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교리 및 수행

고대인도 전적에서 선정의 기원 문제/조준호

실론섬 2023. 3. 29. 09:00

「인도철학」 제66집(2022.12), 37~67쪽
고대인도 전적에서 선정의 기원 문제

(본 논문은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과제번호 2021S1A5B5A16077556) 

조준호/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문화연구원 초빙교수. yathabhuta@hanmail.net

 

I. 들어가는 말. 

II.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바라문교 수행자설 검증. 

III.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니간타 수행자설 논증. 

IV. 자이나교 선정 사상과 석가모니 붓다
V. 성도 이전의 석가모니 붓다의 6년 고행. 

VI. 마치는 말. 

 

[요약문]

사띠(sati)와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는 선정의 가장 핵심적인 전문용어
이다. 본고는 사띠와 사마타 위빠사나의 기원을 밝힌다. 성도 이전에 붓다
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로부터 선정 지도를 받았다. 이로써 사
띠와 사마타 위빠사나와 관련된 불교 선정의 기원은 외부 기원설로 제기되
어 왔다. 학계는 그들이 바라문교 수행자로서 바라문교의 선정 사상을 성도
이전의 붓다에게 사사한 것처럼 기술해 왔다. 

하지만 본고는 결정적으로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가 바라문
교 수행자가 아니라 니간타 수행자였음을 밝힌다. 이 점을 초기불교의 부파
전적이나 초기 자이나경전에서도 증명한다. 더 나아가 그들의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의 경지도 니간타 자이나교와 관련성이 나타난다. 나아가 본
고는 불교의 선정수행의 기본인 사선(四禪)부터 니간타 자이나교에서 기원
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석가모니 붓다의 6년 고행이라는
행적 구성과도 부합된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바라문교와 사문종교를 각각
전변설과 적취설로 대별시킨 뒤 수정주의와 고행주의로 구분하는 것도 재
고되어야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앞으로 사띠(sati)에 바탕한 사마타 위빠
사나를 새롭게 구명해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I. 들어가는 말

사띠와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 이 세 가지 말은 선정 수행의
가장 핵심적인 전문용어로 사용된다. 고대 인도 전적에서 사띠와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의 기원은 무엇일까?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띠와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는 명상이나 심리치료 등과 관련
하여 가장 중요한 용어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까마부경
(Kāmabhu sutta)」 등의 초기경전은 선(禪: jhāna)과 정(定:
samādhi) 그리고 사마타 위빠사나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
한다.1) 이 경은 상수멸정(想受滅定)을 시설하면서 상수멸의 증득
에는 사마타 위빠사나라는 두 가지 법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짓는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점차적인 선정 과정에
서 신구의(身口意) 행(行)의 순서가 구차제정(九次第定)의 마지막인
상수멸정과 함께 설해져 있다. 

1) SN IV, pp. 293-295 ; MN I, pp. 301-302 등에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상수멸정은 색계4선과 무색계4선 다음의 아홉 번째 단계로 열
반과 직결된 선정의 정점이다. 이 때문에 삼행의 지멸 순서에는
이미 4선 등이 함축되어 설해지고 있다. 또한 사띠(sati)는 선정과
사마타와 위빠사나 모두에 공통적인 선지(禪支)이다. 이처럼 구차
제정은 사띠와 선정 그리고 사마타와 위빠사나와 같은 모든 선정
개념과 수행체계를 함축하고 있다. 구차제정은 불교 선정론과 수
행론의 완결판인 것이다. 이렇게 본고의 주제인 사띠와 사마타 위
빠사나의 기원 문제는 바로 불교선정론의 기원을 밝히는 문제임
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띠와 사마타 위빠사나는 가장 큰 불교의

선정론인 구차제정의 내용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구차제정의 상위 두 단계는 알라라 깔라마(Ālā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āmaputta)와 관련하여 나타
난다. 즉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인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
이 그것으로 성도 이전의 붓다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
따로부터 수습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띠와 사마타 위빠사나
와 관련한 불교 선정의 기원은 외부 기원설로 이 두 스승과 관련
하여 제기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이 두 스승이 언급되는 경전의
대부분에서도 붓다는 그들 또한 사띠를 포함한 오근(五根)과 오력
(五力)을 갖추고 있었음을 설하고 있다. 또한 오근과 오력은 내용
적으로 사띠,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띠와 사마타 위빠사나와 같은 불교선정론은 외부
기원인가? 이와 관련한 논의점은 실로 방대한 여러 문제와 관련하
여 있다. 하지만 본고는 먼저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가 ‘니간타 자이나교’와 관련하고 있음을
밝히는 정도로 한정하려한다. 여기서 정확히는 그들이 마하비라가
속한 니간타 종교 전통이 아닌 다른 니간타 파일 가능성도 있다.2)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니간타 종교는 현존하는
자이나교 문헌을 통해서만 살펴볼 수 있다. 이는 현재까지 그들을
바라문교와 연결지어왔던 점을 재고하게끔 한다. 결국 알라라 깔
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가 니간타 전
통에 연원함을 밝히는 것은 사띠와 사마타 위빠사나와 관련한 불
교 선정론을 새롭게 연구할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2) 니간타는 석가모니 붓다와의 동시대 인물인 마하비라의 자이나교보다도 더
    넓은 수행집단의 전통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마하비라의 자이나교는
    니간타의 여러 파 가운데 하나였음을 의미한다. 참고, 김미숙(2009).

 

II.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바라문교
    수행자설 검증

알라라 깔라마(Ālā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āmaputta)는 몇 몇 빠알리 경전에 나타난다.3) 마찬가지로 이에
상응하는 한역 아함경전에도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나타난다. 그
런데 인도학과 불교학을 포함한 세계학계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
다까 라마뿟따를 바라문교 선정수행자로 보고 있다. 예를 들면,

동국대의 「불교학 개론」에서는 이 두 수행자를 정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명한 바라문 스승”이라고 하고 있다.4) 이는 저명한 불
교학자인 깔루빠하나(D. J. Kalupahana)의 저서에서도 분명하게
그들을 모두 우빠니샤드 철학전통의 대표자로 기술하고 있다.5)
더 나아가 그는 붓다의 선정 수행은 이러한 두 바라문교의 스승으
로부터 전수 받은 것이라 한다.6) 여기서 그는 이러한 경전 근거로
「아리야빠리예사나경(Ariyapariyesanā sutta)」을 제시하고 있다.7)

3) Vin I, p. 7 ; MN I, pp. 163-5, 240 ; II, pp. 94, 212 ; SN IV, pp. 337-339
    등 ; 또한 Ālāra Kalama는 산스끄리뜨로 Arāda-Kālāma, 그리고 Uddaka
    Rāmaputta는 Udraka Rāmaputta로 나타난다. 또한 한역에서 이 두 스승은
    阿羅羅伽羅摩, 鬱頭藍弗, 優陀羅羅摩子 등으로 옮겨졌다. 

