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의 성격의 정의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열반경]에서도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하나는 '佛性有(불성유)'
입장이다. '有(유)'라는 의미는 불성에 대한 성격적 정의이다. 둘째는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경우 '일체'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다. 즉 중생들 가운데 '無佛性(무불성)'
인 존재가 있느냐 없으냐 문제이다.
앞에서 말한 '가난한 여인의 집에 있는 보배창고' 이야기에 앞서 [열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단히
주목할 만한 견해가 표명되고 있다.
"선남자여, 자기(我) 곧 如來藏(여래장)이란 뜻이니라. 일체의 중생에게는 모두 불성이 있나니 즉
이것이 자기(我)의 뜻이니라"
여기에서 '여래장'이란 '불성'과 같다는 말이다. 여래장이란 중생이 여래를 숨겨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중생 속에 숨겨져 있는 여래란 곧 '불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여래장' 또는 '불성'이란
여기서 자기(我)를 말한다. 불교가 터부시 하고 있는 '나'란 말을 여기에서 대담하게도 '불성'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 이해를 하면 오해를 하기 쉬운 귀절이다.
불교에서는 애초부터 여래장이나 불성에 관한 교설은 외도의 자아(아트만) 주장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상존해 왔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그릇된 견해라는 설명도 있어왔다.
그런데 [열반경] 34권의 여러 군데에서 '불성은 항상한다(상주한다). 사실이며 진실이다. 좋은
것이며 깨끗한 것이다. 그리고 볼수도 있다'고 하는 여섯가지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설법을 듣고 나의 뜻을 이해 못하고 불성이 중생을 떠나서 즉 중생과는 별도로
실재한다고 하는 제자들도 있다'고 비난 섞인 발언도 하고 있다.
나아가서 불성과는 중생과 색.수.상.행.식 오온이 별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중생이 곧
불성은 아니라 할지라도 불성이 아닐수도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불성리라는 것을
실체시하고 실체시 했다면 큰 잘못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불성을 自我(자아)라고 불렀는가 하면 하나는 제행무상이지만 여래는 상주하는
것과 같은 이론으로 제법무아이지만 여래는 그 제법무아인 진리, 그 자체로서 我(아)이며
大我(대아)라고 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이 대아인 여래는 중생의 투영이므로 常住(상주)인 불성 또한 자아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앞에서 말한 '自燈明(자등명)'과 관련해서 무아인 중생이 '스스로 의지한다'고
할때의 그 의지할 수 있는 자아란 다름아닌 불성이라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무불성의 중생
두번째 문제는 無佛性(무불성)인 중생의 문제다. 먼저 이 경의 제 34권에 나오는 구절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면 네가지 중요한 계(四重계)를 범한 자, 一闡提(일천제), 方等經(방등경)을 비방하는 자,
五逆罪(오역죄)를 일삼는 자에게도 모두 불성이 있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善法(선법)을 닦지
않는다 해도 불성은 어디까지나 좋은 것이다."
하지만 [열반경]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중생들에게 모두다 불성이 이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열반경]에 보면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 다만 일천제는 제외한다'라는 구절이 가끔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일천제'란 범어를 소리대로 옮긴 것으로써 그 뜻은 ' 이 세사에 욕망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세속일에 욕망을 가지고 있고 불교 따위는 돌아 보지도 않는 자,
좀더 나아가면 불교의 교리를 비방하는 자를 이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그런 중생은 불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일체' 중생이라는 것과는 모순된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는 이런 설명도
나온다.
"일천제는 불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무량한 죄악으로 얽혀서 빠져나갈 수 없다. 마치 누에가
누에고치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즉 자승자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설명이지만 실은 [열반경] 안에서도 일천제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대체로 10권까지의 전반부에서는 무불성으로 기울고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점차로 불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해 왔다.
난해한 여래의 밀어
위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如來常住 無有變易(여래상주 무유변이)' 와 '一切衆生 悉有佛性
(일체중생 실유불성)' 이라는 두개의 기본 가르침에 의해서 [열반경]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열반경]은 한편으로는 常住(상주)라든가 불성이 있다든가 또는 다시 불성은 자아(我)의
뜻이라든가 하여 이 경의 교리에는 왕왕 오해를 초래할 소지가 많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경은 함부로 어리석은 자에게는 들려 줄수 없는 '비밀의 경' 이라는 점이
경문 가운데서 가끔 강조되고 있다.
이를테면 제 9권에 보면 여래의 密語 (밀어)는 대단히 난해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비유로써 설명한다.
즉 어떤 임금이 있어 무엇이든지 '先陀婆(선타파)' 라는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고 한다.
첫째는 소금, 둘째는 그릇, 셋째는 물, 넷째는 말(馬)인데 이것을 모두 '선타파' 가져오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혜있는 신하는 그말을 알아듣고 틀리지 않게 가져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지혜가 없는 신하는 언제나 틀리게 가져온다.
마찬가지로 [열반경]의 심오하고 비밀한 뜻은 지혜 있는 보살들만이 볼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다.
"여래의 정법이 곧 소멸하려고 할 때 악행의 비구들은 여래비밀의 창고를 알지 못하고 여래비밀의
창고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경을 읽고 소홀히 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 그때 보살들만은
'능히 이 경의 참된 뜻을 알아 차리고 문자로 저술하지 않아도 순리에 따르고 거역하지 않고
중생을 위해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