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있는 누구든 간에
그것이 길거나 짧거나
고운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거나
주어지지 않은 물건을 갖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브라흐마나(성직자)라 부른다. (법구경 409)
오계중 살생하지 말라는 조항에 대하여는 앞에서 이야기한바 있으므로, 두번째 조항인 [훔치지 말라]는 계율을 놓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불교라 하면 우리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만 강조하는 극히 소극적인 종교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요즘처럼 세속적인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고 욕망의 충족을 주요한 생활목표로 삼고 있는 현대인에 있어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에 대한 천박한 오해에서 온 것이 명백하다.
불교에 있어서는 본래 욕망의 억제만을 가르쳤던 것은 아니다. 그에 앞서 물질의 소유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또 소유의 관념, 소유의 형태, 한걸음 나아가 인간의 소유욕, 그런 것들을 모두 포함해서 불교에서는 소유의 문제를 철저히 파헤쳐 추구해 갔다. 일찌기 원시 공동체 내지 종족공동체에 있어서는 대체로 물질은 사회공유를 원칙적으로 했던 것이지만, 국가의 출현과 함께 사회가 발달하면서 사유(私有)의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었다. 그런데 원시불교의 교단에 있어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약간의 사유가 인정되기는 했으나, 원칙적으로 사유재산 아닌 승가의 공동재산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물질의 사유가 인정되는 국가적 사회적 발전 단계에서 붓다가 중생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을 가지지 말라]고 가르친 것은 오늘날에 되돌아 보아도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한번은 붓다가 사위성에 탁발하러 갔을 때 배화교(불을 숭배하는 신앙)를 신봉하는 하나 바라문이 시비를 걸어 온 적 있었다. 바라문은 붓다의 모습을 보자 사뭇 욕설을 퍼부으면서 [이 천민아!]라고 외쳤다. 천민이란 바사라(vasala)를 가르킴이니, 인도 카스트 제도중에서도 최하계급으로 일반사람들은 손만 닿아도 부정을 탄다고 멸시하는 계급이다. 이에 붓다는 태연히 이렇게 반문했다.
[바라문이여, 당신은 천민의 참뜻을 알고 있습니까.]
바라문은 붓다의 위엄에 눌려 태도를 고쳐 말했다.
[아니요. 모릅니다. 사람으로 하여 천민이 되게 하는 조건을 가르쳐 주십시요.]
그래서 붓다는 천민이 되는 까닭을 순순히 타일러 주었다. 그 일절에 이런 것이 있다.
[마을과 마을, 거리를 포위하여 착취자라고 불니느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천민인줄 알라. 경집 118]
[마을에 있어서나 또는 숲에 있어서나 남의 소유인 물건을 주지 않았는데도 훔쳐서 가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천민인 줄 알라. 경집 119]
즉 붓다는 사회계급으로서 존재하는 천민을 도덕적인 타락자의 뜻으로 전환시킨 것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뿌리깊게 남아 있는 인도의 카스트 계급을 부정한 붓다에게 있어서는 계급이 있다면 사회적인 계급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에 따른 도덕적인 계급이 있을 뿐 이었다. 즉 남의 것을 훔치는 자,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야말로 천민이라 한 것이다.
불교가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라 하여 행실이야 어떻든 깨닫기만 하면 된다고 보아서느 안된다. 또 행실의 청정 없으면서 해탈이라는 것이 얻어질 리도 없다. 계율을 무시하는 경향이 오늘날 불교계에 만연하고 있지만 이는 규율없는 군대와 같다. 규율이 안선 군대로서 승리는 못 거둔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전인적(全人的)인 경지이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기초적이요 상식적인 덕목(德目) 들이야말로 우리를 해탈로 이끄는 계단이며 촛불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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