대통령 하야론을 제기한다. 이들이 민심을 못 얻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시 정치권에서 나온 대통령 음모론은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풍토에서 여야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걸 대통령이 알고 미끼를 던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덫'이라는 말도 나왔다. 자신의 무능과 나태를 당연시하면서 남을 손가락질하는 이런 정치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인 2월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찬성(왼쪽)과 탄핵반대(오른쪽)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각각 집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질문을 해본다. 우리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한 사람당 몇 억원씩 들여 국회의원 300명을 왜 먹여 살리나. 우리 사회엔 정치적 해법을 불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타협을 흥정과 협잡 정도로 폄하하기도 한다. 당리(黨利)만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지만 이런 시각이 우리 정치를 더욱 저질로 만든다. 저질 평가를 받을수록 정치인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부끄럼 없이 남에게 전가한다. 그럴수록 정치적 사안을 떠안는 법치의 부담은 늘어난다. 이 악순환이 지금 우리나라를 둘로 쪼개고 "아스팔트가 피와 눈물로 덮인다"는 극한투쟁까지 예고하는 것이다.

법치는 근대국가의 필수 조건이다.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의식이 없으면 법치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법질서가 완성되고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 정치의 힘이다. 따라서 법치는 정치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 책에서 배운 학자들의 이런 탁견을 우리 현실에서 깨닫는다. 탄핵 인용과 기각의 시비를 묻는 것이 아니다. 절차의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이 정도 시간에 결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우리 법치는 타협을 거부하고 탄핵으로 질주한 정치와 얼마나 다른가.

얼마 전 법조인 9명이 신문 광고란을 통해 '재판관 전원 참여의 헌법 정신을 준수해 달라'고 요구한 일이 있다. 역사적 탄핵 일정을 재판관 퇴임 일정에 맞추는 졸속을 피해달라는 요청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요청엔 수긍이 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치다. 누구도 지금 우리 정치가 재판관 2명의 후임 인선에 합의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왜곡된 정치가 왜곡된 법치를 낳고 결국 불복과 충돌의 불행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다. 정치는 자신의 무능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대권(大權)의 꽃가마를 타고 '피와 눈물의 아스팔트' 위를 행진하려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8/20170228036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