4) 교양교재편찬위원회, 「불교학 개론」(1992) p. 48.
5) Kalupahana(1992) p. 24.
6) Kalupahana(1992) p. 35.
7) MNI, pp. 163-166.

 

그렇지만 이 경전을 포함한 어떠한 초기경전에서도 그들이 바
라문이거나 바라문교와 관련한 스승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또한
두 스승은 바라문교의 우빠니샤드 수행자로까지 보려하지만 아직

까지 그들의 행법이 직접적으로 우빠니샤드 사상과 관련해 있음
도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했다. 이처럼 현재 국내외에서 대체로 알
라라 깔라마와 웃다카 라마뿟따는 바라문교 선정수행자로 본다. 

이에 반해 논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두 스승이 바라문교와 관
련한 어떠한 근거도 찾아 볼 수 없음을 말해왔다.8) 하지만 불교
선정의 기원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이 두 스승을 또다시 바라문교
와 관련시키고 있다. 알렉산더 윈(Alexander Wynne)의 The
Origin of Buddhist Meditation이 그것이다.9) 이는 정확히 본 논자
의 본 연구 주제와 일치한다. 이 역작은 현재 우리말 번역도 이루
어졌다.10) 알렉산더 윈의 연구는 현재까지 불교 선정의 기원에 관
한 가장 집중적이며 전문적인 연구로 평가할 수 있다. 

8) 조준호(2000) pp. 466-469 ; 조준호(2005) pp. 204-206.
9) Wynne(2007).
10) 알렉산더 윈(박대용 역, 2021).

 

그런데 그는 그의 저서에서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를 논술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는 이 두 수행자에 관한 거
의 모든 불교 자료를 취합하여 분석한 소결로 그들은 “역사적 실
존인물”임을 알 수 있고 마찬가지로 성도 이전의 붓다가 그들로부
터 지도를 받았을 것으로 본다.11)

11) Wynne(2007) p. 26.


그리하여 이후 논술은 두 스승의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의
사상적 기원이 모두 바라문교의 기원을 가지는 것으로 연구를 전
개시키고 있다. 그는 「따잇띠리야 우빠니샤드(Taittirīya Upaniṣa-
d)」 2. 2와 「마하바라따(Mahābharata)」12. 195에서 보이는 우주생
성론으로 우주는 자아 → 허공 → 바람 → 불 → 불 → 물 → 땅과
「마하바라따」 22. 224의 브라흐만 → 영혼 → 허공 → 바람 → 불
→ 물 → 땅의 순서로 생성론을 불교선정론에 적용한다.12) 이러한

우주생성론이 바로 불교 선정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12) Wynne(2007) p. 36.

 

그는 “불교의 요소명상의 항목은 이런 류의 우주론을 반영한 듯
하다. 불교의 명상대상으로서 필수적 요소 항목인 ‘땅 → 물 → 불
→ 바람 → 허공 → 의식’은 「마하바라따」 22. 224에서 말한 우주
생성론을 재배열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라고 주장한다.13) 그
는 이를 요소명상(element meditation)이라고 이름하며 불교경전
에서 볼 수 있는 땅 → 물 → 불 → 바람 → 허공 → 의식 → 무소
유/비상비비상으로 전개되는 명상을 바라문교 전통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무소유와 비상비비상은 땅 → 물 → 불 → 바람 → 허공 → 의식
이후에 전개되기 때문에 그들은 바라문교 수행자일 것이라는 것
이다.14) 그렇기 때문에 불교 선정의 기원이 바라문교로부터 기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 그의 논술은 이러한 결론을 반복적으
로 부연하는 설명으로 초기불교의 선정을 바라문교 전통의 기원
에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13) Wynne(2007) p. 36.
14) Wynne(2007) p. 66.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문제는 그가 근거로 삼는 「마하바라따」
와 「따잇띠리야 우파니샤드」의 전거는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 문헌의 성립이 불교 흥기 이전에 존재했다고 하는
보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불교 성립 이전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요소명상의 근간은 이미 니간타 자이나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15) 기본 요소가 되는 4가지 mahābhūta는 업물
질과 관련하여 초기 자이나교에서부터 이미 수행의 대상이었다. 

자이나교는 이원론의 입장에서 이러한 지수화풍 네 가지에도 영

혼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사대 요소명상 이후에 전개
되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무소유와 비상비비상처
를 불교 흥기 이후의 바라문교 전적에서에는 찾아보기는 어렵다
는 것이다. 불교 흥기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라문교에서는
무소유와 비상비비상을 포함한 선정사상이나 선정체계는 나타나
지 않는다. 이유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는 바라문교
수행자가 아닌 니간타 자이나 수행자였기 때문이다.

15) Uttarādhyayana 10장 4-9 ; 36장 73-126 등. 자이나교도 이러한 4대를
     바탕으로 한 전문 명상으로 삔다스타(Piṇḍastha) 요소명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후대에 정립된 요소명상에 관해서는 양영순(2019) pp. 179-187 참조.

 

III.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니간타 수행자설
     논증

아직까지 빠알리 경전이나 한역 아함에서 알라라 깔라마와 웃
다까 라마뿟따가 모두 니간타였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경우는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매우 놀랍게도 그들이 모두 니간
타라고 하는 전거는 「마하바스뚜(Mahāvastu)」이다. 

 

「마하바스뚜」는 초기불교의 부파 가운데 대중부 소속의 출세간
부(出世間部: Lokottaravāda)에 속한 전적이다. 「마하바스뚜」는 스
스로 출세간부의 율장이라고 천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 전
승되는 빠알리경전이나 한역 아함 등이 대부분 상좌부계인데 반
해 「마하바스뚜」는 초기불교의 대중부 소속의 소전이라는 희귀성
과 중요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마하바스뚜」는 언어나 부파 등
여러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로서 특히 고대 인도불교학 연구에
서 대중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전적이다. 또한 고대 인도의
수많은 오래된 이야기들이 잘 보존되어 전승되고 있다는 것으로

도 유명하다. 즉 「마하바스뚜」는 빠알리 상좌부의 「숫따니빠따
(Sutta Nipāta)」, 「디가니까야(Dīgha Nikāya)」와 「맛지마니까야
(Majjhima Nikāya)」등과 비슷한 경전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16)

16) Law, Bimala Churn(1978) ; 「마하바스뚜」의 언어와 내용에 따른 성립사에
     관한 논의는 Rahula, Bhikkhu Telwatte(1978)과 Jinananda B.(1957)를 참조 ;

    「마하바스뚜」는 불교혼성범어(佛敎混成梵語, Buddhist Hybrid Sanskrit)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래된 형태를 간직하고 있으나 한역이나 티벳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하바스뚜」에서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
마뿟따는 다름 아닌 니간타 수행자로 특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인도학계와 불교학계는 누구도 이 점을 특별히 주목하
지 못했다.17) 「마하바스뚜」에서 그들은 모두 니간타 스승으로 니
간타 제자(jinaśravaka)들을 지도한 것으로 나타난다. 

17) The Mahāvastu를 영역한 Jones(1952)은 jinaśravaka의 jina가 Buddhist
     Hybrid Sanskrit의 용례에서 Jain nirgrantha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는
     간단한 각주에 그치고 있다. p. 114 n. 8 참조. 

 

먼저 알라라 깔라마는 베살리에 머물며 대중으로부터 크게 존
경을 받고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300명의 니간타 제자가 있었
다고 한다. 또한 마찬가지로 다른 초기불교경전처럼 그는 무소유
처를 지도한 것으로 나타난다.18) 이어서 웃다까 라마뿟따는 라자
가하에 머물며 대중으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고 신앙의 대상이 되
었으며 700명의 니간타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또한 마찬가지
로 다른 초기불교경전처럼 그는 비상비비상처를 지도한 것으로
나타난다.19) 「마하바스뚜」는 고대인도 불교에 대한 오래된 요소

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불교 경전의 옛 원형
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로 보면 기존 학계가
추정하는 바와는 달리 그들은 바라문계가 아닌 니간타 수행자였
음이 확실하다. 나아가 웃다까 라마뿟따의 비상비비상처가 최상의
경지로 통했음은 불교에서도 순서상 무소유처보다 위에 비상비비
상처를 배치시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웃다까 라마뿟따
는 자이나교 전적인 「이시바시얌(Isibhāsiyāiṁ)」 23장에서도 또한
라마뿟다(Rāmaputta)로 나타난다.20)

18) Mv II, p. 154: "tena khalu punaḥ samayena Vaiśālyāṃ nagaryāṃ Ārāḍo
     Kālāmo prativasati trayāṇāṃ śrāvakaśatānāṃ satkṛto gurukṛto mānito
     pūjito arcito. so Jinaśrāvakāṇām āśaṃkitavyasahavratāyai dharmaṃ
     deśayati."
19) Mv II, p. 155-56: "tena khalu puna samayena Rājagṛhe Udrako Rāma- putro

     prativasati saptānāṃ śrāvakaśatānāṃ satkṛto gurukṛto mānito
     pūjito. so Jinaśrāvakānāṃ naivasaṃjñānā-saṃjñāyatanasahavratāyai
     dharmaṃ deśayati."

20) Isibhās p. 44: "duve maraņā assiṃ loe evam āhijjanti, taṃ-jahā : su- ha-mataṃ, 

     c' eva duha-mataṃ c'eva. Rāmaputteņa arahatā isiņā buitaṃ. ... ... evam se

     siddhe  buddhe ... ņo puņar-avi icc-atthaṃ havvam āgacchati tti bemi."


「이시바시얌」은 자이나교의 최고층 성전으로서, 불교의 「숫따
니빠따」보다도 오래된 것으로 본다.21) 그 내용은 자이나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파의 이름난 스승의 가르침도 포함되어있다. 총 45
인의 스승이 압축적으로 소개되는데, 우빠니샤드 철학자 야즈냐발
끼야(Yājñavalkya)나 불교의 사리불(Śāriputra) 등도 찾아볼 수 있
다. 그들은 각각 12장 Jannavakka 와 38장 Sātiputta와 같은 쁘라
끄리뜨 어형으로 나타난다.

21) 학자들에 따라 「이시바시얌」은 초기 자이나교 문헌들인
    「아야랑가경(Āyāraṁga Sutta)」, 「수야가당가경(Sūyagaḍaṁga Sutta)」 그리고
    「웃따라자야나경(Uttarajjhayaṇa)」보다도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것은
    「이시바시얌」에 사용된 언어, 문체 그리고 내용에 따른 것이다.

 

「이시바시얌」에서 라마뿟다는 불교의 「마하바스뚜」에서 니간타
라 한 것과 같이 내용적으로 니간타 자이나교의 사상과 수행을 보
여준다.22) 그는 먼저 두 종류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하나는 행복
한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불행한 죽음이다. 행복한 죽음은 선정속
의 죽음이며, 불행한 죽음은 선정이 없는 죽음이라 한다. 여기서
행복한 죽음이란 자이나교의 삼매사(三昧死) 또는 단식사(斷食死)

로 알려진 살레카나(sallekhanā)를 말한다.23) 지금도 자이나교의
단식사는 자이나 수행자나 재가자에게 매우 성스러운 종교적 죽
음으로 추구되며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22) Isibhas p.44.

23) 이와 관해서는 Isibhās p. 111에 Schubring의 주석적 설명을 참조. 마찬가지
     로 양영순(2016) pp. 219-258도 참고. 

 

다시 「이시바시얌」에서 라마뿟따는 속박으로부터 해탈하려면
자이나 삼보(三寶: 正見, 正行, 正智)를 닦아야 한다며 삼보의 실천
을 구체적으로 설한다. 여기서 그는 더 나아가 자이나교의 전형적
인 수행인 업물질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고행을 말하고 있다. 그리
하여 그는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최상의 경지를 성취하였으므로
병과 고통이 없는 영원히 행복한 존재로서 영원한 시간동안 존재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두 종류의 순수영
혼 성취자(kevalī)를 말한다. 즉 아직 지상에 사는 성취자를 bha- 

vattha kevalī라고 하고, 죽은 후 영계천당(靈界天堂)에 영원히 안
주하는 순수영혼의 siddha kevalī로 구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불
교의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에 비견할 수 있는 지위의 경지이다. 

 

마지막으로 「이시바시얌」은 라마뿟따를 청정한 존재이며 윤회
에서 완전히 벗어난 깨달은 존재이자 독각불(獨覺佛)이라고까지
한다. 독각불은 이후 불교와 마하비라의 자이나교에도 영향을 미
친 니간타 전통의 붓다 종류일 것이다. 자이나교의 초기경전에서
전하는 라마뿟따는 윤회하지 않는 완전한 최고의 경지를 성취하
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초기불교경전에서도 그가 스스로 일체지자
이며 일체의 승리자라고 주장하였다는 것과 일치하여 나타난다.24)
그래서일까, 불교에서 그는 완전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면
서도 두 스승의 죽음 이후에 어느 천계에 재생했는지에 대한 언급
은 하지 않는다. 이는 흔히 붓다의 생애와 관련한 중요한 인물들
의 사후 재생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이로

써 초기 불교와 초기 자이나교의 전적 모두에서 웃다까 라마뿟따
가 니간타에 속했음이 증명된다. 이에 반해 불교 흥기 즈음하는
두 인물과 관련한 이름이나 관련한 행법이 바라문교 전적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대조적이다. 이로써 불교 선정의
기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이야기되는 두 수행자는 모
두 바라문교가 아닌 자이나교 수행자였음을 알 수 있다. 

24) SN IV 83ff.

 

그렇다면 여기서 불교의 선정사상의 기원과 관련하여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도사상사에서 불교의 선
정은 바라문교에서 찾을 있는 것처럼 설명한다. 이와 함께 바라문
교는 전변설(轉變說)의 수정주의(修定主義)로, 사문종교는 적취설
(積聚說)의 고행주의 구도로 대별되곤 한다. 이러한 대별은 일찍이
일본학계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25) 하지만 이는 이제까
지 논술에서 알 수 있듯이 재고되어야 할 관점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현재까지도 일본과 한국학계에서는 바라문교를 전변설(轉
變說)의 수정주의(修定主義)로, 그리고 사문종교는 적취설(積聚說)
의 고행주의라는 구도를 정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전변설과 적
취설이라는 세계관 구도로 실천의 문제를 잘못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는 바람에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
따도 모두 바라문교의 수정주의로 추정되어 기술된다. 그리고 붓
다가 그들의 수행법을 버린 것은 수정주의를 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국대 출간의 「불교학개론」와
「불교사상의 이해」 그리고 「불교문화사」 등의 기술이 모두 그러
하다.26) 이는 다시 전문학술 논문은 물론 「백일법문」27) 등을 위시

하여 불교 강의와 저술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어 오고 있다. 

이처럼 바라문교를 전변설의 수정주의로, 그리고 사문종교를 적취
설의 고행주의로 보는 현재까지의 논의구조는 전반적으로 재고가
되어야 한다. 확실히 이러한 구도는 설득력을 가지는 경전적 그리
고 교리적 근거도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본고와 함께 니간타와 같
은 사문종교에서 선정수행의 기원을 찾는 새로운 논의 전개로 시
작되어야 한다. 

25) 增永靈鳳(1948) pp. 80-85 ; 增谷文雄(목정배 역)(1984) pp. 247-249 ; 高崎直
     道 등(권오민 역, (2002) pp. 38-39 등. 

26) 동국대 교양교재편찬위원회(1992) pp. 12-13, 27-33 ;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불교교재편찬위원회(1999) pp. 49, 57 ; 교양교재편찬위원회, 「불교문화사」
     (2001) pp. 26-27.
27) 퇴옹 성철(1987) pp. 72-74.

 

현재의 자이나교 연구는 명백하게 고행이라는 수행체계에서
선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최후의 결정적인 경지는 반드시 선정을
통해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28) 이 때문에 자이나교의 선정사
상을 깊이 따져보면 원래의 자이나 선정사상은 현재의 자이나교
경전에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29) 현재까
지 논자의 연구진행으로 판단하건데, 자이나교 경전의 선정 사상
은 자이나 경전의 복잡한 유통사만큼이나 전승과정에서 원래와
달리 축소되거나 유실되었을 것으로 본다.30) 사실 자이나교 경전
전승에 있어 분규가 있었음은 이미 초기불교 경전에서도 큰 사건
으로 전하고 있으며, 자이나교 자체에서도 또한 이를 인정한다. 

초기불교의 「빠싸디까경(Pāsādika sutta)」를 보더라도 불교 교단
은 가장 가까이에서 자이나교 교단 상황과 정보를 수시로 접하고
있었다. 마하비라가 임종한 후 니간타 교단이 분열하여 분규가 계
속되는 상황에 처해 있음도 말한다.31)

28) Dundas(1992) p. 30 ; 양영순(2019) p. 286 ; 최지연(2005) p. 49 ; 하지만 김
     미숙(2014, p. 182)의 경우는 “특히 외적 고행이 내적고행보다 더 효과적이며
     해탈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는 내적고행에 해당하는 선정이 아닌 외적고행이 해탈에 더 효과적이고 도
     움이 된다는 이해를 보여준다. 

29) 이와 관련한 4가지 가능한 주장은 양영순(2019) p. 49에 잘 정리되어 있다. 

30) 이에 대한 불교와 관련한 후술은 다음 연구로 미룬다. 관련한 문제는 Paul
     Dundas(1992) pp. 143-146와 존 니콜 파커(유성욱 역, 2010)을 통해 자이나
     교의 경전 성립과 유통의 역사를 알 수 있다.

31) DN III, pp. 117-119.

 

현재까지 논자의 바라문교 전적에 대한 검토를 통해 확인된 점
은 불교 흥기 즈음하여 성립했을 어떠한 바라문교 전적에서 불교
에 상응하는 수준의 선정 사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겨우
바라문교에서는 후대 6파 철학의 하나인 요가학파의 「요가수트라
」에 이르러서야 불교와 자이나교에 근접하는 수준의 선정 사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요가수트라」는 불교보다도 훨씬 후대에 성립했
으며 오히려 불교의 영향이 적지 않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더
군다나 「요가수트라」는 간략한 게송으로 서술되어 있어 자세하고
구체적인 선정사상의 이해가 어렵다. 현재 학자들 가운데는 알라
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와 관련한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
처정이 불교의 구차제정의 체계로 후세에 배치된 것으로 추정한
다.32) 하지만 이 두 선정 단계는 니간타로부터 차용 후 불교적으
로 지양한 것은 맞지만 차용의 시점이 불멸 이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기불교 선정사상을 보면 9차제정은
단계적인 인과조건 체계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의 체
계(교리 퍼즐)는 9차제정과 함께 전반적으로 상당한 일관성과 정
합성을 갖추고 있다. 9차제정은 여타의 다른 불교 사상과 촘촘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더 나아가 무소유처와 비비상처는 내용적으
로도 모두 자이나교의 유상론(有想論: saññāvāda)에 대응한 기원
을 갖는다. 구차제정에서 상(想: saññā)의 꼭대기라 하는 무소유처
와 비상비비상처는 궁극적인 경지와 가까워진 단계로 불교의 출
발점에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었음은 다음의 정황적 맥락에서도
알 수 있다. 

32) Hajime(1989) p. 77 ; Bronkhorst, Johannes(1993) pp. 91-92 ; 최지연(2007)
     pp. 1-27.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가 자이나 수행과 관련하고
있음은 이전의 연구에서 전혀 시사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

를 들면 알라라의 무소유처의 경우, 나카무라 하지메(中村 元)는
사무색정의 외부기원설을 주장하면서 초기 자이나 경전에서 무소
유처가 이상적인 경지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33)
하지만 그는 결론에서 이 두 스승이 어떠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는 알 수 없다며 니간타일 가능성을 언급할 수 없었다. 아마 종래
의 바라문교 수행자로 추정되었던 설을 뒤집는 것은 부담이 되었
을 것이다. 또한 요하네스 브롱코스트(Johannes Bronkhorst)는 불
교선정의 외부 기원설을 일찍이 제안한 선구자였다. 불교 흥기 전
후한 인도 종교의 고대 문헌에 해박한 그는 1986년에 이어 1993
년에 재출간한 저서에서도 불교선정의 자이나교의 영향을 비교적
으로 간략하게 피력하였다. 특히 그는 자이나경전에서도 공무변처
와 식무변처와 관련한 비슷한 개념이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불교
의 공무변처와 식무변처를 자이나 등의 외부 기원설로 보려는 가
설을 제시하였다.34) 더 나아가 그는 슈미타우젠(Schmithausen)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사마타와 위빠사나 등의 선정의 핵심 개념인
사띠(sati)마저도 자이나교로부터 유래할 가능성을 또한 아주 짤막
하게 던져주고 있다.35) 이러한 대목은 초기불교경전에서 붓다가
일찍이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를 진술할 때 그들 또한
사띠 등 오근, 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언급하는 것과도 일치한
다.

33) Hajime(1979) p. 272.
34) Bronkhorst(1993) p.87.
35) Bronkhorst(1993) p. 95.

 

다음으로 웃다카 라마뿟따의 비상비비상처가 구체적으로 불교
이외의 고대 인도종교 가운데 어느 종교에서 나타나는지는 문제
이다. 현재까지 논자는 오랜 추적에도 불구하고 바라문 전적에서
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신에 최근에 이르러서야 발터 슈브링(W-
alther Schubring)의 자이나 연구의 역작을 통해서 비상비비상처

가 자이나 성자인 kevalin의 경지임을 알게 되었다. 즉 불교의 비
상비비상처정의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는 자이나교에서 “kev-
alī의 경지로서 no-sannī-no-asannī(neither sasaññā nor asaññ-
ā)”로 나타난다는 것이다.36) 물론 발터 슈브링은 불교의 비상비비
상처와의 관련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자이나교에서 두 종류의 ke-
valī(순수영혼 성취자)는 bhavattha kevalī와 siddha kevalī인데 생
존해 있었던 웃다까 라마뿟따는 전자에 해당한 경지로 볼 수 있
다. 그래서인지 초기불교 경전에서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라마뿟
따는 스스로 수행의 완성자처럼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이로 보면
붓다는 당시 최고의 경지를 성취했다는 니간타 스승을 찾아 지도
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논자는 왜 그렇게 초기불교의 많
은 경전에서 니간타 자이나교와 관련하여 유상론(有想論: saññāv-
āda)이 분분하게 거론되는지를 결정적으로 알게 되었다. 예를 들
면, 초기경전인 「브라흐마잘라경(Brahmajāla Sutta)」과 「뽓타빠다
경(Poṭṭhapāda Sutta)」에서 유상론은 최대의 쟁점과 시설 주제로
각각 부각되어 있다. 그리고 끝내 불교는 자이나교의 유상론과 대
조적으로 상(想)의 지멸을 말하는 상수멸정(想受滅定)으로 결론짓
는다. 이로써 앞으로 불분명한 비상비비상처의 의미는 물론 초기
불교 선정 사상의 전반이 자이나교와 관련하여 제대로 구명될 수
있는 대목이 되는 것이다.37)

36) Schubring(1995) p. 154.
37) 관련 연구는 지면 관계 상 그리고 상론(想論)의 방대한 논의점으로 인해 후속
     연구에서 수행될 것이다.

 

IV. 자이나교 선정 사상과 석가모니 붓다

현재까지 학계는 불교 흥기 즈음하는 바라문교의 선정 사상을
제대로 추출도 하지 못하면서 불교선정의 기원을 바라문교로부터
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고에서 살펴 본 바처럼
바라문교보다는 자이나교 전적과 불교의 선정사상이 상당히 깊은
내연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앞으로의
교리적 실천적 퍼즐 맞추기 연구로서 불교의 기원은 물론 불교 선
정 성립의 배경까지 차츰 밝혀질 것이다. 세계 인도학계는 바라문
교나 불교만큼 자이나교의 연구가 진척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자
이나교 접근이 힘든 점도 있다. 그리고 자이나교와 관련한 불교
등과의 본격적인 비교 연구도 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는 본
고의 주제와 관련한 자이나교와 불교와의 교섭의 몇 가지 사례만
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붓다 당시의 니간타 또는 자이나의 선사상을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서의 경이 있다.38) 「니간타경(Nigaṇṭha sutta)」인
데 이 경은 자이나교 중흥조인 니간타 나따뿟따와 불교도 찟따 장
자와 선정에 관한 대론을 보여준다. 양측은 대중이 집결한 가운데
심사(尋伺: vitakkavicāra)의 지멸(止滅)에 관한 문제로 쟁론이 펼
쳐진다. 자이나교 4선과 불교 4선(四禪)은 모두 심사를 말하고 있
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초선과 제2선에서 유심유사(有尋有伺)와 무
심무사(無尋無伺)를 단계적으로 각각 설하는 반면에 자이나교의
제2선에서는 유심무사(有尋無伺)만을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니간타 나따뿟따는 이러한 차이에 대해 불교 측의 대론자에게 이
의를 제기한다. 그는 찟따에게 “당신 스승인 고타마는 무심무사의
삼매가 있어 심사를 지멸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당신은 믿는가?”하
고 묻는다. 이에 찟따는 자신의 선정 체험에 따라 “스승을 믿고
믿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심사가 지멸하는 무심무사가 있다”라고
답한다. 이에 나타뿟따는 모인 대중을 향해 “심사를 지멸할 수 있
다고 하는 것은 마치 그물로써 바람을 막고자하는 것과 같고 손바
닥으로 갠지스 강의 흐름을 막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이는 결
코 가능하지 않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38) SN IV, pp. 297-330.

 

논자는 현재까지 선정의 기원과 관련하여 학계에서 이 대목의
중요성을 주목한 연구는 찾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경전은 선정
의 기원을 풀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다고 본다. 결국
은 나따뿟따와 찟따는 자이나와 불교의 4선 이해의 같고 다른 점
을 사이좋게 확인하는 장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과
열된 쟁론으로 치닫다가 끝내 불미스럽게 자리를 파하는 장면으
로 마감한다. 이를 비교적으로 평가하는 논자는 현재까지 그도 그
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오랜 역사의 자이나교와 이제
시작하는 불교가 선(jhāna)과 정(samādhi) 그리고 심사(vitakkavi-
cāra)라는 같은 말을 가지고 대론을 했지만 서로가 뜻하는 바는
상당히 달랐을 때문으로 본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에는 자이나교
보다는 불교가 문제였다. 즉 자이나교는 이제까지 자신들이 설해
온 바를 그대로 시설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한 불교는 붓다에 의해 당시 니간타가 사용하
는 선(禪)과 정(定) 그리고 심사(尋伺) 등의 전문 수행 개념을 지양
하여 재정립하면서 같은 말에 대해 다른 의미로 해석하여 사용하
기 때문에 적절한 논의를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
다. 찌따는 스승인 붓다로부터 배운 4선의 새로운 이해를 가지고
당대의 자이나교의 최대 수장인 나따뿟따에 도전한 대론자였다.

서로는 당연히 엇갈린 쟁론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간략하게나마 양자의 개념 차이를 논의하자면, 자이나의
선(jhāna)은 원래 어원처럼 ‘사유’라는 의미의 말이며 자이나 4선
의 심(vitakka) 또한 원래 어원처럼 ‘전해 오는 자이나 가르침
(śruta)에 대한 사유’로서 지혜를 의미한다.39) 이는 자이나 4선 단
계에서 사(vicāra)의 지멸과 달리 심(vitakka)의 지멸은 설하고 있
지 않는 것을 통해서 증명된다. śruta는 4선의 단계에서도 일체지
(一切智)를 계발할 수 있는 바탕이다. 이처럼 자이나교는 기본적으
로 사유를 뜻하는 선(jhāna)과 그러한 4선의 내용으로 있는 심
(vitakka) 또한 같은 의미로서 소멸될 수 있는 법으로 보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불교는 당시의 선(禪)이라는 말을 채용하고
있지만 자이나교와 달리 사유를 넘어서는 의미로 사용하는 큰 차
이가 있다. 즉 불교는 제2선부터 사유를 넘는 무심무사(無尋無伺)
를 설하고 있다. 즉 나따뿟따는 사유를 뛰어 넘고 지멸할 수 있다
는 찟따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서로는 끝내 조정
할 수 없었던 것이다. 

39) śruta는 초기 자이나교경전인 Uttarādhyayana 23장 4에 나오는데 지혜
     구성의 요소로 말, 글, 몸짓 등과 관련한 지혜를 말한다. Tattvārtha
     sūtra(9장 45)에서도 vitarka는 śruta로 정의된다.

 

이처럼 자이나교는 불교 흥기 이전부터 이미 4선이 있었음은
초기 자이나교 경전에서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초기불교경전에
서도 ‘외도의 4선’은 나타난다. 하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외도의 4
선이 붓다 당시의 어느 종교집단을 의미하는지 특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라문교나 후대 힌두 종교전적에도 4선은 나타나지 않는
다. 이로 보면 초기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외도의 4선’은 바로 자이
나교의 4선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40) 초기 자이나교 경전은 불교
이전부터 이미 4가지 순선(純禪: śukla dhyāna)이 있었다.41) 자이

나교의 4선은 순수영혼을 성취한 독존자(kevalī)라는 성인의 경지
이다. 불교와 같이 4선이지만 자이나교의 제3선과 제4선은 내용적
으로 완전한 성인의 경지이다.42)

40) DN I, pp. 37-38 ; T I, 93bc.

41) Utt 19장 94-95, 29장 28, 30장 29, 31장 6.
42) 이점에서 양영순(2019, pp. 297, 274, 281)은 불교 4선 전체를 자이나의
     초선과 제2선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자이나교는 현세해탈(jivamukti)과 사후해탈(videhamukti) 가운
데 전자에 해당한다. 불교도 다른 경전에서 4선부터 9차제정을 모
두 현세열반로 설하고 있다.43) 하지만 자이나교와는 큰 차이가 있
다. 즉 4선에 드는 주체를 영혼으로 보느냐, 그렇게 보지 않느냐의
차이다. 자이나는 영혼으로 보고 불교는 그 영혼을 부정한다. 붓
다는 62견을 종합적으로 비판하는 가운데 현세열반론으로 외도 4
선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양자의 차이는 없게 보이는데 왜 붓
다는 비판하였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일견 붓다가 4선을 부
정하는 맥락으로도 오해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
면 붓다는 영혼이 있어 그 영혼이 초선에서 제4선까지 성취하는
것으로 보는 4선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본체론적인 영혼을 부
정하는 붓다의 입장에서 이는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앞서 기술한 것처럼 「니간타경」에서 니간타 나따뿟따와 불교도
찟따 장자와의 4선에 관한 대론에서도 증명된다. 불교가 자이나 4
선을 형식과 내용을 개변하여 불교의 세계관에 따른 새로운 선사
상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이나 4선의 흔적을 보여주는
몇 가지를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43) SN IV, p. 228 ; MN 58경, T II, 123c-124b.

첫째, 불교 4선은 자이나 4선처럼 점차적인 지멸 단계를 보여준
다는 것이다. 둘째, 자이나교와 마찬가지로 초선과 제2선에서 vi-
tarka와 vicāra를 말한다는 것이다. 셋째, 양자는 모두 제3선부터
를 성인(ariyā)의 경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 제4선을

모두 호흡지멸의 단계로 본다는 것이다. 다섯째, 자이나 4선을 순
수선(sukkajjhāṇa / skt. śukla dhyāna)이라 하는데 불교의 제4선
에서도 청정(pārisuddhi)이라는 용어와 함께 마치 전신을 하얀 천
으로 감싼 것처럼 깨끗하고 순수해진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다.44) 또한 자이나 4선의 제3선과 제4선은 인간을 초월한 법
(uttari-manussa-dhamma)이 강조되는데 앞에서 인용한 빠알리 「
니간타경」의 상응경전인 한역 「니건경」에서는 나따뿟따가 4선과
관련하여 과인법(過人法)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45)

44) DN I, p. 76 ; MN III, p. 99.
45) 잡아함의「尼犍經」(T 2, 152c).

 

이렇게 자이나의 4선은 그 골격과 내용에 있어 불교 4선에 상당
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불교 4선은 기존의 자이
나 4선을 바탕으로 하였다지만 내용적으로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
고 있다는 점이다.46) 여기서는 불교 4선의 기원이 바라문계가 아
니라 자이나 4선으로 특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고대 인도 선사상의 맹아는 바라문교
가 아닌 자이나교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이나교의 선정은 불교
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불교 선정의 기본인 4선 또한
그 씨앗이 이미 자이나의 4선에 있음을 엿볼 수 있다. 

46) 자이나 4선과 관련한 불교 4선의 기원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은 본고의
     후속 연구로 제출할 것이다. 

 

이에 반해 바라문교는 불교 흥기 즈음하여 자이나나 불교처럼 4
선과 같은 선정사상을 보여주지 않는다.47) 마찬가지로 바라문교
전적에서 vitarka는 dhyāna와 관련한 행법의 전문용어로도 사용
되지 않는다. 논자는 인도사상사에서 자이나교가 최초로 dhyāna

라는 말을 수행의 전문용어화 했다고 본다. 자이나교와 불교는 모
두 어떤 궁극의 경지를 목표로 단계적인 행법을 포괄하는 전문용
어로 dhyāna를 사용한다. 이러한 용례는 불교흥기 즈음의 바라문
계 전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47) 아주 드물게 Maitrī Upanisad 6.18에서 6지(支) 요가의 3번째로 언급되지만
     이 우빠니샤드의 성립연대는 자이나교나 불교보다도 훨씬 후대로 본다. 바라
     문교와 자이나교 그리고 불교의 선정 사상의 동이점에 관한 더 자세한 논의
     는 후속 연구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V. 성도 이전의 석가모니 붓다의 6년 고행

인도 아대륙의 동북부에는 오래 전부터 니간타 종교가 성행하
고 있었다. 현재 학계는 여러 이유에서 과거와 달리 자이나교가
불교와 동시대에 시작한 종교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정
한다. 이러한 집단은 바라문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지
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48) 초기불교경전만 보더라도 이제 시작
하는 불교가 주로 접촉하는 종교인은 바로 니간타 계통이다. 그만
큼 니간타 종교는 오래 전부터 넓은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음을 알
게 한다. 최소한 자이나교 전승에서 자이나 조사(tirthaṅkāra) 가
운데 23조 빠르슈바(Pārśva)는 붓다와 동시대의 마하비라보다 윗
시대의 인물이다. 처음 학계는 그를 가공의 신화적 인물로 보다가
여러 정황에서 차츰 역사적인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찍이 초
기불교 경전에 마하비라 이전의 자이나교 4개의 계율이 나오는 것
을 보고 헤르만 야코비(Hermann Jacobi)는 역사적인 인물로 의심
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에는 많은 학자들이 붓다나 마하비라보다
약 250년 전의 역사적인 실존 인물로 수용하고 있다.49) 이러한 아

대륙의 동북부 인도의 종교 대세에 따라 붓다의 출가도 자연스럽
게 니간타 대열에 합류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불교 경전
자체도 붓다는 니간타 자이나 수행자였음을 보여준다. 성도 전의
붓다는 동북부 인도 지역의 수행집단 가운데 주류였던 니간타 수
행집단에서 편력 수행하였다. 당시 니간타 가운데는 자이나교가
가장 유력한 수행집단이었다. 그래서 붓다는 자연스럽게 니간타의
갖은 종류의 고행을 두루 실천해 보았다. 이는 초기불교 경전에서
붓다의 고행체험의 세세한 기술로도 잘 나타나 있다. 

48) 조준호(2000) ; Bronkhorst(2007) ; Samuel(2008).
49) Glasenapp(1925) pp. 16, 23 ; Zimmer(1953) p. 183 ; Dundas (1992) pp.
     30–31 ; Radhakrishnan(1997) p. 169 ; Sangave(2001) p. 103.

 

자이나교는 고행을 할 수 밖에 없는 독특한 세계관 구조를 가졌
다. 이러한 세계관에 바탕한 극한의 고행은 여타의 많은 종교집단
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는 물론 바라문교도
예외가 아니다.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붓다는 자신의 고행 체험
을 적나라하게 제자들에게 술회하고 있다.50) 자이나교 등의 출가
자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나체 고행도 해 보았다. 자이
나 출가자의 계율처럼 여러 종류의 탁발의 금기사항을 그대로 따
랐으며, 받아야 할 음식, 받지 말아야 할 음식 그리고 하루 한 끼
에 일곱 집 이상을 탁발하지 않았으며, 식사횟수를 줄여 자이나
수행자처럼 단식사도 시도했으며, 수염과 머리카락을 뽑는 고행, 

앉지 않고 계속 서있는 고행 등의 다양한 행법도 해보았다고 한
다. 확실히 붓다는 갖가지 종류의 고행을 오랜 기간에 걸쳐 이수
했음이 분명하다. 빠알리 경전에서는 ‘다년간’으로 나온다.51) 상응
하는 한역의 여러 부파 소속의 아함에서는 구체적으로 ‘6년 고행’ 으로 

나타난다. 소속 불명의 「증일아함」은 2회에 걸쳐 6년 고행을
전하며,52) 법장부 소속의 「사분율」도 마찬가지이다.53) 아마 6년

고행은 다른 부파 소전에서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
도 전 붓다의 6년 고행은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두
스승에게 각각 3년간 지도를 받았다고 기술된 경우도 있다.54) 이
로 보면 붓다는 29세 출가 후 35세 성도하기까지 6년을 거의 니간
타의 고행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출가 후 붓다는 대부분을 니간타
고행을 했다는 것이다. 

50) MNI, pp. 77-79, 172 등. 51) MNI. p. 78.
52) T 2, 580c: “終不成無上正眞等正覺. 又無此二力者. 終不於優留毘處六年苦行. 

     亦復不能降伏魔怨. 成無上正眞之道. 坐於道場.” ; T 2, 671b: “是說. 此沙門顔

     色似終. 比丘當知. 我六年之中作此苦行. 不得上尊之法.”
53) T 22, 781a: "我等爲妻妾. 時菩薩卽於彼處六年苦行. 難爾猶不証增上聖智勝法."
54) 「불조강목」 권2(卍속장 46, 380a).

 

결국 붓다의 구도 이야기 구성에서 알라라와 웃따까로부터 지
도받았다는 이야기도 가공이 아니라, 이제는 역사적 사실일 가능
성이 크다. 사실 고대 불교인들에 있어 알라라와 웃따까가 동북부
사문 가운데 니간타였음은 특정하여 언급할 필요도 없어도 자연
스럽게 알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였을 것이다. 이로 보면 알라라
와 웃따까로부터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는 니간타 종교의 궁극
적 목표인 하늘 꼭대기의 영계천당(靈界天堂: siddhaśila)에 나는
고행의 과정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붓다의 구도 이야기 구성에
서 불전은 대체로 알라라와 웃따까 이후 고행을 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선정과 고행을 전적으로 다른 성격의 다
른 성격의 수행법처럼 따로 보려하였다. 하지만 6년 고행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알라라와 웃따까의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
처는 크게는 고행 단계에 있는 수행법이라는 사실이다. 초기 자이
나 경전에서는 외적 고행과 내적 고행의 구분하는데 선정은 내적
고행에 포함시키고 있다.55) 이러한 두 종류의 고행은 윤회로부터
해탈하게 된다고 한다. 불교경전에서도 성도한 붓다가 처음으로
다섯 비구를 찾았을 때 그들은 붓다에게 “고행으로도 인간의 상태
를 초월하지 못하지 않았는가”를 따져 묻는 장면이 나온다.56)

55) Utt 30장 29-37.

56) MNI, pp. 77-79.

 

왜냐하면 자이나교는 고행과 함께 자이나 4선의 제3선과 제4선
도 인간을 초월한 법이라 하기 때문이다. 즉 자이나교에서 선정은
고행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본다. 이처럼 성도 전 붓다는 니간타 고
행에 큰 비중을 두고 수행하였음을 알게 한다. 이는 붓다는 분명
6년 동안이나 니간타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결국 니간타 수행법
의 문제를 지적하며 극복과 지양으로서 새로운 불교 선정 체계를
정립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구차제정이다. 앞으로는 자이
나 기원의 선정사상이 불교에 어떻게 차용되어 새롭게 정립되었
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연구가 수행될 것이다.

 

VI. 마치는 말

성도 전 붓다가 선정 지도를 받았던 알라라와 웃따까는 가공의
인물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왔다. 또한 역사적 인물이라면 그들
은 바라문교 수행자로서 바라문교의 선정 사상을 붓다에게 사사
한 것처럼 기술해왔다. 이는 국내외를 막론하는 최근의 연구에서
도 그러하였다. 

 

이제까지 학계는 그들을 바라문교 출신으로 보았다. 또한 그들
과 관련한다는 불교의 사띠, 사마타, 위빠사나 등의 선정 사상도
바라문교로부터 찾으려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불교흥기 전후의 바
라문 전적에서 불교 선정사상에 상당하는, 그래서 불교에 영향을
미칠 만한 선정사상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불교
흥기 전후로 성립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바라문교의 대표적인 우

빠니샤드만 하더라도 불교의 선정사상과는 상당히 큰 간격이 있
다. 이 때문인지 현재까지 불교의 선정사상을 바라문 전적으로부
터 구해 양자 간의 사상적 이음새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선행 연
구의 결과는 없다. 그래서 고대인도사에서 불교 선정사상의 기원
은 풀기 어려운 난제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본고는 초기불교 부
파 소속의 「마하바스뚜」에서 알라라와 웃따까는 다름아닌 니간타
수행자였음을 찾아내었다. 이러한 결정적인 전거를 단서로 그들의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도 또한 니간타 자이나교 사상에 관련하
고 있음을 차츰 밝혀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선행연구자 발터 슈브링과 요하네스 브롱코스트 그리고 나카무라
하지메의 단편적인 언급과 시사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본고의 결론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는 바라문교 수행자가
아니다. 

둘째, 그들은 니간타 자이나 수행자였다. 이는 초기불교의 부파
전적이나 초기 자이나경전에서도 증명한다. 

셋째, 그들의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의 경지도 자이나교와 관
련이 있다. 

넷째, 불교의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의 앞뒤로 배치된 사선과
상수멸정은 자이나교의 수행론과 관련이 있다. 

다섯째, 인도사상사에서 선정수행의 기본인 사선(四禪)은 니간
타 자이나교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불교로 이어졌다. 

여섯째, 세계관과 실천론의 문제에 있어 바라문교와 사문종교를
각각 전변설과 적취설로 대별시킨 뒤 수정주의와 고행주의로 구
분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하다. 

일곱째, 자이나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원래 선정은 고행 속
에 포함되어 있다.

여덟째, 성도 이전의 석가모니 붓다의 6년 고행은 불교선정의
니간타 기원과 관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홉째, 현재까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불교선정의 기
본체계인 사띠(sati)에 바탕한 사마타 위빠사나는 새롭게 구명해
나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음의 언급을 하는 것으로서 본고를 마친다. 

 

당시 아대륙 동북부에 깊이 행해지고 있었던 사문종교, 더 구체
적으로는 니간타의 교리와 사상 그리고 행법이었다. 물론 사이사
이에는 바라문교도 행해지고 있었다. 붓다는 6년 동안의 종교적
편력 끝에 이러한 니간타의 교리와 사상 그리고 실천법을 잘 파악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질적으로 새로운 전환을 모색
하였고 성공하였다. 그 정도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까 라마뿟따
를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는 무사득오(無師得悟)의 선포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니간타로부터 결별의 수준과 새로운 사상과
체계로서의 독립선언을 나타낸다. 후세인들이 자이나교와 관련성
을 잘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불교는 일신하였다. 하지만 새로 시
작하는 불교의 종교개념, 종교관념 그리고 종교체계는 분명 기존
의 종교적 토양을 바탕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자이나
교와 불교는 일견 비슷하면서도 현격한 차이를 가지게 되었고 또
한 그런 차이만큼이나 서로 간 관계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기
도 하였다. 그렇지만 본고로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불교는 니간타
사상과 실천의 지양(止揚)으로서 성립되었다. 본고의 주제인 사띠
등의 선정사상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의 기원은 니
간타 사상의 반향(echoes)이며 지양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렇다면 다음 과제는 선정 사상과 관련하여 불교는 니간타 자이나
교의 선정 사상을 어떠한 방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구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